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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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초 예고편
'''영웅: 천하의 시작'''
1. 소개
장예모의 2002년 사극 영화. 2014년에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이자, 개봉 당시 삭제됐던 10여분이 추가된 감독판으로 재개봉했다. 협객 4인방 이연걸, 양조위, 장만옥, 견자단에 조연으로 장쯔이, 진도명까지 출연한 초호화 캐스팅.
진시황을 암살하려고 했던 형가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만들었다.
미국에서는 쿠엔틴 타란티노에 의해 배급되었다.
2. 출연[2]
무명(无名) - 이연걸
영정(진시황) - 진도명
장천(长空) - 견자단
파검(残剑)(고산) - 양조위[3]
비설(飞雪)(유수) - 장만옥[4]
여월(如月) - 장쯔이[5]
3. 줄거리
때는 전국시대 말기. 천하통일을 눈앞에 둔 진왕 정은, 멸망시킨 주변국의 자객들에게 암살 위협을 받고 있다. 암살을 경계한 그는 조정 대신들 외에는 자신의 100보 이내로 아무도 접근을 못하는 법을 만들었다.[6]
진왕 정에게 위협이 된 협객은 은모 장공, 잔검, 비설[7] 이다. 진왕은 이 셋을 죽인 자는 자기 앞 10보까지 다가와 술을 한 잔 할 수 있으며, 수많은 상금과 관직, 땅을 하사겠다는 보상을 내건다.
그러던 어느날, 백부장(원어로는 亭長) 무명이라는 자가 장공, 잔검, 비설을 처단했다며, 증거로 그들의 무기를 상자에 담아 왕에게 헌상한다. 궁궐에서 무명 검객과 마주앉아 술 한잔을 하게 된 진왕 정은, 세 협객을 처단한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한다.
무명은 팽팽한 긴장감이 도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는 창잡이 장공은 실력으로 꺾었고, 연인인 비설과 잔검은 장공과의 삼각관계를 이용한 이간질로 죽였다고 말한다. 무명은 장공을 죽인 후 장공의 창을 들고 비설과 잔검을 찾아갔고, 장공이 사랑하는 비설이 원한을 갚아줄 것이라고 말했다고 거짓말을 한다. 두 사람의 관계를 의심하고 질투한 잔검은 여월과 성관계를 맺는 장면을 일부러 비설에게 보여준다. 이에 분노한 비설은 잔검을 살해하고, 냉정을 잃고 무명에게 덤볐다 죽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왕은 이야기를 믿지 않는다. 과거 잔검과 비설을 봤는데, 둘은 이간질에 속아 서로 의심하고 배신할만큼 속 좁은 사람들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과 무명 사이에 놓인 촛불들이 전부 자신을 향해 흔들리는 것을 보며 무명이 '''살기를 품은 자객임을 깨닫는다.''' 그는 잔검과도 실력을 견줄 만한 자객인데, 조나라 사람이었지만 어릴 적 진나라군에게 모든 가족을 잃고, 진나라 사람에게 입양 돼 자랐다. 그러나 원한을 잊지 않고 진왕을 죽이기 위해 10보 안에서라면 상대를 확실히 죽이는 검술, '십보일살'을 10년 이상 익혔다. 하지만 진왕의 백보 안에 접근할 수가 없어서, 10보 밖까지 접근할 '합법적인 방법'을 찾아야했다. 이 때문에 세 자객과 공모했다. 그들은 무기를 넘겨주고 싸우다 죽은 척을 했을 뿐 실제로는 멀쩡하게 살아있다.[8]
무명도 자신이 암살자인 것을 인정한다. 정체가 탄로났고 곧바로 진왕을 암살할 수도 있지만, 무명은 진왕을 죽이는 것을 주저한다. 진왕은 이유를 캐묻고, 그는 궁궐로 오기 전 잔검과 나눈 이야기 때문이라고 말해준다. 잔검은 무명에게 진왕을 암살하지 말라고 부탁했다. 여러 나라가 계속 전쟁을 하면 피해입는 건 민초들뿐이고, 난세를 안정시키려면 강력한 집권국가로 통일이 되어야 한다. 이를 완수할 수 있는 인물은 진왕 뿐이라는 것. 그 와중에 발생하는 '주변국 멸망'이라는 작은 희생은 큰 것을 위해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9] 이 때문에 3년 전 비설과 진나라 왕궁에 쳐들어갔을 때 진왕을 죽일 수 있었지만 포기했고, 조나라 장군인 아버지를 잃어 진나라에 원한이 깊은 비설은 잔검을 원망해 사이가 나빠진 것이다.
