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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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정치인.
제17대~21대 국회의원으로 지역구는 부산광역시 사하구 을 지역이다. 원래는 민주당계 정당에서 원조 친노 인사로 정치를 시작한 인물로 3당 합당 이후 보수 정당의 텃밭 같은 곳이었던 부산에 민주당 간판으로는 처음으로 입성 후 지하철을 뚫겠다는 공약을 지켜 지역구의 절대적 지지를 얻어 다선 의원이 되어 존재감을 과시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친문이 민주당의 주류가 되는 과정에서 그는 일관적으로 반문 노선을 타며 갈등하다가 2016년 새정치민주연합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분당되는 과정에서 탈당해 새누리당으로 이적, 이후 대한민국의 보수정당에서 활동하고 있다. 전향했음에도 개인의 능력을 발판으로 내리 5선 연임에 성공했다.
노무현 전 대한민국 대통령의 국회의원 선거사무소에서 자원봉사를 했던 것을 계기로 1996년 통합민주당을 통해 선거에 출마하였고, 17대~19대까지 연달아 민주당계 정당의 불모지였던 '''부산'''에서 한 때 '''민주당계 정당 소속'''으로 '''3선'''을 한 기록이 있었다.
3당 합당 이후 부산에서 처음으로 탄생한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이자, 19대 총선 때 문재인이 사상구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기 이전까지 부산의 유일한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이기도 했었다. 사실 그의 선거 이력을 보면 15대, 16대 총선에서는 2회 연속 낙선을 했지만 지역구민들에게 이름을 알렸고, 17대 총선 때 최초로 당선되었는데 이때는 탄핵 역풍의 효과가 컸고 그 당시 결과가 열린우리당이 과반수를 차지했으니 그냥 대세의 흐름에 따라서 당선되었다고 폄하하는 혹자가 있지만, 그 당시 부산은 민주당계 정당 간판을 달고는 30%를 넘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이 점은 조경태가 대단한 것이 맞다. 다만 그 이전 2회 연속 낙선으로 인한 동정표도 있었을 것이다.
18대 총선에서도 민주당이 전국에서 참패하는 와중에도 부산에선 혼자서 당선되어 국회에 생존했다. 17대 때 지역구 관리를 잘했다는 평가를 받아 개인 표도 나왔기도 했고, 보수 정당 후보로 친이 후보, 친박 성향 후보 2명이 출마하여 보수표가 분산되는 행운도 따라줬다.
다만 17, 18대 총선 모두 한나라당 외의 보수 계열 후보가 출마하여 표를 분산시켰기에 당시의 득표율도 39%, 44%로 절반을 넘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부산 도시철도 1호선 연장 공약을 실제로 성사시키는 등 지역구에 이름을 각인시킨 뒤인 19대 총선 때에 이르러서는 58.2%의 어마어마한 득표율로 당당히 본인의 경쟁력으로 3선에 성공했다. 그리고 20대 총선에서는 59.7%의 득표율을 기록해 19대 총선 때의 득표율을 넘어섰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정치인 초기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인연으로 2010년까지는 친노 인사로 분류될 정도였으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망 이후 문재인이 친노의 수장격으로 올라서고부터는 문재인과는 상성이 매우 좋지 않아, 김한길과 박지원, 뒤늦게 들어온 안철수를 비롯한 당내 반문재인계의 대표 인사로 분류되었다.
그렇게 문재인 당시 대표를 비롯한 주류 진영과 당내외 각종 현안에 관해 지속해서 대립한 끝에 정계 개편의 흐름에 맞추어 2016년 1월 전격적으로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하고 새누리당에 입당했고 20대 총선에는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하여 59.7%라는 높은 득표율로 다시 당선되어, 20대 국회 기준으로 최연소 4선 의원이 되는 기록을 남겼다. 20대 총선 자체는 PK권에서 전체적으로 보수정당의 세력이 크게 줄고 민주당이 기존에 비해 다수의 의석을 확보한 형국이었으나 조경태는 지역구 인물 경쟁력이 당을 초월한 수준이라 이런 전체적인 흐름은 전혀 문제가 아니었던 것.
보수 성향으로 전향한 직후에는 부산에 지역구를 두고 있는 미래통합당 정치인들 중 가장 거물인 김무성 의원에 비해서 세력도 극히 미약한데다 철새 이미지까지 있어서 미래통합당 내의 거물로 성장하기에는 한계가 분명하다는 우려가 있었으나, 19년 당시 자유한국당 제3차 전당대회 최고위원 선거에서 '''2위와의 압도적인 표 차이'''로 수석최고위원에 당선되었다. 1위 조경태 후보는 총 19만표 중 65,563표, 2위 정미경 후보는 46,282표를 득표하였다. 무려 19,000여 표 차이로 크게 따돌린 것. 민주당 출신이라는 큰 약점을 떨쳐내고 보수성향 지지자들 사이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것으로 해석된다. 그리고 미래통합당이 참패한 21대 총선에서 통합당 최고위원들 중 유일하게 승리해[6] 살아남으면서 또 다시 존재감을 과시하였다.
또한 21대 국회 5선 의원 중에서는 최연소다.[7]
2020년 현재 2021년 재보궐선거 부산시장 출마설 또한 돌고 있으나 본인은 확실히 출마 거부를 굳힌듯 하다. 재보선 후 치러지는 전대회에서 당권에 도전하거나, 나아가 김무성 처럼 선수를 늘려 부산의 지역 거물로 성장해 대권주자에 등극하는 것도 매력적인 선택지. 실제로도 19대 대선 당시 출마 선언했다가 컷오프된 경험도 있다. 향후 잠재적 대권주자임은 사실.[8]
2. 생애
2.1. 정계 입문 이전
경상남도 고성군 거류면 신용리 마동마을에서 조재제(趙在濟)의 4남 중 3남으로 태어났으며, 초등학교 입학 전 부산광역시 사하구 지역으로 이주하였다.
