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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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A의 창업자, 트립 호킨스(Trip Hawkins)가 창업한 3DO 컴퍼니에서 창안 및 관리를 하였고, 파나소닉, 금성사, 산요전기, 크리에이티브 랩스, AT&T와 같은 여러 회사들에서 출시한 게임기 규격의 이름. 3DO 컴퍼니에서 직접 기기를 제조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라이선스를 주어 참여할 수 있도록 개방형 표준 방식 플랫폼으로 만들었다. 이 점은 MSX의 콘셉트와 비슷하다. 정식 명칭은 '3DO 인터랙티브 멀티플레이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3DO'로 줄여서 부른다. 현재는 그냥 게임기로 분류하지만 그 당시엔 멀티미디어가 시대의 화두였던 만큼 '게임기'보다는 '(게임 기능까지 포함한) 멀티미디어 플레이어'라는 것이 3DO의 콘셉트였다.
VHS 규격과 MSX의 성공을 벤치마킹했다. 라이선스를 얻고 규격에 맞추면 누구나 만들 수 있다는 콘셉트였기 때문에, VCR 기기와 게임 소프트를 제작한 회사들이 많다. 규격만 만족하면 되기 때문에 사운드 블라스터를 제작한 크리에이티브 테크놀로지에서는 3DO 소프트웨어를 PC/Windows 3.1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3DO Blaster도 내놓았다. 전용 CD-ROM 드라이브[2] 와 확장 카드가 들어있는 제품[3] .
2. 기종
3. 광고
북미에서 여러 광고를 내보냈는데, 세가 제네시스와 슈퍼 NES를 장난감 상자에 쳐박으며 '지금까지 나온 게임기는 3DO에 비하면 장난감 수준이다' 라는 식으로 두 게임기를 까는 내용의 광고를 내기도 했다.
4. 실패
1993년에 공격적인 마케팅과 함께 공개되었으나 첫 출시 가격이 '''무려 699 달러'''인 점이 발목을 잡았다.[4] 1991년 첫 출시 가격이 700 달러인 CD-i와 맞먹은 값이면서 '''1996년 첫 출시 가격이 599 달러인 애플 피핀과 1990년 첫 출시 가격이 649 달러인 네오지오보다도 비싼 값'''이다. 게임기 사업은 보통 게임기를 박리로 판매하거나 심지어 해당 손해를 게임 판매나 게임 라이선스 수익으로 벌충하는 구조이지만,[5] 게임 라이선스 비용을 저렴하게 책정했던 탓에 게임기 판매로 수익을 낼 수밖에 없던 벤더들의 사정 때문에 저런 비싼 가격으로 책정된 것이다. 게임 개발사의 참여를 유도하려고 라이선스 비용을 저렴하게 책정한 것이지만 그것이 오히려 실패한 원인이 되었다. 파나소닉에서는 3DO 출시 후에 시장의 반응이 좋지 않아 출시 6개월 만에 499 달러로 내렸고, 금성사의 3DO 역시 이런 반응을 지켜보고 399 달러로 출시했지만 때는 너무 늦었다. 게다가 마쓰시다는 게임기 발매 초반에 대량 생산에 실패해 소매점에 게임기 공급도 원활하지 못했다.
멀티미디어 플레이어로서의 3DO는 정작 비디오 CD를 재생하려면 '디지털 비디오 모듈'이라는 MPEG 애드온 모듈을 추가로 구입해야 하는 점도 문제였다. 또한, 그 당시에 나온 비디오 CD는 비디오 영상 품질도 좋지 않아 LD와 비교해 화질 면에서 열세이고, VHS 테이프와 비교해 가격으로 열세였기 때문에 대중화에 실패한 매체이기도 하다.
영국 잡지 레트로 게이머에 따르면 3DO 게임기는 출시 직전까지도 하드웨어 사양이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되어서 게임 회사들이 개발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3DO는 결국 크리스탈 다이나믹스에서 만든 게임 <Crash N Burn>'''만''' 동시 발매했는데, 트립 호킨스는 이에 3DO 컴퍼니, 마쓰시다 전기와 3DO 개발자들간 조율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이는 이후에도 3DO 게임 발매가 지지부진해진 원인이 되었다.[6] 강력한 경쟁사인 세가와 닌텐도, 그리고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이 등장하면서 시스템의 보급은 1996년 말 단종 때까지 2백만 대 정도 팔렸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고, 결국 흑역사인 채로 매장되었다.
