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
袁熙
(177년 이전? ~ 207년)
1. 개요
후한 말의 군벌인 원소의 차남으로 삼국지의 등장인물. 자는 현혁(顯奕), 혹은 현옹(顯雍).[1]
2. 생애
출생년도는 알 수 없으나 190년 무렵 원소의 '장성한 두 아들'을 언급하는 기록으로 등장한다. 이를 볼때 190년 시점에서는 이미 성인으로 취급받던 나이였음을 알 수 있다.[2]
이를 감안하면 원소가 176년 무렵부터 6년 간의 복상을 했기에, 복상 시작 이전에 원소의 처가 임신 중이었을 가능성을 감안하더라도 177년보다 늦게 태어났을 가능성은 없다.
나이를 감안했을때 196년 무렵에 혼인한 것으로 보이며,[3] 빠르면 같은 해인 196년, 늦어도 199년 무렵에 원소에게 유주자사로 임명되었다.
원소 사후에는 원상을 지지했으며, 원상이 조조에게 패하고 달아나자 고안현에서 이를 맞아들이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부장인 초촉 등에게 습격을 받아 원상과 함께 오환으로 망명하게 된다.
초촉은 유주자사를 자칭하며 원희가 없는 유주를 장악한 뒤 조조에게 투항하지만, 이후 원상이 사주한 반란에 휘말려 살해된 것으로 보인다. 조조가 오환을 공격했을때 원상과 함께 맞서지만, 오환왕 답돈이 어이없이 죽어버리자, 오환군은 허무하게 궤멸. 원희는 원상을 따라 요동의 공손강에게로 망명한다.
당시 요동의 공손씨 정권은 거리가 멀리 있는 것을 믿고 조조와 적대하고 있었는데, 조조는 원상을 쫓아 요동까지 가기엔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았고, 원소의 후광을 입고 있던 원상의 존재는 공손강 자신에게도 위험했다. 조조는 공손강이 원상을 두려워하고 있으니 자신이 요동으로 가면 공손강은 원상을 받아들여 함께 대적할 것이나, 그렇지 않다면 오히려 원상을 죽여 그 머리를 바쳐 올 것이라고 판단하며 군사를 물렸고, 과연 공손강은 원상을 죽여 그 머리를 바쳐 왔다. 이때 원상을 따랐던 원희와 삼군오환의 선우들도 같이 죽어서 원상과 나란히 머리가 조조에게 보내졌다.
한편 원상은 요동에 도착하기 이전부터 원희에게, 요동에 도착하면 공손강과는 반드시 접견하는 자리가 있을 것인데, 거기서 그대로 공손강을 죽인 뒤 요동을 장악해 기반으로 삼을 계책을 설명했으나 원희는 이에 부정적이었는지 접견장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주저했고 원상은 원희를 강하게 나무랐다고 한다. 공손강은 원상 일행이 자리에 들어와 앉기도 전에 복병을 불러들였고, 이때 원씨 형제는 죽지는 않았지만 생포되었다.
원희의 주저에도 나름의 일리는 있었는데 공손강 개인을 죽이는 데 성공한다고 한들, 원상 형제는 기병 수천기가 가진 전력의 전부였고, 그마저도 삼군오환의 선우들과 제각기 지분을 공유하던 상황이었으니 공손씨 정권을 적으로 돌리며 군세가 수만에 이르는 공손강의 잔당들을 합병하는 것은 도박에 가까웠다. 물론 공손강은 애초부터 원상 형제를 살려둘 생각이 없었고, 원씨 형제에게 정면대결은 전혀 승산이 없었으니 결과적으로는 먼저 선수를 쳐야 된다는 원상의 판단이 맞았음이 드러났다. 당연히 공손강도 원상과 마찬가지로 첫 회견 자리에서 원씨 형제를 그대로 죽일 계획을 세우고 먼저 실행에 옮겼다.
당시 날씨가 무척 추웠는데, 원상이 공손강에게 심문받으면서, "죽지 않는 동안의 추위를 참기 어려우니 자리를 마련해줌이 옳다." 고 말하자 이에 공손강은 "경의 머리가 만리 길을 떠날 텐데 무슨 자리가 필요하겠는가." 라고 화내며 원상을 죽였다.
