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철

 


'''역임한 직위'''
[ 펼치기 · 접기 ]

'''대한민국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
제20대 후반기
안상수

'''제20대 후반기
황영철'''

제20대 후반기
김재원

'''대한민국 국회의원 (강원 홍천군·횡성군)'''
제17대
조일현

'''제18·19대
황영철'''

''선거구 개편''
'''황영철'''[A]
염동열[25]
'''대한민국 국회의원 (강원 홍천군·철원군·화천군·양구군·인제군)'''
''선거구 개편''
'''황영철'''[A]
한기호[26]

'''제20대
'''

''선거구 개편''
이양수[27]
유상범[28]
한기호[29]


<colbgcolor=#e61e2b> '''성명'''
황영철 (黃永哲)
'''출생'''
1965년 7월 13일 (59세)
강원도 홍천군
'''본관'''
상주 황씨
'''최종 학력'''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신체'''
180cm
'''병역'''
육군 일병 의병전역
'''가족'''
배우자 심진숙, 아들 황병준(1992년)
'''종교'''
개신교(장로교)[1]
'''소속 정당'''
[2]
'''의원 선수'''
3
'''의원 대수'''
18, 19, [3]
'''홈페이지'''

1. 개요
2. 활동
3. 사건사고/논란
3.1. 선거법 /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3.1.1. 선거법 위반 논란
3.1.2. 돈봉투 살포 사건
3.1.3.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3.2. 의정활동 관련 논란
3.2.1. 투표시간 연장 무산작전 논란
3.2.2. TV토론 참가 제한법(이정희법) 발의
3.3. 개인 처신 관련 논란
3.3.1. 탈당 선언 번복 논란
4. 학력
5. 경력
6. 선거 이력
7. 소속 정당
8.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전직 국회의원이다. 홍천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이후 서울대학교를 졸업하였다.