소비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적당한 가격의 가정용 게임기와 재미있는 게임을 확보해 보급을 우선하는 사업 구조를 만들어야만 함을 보여준 사례. 만약 성공했으면 플레이스테이션처럼 세대를 거치며 발전했을지도 모른다. 3DO 사업을 철수한 직후에 트립 호킨스의 인터뷰에 따르면, 게임기가 성공하려면 대기업 한 곳이 마케팅, 하드웨어, 게임을 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트립 호킨스는 3DO 사업 실패로 게임기 사업에 대하는 교훈을 얻었다.
5. 사양
- 디스플레이
- 초기에는 두 개의 비디오 가속 보조 연산 장치 CLIO, MADAM으로 구성. 동작 클럭은 25 MHz. 후기에는 두 칩을 통합한 Anvil로 구성.
- 해상도: 320×240 (보간시 640×480) 60 Hz(NTSC), 384×288 (보간시 768×576) 50 Hz(PAL)
- 16비트 팔렛 색상 / 24비트 트루컬러
- 초당 900만 ~ 1600만 픽셀(보간시 3600만 ~ 6400만)을 변형, 확대 및 축소, 회전, 텍스처 매핑
- 시스템 보드
- 초당 50 MB 버스 스피드 (32비트 @12.5MHz 동기화 버스)
- 36개의 DMA 채널
- 2 MB 메인 램과 1 MB 비디오 램
- 확장 슬롯 2개
- 사운드
- 20비트 커스텀 DSP : 16비트 → 20비트 확장 정밀도를 위해 16비트 레지스터 및 20비트 누산기 장착
- 44.1 kHz 샘플링 주파수의 16비트 스테레오 사운드 지원
- 돌비 서라운드 사운드 지원
- 미디어: 초당 300 KB 전송이 되는 2배속 CD-ROM 드라이브 (32 KB 램 버퍼)
- 멀티태스킹 가능 32비트 운영체제
6. 한국에서
1994년 10월에 금성사(현 LG전자)에서 라이선스를 받아 슈퍼 히어로스러운 디자인의 마스코트 캐릭터까지 만들어 '3DO 얼라이브'라는 이름으로 이 규격의 게임기를 발매했다. 금성사에서 1994년 말에 신설한 'CD 플레이어 OBU' 부서를 통해 국내 3DO 사업을 진행했다. 당시 이 OBU장으로 3DO 사업을 진두지휘한 사람이 권영수 現 LG 부회장.[7] 당시 국내 경쟁작은 삼성 슈퍼 알라딘보이, 현대 컴보이/슈퍼컴보이였다.
상당한 공격적인 마케팅을 했고, 한국어 번역 게임도 상당수 냈기 때문에 국내 판매량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가전 회사들과 다르게 대당 100달러씩 손해 보며 팔았음에도 게임이 한 달에 1~2개밖에 출시되지 않았던 관계로 LG전자에서는 1996년 5월에 게임기 시장에서 철수했다.
국내 발매 당시의 서울랜드에 3DO 체험관을 만들어두기도 했는데, 이 3DO 체험관은 3DO가 망한 뒤로도 들어온 것 없이 긴 시간 동안 방치되어서 간혹 가다 들린 게임기 마니아들의 눈물을 자아냈다고도 전해진다. 또핸 프랜차이즈 형식으로 '3DO 플라자'라는 유료 게임장이 서울 시내 몇 군데에 개장하기도 했는데, 초기에는 3DO 게임을 시간제 유료로 즐길 수 있는 방식으로 영업했지만 3DO가 망하고 난 뒤에는 대부분 사라졌고, 같은 시대 게임기인 세가 새턴이나 플레이스테이션을 유료로 플레이하는 방식으로 명맥을 이어가기도 했다.
북미처럼 TV 광고도 내보냈다. 위 광고로 출연한 모델이 '''이정재'''인데, 현재는 그의 굴욕적인 흑역사의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이 광고에서의 명대사는 '''"우와! 이거 영화야 게임이야?"'''와 '''"단 1초도 방심할 수 없어요!"''' 한때 합필갤에서도 사용하기도 했다.
국내 활동에 대해서 인터넷 게임웹진 게임메카에서 공개한 1995년 잡지 스캔본을 통해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링크). 당시에 3DO 얼라이브 전문 잡지를 만들었을 정도로 기대를 모았지만 결과는 시궁창.[8]
7. 취소된 후속 기종
3DO 컴퍼니는 나중에 3DO와 후속 기종의 모든 권리를 마쓰시다 전기에 1억 달러에 매각했다. 그리고 마쓰시다 전기가 이어서 후속기종으로 M2를 개발했지만 깔끔하게 취소하였다. 자세한 것은 파나소닉 M2#s-2.5를 참고하자.
