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비아

 



잠비아 공화국
Republic of Zamb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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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국장
One Zambia, One Nation
하나의 잠비아, 하나의 국민
국가
자부심과 자유로 일어서는 잠비아의 노래
(영어: Stand and Sing of Zambia, Proud and Free)
면적
752,618km2
인구
18,920,657명(2021년) | 세계 65위
수도
루사카
공용어
영어 외 토착어
종교
기독교 75% (기독교, 가톨릭 포함)
, 이슬람교, 토착신앙
1인당 GDP
명목 1,540$(2018)
국부
$200억 / 세계 124위(2019년)
정부 형태
대통령중심제, 공화국
정부 형태
167개국 중 99위(2020년)[혼합된체제]
대통령
에드가 룽구
부통령
이농게 위나
외교장관
할레 칼라바
민족
반투족 98.5%(통가족, 날자족), 백인 1.5%
국제 연합 가입
1964년 12월 1일
남북수교현황
대한민국: 1990년 9월 4일
북한: 1969년 4월 12일
교민 수
136명
통화
콰차(ZMK)
시간대
CAT (UTC+2)
도메인
.zm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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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3. 경제
4. 자연
5. 지리
6. 사회
7. 교육
8. 스포츠
9.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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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남아프리카 지역에 위치한 내륙국. 감비아와는 다른 나라이다.
세계적인 구리 생산국이다. 현재는 어느 정도 활발히 경제성장이 진행되어서 사정이 조금 나아졌지만 심각한 빈부 격차와 정치가들의 부정부패가 국가 발전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2. 역사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으며 북로디지아(Northern Rhodesia)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다가 1964년에 독립하였다. 내륙국이지만 구리를 수출할 필요 때문에 바다를 접한 이웃나라인 모잠비크, 탄자니아, 앙골라, 콩고민주공화국과는 협력적 관계에 있다.[1] 그러나 콩고민주공화국과는 잠비아 북부 지방에 위치한 작은 영토 치엔기(Chiengi)의 소유권을 두고 국경/영토 분쟁을 겪고 있는 중이다.[2] 이런 이해관계 때문에 콩고 전쟁에 깊숙히 개입하기도 했으며[3] 1960, 70년대에는 포르투갈의 식민지배를 받고 있던 모잠비크앙골라의 식민지 독립전쟁을 지원해주기도 했다.
2014년 사타 대통령이 사망하고 부통령인 스콧이 대통령직을 승계하면서 백인 대통령이 탄생하기도 했다. 물론 이민 4세가 아니기 때문에 대통령 보궐선거에 정식으로 출마할 수는 없다. 한편 2015년에 진행된 대통령 선거에서 당초에 여당 후보가 압승할 것이라고 예상되었으나 여당 내의 내홍으로 인해 지지율이 떨어져서 48.3%의 득표율로 야당과 1.6% 차이로 겨우 이겼고, 거기에다가 대통령 선거 이후에도 야당의 선거 불복과 여당 내 내홍으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3. 경제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국가 주도의 대규모 경제정책을 실시했으나 크게 성과를 내지 못했다. 더불어 1980년대에 구리값이 폭락하면서 경제가 더 어려워지기도 했으며 이 때문에 90년대 말에 벌어졌던 대규모 에이즈 사태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없었다.
단, 잠비아의 1인당 국민소득을 보면 잠비아 본국이 위치해 있는 동아프리카 기준에서는 그다지 낮다고 볼 수 없기에[4] 경제정책이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것은 어느 정도는 너무 가혹한 평가인 부분도 있다. 결국 어디까지나 잠비아 국토에 있는 천연자원의 양과 질에 비해서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사실 아프리카 전역에 널려있는 게 천연자원의 이점을 살리기는 커녕 자원의 저주에 빠져서 신세를 완전히 망친 사례들인데 그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고 자원을 토대로 어느 정도는 산업을 육성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부분도 있다.
2000년대 들어 아프리카에 대량 투자를 하고 있는 중국에 의해 막대한 경제 원조를 받고 그 대가로 자국의 구리 광산을 거의 통째로 중국에 개발을 맡기고 있다. 이로 인해서 매년 상당한 경제 성장(대략 6~8%대)을 기록하게 되었지만, 중국인들이 국민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심지어 살해하는 일이 일어나도 잠비아 정부는 중국의 눈치를 보며 살해자들을 옹호하기 바빠서 국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덕분에 2011년 선거에서 민주주의 운동당[5]에서 애국전선으로 정권이 교체될 정도였다.
중국-아프리카 관계를 참고하면 알겠지만 현 정부가 빈민층들의 지지로 집권한 지라 중국 기업을 압박하고 있다.
2020넌 10월 15일 불룸버그통신 보도에 따르면 잠비아는 30억 달러(3조4천억원) 규모의 달러화 채권자들에게 이자지급 6개월 유예를 요청했으나 사실상 거부당한 상태다.
다음주 회의를 앞두고 이들 채권자들이 시한 유예를 꺼리는 것은 공평하지 못하게 부담을 떠안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잠비아 대외 채무 120억 달러 중 3분의 1 정도는 중국 측에 있으며 중국 측 채권자 중 일부는 시한 유예에 합의하려면 중국 몫의 이자부터 달라고 잠비아를 압박해왔고 잠비아는 이를 거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기사
결국 국가부도에 거의 근접해지고 있다.#
결국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위기로 세계 최초로 ‘코로나 부도’ 국가가 되었다.# 11월 16일에 잠비아 재무부는 중국 수출입은행과 채무 1억1000만달러(약 1218억 원)에 대한 이자와 원금 지급을 유예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4. 자연


