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단 vs 호나우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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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네딘 지단과 호나우두 중에서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중반 세계 최고의 선수는 누구인가?''''에 대한 논쟁. 다만 크루이프 vs 베켄바워나 메호대전에 비해서 조금 애매한 라이벌리이기도 하다.
메시와 호날두, 크루이프와 베켄바워 같은 경우에는 당대를 대표하는 선수 두 명을 꼽으라면 별다른 이견 없이 꼽히는 선수인 데 반해 호나우두와 지단의 경우 호나우두는 독보적인 시대의 지배자였던 기간이 있었지만 그 기간이 20대 초반 즉 무릎 부상 이전인 1996~98년에 불과하며 부상 이후에는 호나우두와 대등하거나 그 이상의 활약상을 보인 선수가 적지 않았고, 지단은 호나우두가 치명적인 부상을 겪은 이후 1인자 자리를 굳혔으나 동시대에 뛰었던 선수 중 히바우두, 루이스 피구, 마티아스 자머, 파벨 네드베드, 파비오 칸나바로, 안드리 솁첸코, 호나우지뉴, 프란체스코 토티,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 파트리크 비에이라, 데니스 베르캄프,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앨런 시어러, 라울 곤살레스, 데이비드 베컴, 티에리 앙리, 호베르투 카를루스, 파올로 말디니, 사무엘 에투, 카푸 등 개인 수상 경력이든 기량이든 압도적인 차이가 나지 않는 선수들이 많았다. 뒤집어 말해서 호나우두와 지단은 펠레와 마라도나, 메날두나 크루이프, 베켄바워, 디 스테파노처럼 오랜 기간 동안 시대의 독보적인 존재로 군림했다고 보기엔 힘들다.
또한, 오랜 시간 동안 압도적 기량을 유지하며 커리어 내내 승부를 벌인 메날두와[1] 크루이프, 베켄바워와 달리 호나우두와 지단의 경우에는 둘만의 천상계 대전이라 할 만한 시간이 길지 않았다. 아무튼 이 둘도 축구사의 다른 라이벌들 처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로가 엎치락뒤치락하는 형세를 보였는데, 98월드컵 결승 이전에는 호나우두가 압도적인 주목을 받았지만 결승에서 지단이 2골을 터트릴 동안 호나우두는 프랑스 철의 포백[2] 을 넘지 못하며 3대0이라는 충격적 결과가 나왔다.[3] 이어서 지단이 유로우승까지 차지하며 축구계 최정상으로 단숨에 올라갈 동안 호나우두는 98월드컵의 충격적 패배에 이어 99년 선수생명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무릎 부상까지 발발하며 지단이 월드컵-유로우승을 연달아 해내는걸 지켜봐야 했다. 그러나 호나우두 역시 이걸로 끝이 아니라는 듯 부상의 후유증을 이겨내고 복귀하여 2002 월드컵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우며 득점왕+우승을 모두 차지하는 기염을 토해낸다. 이때 지단은 본인의 다리부상과 팀의 형편없는 조직력[4] 이 겹쳐져 조별리그에서 탈락한다. 하지만 그 후로 지단의 철저한 자기관리에 비해 호나우두는 방탕한 생활+무릎부상 재발의 콤보로 호나우두의 기량이 지단에게 비하기 초라할 정도로 급하락하여 06월드컵에서 다시 한번 벌어진 맞대결에서 또 호나우두가 참패했다. 이것은 이 라이벌리를 더욱 애매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하지만 이 둘은 사람들에게 흥미로운 비교거리로 여겨지며 실제로 여러 언론사에서 꽤 많이 비교되는데, 그 이유는 이 둘이 국가대표로서, 특히 세계 최고의 축구대회인 FIFA 월드컵에서 오랜 기간 동안 엄청난 족적을 남기며 각국을 이끌고 경쟁해왔기 때문이다. 한 세기 가까이 되는 월드컵 역사에서 이 둘만큼 훌륭한 활약을 한 선수는 매우 적다.[5]
세계 축구계에 먼저 이름을 떨친 것은 호나우두였다. 94-95 시즌 에레디비시의 PSV로 이적하자마자 32경기 30골을 몰아치며 득점왕을 차지한다. 당시 에레디비시는 유럽에서 빅리그급으로 꼽히는 수준이었다. 호나우두는 이런 PSV에서의 훌륭한 활약을 바탕으로 4살 많은 지단보다 먼저 발롱도르 유효표를 받았다. 1995년 발롱도르 26위에 이름을 올린 것이었다. 지단도 94년즈음부터 리그앙 신인상을 차지하는 등 프랑스에서 주목받는 수준의 선수까지 올라왔으나 유럽에서 손꼽히는 신성이었던 호나우두가 우위에 있었다.
지단은 1996년이 되어서 월드클래스라 불릴만한 활약을 펼쳤다. 95-96 시즌 팀의 에이스급으로 성장한 지단은 유럽대항전에서도 활약했고 리그앙 MVP로 선정되었고, 1996년 발롱도르 28위에 오른다. 하지만 당시의 호나우두는 지단보다 훨씬 앞서나갔다. 호나우두는 1996년 FIF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였으며, 발롱도르 투표에서는 마티아스 잠머를 제치고 발롱도르를 수상할 뻔했다. 만 20세의 선수가 최다 1위표를 득표하고 단 1점 차이로 발롱도르를 놓쳤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매우 놀라웠다. 호나우두는 기세등등하게 활약을 이어나갔고 97 코파 아메리카에서 대회 MVP를 차지할 정도로 좋은 경기력으로 브라질을 우승으로 이끈다. 이런 활약을 바탕으로 1997년에는 압도적인 점수로 발롱도르와 FIFA 올해의 선수상도 차지했으며, 단 22살의 나이로 펠레와 마라도나에 비견되며 이들의 반열에 오를 것이라는 기대를 함께 받고 있었다. 같은 해의 지단은 유벤투스에서 다비즈, 데샹과 함께 훌륭한 중원을 이루었고 세계적으로 뛰어난 미드필더로 꼽혔지만 호나우두의 활약에 비교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래도 발롱도르, 피올 모두 3위에 올랐다.
