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9801

 

1. 개요
2. 역사
3. 성능
3.1. 게임
4. IBM PC 호환 기종과의 차이점
5. 기타
6.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7. 관련 문서


1. 개요


일본 NEC에서 발매한 16비트 CPU를 탑재한 컴퓨터. 혹은 그 호환 아키텍처를 사용한 컴퓨터 시리즈.[1] PC-98계열이라고도 한다. 의외로 이 규격의 첫 컴퓨터가 나온 해는 1982년으로, 1981년에 첫 컴퓨터가 나온 PC-8801과는 1년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당시까지만 해도 집에서 사용할 목적으로 판매했던 기종은 PC-8001 및 PC-8801이고, PC-9801은 업무용을 주력으로 했던 기종이라 게임 등에 필요한 기능은 매우 취약하였다. 1990년대부터 PC-9801이 가정에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컴퓨터의 비싼 가격으로 인해 PC-8801조차도 가정에서 쉽게 볼 수 없었다. 가정용은 PC-8001 시리즈 및 그보다도 하위 기종인 PC-6001 시리즈가 대세였다.
다만, 일반적으로 PC-9801 하면 NEC V30(인텔 8086 호환의 CPU)을 탑재해 1985년에 발매한 PC-9801VM 또는 인텔 80286 CPU를 탑재해 1986년에 발매한 PC-9801VX 이후의 기종을 뜻한다.
상위 호환 기종으로 1992년에 발매한 PC-9821이 있다. 하지만 PC-9801과의 차이는 애매한데, NEC 측에서는 256색 표시 기능이 있는 기기를 PC-9821이라고 정의하지만, 일부 저가형 PC-9821은 256색을 지원하지 않고, PC-9801 중에서도 후기형 모델은 256색을 지원하기도 한다. 따라서 여기서는 PC-9801과 PC-9821을 같이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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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9801 모델 연표.

2. 역사


일본은 특이하게 다른 나라와는 달리 IBM PC 호환기종의 보급이 상당히 늦었다. 미국의 컴퓨터들은 일본어에서 사용하는 대량의 한자를 표현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일본의 컴퓨터들은 1970년대 후반부터 그래픽 기능을 중시하여 한자 표시가 가능하게끔 특화했다. 1980년대를 풍미한 일본의 전자기술에 힘입어 뛰어난 성능의 컴퓨터들이 수많은 제조업체에서 군웅할거했다.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의 개인용 컴퓨터 환경이 IBM PC 호환기종으로 통일되는 과정에서도, 일본은 자국산 컴퓨터 수요층이 유지될 수 있었다. 인텔 80386 이후의 CPU들이 등장하고 하드디스크 인터페이스에 울트라 DMA가 보급되기 전까지는 체감 성능도 IBM 호환 기종보다 좋기도 했다. 잠재 능력은 IBM이 더 좋았지만 PC-9801 또한 개선 여지가 없진 않았다. 이는 갈라파고스화의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그 당시 개인용 컴퓨터로 아타리 ST, 아미가, 그리고 지금까지도 존속하고 있는 매킨토시 등이 있었지만, 다른 나라의 경우에도 그런 컴퓨터들은 IBM PC 호환기종 같이 많이 팔리지는 않았다. 반면 일본은 한자라는 특수한 상황 덕에 독자 컴퓨터의 존속 시간이 길었다. PC-9801을 비롯하여 여러 회사에서 만들어낸 많은 독자 아키텍처가 존재했다.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NEC, 샤프, 후지쯔 등에서 만든 컴퓨터는 1990년대 초반까지도 독자 아키텍처였다.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중반까지를 풍미했던 일본 국민 PC 기종이었다. 여러 개조와 업그레이드 과정을 거쳐서 투알라틴 펜티엄 3 CPU를 장착하고 나머지 부품도 그에 준하는 시스템으로 만든 용자도 존재한다(...).
하지만 1990년 DOS/V의 등장으로 IBM PC 호환 기종에서도 간단하게 한자 표현이 가능해졌다. 그로 인해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싼 편이었던[2] PC-9801은 서서히 점유율을 잃다가 마이크로소프트 Windows 95가 등장하면서 사장되었다. 윈도 사용이 가능한 PC-9821이라는 32비트 기종도 나왔지만 별 소용없었다. 다만, NEC는 계속해서 PC-9801과 PC-9821를 지원해 주었고 최종적으로는 Windows 2000까지 발매되었다. 1999년까지 1800만 대 이상을 판매했으며, 2000년에 마지막 모델인 PC-9821ra43(셀러론을 장착한 데스크탑)과 PC-9821nr300(모바일 펜티엄을 장착한 노트북)이 발매되었다. 사업장 작업 환경 유지를 위해 3년간(!) 판매되었다가 2003년에 단종되고 2010년 모든 지원이 끝나게 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이듬해인 2011년 레노버와 합작 법인을 만들어 그곳에 PC 사업을 넘겼고, 2016년에 합작 법인의 지분을 전부 레노버에 매각하면서 PC 사업에 손을 뗐다.