신평초등학교 - 사하중학교 - 경남고등학교 - 부산대학교 토목공학과를 졸업하였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를 취득한 후에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2.2. 정계 입문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노무현 후보의 선거사무소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연을 맺었다. 그리고 8년 뒤인 1996년 군 복무를 마친 뒤 만 28살의 나이로 통합민주당 공천을 받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부산 사하구 갑에 출마하였다. 비록 신한국당 서석재 후보에 밀려 낙선했지만 '''15.5%'''를 얻는 파란을 일으켰다.[9] 비록 당선권에는 턱없이 못 미치는 낮은 득표율이었지만 당시 부산/경남권에서 절대적인 지지세를 가지고 있는 신한국당을 상대로 타 정당의 새파랗게 젊은 신인이 저 정도의 결과를 낸건 결코 보통 일이 아니었으며, 지금 기준으로는 선거 비용 전액 보전이 가능한 수치다![10]
사실 1990년 3당 합당 이후 조금이나마 부산/경남권에 남아있던 야당 지지층이 정치 신인의 등장에 결집해서 저런 결과를 냈던 듯. 참고로 이 포스터는 와이프의 아이디어라고 한다. 묘하게 김범수를 닮았다.
통합민주당과 신한국당이 합당할 때 그대로 잔류하면서 한때 한나라당 당적을 가졌다. #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지역구를 바꿔 사하구 을 공천을 신청했으나 공천에서 탈락. 이후 한나라당을 탈당해서, 새천년민주당 공천을 받고 출마하였으나, 박종웅 후보(57.04%)에 밀려 2위(17.50%)로 낙선하였다.
2.3. 국회의원 시절
2.3.1. 제17대 국회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부산 도시철도 1호선 다대포 연장을 공약으로 내걸고, 마침 탄핵 역풍에다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한 현직 의원 박종웅이 무소속으로 출마하면서 한나라당 최거훈 후보를 누르고 39.13%의 득표율로 당선된다.(최거훈 36.98%, 박종웅 15.00%)
첫 당선은 이렇게 어부지리에 가까웠으나 이후 노무현 대한민국 대통령한테 부산 1호선 연장을 요구하여 기어이 승인을 받아내어 사하구 주민들의 민심이 본격적으로 조경태를 바라보게 된다.
2.3.2. 제18대 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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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유세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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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할 때.
부산 도시철도 1호선 연장선 공약으로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때 통합민주당 후보들이 떡실신 당하는 와중에도 최거훈 후보와의 리턴매치에서 승리(조경태 44.89% vs 최거훈 41.88%)하여 부산 1호선 다대포 연장을 기어이 실현시키면서 전설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다. 여론조사에서는 최거훈 후보가 앞서나갔었다. # # # # # 그야말로 짜릿한 역전승. 18대 총선 당시 최거훈 - 조경태 두 후보는 17대 때(17대 때는 조경태 후보가 개표 내내 아슬아슬하게 1위를 유지하여 당선)와 달리 개표 내내 엎치락뒤치락 하는 접전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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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대한민국 국회 청문회장에서 한미 쇠고기 협정 수정안에 반발해서 격렬하게 당시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11] 을 몰아붙여서 '''조포스''''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1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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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부산 도시철도 1호선 다대포 연장구간 기공식에서. 공약으로 내걸었던 사업이 실현되는 순간이었으며, 8년 후 다대포에 지하철이 열렸다.
2.3.3. 제19대 국회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부산 1호선 적기완공을 들고나오고 공보물에 '''부산 도시철도 사진을 떡 하게 박는 것 하나만으로 58.19%'''를 얻어서 전직 부산교통공사 사장이었던 새누리당 안준태 후보를 가볍게 KO시키고 당선된다. 조경태의 행보에 긍정적인 사람이든, 부정적인 사람이든 전부 인정해주는 부분이 '''지하철을 끝내주게 잘 뚫어준다'''는 점. 그만큼 지역구 관리를 굉장히 잘하는데 특히 '''지하철에 대한 공약은 잘 지킨다.''' 조경태의 박사 세부 전공이 '도시계획'인데 이름값을 제대로 하고 있다. 낙하산인 지하철 사장보다 지하철 뚫는 박사가 더 말빨이 먹히고 노선도 조경태가 계획을 더 잘 잡고 그 노선에 의한 경제 활성화 같은 영향도 잘 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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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선 성공 직후 제18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하기도 했으나 민주통합당 당내 경선 예비선거를 통과하지 못해 좌절되었다.
열린우리당 시절에는 친노로 분류되었지만, 친노 진영의 수장으로 손꼽히는 문재인 후보와 친한 친문재인계는 아니다. 보통 2009~10년경쯤 완전히 결별한 것으로 본다. 2015년 초의 한 잡지 인터뷰. 오히려 2015년에는 "진정한 노무현 계승자는 바로 나"라고 하면서 친문계와 대립각을 제대로 보이는 중.
이로 인해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에서 당을 해치는 자로 지목되어 윤리심판원에 제소되기까지 했다. 그러자 조경태 의원은 당시만 해도 자기 발로 당을 나갈 생각이 없었는지, 자기가 꼴보기 싫다면 자길 자르라고 항의했다.
그러나 이를 이끌어온 안병욱 윤리위원장이 사임하고 이어서 윤리심판원들이 줄줄이 사퇴 의사를 밝힘에 따라 징계건은 더더욱 멀어져서 더 이상의 이야기가 없었으며 탈당한 시점에서부터 이 이야기는 옛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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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비행기에서 찍힌 사진. #
2015년 12월 14일 의정보고서를 재빠르게 내면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준비에 들어갔다.
2016년 1월 5일 부산일보가 낸 기사들에 따르면 지역구 지지율이 매우 높다고 한다. 특히 현역 교체 비율이 압도하고 있는 부산광역시에서 현역 유지비율이 교체비율보다 높고 일을 잘한다는 평가가 대다수.