1998년은 두 선수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해였다. 호나우두는 인테르에서, 지단은 유벤투스에서 97-98시즌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그리고 세계 최고의 대회인 월드컵이 기다리고 있었다. 호나우두는 당시 세계 최고의 선수로 널리 인정받던 선수답게 원숙한 기량을 선보이며 파죽지세로 브라질을 결승까지 이끌었다. 지단 또한 준수한 활약[6] 으로 프랑스의 결승행에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결승전의 날이 밝았다. 결승전 직전 갑자기 호나우두가 선발 명단에서 제외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이후 전 세계가 호나우두를 주목했으나 그는 곧 경기장에 합류하였다.[7] 이날은 브라질에게 두고두고 기억될 뼈아픈 날이었다. 지단을 타겟맨으로 하여 세트 피스 전술을 철저히 준비한 프랑스에게 완전히 압도당했고, 호나우두와 호베르투 카를루스가 릴리앙 튀랑을 중심으로 하는 프랑스 철의 포백에게 가로막혀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할때 지단은 헤딩으로 2골이나 넣으며 그대로 3:0, 프랑스가 완승했다. 결승전 이전에 시행된 대회 최우수 선수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해 골든볼을 받은건 호나우두였지만[8] 결승전에서는 지단이 2골이나 기록하며 우승을 이끈 것이다. 호나우두와 지단은 나란히 대회 베스트팀에 포함되었다. 연말에 실시된 FIFA 올해의 선수상 투표와 발롱도르 투표에서는 지단이 1위를 차지했다. 호나우두는 FIFA 올해의 선수 2위, 발롱도르 3위를 차지했다. 지단과 호나우두의 라이벌리가 월드컵 결승전이라는 궁극의 무대에서 제대로 불붙었던 시즌이다.
호나우두는 1998년 월드컵 결승전에서의 부진 이후 슬럼프에 빠졌다. 슬럼프에 빠져 있는 상태에서 1998-99시즌이 시작되었고, 호나우두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부상까지 당했다. 이전에도 부상이 몇번 있었지만 99년에 당한 부상은 선수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큰 부상이었고, 결국 시즌의 절반 가까이를 날려먹으며 많은 비판과 비난을 받아야 했다. 지단 역시 1999년에는 특별한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며 발롱도르 19위에 그쳤다. 호나우두는 23위를 기록했다. 호나우두는 1999년 11월 21일 경기에서 무릎 부상을 당했는데, 2000년 4월에 펼쳐진 5개월만의 복귀전에서 드리블을 하다가 3분만에 부상이 재발해 경기장에 그대로 쓰러졌다. 호나우두는 그 부상으로 인해 2002년 봄까지 경기장에 돌아오지 못했다.
호나우두가 없는 축구계는 지단 천하였다. 2000년의 지단은 그야말로 커리어의 피크를 맞았는데 98월드컵 우승에 이어 UEFA 유로에서도 프랑스를 이끌고 우승하며 대회 MVP까지 차지한 것이다. FIFA 올해의 선수상을 받은 것은 물론이요 2000년 발롱도르 1위 루이스 피구와 적은 차이로 발롱도르 2위에 오르는 등 절정의 활약을 보여주며 세계 최고의 선수로 올라섰다. 이듬해인 2001년에도 지단은 기량을 잘 유지하며 발롱도르 9위에 올랐다.
2002년 봄, 1년 반이 넘는 긴 재활치료를 마치고 호나우두가 그라운드에 돌아왔다. 리그경기에 조심조심 복귀한 그는 월드컵에 맞춰 기량을 끌어올렸다. 지단도 월드컵을 잘 준비했다. 하지만 지단은 대한민국과의 평가전에서 부상을 당했다. 양 팀 에이스의 존재 여부는 곧 각 팀의 희비와 같았다. 지단이 없는 프랑스는 비극을 맞았다. 비교적 약체인 세네갈, 우루과이, 덴마크와 한 조에 속했음에도 불구하고 1무 2패라는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며 조별리그부터 짐을 쌌다. 반면에 호나우두가 돌아오고 히바우두와 호나우지뉴까지 있는 브라질은 엄청났다. 거기에 좋은 대진운이 겹치며[9] 무난하게 결승에 진출했고, 독일과의 결승전에서 호나우두가 히바우두의 기막힌 어시스트에 힘입어 올리버 칸이 지키는 골문에 2골을 넣음으로서 브라질의 5번째 월드컵 우승을 이끈다. 호나우두는 8골을 넣으며 득점왕에 올랐고, 대회 실버볼도 차지했다. 결국 호나우두는 월드컵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개인 통산 3번째 FIFA 올해의 선수상과 두 번째 발롱도르를 거머쥔다. 지단은 레알 마드리드에서의 활약이 워낙 뛰어났던 덕에 발롱도르 4위에 올랐지만 부상으로 월드컵에서 한 경기도 뛰지 못했다는 것이 못내 아쉬울 것이다. 호나우두가 울고 지단이 웃었던 98년 월드컵과 달리 이번에는 결과가 반대로 나온 셈.
2002년. 호나우두는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여 지단과 함께 뛰게 되었는데, 호나우두는 2002-2003시즌까지는 라리가에서 23골을 기록하는 등 활약했지만 이전의 호나우두가 가지고 있었던 다이나믹한 드리블은 부상의 영향으로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고, 호나우두의 실력 또한 해를 거듭할수록 빠르게 하락했다. 2004년, 2005년에는 발롱도르 후보에 언급만 되었을 뿐 유효표를 받지도 못했다. 반면 지단은 나이가 더 많음에도 상당히 뛰어난 기량을 유지하며 호나우두가 2003년 발롱도르 11위를 기록할 때 본인은 5위를 기록했고 개인 통산 세 번째 FIFA 올해의 선수상까지 받았다. 2004년과 2005년에는 노쇠화가 눈에 띄긴 했으나 여전히 월드 클래스의 기량을 유지했다.