3. 성능


PC-9801은 IBM PC 호환 기종과 구조는 거의 비슷하다. 한자 문제 등 때문에 차별화 되었을 뿐이다. CPU도 인텔의 호환 CPU였던 NEC V20 또는 V30이나 인텔 CPU를 사용하며 운영 체제도 MS-DOS를 이식해 썼다. 매우 단순한 프로그램은 일반 IBM PC 환경에서도 실행될 정도이다.
다만 PC-9801 기종은 IBM PC 호환 기종에 비해 월등한 성능의 SCSI 하드 디스크를 탑재한 덕에 한동안 체감 성능이 비교적으로 좋았다.

3.1. 게임


PC-9801의 그래픽은 해상도는 높았지만, IBM PC 호환 기종의 사정과 마찬가지 이유로 GUI 운영 체제 컴퓨터나 게임기에 주로 쓰였던 블리터나 스프라이트 처리 개념이 없어 처리 속도가 느린 편이었다. 그래서 PC-9801용 게임에 액션 게임은 드물었다. 액션 게임도 움직임이 대부분 딱딱했다.[3] IBM VGA의 규격과 비슷했는데 한자 문제 때문에 320×200의 저해상도는 지원하지 않았고, 최대 640×400의 해상도에 16색의 발색을 지원했다. 대신 높은 해상도를 이용한 정적인 게임을 많이 만들었고, 삼국지 등의 전략 시뮬레이션이나 게임기에 낼 수 없는 게임들, 주로 에로게가 많이 있었다. <PC게임=에로게>라는 일본 PC게임 시장의 특징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또한 일본 게임들의 도트 노가다도 16색의 한계를 넘기 위해 시작했다.[4] 실제로 PC-9801용 게임의 스크린샷, 특히 1990년 대 중후반의 에로게를 확대하면 그 처절함(...)을 느낄 수 있다. PC-9821이 되면서 256색으로 증가했다.
게임처럼 복잡한 프로그램들은 IBM PC 호환기종과 호환되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의 어떤 유저가 PC-9801용 드래곤나이트4의 바이너리를 수정해서 DOS/V 환경에서 실행할 수 있게 만든 적도 있다. 확실하지는 않으나 천사들의 오후3 번외편도 이런 식으로 개인이 바이너리를 수정해서 이식했다고 추측한다. 이렇게 아키텍처 차이가 비교적 작고, 응용 프로그램이 API를 통해야 하는 윈도 시절부터는 큰 문제없이 프로그램 호환이 된다. 다만 PC-9801은 PC-9801용으로 따로 발매한 윈도를 깔아야 했다.

