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파실 독립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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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은하영웅전설에 등장하는 세력. 수도성은 엘 파실.[7] 존속기간은 우주력 799년, 신제국력 1년 8월 13일 ~ 우주력 800년, 신제국력 2년 6월 6일. 엘 파실 혁명정부, 엘 파실 독립혁명정부라고도 한다.
2. 역사
2.1. 건국
은하제국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자유행성동맹은 우주력 799년 5월 바라트 화약을 맺어 사실상 은하제국의 속국으로 전락하였다. 전제정치에 대항하여 민주공화주의의 기치를 내걸고 싸워온 160년간의 노력은 모두 물거품이 되었고 동맹정부는 제국에게 책잡히기 싫어 동맹헌장 7조에 규정된 '''언론과 결사의 자유'''를 유기한 금지시키고, 동맹시민의 반제국 운동을 단속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게 된다.
분노한 동맹 시민들은 각지에서 시위와 폭동을 일으켰고 지방 성계 정부를 중심으로 자유행성동맹에서 이탈하려는 움직임마저 발생하기 시작했다. 자유행성동맹의 변방 엘 파실 자치정부 주석 프란체스크 롬스키는 이런 분노한 동맹 시민 중 한 사람으로 전제주의의 굴복해 민주주의를 내버린 자유행성동맹 대신 민주공화주의 정신을 진정으로 계승한 진짜 민주주의 국가를 표방하고 지지자들을 모아 우주력 799년 8월 13일 엘 파실 성계가 자유행성동맹을 탈퇴한다고 선언했다.
다만 자유행성동맹 말기의 꼬라지에 분노해서 롬스키를 중심으로 엘 파실의 주요인사들이 독립을 선언한 것에 불과한 것이었고 이렇다할 힘도 영향력도 없었다.
2.2. 양 웬리의 합류
'''하지만''' 제국 고등판무관 헬무트 렌넨캄프 상급대장이 폭주하여 양 웬리 원수가 렌넨캄프와 동맹정부에 하마터면 죽을 뻔 했고, 동맹에서 이 사건 뒷처리를 어설프게 하는 바람에 렌넨캄프가 자살해버렸다. 이에 은하제국 로엔그람 왕조에서는 동맹에 응징을 선언하고 선전포고를 날리면서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자신의 신변을 위해 하이네센을 탈출한 양 웬리는 결국 물자와 자금이 바닥나 어느 세력에 붙을 것인지 선택할 수 밖에 없었고 이에 따라 합류한 곳이 엘 파실이었다.[8] 엘 파실 측에서도 독립선언 이후 뒤따르는 자가 없어 고립감에 처해있던터라 양 웬리의 합류를 적극적으로 환영했다. 물론 동맹정부는 발끈했지만.
양 웬리의 합류는 엘 파실의 영향력을 신장시키는 요소가 될 수 있었다. 일단 혈기 넘치는 재야인사들이 그냥 들고 일어난 것뿐이어서, 군사력이라고 할 만한 역량이 전혀 없었는데[9] 동맹 최고의 명장 양 웬리와 그의 함대가 합류함으로써 충분한 군사적 역량을 갖출 수 있었다. 여기에 제국에게 흡수당할 것이 명백한 자유행성동맹을 대신하여 자신들이 민주주의의 투사를 자처할 수 있는 명분까지 얻게 된 셈이다. 이에 꽤나 자신감을 얻었는지 롬스키가 '''자유행성동맹 정통정부'''란 이름을 붙이려 들었다(…). 하지만 안좋은 선례가 하나 있었기 때문에 결국 무산되고[10] 그냥 평범한 엘 파실 독립정부로 이름이 정해졌다. 그리고 양 웬리가 지휘하는 엘 파실 혁명군이 창설됐다. 이름만 엘 파실 혁명군이지 실상은 양 웬리 함대의 리네이밍 버전이다(…).