2. 활동


홍천고등학교(강원)와 1991년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지방선거에 출마하여 초대 홍천군의원으로 당선되었다. 당시 무보수 명예직이였던 기초의원에 26세의 사회 초년생이 출마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어서 화제가 되었다.[4]
이후 1995년, 1998년 지방선거에서 내리 당선되어 강원도의원을 지냈으나, 2000년 16대 총선 출마를 위해서 도의원직을 사퇴했다. 하지만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서 나온 16대 총선에서는 새천년민주당 유재규 후보에게 밀려서 2위로 낙선했고, 다시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한 2004년 17대 총선에서는 열린우리당 조일현 후보[5]에게 밀려서 다시 낙선하고 만다. 17대 대선 때 이명박 당시 후보의 밑에서 강원도 선거본부장을 지내며 친이계에 속했다.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강원 홍천군·횡성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직 의원인 조일현을 꺾으며 설욕했다. 재직 당시 아청법을 공동 발의하였으며 2011년부터 2013년 초까지 한나라당, 새누리당의 대변인으로 활동했다.
2011년 11월 15일 목재의 지속가능한 이용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발의하였으며, 이 법안은 수정가결되어 2013년 5월 24이부터 시행되고 있다.
2011년 11월 22일 한미 FTA 비준에서 한나라당 의원 중 유일하게 반대표를 행사했다.#
이후 2012년에 열린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다시 민주통합당 후보로 나온 조일현 前 의원을 꺾고서 당선되었다. 그러나 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당해 곤혹을 치렀다.
이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을 앞두고 선거구를 다시 정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지역구(홍천ㆍ횡성)가 쪼개져 홍천군은 철원군·화천군·양구군·인제군과 함께 하나의 선거구가 되고, 횡성군은 태백시·영월군·평창군·정선군과 하나의 선거구가 되었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최대의 피해자 중 한 명인 셈이다. 고향인 홍천군에 남아 선거구가 묶이는 철원군·화천군·양구군·인제군 현역의원인 같은 새누리당 한기호 의원과 공천을 놓고 다툴 예정이지만, 아쉬웠던지 선거구 획정안 반대토론에 나서 선거구 획정안의 부당함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쉽게 말해 면적이 넓은 지역구는 인구가 적어도 배려해줘야 하는 게 아니냐는 뜻이었다.
물론 선거구는 인구 수에 따라 짜야 하는 것이 당연한 얘기기는 한데, 일개 선거구의 면적이 서울특별시 면적의 무려 10배로 장난아니게 넓어서 다른 선거구들에 비해 선거운동의 어려움이 크고, 전국에서 최초로 5개 기초자치단체가 하나의 선거구로 묶였다는 선례를 만들었다는 점이 논란거리로 지적된다. 다음 총선에선 고려해봐야 할 문제로 보인다.[6][7]
어쨌든 결국 공천에서 철원군 기반의 한기호 의원을 꺾어 홍천군·철원군·화천군·양구군·인제군 선거구 새누리당 후보자가 되었고,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조일현 前 의원을 다시 꺾으며 3선 국회의원이 되었다.
2016년 시점에서 비박계의 대표주자로서 발돋움하고 있다. 여당 의원임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부의 실패와 친박 세력의 패악질에 대해 야당 의원 못지않게 적극적으로 비판하고 나섰으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이후에는 아예 새누리당 내부에서 박근혜 퇴진의 선봉장이 되어 야당과 서로 협력해서 박근혜를 몰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비박계 모임인 비상시국위원회의 대변인 역할을 맡고 있다. 또한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에서도 물타기와 본질 흐리기를 거듭하는 새누리당에서는 예외적으로 장제원과 함께 좋은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2차 청문회에서는 고영태의 발언을 근거로 최순실박근혜 대통령한테 준 옷과 가방이 뇌물이라는 주장을 하였다.
일각에서는 황영철의 이러한 반(反)박근혜 행보의 이유를 그의 지역구가 강원도라는 점에서 찾는다. 평창을 넘어 강원도민들의 오랜 염원이었던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 최순실이 개입했다는 정황이 드러나 그 분노로 인해 박근혜 퇴진의 선봉장이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2016년 12월 23일에 새누리당을 탈당했다. 탈당 직전 국정조사에서 자신을 새누리당을 떠날 황영철 의원이라고 소개하여 묘한 그림을 연출했다. 그리고 마침내 바른정당의 창당 멤버로 합류했다. 그러나 2017년 11월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했다.
현재는 친무계로 분류되고 있으며[8] 지역구 관리에 집중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또 다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당해서 의윈직 상실 위기에 처했고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으며 2018년에 조강특위 주도로 이뤄진 당무 감사를 거치면서 철원ㆍ화천ㆍ양구ㆍ인제ㆍ홍천 당협위원장직도 잃게 되었다.
금강산에서 이루어지는 ‘2019 새해맞이 연대모임’ 참석을 위해 2월 12일 방북을 했다. 2018년 이후 북한을 방북한 유일한 보수 진영 의원이었기에 크게 주목을 받았다.
이후 예결위원장직을 다시 선출하는 것을 두고서 당 원내지도부와 갈등을 빚게 되었다. 원래는 안상수, 황영철 두 의원이 위원장직을 두고서 임기를 1년씩 나눴는데, 후반기 국회 개원과 함께 열린 위원장직 선출 당시에 당원권 정지 문제로 참가하지 못했던 김재원 의원이 문제제기를 하면서 위원장직 경선을 실시하게 되자, 이에 반발하여 위원장직 경선에 불출마하게 된 것이다.
2019년 10월 31일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아 의원직을 상실하였다.

3. 사건사고/논란


'''내가 살다살다 저런 치사한 인간은 처음본다.'''