후한서에 기록된 원씨 형제의 최후는 이렇지만, 삼국지에 주석으로 인용된 전략에서는 "머리가 만리길 여행.." 운운한 것이 공손강이 아닌 원희의 말로 되어 있다. 원상이 자리를 구했다고만 서술될 뿐 정확히 어떻게 말했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기 때문에 원상이 곧 죽는다는 상황 자체를 인지하지 못해서 이렇게 나무랐다고 보는 견해도 있지만, 후한서에서 묘사된 원상의 발언은 죽음을 피할 수 없음을 직감하곤 공손강을 비웃으며 최후의 허세를 부리는 장면이라 후한서의 묘사와 이어서 보면 원희는 원상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우리 이제 곧 죽을텐데 뭔솔?" 하는 고문관포스 쩌는 모습을 연출한 것이다. 정황상 사실은 아닐 것으로 보는 분위기이다.
유주에 부임할 당시 아내는 업에 그대로 남겨두어 시부모를 모셨다. 원희의 아내는 조조의 군대가 업을 함락했을 때 조비가 가로채 자신의 아내로 삼았고 후에 문소황후가 된다. 소위 NTR을 당한 셈이다.
3. 평가
나름대로 유주에 세력을 가졌던 것 치곤 안쓰러울 정도로 원소의 아들들 중 가장 기록이 적고, 실제적인 비중도 없다. 원상, 원담은 물론 원소의 조카인 고간에게도 확연히 밀릴 정도. 서술상으로도 취급이 안습한데 형제의 이름이 나란히 병기될 경우 웬만하면 형-동생 순으로 써주는 게 보통인데 원희와 원상이 같이 언급될 경우 원상, 원희 순으로 병기된다. '원소의 후계자가 원상이었기 때문에 그렇다'라고 보기에는 애매한 것이, 원상이 원담과 같이 언급될 경우 나이순에 따라 원담, 원상으로 병기되기 때문.
유일하게 원희, 원상 순으로 원희가 앞에 표기된 것은 초촉이 배신해서 원희를 쫓아내는 기록에 한정되는데, 이는 초촉이 비록 원상 세력에 속했으나 직접적으론 원희의 부장이었던 만큼 주도적인 배신 대상이 원희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형의 위엄을 세웠다고 보기에는 안습한 사례.
원희의 개인적인 인물됨이나 유주 통치에 대해서는 별다른 기록이 전하지 않지만, 오환이 원상의 망명을 받아들이며 재기를 후원했음을 들며 현지 책임자였던 원희가 오환족과의 우호관계를 잘 유지했기 때문일 테니 골육상쟁이나 일삼던 원상, 원담과 달리 상당히 뛰어났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 하지만 근래에는 능력적으로 상당히 비판받는 추세인데, 원희를 비판하는 주장에 따르면 공손찬 멸망 이전까지 원소와 동맹관계였던 선우보는 원소가 유주를 떠난 직후의 시점에서 조조와 연합했고, 원소의 총애가 대단했다는 염유 또한 관도대전 중반 즈음 누가 봐도 원소가 유리한 상황이었음에도 조조에게 투항했다. 이는 유주자사였던 원희가 현지 유력자들과의 관계를 개판으로 하지 않고선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또한, 업성 공방전 당시에도 기주와 유주의 경계지역인 고안에 주둔하고 있었던 원희는 업성을 심배에게 맡기고 원담을 치러 떠난 원상을 지원하는 포지션이었는데, 원희는 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원상이 회군하는 동안 원담의 세력 회복과 기주 동부 장악을 방치했을 뿐만 아니라, 조조에게 패하고 업을 뺏긴 원상이 원희의 주둔지와 인접해 있던 중산국에 거점을 잡은[4] 시점까지도 전혀 유기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못했기에 원상이 그나마 수습한 병력까지 원담의 공격을 받아 모두 날려먹게 되었다는 것. 최소한 이렇게까지 말아먹었으면 그나마 유주만큼이라도 제대로 보전했어야 했는데, 그조차도 제대로 못해서 초촉의 반란 한 번에 털리고 쫓겨났으니 무능이 확연히 드러난다는 분석인데, 비슷하게 원상을 방치했던 고간의 경우 애초부터 배신할 작정으로 계산된 움직임이었으나, 원희는 그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구멍 취급을 받고 있다.
