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음태양력
1. 개요
太陰太陽曆. 태음태양력이란 태양의 겉보기 운동을 기반으로 하여 정해진 역법 체계인 태양력과 달의 운행을 기초로 하여 정해진 역법 체계인 태음력을 혼용한 역법체계이다.
2. 특징
태양과 달의 움직임을 모두 고려해서 만든 달력으로, 날은 달의 삭망월을 기준으로 하되 계절의 변화는 태양의 주기로 맞추었다.
순수 태음력과의 가장 대표적인 차이는 윤달로, 순수 태음력과 달리 계절의 변화를 맞추기 위해서 특정한 시기에 13번째 달을 넣은 것이다. 또 24절기 또한 계절의 변화가 태양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태양의 황경을 따라서 제정한 것이다.
3. 종류
3.1. 동아시아
3.1.1. 중국
흔히들 한국에서 전통 달력을 음력이라고 하지만, 엄밀히는 태음태양력을 말한다. 현대에도 한국, 중국, 베트남, 오키나와는 이 태음태양력을 기준으로 명절을 쇤다.
중국의 상나라 때부터 윤달을 사용한 기록이 있는 것을 통해 매우 오래전부터 태음태양력을 적용해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춘추전국시대 때 천문학이 발전하면서 메톤 주기가 발명되는 등 비약적인 성과가 있었다. 그리고 이들이 사용한 달력은 한국, 일본, 베트남과 같은 한자 문화권으로 퍼져나갔다.
명나라 말기에 예수회 선교사들이 선교를 목적으로 상류층에게 접근했을 때 중국에서 역법이 중시된다는 것을 알고 숭정제 때 마테오 리치가 아담 샬을 불러들여 가며 숭정력을 만들었지만 반포되기도 전에 명나라가 멸망해서 청나라 때 시헌력이라는 이름으로 반포된다. 시헌력은 과거의 오차를 상당히 수정했으며, 케플러의 법칙까지 받아들여 정밀성을 높였다. 현대 사용되는 동아시아의 태음태양력은 시헌력이다.
제후국은 중국의 천자가 만든 달력을 받아 사용해야 했고, 하늘을 보고 관장하는 것은 천자의 영역이었기 때문에 본래 타국에서는 만들 수 없었지만, 인프라가 좀 자리잡힌 나라들은 자국 실정에 맞춰서 멋대로 마개조를 했다. 물론 중국에게는 비밀이었는데 세종 시대에 개발한 칠정산 역법을 선조 시대 때 명나라 눈치 때문에 제정을 그만두거나 효종 때 관리들에게 뇌물을 쥐어가면서 시헌력을 밀수해 사용한 게 그 때문이다.
계절의 변화를 알기 위해서 태양력의 원리를 이용해 24절기를 개발했으며, 춘추시대까지는 춘추春秋의 개념밖에 없다가 나중에 하동의 개념이 생겼다고 한다. 이 중 여름夏은 본래 고대국가 하나라에서 따온 이름이다. 십이지는 상나라 이전부터 존재했기에 달에 십이지를 넣는 개념은 그 시대부터 존재하였다.
봄
맹춘(孟春) : 초봄, 이른 봄, 음력 정월, 초춘(初春), 조춘(早春).
맹하(孟夏) : 초여름, 음력 사월, 초하(初夏)
맹추(孟秋) : 초가을, 음력 칠월, 초추(初秋), 신추(新秋).
맹동(孟冬) : 초겨울, 음력 시월, 조동(早冬)
여름
중춘(仲春) : 봄이 한창인 때, 음력 이월, 중양(仲陽).
중하(仲夏) : 한여름, 음력 오월.
중추(仲秋) : 가을이 한창인 때, 음력 팔월, 중상(仲商). cf:중추(仲秋): 한가위.
중동(仲冬) : 한겨울, 동짓달.
가을
만춘(晩春) : 늦봄, 계춘(季春), 모춘(暮春), 잔춘(殘春).
만하(晩夏) : 늦여름, 계하(季夏), 잔하(殘夏).
만추(晩秋) : 늦가을, 계추(季秋), 모추(暮秋), 잔추(殘秋).
겨울
만동(晩冬) : 늦겨울, 섣달, 모동(暮冬), 계동(季冬).
성하(盛夏) : 한여름
성동(盛冬) : 한겨울
1월 : 인월(寅月), 정월(正月), 원월(元月), 개세(開歲), 맹춘(孟春).
2월 : 묘월(卯月), 여월(如月), 영월(令月), 화경(華景), 화월(花月), 중양(仲陽), 중춘(仲春)
3월 : 진월(辰月), 가월 (嘉月), 도월(桃月), 희월(喜月), 앵월(櫻月), 혜풍(惠風), 계춘(季春), 만춘(晩春), 모춘(暮春), 잔춘(殘春), 혜풍(惠風).
4월 : 사월(巳月), 등월(燈月),여월(余月), 조하(肇夏), 하반(夏半), 음월(陰月). 맹하(孟夏)
5월 : 오월(午月), 우월(雨月), 중하(仲夏), 미음(微陰).