8. 발매된 게임들
- 혹성질주(Off World Interceptor)
- 객스(Gex)
- 지구공습 2019(Shock Wave)
- 벨제리온
- 울트라맨 파워드 얼티밋 히어로
- 노부나가의 야망 패왕전
- 배관공은 넥타이를 매지 않는다:
- 크레용 신짱: 퍼즐 대마왕의 수수께끼
- 아마게돈
- 슈퍼 스트리트 파이터 2 X
- [9]
- 폴리스너츠(코지마 히데오 작): 한국어 번역 얘기가 있었지만 사업부진과 게임 자체의 어마어마한 대사량 때문에 캔슬되었다.
- 슈퍼 리얼 마작 시리즈
- 슈트랄
- D의 식탁(이노 켄지의 컬트 명작)
- ぼのぐらし(보노구라시): 1995년 4월 21일에 발매된 보노보노 게임이다. 애니메이션 방영은 그 하루 전에 시작되었다.
- 노바스톰
- Road & Track: The Need for speed
- 둠
- 극초호권
- 스타 컨트롤2
- 사무라이 스피리츠: 일본 발매 제목이 놀랍게도 <サムライショーダウン>(사무라이 쇼다운)이다!!!
- 삼국지4
- 파워즈 킹덤: 영문판 제목은 <가디안 워>.
- J리그 버추얼 스타디움
- 유유백서
그 외에도 메탈기어 시리즈의 신작 메탈기어 3(가제)가 개발 예정이었으나 고베 대지진과 맞물려 취소되고, 기종을 플레이스테이션으로 옮겨 메탈기어 솔리드로 완성되어 발매된다.
9. 여담
3DO는 3D 그래픽과 동영상이라는 기능을 넣었기 때문에 출시한 시기를 생각하면 기기가 지향하는 방향이 시대의 흐름에 크게 다르지는 않은, 나름대로 고성능 기기였다. 다만, 높은 가격이 문제였고, 초창기부터 게임 부족으로 허덕이다가 1년여만에 강력한 5세대 게임기들인 세가 새턴과 플레이스테이션이 등장하면서 숨통이 끊어졌다. 한때 트립 호킨스가 경영했던 EA[11] 는 메가 드라이브와 PC에는 게임을 적극적으로 출시하면서 3DO에는 소홀했다가, 플레이스테이션이 등장한 이후 플레이스테이션에 전폭적으로 게임을 출시하며 뒤통수를 쳤다.'''전자 제품에는 한가지 기본 원칙이 있다. 기능은 계속 강력해지고 가격은 계속 내려간다.'''[10]
'''트립 호킨스''' (일렉트로닉 아츠 창립자이자 3DO 창립자)
AVGN도 한 번 심층적으로 다룬 적이 있다. 악명 높은 '''배관공은 넥타이를 매지 않는다''' 리뷰에서 등장. 세 개의 모델을 보여주는데, 파나소닉 FZ-1과 FZ-10, 그리고 금성 3DO 얼라이브이다. 게임기 본체에는 컨트롤러 포트가 1개 밖에 없고, 1P용 컨트롤러에 2P용 컨트롤러 연결 포트가 있는 이상한 구조를 깠다.[12]
국내에서의 별명은 '''삼돌이'''. 그런데 현재는 똑같은 별명을 사용하는 엑스박스 360에 밀려서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애초에 보유자부터 적기 때문인지 언급조차 잘 되지 않는다.
게임 트레일러의 최악의 게임기 10위 가운데 7위#에 들어갔다. 그래도 같은 세대의 PC-FX, 그리고 '''전 세계 4만 대'''라는 최악의 판매량을 보유한 애플 피핀보다는 낫다는 평이다.
2000년에 삼성전자를 주축으로 한 여러 IT 기업들과 영화 유통사들이 함께 '엑스티바'라고 하는, 3DO와 비슷한 컨셉의 'Nuon'이라는 규격의 디스크를 사용하는 '''DVD 비디오 플레이어'''가 출시됐다. 하지만 이것 역시 3DO처럼 실패했는데, 자세한 이야기는 엑스티바 문서 참조.
10. 동명의 게임회사 3DO 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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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를 세운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인 트립 호킨스(Trip Hawkins)가[13] 게임기를 만들고 싶어 1991년에 세운 회사. 원래 동명의 게임기 하드웨어 규격을 관리하고 동명의 게임기로 나온 게임들을 유통하는 회사였으나, 게임기의 실패로 1996년에 개발하던 M2와 3DO의 라이선스를 마쓰시다 전기에 1억 달러에 팔아치운 뒤에 사이클론 스튜디오, 뉴 월드 컴퓨팅 등을 사들여 서드파티 회사로 탈바꿈했다.