2006년 월드컵은 지단의 커리어 마지막 대회이자 월드컵이면서 호나우두에게도 특별히 중요한 월드컵이었다. 당시 월드컵 개막식 날을 기점으로 보면 지단은 만 33세[10] , 호나우두는 만 29세로 둘 다 전성기 기량에서 꽤나 벗어나 있는 상태였다. 지단은 나이 때문에, 호나우두는 부상 때문이었다. 호나우두와 지단 모두 조별리그를 이겨내고 16강에 진출, 16강에서도 두 선수 모두 골을 터트리며 팀을 8강으로 올린다. 그런데 프랑스와 브라질이 98년 월드컵 결승 이후 8년만에 월드컵에서 다시 만나버렸다. 두 팀 모두 우승후보였지만 언론은 판타스틱 4가 포진하고 있는 브라질의 우세를 점쳤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웬걸? 지단이 마치 회춘이라도 한 것처럼 중원을 장악하며 브라질을 가지고 노는 것이 아닌가? 반면에 호나우두를 필두로 한 브라질의 판타스틱 4는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했다. 결국 지단의 어시스트를 받은 앙리의 결승골로 프랑스가 승리했고, 호나우두와 브라질은 98월드컵 결승전의 설욕에 실패한다. 호나우두의 월드컵 커리어도 여기서 끝.[11] 반면에 지단은 준결승에서도 PK 결승골을 성공시키며 또 한 번 월드컵 결승에 오르게 되었다. 이탈리아를 상대로 맞이한 결승에서도 주인공은 지단이었다. 부폰을 속이는 멋진 파넨카 킥으로 PK 선제골을 성공시켰다. 1:1로 정규시간이 끝나고 진행된 대회 최우수 선수 투표에서 1위를 한 것은 다름아닌 지단이었다. 연장 전반에도 결정적인 헤더로 이탈리아의 골문을 위협한 지단은 그러나 연장 후반 마르코 마테라치의 도발에 넘어가서 그를 머리로 들이받아 퇴장 당하는 희대의 사건을 일으킨다. 그것이 결국 프랑스의 승부차기 패배로까지 이어지면서 그날 언론의 먹잇감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무려 월드컵 결승전을 은퇴무대로 삼아 멋진 퍼포먼스를 보여주었으며 대회 내내 훌륭한 경기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월드컵 골든볼을 수상함에 이어 2006년 FIFA 올해의 선수 2위, 발롱도르 5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이후 지단은 선수 은퇴를 선언했고 호나우두는 세계 최고의 선수 반열에서 멀어져 발롱도르 후보 50인에 오르지 못했다. 그래서 2006년을 마지막으로 둘의 시대는 완전히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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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상인 발롱도르는 축구선수의 당대 평가를 엿볼 수 있는 유용한 지표이기도 하다. 지단과 호나우두의 발롱도르 투표 결과 역시 이 둘의 위상 변화를 잘 보여주고 있다. 위 그래프를 보면, 호나우두의 임팩트가 확실히 강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2000년의 부상 이후에는 2002년에 딱 한 번 부활하는 데 그쳤으며, 그 후로 기량이 빠르게 낮아졌다는 것도 알 수 있다. 호나우두는 막 30대에 접어든 2006년부터 단 한 번도 발롱도르 후보에조차 언급되지 못했다. 반면 지단은 꾸준히 상위권을 기록하는 경향을 보인다. 1998년에 정점을 기록한 후에도 순위가 그다지 떨어지지 않으며, 2006년에는 자신이 은퇴하는 시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5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15][16]
당대를 뛴 선수와 감독들은 이 두 선수를 고르게 치켜세우며, 호나우두는 지단을, 지단은 호나우두를 자신이 본 최고의 선수로 언급한 바 있다. 막상막하, 용호상박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두 선수이다.
17/18시즌 중에 나온 언론사 순위 (2017년 6월~2018년 3월)
후대의 평가는 서로 엎치락뒤치락하는 경향을 보인다. 물론 전성기는 호나우두가 더 강렬했으나 그 기간이 매우 짧으며 부상 이후론 그 기량을 다시는 못 보여준 반면에 지단은 호나우두의 전성기 때는 호나우두에게 밀렸지만 호나우두의 부상 이후 압도적이지는 않더라도 대외적인 1인자 자리를 꾸준히 유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커리어를 월드컵 준우승과 골든볼로 멋지게 마무리 짓고 호나우두와의 월드컵 맞대결[17] 에서 두 번 모두 완승을 거두었으며, 같은 레알 마드리드 소속 시절 지단이 차지하는 비중이 호나우두보다 더 컸다는 점에서 종합적인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중반 최고의 선수를 뽑을 때 지단이 뽑히는 경향이 조금 더 잦은 편이다.[18] 게다가 최근 언론사에서 선정한 랭킹에서도 지단의 순위가 호나우두보다 약간 앞서 있다.
그러나 1996~98년, 이 기간 동안 호나우두가 보여준 놀라운 활약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호나우두를 지단보다 높게 평가하며 간혹 역대 최고의 선수라고 평가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으로 한준희 해설위원은 둘 중 '더 위력적인 선수'의 손을 들어 호나우두를 선택했다. 한준희 해설위원 외에도 호나우두를 위로 평가하는 사람은 꽤 많은데, 특히 호나우두의 전성기에 축구를 처음 접했던 사람들이 이런 경우가 많다. 또한, 골닷컴이 선정한 1990년대 최고의 선수에서 호나우두가 1위를 차지하고, 마르카의 시대별 최고의 선수 투표 또한 호나우두가 65%를 득표하면서 28%를 득표한 지단을 크게 따돌리고 1990년대의 1인자로 선정되는 등 종합적인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중반 최고의 선수를 뽑을 때 지단이 뽑히는 경향이 조금 더 잦은 편이지만 두 선수 모두 전성기를 보낸 1990년대는 언제나 전성기가 더 강렬했던 호나우두가 1990년대를 대표하는 선수로 뽑힌다. 따라서 두 선수 모두 시대를 대표하는 선수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언제나 팀의 주인공이자 해결사 역할을 도맡아 했던 마에스트로 지단, 축구사에서 가장 강렬한 스트라이커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페노메노 호나우두.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의 시대를 대표한 두 선수. 누가 위인지는 각자의 판단에 맡긴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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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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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네딘 지단과 호나우두 중에서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중반 세계 최고의 선수는 누구인가?''''에 대한 논쟁. 다만 크루이프 vs 베켄바워나 메호대전에 비해서 조금 애매한 라이벌리이기도 하다.