애초에 오환을 포섭하는 데 적극적이었던 것은 원소였고, 원희가 유주에 부임했을 당시 이미 답돈이 원소의 사위였을 정도로 원씨와 오환의 우호관계는 확고한 상황이었기에 상술된 모든 분야에서 실패하면서 오환과의 우호관계만 간신히 지켜냈다는 것이 그렇게 그렇게 고평가될 원인도 못된다.
원소의 아들들이 아버지의 위세를 믿고 방탕해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는 최염의 발언이나, 헌제의 칙사로 온 유송이 원소의 비위를 거슬렀다가 조조의 보복을 받을 것을 두려워해 원소의 아들들과 밤낮으로 술을 마셔댔다는 데서 하삭음이라는 고사가 유래된 것을 보면 원희 개인적으로는 원담과 마찬가지로 놀기 좋아하고 방탕한 성격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원소가 원상을 후계자로 삼으려 했던 것 또한 원담과 원희가 이렇게 칠칠맞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원소의 '아들들'이 방종했다고 하지만 원상은 원담, 원희와 나이차가 크기 때문에 비슷한 선에서 비교되기 어렵고, 심배의 발언이긴 하지만 원상은 매사에 청렴하고 솔선수범하는 성품을 칭찬받고 있으며, 딱 주색잡기에 눈뜰 나이쯤 원소가 급사하고 후계자가 되면서 하루가 멀다하고 친정을 뛰는 등 격무에 시달렸기 때문에 사치방종하게 노는게 물리적으로 불가능했기 때문.
비록 원담은 원소 사후 삽질을 거듭했고 청주 자체도 방만하게 통치하면서 비판받았지만, 몇개 현만 간신히 장악하던 상태에서 눈부신 군공을 세우며 청주 전역을 재패한 것은 원담이 독자적으로 세운 공적이었고, 원상은 어린 나이에 권력기반이 전무했고 원소의 급사로 내외적 상황이 개판이었다는 핸디캡 등으로 무너지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전략적인 판단력 자체는 그리 나쁘지 않았고, 그 움직임 또한 나이를 감안하면 믿기 어려울 정도로 대담하고 적극적이었다.[5] 이에 반해 원희는 원소가 직접 유주 평정을 완수한 후 근거지로 돌아가면서 남겨진 낙하산에 가깝고, 이후 행보도 딱히 기록은 남지 않았지만 앞뒤 정황근거상 유주를 개판으로 다스렸다는 쪽에 무게가 실리기에 원소의 아들들 중 가장 무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원소에게서 전혀 후계자로 기대되지 않았고, 원소가 죽었을 때도 전혀 파벌을 이루지 못했던 것도 무능함이 이유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공연히 원상에게 불복하던 원담이나, 일단 원상을 지지하면서도 속으론 딴생각만 하고 있던 고간과는 달리 순순히 원상을 따르며 문제를 일으키지 않던 점에서 인성은 그나마 나았던 듯.
4. 원희 고자설
동양대 교수인 김운회는 조예가 원희의 아들이었을 것이라는 주장을 내놓고 있는데, 이 역시 두고두고 까이는 내용이다. 자세한 내용은 조예 항목 참조. 삼갤 등에서는 그에 대한 반론격인 개그 병맛 이론으로 사실 원희가 '''고자'''였을 것이란 주장도 나왔다.
원희가 고자였을 것이라 추측되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1. 원소는 어린 아들 원상을 후계자로 하기 위해 미리 원담을 장자에서 폐출시키며 배제했다. 하지만 원소가 원희를 폐출시켰다는 기록은 없다. 만약 원희가 고자였다면 대를 이을 수 없다. 당연히 후계자로서도 실격이므로 구태여 번거롭게 폐출시킬 필요도 없다.
2. 실제로 (심배의 발언에 의하면) 원상은 형인 원희가 눈 멀쩡히 살아있는데도 원소의 직계로 족보에 그 이름에 적혔다.
3. 심지어 폐출된 자식인 원담도 곽도, 신평과 연계해 파벌을 형성하며 원상의 승계에 불복했지만 원희는 가신들 사이에 아무런 파벌도 없었다. 원희가 배제되는건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한데, 이는 자신의 기량 부족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고자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당시에는 사회적 편견도 있고 해서 고자라면 아무래도 엄청나게 치명적이었다.
