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영

 


'''윤태영
尹泰榮| Yoon Tae Young
'''
[image]
'''이름'''
윤태영 (尹泰榮, Yoon Tae Young)
'''출생'''
1974년 10월 9일, (50세)
[image] 경상북도 영천시[1]
'''국적'''
[image] 대한민국
'''신체'''
185cm, 80kg, B형
'''학력'''
상문고등학교 중퇴[2]
코네티컷 하이스쿨
일리노이 웨슬리안 대학교 경영학과[3]
'''가족'''
아버지 윤종용[4], 아내 임유진
슬하 2남 1녀
'''소속사'''
갤러리나인
'''종교'''
개신교
'''데뷔'''
1997년 SBS 드라마 아름다운 그녀
1. 개요
2. 성장과정
3. 데뷔 및 활동
4. 그 외
5. 논란
6. 출연 작품
6.1. 드라마
6.2. 영화
6.3. 예능
6.4. 수상


1. 개요


대한민국의 배우.
대중에겐 MBC 드라마 왕초에서의 맨발, 그리고 삼성그룹 샐러리맨의 신화 윤종용의 아들로 유명하며, 배우로서의 이미지와 실제 모습이 매치가 안되는 배우. 2007년 동료배우 임유진과 결혼에 골인하여 슬하에 2남 1녀를 두고 있다.

2. 성장과정


경상북도 영천시에서 태어나 서울특별시 서초동 일대에서 자라면서 해외근무를 하던 아버지 윤종용을 따라 해외를 둘러보는 경험이 많았을 정도로, 당시로서는 쉽지 않은[5] 해외로의 견문을 넓히게 된다. 이로 인해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해외 유학에 대한 막연한 꿈이 생기기 시작했고, 당시 사귀던 여자친구가 미국유학을 떠나게 되면서 무작정 자신도 함께 떠나고픈 마음이 생겼다고 한다. 하나뿐인 외동아들을 성인이 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머나먼 나라로 홀로 떠나보내는 것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던 부모님은 반대하였으나, 윤태영의 고집에 한 발 물러나 기왕이면 유럽으로 갈 것을 권했다가 이마저도 안먹혀 결국 상문고등학교에 입학해 첫 학기를 보내던 중인 1990년 5월 미국 유학길에 오르게 된다.
미국 코네티컷 주의 한 고등학교에 10학년으로 편입하면서 공부보다는 운동쪽에 두각을 나타내며 라크로스 종목으로 선수생활을 하였으며, 학교 역사상 처음으로 동부 토너먼트 8강에도 진출하게 하는 등 팀 공격수로 활약이 대단했던 덕분에 당시 미국 라크로스 대학리그 최강팀으로 유명했던 일리노이 웨슬리안 대학교로 부터 스카웃 되어 경영학과에도 진학하게 된다. 본인의 특기였던 운동도 이어갈 수 있는데다, 부모님의 바람대로 경영학 까지 공부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2학년이 되던 1995년에 경기중에 블로킹 하는 상대 선수로 부터 턱을 제대로 가격 당하는 바람에 턱뼈가 조각나 내려앉는 중상을 입어 라크로스 선수 생활을 완전히 그만두고 공부에 매진하게 된다. 하지만 그동안 끼를 발산했던 운동을 그만두고 나니 고교 시절 서클로 활동했던 연극에 다시 관심이 가기 시작하고 대학 연극 서클에 가입하여 활동하지만 언어적인 문제로 인해 한계를 느꼈는지, 한국으로 돌아가 모국어로 연기를 하고 싶은 꿈을 가지게 된다.

3. 데뷔 및 활동


한국에서 배우 생활을 하고 싶은 윤태영은 부모님께 폭탄선언을 하게되고, 아들이 경영학 공부를 계속 하고 경력을 쌓아 자신의 뒤를 있는 전문경영인이 되길 원하고 있던 아버지 윤종용은 큰 충격을 받으며 완강히 반대를 하게 된다. 결국 윤태영은 상당한 마찰을 겪으면서 집안과 연락을 끊고 살다 결국 대학 졸업 후 부모님 몰래 무작정 한국에 귀국하여 지인들로 부터 백방 수소문을 하며 수영강사와 배우 이재룡의 로드매니저 등으로 생계를 이어가며 배우 준비를 하게 된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그의 집안배경을 알게 되고서 단순히 방황하는 것으로만 생각하고 그를 꺼리면서 데뷔과정에 애를 많이 먹었다.
1997년 차승원 매니저의 소개로 SBS 드라마 아름다운 그녀에서 이병헌과 대결하는 일본인 권투선수 배역[6]으로 데뷔하며 얼굴을 알렸으며, 1999년 MBC 드라마 왕초에서 맨발로 열연하며 특유의 목소리와 깨알같은 느낌의 캐릭터로 유명해 지며 인지도 있는 스타로 발돋움 하게 된다. 이후 각종 드라마, 영화에서 조연급으로 꾸준히 얼굴을 내 비추며 연기력을 다져가고 있다.
하지만 신인시절에 연기했던 맨발이라는 캐릭터가 상당히 강렬한 나머지 이후 작품에서도 대중들의 배역 몰입에 방해가 될 정도의 수준으로 영향을 많이 끼치는 바람에 배우로서의 커리어에 차질을 많이 겪기도 했다. 이 때문인지 윤태영 본인으로서는 맨발 캐릭터에 대해 언급하기를 꺼려하는 편이다.