6월 : 미월(未月), 모하(暮夏), 만하(晩夏), 선우―월(蟬羽月), 계하(季夏), 잔하(殘夏).
7월 : 신월 (申月), 난월(蘭月), 난추(蘭秋), 상추(上秋), 신추(新秋), 오추(梧秋), 조추(肇秋), 맹추(孟秋), 초추(初秋).
8월 : 유월 (酉月), 계월(桂月), 계추(桂秋), 수성(壽星), 영한(迎寒), 장월(壯月), 청추(淸秋), 중추(仲秋), 중상(仲商).
9월 : 술월(戌月), 계추(季秋), 만추(晩秋), 모추(暮秋), 잔추(殘秋), 양추(凉秋), 현월(玄月), 중양(重陽).
10월 : 해월(亥月), 양월(良月·陽月), 소춘(小春), 상동(上冬), 방동(方冬), 맹동(孟冬), 응종(應鐘)
11월 : 동짓달(冬至―), 자월(子月), 창월(暢月), 지월(至月), 중동(仲冬)
12월 : 섣달, 제월(除月), 사월(蜡月), 축월(丑月),가평(嘉平), 극월(極月), 납월(臘月)
역법에 관한 옛 문헌에 보면 매번 되풀이되는 월별 명칭을 여러 가지로 다르게 부르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그 예를 들어보면 정월正月을 맹춘孟春, 2월을 중춘仲春, 3월을 계춘季春, 4월을 맹하孟夏, 5월을 중하仲夏, 6월을 계하季夏, 7월을 맹추孟秋, 8월을 중추仲秋, 9월을 계추季秋, 10월을 계동孟冬, 11월을 중동仲冬, 12월을 계동季冬이라고 했다. 또 한 해의 첫째 달이라는 뜻에서 1월을 정월, 마지막 달이라는 뜻으로는 섣달이 사용된다.
그런데 11월을 특별히 동짓달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 달에 동지가 들어있기 때문인데, 양易의 이치로 보면 동지는 음양의 교차점이니, 비로소 음이 가득하여 지극한 이때 하나의 양이 자라나는 시점이 된다고 하여 사실상의 한 해가 시작되는 날로 여겼다. 중국 역법의 계산 기준점이 춘분이 아니라 동지가 된 것은 이 때문이다.
앞의 월별 명칭 가운데 맹孟·중仲·계季는 일년 12달을 봄·여름·가을·겨울의 4계절로 구분했을 때 하나의 계절 속에 들어 있는 3개의 달수를 초初·정正·만晩의 명칭과 함께 세분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기의 운행이 변하는 기준점을 나타내는 바 그 변화가 보여주는 자연의 조화를 음률로 나타낸 것이 바로 12율려律呂다. 한서漢書 율력지律曆志에 의하면 황종黃鐘은 자월子月을 천정天正으로 하고 림종월林鐘月은 미월未月의 충에 해당하는 맞은편의 축월丑月을 지정地正으로 하고 천족월太簇月은 인월寅月을 인정人正으로 한다는 뜻이 기록으로 나타나 있다. 이 구절의 천정天正·지정地正·인정人正의 삼원三元은 천지·만물을 구성하는 양易의 삼재三才를 말한다.
시대에 따라서 역법을 편찬할 때 하늘 중심으로 세상을 이해한다면 고대 하나라처럼 한 해 첫머리인 세수歲首(해의 첫머리, 설)를 자월子月에 두게 될 것이고, 땅 중심으로 세상을 이해한다면 상나라처럼 한 해 첫머리인 세수歲首를 축월丑月에 두게 될 것이며 사람 중심으로 세상을 이해한다면 고대 주나라처럼 한해 첫머리인 세수歲首를 인월寅月에 두게 될 것이다. 이것은 물론 한 해의 순환하는 단위를 12지지地支로 접근했을 때 생겨나는 명칭이다. 한무제 시절 인월을 정월로 고정하면서 우리가 아는 동아시아의 달이 완성된다.