4. 원희는 절세의 미인이었다는 견씨를 처를 뒀지만 슬하에 자식이 없었다. 견씨 쪽은 문제가 없는게 확실한데, 조비 소생의 딸인 동향공주를 낳았고 일단 조예가 견씨의 아들인건 분명하기 때문이다. 고자설이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원희는 고자였으므로 정상적인 성생활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5. 실제로 원희는 유주자사가 되자 아내를 떼어두고 유주로 떠났다. 가끔 인사차 업에 방문했을 가능성은 있지만 최소 5년 이상 홀아비 생활을 자처한 것이다. 대를 이을 수 없는 고자인 원희로서는 임지에 부인이 있어 봤자 방해만 되었을 것이다.
6. 조비는 남의 부인이었던 견씨를 맞아들였다. 그것도 첩도 아닌 '정실'로 맞았다. 사실 원희가 고자였다면 견씨는 사실상 처녀이므로 정실로 삼아도 상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고자설에 따르면 이뿐만 아니라 약 1년만에 곧바로 조예가 태어난 것은 어찌보면 원가에 대한 엄청난 도발일지도 모른다.
7. 세설신어에 의하면 조조는 "이번에 군사를 일으킨 것은 그 계집 때문이었는데!!" 견씨를 얻지 못한 것을 탄식했다.[6]
이라고 해서 한동안 삼국지덕후들 사이에서는 뭔가 병신같지만 굉장히 그럴 듯한 떡밥으로 여겨졌었으나 한 삼갤러가 신당서 재상세계표에서 원희의 후손이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을 찾아냄으로서 설득력을 잃게 되었다. 신당서 재상세계표에 따르면 원소의 중간아들은 원희인데 그의 후손들은 낙릉 동광에서 살았다. 원희의 후손으로 원령희(袁令喜)이다. 그 아들들로 원이홍(袁異弘), 원이도(袁異度), 원이식(袁異式) 형제가 기록되어 있고 형제들의 자손인 원이식의 자손 원척(倜), 원사검(師儉)부자도 기록되어 있다. 원령희가 문소황후가 낳은 자식의 후손이었는지는 불명이지만 본처 외 첩을 두는 게 당연한 시대였던만큼 원희에게 첩이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사실 고자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뭔가 후사를 잇기에 명백한 결함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말은 종종 나온다. 원상이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원소가 생전 폐출시켰던 원담도 지지를 받았던 마당에, 아무리 무능했다고 해도 한참 어렸던 원상과 비교하자면 압도적인 경력과 기반을 가진 데다, 원담 폐출 이후 호적상으로는 원소의 장남이었음에도 이 정도 취급이었다는 건...
그래서인지 위의 2대 황제(실질적으로는 3대 황제) 조예가 실은 조비의 자식이 아닌 원희의 자식이라는 떡밥이 꾸준히 돌고 있지만, 실제로는 가능성은 거의 없다. 5년이나 별거했으니 더더욱. 임을 봐야 뽕도 딸 게 아닌가(...).
여담이지만 구글에서 원희를 검색하면 뜬금없이 대표이미지로 왕원희(...)의 삼국지 12, 13 일러스트가 뜬다.[7] 이걸 보고 사실 원희는 남장한 딸이어서 아이가 없었다는 드립을 치는 삼덕들도 있다.[8]
5. 미디어 믹스
원소의 일족들 중 가장 비중도 없고 무능했으며 삼국지연의에서도 별다른 비중있는 묘사는 없다. 하지만 삼국지연의에서 원담, 원상이 골육상쟁을 일삼는 막장의 대표격으로 묘사되는 등 워낙 이미지가 나쁘기 때문에, 이를 기반으로 한 소설이나 게임 등에서는 어리석은 형제들 사이에서 고뇌하며 어떻게든 화해를 도모하려고 노력하지만 실패하고 부인까지 빼앗기는 등[9] 비극적인 이미지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식으로 은근히 외부효과를 보는 것은 일단 드라마틱하고 삼국지연의 세계관과도 별다른 충돌이 없기 때문인 듯.
단, 대만 게임인 환상삼국지에서는 원희가 주연 캐릭터로 나온다.