4. 그 외


배우로서의 커리어는 딱히 대박난 것은 없어도 꾸준한 편인데, 사실 배우로서의 이력보다 아버지 윤종용을 중심으로 하는 집안 배경으로 더욱 유명하다. 하지만 본인으로서는 아버지의 완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어렵게 시작한 배우 생활인 만큼 집안 배경에 집중된 주변의 시선들이 그다지 달갑지 않은 듯 하다.
실제로 그의 아버지 윤종용은 아들이 자신과 같은 전문 경영인의 길을 가길 바랐으나, 실제로는 엉뚱한 배우의 길을 가게 되면서 초반에는 상당한 실망감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따지고 보면 애초에 미국유학 자체도 아버지 윤종용의 반대를 무릅쓰고 윤태영 본인 스스로 원하여 가게 된 상황이다 보니, 윤종용 입장에서는 미국유학에서 주어진 길들을 모두 버리고 뜬금없이 배우의 길로 진로를 바꾸며 한국에서 맨땅에 헤딩하려는 모습에 더더욱 실망감이 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실제 MBC 드라마 왕초에서 윤태영이 유명해 졌어도 윤종용은 주변에게 아들을 언급하는 것 조차 꺼렸으며 아들과는 대화조차 없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듯이 배우로서 점차 인정을 받는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보이지 않게 아들의 작품에 관심을 가지며 내심 뿌듯해 하는 듯.
연예계 주식투자의 달인으로 불린다. 1998년 부터 개인적으로 시작한 주식투자에서 수익을 많이 올린 것으로 유명한데, 실제로도 상당한 능력이 있는지 아버지 윤종용 조차도 주식투자 만큼은 아들 윤태영에게 자문을 구할 정도라고 한다. 본인의 성공 비법으로는 단기에 수익을 많이 내는 단타스타일이 아니고 우량주에 꾸준히 장기투자하는 것이라고 한다.
친한 연예인으로는 중고등학교 동창인 배우 이종혁, 같은 미국 유학파 출신에 집안배경도 빵빵한 배우 이서진이 있으며,[7] 신정환의 경우는 2003년 위험한 초대에 MC로 있을 당시 윤태영과 친하다고 스스로 언급하기도 했다.[8]
유명한 돡빠. 잠실 야구장에 종종 모습을 보인다.

5. 논란


2018년 5월 13일, 음주운전을 하다가 적발되었다는 사실이 1주일 뒤에 뒤늦게 알려졌다. 그로 인해 2년 만의 복귀작인 '백일의 낭군님'에서 하차했다. 기사.

6. 출연 작품



6.1. 드라마


'''방영 연도'''
'''방송사'''
'''제목'''
'''배역'''
1997년
SBS
아름다운 그녀
마사오
1998년
SBS
사랑해 사랑해
재구
1999년
MBC
미찌꼬

왕초
맨발
점프
윤태영
2001년
매일 그대와
조명우
그 여자네 집
김흥남
선희 진희
윤상원
2002년
MBC
베스트극장 - 우연

막상막하
김태훈
SBS
명랑소녀 성공기
송석구
2003년
KBS
저 푸른 초원위에
차태만
진주 목걸이
황준혁
2006년
특수수사일지: 1호관 사건
김한수
2007년
MBC
태왕사신기
연호개
2009년
2009 외인구단
오혜성
2011년
심야병원
허준
2013년
제왕의 딸 수백향
구천
2014년
야경꾼 일지
조상헌
2016년
OCN
동네의 영웅
윤상민

6.2. 영화


'''개봉 연도'''
'''제목'''
'''배역'''
2001년
천사몽
세신(샤닐)
2005년
강력3반
서태두
미스터 소크라테스
조대수

6.3. 예능


'''출연 연도'''
'''방송사'''
'''제목'''
'''비고'''
2013년
JTBC
퀴즈의 신
진행

6.4. 수상


'''연도'''
'''시상식'''
'''수상'''
1999년
MBC 드라마대상
신인상
2002년
제 38회 백상예술대상
방송부문 인기상
2003년
제 39회 백상예술대상
대한생명 인기상
2011년
MBC 드라마대상
특별상
2012년
한일문화대상
문화외교부문

[1] 하지만 실제 유년시절을 보내며 자란 곳은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동이다.[2] 입학 후 1학년 과정중에 미국유학을 떠나는 바람에 자퇴하였다. 배우 이종혁과 상문고등학교 입학동기라 친분을 과시하긴 하지만, 1학년에 입학하자 마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바람에 학창시절 서로 알던 사이까지는 아니라고(...)[3] 고교시절 라크로스 선수로 좋은 활약을 펼친 덕분에 특기생으로 입학하였다.[4] 당시 삼성그룹 계열 한국비료(현 : 롯데정밀화학)부터 평사원으로 입사하여 삼성전자 부회장에 까지 오른 삼성그룹에서는 전설적인 인물. 그리고 이학수, 김쌍수 등과 더불어 대한민국의 공부잘하는 엄친아, 엄친딸들이 자신의 우상이자 롤모델로 삼는 인물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2013.11부터 2015.11까지 대통령 직속 기관인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했었다.[5] 윤태영의 유년시절인 1980년대 초중반에는 해외여행 자유화가 되긴 했지만 국민들의 소득수준이 아직까지 높지 않아 대중화가 되지는 않았던 즉, 경제적으로 상류층 이상의 사람들만이 갈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실질적으로 해외여행이 대중화가 되는 것은 1988 서울 올림픽 이후인 1990년대 부터 시작되었다.[6] 운동으로 다져진 몸 덕분에 쉽게 발탁되었다.[7] 이서진과는 드라마 그 여자네 집(드라마)에 같이 출연하기도 하였다.[8] 배우 김유미가 게스트로 나오는 회차에서 였는데, 당시 촬영중이던 드라마 진주 목걸이에서 김유미와 호흡을 맞추는 배우가 윤태영이어서 자연스레 이야기가 나왔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