- 계절의 변화를 드러낸 명칭 : 모춘(暮春)·전춘(殿春)·여하始夏·유하維夏·신하新夏·입하立夏·계하(槐夏)·맥추(麥秋)·모추(暮秋)·잔추(殘秋)·고추(高秋)·입동(立冬)·소춘(小春)·상동(上冬)·조동(肇冬)·모동暮冬·궁동(窮冬) 등
- 음양의 기운을 근거로 한 명칭 : 청양(靑陽)·맹양(孟陽)·재양(載陽)·재양(災陽)·중양(仲陽)·건월乾月·복월(復月)·양복(陽復)·구월姤月 등
- 식물의 발육을 근거로 한 명칭 : 개나리 진달래 등이 피는 것을 반영한 화월花月·매화와 관련된 매월梅月, 매하梅夏, 매천梅天·류월(榴月)·무성한 창포잎을 대신한 포월(蒲月)·오동나무와 오이의 발육에 근거한 동월(桐月)과 과월(瓜月)·국화꽃의 향기로움이 반영된 국월(菊月) 등
- 동물의 활동을 근거로 한 명칭 : 누에 치는 달을 뜻하는 잠월(蠶月)·메추라기와 매미의 출현이 반영된 순월(鶉月)·조월蜩月·명조(鳴蜩)·선월(蟬月)·안월(雁月) 등
- 낮과 밤 동안에 생겨나는 해 그림자를 기준으로 생겨난 명칭 : 하지(夏至)·장지長至·지월(至月)·남지(南至) 등
- 기온과 강수량에 관련된 명칭 : 청명淸明·곡우穀雨·중화中和·복월伏月·류월流月·우월雨月·소서(小暑)·양월(凉月)·랭월冷月·류화流火·처서(處暑)·한단(寒旦)·白露·상진(霜辰)·수의(授衣)·엄월(嚴月)·납월臘月·사월(蜡月)·除月·수월氷月 등
- 달빛의 상태를 반영한 명칭 : 여월如月·령월(令月)·려월(麗月)·대장월(大壯月)·교월(巧月)·가월(佳月)·장월(壯月) 등
- 팔풍의 명칭이 응용된 예 : 혜풍(惠風)·훈풍(薰風) 등
3.1.2. 한국
한국은 이미 삼국시대 때부터 태음태양력을 보편적으로 사용했으며, 중국의 달력을 가져와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신라와 고구려는 인덕력麟德曆을 사용했고 백제는 원가력元嘉曆을 사용했으며, 통일신라시대에 접어들어 대연력大衍曆이나 선명력宣明曆을 사용했다. 고려시대에도 초기에는 선명력宣明曆을 사용했고 공민왕 19년에 원으로부터 대통력을 수입해서 사용했다. 고려시대 때는 십정력(十精曆), 칠요력(七曜曆), 견행력(見行曆), 둔갑력(遁甲曆), 태일력(太一曆)과 같은 독자적인 역법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실제로 사용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조선시대 때 세종은 원나라 때부터 사용되던 대통력을 조선 실정에 최적화시킨 칠정산 역법을 편찬했고, 이게 일본에도 퍼져나가 고유의 역법을 제정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칠정산 역법은 임진왜란 때 명나라의 눈치로 역법 제정을 그만두게 된다. 이후 명나라 숭정제 때 개발된 숭정력이 청나라 때 시헌력이라는 이름으로 반포되자 효종은 시헌력을 밀수해서 현지화시켜 사용했다.
이후 개화기에 접어들어 서력기원을 원년으로 삼은 태양력(太陽曆)의 반포로 실생활에서는 잊혀지지만, 명절과 24절기는 아직 남아 현대까지 내려오고 있다.
3.1.3. 일본
일본은 1643년 조선통신사 사절중 독축관(讀祝官) 박안기에게 칠정산 계산법을 전수받고 이것을 연구하여, 1682년 시부카와 하루미(澁川春海)가 일본 최초의 역법인 정향력(貞享曆)을 완성하였다.
춘하추동을 하루春はる 나츠夏なつ 아키秋あき 후유冬ふゆ라고 불렀으며 지금도 인명에 사용되고 있다. 이외에도 계절을 뜻하는 단어로 키세츠季節きせつ(계절), 시키四季しき(사계), 간탄元旦がんたん(원일), 산분春分しゅんぶん(춘분), 슈분秋分しゅうぶん(추분), 게시夏至げし(하지), 토지冬至とうじ(동지), 츠유梅雨つゆ(장마), 하츠유키初雪はつゆき(첫눈), 인레키陰暦いんれき(음력), 요레키陽暦ようれき(양력), 立春りっしゅん(입춘), 立夏(입하), 립카立秋りっしゅう(입추), 立冬りっとう(입동)
일본은 옛날 음력 시절에 사용하던 명칭과 현대 태양력으로 사용하는 명칭이 다른 것이 특징이다. 달의 앞에 인레키陰曆いんれき를 붙여서 발음하기도 하지만, 태양력으로 교체된 이후에도 각 달을 부르는 고어古語는 여전히 달력에 표기된다.
3.2. 남아시아
3.2.1. 인도
인도 달력은 이미 리그베다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오래되었다. 또 지역이나 민족에 따라 이슬람력과 벵골력 등 각 지역, 민족 고유의 달력을 같이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기원전 6세기까지 역일제도가 구구하여 27일의 항성월 12월(324일)을 1년으로 하는 평년과 13월을 1년으로 하는 윤년이 쓰이기도 했고 30일의 큰 달 6개, 29일의 작은 달 6개를 합쳐서 12삭망월의 1년으로 쓰기도 했고, 30일씩 12월을 1년으로 쓰기도 했다.
기원전 6세기~2세기 이후 이 일수는 모두 1830일로 인도 달력의 성격은 3~12세기 동안에 당 현종 때 구담실달에 의하여 한자로 번역된 구집력九執曆에 의해 대략적인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여기서 구집은 일월과 오성 및 라후와 케도를 말한다. 라도와 케후는 산스크리트어로 황도黃道(지구가 태양을 돌면서 지구에서 보이는 태양이 그리는 궤도) 백도白道(달이 천구 위에 그리는 궤도)의 승교점昇交點(별이 남에서 북을 향해 황도를 통과하는 지점)과 강교점降交點(별이 북에서 남으로 내려갈 때 황도의 면을 통과하는 점)을 가리킨다.