진왕은 자신이 평생 두려워한 잔검이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해 줬다는 데 놀라고,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린다. 그런 이해자를 가진 인생이라면 나쁘지 않다며, 아무런 무기도 없이 어찌 자신을 죽일 것이냐 묻는다. 이에 무명은 당신의 검을 뺏어서 죽일 것이라 답한다. 진왕은 자신의 애검을 친히 내주며 자신을 죽여도 좋다고 허락하고 뒤돌아선다. 그리고 검(劍)이라는 글자에서 최고의 경지는 다툼이 없는 평화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은 무명은 그대로 도약하여 진왕의 목을 날리는 대신 마지막 순간 칼을 거꾸로 잡고 칼자루로 옆구리를 치는 것으로 끝낸다. 무명 역시 잔검의 생각에 동의한 것이다.
한편 암살이 실패했다는 소식이 비설과 잔검에게 전달된다. 비설은 무명이 진왕을 죽이지 않도록 유도했다고 따지며, 당신 마음 속에는 천하뿐이라고 비난한다. 잔검은 비설에게 당신도 내 마음 속에 있다고 항변하지만 그녀는 검을 던져 결투를 청한다. 잔검은 비설의 칼을 몸으로 받아 죽는다. 비설이 왜 막지 않았냐고 묻자, 이래야 당신이 나를 믿을 것이라고 말하며 숨을 거둔 잔검. 비설은 울부짖으며 스스로 목숨을 끊어 연인을 따라간다.
다시 시점은 진나라. 진왕은 두 번째 이해자라 할 수 있는 무명을 어떻게든 살려주고 싶어하나 신하들은 왕을 습격한 자객은 법으로 처형해야 하고, 법이 지켜져야 나라의 기강이 바로 선다고 간언한다. 정은 비통해하면서 어쩔 수 없이 처형명령을 내린다. 결국 무명은 충분히 도망칠 수 있었지만, 수많은 화살비 속에서 최후를 맞는 쪽을 택한다. 진왕은 무명의 시신을 거두어 국장을 치뤄주어 자객 무명은 영웅으로 묻힌다. 장공은 친우들을 생각해 다시는 창을 들지 않았다.
그리고 진왕은 천하통일을 이룩하니, 그가 바로 진시황이다.
4. 노트
장예모 감독의 영화답게 영상미는 정말 감탄할 정도로 탁월하다. 각각의 인물과 상황을 적절하게 드러내는 색채의 활용이라든지 이연걸과 양조위가 정자가 있는 호수가에서 검으로 싸우는 장면은(사실 진짜 싸운 게 아니라 죽은 비설을 추모하는 2인극 검무 같은 거지만) 한폭의 동양화를 그대로 영화에 옮긴 것 같다는 평가를 받았다.
액션의 경우는 이연걸과 견자단, 두 걸출한 액션 스타의 대결장면이 나왔다는 점에서 무협 매니아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맹인 악사의 반주에 맞춰 무명의 검과 장공의 창이 대결을 벌이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 이 장면의 액션이 너무나 훌륭해서 영상에서도 둘의 액션 자체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기도 하고 오히려 카메라워크 등으로 때운 후반의 결투신들은 맥이 빠지는 느낌마저 든다. 말이 필요없으니 직접 보자.
와호장룡과 더불어서 2000년대 초반에 대작 무협 영화의 유행을 이끌었다. 그 이전에도 해외에 영화가 자주 소개되어 유명 영화제에서 상도 타고 비평적으로도 상당한 성과를 올렸던 장예모 감독이지만, 이 작품에 이르러 처음으로 대작 영화를 만들었고[10] 좋은 반응을 얻어 일련의 대작 무협 시리즈라 할 수 있는 연인, 황후화 등을 만들었다.[11] 대작만 만드는 것에 질렸는지 틈틈이 작은 영화도 만들었다. 천리주단기, 산사나무 아래서 등이 좋은 예.
