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명수
[image]
1. 개요
동화약품에서 제조하는 일반의약품. 한국 최초의 소화제이다. 한자로는 活命水. '생명을 살리는 물'이라는 의미이다.
2. 상세
복용하는 타이밍이 매우 중요한데, '''체 했다고 바로 마시면 구토를 하는 불상사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소화가 진행 돼서 조금 토할 것 같은 게 가라 앉으면 마시는 것이 권장된다.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다. 무리하게 뛰거나 놀라게 하면 위가 놀라서 그냥 식도로 다 올려보내서 불상사가 일어날 수도 있다.
한 모금 한 모금을 마실 때마다 온 식도와 코 입이 뻥 뚫리는, 기가 막힌 맛과 향을 느낄 수 있다.[1] 속이 더부룩할 때 마시면 그 맛 때문에 마시자마자 속이 어느 정도 가라앉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대부분의 소화제들이 그렇듯 술 마신 다음 날 속 안 좋을 때 먹으면 좋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소화제는 '''소화제'''다. 해독제가 아니다. 물론 알코올로 인한 독성 물질을 해독해 주지는 못하지만 속을 편하게 해 주는 부수적 효과는 있다.
건강에 도움이 될까 싶어 마신 소화제가 위장 질환 환자에게는 오히려 악영향을 끼칠 수 있으니 주의.
위장 질환 환자에게 치명적 부작용을 유발하는 성분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특히 활명수에서 문제가 되는 성분으로는 고추틴크, L-멘톨, 탄산을 꼽을 수 있다.
이는 위와 식도를 과도하게 자극해 염증을 유발하며
근육 떨림, 운동실조증, 맥박을 느리게 하는 부작용을 갖고 있다. 게다가 과도하게 섭취하면 피로와 무관심 증상이 나타나고 오심, 구토, 탈진 등의 부작용이 나타난다. 따라서 역류성 식도염과 위염, 위궤양을 앓고 있는 위장 질환 환자라면 까스활명수와 같은 액상 소화제를 장기간 복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3. 유사품
상표 등록이 되어 있어 타 회사는 활명수의 상표를 사용할 수 없으며 유사 상표의 등장을 막기 위해 활명액의 상표까지 등록해 막았다. 그렇지만 물론 역사가 오랜 만큼 유사품도 많아서 까스명수(삼성제약)[2] , 속청(종근당), 솔표 위청수(조선무약), 생록천(광동제약), 생단액(일양약품), 베나치오(동아제약), 생위천(유한양행), 백초수(녹십자) 등의 유사 상품이 나와 있다. 물론 일부 예외도 있지만 액상 형태의 마시는 소화제의 대부분이 까스 활명수의 유사 상품인 것을 부정하긴 힘들며 실제로 성분표를 보아도 대부분 엇비슷한 성분으로 제조되었다. 말 그대로 까스 활명수는 음용하는 형태의 국산 소화제 분야에서는 최고인 셈.
소화제의 본좌인 까스활명수말고 유사품이 판을 치게 된 것은 의약품을 슈퍼마켓이나 편의점에서 판매할 수 없도록 법률이 제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까스활명수의 성분을 그대로 베끼되, 의약품으로 등록하지 않은 유사품을 교묘하게 마트 등에서 판매해온 것. 더구나 질이 나쁘게도 이러한 유사품은 원본에 비해서 성분이 좀 덜하거나 가격이 비싼 경우도 많다. 비슷한 문제는 박카스에게도 있어서 그동안 박카스 대신 생생톤이나 알프스 D[3] 등의 유사 제품이 판매되었다. 그러나 2011년 11월부터 법률이 개정되어 소화제나 강장제 같은 것은 편의점이나 마트, 슈퍼마켓 등지에서 판매가 허용됨에 따라서 그동안 그러한 유사품이 차지해왔던 자리를 원조가 차지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image]
사실 동화약품도 까스 활(活)이라는 이름으로 자사 제품의 유사품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11가지 생약이 들어간 원본과는 달리 6가지 생약만 들어가 있고 의약외품으로 판매되고 있다. 원본인 까스 활명수는 까스 활에 비하면 독한 감이 있어 가볍게 마시기에는 까스활이 더 낫지만, 역으로 속이 더부룩하거나 체했을 때의 효능은 꽤 차이가 있다. 성분부터 차이가 있고[4] , 까스 활명수는 일반 의약품, 까스 활은 의약외품이다. 이왕이면 소화불량에는 까스 활명수를 사먹자.