5.1. 삼국지 시리즈
코에이의 삼국지 시리즈에서 원소의 아들들 중에서는 압도적으로 높은 능력치 총합을 자랑한다. 기록상으로 볼때 실제로는 원소의 아들들 중에서 가장 무능했을 인물인데 원담, 원상이 워낙 막장이미지로 굳어져서인지 그 반대급부로 존재감이 없는 원희가 상대적으로 이득을 보는 구도라고 할수있다. 물론 그래봐야 원담, 원상이 D급 무장이라면 원희가 B급도 못되는 C급 무장 수준이라는게 문제이지만... 게다가 삼국지 11에서는 원소군에서 얼마 되지 않는 특기 보유자. 비록 쓰레기 특기인 친오를 갖고 있지만.
삼국지 5에서의 능력치는 무력 60/지력 68/정치력 64/매력 73으로 C급 문관이다. 하지만 삼국지 5에서 성향이 '''선인(善人)'''이다. 부인이 유명한 견씨라서 형제 중 유일하게 이득을 본 듯하다. 따라서 원소로 진행했다면, 후계자는 '''악인(惡人)''' 원담, 원상보다 원희를 선택해야 한다.[10]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65/무력 55/지력 64/정치력 72. 제사, 정란, 조영을 가지고 있으며 무력을 제외한 다른 능력은 원상, 원담보다 높다. 정치력이 72라 주로 내정을 하게 될 듯.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원상, 원담에 비하면 낫다.
삼국지 10에서는 부인인 견씨가 등장하는데 시나리오 4에서만 원희의 부인으로 설정되어 있다. 조비로 플레이한다면 업을 점령 시에 견씨를 강탈하는 이벤트가 존재한다.[11] 능력치는 통솔격 69/무력 54/지력 68/정치력 70/매력 66에 특기는 4개(화시, 진정, 반목, 명사)뿐이지만 그 중 하나가 그나마 '명사'다.
삼국지 11과 12의 원희 열전칸 史 란에서는 '답돈은 특히 원희를 도왔다.'고 써져 있다. 코에이는 원희에게 친오 특기가 배정된 근거로 내놓고 있는 것 같지만, <무제기>에서는 원소가 답돈을 특히 후대했기에 오환이 도왔다고 적혀 있고, 다른 어떤 기록을 살펴봐도 오환과 원소와의 밀접성을 언급할 뿐 원희가 주체로 서술된 기록은 없다. 잘 해봐야 원희가 유주자사였다는 정황에 근거한 추론으로 보이나, 직접적인 증거도 없는 데다 상술되었듯 원희가 유주를 통치한 정황이 워낙 개판이라 이 또한 비판받는 부분.
이와는 별개로 11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66/무력 51/지력 63/정치력 65/매력 64, 12에서의 전법은 사정약화. 일러스트는 뭔가 고뇌하는 듯한 모습인데 형과 아우의 일러스트에 비하면 그나마 낫다.
삼국지 13에서의 능력치는 전작과 같으며 특기는 문화 1(견씨 인연 효과), 견수 1. 전수특기는 견수이며 전법은 기속강화.
삼국지 14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66, 무력 51, 지력 68, 정치 65, 매력 63으로 전작에 비해 지력이 5 상승했다. 개성은 동원, 친오, 절감, 소심, 주의는 명리, 정책은 병기강화 Lv 3, 진형은 안행, 정란, 전법은 연노, 치료, 정란, 친애무장은 견씨, 혐오무장은 조비다.
삼국지 DS 2에서도 원소의 삼남 중 그나마 고능력치를 자랑하는 인물로 나왔다. 통솔력 '''70'''/무력 54/지력 65/정치력 64/매력 53이라는 원가일원 중 희대의 능력치가 돋보인다. 단, 장특기가 하나도 없어서 병과를 제대로 활용 못하는 것은 당연지사. 그나마 계략이 많으니[12] 머리가 나쁘지만 엄청 잘싸우는 안량이나 문추의 부장으로 둬서 공손찬군의 찌꺼기들한테 계략을 걸어보자.