메시와 호날두, 크루이프와 베켄바워 같은 경우에는 당대를 대표하는 선수 두 명을 꼽으라면 별다른 이견 없이 꼽히는 선수인 데 반해 호나우두와 지단의 경우 호나우두는 독보적인 시대의 지배자였던 기간이 있었지만 그 기간이 20대 초반 즉 무릎 부상 이전인 1996~98년에 불과하며 부상 이후에는 호나우두와 대등하거나 그 이상의 활약상을 보인 선수가 적지 않았고, 지단은 호나우두가 치명적인 부상을 겪은 이후 1인자 자리를 굳혔으나 동시대에 뛰었던 선수 중 히바우두, 루이스 피구, 마티아스 자머, 파벨 네드베드, 파비오 칸나바로, 안드리 솁첸코, 호나우지뉴, 프란체스코 토티,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 파트리크 비에이라, 데니스 베르캄프,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앨런 시어러, 라울 곤살레스, 데이비드 베컴, 티에리 앙리, 호베르투 카를루스, 파올로 말디니, 사무엘 에투, 카푸 등 개인 수상 경력이든 기량이든 압도적인 차이가 나지 않는 선수들이 많았다. 뒤집어 말해서 호나우두와 지단은 펠레와 마라도나, 메날두나 크루이프, 베켄바워, 디 스테파노처럼 오랜 기간 동안 시대의 독보적인 존재로 군림했다고 보기엔 힘들다.
또한, 오랜 시간 동안 압도적 기량을 유지하며 커리어 내내 승부를 벌인 메날두와[1] 크루이프, 베켄바워와 달리 호나우두와 지단의 경우에는 둘만의 천상계 대전이라 할 만한 시간이 길지 않았다. 아무튼 이 둘도 축구사의 다른 라이벌들 처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로가 엎치락뒤치락하는 형세를 보였는데, 98월드컵 결승 이전에는 호나우두가 압도적인 주목을 받았지만 결승에서 지단이 2골을 터트릴 동안 호나우두는 프랑스 철의 포백[2] 을 넘지 못하며 3대0이라는 충격적 결과가 나왔다.[3] 이어서 지단이 유로우승까지 차지하며 축구계 최정상으로 단숨에 올라갈 동안 호나우두는 98월드컵의 충격적 패배에 이어 99년 선수생명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무릎 부상까지 발발하며 지단이 월드컵-유로우승을 연달아 해내는걸 지켜봐야 했다. 그러나 호나우두 역시 이걸로 끝이 아니라는 듯 부상의 후유증을 이겨내고 복귀하여 2002 월드컵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우며 득점왕+우승을 모두 차지하는 기염을 토해낸다. 이때 지단은 본인의 다리부상과 팀의 형편없는 조직력[4] 이 겹쳐져 조별리그에서 탈락한다. 하지만 그 후로 지단의 철저한 자기관리에 비해 호나우두는 방탕한 생활+무릎부상 재발의 콤보로 호나우두의 기량이 지단에게 비하기 초라할 정도로 급하락하여 06월드컵에서 다시 한번 벌어진 맞대결에서 또 호나우두가 참패했다. 이것은 이 라이벌리를 더욱 애매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하지만 이 둘은 사람들에게 흥미로운 비교거리로 여겨지며 실제로 여러 언론사에서 꽤 많이 비교되는데, 그 이유는 이 둘이 국가대표로서, 특히 세계 최고의 축구대회인 FIFA 월드컵에서 오랜 기간 동안 엄청난 족적을 남기며 각국을 이끌고 경쟁해왔기 때문이다. 한 세기 가까이 되는 월드컵 역사에서 이 둘만큼 훌륭한 활약을 한 선수는 매우 적다.[5]
2. 상세
세계 축구계에 먼저 이름을 떨친 것은 호나우두였다. 94-95 시즌 에레디비시의 PSV로 이적하자마자 32경기 30골을 몰아치며 득점왕을 차지한다. 당시 에레디비시는 유럽에서 빅리그급으로 꼽히는 수준이었다. 호나우두는 이런 PSV에서의 훌륭한 활약을 바탕으로 4살 많은 지단보다 먼저 발롱도르 유효표를 받았다. 1995년 발롱도르 26위에 이름을 올린 것이었다. 지단도 94년즈음부터 리그앙 신인상을 차지하는 등 프랑스에서 주목받는 수준의 선수까지 올라왔으나 유럽에서 손꼽히는 신성이었던 호나우두가 우위에 있었다.
지단은 1996년이 되어서 월드클래스라 불릴만한 활약을 펼쳤다. 95-96 시즌 팀의 에이스급으로 성장한 지단은 유럽대항전에서도 활약했고 리그앙 MVP로 선정되었고, 1996년 발롱도르 28위에 오른다. 하지만 당시의 호나우두는 지단보다 훨씬 앞서나갔다. 호나우두는 1996년 FIF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였으며, 발롱도르 투표에서는 마티아스 잠머를 제치고 발롱도르를 수상할 뻔했다. 만 20세의 선수가 최다 1위표를 득표하고 단 1점 차이로 발롱도르를 놓쳤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매우 놀라웠다. 호나우두는 기세등등하게 활약을 이어나갔고 97 코파 아메리카에서 대회 MVP를 차지할 정도로 좋은 경기력으로 브라질을 우승으로 이끈다. 이런 활약을 바탕으로 1997년에는 압도적인 점수로 발롱도르와 FIFA 올해의 선수상도 차지했으며, 단 22살의 나이로 펠레와 마라도나에 비견되며 이들의 반열에 오를 것이라는 기대를 함께 받고 있었다. 같은 해의 지단은 유벤투스에서 다비즈, 데샹과 함께 훌륭한 중원을 이루었고 세계적으로 뛰어난 미드필더로 꼽혔지만 호나우두의 활약에 비교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래도 발롱도르, 피올 모두 3위에 올랐다.