까스 활은 슈퍼마켓이나 편의점 등지에서 판매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2015년엔 여성용 활명수라고 할 수 있는 오매(훈증한 매실)가 추가로 함유된 '미인 활명수'가 출시됐다. 기존의 약효에 변비, 묽은 변, 설사에도 효과를 볼 수 있는게 특징. 신세경이 모델이었고, 현재는 서현진. 최근에는 어린이용인 꼬마 활명수도 출시됐다. 두 제품 모두 오매(매실을 훈증한 것)가 들어있어 정장 효과가 있다.
드링크 제는 수익성이 크지 않기 때문에 개인 소매점의 점주들은 주문을 변경하는 등의 수고를 마다하기 위하여 기존의 제품을 그대로 납입하는 경우도 많지만 제품 납입이 일괄적으로 정해지는 마트, 편의점 등에서는 새롭게 공간을 마련하거나 유사품의 자리에 까스활명수를 놓는 경우가 많다. 결국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온 셈.
현호색 부작용 논란
까스활명수에서 쓰인 약재 중 현호색이 임산부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는 지적이 식약처로부터 제기되었다. 수정란 착상 및 임신 유지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그렇지만 2020년 현재에도 현호색은 대한민국에서 시판되는 활명수 계열 제품 중 까스활을 제외한 모든 제품에 함유되어 있다.
4. 역사와 특징
[image]
활명수 디자인의 변천사. [5]
아스피린과 동갑인 약(127년)으로, '''한국의 첫 번째 브랜드 상품'''이면서 '''최장수 브랜드'''라 할 수 있으며, 그 역사는 대한제국 '''이전'''부터 시작되었다.[6] 즉, 이 말은 (며칠 안되기는 하지만) '''조선시대 때부터 팔렸다는 의미다.''' 일제강점기 활명수의 수익금은 독립운동 지원금으로까지 쓰였다.
이 약의 등장이 특이한데, 창립자(민병호)가 소화제를 만들어서 활명액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 판것이 시작이었다. 이 이름의 오리지널리티는 높지 않은데, 조선말에 일본인 보따리 장사들이 들어와 서양식 약제를 팔았고 이 당시 인기 있던 일본산 서양식 소화제의 이름이 '활명산' 이었다. 즉, 보관이 편한 가루형태의 활명산 대신 액상의 소화제를 팔면서 이름을 활명수라고 한 것. 당시의 레시피는
민병호는 이 약의 제조 아이디어를 제중원에 있던 친구가 가르쳐준 서양의학에서 얻었다고 한다. 실제로도 포도주, 백설탕, 멘톨, 캄파, 클로로포름 등 사용 재료를 보면 한약과는 거리가 멀다. 다만 육두구[9] , 박하는 한의학에서 오랫동안 사용된 약재이며, 정향과 복숭아씨(도인) 역시 마찬가지다. '교이'라 하여 약에 당분을 첨가하는 것과,[10] 약재를 술에 담가서 유효성분 추출을 돕는 제법[11] 모두 한의학적으로 유구한 전통이다. 주종의 경우 전통적으로는 황주와 같이 곡물을 이용한 양조주를 사용했으나 기본 목적은 알코올을 이용하여 유효성분을 추출하는 것으로 현대에는 소주를 사용하기도 하므로 적포도주를 택했다고 하여 바로 서양약이 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기본적인 베이스는 한약이고 거기에 서양의 생약 전통을 결합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실제로 동화약품에서도 민병호 선생이 궁중 비방에 서양의학을 접목시켜 개발한 것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특히 오늘날에는 원방에 비해 창출, 후박, 진피 등이 추가돼 있는데, 이는 소화기 질환에 다용하는 한방 처방인 '평위산'의 영향이다.계피 4g, 정향 3g, 감복숭아[7]
씨 6g을 침출기에 넣고 적포도주 150g을 가해 잘 혼합한 다음 3일간 침출시킨 뒤, 이 침출액에 다시 박하뇌 0.15g, 장뇌[8] 0.03g을 넣고 백설탕 40g과 증류수 70g을 가한 후 잘 혼합해 용해한 후에 여과하면 완성.
코카콜라와 같은 서구의 약제 음료들이 그러하듯이 탄산이 첨가되면서 지금의 까스활명수가 완성되었다.