5.2. 삼국지 조조전
삼국지 조조전에서는 '''2장의 공동 최종보스 중 한 명.''' 얼굴은 영걸전의 경무의 것을 재탕. 다른 한 명은 원상. 하지만 이 위치에 비해 역할은 거의 없다. 관도전투에서 투항해 온 장합의 말에 따르면 성격이 너무 착해서 후계구도에서 배제되었다고 하며, 이를 들은 조조는 난세에서는 쓸모없는 성격이라고 짧게 평하나, 정작 작중 묘사를 보면 한심하기가 난형난제를 다투는 수준으로 묘사되는 원담과 원상에 비해 비교적 침착하고 상식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원소의 유언에 따라 원상이 후계자로 임명되자 이를 따르지만 거세게 반발하는 원담을 중재하지 못한 채 후방인 유주로 떠나며, 업성이 함락되어 원상이 도망쳐오자 유성에서 조조를 맞아 싸운다. 유성 전투는 정사&연의 공통으로 원상과 오환이 연합해 조조와 맞선 전투인데 조조전에서는 오환족을 구현하기 귀찮았는지 유성을 원희가 다스리는 영역의 전방지역으로 설정했으며 오환족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정사 & 연의에 없는 맹호대라는 부대를 선보이는데 이후 맹획의 남만 세력도 심심하면 맹호대를 끌고 다닌다는 걸 생각하면 이민족 포지션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약간 짜증나는 경우는 조조군의 배후에 남겨두는 복병인데 곽가를 죽이려고 그냥 진군하면 "전세가 불리한 걸 보고 병사들이 도망갔다."는 설정으로 복병이 나오지 않지만 곽가를 구하기 위해 퇴각을 결행하면 소수의 부대로 수많은 복병을 상대해야 한다. 연의에서는 원상와 함께 공손강에게 참수당하지만, 조조전에서는 유성의 패배 이후 유주로 돌아가려다 공손강은 커녕 전쟁에 시달려서 궁핍해진 농민 출신의 잡졸 1, 2에게 시골길에서 습격당해 죽는다. 어째 연의보다 더욱 초라해졌다.[13]
5.3. 진삼국무쌍 시리즈
진삼국무쌍 시리즈에서는 당연히(?) 클론 무장으로 나오는데, 문제는 진삼국무쌍 4 이후의 시리즈에서는 조비와 견희가 모두 제대로 된 무장으로 등장하며 '''서로 느끼하게 사랑한다'''는 것. 결국 진삼국무쌍 3 맹장전을 시작으로 4, 5에 모두 플레이어가 조비가 되어 견희를 NTR하는 장면이 들어가고 만다. 심지어 3 맹장전은 조비도 같은 클론 무장인데 당한다.[14][15]
진삼국무쌍 5 스페셜에서는 조비 무쌍모드의 업성 공략전에서 플레이어가 견희를 격파하면 견희가 조비가 멋있다고 조비에게 붙는다. 원희의 대사가 압권. 무쌍 오로치 마왕재림 위나라 3장에서도 견희으로 원희에게 접근하면 "오오 견희 드디어 내게 돌아왔군요!"라는 대사가 있는데 견희의 대답은 냉정하게도 "미안하지만 당신에게 돌아온 건 아니에요."
5.4. 창천항로
창천항로에서는 꽤 준수한 엘리트 이미지로 등장.[16] 냉정, 침착한 성격으로 매사에 오버하며 호들갑을 떠는 원상이나 진지하고 고지식한 성격에 끓임없이 열폭하는 원담과 비교하면 원소의 세 아들들 중 가장 성격적으로도 안정되어 있는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관도전 이후 조조의 하북 평정이 스킵되었다가 오환과의 전투가 다뤄지면서 작중 7년만에 다시 등장하는데 거의 폐인이 돼서 조조가 온다는 소식에 우왕좌왕하며 벌벌 떨기만 하고 오히려 원상에게 그걸로 까이는 등 엄청나게 찌질해졌다. 뿐만 아니라 스트레스 때문인지 심각한 탈모를 겪어 대머리가 되어 있었다.
5.5. 화봉요원
화봉요원에서는 한참 먼저 등장한 형제들에 비해 출연이 늦었을 뿐더러 빠가 이미지가 풀풀 풍기는 원가 최악의 추남으로 견씨와 미묘한 대비를 이룬다. 세 형제 중에 제일 기반이 빈약한 그였으나 원방의 도움으로 견씨를 얻고난 후 그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지만...그 원방에게 이용 당하고 결국 관도에서는 '''끔찍한 팀킬'''을 저지른다.(관도대전 항목 참고) 이후 수습이 어떻게 되든 간에, 이때 저지른 실책이 너무나 큰 탓에 아마 훗날 후계자 경쟁에서도 완전히 버로우타고 있었다는 이야기로 전개될 듯.