1998년은 두 선수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해였다. 호나우두는 인테르에서, 지단은 유벤투스에서 97-98시즌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그리고 세계 최고의 대회인 월드컵이 기다리고 있었다. 호나우두는 당시 세계 최고의 선수로 널리 인정받던 선수답게 원숙한 기량을 선보이며 파죽지세로 브라질을 결승까지 이끌었다. 지단 또한 준수한 활약[6] 으로 프랑스의 결승행에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결승전의 날이 밝았다. 결승전 직전 갑자기 호나우두가 선발 명단에서 제외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이후 전 세계가 호나우두를 주목했으나 그는 곧 경기장에 합류하였다.[7] 이날은 브라질에게 두고두고 기억될 뼈아픈 날이었다. 지단을 타겟맨으로 하여 세트 피스 전술을 철저히 준비한 프랑스에게 완전히 압도당했고, 호나우두와 호베르투 카를루스가 릴리앙 튀랑을 중심으로 하는 프랑스 철의 포백에게 가로막혀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할때 지단은 헤딩으로 2골이나 넣으며 그대로 3:0, 프랑스가 완승했다. 결승전 이전에 시행된 대회 최우수 선수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해 골든볼을 받은건 호나우두였지만[8] 결승전에서는 지단이 2골이나 기록하며 우승을 이끈 것이다. 호나우두와 지단은 나란히 대회 베스트팀에 포함되었다. 연말에 실시된 FIFA 올해의 선수상 투표와 발롱도르 투표에서는 지단이 1위를 차지했다. 호나우두는 FIFA 올해의 선수 2위, 발롱도르 3위를 차지했다. 지단과 호나우두의 라이벌리가 월드컵 결승전이라는 궁극의 무대에서 제대로 불붙었던 시즌이다.
호나우두는 1998년 월드컵 결승전에서의 부진 이후 슬럼프에 빠졌다. 슬럼프에 빠져 있는 상태에서 1998-99시즌이 시작되었고, 호나우두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부상까지 당했다. 이전에도 부상이 몇번 있었지만 99년에 당한 부상은 선수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큰 부상이었고, 결국 시즌의 절반 가까이를 날려먹으며 많은 비판과 비난을 받아야 했다. 지단 역시 1999년에는 특별한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며 발롱도르 19위에 그쳤다. 호나우두는 23위를 기록했다. 호나우두는 1999년 11월 21일 경기에서 무릎 부상을 당했는데, 2000년 4월에 펼쳐진 5개월만의 복귀전에서 드리블을 하다가 3분만에 부상이 재발해 경기장에 그대로 쓰러졌다. 호나우두는 그 부상으로 인해 2002년 봄까지 경기장에 돌아오지 못했다.
호나우두가 없는 축구계는 지단 천하였다. 2000년의 지단은 그야말로 커리어의 피크를 맞았는데 98월드컵 우승에 이어 UEFA 유로에서도 프랑스를 이끌고 우승하며 대회 MVP까지 차지한 것이다. FIFA 올해의 선수상을 받은 것은 물론이요 2000년 발롱도르 1위 루이스 피구와 적은 차이로 발롱도르 2위에 오르는 등 절정의 활약을 보여주며 세계 최고의 선수로 올라섰다. 이듬해인 2001년에도 지단은 기량을 잘 유지하며 발롱도르 9위에 올랐다.
2002년 봄, 1년 반이 넘는 긴 재활치료를 마치고 호나우두가 그라운드에 돌아왔다. 리그경기에 조심조심 복귀한 그는 월드컵에 맞춰 기량을 끌어올렸다. 지단도 월드컵을 잘 준비했다. 하지만 지단은 대한민국과의 평가전에서 부상을 당했다. 양 팀 에이스의 존재 여부는 곧 각 팀의 희비와 같았다. 지단이 없는 프랑스는 비극을 맞았다. 비교적 약체인 세네갈, 우루과이, 덴마크와 한 조에 속했음에도 불구하고 1무 2패라는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며 조별리그부터 짐을 쌌다. 반면에 호나우두가 돌아오고 히바우두와 호나우지뉴까지 있는 브라질은 엄청났다. 거기에 좋은 대진운이 겹치며[9] 무난하게 결승에 진출했고, 독일과의 결승전에서 호나우두가 히바우두의 기막힌 어시스트에 힘입어 올리버 칸이 지키는 골문에 2골을 넣음으로서 브라질의 5번째 월드컵 우승을 이끈다. 호나우두는 8골을 넣으며 득점왕에 올랐고, 대회 실버볼도 차지했다. 결국 호나우두는 월드컵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개인 통산 3번째 FIFA 올해의 선수상과 두 번째 발롱도르를 거머쥔다. 지단은 레알 마드리드에서의 활약이 워낙 뛰어났던 덕에 발롱도르 4위에 올랐지만 부상으로 월드컵에서 한 경기도 뛰지 못했다는 것이 못내 아쉬울 것이다. 호나우두가 울고 지단이 웃었던 98년 월드컵과 달리 이번에는 결과가 반대로 나온 셈.
2002년. 호나우두는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여 지단과 함께 뛰게 되었는데, 호나우두는 2002-2003시즌까지는 라리가에서 23골을 기록하는 등 활약했지만 이전의 호나우두가 가지고 있었던 다이나믹한 드리블은 부상의 영향으로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고, 호나우두의 실력 또한 해를 거듭할수록 빠르게 하락했다. 2004년, 2005년에는 발롱도르 후보에 언급만 되었을 뿐 유효표를 받지도 못했다. 반면 지단은 나이가 더 많음에도 상당히 뛰어난 기량을 유지하며 호나우두가 2003년 발롱도르 11위를 기록할 때 본인은 5위를 기록했고 개인 통산 세 번째 FIFA 올해의 선수상까지 받았다. 2004년과 2005년에는 노쇠화가 눈에 띄긴 했으나 여전히 월드 클래스의 기량을 유지했다.