4. IBM PC 호환 기종과의 차이점


  • ISA 버스 대신 C 버스라는 독자 확장 카드 버스를 사용하였다. ISA 슬롯보다 좀더 넓직하며 쉽게 낄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이후 9821 초기에는 32비트 버스인 98 로컬 버스라는 32비트 독자 버스가 탑재되었지만 얼마 못 가고 PCI를 채택하게 된다.
확장성이 별로 좋은 편은 아니다. 일반적인 가로형 데스크탑 케이스는 PCI 슬롯 2개, C 버스 슬롯 3개가 있는데, C 버스는 그렇다 쳐도 PCI 슬롯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픽 카드와 SCSI 인터페이스 카드를 끼면 더 이상 PCI 슬롯을 사용할 수 없다. 더 문제는 케이스 규격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어떤 기종을 사도 똑같다(...). 극소수의 타워형 기종만 PCI 슬롯 3개, C버스 슬롯 4개이다. 그래서 PC-98 주변 기기 회사에서는 카드 하나에 여러가지 기능을 넣어 발매했다. 예를 들어 SCSI+USB+LAN이 통합되어 있는 확장 카드라든가... 심지어 이 카드의 이름은 짬뽕이다.
  • 그래픽은 초창기에는 고정 8색 만을 지원했지만, 이후 흔히 알고 있는 4096색 중 16색의 화면을 표시할 수 있는 그래픽 기능이 표준으로 채택되었다. 그리고 PC-9821이 되자 256색 화면을 표시할 수 있게 업그레이드 되었다. 하지만 Windows 3.1이 발매되고 나서 색상이나 해상도, 처리 속도 면에서 떨어져서 Windows를 돌리기에 부적합하여 그래픽 가속기(현대의 그래픽 카드. 윈도 같은 GUI 운영 체제를 위해 블리터 연산장치를 내장해 가속기라고 부른다.)가 여럿 발매되었다.[5] 그래픽 성능은 PC-9801의 성능을 떨어뜨리는 주요 원인이었던지라 PC-9801을 업그레이드한다면 무조건 그래픽 가속기부터였다. PC-9801에서 본좌 취급 받는 그래픽 가속기는 바로 부두 밴시. 다만 일부 기종의 경우 메인보드 컨트롤러 칩셋의 성능 문제로 PCI 대역폭이 제대로 안 나와서(...) 장착해도 제 성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 외에도 S3나 매트록스 등, IBM 호환 기종에서 인기있던 그래픽 카드들이 PC-9801용으로 많이 발매했다. 그리고 후술하겠지만 Windows 2000이라면 더 이후에 나온 그래픽 카드가 사용 가능했다.
  • 사운드는 사무용 컴퓨터로 시작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비프음만 지원했지만, 야마하 OPN YM2203칩을 넣은 PC-9801-26이라는 FM 음원 사운드 카드가 등장하였으며, 이후 PC-9821의 발매와 함께 야마하 OPNA YM2608 칩을 넣은 상위 호환 FM 음원 카드인 PC-9801-86이 발매되었다. DOS 게임을 즐기려면 이만한 카드가 없으나 PCM 데이터를 DMA 컨트롤러를 사용하지 않고 CPU로 가져오는지라 성능 저하가 심해서 Windows 환경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DMA 컨트롤러를 통해 PCM 데이터를 전송받는 사운드 카드가 속속들이 등장했지만 대부분 FM 음원을 빼버리거나 호환성이 막장이었다. 그래서 DOS와 Windows 모두에서 원활하게 사용 가능했던 QVision의 WaveStar라는 사운드 카드가 굉장히 인기가 많았다.
IBM 호환기종의 사실상 표준 사운드 카드였던 사운드 블라스터 16도 PC-9801용으로 발매되었으나, 호환되는 게임이 별로 없어서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였다(...). 사운드 블라스터 16을 지원하는 게임으로는 같은 서양 게임 이식작이 대다수이며, 일본 게임 중에서는 은하영웅전설 4, 영웅전설4 등이 있다.
