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렬

 



'''역임한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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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
'''노태우 정부'''
개편[12]

'''초대
최병렬'''

2대
최창윤

'''대한민국 국회의원 (서울 서초구 갑)'''
제14대
박찬종[13]

제15대
'''최병렬'''[14]

제15·16대
박원홍
'''대한민국 국회의원 (서울 강남구 갑)'''
제15대
서상목

제16대
'''최병렬'''

제17·18대
이종구




<color=#fff> '''제29대 서울특별시장
최병렬
崔秉烈 | Choi Byung-ryul'''
<colbgcolor=#ae1932> '''출생'''
1938년 9월 16일 (85세)
경상남도 산청군 차황면
'''본관'''
화순 최씨
'''자녀'''
최희준
'''학력'''
진주중안국민학교 (졸업)
진주중학교 (졸업)
부산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행정학 / 학사)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 (언론학 / 석사)
'''종교'''
천주교(세례명: 아우구스티노)
'''소속 정당'''

'''의원 선수'''
'''4'''
'''의원 대수'''
12, 14, 15, 16
'''약력'''
한국일보 기자
조선일보 정치부장
조선일보 편집국장
조선일보 이사
제12대 국회의원(전국구)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
제18대 문화공보부장관
초대 공보처장관
제8대 노동부장관
제14대 국회의원(전국구)
제29대 서울특별시장(관선)
제15대 국회의원(서울 서초 갑)
신한국당 당무위원
한나라당 부총재
제16대 국회의원(서울 강남 갑)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
미래통합당 상임고문

1. 개요
2. 생애
3. 여담
4. 소속 정당
5. 선거 이력
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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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언론인(기자), 정치인, 관료.

2. 생애


1938년 경상남도 산청군에서 태어났다. 진주중안국민학교[1], 부산고등학교(10회)[2],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였다. 1959년 한국일보 기자로 있다가 1963년 조선일보로 옮겼다.[3] 이후 1980년 편집국장이 되었고 1983년 이사에 선임되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하였다. 민주정의당 정책연구소 정세분석실장을 지내면서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노태우 후보가 당선되는 데 기여하였다.
1988년 2월 노태우 대통령이 취임할 무렵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에 임명되었다. 그러면서 5공 청산을 주도하여서 전두환 전 대통령 및 그의 측근들과는 사이가 매우 불편해졌다. 한 예로 시대극인 MBC 제5공화국에서도 전두환을 흔들어서 노태우의 권력 안정화를 돕는 역할로 나온다. 김윤환김용갑보다 더욱 강경한 성향이 특징이다. 이 작품에서는 야인시대에서 이석재를 연기한 손호균이 최병렬 정무수석을 연기했으나, 외모상의 싱크로율이 영 맞지는 않다.
같은 해 12월 문화공보부(현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 되었고, 1990년 1월 초대 공보처(현 문화체육관광부)장관에 임명되었다.[4] 같은 해 12월 노동부(현 고용노동부)장관이 되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그리고 김영삼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의 후보로 지지하였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사고 이후 서울특별시장을 지냈다. 본래 우명규 경상북도지사가 28대 서울시장으로 임명되었으나, 성수대교 시공 당시 서울시 책임자임이 알려지면서 한 달도 되지 않아 자진사퇴했다. 그래서 후임으로 최병렬이 그것도 서울특별시의 마지막 관선시장으로 온 것이다
그러나 퇴임 전날인 6월 29일에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를 겪었는데, 사고현장에 도착해서 그 참상을 보자 기가 막혀서 말 한마디 못하다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후술하다시피 최병렬은 업무 스타일이 강하게 밀어붙이는 저돌적인 타입일 만큼 강골에 속하는 인물인데, 그런 그가 눈물을 흘릴만도 한 것이 서울 한복판에 있는 한강 다리가 붕괴된 직후 무거운 마음으로 취임해서 기껏 8개월 남짓 근무했건만, 퇴임 전날에 또 대형사고가 터졌으니 얼마나 기가 막히고 황당했을까. 심지어 둘 다 안전불감증으로 인한 부실공사 때문에 벌어진 참사이니 눈물을 흘리는 것이 결코 이상한 것이 아닐 듯하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서초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장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새정치국민회의 고건 후보에게 밀려 낙선하였다. 사실 최병렬과 고건은 이전까지 민자당에서 한솥밥을 먹던 사이였다. 저 1998년 지방선거는 국민회의가 문민정부 내각출신들(고건 총리와 임창열 부총리 등)을 줄줄이 빼갔던 것이 특징이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강남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한나라당 대선 경선에 출마하였으나 4694표, 18.26%의 득표로 2위에 그쳤다.[5] 결국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의 낙선 이후 2003년에는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에 선출되었다. 그리고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 때 탄핵소추안을 제출하여 가결시켰다.
당연하게도 거세게 불어온 탄핵 역풍의 책임을 져야 했기에 정계에서 은퇴하고 한나라당, 새누리당 상임고문으로 있다. 현경대, 김용갑, 강창희와 더불어 박근혜 전 대통령이 신임하는 보수원로들의 모임인 7인회 구성원 중 하나이다.
현역 정치인 시절에는 정치 노선을 강경하게 밀어붙이는 성격이 강해서 마치 독재자인 히틀러 같다고 하여 '최틀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3. 여담