안철수 의원과 김한길 의원이 탈당한 2016년 1월 중순까지는, 동교동계 핵심 멤버로 꼽히는 박지원 의원과 더불어 당내 비주류계의 대표 인사로 분류되었다. 하지만 부산이라는 지역 기반과 잦은 당내 충돌로 인해 당내 지지 기반과 독자적인 계파 세력은 전무한 상황이었다. 문재인 대표와의 마찰을 지속하다 '''자기 발로 당을 나갈 생각이 없다'''던 기존 입장을 뒤집고 2016년 1월 19일 탈당을 발표하였다.
2016년 1월 20일 기사에 따르면 새누리당에 입당한다고 알려졌다.
2016년 1월 21일에 최종 거취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고 결국 새누리당 입당 확정 기사가 났다.#
탈당 직후 새누리당과 국민의당에서 영입 제안이 빠르게 들어왔었다고 한다. 새누리측은 12년 동안 사하구를 빼앗긴 굴욕을 만회할 절호의 기회이며, 국민의당도 인재가 필요한 시점인데다 평소 그와 행동을 같이했던 과거 비주류계 인사들이 여기에 꽤 속해있기 때문. 21일에 기자회견을 통하여 거취를 결정하겠다고 했으며 여담이지만 당사자의 탈당으로 이번 총선 정국에 상당한 영향을 줄 열쇠 중 하나가 되었다는 점이다.
탈당으로 인해 부산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입지가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으나, 아직까지는 판단하기 이르다는 여론이 높다. 애시당초 민주당의 친문 주류와 줄곧 거리가 멀었던데다 조경태, 문재인을 제외하고도 부산에 김영춘, 김정길, 전재수, 최인호 등등 더불어민주당 유력 정치인들이 의외로 제법 있기 때문. 그리고 결과적으로 출마한 이들은 전부 당선됐다. 그 와중에 더불어민주당 김해영 의원은 첫 출마(20대 총선)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원외라 원내에 있는 조경태와는 명백히 이야기가 다르고, 문재인 대표의 불출마로 부산 총선에 대한 관심이 대폭 줄은 데다가, 새누리당은 새누리당대로 부산 12년 만에 부산 석권을 노리면서 접전 선거구에 거물을 등판시키는 등 총력전에 나설 태세라 더불어민주당의 입지는 결국 줄어들 확률이 높다. 갈 사람이 간 것이라 여겨 속 시원히 여길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더민주 주류가 계속 공을 들인 부산을 석권당할 수도 있는 판이니 걱정도 될 만한 것. 그러나... 정작 총선에서는 깜짝 놀랄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결국 21일, 새누리당에 입당했다.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 탈당했으니 16년 만의 복당인 셈. 이에 대해 친문계로 분류되는 더불어민주당 진성준 의원은 한 방송에 출연하여 조경태 의원은 해당행위자로 원래 출당 대상자였으며 새누리당 입당은 자기 정체성에 맞는 당에 간 것이라 비판했다. 또한 부산광역시 사하구 을에 출마를 준비 중이었던 새누리당 소속 석동현 전 서울동부지검장은 꼼수 정치, 단물 정치, 배신의 정치라는 용어를 써가며 그를 비판했다.
조 의원의 새누리당 입당 소식에 친문 성향의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은 노 전 대통령을 수모에 빠지게 만든 정당에 들어갔다고 비판했다. 조경태 의원 본인도 후자의 비판을 의식했는지 사무실에 여전히 노 전 대통령의 사진을 놓고 일한다고도 했고, 새누리당에 들어왔어도 늘 '노무현 정신'을 생각하겠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여담으로, 새누리당 입당 후 2달 후 친박계에 의해 컷오프 되어 새누리당에서 더불어민주당으로 건너오게 되는 진영 前 보건복지부 장관도 조경태 의원이 '원조 친노'라 불리다가 비노계의 대표 주자가 되어 결국 최대의 맞수였던 정당으로 넘어갔듯이, 원래 원조 친박이었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노인 기초 연금 공약 후퇴에 반발하면서 비박으로 변했고 결국에는 새누리당에서 더불어민주당으로 넘어가게 된다. 재미있는 데칼코마니라 할 수 있다. 둘 다 20대 국회 기준 4선 국회의원이며, 2000년 16대 총선 낙선 후 2004년 17대 총선에서 처음 당선되어 쭉 같은 지역구에서 당선되었다는 점도 동일하다. 이에 '조경태↔진영 트레이드'라는 우스갯소리가 돌기까지 했다.
그가 새누리당에 입당한 이유는 결국은 지역 민심이라고 밝혔다. 국민의당에서도 진지하게 제의가 들어왔으나 부산 서부라는 지역구 특성 때문에 거절했다. 새누리가 근소 우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최소 35%가량은 민주당계 정당을 지지한다. 아무리 지역구에서 개인적 지지율이 높다 해도,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당을 선택하면 새누리당 후보, 사이가 안 좋았던 더불어민주당 저격수와의 3파전이 일어날 것이 뻔하고 당선도 장담할 수 없었던 것.
일단, 조경태가 민주당 계열로 3선을 기록할 정도(사실 17대 총선, 18대 총선은 운이 좋았다. 한 번은 탄핵역풍, 한 번은 보수후보가 2명 출마하여 보수표 분산)로 지역 기반이 탄탄하기 때문에 새누리당 소속으로도 얼마든지 정치 행보를 이어나갈 수는 있다. 이젠 새누리당 표까지 흡수할 수 있게 됐으니 앞으로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한 지속적인 당선이 예상된다.