구집력에서는 657년 2월 춘분 삭을 역원으로 하고 이 해 춘분을 세수歲首(설날)로 하였다. 여기에서 상원부터의 적월積月 M은 적년을 y, 연초 이후 경과한 일수를 m이라고 하면 M=12y+m+[(12y+m)x7/228]로 주어진다. 분수 7/228은 228개월의 삭망월(윤달 제외)마다 7개월 윤달을 넣어야 한다는 뜻으로 이 식의 이면에는 19년 7윤법이 뒷받침되고 있다. 인도의 고대 역법은 인도 천문학에서 나온 것으로 그 중의 하나인 구집력이 중국에 들어온 것이다.
[]는 228로 나눴을 때 몫의 정수整數만을 취한다는 뜻인데 이 몫은 역원부터 필요한 날까지에 끼워넣어야 할 윤달의 수이다. 구집력은 오늘날의 구면천문학球面天文學(위치 천문학)과 일맥상통하고 매우 이론점이다. 특히 인도숫자의 소개와 사인표의 기재가 특이점이다. 하지만 당대 여러 역법에서 구집력에 의해 받은 영향을 찾을 수 없는 것으로 보아 구집력은 인도의 독점물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주전원周轉圓의 이론이 이미 인도에서 알려져 있었지만 그 후 천 년이 지나 명나라 때에 이르러 포르투갈 선교사를 통해 주전원의 이론을 알게 되고 삼각함수에 놀랐다고 한다.
인도에서는 현재 인도 국정력을 그레고리력과 병행 사용한다. 이 달력으로는 사카 기원의 기원에 해당하는 서기 78년을 ‘인도 국정력 0년’으로 계산한다. 인도에서는 예전보다 기년 법규 등에 ‘수리력’보다는 ‘만 연령’으로 연수를 세는 경우가 많다. 이 기원은 쿠샨 왕조 카니슈카 왕이 제정했다는 등 여러 설이 있지만 확실치 않다.
연시는 양력 3월 22일(윤년은 3월 21일)에 해당한다. 기원이 ‘0’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양력으로 평년하고 3월 22일(연시) 이상의 기원에서 78년을 당기고 3월 21일 이전에 79년을 빼면 국정력의 해가 된다. (윤년의 경우 모두 1일 전으로 늦춘다.) 예를 들어 서기 2000년 3월 21일은 국정력 1922년에 해당한다. 윤년을 확인하려면 국정력에 78년을 더한 합계 수가 서기에서 윤년인지 여부를 확인한다.
인도 국정력 (사카) 달력 이외에도 사카 서기(서기 77 ~ 79년)를 기원으로 하는 달력이 많이 존재하며, 주로 남부 인도에서 사용된다. 한편, 북부 인도에서는 뷔쿠라마 기원(기원전 58년 ~ 56년)을 기원으로 하는 달력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언급한 바와 같이 국정력의 결정에 기원을 ‘0년’으로 계산(만 연령)하지만, 달력의 종류와 지방,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기원을 ‘1년’으로 계산(서수년, 수리력)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꼼꼼한 계산을 할 때 주의가 필요하다.
한 달은 2주일씩 2개의 팍샤(paksha)로 나뉘어지는데 첫번째 슈클라 팍샤 (shukla paksha)는 푸르니마(purnima), 즉 보름날까지의 기간이고 두번째 크리슈나 팍샤 (Krishna paksha)는 아마바스야(amavasya) 즉 초승달이 뜨는 날까지이다. 인도의 특정 지역을 제외하고는 초승달이 떠오르는 아마바스야를 기점으로 하는 슈클라 팍샤에서 시작된다.
인도의 계절은 4계절이 아닌 여섯 계절이다. 여름과 가을 사이에 우리나라 장마철에 해당하는 몬순기, 겨울과 봄 사이에는 이슬이 많이 맺히는 시기를 별개의 계절로 여긴다. 1월과 2월이 봄Vasanta Rutu이고 3월과 4월이 여름Greeshma, 5월과 6월이 몬순기Varsha, 7월과 8월이 가을Sharad, 9월과 10월이 겨울Hemanta, 11월과 12월이 이슬의 시기Shishira로 여긴다. 신년 맞이는 지역에 따라 차이트라 달의 Holi축제(양력 3월초)나 카르틱 달의Diwali 축제(양력 11월초)로 시작한다.
각 달을 상징하는 별자리는 양자리를 춘분점으로 삼을 때의 기준인 황도 12궁이다.