더구나 독립정부 수뇌부 인사들은 롬스키를 제외하면 어떤식으로든 사익을 추구하며 떡고물이나 얻어먹어볼까 하여 끼어든 무리들이 대다수로 개중에는 상황이 불리해지면 '''양 웬리를 은하제국에 팔아넘겨 안전을 보장 받자'''는 제의를 한 작자까지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양식있고 훌륭한 이상주의자였던 롬스키는[11] 이런 불손한 제의들을 단칼에 거절하였고[12] 양 웬리의 구상대로 이제르론 요새를 탈환되자 엘 파실 성계에 대한 무저항 선언을 남기고 정부 각료들은 이제르론 요새로 이동하였다.
2.3. 멸망
자유행성동맹이 마르 아데타 성역 회전 이후 겨울장미원의 칙령으로 완전히 멸망하자 이제 엘 파실의 차례가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엘 파실을 지킬 방법이 없자 롬스키를 비롯한 정부인사들은 엘 파실 성계의 무저항 선언을 한 후 이제르론 요새로 몸을 옮겼다. 양 웬리의 마술과도 같은 활약으로 회랑 전투에서 제국군의 침입을 막을 수 있었지만, 은하제국과의 회담장으로 가던 도중 지구교 신도들에 의해 양 웬리와 롬스키 등 독립정부 중진들이 살해당하는 비극이 일어났고 혁명의 정신적 지도자와 군사적 지도자를 잃은 엘 파실 독립정부는 해산을 선언하고 각료들은 살길을 찾아 이제르론 요새를 빠져나갔다. 엘 파실 정부는 그렇게 채 1년도 안 되는 짧은 역사를 마감했지만, 민주주의만큼은 지켜내겠다는 양 웬리의 의지를 오히려 무력집단이었던 혁명군의 멤버들이 이어받아 곧 이제르론 공화정부를 탄생시키기에 이른다.
독립정부의 소멸과 구심점이었던 양 웬리의 사망, 차세대 군사 지도자인 율리안 민츠의 리더십에 대한 의문, 향후 이제르론의 불투명한 미래 등으로 100만 명에 달하는 이탈자가 발생하였다. 우선 참모장 무라이가 살신성인의 자세로 먼저 이제르론에 이탈하였으며, 그의 이탈에 수많은 사람들이 이제르론을 떠나 하이네센으로 돌아왔다. 본래라면 이들은 카이저에게 총을 겨눈 반역자로서 제국의 처벌을 받아야겠지만, 100만 명이라는 막대한 숫자와 구 동맹 시민들의 감정을 고려하여 제국 노이에란트 총독 오스카 폰 로이엔탈 원수는 이탈자들이 탄 수송선이 하이네센 제2군용우주항에 착륙하는 것을 허가하며 민간인 및 비전투원은 풀어주면서 우주력 800년 안에 제국신민 공민권을 부여하고, 장병 및 부사관은 성명을 등록하고 귀가시켰다. 위관급 이상 장교와 독립정부의 공직에 봉사한 자는 이름, 주소, 지문을 등록하고 제국정부의 공식 조치가 있기 전까지 1달에 1번 총독부에 출석하여 등록 카드를 갱신하도록 했다. 그리고 참모장을 역임한 무라이는 특별히 감시가 붙었다.
3. 국가 개괄
3.1. 정치
정치체제는 민주공화정. 본래 제국에 굴종하여 민주주의를 저버린 동맹정부에 반발해서 독립한 세력이니 민주공화정을 채택한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정치 구조에 대해서는 언급이 그다지 없기 때문에 알기 힘들다. 그나마 알 수 있는 정보로는 정부수반 및 국가원수를 주석 또는 의장으로 호칭한다는 것과 동맹의 국방위원장에 해당하는 군사위원장에 국가원수가 겸임했다는 것 정도. 의회와 사법부의 존재 및 그 구조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애초 급조한 임시정부 수준이니 뭐...