2006년 월드컵은 지단의 커리어 마지막 대회이자 월드컵이면서 호나우두에게도 특별히 중요한 월드컵이었다. 당시 월드컵 개막식 날을 기점으로 보면 지단은 만 33세[10] , 호나우두는 만 29세로 둘 다 전성기 기량에서 꽤나 벗어나 있는 상태였다. 지단은 나이 때문에, 호나우두는 부상 때문이었다. 호나우두와 지단 모두 조별리그를 이겨내고 16강에 진출, 16강에서도 두 선수 모두 골을 터트리며 팀을 8강으로 올린다. 그런데 프랑스와 브라질이 98년 월드컵 결승 이후 8년만에 월드컵에서 다시 만나버렸다. 두 팀 모두 우승후보였지만 언론은 판타스틱 4가 포진하고 있는 브라질의 우세를 점쳤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웬걸? 지단이 마치 회춘이라도 한 것처럼 중원을 장악하며 브라질을 가지고 노는 것이 아닌가? 반면에 호나우두를 필두로 한 브라질의 판타스틱 4는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했다. 결국 지단의 어시스트를 받은 앙리의 결승골로 프랑스가 승리했고, 호나우두와 브라질은 98월드컵 결승전의 설욕에 실패한다. 호나우두의 월드컵 커리어도 여기서 끝.[11] 반면에 지단은 준결승에서도 PK 결승골을 성공시키며 또 한 번 월드컵 결승에 오르게 되었다. 이탈리아를 상대로 맞이한 결승에서도 주인공은 지단이었다. 부폰을 속이는 멋진 파넨카 킥으로 PK 선제골을 성공시켰다. 1:1로 정규시간이 끝나고 진행된 대회 최우수 선수 투표에서 1위를 한 것은 다름아닌 지단이었다. 연장 전반에도 결정적인 헤더로 이탈리아의 골문을 위협한 지단은 그러나 연장 후반 마르코 마테라치의 도발에 넘어가서 그를 머리로 들이받아 퇴장 당하는 희대의 사건을 일으킨다. 그것이 결국 프랑스의 승부차기 패배로까지 이어지면서 그날 언론의 먹잇감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무려 월드컵 결승전을 은퇴무대로 삼아 멋진 퍼포먼스를 보여주었으며 대회 내내 훌륭한 경기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월드컵 골든볼을 수상함에 이어 2006년 FIFA 올해의 선수 2위, 발롱도르 5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이후 지단은 선수 은퇴를 선언했고 호나우두는 세계 최고의 선수 반열에서 멀어져 발롱도르 후보 50인에 오르지 못했다. 그래서 2006년을 마지막으로 둘의 시대는 완전히 막을 내렸다.
3. 두 선수의 팀 커리어 비교
3.1. 지네딘 지단
- FC 지롱댕 드 보르도 (1992~1996)
- UEFA 인터토토컵: 1995
- 유벤투스 FC (1996~2001)
- 세리에 A: 1996-97, 1997-98
-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1997
- UEFA 인터토토컵: 1999
- UEFA 슈퍼컵: 1996
- 인터컨티넨탈컵: 1996
- 레알 마드리드 CF (2001~2006)
- 라리가: 2002-03
-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2001, 2003
- UEFA 챔피언스 리그: 2001-02
- UEFA 슈퍼컵: 2002
- 인터컨티넨탈컵: 2002
3.2. 호나우두
- FC 바르셀로나 (1996~1997)
- 코파 델 레이: 1996-97
-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1996
- UEFA 컵 위너스컵: 1996-97
-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1997~2002)
- UEFA컵: 1997-98
- 레알 마드리드 CF (2002~2007)
- 라리가: 2002-03
-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2003
- 인터컨티넨탈컵: 2002
- SC 코린치안스 (2009~2011)
-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2009
- 코파 두 브라질: 2009
-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 FIFA 월드컵 우승: 1994, 2002, 준우승: 1998
-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97, 1999, 준우승: 1995
-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우승: 1997
- 올림픽 축구 동메달: 1996
4. 두 선수의 개인 커리어 비교
4.1. 지네딘 지단
- 발롱도르: 1998
- FIFA 올해의 선수: 1998, 2000, 2003
- 월드 사커 올해의 선수: 1998
- 옹즈도르: 1998, 2000, 2001
- FIFA 100: 2004
- FIFA FIFPro 월드 XI: 2005, 2006
- FIFA 월드컵 골든볼: 2006
- FIFA 월드컵 올스타팀: 1998, 2006
- UEFA 올해의 클럽 축구 선수: 2001-02
- UEFA 올해의 클럽 미드필더: 1997-98
- UEFA 올해의 팀: 2001, 2002, 2003
- UEFA 유로 MVP: 2000
- UEFA 유로 토너먼트의 팀: 2000, 2004
- UEFA 유로 올타임 XI: 2016
-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맨 오브 더 매치: 2002
- 라리가 최우수 외국인 선수[12] : 2001-02
- 세리에 A 올해의 선수: 2000-01
- 세리에 A 올해의 외국인 선수: 1996-97, 2000-01
- 세리에 A 도움왕: 2000-01
- 세리에 A 역대 베스트 XI: 2015
- 리그 1 올해의 선수: 1995-96
- 리그 1 올해의 영 플레이어: 1993-94
- UEFA 올해의 궁극적인 팀: 2015
- UEFA 50주년 유럽 최고의 선수: 2004[13]
- 옹즈 드 옹즈: 1996, 1997, 1998, 2000, 2001, 2002, 2003, 2006
- 프랑스 올해의 선수: 1998, 2002
- 엘 파이스 유럽 올해의 선수: 1998, 2001, 2002, 2003
- 레알 마드리드 명예의 전당: 2006
- 마르카 레알 마드리드 역대 UCL 베스트 XI: 2018
- 마르카 레알 마드리드 역대 베스트 XI: 2012, 2017
- 유벤투스 역대 베스트 XI: 2017
- 월드 사커 역대 베스트 XI: 2013
- FIFA XI: 1997, 1998, 2000, 2002
- ESM 올해의 팀: 1997-98, 2001-02, 2002-03, 2003-04
- 레키프 프랑스 역대 최고의 선수: 2018
- 레키프 프랑스 역대 베스트 XI: 2018