  • 그의 아들 최희준 역시 언론계에 종사하였다. SBS 1기 기자로 입사(특채입사)하여 뉴욕 특파원, SBS CNBC 보도본부장을 거쳐서 TV조선 앵커, 편성본부장을 역임하였다. 한찬식 검사(연수원 21기)가 사위이고, 최재경 전 민정수석은 조카이다.
  • 그의 조카 (동생의 아들)은 천정배 의원의 장녀와 결혼하여 성향이 다른 정치인 가문간의 사돈관계로 화제가 되었다.
  •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재학 중 연극배우로 잠시 활동했던 적이 있는데, 이 때 최영한이라는 예명을 사용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사람의 예명과 겹친다는 이유로 최불암[6]이 본명을 사용하지 못하였다는 일화가 있다.
  • 이런 영상도 있다. 2003년 당시 정부 여당에 항의해 단식을 했는데 여당 지지자들에게 '웰빙단식'이니 '단식다이어트'니 하는 비난을 받았다. 정치인의 단식에 대해 웰빙이니 다이어트니 하는 조소가 시작된 것은 최병렬 당시 대표의 단식이 최초였다.
  • MBC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는 야인시대이석재로 유명한 배우 손호균이 맡았는데, 해당 배우가 풍채가 좋은 인상파여서 선 굵은 역할을 많이 맡은 터라 실제 최병렬과는 그다지 닮지 않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4.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1985 - 1990
정계 입문

1990 - 1995
합당[7]

1995 - 1997
당명 변경

1997 - 2012
합당[8]
정계 은퇴

2012 - 2017
당명 변경

2017 - 2020
당명 변경

2020
합당[9]

2020 -
당명 변경

5.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85
제12대 국회의원 선거 (전국구)

-
'''당선 (34번)'''

1992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전국구)

-
'''당선 '''
[10]
1996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서초 갑)

'''40,191 (48.56%)'''
'''당선 (1위)'''
[11]
1998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특별시장)

1,512,854 (43.99%)
낙선 (2위)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강남 갑)

'''62,489 (56.46%)'''
'''당선 (1위)'''


6. 둘러보기





[1] 현재는 진주초등학교로 이름을 변경했다. 참고로 이 학교는 대한민국 최초의 남녀공학 학교다.[2] 전두환의 측근들이었던 허문도, 허삼수, 김진영이 고등학교 동기다.[3] 조선일보의 상징과도 같은 김대중보다도 먼저 입사한 것이다. 김대중은 1965년에 입사하여 1989년부터 2003년까지 주필을 역임했고, 2004년에 이사가 되었다.[4] 공보처 장관 재임 중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선배인 윤세영 태영건설 창업주가 민영방송SBS를 개국할 수 있도록 힘을 썼다는 평가가 있다. 더군다나 아들인 최희준이 1기 기자로 입사해서 SBS 뉴욕특파원과 자회사인 SBS CNBC 보도본부장 같은 요직을 지냈다는 점에서 나름 신빙성이 있다.[5] 참고로 이회창이 68%를 득표했다(...) 서울과 대부분의 지방에서 이회창에 이어 2위였으나, 호남지역의 표를 얻은 이부영 후보에게 인천/경기/광주/전남북에서 3위로 밀렸다. 텃밭인 서울에서는 자그마치 1668표, 34%를 득표했는데, 이는 이회창의 47.9%에 그나마 비벼볼 수 있는 유일한 지역이었다. 그 밖의 지역에서는 더블은 커녕 트리플 스코어로 밀렸다.[6] 본명이 최영한(崔英漢)이다.[7]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과 신설 합당, 이른바 3당 합당[8] 통합민주당과 신설 합당[9] 새로운보수당, 미래를향한전진4.0과 신설 합당[10] 1994.11.3 의원직 사퇴
(서울시장 임명)
[11] 1998. 4. 29 의원직 사퇴
(서울시장 선거 출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