세계 3대 폭포 중의 하나인 빅토리아 폭포짐바브웨 국경지대에 있다. 그러나 경관 자체는 짐바브웨빅토리아 폭포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잠비아는 빅토리아 폭포를 옆에서 바라본다) 잠비아 쪽보다 사진찍고, 관광하기에 좋다. 잠비아 북동부에는 탕가니카 호가 존재한다.
동물의 왕국 아프리카 대륙에 위치한 나라답게 사자, 표범, 치타, 얼룩말, 하마, 기린, 코끼리 등 아프리카하면 떠오르는 많은 야생동물들이 서식하고 있으며 루앙가와 키산카, 리와 등 여러 국립공원들이 존재하고 있어 야생동물 사파리 관광 산업을 통한 외화벌이도 이뤄지고 있다. 다만 사파리 관광 국가로서의 인지도는 그 유명한 탄자니아남아프리카 공화국, 나미비아, 케냐 등보다 덜 유명한 편이다.

5. 지리


빅토리아 폭포에서 서쪽으로 약 40km 정도 떨어진 곳에 카중굴라(Kazungula) 라는 작은 마을이 하나 있는데 그 마을은 세계에서 유일한 4개 국가의 국경이 한 점에 만나는 곳으로 유명하다. 잠비아, 짐바브웨, 나미비아, 보츠와나 이 네 나라의 국경이 이 마을에서 만난다.
다만 이후 나미비아와 짐바브웨의 양보로 보츠나와와 잠비아의 접경지대가 생겼고, 다리를 건설하고 있다.

6. 사회


90년대 말-2000년대 초반에 걸쳐서 에이즈가 퍼졌을때 평균 수명이 33세 정도로 에스와티니급 정도였다. 한때 심각하게 국민들이 죽어나간 적도 있어서 붙여진 별명은 "죽음의 땅". 현재는 어느 정도 회복되어서 2012년 기준으로 57세를 기록하고 있지만 여전히 낮다. 그런데도 출산율이 계속해서 5~6명대의 높은 비율을 유지하고 있어서 인구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잠비아는 1996년 헌법에서 기독교를 국교로 규정했다. 인구의 97% 가까이가 기독교를 믿고 있으며, 성공회를 포함한 개신교(약 68%), 가톨릭(21%)과 기타 토착 기독교회들이 공존하고 있다. 그외 극소수 무슬림들도 있다. 이 동네에서 목사가 될려면 꿈에서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하고 자기자신에게 안수기도를 내리면 된다고 한다.
에스컬레이터가 나라 전체에 5개밖에 없기에 일반 국민들에게 신기한 구경거리로 여겨지고 있으며, 쇼핑몰에 가서 옷이나 음식을 안 사고 에스컬레이터만 타고 오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한다.[6]
각종 언론 및 환경단체에서 '세계에서 가장 오염된 도시들'를 선정할 때 항상 이름을 올리는 도시가 이곳에 있다. 카브웨(Kabwe)라는 도시로, 대규모 광산이 있는 곳인데 이 때문에 이 지역은 납 오염이 매우 심각하다.
몇 년 사이에 콜레라가 확산중이고 게다가 콜레라가 빨리 확산되자 잠비아 정부가 2018년 1월 10일에 여권 발급을 잠시 중단하는 등 콜레라 확산을 막기 위해 방역작업을 벌이고 있다. #