3.3. 서아시아
3.3.1. 바빌로니아
바빌로니아 달력은 슐기(기원전 21세기)의 움마 력에서 기초한 것으로, 한 달의 시작을 해가 지고 초승달이 뜰 때를 기준점으로 삼았다. 한 해는 봄에서 시작해 시작, 중간, 마지막으로 삼분되었다. 달의 이름은 아륵수(아락스)였으며 아시리아가 아닌 바빌니아에 근원이 있고 아시리아의 주신이 윤달에 할당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현대 아시리아인들은 독자적인 역법을 따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일월日(우투)月(난나)과 사람이 망원경 없이 관측할 수 있는 행성인 수성, 금성(이슈타르), 화성, 목성, 토성은 각자의 수호신이 있었고, 이들을 위해 일곱 개의 층대로 구성된 칠층 신전 탑 에지다 신전을 보면 개별적인 숭배가 가능하도록 일곱 제단으로 성별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852년 프랑스의 아시리아 학문을 연구하던 오베르(1825~1905)가 동료 고고학자들과 함께 프랑스 발굴조사단을 지휘하면서 바빌론 성 폐구 주변의 세 개의 언덕을 탐사하던 도중 “색칠한 기와들, 글 쓴 벽돌들, 둥근 흙 비석들”을 발굴해 자신의 보고서에서 판독한 쐐기 문자로 된 한 점토판 조각에서 일월과 다섯 행성의 이름들이 오늘날 사용하고 있는 일주일과 똑같은 이름이 수록되었음을 보고하였다.
오베르의 보고서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한 독일 베를린 대학의 슈라이더(1836~1908) 교수는 주일의 명칭이 바빌론에서 기원함을 확인하고 1873년 동 대학교 학회지에 “칠요인의 바빌론 기원”이라는 논문을 발표해 학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는 이 논문에서 주장하기를, 오베르가 발굴하고 판독한 수메르 언어로 된 쐐기 문자의 각 성신星神의 이름은 오늘날 사회에서 통용되는 칠요일 명칭과 같다고 하였다.
슈라이더 교수의 논문을 읽고 그의 주장에 동조한 학자들이 나타났는데 그중에서 영국의 동방학자 세이스(1845~1933)는 영국 퀸 대학에서 1875년 11월 22일 쓴 서한에서 이리 썼다.“샤마쉬는 태양신이고 신은 월신이었으며, 네르갈은 Anglo-Saxon 족의 지비/Tix 곧 화성신이고 네보는 로마인의 메르쿠리 신이요, Anglo-Saxon 족의 워단 신으로서 그 별은 곧 수성의 신이며, 마르두크 신은 Anglo-Saxon 족의 더오 신으로서 그 별은 목성의 신이고, 이슈타르는 로마인의 베누스요, 게르마니아의 프레이야 여신은 곧 금성의 신이요, 아달 또는 닌-이브는 로마인의 사투르누스 곧 토성의 신이었다.”
그 후 오베르가 발견한지 30년 뒤 미국 유니온 대학 신학대학 원장 브라운 박사가 1882년 10우러 장로교 기관지에 기고한 “쇄기 문자에 나타난 안식일”이라는 논문에서 이 주제를 다시 다루었다. 그는 여기서“처음에 오베르가 발견한 이래 현재로서는 슈라이더 교수가 보다 더 충분히 칠요일이 바빌론 기원임을 명확히 지적해냈다. 아카드 사람들 사이에는 칠은 성스러운 숫자였다. 그리고 또 그들의 태음력은 초창기에는 각각 칠일 간의 기간으로 구분되었다. 그 칠일은 일월과 다섯 행성(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에게 봉헌되었다. 그래서 그 날들을 각자 관장했던 것이다.(중략)
근자에 발굴된 단편들 중 하나는 칼데아인의 창조설에 관한 소견서로 간주되는 것인데 거기에 ‘주일의 주역들’이라고 불리어진 별들의 관직이 명확하게 언급된 문서였다.”
“오베르는 천문학과 연관된 한 점토판에서 일월과 다섯 행성들과 주일의 날들과의 사이에 어떠한 연관성이 있음을 발견했다. 그리하여 주일의 일곱 날들의 명칭이 바빌로니아 사람들에 의해 기원되었음을 드디어 슈라이더 교수가 논증하였던 것이다.(중략) 오베르는 숫자상 일곱이고 그 각각이 신과 관련이 있는 행성들의 목록 표 즉 그 전체목록이 그 신들과 일치 또는 상응하는데 그 신들의 이름들이 오늘날 우리 시대에도 통용되고 있는 목록이 포함된 쐐기 문자 점토판에 대하여 사람들의 이목을 환기시킨 그 첫 번째 사람이 되었다.”
사용하고 있는 요일은 칠층탑의 아래부터 토성의 이브, 목성의 마르두크, 화성의 네르갈, 태양의 샤마쉬, 금성의 이슈타르, 수성의 네보, 7층에 안치된 달의 신 순서로 배열되어 있으며 이는 칼데아 점성술사가 믿은 천동설에 입각한 태양계이기도 하다. 이 칠층탑에서 각 신들에게 각 날에 맞춰 숭배했는데 이 사제들이 칼데아의 점성술사이자 천문학자였다. 이들이 정한 제일祭日이 현대까지 계절의 순번으로 남아 내려온 것이다.