- 레키프 챔피언 중의 챔피언: 1998
- UNFP 명예 트로피: 2006
- IFFHS 세계 최우수 플레이메이커: 2006
- IFFHS 레전드: 2016
- 골든풋: 2008
- 마르카 레전드: 2008
- 돈 발론 2000년대 베스트 XI: 2010
- ESPN 2000년대 베스트 XI: 2009
4.2. 호나우두
- 발롱도르: 1997, 2002
- FIFA 올해의 선수: 1996, 1997, 2002
- 월드 사커 올해의 선수: 1996, 1997, 2002
- 옹즈도르: 1997, 2002
- FIFA 100: 2004
- FIFA 월드컵 골든볼: 1998
- FIFA 월드컵 실버볼: 2002
- FIFA 월드컵 골든슈: 2002
- FIFA 월드컵 브론즈슈: 2006
- FIFA 월드컵 도움왕: 1998
- FIFA 월드컵 올스타팀: 1998, 2002
- FIFA 월드컵 결승전 맨 오브 더 매치: 2002
- FIFA 월드컵 역대 드림팀: 2002
-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브론즈슈: 1997
- 코파 아메리카 MVP: 1997
- 코파 아메리카 득점왕: 1999
- UEFA 올해의 클럽 축구 선수: 1997-98
- UEFA 올해의 클럽 공격수: 1997-98
- UEFA 올해의 팀: 2002
- UEFA컵 결승전 맨 오브 더 매치: 1998
- UEFA 컵 위너스컵 득점왕: 1996-97
- UEFA 컵 위너스컵 결승전 맨 오브 더 매치: 1997
- 인터컨티넨탈컵 맨 오브 더 매치: 2002
- 유러피언 골든슈: 1996-97
- 에레디비시 득점왕: 1994-95
- 라리가 득점왕: 1996-97, 2003-04
- 라리가 최우수 외국인 선수[14] : 1996-97
- 세리에 A 올해의 선수: 1997-98
- 세리에 A 올해의 외국인 선수: 1997-98
- 세리에 A 역대 베스트 XI: 2015
- 수페르코파 수다메리카나 득점왕: 1994
- 수페르코파 수다메리카나 올해의 팀: 1994
- 캄페오나투 미네이루 득점왕: 1994
- 캄페오나투 미네이루 올해의 팀: 1994
-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MVP: 2010
-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 2006
- 이탈리아 축구 명예의 전당: 2015
- 레알 마드리드 명예의 전당: 2011
- 인터 밀란 명예의 전당: 2018
- 인터 밀란 올해의 선수: 1998
- 옹즈 드 옹즈: 1997, 1998, 2002, 2003
- BBC 올해의 해외 스포츠 스타: 2002
- 프랑스 풋볼 역대 베스트 XI: 2007
- ESM 올해의 팀: 1996-97, 1997-98
- lFFHS 세계 최고 득점자: 1997
- lFFHS 최고의 골: 1997
- 골든풋: 2006
- 마르카 레전드: 2011
- 브라보상: 1997, 1998
- 트로페오 EFE: 1996-97, 2003-04
- FIFA XI: 1997, 1998
- IFFHS 레전드: 2016
- 글로브 사커 어워드 선수 경력 상: 2018
- 돈 발론 2000년대 베스트 XI: 2010
5. 당대의 평가
[image]
축구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상인 발롱도르는 축구선수의 당대 평가를 엿볼 수 있는 유용한 지표이기도 하다. 지단과 호나우두의 발롱도르 투표 결과 역시 이 둘의 위상 변화를 잘 보여주고 있다. 위 그래프를 보면, 호나우두의 임팩트가 확실히 강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2000년의 부상 이후에는 2002년에 딱 한 번 부활하는 데 그쳤으며, 그 후로 기량이 빠르게 낮아졌다는 것도 알 수 있다. 호나우두는 막 30대에 접어든 2006년부터 단 한 번도 발롱도르 후보에조차 언급되지 못했다. 반면 지단은 꾸준히 상위권을 기록하는 경향을 보인다. 1998년에 정점을 기록한 후에도 순위가 그다지 떨어지지 않으며, 2006년에는 자신이 은퇴하는 시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5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15][16]
당대를 뛴 선수와 감독들은 이 두 선수를 고르게 치켜세우며, 호나우두는 지단을, 지단은 호나우두를 자신이 본 최고의 선수로 언급한 바 있다. 막상막하, 용호상박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두 선수이다.
6. 후대의 평가
17/18시즌 중에 나온 언론사 순위 (2017년 6월~2018년 3월)
- 지단 - 포포투 8위, 부트발 8위, MEDIUM 10위, sporteology 4위, sportskeeda 3위, IN60 4위, total sportek 5위, pledgesports 6위, thoughtco 10위권 밖, timesoccer 7위, 90min 6위
- 호나우두 - 포포투 10위, 부트발 6위, MEDIUM 11위, sporteology 10위권 밖, sportskeeda 8위, IN60 10위권 밖, total sportek 10위권 밖, pledgesports 7위, thoughtco 10위권 밖, timesoccer 10위, 90min 7위
- 지단 - sportmob 8위, 포포투 8위, AS 10위권 밖, sportskeeda 5위, thedelete 10위권 밖, sportsshow 4위, one37pm 8위, 스포츠풋볼&프랑스풋볼 7위, sportytell 5위
- 호나우두 - sportmob 10위권 밖, 포포투 10위, AS 6위, sportskeeda 8위, thedelete 4위, sportsshow 10위권 밖, one37pm 5위, 스포츠풋볼&프랑스풋볼 5위, sportytell 6위
후대의 평가는 서로 엎치락뒤치락하는 경향을 보인다. 물론 전성기는 호나우두가 더 강렬했으나 그 기간이 매우 짧으며 부상 이후론 그 기량을 다시는 못 보여준 반면에 지단은 호나우두의 전성기 때는 호나우두에게 밀렸지만 호나우두의 부상 이후 압도적이지는 않더라도 대외적인 1인자 자리를 꾸준히 유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커리어를 월드컵 준우승과 골든볼로 멋지게 마무리 짓고 호나우두와의 월드컵 맞대결[17] 에서 두 번 모두 완승을 거두었으며, 같은 레알 마드리드 소속 시절 지단이 차지하는 비중이 호나우두보다 더 컸다는 점에서 종합적인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중반 최고의 선수를 뽑을 때 지단이 뽑히는 경향이 조금 더 잦은 편이다.[18] 게다가 최근 언론사에서 선정한 랭킹에서도 지단의 순위가 호나우두보다 약간 앞서 있다.