  • PC-9801에 하드를 그다지 많이 달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초창기 사무용의 경우엔 그다지 달지 않는 케이스도 있긴 했다. 그러나 개인용으로 구매하는 유저들은 대부분 하드 디스크를 구입하여 사용하는 편이었다. PC-9801은 주로 SCSI 하드 디스크를 탑재했고, 이것이 IBM PC 호환 기종에 비해 체감 성능이 좋았던 이유였다. 실제로 SCSI는 1986년에 발표한 SCSI-1 규격이 5MB/s를 지원하며, 1994년에 발표한 SCSI-2는 20MB/s 를 지원했다. ATA-1가 대중에게 보급되기 전까지의 하드 디스크 인터페이스는 IBM XT의 XT-IDE로서 용량도 속도도 한참 떨어지는 시게이트의 ST-506/ST-412 인터페이스 규격이었다. 이 규격은 원래 플로피 디스크 인터페이스 규격을 하드 디스크에 적용한 것인지라 매우 느릴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ATA-1 규격은 1994년에 발표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ATA-1의 WDMA 2 모드인 8.3MB/s의 속도를 생각하는데 초창기에는 WDMA 1 모드로 동작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 경우에는 4.2MB/s 속도였다. IBM XT 및 PC-9821의 발매년도와 그 당시 컴퓨터의 주된 목적을 생각하면 생각하면 PC-9821이 뛰어났으면 뛰어났지 못하진 않았다. 1998년 ATA-4(UltraDMA-33) 규격이 하드 디스크 인터페이스 표준이 되어 대중에게 보급이 되면서 이런 IBM PC 호환 기종과 체감 성능 차이가 사라졌다.
    • PC-9801의 갈라파고스 문제는 맞는 이야기이지만, 용량 문제는 좀 걸러 들을 필요가 있다. 당시 한국에 컴퓨터 붐이 일어났을 때 소위 전문가들조차도 반일 감정으로 PC-9801의 성능을 제대로 비교하지 않았다. 또한 하드 디스크 용량 문제도 과장되고 잘못된 내용이었다. IBM PC 호환 기종의 경우 1995년까지만 해도 하드 디스크 최대 용량은 낡은 IBM BIOS 규격 문제로 504MB였으며, 그해 IBM마이크로소프트, 피닉스 테크놀로지가 BIOS 규격을 개정하면서 해결되었다. 반면 1993년 1월 PC-9821 Mate A(PC-9821 고급형)을 선보일 때 SCSI-2 인터페이스 카드인 PC-9801-92[6]를 같이 선보였으며, 당시 SCSI-2 인터페이스 카드를 탑재한 92 호환 모델은 55 호환(SCSI-1) 모델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8.4GB 문제를 해결하였다. 그래서 55 호환 제품의 SASI 나 SCSI-1이 8.4GB의 용량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55 호환을 오랫동안 사용하면서 크게 문제가 되었을 뿐이었으며, 일반인들에게 8.4GB 하드 디스크의 문제가 대두된 것은 Windows 95 출시 이후였다. 그리고 IBM PC 호환 기종 유저들도 같은 증상을 겪었다. 그 즈음에는 Mate B(저가형)[7]에서 Mate X[8]로 넘어가면서 매우 폭넓은 라인으로 인해 저렴한 가격으로도 92 호환을 갖추기도 했다. 가정집에서 골동품으로 보관하는 92 호환들은 대부분 MATE X 시리즈들이다. 그리고 PC-9821이 IDE 인터페이스를 지원하는 건 덤이었을 뿐, 주로 SCSI 하드 디스크가 보급되었다. NEC에서 PC-9801의 보조 기억 장치 규격으로 IDE 인터페이스를 도입한 것은 1991년 2월 PC-9801UR부터이다.
  • 플로피 디스크에 A:\와 B:\를 할당하고, 하드 디스크와 광 디스크에 C:\ 이하를 할당하는 IBM 호환 기종과는 달리 부팅 디스크를 A:\로 할당한다. 예를 들어 하드 디스크에 운영 체제를 설치하고 부팅하면 하드 디스크가 A:\, 플로피 디스크가 B:\, CD-ROM 드라이브가 C:\가 되는 방식이다.
  • 운영 체제는 IBM PC 호환 기종과 마찬가지로 MS-DOS와 윈도를 사용하였다. 윈도의 경우 1.0부터 2000까지 발매되었는데, 하드웨어 추상화 계층(HAL, Hardware Abstraction Layer)이 있는 윈도의 경우 IBM PC 호환 기종과 응용 프로그램 호환성이 많이 좋아졌으며, 아예 다양한 종류의 CPU 지원을 염두에 두고 개발한 NT 커널계 윈도(NT 3.51, NT 4.0, 2000가 발매됨)의 경우 일부 IBM PC 호환 기종의 확장 카드와 장치 드라이버 소프트웨어를 사용 가능하다. 상술했듯이 부두 밴시 이상의 그래픽 카드를 사용하려면 Windows 2000을 사용해야 한다.

