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구(정치인)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관료, 정치인.
2. 생애
정치인 오봉 이중재의 아들로, 6.25 전쟁 중인 1950년 9월 22일 피난 중이던 경상남도 부산시에서 태어났다. 이후 가족들을 따라 서울로 돌아와 경기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부산 출생이고 쭉 서울에서 살았지만 아버지 이중재의 고향인 전라남도 보성군을 고향으로 여기는 듯하다.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국세청, 재무부, 재정경제부, 금융감독원 등에서 재경직 공무원으로 근무했다.
3. 정계 활동
2004년 17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강남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대한민국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간사, 한나라당 제3정책조정위원회 위원장, 한나라당 제1사무부총장 등을 역임했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치뤄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선출 전당대회에서 친이계에 속해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다.[3]
2008년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10년 한나라당 정책위원회 부의장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이 시기에 이종구와 한화그룹 사이의 악연이 있었단 이유로 이명박 정부 아래의 국정원에서 사찰을 받기도 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는 새누리당 공천에서 박상일에게 밀려 탈락했고, 이후 박상일은 역사관 문제로 공천이 취소되어 심윤조 전 주오스트리아 대사가 강남구 갑에서 당선되었다. 이후 법무법인 광장 고문을 역임하고 있었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는 심윤조와의 공천 경합에서 승리하여 새누리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더불어민주당 김성곤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당선 이후 당선인 워크숍에서 선거 참패의 주된 원인은 최경환 때문이라며 삭발하라고 했다.
비박계로 분류되며, 국회 기획재정위원장을 희망했으나, 친박계의 지원을 받은 조경태 의원에게 경선에서 패배했다. 조경태는 당내 기반이 없었던지라 껄끄러운 친이계인 이종구보다 상대적으로 만만한 조경태를 앉히는 쪽으로 방향을 정했다는 후문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새누리당을 대체할 새로운 보수 정당을 창당한다고 선언했다.# 바른정당 정책위원회 의장으로 임명되었다. 19대 대선 체제에서는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로의 단일화론과 후보 사퇴론을 주장하여 자강론을 주강하던 당시 후보 유승민계와 강한 충돌이 있었으나, 그 뒤 일어난 바른정당 탈당 사태에서 탈당하지 않고 바른정당에 잔류했다. 처음에 탈당을 하려다 보류하고 탈당계를 회수한 황영철 의원이라던가, 탈당 고심중이라는 기사가 나왔었던 정운천 의원의 경우와는 다르게 처음부터 탈당 시도를 하지 않았기에 상당히 의외였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결국에는 2017년 11월 5일부로 탈당을 선언하고 복당했다. 더군다나 본인의 지역구인 서울 강남구 갑 당협위원장직을 맡고 있는 김진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도 다른 자유한국당 복당파 지역구와 마찬가지로 반발할 것이 뻔한 상황이라 김진 당협위원장과 이종구 의원 사이에 알력 다툼이 치열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결국 이종구 의원이 당협위원장이 되긴 했지만 2018년 연말에 이루어진 자유한국당 조강특위 심사 끝에 당협위원장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4]
2019년 7월 정기국회 개회와 함께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이후 최전선에 나가서 싸우겠다며 강남구 갑 지역구를 태영호에게 넘겨주고 경기 광주시 을에 공천을 신청했다. 그런데 이종구가 광주시에 연고라고는 광주 이씨인 것이 유일하기 때문에 생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분석이 많았다. 또한, 태영호의 선거운동을 위해 강남의 현안에 대해 알려주고 지역구 활동에 같이 참여하여 첨언해 주는 등 정치 초보인 태영호의 코치 역할을 해주고 있다. 결국 태영호는 당선되었지만 본인은 떨어졌다.
2020년 12월 13일,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그리고 당내 1차 경선에서 탈락했다.