하지만 '''부산 유일의 야당 3선'''과 부산의 새누리당 국회의원이라는 두 이미지를 비교해보면 사실상 차포를 뗀 것이라는 반응도 있다. 부산은 1990년 3당 합당 이래로 새누리당의 텃밭이기 때문에 새누리당 소속 정치인은 딱히 큰 주목을 끌 일이 없지만, 민주당 계열로 3선을 기록한 것은 전국적인 이슈가 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조 의원이 그래도 유명했던 게 바로 그 타이틀 때문이었는데 흔하디 흔한 새누리당 소속 정치인으로 변신했으니 이제는 별다른 메리트가 없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막말로 새누리당에서 공천 안 줘도 조경태 입장에서는 기회주의자라는 이미지 때문에 쉽게 탈당할 수도 없을 뿐더러, 반발하고 무소속 출마한들 당선된다는 보장도 없다.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조경태의 입당이 서부산의 야권 지지세를 차단하는데 도움이 확연하다는 큰 기대감과 동시에 부산 싹쓸이보다는 새누리당 견제 심리 결집이라는 역풍이 불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중이다.
2016년 3월 4일 새누리당 사하을 후보로 단수 공천되어 총선 본선 진출이 확정되었다. 이에 따라 경선도 없이 단독 공천에 대한 반발로 석동현 예비후보는 당색이 맞지 않는 인물을 단독 공천한 것에 대해 김무성 대표에게 책임지라는 등 불복하고 있는 상황이며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나올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었으나 22일에 당의 결정을 존중하고 국가와 사하을의 발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돌아보겠다고 하면서 불출마를 선언하였다.
또 다른 예비 후보인 이호열은 준비가 부족했으며 당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의사를 밝혔다. 한편, 더불어민주당은 김갑민, 오창석 두 후보가 경선을 치를 예정이었으며 이 과정에서 오창석 후보가 공천되어 본선에서 붙게될 듯 하다. 국민의당에서는 배관구 후보가 공천되었으며 정의당에서는 유홍 후보가 나와 곧 본선을 치를 모양이다.
2.3.4. 제20대 국회
결국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오창석 후보를 트리플 스코어에 가깝게 누르고 승리했지만 총선 전날까지 새누리당의 부산 싹쓸이까지 예상되었던 것과는 달리 더불어민주당이 부산에서만 무려 '''5석'''(김영춘, 박재호, 전재수, 김해영, 최인호)을 가져가는 바람에 새누리당은 조경태 입당 효과를 거의 누리지 못했다.
게다가 '3당 합당 이후 부산광역시에서 처음으로 당선된 민주당 의원 & 부산에서 유일한 민주당 다선 의원'이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녔던 시절과 달리 새누리당으로 온 뒤에는 그 당에 부산에서 많이 당선된 의원들이 수두룩한 터라 조 의원도 그냥 새누리당의 많은 부산 다선 의원들 중 한 명으로 여겨질 뿐이라 확실히 민주당 소속이었던 시절에 비하면 눈에 덜 띈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부산에서 다선을 한 보수 정당 의원을 뽑으라면 무려 6선을 한 김무성 의원을 비롯해 여러 명이 있다.
그동안 조경태 의원이 지하철 연장과 같은 굵직한 인프라 개발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데는 야당의 유일한 부산 지역 다선 의원이므로 당의 특별대우를 받은 점이 컸다. 지역구의 발전과 직결된 개발안의 예산 심의에서 자기들끼리 파이를 조율해야 하는 여당과 달리 야당에서는 어차피 부산 지역에 쓰일 예산이라면 조경태 의원의 지역구 말고 밀어줄 데가 없었던 것이다. 여기에 본인의 대학 전공인 토목건축학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공법이나 지반 등을 이유로 사하구 지하철 연장을 반대하던 이들을 다 때려잡았다고 한다. 정교수는 아니었지만 박사 학위를 따고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경험 때문에 국회 내에서는 교수님이라는 별칭도 있다고. 따라서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야당이 되었고 게다가 자유한국당에서도 여전히 비주류로 분류되는 그가 앞으로도 이전과 같은 지역 발전 추진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 주목된다.
2016년 6월 13일, 새누리당 의원 총회를 통해 '''기획재정위원장'''으로 당선되며 여당 거물급 정치인으로서의 행보를 시작하게 됐다.
이때 강성 비박계 후보인 이혜훈, 이종구를 반대하는 친박계의 압도적 지원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재위가 각 당의 '''에이스'''들이 진검 승부를 벌이는 상임위라는 점에서 토목공학 전공의 조 의원이 위원장 자리에까지 오른 건 이례적인 일인데, 당선 초까지만 하더라도 본인은 정무위원장 자리를 희망했으나, 여당 내 중진 의원들의 설득으로 기재위로 방향을 돌렸다고 전해졌다. 이와 관련하여 앞으로 조경태가 친박계의 눈치를 덜 볼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자칫하면 소위 '친노 패권주의'를 견디지 못해 민주당을 떠났다던 사람이 '친박 패권주의'에는 침묵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해신공항 결정에 대해 정부에서 제시한 김해신공항을 적극 지지한다고 하였다.
살인적인 수준의 더위로 전기세 누진제가 논란이 된 2016년 8월 요즘, 정부에 전기세 누진제 개편과 전기요금 정상화를 요구하고 있다.기사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졌지만 민주당계 정당에 있을 때와는 다르게 박근혜나 새누리당 내부의 친박 & 비박 갈등에 대해서도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오직 기재위원장 직무에만 전념하고 있다.
하지만 새누리당 의원이다보니 대학교에 특강을 가도 폭풍같이 까이고 있다.
새누리당 분열 상황에서 친박들의 연석회의에 참석했지만 최순실 특검법에 찬성표를 던졌다. 하지만 친박 중의 친박인 조원진도 찬성표를 던졌기 때문에 딱히 이것으로 어떤 성향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2017년 3월 2일 봉하마을 노무현 묘역이 국립묘지와 같은 예우 받는 법안이 통과될 때 본인은 기권을 하였다. 정확히는 전직 대통령이 국립묘지에 안장되지 않은 경우에도 묘지관리 인력 및 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하면서 묘역이 어디에 있든지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동등하게 한다는 취지의 법개정이었다.