5. 기타


98NOTE라는 상표로 랩톱 컴퓨터를 발매했다. 참고로 도시바는 그때 당시에도 IBM PC 호환기종 랩톱 컴퓨터를 만들었다. 후지쯔에서도 FM TOWNS 랩톱 컴퓨터를 하나 내놓았는데, TOWNS가 지향하던 교육 시장 전용 모델이고, 좁은 공간을 활용하기 위해 제조된 모델이라 배터리가 없다. 다만 일부 기종을 제외하고는 전부 흑백 LCD를 가지고 있었다. 몇몇 게임에서 존재하는 '모노크롬' 등의 명칭으로 불리워지며 일반적인 컬러 화면에서 색상이 괴상해지는 화면 모드는 바로 이 흑백 LCD 노트북에 최적화된 화면이다. PC-9801 시절에는 딱 한 모델만 컬러 LCD였으나, PC-9821부터는 거의 대부분 컬러 LCD로 발매되었다.
1990년대 중반까지도 일본인들은 "PC"라 하면 PC-9801을 지칭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기에, Windows 95가 나온 후 윈도 95가 탑재된 컴퓨터를 PC-9801과 구분하기 위해 "윈도 95"라 불렀다. 운영 체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윈도 95 탑재 PC 자체를 그리 부르는 것이다. 당시 "나 윈도 95 샀다"라고 하면 십중팔구 컴퓨터를 샀다는 의미였다.
한국에서 이 기종으로 발매된 게임 중(에로게를 제외하고) 유명한 것을 꼽자면 삼국지 시리즈, 프린세스 메이커 시리즈, 영웅전설 시리즈 등이 있다. 한국에는 모두 IBM PC 호환 기종으로 이식해 들어왔다.
덕후 계열에서는 동방 프로젝트 시리즈 중 동방영이전부터 동방괴기담까지 이 기종을 통해 나온 것으로 유명하다. 통칭 구작이라 하며, 이후 윈도우즈 기반으로 나온 동방홍마향부터는 신작이라고 칭한다.
여담이지만 삼성전기[9]가 1987년 NEC와 기술제휴로 사무용 PC를 들여오려 했을 때 이 기종을 들여와 한국에서 생산하려 했다고 한다. 그러나 매년 업그레이드 하는 NEC의 기술력으로 볼 때 삼성전기가 업그레이드 기종을 계속적으로 발매할 기술이 없다고 판단, NEC의 다른 기종을 들여왔었다.[10]
PC-9801/9821는 한국에 정식 발매되지는 않았으나 은근히 많이 들어와 있는데 주로 공장에서 과거에 일본산 장비를 도입하면서 산업 장비 제어 컴퓨터로 같이 도입한 것들이다. 사실상 한국에서 PC-9801/9821이 쓰인 곳들은 대부분 공장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현재도 그 장비들이 현역으로 돌아가는 곳이 은근히 많은데, 그덕에 산업용 컴퓨터 수리 전문 업체 중에 PC-9801/9821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곳도 있고, 한국에서 PC-9801/9821 중고 기종들이 산업 장비 제어용으로 꽤나 고가에 거래되기도 한다. NEC에서는 아예 공장에서 산업 장비 제어용으로 최적화한 FC-9801/9821 시리즈를 만들기도 했는데 이것들도 한국에 산업 장비 제어용으로 제법 들어왔다.
일본 원판과 제휴해 출간하는 전파과학사 블루백스 시리즈에서 BASIC 프로그래밍이 들어가는 책은, 예제가 PC-9801 기준으로 작성했다. MSX BASIC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다르기 때문에, MS-DOS에서 실행하려면 살짝 머리를 써야 한다.