문민통제에 대해서는 구 동맹보다 퇴보한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병권이 양 웬리에게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양 웬리 원수 모살미수사건 이후 양 웬리가 거느린 참모진 및 병사들은 사실상 양의 사병으로 변질되었으며, 양 웬리가 문민통제를 중요시하는 성격 때문에 문제 없이 넘어갔지 원한다면 언제든지 독립정부를 엎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는 그만큼 독립정부측의 역량 면에서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3.2. 외교
엘 파실 독립정부는 자유행성동맹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으나 동맹정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양 웬리 원수 모살미수사건 이후 동맹정부 및 군부는 혼란에 빠져 있었으므로 독립을 포기하고 다시 동맹으로 돌아오라는 성명 외에는 어떠한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오히려 동맹군 우주함대 사령장관 대리 춘우 지엔 대장은 5,560척의 함선을 엘 파실 독립정부에 양도하였다.[13]
은하제국 역시 겨울장미원의 칙령을 통해 엘 파실 독립정부를 인정하지 않았다. 아니, 당시 제국 수뇌부는 오로지 양 웬리 생각 뿐이었고 엘 파실 독립정부인가 뭔가 하는 듣보잡 세력 따위에는 관심도 없었다. 당시 제국군 우주함대 사령장관 볼프강 미터마이어 원수는 독립정부에 대해 '엘 파실 독립정부 어쩌고는 양 웬리라는 닭의 머리를 장식하기 위한 볏에 불과'하다고 표현했으며, 제국군 공식기록에도 엘 파실 독립정부보다 '양 웬리 군'이라고 호칭했다.
이 때문에 회랑 전투 이후 제국은 엘 파실 독립정부가 아닌 양 웬리하고만 협상하려다가 엘 파실 독립정부측의 요구에 결국 엘 파실 독립정부도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 있게 되었으며 그마저도 카이저 라인하르트는 엘 파실의 이름은 쏙 빼고 양 웬리의 이름만 언급했고, 양 웬리 암살사건에서 롬스키가 죽은 것도 양 웬리 때문에 협상에서의 엘 파실 측의 영향력이 줄어들 것을 우려한 롬스키가 제국군을 가장한 지구교도들이 자신들과 접촉하자 협상장의 교섭 권한이 양 웬리가 아닌 자신들에게 있음을 확실히 하고자 접촉해서 일어난 일이었다.
3.3. 영토 및 인구
초기 영토는 이제르론 회랑의 동맹측 출구에 위치한 엘 파실 항성계였으며, 이후 양 웬리 함대가 합류한 뒤 이제르론 요새를 탈환하므로써 이제르론 회랑 전역을 손에 넣게 된다. 그러나 제국군이 이제르론 회랑으로 접근하자 엘 파실 성계는 무방비선언을 남기고 사실상 포기함으로써 영토는 이제르론 요새로 국한된다.
인구는 본래 엘 파실 성계에 있던 300만 명으로 출발했으며, 동맹 멸망 이후 군인 및 민간인의 망명이 이어지면서 550만을 넘어섰다. 그러나 회랑 전투에서 수많은 장병들이 전사하면서 인구가 줄었으며, 양 웬리 암살사건 이후 구심점이 무너지면서 약 100만 명이 독립정부를 떠났다.
3.4. 군사
4. 평가
양 웬리 덕분에 나팔을 불 수 있었던 세력이다. 양 웬리가 합류하기 전까지는 '''치기어린 몽상가들의 아무 힘없는 혁명정부'''에 불과했고,[14] 양이 합류한 이후로는 양 웬리가 데려온 직속부하들로 구성된 엘 파실 혁명군과 그들의 역량, 이제르론 요새에 무력수단을 의지할 수 밖에 없었다. 양 웬리가 야심가였다면 이름만 빌려주는 허수아비 역만 하다가 쓸려 나갔을 것이다. 적국이었던 은하제국 수뇌부도 양 웬리만 생각했지, 무명의 혁명정부 따윈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았다. 오죽하면 양 웬리 암살사건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벌어졌을 라인하르트와의 화평 자리도 원래는 그냥 라인하르트와 양 웬리가 해먹을 자리인데 롬스키가 자기네들의 지분도 요구해서 끼어들 수 있게 되었을 정도.