5.6. 삼국전투기
삼국전투기에서는 의외로 도즐 자비로 패러디되었다. 삼형제 중 차남이고 마누라가 미인이며 정치적인 문제에서 완전히 뒷전이었다는 점 때문인듯. 하비 전투 (7)편의 타이틀 컷을 차지하며 선행 등장.
본격적인 등장은 역경 전투 편부터다. 선비족과 연합해서 부장들인 장합, 고람과 함께 장연군의 10만 대군을 압도적으로 쓸어버린다.
관도 전투 편에서는 원소와 함께 종군한 것으로 묘사된다. 허저가 중장보병을 끌고 들어오자 궁병대에게 화살을 쏘라고 명하였고, 장료까지 밀고 들어오자 조조군은 자기 쪽 장수가 안량과 문추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원소에게 말하기도 했다. 이후 하후돈이 한맹, 견초 등을 전부 뚫고 들어와 원소 코앞까지 돌진해서 날린 투창을 원희가 가까스로 막아내지만 원소가 하후돈이 던진 창에 머리가 스쳐서 피를 흘리는 모습을 보고 당황하기도 했다.
평양 전투 편에서는 후계구도에서 완전히 밀려나 있었기 때문인지 원담과 원상의 후계 쟁탈전을 묘사한 개그컷에서 심판 포지션으로 나오기도 했다.
유성 전투 편에서는 유주에 있으면서 원상을 받아들이기도 했지만, 부장 초촉이 반란을 일으키자 별 힘도 못 쓰고 원상과 함께 답돈이 있는 요서로 도주하면서 유주를 잃게 되었다. 답돈이 장료에게 사망한 후에는 다시 요동의 공손강에게로 원상과 도망치지만, 공손강은 원씨 형제를 죽이고 그 목을 조조로 보냈다고 언급되었다.
다만 이쪽은 도즐의 캐릭터를 쓰는 만큼 정치적인 문제는 신경쓰지 않았지만 전장에서는 자주 활약했다는 설정이 붙었다. 공손찬전에서도 활약하고 관도전에도 종군해 뭔가 있을듯하게 나왔지만 조조의 하북 평정이 초스피드로 전개되면서 한 화만에 죽는다. 본인도 원상과 함께 도망치며 '우리 이런 캐릭터 아니었잖아..' 하며 작가를 원망한다.
5.7. 삼국지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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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6 6화에서 형 원담과 같이 처음 등장한다. 그나마 덩치라도 크고 건장한 형과 달리 이쪽은 체격마저 작고 상당히 유약해 보이는 모습. 체력도 약한 편인지 계단 오르는 것을 힘들어하다 못해 시종에게 자기를 업고 가 달라고 칭얼거린다. 독자들에게는 오래 전에 죽은 소제 유변을 닮았다는 평을 많이 받았다.아버지가 배다른 남동생 원상을 더 총애하자 원담과 함께 열폭하지만, 계모인 유부인에게 '천것들처럼 뒷담을 하다니, 너희가 그러고도 프린스 원소의 핏줄이냐'는 질타를 받는다.
작가는 원소가 원담과 원희를 아끼지 않는 이유는 그들의 어머니가 누군지 기록도 없어 천한 신분인걸로 추측, 자신이 원가에게 인정받기 전에 낳은 자식이기 때문인걸로 해석하였다.