6.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 오! 나의 여신님 OVA판에서 스쿨드가 다루는 컴퓨터로 등장한다. 사용 기종은 1986년에 출시된 PC-9801UV2이고 모니터는 1985년에 출시된 NEC[11] N5913 모델이다.
  • 너의 이름은.에서 테시가와라 카츠히코의 방에 있는 컴퓨터로 1992년에 출시된 PC-9821(일명 98MULTi)이 등장한다.
  • 스즈미야 하루히의 소실 극장판 애니메이션에서 PC-9821 VALUESTAR 계열 모델이 등장한다. 극중에서는 16MB 메모리에 윈도 95가 설치되어 있다.
  • 아이 러브 서티에서 주인공인 고베 히토시의 컴퓨터 중 하나로 1992년에 출시된 PC-9801US가 등장한다. 이는 당시 아카마츠 켄이 소유하고 있던 모델이기도 하다.

7. 관련 문서



[1] 호환기종을 제작한 회사는 세이코 엡손뿐이었다. 세이코 엡손도 호환기 출시 초창기에 NEC에게 고소당했고, 소송이 끝나고도 NEC에서 운영 체제나 BASIC 인터프리터 같은 프로그램들이나 하드 디스크 인터페이스 등에 대해서 태클을 걸었기 때문에 여러모로 손해 본 게 많았다. 이런 이유로 다른 회사들은 PC-98 호환기종 개발을 중지했다. 참고로 유명한 PC-98 에뮬레이터 중 하나인 Anex86은 NEC의 정식 기종이 아닌 세이코 엡손의 호환 기종을 바탕으로 만든 에뮬레이터.[2] 여담으로 PC-286이나 PC-386 시리즈 등등, 세이코 엡손의 PC-98 호환 기종들은 비슷한 사양의 PC-9801보다 평균적으로 10만 엔 가량 저렴했다.[3] IBM PC 호환 기종도 마찬가지로 한때는 액션 게임의 움직임이 딱딱했다. 물론 286 AT시절 뛰어나고 부드러운 스크롤 처리 능력을 보여 주었던 커맨더 킨 시리즈도 있었지만, 그 게임의 프로그래머는 존 카맥이다. 이렇게 뛰어난 프로그래밍 능력으로 극복한 경우도 드물게 있다. 그러나 DOS 게임 중 움직임이 부드러운 게임 상당수는 386/486 이상을 필요로 한다.[4] 이와 관련해서, PC통신 당시 하이텔의 고전게임 동호회에는 뜬금없게도 사실상 에로게에 대해서 다루는 게시판이 있었다. 소모임 등을 제외하면 하이텔에서 가장 큰 에로게 포럼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맨 처음에는 PC-9801 게임 게시판으로 출발했지만 게임 특성(...)으로 인해 어느새 그렇게 된 것이다.[5] 기본적으로 그래픽 가속기는 Windows를 쾌적하게 돌리기 위해 나온 것이지만 일부 DOS 게임에서도 지원이 가능한데 코에이앨리스 소프트가 대표적으로 그래픽 가속기를 지원한 게임을 많이 만들어낸 회사다. 그래픽 가속기를 지원하는 노부나가의 야망삼국지 시리즈는 최대 1024×768의 해상도까지 지원하였다! 다만 이런 고해상도 모드로 게임을 하면 C버스의 전송 속도 한계로 병목이 일어나서인지 표준 해상도보다 화면 표시 속도가 느려진다.[6] 보통 92 호환이라고 하면 이것을 말한다.[7] Mate A, B는 같은 해에 나왔다.[8] 1994년 7월 출시.[9] 삼성 그룹 산하 전자 부품 회사. 지금은 삼성전자가 삼성 그룹 내 타 전자 계열사보다 월등히 크지만 1980년대만 해도 전자 업종을 사업 영역 별로 쪼개 놨던 시절이라서 삼성전기의 위상도 삼성전자보다 크게 낮지는 않았다. 삼성전자가 지금처럼 커진 것은 별도 회사였던 삼성반도체통신 등을 통합하고 삼성전기 등 타 전자 계열사의 중복되는 사업 영역을 흡수했기 때문이다.[10] 출처: 월간 마이크로소프트 웨어 1987년 9월호[11] 작중에서는 NIC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