3월 3일 오전 국회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마치고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통해 북한의 핵개발에 대항하여 우리나라의 핵무장을 주장하였고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의 무역보복에 맞서 중국과의 단교, 중화민국 정부와의 재수교를 거론하였다.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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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13일 기자회견을 열고 19대 대선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3월 17일에 열린 자유한국당 대선후보자 비전대회에서 "대통령께서 탄핵당하셨다.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여러분께 정중히 사죄드리는 바이다."라거나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은 개인의 탄핵이 아닌 대한민국 정치권의 탄핵" 등의 발언을 하였다. "친노에서 친박이 되었거나 범친홍으로 전향했다."라는 시각도 있다. 다만 친박이나 친홍이라고 하기엔 주류 세력과 거리가 상당한 수준이다. 조경태 본인은 탄핵소추 때는 찬성표를 던지긴 했지만. 단순히 생각하면 자유한국당 당론을 따른 것일지도 모른다.
2017년 3월 18일 자유한국당 대통령 예비 경선에서 1차 컷오프되었다.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이 대참패한 이후, 자유한국당 우파재건회의 소속 국회의원 중 한 명이 되었다. 구성원은 조경태, 김문수, 김진태, 심재철, 유기준, 정우택. 원조 친노계 정치인에서 이제는 완전한 우파 정치인이 된 경우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자유한국당 당대표로 출마하려다가 최고위원으로 전향하여 출마하였다. 체급을 낮추어 출마한 전략이 성공하였고, 제3차 전당대회 '''최고위원선거에 1위로 당선'''되었다. 기사 그 동안 당내에서 민주당 출신이라는 이유로 자유한국당 내의 강성 보수층의 비토가 컸었고 당내 입지도 다른 4선의원들에 비해선 현저히 적었다. 국회의원은 보통 당협위원장을 겸임해 자기 지역구의 지방선거 후보에 대한 공천권이 있는데 조경태는 자기 사람을 후보로 세우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던 것. 그러나 이제는 민주당 출신이라는 약점을 떨쳐내고 완전히 자유한국당의 일원으로 인정받은 것으로 보인다. 조경태 후보는 6만 5563표(24.2%)를 얻었고, 4만 6282표(17,1%)로 2위를 기록한 정미경 후보와 상당히 큰 표차를 보였다. 경선 과정 내내 자신은 민주당 출신이었기 때문에 민주당과 어떻게 싸워야하는지 제일 잘 안다는 점을 강조하였고 정치적으로 중요한 지역인 PK지역의 4선의원이라는 점을 어필하였는데, 꽤 많은 한국당 지지자들에게 통한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약점을 강점으로 승화시킨 셈. 또한 조경태 의원이 난민 수용반대 등 우파적 정책에 큰 목소리를 내왔고, 신의 한 수를 비롯한 극우 진영의 유튜브에 자주 출연해 문재인 정부의 실정을 비판해오는 등 우파 진영의 지지자들에게 인지도를 쌓아오는 노력을 많이 했었다.
일반 최고위원이 아닌 '''수석'''최고위원으로, 당대표 유고 등의 사유 발생 시 당대표 직무대행을 수행하는 직급이라고 한다. 서열상으로는 당대표 바로 아랫계급인 셈.
최고위원이 된 이후, 김진태 및 김순례 의원 징계에 대해 "유야무야 넘어가서는 안 될 문제"라며 "명확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발언했다. 또한 "황교안 대표께도 우리 당이 매일 바뀌는 모습, 국민을 바라보고 가는 정치를 해야 한다. 특정 계파, 특정 세력에 묶여서는 저희 당이 내년 총선에서 더 어려운 선거를 치를 수 있다"라며 "지금부터라도 좀 더 크게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한국당이 대개조하는 마음으로 상당히 많은 영역에서 바뀌고 또 변화해야 한다"고 하였다.기사
최고위원 당선후 황교안 대표와 함께 노무현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하는 모습이 보도 되었다.기사
최고위원 자리에 차지한 덕분에 민주당시절부터 주장해오던 '''비례대표 폐지'''와 '''국회의원 정수 감축'''을 당론으로 관철시키는 데 기어이 성공했다.
2019년 10월 25일에는 국산 게임에 2년이 넘게 판호를 내주지 않는 중국 정부에 항의의 뜻을 표하고자 주한 중국대사관 앞을 찾아 1인시위를 단행했다.기사
2020년 1월 28일에는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해결될 때까지 중국인에 대해 입국 금지를 할 것을 주장했다.기사
2.3.5. 제21대 국회
지도부의 삽질과 막말을 비롯한 여러 악재 속에서 소속 정당인 통합당이 부산을 되찾는 데는 성공했지만 부산의 거의 대부분의 후보들이 접전을 벌인 반면에 하태경과 함께 단 둘만이 당연하다는 듯이 압승을 거두면서 5선에 성공했다. 21대 총선에서 대부분의 보수 중진들이 낙선하는 와중에 최고위원들 중 유일하게 승리하면서, 당 대표에까지 도전해볼만한 상황이 된 것은 덤이다. 당 대표뿐만이 아니라 미래통합당 최다선 의원이 돼서 국회부의장도 가능하다. 미래통합당에서 21대 국회 기준 최다선인 5선 의원은 조경태, 정진석, 주호영, 서병수뿐이고, 무소속을 포함해도 홍준표 전 대표만이 추가된다. 이 중에서 홍준표는 최소 당 대표, 최대는 대권을 바라볼 것으로 보이므로, 네 명 중 두 명이 전후반기 국회부의장을 역임할 가능성이 높다. 주호영 의원은 원내대표가 됐으므로, 국회부의장은 정진석(전반기) - 조경태/서병수 중 하나(후반기)로 정리되는 분위기다. [13]
다만 조경태는 5선 의원이면서도 굉장히 젊은 축에 들기 때문에 체급을 더 올리면서 차기만이 아닌 차차기 그 이후 대선까지도 바라볼 수 있는 나이라 다른 쪽으로 빠질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총선 패배 수습을 위해 심재철 당 대표 권한대행이 김종인 비대위 카드를 꺼내들자 이에 반발했다.# 이 과정에서 이준석 최고위원과도 대립했다.#
전국위에서 김종인 비대위 추인에 강력 반발했다고 한다.#
6월 2일 조경태 의원은 '부산해양특별시 설치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을 대표 발의했다고 밝혔다.