그러나 1996~98년, 이 기간 동안 호나우두가 보여준 놀라운 활약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호나우두를 지단보다 높게 평가하며 간혹 역대 최고의 선수라고 평가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으로 한준희 해설위원은 둘 중 '더 위력적인 선수'의 손을 들어 호나우두를 선택했다. 한준희 해설위원 외에도 호나우두를 위로 평가하는 사람은 꽤 많은데, 특히 호나우두의 전성기에 축구를 처음 접했던 사람들이 이런 경우가 많다. 또한, 골닷컴이 선정한 1990년대 최고의 선수에서 호나우두가 1위를 차지하고, 마르카의 시대별 최고의 선수 투표 또한 호나우두가 65%를 득표하면서 28%를 득표한 지단을 크게 따돌리고 1990년대의 1인자로 선정되는 등 종합적인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중반 최고의 선수를 뽑을 때 지단이 뽑히는 경향이 조금 더 잦은 편이지만 두 선수 모두 전성기를 보낸 1990년대는 언제나 전성기가 더 강렬했던 호나우두가 1990년대를 대표하는 선수로 뽑힌다. 따라서 두 선수 모두 시대를 대표하는 선수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언제나 팀의 주인공이자 해결사 역할을 도맡아 했던 마에스트로 지단, 축구사에서 가장 강렬한 스트라이커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페노메노 호나우두.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의 시대를 대표한 두 선수. 누가 위인지는 각자의 판단에 맡긴다.
[1] 특히 메날두는 10년이나 둘만의 천상계 대전을 펼쳤을 정도였다. 아예 이 둘을 논외로 하고 '인간계 최강'을 가리자는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다시 말하지만 1~2년이 아니라 10년을 그랬다.[2] 월드컵 역사상 가장 강력한 수비진 중에 하나로 꼽힌다[3] 결승 전까지만 해도 대회 최고의 활약을 펼친 슈퍼스타는 호나우두였고 지단은 준수한 경기력을 보이긴 했으나 레드카드를 받아 아예 경기에 못나올때도 있는 등 여러모로 힘든 상황이었다. 그러나 결승에서 두 선수의 운명이 뒤바뀐다.[4] 프랑스 국대의 고질병이다.[5] 월드컵에서 뛴 모든 선수 중 일반적으로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거나 더 위로 평가받는 선수는 몇 없다. 메아차, 가린샤, 펠레, 베켄바워, 마라도나 정도가 이들과 동일선상에 놓이거나 더 우위로 놓일 수 있을 것이다. 펠레는 3번의 월드컵 중 1번은 조별리그 2번째 경기에서 부상을 당해 나머지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지만 무려 2번의 월드컵에서 MVP급 퍼포먼스로 활약했으며, 3번이나 조국을 우승시켰다. 마라도나와 같은 경우에는 1982 월드컵에선 다소 아쉬운 결과를 냈지만 1986 월드컵에서 역사상 최고의 단일 국제 대회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사실상 혼자의 힘으로 조국을 우승시켰고, 1990 월드컵 또한 MVP급 퍼포먼스로 결승전에 진출했으나 준우승에 그치고 만다. 주세페 메아차는 초창기 월드컵 2연패를 이끌었지만, 첫 월드컵은 부정우승이라는 약점이 있다. 가린샤는 펠레가 부재했던 월드컵에서 하드캐리를 하며, 팀의 우승을 이끌면서 본인은 골든슈와 골든볼을 수상하였고, 베켄바워는 21살로 출전한 월드컵에서 브론즈슈와 신인상을 수상하며 준우승, 두번째 월드컵에서 3위, 세번째 월드컵에서 실버슈를 수상하며 우승을 차지했으며 3대회 모두 베스트 11에 뽑혔다. 이외에도 단일 대회 퍼포먼스로 호나우두와 지단에게 우위를 점하는건 전 세계에 파장을 일으키며 1974 월드컵을 지배한 요한 크루이프 등이 있겠으나 크루이프는 결국 우승하지 못했고, 두 번의 월드컵에서 모두 MVP급 퍼포먼스로 결승에 진출시킨건 펠레와 마라도나, 가린샤, 메아차, 베켄바워를 제외하면 호나우두와 지단밖에 없다.[6] 경기력 자체는 좋았으나 결과적으로 결승 이전까지 지단이 활약했다고 보긴 힘들다. 조별리그 2차전에서 퇴장당해 무려 2경기 출장정지를 받아 조별리그 3차전과 16강전에 아예 출전하지도 못했다. 때문에 결승 이전까지 프랑스의 선전에 크게 기여한 바는 없었다. 물론 결승전에서 진가를 발휘하지만...[7] 호나우두가 선발 명단에서 제외되었던 것은 파라소니아라는 수면 중 몸을 떠는 몽유병과 비슷한 증세를 동료들이 간질발작으로 오해했기 때문이었다.[8] 이 시절에는 대회 최우수 선수를 결승전 이전에 투표했었다[9] 중국,터키,코스타리카,벨기에 등 브라질 국대사상 역대급 꿀대진으로 불린다. 다만 8강의 잉글랜드는 상당한 강팀답게 꽤나 브라질을 고전시켰으며 호나우두 역시 전경기 골을 기록하다가 잉글랜드 상대로는 골을 넣지 못했다[10] 지단의 생일은 6월 23일이라 조별리그를 통과한 시점에서 34세가 된 상태였다.[11] 그래도 호나우두도 총 3골로 브론즈슈를 수상해 빈손으로 돌아가지는 않았다.[12] 돈 발론 어워드[13] 123,582표를 받으며 프란츠 베켄바워와 요한 크루이프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14] 돈 발론 어워드[15] 4위 호나우지뉴와 2점 차이, 6위 에투와 4점 차이로 5위를 차지했다.[16] 당시 발롱도르와 비슷한 위상을 지녔던 FIFA 올해의 선수상 같은 경우는 칸나바로의 뒤를 이어 2위를 차지했다.[17] 1998 월드컵 결승전, 2006 월드컵 8강전[18] 센추리 클럽 멤버인 지단과 달리 호나우두는 2경기 차이로 입성하지 못한 부분도 있긴 있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