4. 논란
- 2019년 10월 8일 있었던 국감장에서 욕설을 하는 것이 마이크를 타 논란이 되었다. 국감 참고인으로 출석한 중소기업살리기협회장이 이마트의 불공정 행위를 성토하면서 검찰의 이마트 고발건 수사에 의문을 제기했는데, 이를 두고 이종구 의원이 참고인을 두고 "지랄, 또라이 같은 새끼들."이라고 말한 것이 마이크에 담겼다. 이에 이 의원은 혼잣말을 한 것이 마이크를 탔을 뿐이라고 변명했다. $ 참고로 해당 발언은 본인 요청으로 지워졌는지 몰라도 속기록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
5. 이력
5.1. 학력
5.2. 약력
- 제17회 행정고시 합격
- 재무부 공무원
- 제17, 18, 20대 국회의원
6. 선거 이력
7. 소속 정당
8. 여담
- 광주(廣州) 이씨 22세 종(鍾)자 항렬이다.
- 고 오봉 이중재 전 국회의원의 아들이며, 마찬가지로 국회의원이던 옥암 이경재가 그의 당숙부이다.
- 연간 급여가 2000만 원을 초과하는 경우 세액공제 적용 후에도 최소 12만 원의 근로소득세를 부과하는 소득세법 개정안을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 나이가 칠순인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동안이다. 머리 숱도 굉장히 풍성하다.
- 나름대로 점잖은 축에 속하는 정치인이지만 이따금씩 자기 발언을 주체하지 못해서 역관광을 타는 경우가 있다.
첫째로는 2005년 11월 22일 국회 예산결산위원회에서 전윤철 감사원장에게 공격적인 질의를 했다가 도리어 역관광을 탔다. 당시 기사 참고로 전윤철 당시 감사원장은 행정고시로 공직을 시작한 직후부터 부당한 지시가 내려오면 득달같이 상급자를 상대로 시시비비를 가리는가 하면, 차관이 홧김에 사표를 내라고 요구하자 "차관이 나를 임명한 게 아닌데 왜 사표를 내라고 하느냐? 인사 명령에만 따르겠다."고 내지를 정도로 이미 만만치 않은 인물이었다. 그래서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당시 정부 여당을 쥐 잡듯이 몰아세웠던 한나라당 의원들조차 웬만해선 조심스럽게 대하는 인물이었는데 이종구 의원이 섣부르게 공격했다가 도리어...
둘째로는 위 사건으로부터 약 한 달 전인 2005년 10월 8일에 같은 당 소속인 박종근 당시 재정경제위원장에게마저 호통을 들었다. 그 이유는 증인 채택 문제를 놓고 여야가 대립하는 와중에 빡친 박종근 위원장에게 또 증인 채택 얘기를 하는 바람에 호통을 들은 것이다. 당시 영상(21초부터)
둘째로는 위 사건으로부터 약 한 달 전인 2005년 10월 8일에 같은 당 소속인 박종근 당시 재정경제위원장에게마저 호통을 들었다. 그 이유는 증인 채택 문제를 놓고 여야가 대립하는 와중에 빡친 박종근 위원장에게 또 증인 채택 얘기를 하는 바람에 호통을 들은 것이다. 당시 영상(21초부터)
9. 둘러보기
[1] 6.25 전쟁 때 부산 피난 중 태어났다. 전쟁이 끝나자 서울로 돌아와 줄곧 성장했으며, 페이스북 프로필에는 서울 출신이라고 적혀있다. 하지만 최근까지 부모의 고향인 전남 보성군 출신이라고도 주장했다.[2] 출처[3] 하지만 정작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때 이종구 의원이 공천심사위원장으로 선출되자 친이계가 반발했다. 친이 진영은 이종구 의원은 강재섭 전 대표의 측근이라며 반대했다.[4] 사실 차기 총선 때는 나이가 70세가 되는데다 현재 강남구의 인구가 감소 추세라 다시 갑/을 2개 선거구로 재편될 가능성까지 있어 공천 자체가 쉽지는 않아보인다.[5] 새로운보수당, 미래를향한전진4.0과 신설 합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