2일 법안 발의에는 조 의원을 포함한 부산지역 통합당 의원 15명 전원이 동참했다.
2020년 7월 17일 21대 국회 개원식이 열렸는데, 관례대로 문재인 대통령이 개원연설을 한 후 본회의장을 돌며 인사할 때 아예 등을 돌린 채 눈을 마주치는 것도 거부했다.#
2020년 10월 21일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사퇴를 주장했다.조 의원은 이제 비대위를 끝내고 조기 전대로 새 지도부를 선출하자며 김 위원장을 직격했다. 김 위원장은 신경쓰지 않겠다는 단호한 반응을 보여 당내 갈등의 새로운 불씨가 될 것으로 보인다.
2020년 10월 27일 장하성 주중대사가 고려대 교수 재직 시절에 저지른 법인카드 부정 사용을 국정감사장에서 위증했다며 해임을 촉구했다.
앞선 10월 26일 교육부 종합감사에서 장 대사가 법인카드를 사용한 곳은 여성이 룸에서 술을 접대하는 유흥업소인데도, 음식점이라고 위증했다고 주장했다.
가덕도 신공항에 대해 같은 당의 윤희숙 의원이 고추나 말리는 공항이 될 것이라며 부적절한 발언을 하자 지방을 무시하는 발언이라며 비판했다.
3. 여담
- 18대 국회에서 활동할 당시 쇠고기 문제로 청문회에서 정운천 당시 농림부 장관에게 강경하게 나가 조포스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이후로도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조포스라고 ID를 쓰는거 보면 좋아하는 듯.## 재밌는 건 2016년 20대 총선 때 둘 다 같은 새누리당 후보로 당선되었고 하지만 정운천은 바른정당으로 간 반면 조경태는 잔류하여 자유한국당에 남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운천이 복당하면서 21대 국회에서도 한솥밥을 먹게 되었다.
- 위에 설명되어 있듯이 보수 지지세가 강한 부산광역시에서 민주당 깃발로 3선을 한 것으로 유명하여 지역주의 타파의 선봉장 중 하나로 불렸다. 그 3선 중에 17대 총선, 18대 총선은 운이 좋은 케이스[14] 였고, 당선 당시 현 대통령이었던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매우 놀라워했다고 하는데, 이런 탓에 당시 당선자들 중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유일하게 호출을 받아 대통령을 독대하여 극찬을 받았다고 전한다. 그래서 2000년대 후반까지도 야권 내 대표적인 친노 인사로 분류되었다. 심지어 참여정부 시절 대연정 파동 때 당내외 여론이 악화되는 와중에 대연정 제안을 강력히, 꽤 문제되는 발언까지 섞어 가며 옹호하기도 했다. 이 같은 행동은 영향을 준 바가 있는데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의원이 6.4 지방선거 때 적지인 대구광역시에 출마하였으나 안타깝게 석패. 훗날 20대 총선에서 마침내 당선되었으며. 2014년 7.30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가 예산폭탄 공약을 내걸고 민주당의 텃밭인 전남의 순천시·곡성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상대측인 새정치민주연합의 서갑원 후보를 누르고 당선 된 바가 있다.
- 민주당 시절에는 비주류인 탓에 당내 지지층이 전무했다. 한 예로, 2012년 19대 총선 당시 한명숙 지도부는 문재인 후보가 출마한 사상구는 자주 들렀지만 사상에서 별로 멀지도 않은 그의 사하구 을 선거구에는 아무도 방문을 안했다. 의외로 그의 지역구에서 당시 유력한 대권 후보이자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이었던 박근혜가 이곳에서 적극적인 유세 활동을 벌였는데 이는 새누리당 측에서 조경태 의원이 상당한 강적임을 증명한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이건 본인이 당내 지지층을 갉아먹는 행보를 보인 것도 있었다. 김한길 대표 시절에 최고위원을 했던 당시에도 지역 현안과 관련된 내용을 읊었던 정치인이라 지역민의 평판은 좋았지만 당 주류이자 부산시당의 다수를 이루는 친문 인사들과 다양한 현안에서 끝없이 대립각을 펼친 탓에 당 지지층 뿐만 아니라 지역 당원으로부터도 지지를 잃은 정황들이 포착되기 때문이다. 재선 의원 당시 부산시당위원장 선거에서 낙마한 적도 있고, 막말 논란으로 징계위에 회부되었을 때 그의 지역구인 부산 사하을의 당원들이 그에 대해 중징계를 내리라고 청원하는 일까지 벌어졌었다. 또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한 언론사가 지역 여론을 취재했는데 몇몇 노년층 유권자들이 ''조경태가 일은 정말 잘한데이. 그런데 요즘 들어 왜 자꾸 문재인한테 개겨서 일을 만드노?"라는 말로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 민주당내에서 입지가 약해 누구도 어려울 거라 예상했던 최고위원직에 자력으로 당선된 적이 있다.# 하지만 2014년 7.30 재보궐선거 패배 책임으로, 지도부 총 사퇴와 동시에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 새정치민주연합 출범 당일 소란을 피운 것으로 유명한데 종북 세력은 당에 들어 올 자격이 없다'라고 퍼부어 당내 비판 대상이 되기도 했다. 논란이 있을 수 있는 강한 어조의 단어를 민주당 의원이 같은 당 의원들에게 사용한 것이다. 이후에도 그의 비판은 적지않게 같은 당 인사들을 향했다. 