초창기의 활명수는 당시 기준으로 상당한 고가품이었다. 1910년 활명수 1병의 값은 40전이었는데, 당시의 쌀 1되는 약 10전이었다고 하니 요즘 가격으로 환산하면 약 2만 원 정도다. #
다만 초기형의 경우는 아무래도 인기를 끌다 보니 유사상품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왔고, 이름도 비슷하게 짓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에 분개한 동화약품이 혼란방지를 위해서 만든 것이 바로 '''부채표'''. 이것 역시 한국 최초의 상표 등록이다.
역사가 오래된 만큼 역사의 한 면을 장식하기도 하였는데, 사장은 몇 차례 바뀌었지만 당시 동화약품을 맡던 사장들[12] 이 독립운동가였던 덕분에 활명수를 팔아 번 돈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댈 수 있었다. 이때 동화약품 사옥 내에 상해임시정부 연락소인 연통부가 설치·운영되었다.
동화약품은 두산그룹에 비해 1년 늦게 생겼지만, 두산그룹은 해방기에 단절된 기간[13] 이 있어서 정통성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동화약품을 최장수 기업으로 꼽는다.[14] 동화약품은 창립 때부터 2014년 5월 중순까지[15] 줄곧 같은 자리에서 같은 상호,[16] 같은 업종, 같은 제품으로 크고 작은 역사를 써내려왔다. 동화약품이 사옥을 옮긴 것은 본사가 위치한 순화동이 재개발에 들어갔기 때문인데, 사옥 자체가 하나의 역사관이어서 재개발이 어찌 될지는 미지수.
일반적으로 소화제라고만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육계나 고추틴크성분이 위를 자극하여 식욕을 증진하는 효과도 있고 한약 성분으로 인해 구토 시에 먹으면 속이 진정되는 효과도 있다.
[image]
2012년부터는 매년 디자이너나 아티스트와의 콜라보레이션으로 한정판 활명수를 만들고 있다. 2014년에도 역시 출시 117주년을 맞아 이동기 작가의 아토마우스 한정판을 내놓았다. 1병의 용량이 무려 450ml이다.
[image]
2016년 10월에는 출시 119주년 한정판으로 카카오프렌즈 특별판을 출시했다.
많은 드링크 음료에서 보존을 목적으로 넣는 유해한 안식향산나트륨(벤조산나트륨)이 들어있지 않다. 옛날에는 들어 있었으나, 유해성 때문에 결국엔 없어졌다. 그러나 광동제약의 소화제도 방부제가 없다고 홍보하고 있고 이름이 비슷한 삼성제약의 까스명수는 안식향산나트륨이 함유되어 있다. 그리고 동화약품에서 어린이용으로 만든 꼬마활명수도 벤조산나트륨이 함유되어 있다.
4.1. 역대 광고
[image]
1910년에 나온 한국 최초의 신문광고. 엄밀하게는 동화약품의 창업광고이다.
[image]
손기정의 마라톤 우승을 기념한 광고. 당시 상황상 조선 대신에 반도라고 쓰고 있다.
1959년 광고.[17]
1967년 광고. 하얀 한복을 입은 한 외국인이 어색한 한국 발음으로 양반이 행차합니다!라며 자신의 등장을 알린후 곧이어서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차려진 진수성찬의 밥상에서 실컷 음식을 먹다가 아이고 배야~ 하면서 고통을 호소할 때 소화제 약품인 '활명수'가 등장하는 코믹한 컨셉의 광고로 방영당시 웃음을 주었다.
그로부터 무려 50년이 지난 2016년에 이 광고를 찍은 동화약품의 공식 유투브 채널에 이 영상이 올라오게 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는데 이 영상의 베스트 댓글로 당시 이 광고에 나온 외국인이 그 당시를 회상하며 감격하는 글이 올라와 있다. 당시에 광고로 지나가던 사람들이 쳐다보면서 웃는 등, 너무 주목받아 조금은 시달렸던 듯... 참고로 이분의 성함은 더글러스 레이드로 광고 촬영 당시 23세의 미국인이었으며, 당시 주한미군으로 입대하여 한국에서 복무 중에 휴가를 나왔다가 광고에 출연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소년의 경우 후시녹음으로 성우출신의 원로배우인 김영옥이 더빙했다고 한다.
1972년 알파활명수 광고.
1983년 김혜영이 출연한 광고.[18]
1985년 김동엽이 출연한 알파활명수 광고.
1989년 최양락, 팽현숙이 출연한 광고.
1997년 한진희가 출연한 광고.
2013년 광고. BGM은 오페라 마술피리의 아리아 <밤의 여왕 아리아>의 초반 부분이다. 노래 가사가 '''활'''이라고 들리는 부분을 캐치해내서 광고에 잘 매치시켰다는 평가가 많다.