4.1. SPECIAL SCENES
'''심내전 (心內戰)'''
끊임없이 내리는 빗물, 빗물 사이를 타고 흐르는 아름다운 현의 울음 검과 창을 내려놓은 두 영웅은 눈을 감고 가만히 서 있건만 그들 사이에서는 살을 노리고 뼈를 헤집는 살기가 폭발하노라...
영웅에서는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액션이 나온다. 특히 오프닝에서 보여주는 은모장천(견자단)과 무명(이연걸)의 대결은 무협 영화의 새로운 시도를 보여준다. 둘은 몇 합의 검을 겨룬 뒤 다시 대치해 서서 눈먼 악사에게 음악을 청한다. 그리고 본격적인 대결에 돌입하는데 이제부터의 대결은 실제로 검과 창을 맞대고 싸우는 것이 아니다. 둘은 마음속으로 비무를 하는 것이다. 물론 이는 실제로 부딪히는 것처럼 치열하고 격렬하다. 비록 마음속의 비무지만 이 대결에서 진다면 자칫 호흡이 흐트러져 위험한 상태에 이를 수도 있다. 결국 마음속에서의 대결이지만 생명을 걸고 하는 전투나 마찬가지이다. 두 배우들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표정만으로 결투의 진행을 표현했고, 마음속의 결투는 흑백장면으로 교차해서 나타내었다. 아름다운 동양의 미를 표현하고자 한 장예모 감독은 얘기로만 전해지던 심안무를 스크린으로 옮겨 동양적인 내공의 힘과 무명과 장천의 높은 무공의 수위를 표현하였다.
'''수상비 (水上飛)'''
물위를 걷는 절정의 신법으로 호수를 가르며 펼쳐내는 검기, 살에 물이 닿으면 지는 대결이건만, 사랑하는 여인의 얼굴에 묻은 물을 닦아내야 하노라...
<와호장룡>의 가장 유명했던 장면인 대나무 대결신보다 훨씬 더 동양의 아름다움을 잘 표현해냈다. 그야말로 정중동의 의미를 완벽하게 살려낸 아름다운 무술 대결은 한편의 산수화를 감상하는 듯 평화롭고 아름답기만 하다. 특히 넓은 호수를 가로지르며 결투를 펼치는 세계적인 두 배우의 몸짓은 춤사위처럼 신비롭고 화려하다. 더 놀라운 것은 이들의 결투 방식이다. 이들은 서로의 몸에 상처를 내어 승부를 내는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 서로의 높은 무공을 인정하고 있기에, 쉽게 승부가 나지 않을 것을 알기에 새로운 방법을 택한다. 그것은 살에 물이 닿으면 지는 것이었다. 둘은 검으로 물방울 튕겨내며 힘을 겨루지만 쉽게 승부가 나지 않는다. 그러던 중 튄 물방울 하나가 시신이 되어 정자에 누워있던 비설의 얼굴에 닿았고, 파검은 자신의 연인의 얼굴에 묻은 물방울을 닦아낸다. 뒤돌은 파검을 공격을 하려던 무명은 이를 보고 급하게 칼을 거두고 방향을 바꾸어 물에 빠지지만 승리는 이미 무명의 것이었다.
5. OST
이외에도 여러 OST가 있다. 웅장하면서도 애잔하며 긴장감과 박진감이 살아 있다는 평이 많다. 영상과 보면 더 좋지만 음악만으로도 나쁘지 않다.
6. 흥행
북미에서 박스오피스 1위까지 찍었는데 순수 외국 영화에 더빙 개봉도 아니었던 영화가 1위까지 찍은 건 영웅이 유일하다. 기사[13]
7. 후보
8. 평가
'''아시아 영화 중 극강의 미장센과 영상미를 보여준 명화'''라는 평도 있고, '''중국 공산당 프로파간다에 불과한 공갈빵'''이라는 평도 있어서, 장예모의 영화들 중에서는 유난히 호불호가 극강으로 갈리는 편이다. 이런 논란은 장예모가 2000년대 이후 친정부 성향을 보인 것과 관련이 깊다.