또 태양이 한 해의 주기로 반복되는 것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천문현상의 법칙이었다. 이를 하나둘씩 표기하는 과정에서 천문학은 과학과 수학으로 발현되었다. 처음에는 1년을 254일 12월로, 한 달은 29일과 30일로 했다. 하루를 12시간, 1시간은 30분으로 환산했다. 이 역법을 바빌로니아의 태음력이라고 한다. 오스트리아 수학자 노이게바우에르(1899~?) 교수는 이리 말했다.“달빛은 고대인의 생활에 있어 중요한 것이었으나 이 달빛이 정확한 주기를 지키면서 차오르고 기우는 것은 고대인에게 있어 용이하게 알 수 있었다. 이 주기가 29일 반을 가지고 정확히 되풀이되는 것은 고대인에게 우주가 법칙에 의하여 지배되는 것을 알리는 단서가 되었고 이밖에 천문현상에도 몇 가지 법칙이 있음을 쉽사리 알 수 있었다.”
이 태음력은 하루가 히브리인처럼 일몰부터 해가 완전히 질 때까지로 하여 “하나의 태양” 즉 일일一日이라 했고 “연수年首를 추분秋分에 월초月初를 초승달이 보일 때, 하루의 처음을 해가 지는 때로 하였다.” 하지만 순수 태음력의 특성상 천문의 1회귀년 즉 추분에서 추분까지의 주기가 맞지 않아 다음의 연수가 추분에 미치기 약 11~12일 전에 시작되는 모순이 생겼다. 그래서 그를 채우기 위해 윤달을 개발하였는데 “BC 6세기에는 8년 법이 행해지고 그 후에 19년법이 사용되었다.”“우리가 알고 있는 한 바빌로니아 사람들의 역법은 전기 동안 순수한 태음력이었다. 다시 말해 달은 일몰 직후 새로운 초승달이 처음 보일 때의 저녁부터 시작되었다. 따라서 바빌로니아 인들의 달은 저녁에서 시작되었고 한 달의 첫날은 처음 볼 수 있던 그 날에서 시작되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한 달의 시작은 직접 관찰한 결과에 순응하는 자연현상에 따라 이루어졌다.”
이 개정 역법이 소위 바빌로니아의 태음태양력으로 19년 7윤법을 개정하면서 이들은 연수年首를 추분에서 춘분春分으로 옮겼다. 해의 시작이 가을에서 봄으로 바뀐 것이다. 그리고 하루를 12시간에서 24시간으로, 1시간을 60분으로, 1분을 60초로 환산했다. 이는 셈 족의 칼데아인이 바빌로니아 문명을 최고도로 꽃피우던 때였다. 칼데아인은 수메르인이 물려준 점성술적 종교와 그를 바탕으로 한 천문지식을 이어받아 셈 어로 고쳐 하나의 점성술로 승화 발전시켰다.
바빌로니아 사람들의 수치는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10진법이고 다른 것은 60진법이었다. 이들은 이를 혼용해 사용했다. 이들은 우주를 그들의 성스러운 숫자인 6으로 60도씩 나누어 360도(6x60=360)로, 1시간을 60분으로, 1분을 60초로 환산했다. 그리고 하루를 24시간으로 환산한 것은 그들이 천문사상 최초로 발견한 “황도 12궁”을 근거로 하여 밤 12지시와 낮 12지시를 셈하여 합 24지시라 생각하고 하루를 24시간으로 정한 것이다.
그리하여 24시간 동안에 일곱 성신들이 제1시부터 차례로 한 시간씩 그 서열(토성, 목성, 화성, 태양, 금성, 수성, 달)에 따라 우주와 제국의 판도를 지배하는 것으로 점성술사는 백성들로 하여금 믿게 하였다. 그리고 그 날의 첫째 시간을 지배하는 별의 신이 그 날의 주신이라 가르치고 그 신의 이름을 따라 그 날의 이름을 지었다. 그리고 그 날의 주인이 되는 성신에게 사제들은 그 칠층탑에 안치된 제단에서 제사를 올렸다.
제1시에는 토성의 신 닌 - 이브
제2시에는 목성의 신 마르두크
제3시에는 화성의 신 네르갈
제4시에는 태양신 샤마쉬
제5시에는 금성의 여신 이슈타르
제6시에는 수성의 신 네보
제7시에는 월신 신이 온 세상을 지배한다고 믿고 숭배하게 했다.