하지만 최고 지도자로서 전면에 나서기 싫어했던 양 웬리에게는 여러모로 좋은 동맹 상대였다.
참고로 위의 내용들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바라트 성계 자치령의 뿌리가 된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엘 파실 독립정부-이제르론 공화정부-바라트 성계 자치령은 서로 연관이 있는 편이다. 엘 파실 독립정부는 도중에 이제르론 요새로 정부를 옮겼고 이제르론 공화정부가 하이네센으로 옮겨가면서 바라트 성계 자치령으로 바뀐것이기 때문이다. 이걸 보면 양 웬리는 바라트 성계 자치령의 국부에 버금가는 셈이다.
[1] 다만 민간 출신으로 이뤄진 정부였어도 위상은 까마득히 낮았다.[2] 어쩔 수 없기는 했지만 정부, 군 모두 군인 출신으로 이루어져 있어 명목상 민주공화제를 내세웠지 실질적으로는 군사독재로 흘러간 이후의 이제르론 공화정부와는 달리 정부 인사들은 확실히 민간 출신이었기에 실질적으로도 민주공화제로 운영되었다. 다만 최고평의회 같은 행정부나 의회 같은 입법부도 언급되지 않는다.[1][3] 회랑 전투를 앞두고 정부를 옮김[4] 이 인구는 엘 파실 본성의 인구만이고 양 웬리 함대 구성원까지 합치면 550만은 된다.[5] 사실상 미래 영어[6] 독립정부 연호인 우주력 (SE)으로 표기함.[7] 하지만 제국군이 회랑으로 침공한 이후로는 이제르론 요새가 실질적인 수도성이었다.[8] 사실 양 웬리는 엘 파실 합류를 머뭇거리고 있었다. 아직도 동맹정부에 미련이 남아서 혹시라도 동맹정부가 자신을 부를 가능성이 반쯤은 있을거라고 여겼기 때문이다.[9] 이미 제국령 침공으로 함선을 거하게 날려먹은 데다가 이런저런 일로 인해서 남은 함선도 족족 날려먹고 있었다. 중앙정부인 하이네센에서조차 굴릴 함선이 박살났는데 지방 행성에 불과한 엘 파실에 함선이 어디 있겠는가. 더군다나 엘 파실은 변두리중의 변두리로 툭까놓고 말하자면 이제르론 옆동네에 불과한 곳이었다. 한마디로 지방도 모자라 변방이기까지한 멀고도 먼 행성이다. 인구수로도 10억에 달하는 하이네센과 달리 300만에 불과했다. 그냥 요런 쬐끄만 세력이기에 (언제든 짓밟을 수 있으니) 제국군이 동맹 먼저 밟은거 뿐이다.[10] 아텐보로가 "정통정부란 이름은 불길해요. 최근에 최악의 악례가 있지요. 은하제국 정통정부말입니다." 라고 하자 롬스키도 확실히 불길하다고 생각했다.[11] 양 웬리를 계속 꼬드겼던 쇤코프도 롬스키에 대하여 양심있고 책임감있다고 평가했다.[12] 이미 레벨로를 죽이고 항복했다가 끝이 안좋았던 록웰의 최후를 알고 있던터라 이 사례를 들어 반대했다.[13] 정확히 말하면 양도받을 사람은 양 웬리였으나 양이 엘 파실 독립정부로 합류했기 때문에 독립정부에 양도한 것이나 마찬가지다.[14] 이거 다름아닌 아군인 양 웬리 함대측의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