현란한 영상미와 액션 및 구성에 환호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결국 진왕 정의 암살을 포기하고 죽음을 선택하는 무명의 결말은 다분히 천하의 안정을 위해 독재지만 공산당이 필요하다는 프로파간다라고 평하기도 한다.
프로파간다라고 보는 입장에서는 일단 영화의 내용이 역사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평한다. 전한 이전 춘추전국시대 당시 각 나라들은 서로 남남인지라 진나라가 적국에 쳐들어가는 건 당하는 입장에선 외세가 침략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으며, 게다가 통일 후 진나라는 정복한 각 나라를 잘 다스리긴커녕 융통성 없는 통치로 억누른지라 결국 각 백성들이 들고 일어나 다시 중국이 초한전쟁으로 갈라졌다는 걸 생각하면 영화 내 진왕의 주장과 실제 역사는 상당히 불일치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14]
하지만 바로 위 주장에 대한 반론도 있는데, 침략과 통일론을 구분하지 못하고 전국시대 통일 과정과 전국시대 통일 이후의 진의 통치를 구분하지 못하는 처사에서 오는 평가라는 것이다. 전국시대부터 이미 정치•경제•문화 등에서 통일론이 형성되어 왔고 각 나라의 백성들이 평화에 대해 염원했으며, 통치영역을 초월한 경제적 상호의존관계가 긴밀해 지면서 통일욕구는 더 증폭됐다. 또 전국시대 각국은 문자와 언어와 공동조상을 바탕으로 화하(華夏)라는 의식이 있었으며 변방을 만이융적으로 보는 중화의식이 이미 전국시대부터 존재했다는 것이다.(출처: 신채식. 동양사개론[개정판]. 삼영사. 2017년 3판 125~6쪽 참고) 즉 전국시대 사람들은 계속 서로 싸워대는 것에 피로를 느끼고 있었고 자신들이 같은 민족이며 통일을 해서 평화 속에서 잘 살고 싶다는 의식이 만연했기에, 이 관점에서 본다면 나라가 진에게 통일'''당'''한다 하더라도 적어도 전쟁은 더 없을 것이므로 백성 개개인 입장에서는 통일된 왕조 속에서 사는 안정된 삶을 바랄 수 있었다.[15] 따라서 진이 전국을 통일할 때 각국의 대다수 백성들이 진을 외세라고 적대하기만 했는지는 불분명하다. 그리고 위 주장에서 언급한 진의 융통성없는 법치에 대한 각국 백성들의 반발은 통일 이후 2세 황제 호해 때 극대화되어 나오는 것이므로 영화상의 통일 시기와 안 맞다. 결국 영화의 내용은 '''통일 당시'''의 역사적 의식과 내용을 상당 부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단지, 영화상의 전국시대 당시의 중화의식과 통일 필요성에 비해 20~21세기 최근의 중화의식은 중국 내 소수민족들을 더 포괄적으로 '한족을 위해' 통일하려 든다는 것이며, 그걸 위해 중국 정부가 이 영화의 '통일' 이라는 주제를 프로파간다로 이용하고 있다고 느낀다면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장예모 감독은 <황후화>(2006)에서도 유사한 방식을 선택한다.[16]
백보 양보해서 영화가 표방하는 통일 중국이라는 주제를 긍정한다 해도 중국사를 약간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영화를 다 본 후 실소가 나올 수밖에 없는데, 이유는 이렇게 거창하게 대의를 내걸고 통일한 진나라가 '''겨우 3대 15년 만에 망해버렸기 때문이다'''. 문화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정말로 하나된 중국을 만든 것은 진이 아니라 한이었으며, 나라 한번 세우면 기본값이 4-500년이었던 한국은 물론 전 세계 어느 나라 역사를 뒤져도 15년짜리 왕조는 절대로 성공케이스로 쳐주지 않는다. 그러니까 무명(이연걸)이고 파검(양조위)이고 간에, 무익한 전쟁을 없애고 무력에 의해서라도 평화를 이룩해야 한다며 진시황을 띄워줬는데 지가 만든 나라를 겨우 3대 유지할 능력조차 없는 놈[17][18] 을 과대평가해서 헛지랄한 셈이 되는 것이다. 이쯤되면 허무개그 수준이다. 그래서 일각에선 이 영화가 테러와의 전쟁에 열중하는 미국을 비판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는 경우도 있다.