2016년 서현진이 출연한 미인활명수 광고.
2017년 쇼미더머니6와 콜라보하여 만든 브랜디드 컨텐츠. 여타 제약회사 CM송과 달리 노래와 뮤비 모두 하나의 힙합 작업물로 봐도 될 정도로 상당한 고퀄로 호평을 받았다.
2018년 조세호가 출연한 까스활 인터넷 광고.
2018년 하반기 광고.
5. 관련 문서
[1] 그 맛과 향은 멘톨 함량이 높을수록 강해진다.[2] 액상계 소화제의 원조는 단연 활명수가 분명하지만, 청량감을 주는 탄산이 함유된 소화제는 '까스'활명수가 아니라 오히려 이쪽이 2년 먼저 출시된 원조다. 그래서 까스명수는 유사상표이긴 하지만 독창적 컨셉을 바탕으로 시장에서 활명수의 경쟁자로 급부상하게 된다.[3] 아이러니하게도 이건 동화약품 제품이다. 그래서 부채표가 뚜껑에 그려져 있다.[4] 까스활의 주 성분은 육계와 건강인데, 한의학에서 이 약재들의 주용도는 소화제나 위장약이 아니라 몸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약재이다. 물론 소화제, 위장약에도 사용되지만 보통 한의학에서 위통을 다스리는 약재는 까스활명수에만 들어있는 현호색과 정향이다. 청량감을 주는 멘톨 함량도 6배 이상 차이가 있다.[5] 초기 활명수는 지금처럼 바로 음용가능한 방식이 아니라 원액을 물에 1~2시간 정도 희석시키는 등 번거로운 방식이었어서 큰병에 원액을 담아 판매했었다. 이후 미리 희석돼서 바로 음용가능한 지금의 활명수를 담은 작은병이 출시되었고 원액을 담은 활명수와 바로 음용가능한 활명수가 판매되다 원액은 담은 활명수는 완전히 사라지고 지금의 형태로 굳어지게 되었다.[6] 1897년 9월 25일로 10월 12일에 이루어진 제국 선포보다 보름 빠르다.[7] 살구[8] dl-캄파[9] 육두구의 원산지는 인도네시아이고, 고릿적부터 동양권에서 식용, 약용으로 쓰였다. 이미 당송 시대 문헌에 그 약효가 상세하게 정리되어 있는데, 이때 유럽에는 육두구가 유입조차 되지 않았다. 이후 아랍 상인들을 거쳐 소량이 유럽으로 유입되다, 대항해시대 이후에야 주요 교역품이 된다.[10] 교이는 원래 강엿을 말하는 것이지만, 약 맛을 개선하고 당분을 공급하기 위해 넣기 때문에 현대에는 설탕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보며, 한국에서는 한약에 당분을 첨가하는 게 드물어졌지만 중국에서는 한약 처방에 흑설탕 등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11] 이를 주수상반(酒水相半)이라 한다.[12] 최초의 사장은 민병호의 아들 민강이었다. 민강이 40대의 나이로 사망하면서 사세가 기울어서 민강의 인척들이 잠시 운영을 하기도 하였으나 여전히 어려웠기 때문에, 역시 독립운동가이자 사회활동가였던 윤창식에게 넘어갔다.[13] 1945년부터 약 1년간.[14] 두산그룹은 이 단절 외에도 주력 업종을 몇 차례 바꾸었다. 그리고 이 시기 두산그룹의 행보는 창업주 박승직의 친일 행위(위안부 모집)와 당시 주력 상품이었던 박가분의 유독성(납) 등 논란거리로 가득하다. 때문에 두산그룹의 입장에서도 이 기간을 굳이 기업 역사에 포함시켜서 홍보하기 껄끄러울 듯.[15] 서울역 stx빌딩으로 옮겼다.[16] 엄밀하게 따진다면 세세한 변경은 있었다. 그러나 사명의 골격만큼은 그대로여서 같은 상호로 쳐주는 게 보통.[17] 이때 까스활명수가 자매품으로 소개됐으나, 출시되지 않았거나 미리 희석한 재품을 판걸로 보인다. 아니면 나중에 자매품 부분만 추가했을 가능성도 있다. 밑에 광고에 작은 병도 같이 나온걸 봐서 희석한 제품을 판 가능성이 높아보인다.[18] 86년 알파활명수 편에서 이순재와 출연한 적이 있고, 판콜 CF를 찍은 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