그리고 제8시에는 다시 토성의 신이 제국을 보호했다. 이런 식으로 하루 24시간을 차례로 서열에 따라 배치하면 제24시에는 화성의 신 네르갈에 이르고 그 다음날은 태양신 샤마쉬가 주관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 날의 첫 시간을 주관하고 지배하는 주신의 이름에 따라 그 날의 명칭을 명명하고 그 신을 그날의 주신으로 섬겼다. 하지만 샤마쉬의 날은 일요일, 곧 태양신의 날이라고 하여 성대히 제사를 지냈을 뿐만 아니라 “이날은 길일로 생각하는 반면에 토성의 신 닌 - 이브 신의 날은 토요일로 불길한 날로 생각하였다.” 이런 식으로 해서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의 주일의 명칭이 지어졌다. 그리고 각각 그에 해당하는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이 바빌로니아의 19년 7윤법은 고대 그리스에서 메톤 주기라 불렀다. BC 433년 고대 그리스의 역법이 실제와 맞지 않아 만월 125 휴일 110을 포함한 295삭망월(=19년)을 도입해 1년을 365.236일로 정하고 이를 올림피아 제전에서 천문학자 메톤이 반포하였기 때문에 붙었다. 바빌로니아에서는 이미 1세기 전부터 사용하던 것으로 페르시아의 키루스 2세가 新 바빌로니아를 멸망시켰을 때 칼데아 첨성학자들이 아나톨리아와 그리스로 망명하면서 전파된 것이다. 동아시아에서는 춘추전국시대에 독자적으로 발견하여 장법이라 불렀다.
이후에도 칼데아 점성술사에 의해 천문학은 계속 발달하였고 “BC 383년 바빌로니아의 천문학자 키데나스는 1삭망월을 29.530594로 1회귀년을 365.276일”로 산출할 만큼 발전하였다. 이러한 바빌로니아의 역법은 알렉산드리아 천문학에 영향을 미쳐 당시 그리스인이 자랑하던 프톨레마이오스라는 천문학의 대가가 여기서 나타난다. 그 후 로마에서는 BC 44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로마의 망가진 역법을 바로잡고자 알렉산드리아의 소시게네스의 도움으로 1년 12월 365.25일로 개정한 뒤 율리우스력을 반포하고 로마인이 고대부터 사용한 8일 제도를 폐기하고 칠요일로 바꿔 사용한 것이 전 세계로 퍼지게 된다.
평년 12개월, 윤년 13개월로 하였는데 기원전 529년부터 8년 3윤법을 썼다가 기원전 504년 이후에는 27년 10윤법으로 바뀌었고, 기원전 383년부터 19년 7윤법이 되었다. 19년 7윤법에서는 3, 6, 8, 11, 14, 17, 19번째 해에 윤달을 집어넣었다. 이들은 열두 번째 달인 아달에다가 윤달을 집어넣었는데, 윤달을 넣을 때는 윤달을 첫째 아달이라고 해서 아달 알레트라 했고 본래 12월을 둘째 아달이라는 뜻의 아달 베트라고 불렀다. 당시 기록을 보면 이들은 계산 실력은 뛰어났지만, 절대군주의 신정국가다 보니 왕의 뜻에 따라 멀쩡한 달력이 꼬이거나 한 달의 선포가 미루어지거나 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또 이들의 기록을 통해 바빌론 유수의 시기를 측정하는 것도 가능하다.
천문과 점성술에 능했던 이들은 초고대문명 시절부터 서아시아에 구전되던 천문학을 이어받아 황도 12궁과 주나라 3원 27수의 기원이 되는 별자리들을 정하기도 했다. 처음 제정했던 시절에는 황소자리가 춘분점에 속했다.
바빌론 유수 이후 히브리인들은 고대 바빌로니아 달력을 그대로 받아들여 현대까지 사용하고 있다. 단 기준이 춘분에서 추분으로 바뀌어 성서시대 달력과 거의 유사하다.
3.3.2. 이스라엘
히브리력 참고.
히브리인들은 여러 달력을 사용했다. 태초에는 아랍인들과 마찬가지로 순수 태음력을 사용했으나 이집트 유랑 시기를 거친 이후에는 이집트 태양력을 현지화해서 사용했다. 바빌론 유수 이후 히브리인들은 고대 바빌로니아인들이 사용한 달력을 그대로 가져다 사용했으며, 성서에 나오는 날짜는 고대 바빌로니아 달력을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고대 히브리 달력과 현대 히브리 달력은 달이 다른데 그 이유는 현대 히브리 달력은 기원후 3세기 무렵 춘분을 기점으로 하던 고대 바빌로니아식에서 추분을 기점으로 바꿨기 때문이다.
히브리인들은 한 달의 시작을 해가 지고 초승달이 떠오를 때라고 여겼으며, 하루의 시작 또한 일몰로부터 시작된다고 여겼다. 일몰에서 하루가 시작된다는 관념은 고대 서아시아에서 보편적으로 있었다고 한다.
3.3.3. 아시리아
아시리아력은 1950년에 반포된 아시리아인들의 달력으로, 고대 바빌로니아 역법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새해는 봄에서 시작한다. 이들의 원년은 기원전 4750년으로 히브리력의 시작인 기원전 3760년보다 천 년씩이나 더 이른 것이다. 이는 우바이드 시기 아슈르의 첫 사원의 날짜에서 기원한 것이다.
이들의 윤달은 아다아르의 다음 달이 춘분점을 앞당길 때로 이때를 베 - 아다드라고 부른다.