이 영화가 프로파간다가 아니라는 주장을 하는 평론가들은 오히려 중국이 통합, 진보라는 명분 아래에 인권을 유린하는 것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사실 이런 관점도 꽤 설득력은 있는데, 그 중국 공산당이 중국 통일을 완수한 위대한 군주라며 띄워주는 진시황이 이 영화에서는 영화상에서는 비록 암살의 위협 때문에 그랬다고는 하나, 포상의 등급에 따라 자기를 몇 보 앞에서 알현할 수 있는지를 일일이 정해놓은 강박증이 심한 사람으로 묘사되었다거나, 조나라를 포함한 여러 나라의 문자가 서로 다르다는 점[19] 을 두고 자기가 이들을 모두 정복한 다음에 이를 하나로 통일하겠다고 말하는 장면에서 이연걸이 불편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 것[20] , 결국 진시황 자신을 죽일 뻔했으나 죽이지 않은 이연걸을 죽이라 명하면서도 그의 장례를 후하게 치뤄주고는 깊은 생각에 빠지는 장면들을 보면, 도저히 공산당에 대한 찬양이라 보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장예모 감독의 영화에서 이런 논란이 이는 경우는 한두 번도 아니다. 일례로 위에서 언급한 황후화에 나오는 대왕은 중국 통일이라는 야심에 찬 인물이지만, 동시에 멀쩡히 살아서 재혼한 전처를 죽었다고 거짓말하거나, 이를 잘 아는 왕후를 그 아들에게 직접 독약을 먹여서 죽이라고 하고[21] , 그 와중에 자기만 무시당한다고 생각해서 쿠데타를 일으켰던 막내아들은 직접 허리띠로 패죽여버리는 인간 쓰레기로 묘사된다. 이는 정치적 관점에서 해석해봐야 중국 공산당의 통일 정책이라는 미명하에 벌어지는 각종 잔악한 행위를 비판했다고밖에 볼 수 있어서[22] , 영화를 본 평론가들은 최소한 황후화에 대해서만큼은 친정부적인 프로파간다는 들어있지 않다는 데에 의견을 모으고 있다.
영화의 전체적인 맥락은 백부장 무명이 진왕을 암살하기에 앞서 진왕에게 3명의 협객을 처단한 거짓된 이야기를 고하고, 진왕이 그 얘기가 거짓말이라는 것을 간파하고 거짓된 이야기를 자기 나름대로 추측하며 추리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무명은 진왕의 추측도 잘못된 것이라 밝히며, 마침내 진실된 이야기를 고한다. 그리고, 암살시도를 포기[23] 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한 가지 인상 깊은 점은 진왕 자신이 만든 법[24] 때문에 원치 않으면서도 무명에게 암살할 기회를 주고, 또 그 법[25] 때문에 자신을 이해해 준 무명을 자기 손으로 죽여야 했다는 점이다. 특히 무명을 죽이라고 간언하는 장면은 마치 신하들이 진왕을 협박하는 것처럼 묘사된다. 그리고 그 신하들은 진의 군사들이 무명의 시신을 정중히 거두며 '영웅!'이라며 외치는 장면 뒤 멀리 조명하는 장면에서 전부 사라지고 없다. 그의 말처럼 그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신하가 주위에 없는 외로운 진왕의 심리를 표현한 장면.