한때 히어로즈 오브 마이트 앤 매직 3, 4와 마이트 앤 매직 6~9편을 만들어 유통한 회사이기도 하다. 또, 'Army Men'이라는 장난감이 있는데, 이 장난감이 토이 스토리로 나와서 큰 인기를 끌자, Army Men 게임 시리즈를 만들기도 했다. 또한 애컬레이드의 하드볼 개발자들을 받아들여 하이 히트: MLB 시리즈를 만들기도 했다.
3DO는 게임 상표에 초점을 맞춰 유통했고 게임 발매 주기를 6~9개월로 맞췄다. 그러나 발매 주기가 너무 짧아 게임 품질은 떨어지고 판매량도 같이 떨어지고 말았다. 3DO는 몇 년간 어려움을 겪다가, 2003년 법원에 파산 보호 제도를 신청하면서 뉴 월드 컴퓨팅을 공중분해시키는데 일조하여 히어로즈 팬들의 공적으로 바뀌었다. 그 뒤에 마이트 앤 매직 시리즈 및 히어로즈 오브 마이트 앤 매직 시리즈는 유비소프트에, 하이 히트: MLB 시리즈는 마이크로소프트에, 그 밖의 것들은 남코, 크레이브 등에 팔려나갔으며, 트립 호킨스는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3DO를 그만두고 '디지털 초콜릿'이라는 모바일 게임 회사를 설립했다.
[1] 해당 기종은 첫 출시된 기종인 '''파나소닉 FZ-1 R.E.A.L'''이다[2] 당시만 해도 저장 매체는 플로피 디스크와 하드 디스크가 주류였고, CD-ROM 드라이브는 막 보급되기 시작한 무렵이다. 3DO Blaster는 아무 드라이브나 연결할 수 없고, 함께 나온 전용 드라이브만 사용할 수 있다... 라고 명시했지만, 실제로는 당시 아직 CD-ROM 인터페이스가 통일되지 않던 시절의 규격 중 하나인 파나소닉 규격의 드라이브면 사용 가능하다고 한다.[3] 2020년 현재는 중고 매물도 잘 없고 나와도 비싼 가격으로 거래되는 등 프리미어가 엄청나게 붙었다.[4] 2016년 기준으로 '''한화 100만 원이 넘어갔다.'''[5] 경영학에서 이런 사업 방식을 두고 '갈아 끼우는 날 모델(Razor and blades model)'이라고 부른다.[6] 특히나 90년대 초반에는 CD-ROM을 채용한 게임기(메가 CD, 3DO, CD-i 등)용 게임들은 CD-ROM을 활용한답시고 동영상만 가득 넣은 인터랙티브 무비가 태반이다. 게다가 개중에는 그냥 성인용 동영상을 모아놓은 소프트도 있다. 제목도 참 간단하게 'SEX'. 그래도 당시로서는 최고의 품질로 이식된 괜찮은 작품이 많다.[7] 3DO의 실패 직후 LG전자 세계화담당 이사라는 직책을 거쳐 계속되는 승진을 거친 끝에 LG 유플러스 부회장까지 올라갔고, 2018년 구본무 전 LG 회장이 별세하자 인사이동을 거쳐 LG 부회장직에 앉게 됐다.[8] 이 때문에 3DO가 인터넷 커뮤니티의 화두에 오르는 날에는 '''쓰리디오 쓰린'''이라는 표현이 사용되기도 하였다. 위 광고를 두고 '쓰리디오 쓰린 흑역사'라고 하거나, 실패한 게임기라면서 '쓰리디오 쓰린 판매량'이라고 하는 식.[9] 원래는 이식 예정이었으나 취소되었다.[10] 그러나 3DO의 가격은 그의 말과 반대로 매우 비싼 편이었기에, 국내외를 막론하고 '''그걸 아시는 양반이 왜 그러셨어요?'''라고 까였다.[11] 트립 호킨스는 3DO에 집중하기 위해 1994년 7월 EA의 이사직을 그만두었다.[12] "한 콘솔에 기기도 이렇게 많이 나왔으면 컨트롤러 포트도 늘어야 하지 않나요? 왜 맨날 하나밖에 없는건가요?"[13] 사실 '~들 가운데 한 명'을 빼도 될 정도로 트립 호킨스의 비중은 그 정도로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