- 전원책 -

2012년 19대 국회 출범 직후부터 꾸준히 선거비리 사범으로 지목되었고 2016년에는 유죄판결까지 받아서 도덕성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었다.
이후 박근혜 퇴진의 선봉장으로 맹활약하며 논란을 잠재우나 했지만[9] 불과 반년도 안 지나서 그간의 행동이 진심이 아니라 그저 정치적 이익을 위한 행동임이 밝혀져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더군다나 2017년에 또 다시 선거비리 사범으로 지목되어 의원직 상실 위기에 놓였는데 2019년 10월 31일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아 의원직을 상실하였다.

3.1. 선거법 /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3.1.1. 선거법 위반 논란


황 의원의 보좌관이었던 권모 씨가 19대 총선 당시 황 의원이 지역구의 협의회장들에게 1000만 원 상당의 금품을 살포했다며 검찰에 그를 고발했다. 하지만 검찰의 미온적인 태도로 편파수사, 봐주기 수사 논란이 일었고 이에 민주통합당 강원도당이 재정신청서를 냈으나 결국 검찰이 불기소처분을 내렸다.

3.1.2. 돈봉투 살포 사건


선거비리사범 수사대상에 올라갔으며 유권자들에게 돈봉투를 나눠준 혐의로 현재 재판에 넘겨졌다. 만약 유죄가 확정되었더라면 당선은 무효가 되고 해당 지역구는 재선거를 해야 했다. 참고로 20대 총선에서는 총 300명의 국회의원 당선자 중 무려 104명이 선거비리사범으로 입건되어 황영철은 재판에 넘겨지고 5명이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나머지 98명은 현재 수사 중이다.
1심에서 검찰은 황영철 당선인에게 벌금 300만 원을 구형했다. 그러나 초범이고, 우발적인 범행이며 국회의원 선거와 먼 일자에 벌어진 일이었고, 선거구 개편으로 인해 횡성군이 황영철 의원의 지역구가 아니게 된 점이 감안되어 당선무효형에서 벗어나는 7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황영철 당선인은 항소하지 않기로 결정했으나, 검찰이 항소해 2심으로 올라갔다. 검찰은 1심과 동일하게 벌금 300만 원을 구형했으나 2심에서도 다시 70만 원이 선고되었다. 대법원 판결 또한 100만 원 아래 벌금이 유지된다면 의원직 유지가 가능하다.
결국 검찰과 의원 모두 항소를 포기해서 국회의원직 유지가 확정되었다.[10]

3.1.3.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검찰은 2017년 6월 황 의원의 보좌관 A씨를 구속하고 관련 인물들의 진술을 토대로 황 의원을 2억 8000만 원 상당의 돈을 불법수수한 일에 관여하고 경조사 명목으로 290만 원을 기부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그리고 법정에서 황 의원의 회계책임자가 황 의원의 지시로 보좌진들의 월급을 일부 반납하도록 하여 자신의 사무실 운영비 등으로 충당하였으며 검찰 소환조사 전날 황 의원이 자신에게 전화로 위증을 지시하여 허위진술을 했다고 폭로했다. 검찰은 황 의원에게 징역 3년을 구형했으며 황영철은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상태이다. 2018년 8월 31일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 등의 의원직 상실형을 선고받았다. 항소심에서도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 및 벌금 500만 원, 추징금 2억 3천 900여만 원 선고를 받으면서 정치인생에 빨간불이 켜졌다. 상황이 이대로 가면 무조건 직책에서 쫓겨난다. 황 의원은 재판부 판결에 존중한다는 입장을 냈다.
결국, 2019년 10월 31일 형이 확정되며, 의원직에서 쫓겨났다. 또한 남은 임기가 1년 미만인 관계로 해당 선거구는 보궐선거를 따로 치르지 않으며, 21대 총선까지 공석으로 남게 되었다.

3.2. 의정활동 관련 논란



3.2.1. 투표시간 연장 무산작전 논란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장으로 활동할 당시 선거법 개정안 논의를 위해 차수를 변경하자는 민주당 의원들의 요구를 거절하고 산회를 선포함으로써, 투표시간 연장관련 법안 상정이 무산되었다. 이에 황영철 의원은 “투표시간 연장 등 선거법 개정안 논의는 이번 정기국회에서 더 이상 없다”고 말했다.