이런 당내 비판 발언들이 나오는 데에는 이석기에 의한 내란음모사건과 통합진보당 위헌정당해산 사건 때에도 당이 제대로 된 결단을 못 내리고 우유부단한 자세를 취한 것과 관련이 있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 정계 입문 후부터 당론과 다른 행보를 자주 보여 민주당 지지자들로부터 정체성을 의심받는 일이 더러 있었고, 특히 골수 강경파인 정청래 의원에게 자주 공격받았다. 둘의 사이는 굉장히 견원지간이다. 정청래 의원은 운동권 출신이라 진보 성향이 뚜렷해 보수 성향이 진한 조경태 의원과는 물과 기름의 관계였다. 정청래는 조경태를 향해 "내무반에 총질 말라"[15] , "민주당에 쓴소리 하듯이 박근혜 정부를 비판해 본 적이 있는가"라고 비난하자, 이에 대해 조경태는 원전 비리, 밀양송전탑 문제, 대일 외교 저자세 등에 대해 비판해 왔다고 반박했다. 세월호 참사 관련 김현 의원의 대리기사 폭행 사건 때도 조경태 의원은 "당에 물의를 일으킨 김현을 출당시키고 일벌백계 해야 한다"라는 발언에 정청래 의원은 "조경태를 출당시켜야 한다"라고 반박했다. 이 때문인지 민주당에 오랫동안 몸담았고 PK 3선 의원이라는 민주당 입장에서 나오기 쉽지 않은 기록을 세웠음에도, 현 더불어민주당 소속 정치인들과는 사이가 좋지 않다. 위에 나온 정청래와의 설전이 대표적인 예. 과거 보수정당에 몸 담았다가 민주당계 정당으로 넘어온 손학규나 진영, 김부겸이 양대 정당의 험악한 관계에도 불구하고 보수 정당 소속, 심지어 범친박으로 분류되는 정치인들과도 아직끼지 막역한 사이인 것을 보면 꽤 씁쓸한 부분이다.[16]
사실 애초에 조경태는 정계 데뷔부터가 진보 정치인들과는 연관이 없는 편이다. 민주당에 있을 때도 신보수인사라고 분류되었으니, 진보 강경파인 정청래 의원과 마찰을 빚는 건 당연할 터. 이는 조경태가 친문을 친노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17] 꼬마민주당에서 정계 데뷔를 했으나, 합당 때 조순, 이기택, 김부겸, 강창성, 제정구와 같이 넘어왔다가 16대 총선 공천 때 진영과 다르게 고배를 마시고 탈당 직후 민주당으로 넘어왔었다. 국립대인 부산대학교를 다닐 때도 가난했던 집안 때문에 고학으로 졸업할 정도였으니, 운동권 인사들과 사이가 별로 좋진 못했다. 다만, 군사정권 자체는 운동권보다도 적대적으로 본다. 정의당에서 한창 비례대표제 확대를 요구 했을 당시, "비례대표는 유신정우회 때 나온 것이다. 독재정권의 거수기 역할을 한 것이 비례대표인데, 무슨 확대요?"라고 비판하며, 정의당은 물론이고, 군사정권까지 세트로 비판했을 정도.
- 개인적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존경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정계 입문 자체도 노무현에 의해 영입되었고,[18] 줄곧 노무현의 최측근으로 있었다. 대표적으로 반노였던 후단협이 맹비난할 당시, 끝까지 노무현을 비호한 적도 있었고, 당적을 바꾼 지금까지도 노무현 추도식에 매년 참석하고 있다. 이는 노무현 10주기 추도식 때도 보여지는데, 황교안이 불참하는 최악의 수를 둘 때도 조경태는 대신 갔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통합 뜻을 받들어야 한다."며 여야 모두를 깐 적도 있었다. 조경태는 처음부터 문재인을 비판한 건 아니였고, 노무현 사후, 문재인이 정계에 입문하면서부터 노선이 달라 마찰을 빚었기 때문이였다. 첫 당선 당시, 노무현이 "조경태 학습법을 배워야 한다."고 괜히 극찬한 게 아니다. #
- 강용석 前 의원과는 견원지간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사이가 매우 안 좋다. 서로 반말까는 것은 기본이고, 육두문자만 안 쓸 뿐이지, 국회의원들 간의 언쟁이라는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다.[19] 현재는 같은 진영이 됐지만, 강용석이 일련의 사건사고로 현실 정치에서 정계 은퇴를 당한 뒤 마주칠 일이 없게 되었다.
- 당선 인사를 경남고 대선배인 김영삼 前 대통령에 갔더니 큰 일을 해냈다고 칭찬받았다고 한다.#
- 그가 당에 머무를 때마다 그 당이 선거당일에 징크스를 맞는 편이다. 실제로 그가 더불어민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옮겨갔을때 새누리당 내에서 부산권을 싹쓸이할 것으로 예상을 했지만, 그 결과는... 심지어, 이적 이전에 자신이 공격했던 사람들이 한솥밥을 먹기 시작한 4년 후의 결과는 더 처참했다.
- 보수 정당 소속 PK 다선 의원들 중 인지도가 높은 편이고, 지역구 장악력이나 인기도 높은 편이라 차기 부산시장 후보로 주목받고 있다. 그간 차기 부산시장 후보로 꾸준히 거론되었던 김세연 의원이나 박민식 전 의원에 비해 의원 선수도 높고 본래 민주당 출신이라 중도 확장성도 저 둘에 비해 밀리지 않는다는 평가. 이 때문에 가장 강력한 경쟁자인 김세연 의원과는 은근히 기싸움이 오고 가는 듯 하다. 대표적으로 강남 병 공천사태 당시 김세연 의원이 "이 정도는 쿨하게 넘어가주자"라고 했던데에 조경태 수석최고위원이 절대 안된다며 공관위를 압박해서 공천을 철회시키는 일이 있었다. 게다가 해운대에서 조경태와 비슷한 스코어[20] 로 민주당 후보를 털어버린 하태경 의원도 부산시장 후보군에 꼽히면서 다음 시장 자리를 놓고 신경전이 점점 치열해지는 듯.[21]
- 김범수와 정말 판박이로 닮았다. 15대 총선 때는 김범수가 정계에 진출한 줄 착각할 정도로 닮았다!