3.4. 유럽
3.4.1. 고대 그리스
고대 그리스에서는 각자의 폴리스마다 자신들의 달력을 사용했고, 각 시대마다 형태를 바꿨지만 모두 태음태양력이었다. 치윤법도 8년 3윤법 또는 19년 7윤법 등 다양했다. 기원전 460년 천문학자 오이노피데스가 730태음월과 59태양년이 같다고 하여 1년을 365.373으로 두었지만 혼란을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기원전 400년 무렵 천문학자 메톤에 의해 메톤 주기인 19년 7윤법을 제정하게 된다. 윤달의 위치는 6월 다음이 되고 월초는 초승달이 처음으로 나타난 날로 하였다.
그리스에서는 8년법도 여전히 사용되었는데, 8년법은 8력년을 99력월로 하고 그간의 일수를 2922일로 정해 1년을 365.2500일로 하는 방법이었다. 76년법도 대두된 일이 있었는데, 기원전 334년 칼리푸스가 76태양년에 28윤월을 둔다고 하여 365.2500일로 하고자 했다. 이 역법은 기원전 330년 천문학자들이 실행하였다. 그 후 기원전 125년 히파르코스에 의해 304년법이 고안되었는데 이는 365.24671로 하는 방법이었지만 실용에 이르지는 못했다. 실제 1년은 365.24219이다.
헬레니즘 시대 고대 아테네 일대에서는 아티케력을 사용했다. 현대의 그레고리력의 관점에서 볼 때, 이 고대의 역법은 많은 특유의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 아티케력은 하나의 문화적 아티팩트라고 할 수 있다. 즉, 당시의 사람들의 정신적 측면의 일부를 볼 수 있게 하는 창의 역할을 한다.
비록 자료가 비교적 풍부하긴 하나, 아티케력은 여전히 종종 해석에 있어 논쟁의 대상이 되곤 한다. 그리스 고전기, 특히 기원전 5~4세기의 고대 아테네인들에게는 특히 언급할 것이 없을 정도로 이 달력 또는 역법은 명백한 것이었기 때문에, 아티케력의 전체 체계를 설명하는 당시의 문헌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당시에 아티케력에는 변화가 일어났는데, 현대의 학자들은 이 변화들을 완전히 파악하고 있지 못한 상태이다. 이러한 이유로 아티케력에 대한 어떤 설명 또는 해설도 잠정적인 재구축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문맥에서는 고대 아티케와 아테네는 사실상 같은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원천자료에도 12달 모두가 순서대로 제대로 나타나 있지 않다. 하지만 학자들은 여러 자료들을 토대로 다음과 같이 달의 목록을 재구축하고 있다. 아래 목록에서 보이는 아티케력의 달들과 현대의 그레고리력의 달들 간의 대응관계는 "느슨한" 관계일 뿐으로, 년도에 따라 한 달 이상 차이가 나기도 한다.
여름(Θέρος)
1 헤카톰바이온(Ἑκατομϐαιών, Hekatombaion) 7월/8월
2 메타게이트니온(Μεταγειτνιών, Metageitnion) 8월/9월
3 보에드로미온(Βοηδρομιών, Boedromion) 9월/10월
가을(Φθινόπωρον)
4 피아네프시온(Πυανεψιών, Pyanepsion) 10월/11월
5 마이마크테리온(Μαιμακτηριών, Maimakterion) 11월/12월
6 포세이데온(Ποσειδεών, Poseideon) 12월/1월
겨울(Χεῖμα)
7 가멜리온(Γαμηλιών, Gamelion) 1월/2월
8 안테스테리온(Ἀνθεστηριών, Anthesterion) 2월/3월
9 엘라페보리온(Ἑλαφηϐολιών, Elaphebolion) 3월/4월
봄(Ἔαρ)
10 모우니키온(Μουνιχιών, Mounichion) 4월/5월
11 타르겔리온(Θαργηλιών, Thargelion) 5월/6월
12 스키로포리온(Σκιροφοριών, Skirophorion) 6월/7월
3.4.2. 고대 로마
고대 로마의 역법은 극초기에는 순수 태음력이었으나 누마 시기에 역법이 자리잡히면서 태음태양력이 된다. 하지만 메톤 주기를 몰라서 임의로 넣던지라 의미가 없어져서 카이사르가 로마 집정관이 되고 율리우스력을 선포하기 전, 오차를 맞추기 위해 그 해가 '''440일'''이나 되었을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해를 혼란스러운 해라고 불렀을 정도였다. 안 그래도 신년에 빚쟁이들에게 신전 앞에서 시달리는 관습이 있었기 때문에 빚쟁이들에게 시달리던 카이사르의 입장에서는 알렉산드리아에서 만들어진 태양력의 도입이 시급할 수밖에 없었고, 그로 인해 태양력인 율리우스력이 선포된다.
본래는 다른 태음태양력과 마찬가지로 1월이 마르스의 달인 3월이었다. 하지만 기원전 3세기 무렵 로마 호민관의 임기가 11월로 바뀌게 되면서 11월을 1월로 교체, 그로 인해 2달씩 밀려나게 되었다. 하지만 명칭은 그대로 남아서 예를 들면 달의 뜻은 아홉 번째 달인데 정작 달력은 11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