3.2.2. TV토론 참가 제한법(이정희법) 발의


일정 기준 미달인 정당의 후보는 TV토론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는 법안을 발의해서 야당, 특히 통합진보당 지지자들에게 공분을 샀다.
황영철 의원은 대선 TV 토론회 참가 자격을 제한하는 일명 ‘이정희 방지법’을 발의했다. 황 의원이 발의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에는 선관위가 주관하는 TV 토론회 참가 자격이 현행에서 국회 교섭단체를 구성한 정당 후보자 또는 여론조사 평균 지지율이 15% 이상인 후보자’로 제한했다. 이 법안을 적용하면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는 TV 토론회에 참여할 수 없게 된다.[11]

3.3. 개인 처신 관련 논란



3.3.1. 탈당 선언 번복 논란


'''그간의 개혁보수 이미지를 모두 날려먹은 사건'''으로 평가된다.
비박계 모임인 비상시국회의의 대변인 역할을 자처하여 맹활약하고 바른정당의 창립멤버로서 이름을 올렸으나 끝끝내 동료들을 배신하고 말았다. 이후에 탈당한 남경필, 원희룡은 국민의당과의 통합 반대라는 명분이라도 있지 이사람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2017년 5월 2일 바른정당의 불투명한 미래에 홍준표 지지를 선언하며 바른정당을 탈당, 자유한국당에 복당을 신청하는 줄 알았으나. 자유한국당의 친박계는 권성동, 장제원, 황영철 세 사람을 콕 집어 복당 신청을 거부하는 움직임을 보였고, 황영철 의원은 바른정당에 탈당계 제출을 보류했다. 그리고 탈당 발표 하루 만에 자신의 결정을 번복하고 바른정당에 잔류하기로 최종 결정을 내렸다.# 이유는 젊은 층 지지자들의 반대가 워낙 심해서라는데 실질적인 이유는 자유한국당에 입당해도 한기호가 지역구를 굳건히 지키고 있어서 설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라고 보는 관측이 존재하고 있다. 일단 그의 잔류로 바른정당은 간신히 20석으로 원내교섭단체를 유지하기는 했다.
어쨌건 김성태, 장제원 등 탈당을 확정한 다른 청문회 스타 정치인들에 비하면 타격이 덜하긴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상황인지라, 당내에서 지분이 상당히 약해진 상태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자 다시 자유한국당과의 합당을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2017년 11월 6일에 결국 바른정당을 탈당했다.

4. 학력



5. 경력


  • 제1대 홍천군의회 의원
  • 제2,3대 강원도의회 의원
  • 한나라당 홍천군, 횡성군 당협위원장.[12]
  • 제17대 대통령선거 한나라당 강원도 선거대책본부장(대변인)
  • 제18대 국회의원(강원도 홍천군,횡성군)
  • 한나라당, 새누리당 대변인
  • 제19대 국회의원(강원도 홍천군,횡성군)
  • 새누리당 대표최고위원 비서실장
  • 새누리당 홍천군, 횡성군 당협위원장[13]
  • 새누리당 홍천ㆍ철원ㆍ화천ㆍ양구ㆍ인제 당협위원장[14]
  • 제19대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새누리당 간사
  •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상임의장
  • 제19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위원
  • 제20대 국회의원(강원도 홍천ㆍ철원ㆍ화천ㆍ양구ㆍ인제)
  • 제20대 국회 국방위원회 위원
  • 바른정당 홍천ㆍ철원ㆍ화천ㆍ양구ㆍ인제 당협위원장[15]
  • 자유한국당 홍천ㆍ철원ㆍ화천ㆍ양구ㆍ인제 당협위원장[16]
  • 제20대 국회 후반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17]