- 열린우리당으로 당선된 이후 새누리당에 입당하기 전까지, 지역사무소 간판에 열린우리당의 색상인 노란색 간판을 유지했었다. [22]
4. 소속 정당
5. 선거 이력
6. 둘러보기
[1] #[2] 24세손 ○태(泰)자 항렬로 알려져 있었으나 실제로는 30세손 ○래(來)자 항렬이다. 그리고 족보명은 태래(泰來)이며, 아버지는 조재제(趙在濟)다.#[3] 출처#[4] 만일 조경태가 대통령이나 국무총리가 된다면 '''서울 지하철 13호선, 부산 지하철 8호선, 대구 지하철 6호선까지 지어질 것'''이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도시철도에 조예가 깊어 붙은 별명이다. 실제로 본인 전공이 도시철도와 도시개발이다.[5] 2014년 2월 이후 업데이트가 없다.[6] 도지사인 원희룡 제주지사는 제외[7] 그런 만큼 공천만 되면 7선, 8선을 넘어 10선이나 11선도 가능할 것이다. 11선을 한다고 치면 만 76세가 되는데, 김종인이나 조 바이든같은 고령 정치인들이 활동이 왕성한 것을 생각하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본인이 부산시장 혹은 대통령을 지내지 않는다면 김영삼 전 대통령, 김종필 전 총리, 박준규 전 국회 의장의 기록인 9선의 최다선 기록을 갱신할 유력한 인물이기도 하다.[8] 다만 민주당계 출신이다 보니 보수당에서 대권 주자까지 성장하기에는 아직 어려울 것이라는 평이 많다.[9] 당시 서석재 의원은 상도동계 인사로서 김영삼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로 분류되던 사람이었다.[10] 당시에는 해당 선거구 총 유효투표수를 후보자 수로 나눈 값의 절반을 넘게 득표해야만 기탁금을 보전받을 수 있었다. 1996년 총선 부산 사하구 갑의 총 유효투표수는 69,840표였으며 후보자는 총 3명이었으므로 69,840÷3 = 23,280의 절반인 11,640표를 넘겨야 하는데 조경태는 10,835표를 얻어서 '''단 805표'''가 모자라 기탁금을 돌려받지 못했다.[11] 이들은 8년 후 같은 정당으로 만난다.[12] "미국인들이 30개월이 넘어가는 소고기를 먹느냐 안 먹느냐 왜 답변을 못 하냐", "이렇게 하실 거면 다 사퇴하세요."라며, 매우 호통을 치며, 정운천이 어버버하는 상황을 만들어냈다. 당연히 조포스의 출처는 야인시대의 장포스.[13] 그러나, 정진석은 상임위 여당 싹쓸이에 반발하여 부의장직을 안 맡기로 하였고 아직도 21대 국회 야당몫 부의장이 공석이다.[14] 한 번은 탄핵 역풍이였고, 한 번은 친박, 비박 이렇게 보수 후보가 2명이 나와서 보수표 분산이였다.[15] 근데 정작 정청래는 군면제이다(...)[16] 손학규는 현재 민생당 소속이긴 하지만 민주당계 정당에 10년이상 몸담으며 대표까지 지낸 인물이기에 민주당 인사들과 원만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이명박, 홍준표, 이재오, 김문수 등과는 막역한 관계라고 한다. 진영의 경우에는 문재인 정부에서 행정안전부 장관까지 됐음에도 불구하고 현 자유한국당 의원들에게서 "지금 당하고는 잘 맞는거 같냐?", "다시 우리 당에 오면 안 되냐?"라는 식의 말을 주고받는게 청문회장이나 국정감사장에서 나올 정도. 여담이지만, 진영은 "다시 우리 당에 오면 안 되냐"는 말에 "안 갑니다."라고 답변해서 웃음을 줬다. 20대 총선 당시, TK에서 당선된 적이 있는 김부겸은 대구경북의 보수정당 국회의원들이 김부겸을 통해서 행정이나 예산문제를 처리했다고 했을 정도로 막역한 사이이다.[17] 참여정부 시절 국무총리를 지냈었던 이해찬도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나와서 "노무현과 문재인은 노동운동 시절부터 다른 행보를 보였던 사람"이라며, 그 둘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꺼낸 적도 있다.[18] 이 때 같이 영입됐던 인사가 철완으로 유명한 야구선수 최동원이였다.[19] 지식경제위원회에 함께 소속되었을 당시 예산안 삭감 문제를 가지고 날선 공방이 나왔고, 이 외에도 여러번 언쟁이 있었다.[20] 조경태 58%, 하태경 59%.[21] 하지만 11월 현재 출마 생각이 있다면 슬슬 결심해야 함에도 계속 출마에 대해 부인하는 것으로 보아 사실상 당권 직행 의사를 빍힌 걸로도 비취진다.[22] 당 로고는 제거되어 있었다.[23] 신한국당과 신설 합당[24] 대통합민주신당, 민주당 합당[25] 시민통합당과 합당[26] 새정치민주연합에 흡수 합당[27] 새로운보수당, 미래를향한전진4.0과 신설 합당[28] 2016년 1월 더불어민주당 탈당, 새누리당 입당.[29] 2017.02.13 새누리당→자유한국당 당명변경.[30] 2020.09.02 미래통합당→국민의힘 당명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