이연걸은 이 영화 전에도 영웅이라는 1995년작 영화에 나온 적 있는데, 사실 영웅이란 제목은 국내에 수입하면서 바꾼 거고 원제는 給芭芭的信(급파파적신)이다. 그러니까 원제는 영웅이 아닌 영화인데 씨네21에서 이연걸과 인터뷰하면서 영웅이란 제목의 영화는 두 번째 출연이라는 드립을 쳤다.#[26]
[1] 원어대로 쓰면 어감이 이상해서인지 한국에서 개봉할 때의 등장인물들 이름은 원어와 약간 다르게 되어 있다.[2] 원어대로 쓰면 어감이 이상해서인지 한국에서 개봉할 때의 등장인물들 이름은 원어와 약간 다르게 되어 있다.[3] 비설과 연인사이.[4] 파검과 연인사이.[5] 파검의 심복[6] 실제로 형가가 전각 위에서 진시황을 습격했을 때, 왕이 부르지 않으면 전각 위로 올라갈 수가 없어서 신하들이 발만 동동 굴렀는데 이를 모티브로 삼은 설정.[7] 우리나라 극장에서 개봉 당시 중역 때문에 오역을 했는지 어감을 좋게 하려고 했는지 이름을 조금씩 바꿨다. 장공이 장천, 잔검이 파검이 됐다.[8] 십보일살은 더 정확히 말하면 10보 안에서 원하는 위치에 '완벽하게' 검을 꽂을 수 있는 검술이다. 세 협객을 상대할 때도 급소를 미세하게 피했기 때문에 경미한 부상에 그친 것이다.[9] 잔검은 모래 위에 두글자를 쓴 뒤 무명에게 이것을 읽고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고 한다. 바로 '''천하(天下)'''[10] 사실 본작도 대작이라기에는 미묘한게 비록 대규모 군중씬이 있긴 하지만 핵심 내용은 그냥 두명의 등장인물이 둘이 다 아는 다른 인물들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것 뿐이다.[11] 둘다 큰 규모의 영화고, 황후화는 무려 450억 원 이상을 쏟아붓기도 했다. 그런 만큼 의상과 색채가 뛰어난데, 그와는 별개로 작품성에 대해서는 호평보다는 악평이 훨씬 많다. 그의 대표작이라 할수 있는 <인생>, <홍등> 등 예전 작품에서 보여줬던 세세함이 공산당의 지원 아래 큰 규모의 영화를 찍으면서 잃어버리고 있다는 평이 대세. 2011년 작인 <진링의 13소녀>, 2016년작 그레이트 월도 그의 영상미는 여전하지만, 작품성과 작품 속 사상에 많은 악평이 쏟아졌다.[12] 실제로 진시황이 통일후 자신의 색으로 채택한 것도 검은색이었다.[13] 최초 1위를 찍은 뮤츠의 역습은 더빙 개봉이었다.[14] 그런데 진시황을 연기한 배우 진도명은 정작 드라마 초한전기에서는 고조 유방을 연기했다(...). [15] 참고로 이미 당시 진은 당시 중국 영토의 3분의 1, 국부의 2분의 1을 장악하고 갈수록 나머지 6국과 국력 차를 벌이고 있었다. (신성곤, 윤혜영. 한국인을 위한 중국사. 서해문집. 2017년 18쇄 70쪽 참고) 이런 상황에서 각 6국의 백성들이 진을 이기고 각국이 번영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16] <영웅>의 진왕과 <황후화>의 당 황제 캐릭터는 <삼국지 : 명장 관우>(맥조휘, 2011), <조조: 황제의 반란>(조림산,2012)의 조조 캐릭터에 대한 해석과 유사하다.[17] 하지만, 진시황이 후대에도 호평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 고평가를 받은 것을 보면, 그가 과대평가받았다는 주장 확실히 설득력이 떨어진다. 일단 진시황은 내치를 다지고 중앙집권체제를 확립하고자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긴 했고, 실제로 성과도 꽤 있었다. 일례로 그를 까는 데 자주 인용되는 만리장성의 축조 건에 대해서는 후대의 왕조들도 수시로 성벽을 보수해서 사용했다는 점과, 이 성벽 자체의 존재로 인해 흉노나, 고구려, 거란 등의 북방 민족들의 침략을 막거나 지연시키는데 있어서 매우 큰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신의 한 수였다는 평가가 압도적이다. 