5.8. 와이파이 삼국지
성우는 이규창.[17] 관도대전 이후 창정에서 원소를 도울 병력을 이끌고 오는 것으로 첫 등장했다. 이후 행적은 연의와 동일해 조조에게 패배한 이후 요동으로 도주해 힘을 키우려다 공손강에게 살해당한다. 오리지널(와이파이 삼국지) 원희에게 부여된 설정은 고자를 넘어 태국까지 갔다왔다는 설정이다.[18]
6. 관련 항목
[1] 원상의 형의 아들 또는 원상의 동생인 원매의 자라고 추측되기도 하는데, 왕찬#s-1이 원상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귀한 동생 현옹이라 보냈기에 혜동은 원매의 자라 추측했지만 반미는 희(熙)와 옹(雍) 글자의 의미가 누그러뜨린다는 뜻으로 같기에 원희의 자라 했지만 혁(奕)과 옹(雍) 글자의 의미가 광대하는 뜻으로 같고 두 설 모두 확신할 수 없다.[2] 다만 후한 시대에는 늦어도 보통 15세 무렵이면 성인 취급받을 정도로 관례가 앞당겨져 있었고, 불과 13세에 요절한 조충도 자를 가진 어엿한 성인이었다.[3] 196년 당시 원희가 20세, 문소황후는 15세이니 시기상으로는 이 무렵이 가장 적절해 보인다.[4] 유주에서의 접근은 수월하지만 업의 조조나 평원의 원담이 진입하기에는 지리가 험하다. 기본적인 전략은 중산국의 산세에 의지해 조조와 원담을 막아내며 시간을 벌고, 인접한 원희의 지원을 통해 반격을 준비하는 구도로 볼 수 있다.[5] 자신이 직접 조조 본대와 대치하며 적의 주력을 묶어두는 사이 곽원에게 주력군을 맡겨 사예를 공략한다던가, 업성 공방전 당시의 대치구도, 오환 망명 시절의 변경 교란 움직임과 적극적인 반란 사주 등. 요동에 도착하면 공손강부터 잡아야 된다는 판단도 결과적으로 당한것은 자신이 되었지만 정세 자체는 제대로 읽고 있었다. 전략안은 나름대로 있었지만 의도치 않게 원상 본인만 열심히 구르게 되는 것이 문제였다.[6] 창천항로에서 조비가 견씨를 보쌈한 뒤에 조조가 수고했다고 격려하면서 눈에서 레이저가 나올 정도로 조비를 쏘아보는 장면도 있다.[7] 왕원희를 검색하면 진삼국무쌍 6의 교복 복장이 뜬다.[8] 왕원희는 217년생으로 몰년이 207년인 원희와 세대 차이가 난다. 원희의 이름 한자인 熙는 중국어로 Xi로 발음하며 왕원희의 이름한자인 元姬는 Yuanji로 읽는 방법이 조금 다르다. 단지 한국어 이름 발음 '원희'가 같을 뿐이다.[9] 사실 딱히 원희만의 이야기는 아닌데, 후한서 공융전에 따르면 조조가 업을 점령하면서 원소의 딸들을 포함한 원씨 일족의 여성 대부분이 강간당했다. 전리품 취급 당하지 않고 조비가 정식 부인으로 맞아들이면서 훗날 황후까지 오른 문소황후는 후에 비참한 최후를 맞이 한것은 제외하면 그나마 잘 풀린 경우다.[10] 명성이 잘 올라가는 유비, 조조, 손권은 '''극선'''이다.[11] 시나리오4에서 원담, 원상 분열 이벤트를 보고난 후에 조비가 있는 군세로 업을 탈취하면 바로 발동하고 관계 설정이 바뀐다.[12] 화계, 수복, 진화, 혼란.[13] 여기서 비명을 지르고 바로 사망하는 동생 원상과 다르게 원희는 칼에 맞고 쓰러지면서 아버지 원소를 부르면서 처절하게 죽었다.[14] 사실 견희열전은 처음에 플레이어(견희)가 원희와 조비 둘 중 한 명을 고를 수 있으며, 원희를 택하면 조비가 적이 되고 조비를 택하면 원희가 적이 된다. 다만 원희를 선택하면 11무기 습득 조건의 난이도가 낮아지기 때문에 대개는 원희 쪽을 택한다.[15] 참고로 3편 맹장전 견희 열전에서 원희를 연기한 성우는 여몽과 황충을 담당한 이철용이다.[16] 원소의 말에 의하면 원상은 지모를, 원담은 만용을 갖춰야 한다고 했으며 원희는 무용만 갖추면 된다고 할 정도로 정신적으로 꽤나 엘리트적이었다.[17] 아버지, 형, 오빠(?), 삼촌과 성우가 같다. 이규창은 원씨 일가 담당이기 때문.[18] 그래서인지 목소리가 얇고 예쁜 톤이다, 원희 고자설을 한 번 더 뒤튼 병맛 컨셉. 이 부분을 개그로 승화시킨 게 원희의 포인트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