6.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91
1991년 지방선거 (강원 홍천군의회)
[18]
'''4,031 (32.73%)'''
'''당선(1위)'''
'''초선'''
1995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강원도의회 홍천 1)

무투표 당선[19]
'''당선(1위)'''
'''초선'''
1998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강원도의회 홍천 1)

'''10,126 (61.35%)'''
'''당선 (1위)'''
'''재선'''[20]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강원 홍천·횡성)

18,898 (31.50%)
낙선 (2위)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강원 홍천·횡성)

23,532 (41.95%)
낙선 (2위)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강원 홍천·횡성)

'''26,021 (49.23%)'''
'''당선 (1위)'''
'''초선'''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강원 홍천·횡성)

'''29,942 (51.80%)'''
'''당선 (1위)'''
'''재선'''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강원 홍천·철원·화천·양구·인제)

''' -'''
-
-[21]

7.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1989 - 1990
입당

1990 - 1991
합당[22]

1991 - 1995
탈당
정계 입문

1995
복당

1995 - 1997
당명 변경

1997 - 2012
합당[23]

2012 - 2016
당명 변경

2016 - 2017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탈당

2017
창당

2017
당내 노선 차이로 인한 탈당

2017 - 2020
복당

2020
합당[24]

2020 -
당명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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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홍천군 홍천읍 연봉리에 위치한 예장통합 소속의 연봉리중앙교회(홍천중앙장로교회) 집사#s-2이다.[2] 기소로 인한 당원권 정지[3] 2019.10.31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의원직 상실[4] 해당 선거의 당선인 중에 비슷한 케이스가 하나 더 있는데 바로 경기도의원에 당선된 원유철이다. 원유철 역시 당선 이전에 LG에서 몇년 일한 것 외에는 경력이 전무했다.[5] 14대 총선에서 통일국민당 후보로 나와서 당선되었고, 이후 15~16대 총선에서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나와서 연거푸 낙선했지만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당선되었다.[6] 21대 총선에서는 인구가 많은 춘천을 분할하여 철원,화천,양구에 붙이는 방법으로 5개 이상의 기초자치단체가 묶이는 일을 피했다. 물론 이 역시도 최악의 상황만 피했을 뿐 똑같은 게리맨더링이었다.[7] 강원도는 전국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희박한 광역자치단체라 선거구 획정 과정에서 많은 논란이 있었다. 자세한 사항은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선거구 획정/과정 문서를 참조하기 바란다.[8] 김무성이 대표를 하던 시절에 비서실장을 했으며 바른정당 탈당 사태 때도 그와 행보를 같이 한 바 있다.[9] 많은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고 심지어 야당의원들에게까지 감사 인사를 받았다.[10] 저 와중에 '''반기문에게 박근혜랑 가까이 하면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내용의 발언을 했고,''' 그 당시에는 선거에서 당선된 것에부터 문제가 있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되냐며 비웃음을 당했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이는 현실이 되었다.'''[11] 실시 시기는 18대 대선이 끝나고 2013년부터 적용토록 해서 이정희 후보는 토론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12] 2000~2012년[13] 2012~2016년[14] 2016년[15] 2017년[16] 2017~2018년[17] 안습한 것은 예결특위 회의 한 번도 못 열어보고서 위원장직에서 물러나야 했다는 점이다.[18] 1991년 지방선거에서는 지방의회 의원만 선출했으며 정당공천제가 실시되지 않았다. 이후 광역의원의 정당공천제는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기초의원의 정당공천제는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도입되었다.[19] 단독출마[20] 2000년 16대 총선 출마 위해 도의원 사퇴[21] 2016년 12월 23일 새누리당 탈당, 2017년 11월 자유한국당 복당. 2019년 10월 31일 의원직 상실.[22] 민주정의당, 신민주공화당과 신설 합당, 이른바 3당 합당[23] 통합민주당과 신설 합당[24] 새로운보수당, 미래를향한전진4.0과 신설 합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