진시황 본인이 후대의 재분열의 원인을 제공했다기엔 그 아들 호해가 다 말아먹은게 문제고, 진시황 사후에 나타난 한고제가 한나라를 세워서 천하통일을 하면서 상대적으로 그가 묻혀버린 것이 크다. 말하자면,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중국판이자 수문제의 대선배인 셈이다. 실제로 주류 역사학계에서도 법이 너무 엄격했던 것은 그랬다쳐도, 진시황이 자식농사만 잘했어도 진나라가 단명하지는 않았으리라고 본다.[18] 문제는 자식농사 잘 짓는 것도 군주의 덕목 중 하나라는 것이다. 유능하고 인성도 좋은 후계자를 키워 내고 그 후계자가 권좌를 물려받고 자기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게 안배하거나 그렇게 될 수 있는 체제를 만드는 것도 엄연히 군주가 해야 할 역할이다. 태종이 외척이나 공신을 숙청하는 면모가 가혹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 숙청이 세종대왕이라는 후계자가 본인이 뜻하는 정치를 마음껏 할 수 있게 안배하는 방법이었기 때문에 후대에 높게 평가받는 것처럼 말이다. 무능하고 인성도 나쁜 양녕대군에게 적장자라고 권좌를 물려 주고 외척이나 권신이 폭주하지 못하게 안배를 해 놓지 않았다면 조선은 일찍 망했을 수도 있다. 따라서 진시황 본인이 무능하다는 주장은 그를 과소평가하는 것이지만 그가 유능하다고 해서 유능한 자에게 권좌를 물려 주지도 못하고 그렇게 되도록 장치를 마련해 놓지도 못한 점까지 옹호해 주는 것은 진시황을 과대평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19] 춘추전국시대 동안에 중국 전체가 수많은 나라로 나뉘어 난립하면서, 여러 민족들이 한족에 동화되는 식으로 중화권에 편입했기에, 사용되는 언어도 서로 다르고 따라서 그 언어에서만 쓰이는 문자가 마구마구 한자 체계에 편입되었으니, 나라별로 문자가 다른 건 당연하다. 심지어 이미 한자 체계를 통일화한 현대 중국에서도 특정 방언에서만 쓰이는 문자들이 잊을 만하면 속속들이 발굴되어, 중국 공산당 측을 곤혹스럽게 하기도 한다.[20] 특히 이연걸은 양조위의 글자를 받아가려고 조나라에 있는 서당을 찾아갔을 때, 진나라의 군대가 서당을 공격하려고 하자, 장만옥과 함께 날아오는 화살들을 무술을 이용해 막아내기도 했다. 심지어 이 서당의 훈장이 '''"아무리 진나라의 군대가 강하다고 한들, 조나라의 문자를 말살할 수는 없다!"'''고 외치고는 제자들에게 조나라 문자의 정수를 배우게 될 것이라며 강의를 시작하고, 그 제자들은 화살에 맞아 죽어가면서 꿋꿋하게 서예에 임하는 장면이 나온다.[21] 당연히 아들은 이를 거부하고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반란까지 일으켰고, 이 반란이 실패하자 그대로 자결했다.[22] 실제로 그런 의도로 이렇게 연출했냐는 논란은 별개로 하더라도 그렇다.[23] 김규삼은 역전시네마에서 이때 진왕이 순순히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는 장면이 영화에서 가장 어색한 장면이었다고 평했다. “불로초 찾는데 혈안이 되고 수만 명을 동원해 거대한 왕릉을 조성할 정도로 만년까지 죽음의 공포에서 헤어나지 못했던 진시황인데 겨우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이란 이유만으로 그렇게 순순히 목숨을 내놓을 리가 없잖아?”라고. 굳이 끼워맞춘다면 진시황이 불로초를 찾아 서복을 바다로 보내고 진시황 자신의 무덤을 조성하는 것은 진시황 본인이 맛이 간 후대의 일이니 영화의 작중 시간대와는 별 상관없기는 하지만.[24] 대신 외에는 아무도 100보 내로 들어올 수 없지만, 자객 셋을 무찌른 자에게는 포상으로 10보 앞에서 술을 하사한다.[25] 왕을 암살하려 한 자는 사형에 처한다.[26] 단, 급파파적신의 영어제목은 my father is a hero 이기 때문에 그냥 드립만으로 보기에는 살짝 무리가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