엘 파실 혁명군

 


1. 개요
2. 역사
3. 전력
4. 소속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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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파실 혁명군 마크

1. 개요


은하영웅전설의 국가 엘 파실 독립정부의 실전 군사조직. 정식 명칭은 엘 파실 독립정부 혁명예비군이다.

2. 역사


카이저 라인하르트의 재침공에 의해 자유행성동맹이 멸망의 위기에 처하자, 엘 파실 자치정부 주석 프란체스크 롬스키를 비롯한 정치적 이상가들이 엘 파실 성계의 독립과 엘 파실 독립정부의 탄생을 선언하긴 했지만 그들에겐 어떠한 힘도 없었다. 막말로 붕괴 직전의 동맹정부라 해도 지방 경비부대를 보내 진압할 수 있었을 정도였다.
그러던 중 그들은 양 웬리 원수 모살미수사건으로 도망자 신세가 된 양 웬리의 소식을 듣고, 그를 군사 지도자로서 극진히 모시겠다는 공식 발표로 양 일행을 붙들어놓는 데 성공한다. 사실 양은 여러 가능성을 열어둔 상황이었으나 결국 자금이 바닥나서 더 이상 활동하기가 어렵자 동료들의 의견에 따라 엘 파실에 합류하였다.
비록 양 웬리와 그가 숨겨둔 함대가 합류하긴 했지만 여전히 제국과의 격차는 압도적이었다. 제10차 이제르론 공방전 당시 엘 파실 혁명군이 동원한 전력은 겨우 우주함정 1,500척, 당시 은하제국군의 일부인 이제르론 요새 주둔함대가 15,000척을 보유한 것을 보면 하늘과 땅 차이였다.
그러나 엘 파실 혁명군은 과거 제9차 이제르론 공방전 당시 이제르론 요새에서 퇴거할 때 양 웬리가 미리 깔아둔 함정을 이용하여 간단히 제국군을 쫓아내고 요새를 탈환했으며, 이로서 전력이 크게 증강됨은 물론 전 우주에 엘 파실 독립정부의 이름을 널리 떨쳤다.
이후 루지아나에서 탈출한 병력, 마르 아데타 성역 회전에서 도망친 동맹군 패잔병, 회전 직전 자유행성동맹군이 양도한 5,560척의 함선, 동맹 멸망 이후 망명한 병력들이 모여 엘 파실 혁명군의 전력은 증강된다. 우주력 800년 4월 20일 기준 엘 파실 혁명군의 전력은 함정 28,840척, 장병 2,547,400명. 이는 구 자유행성동맹군 2개 정규함대에 필적하는 전력이었으며, 양 웬리가 이제까지 지휘한 병력 중 가장 많은 병력이었다.
그러나 2만 8천 척이 넘는 우주함정 중 30%는 수리 내지 정비가 필요한 함정이었으며,[1] 모여든 병사들 중 20%는 신참 병사들이라 훈련을 받아야 했다. 무엇보다 이들이 상대해야 할 은하제국군은 무려 회랑 전투 당시 함선 19만 2410척, 장병 1791만 1100명을 넘는 전력을 동원하여, 전력비가 10대 1에 달했다.
하지만 양은 이런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불패의 마술사'라는 별명 답게, 제국군의 칼 로베르트 슈타인메츠, 아달베르트 폰 파렌하이트 제독을 전사시키는 한편, 추정 4:1의 교환비로 제국군의 침공을 저지하는 데 성공한다. 마침 카이저 라인하르트가 회담을 수락하여, 양이 바라는 대로 민주공화주의 자치령이 탄생하는 듯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아니꼽게 보던 지구교의 공작으로 사령관 양 웬리 원수, 로젠리터 연대장 라이너 블룸하르트 중령, 부참모장 표도르 파트리체프 준장이 암살되고 순 수울 소령이 중상을 입었다. 이때 독립정부 의장 프란체스크 롬스키도 사망하였으므로, 엘 파실 독립정부는 구심점을 잃고 5일 뒤 해체되었다.
그러나 엘 파실 혁명군의 간부들은 이대로 민주공화주의를 포기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양 웬리 원수의 부관이자 아내 프레데리카 G. 양을 주석에, 양아들 율리안 민츠를 군 사령관에 옹립하여 이제르론 공화정부이제르론 혁명군을 창설한다. 이 과정에서 참모장 무라이 중장이 불평분자들을 데리고 자진해서 이제르론 요새를 나갔다.
이후 혁명군의 역사는 이제르론 혁명군으로 이어진다.
교전 사례로는 제10차 이제르론 공방전, 회랑 전투가 있다.

3. 전력



4. 소속 인물



[1] 동맹 말기 급히 건조된 뒤 시험 운항도 못해보고 끌어온 신조함 정도는 그렇다고 쳐도 건조된 지 너무 오래되어 진작에 폐기했어야 할 노후함에 전투에서 크게 손상되어 수리가 불가능 한 함선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이런 도저히 전투에 못 내보낼 함선을 제외하면 대략 2만척 정도가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