7. 교육


놀랍게도 아프리카 국가중에선 전무후무하게 우주 계획을 세우고 진행도 했었다. 1964년에 독립하자마자 진행한것이 이 계획... 국가과학부장인 '에드워드 마쿠카 엔콜로소'에 의해 진행된 잠비아 우주 계획은 무려 미국과 소련보다 더 빨리 사람을 달에 보낸다는 계획뿐만 아니라, 심지어 화성에까지 사람을 보내겠다는 참으로 야심찬 계획이었다.
화성에는 한 명의 특수 훈련된 17세의 여성, 역시 특수 훈련된 두 마리의 고양이, 그리고 기독교를 전파할 선교사를 보낼 계획이었고, 화성인들에게 굳이 종교를 억지로 강요하지는 않겠다... 라고도 발표했었다. 이 계획의 참여자들은 '아프로넛'[7]이라고 불리웠으며, 마쿠카는 잠비아 정부가 우주의 일곱번째 천국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게 되었으니 악마와의 싸움을 위해 이 계획을 지원함이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훈련 또한 괴악하기 그지없었는데, 훈련 방식은 무려 '재진입 및 우주여행' 체험을 위해 드럼통에 사람을 넣고 비탈을 굴러가게 하는 것과, '무중력' 상태를 체험하기 위해 그네 따위를 태우는 것이 전부였다. 그들을 화성까지 보낼 로켓, 'D-Kalu'는 고작 2X3m 크기의 드럼통 모양의... 어떠한 물건이었다.
이 계획을 진행하기 위해 마쿠카는 유네스코에게 700만 잠비아 파운드의 지원을 요청했지만, 당연히 무시되었다. 마쿠카의 계획은 훈련센터에서 화성에 가기로 한 여성이 다른 훈련생과 눈이 맞아 임신을 하면서 휘청이기 시작했고, 1969년 훈련생들이 떠나며 취소되었다. 그리고 곧 미국이 아폴로 계획으로 달에 사람을 보냄에 따라 그의 정신나간 계획은 영원히 묻히게 된다. 마쿠카는 1989년에 자연사한다.
당연히 전혀 성공할 수 없는 무모한 짓이었지만, 그렇기에 의미가 있다. 이 계획이 세위진 당시는 상술한 대로 잠비아가 독립해 주권국이 된지 얼마되지 않은 때이자, 소련보스토크 계획을 성공시키며 인류 최초로 유인우주비행에 성공해 미국과 소련간 우주 경쟁이 본격화되던 시기였다. 이를 본 마쿠카는 우주개발이 자신들을 지배했던 영국과 동급, 혹은 그 이상의 강대국들과 자국이 동일선상에서 시작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자국에 힘을 복돋아주기 위해 이런 계획을 세운 것이었다.

8. 스포츠


한때 아프리카에서도 손꼽히는 축구 강국이었다. 1988 서울 올림픽 때는 메달을 따지는 못했으나 잠비아 축구의 전설적인 선수 칼루샤 브왈랴(Kalusha Bwalya)의 해트트릭으로 이탈리아를 4-0으로 이기기도 했다. 아프리카 나라 중 올림픽 축구 종목에서 메달을 처음 받은 나라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받은 가나이다.
이후 1994 미국 월드컵 예선에서 압도적인 모습으로 승승장구하며 월드컵 진출을 확정짓는 듯 했으나, 1993년 선수단이 세네갈 원정을 위해 이동중에 가봉리브르빌에서 비행기 추락사고로 선수단 전원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졌다.[8] 이 사고로 인해 잠비아의 국민적인 축구 영웅 고드프리 치탈루(Godfrey Chitalu) 감독, 알렉스 촐라(Alex Chola) 코치, 데이비드 차발라(David Chabala) 등이 사망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당시 에레디비시PSV 아인트호벤에서 뛰고 있던 칼루샤 브왈랴는 다른 비행기로 이동 중이어서 사고를 면했다. 그러나 국가대표팀의 대부분을 잃어버린 이 사고로 말미암아 모로코가 운이 좋게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고 잠비아 축구는 몰락했다.
그러나 이후로도 여전히 아프리카에선 다크 호스로 인정받는 팀이다. 2012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는 드록신코트디부아르를 꺾고 우승까지 하기도.[9] 2019년 현재 대한민국과의 상대전적은 4전 2승 2패. 한국이 아프리카에 상대적으로 강한 편이고,[10] 4경기 중 3경기가 한국 홈이었음을 감안하면 꽤 선전한 편이다.
그러나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선 최종 예선도 오르지 못했다. FIFA 월드컵 8강, 올림픽 동메달, FIFA U-17 월드컵, FIFA U-20 월드컵 우승같이 화려한 성적을 낸 가나와 같은 조에서 만난 게 불운이지만, 그래도 가나와 1승 1패(1-2, 1-0)를 주고 받으며 선전했다. 그러나 약체인 레소토에게 원정 1-1, 수단 공화국에게 안방에서 1-1로 비긴 게 타격이 커서 3승 2무 1패,조 2위로 일찌감치 2차예선에서 탈락했다. 당연히 가나가 1위로 최종 예선 진출.
이 나라의 축구 대표팀에 대해서는 잠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참조.
2008 베이징 올림픽 당시, 204개 참가국 선수단 가운데 개최국 중국을 제외하면 가장 마지막으로, 즉 203번째로 입장한 선수단이 바로 이 나라 선수단이었다. 당시 참가국 선수단은 개막식 선수단 입장시에 올림픽의 발상지를 예우하는 차원에서 항상 처음으로 입장하는 것이 관례인 그리스[11]와 맨 마지막에 입장하는 것이 관례인 개최국, 중국을 제외하면 중국 간체자로 음차한 국가 이름의 맨 첫글자의 획수 순으로 입장했는데, 잠비아는 중국식 표기로 赞比亚로, 첫글자인 赞의 획수가 16획으로 가장 많았기 때문이다.
반대로 그리스 다음으로 두 번째로 입장한 국가는 같은 아프리카 국가인 기니로 기니 역시 중국어 표기 几内亚인데, 맨 첫 글자인 几가 2획으로 다른 국가들보다 간체자 획수 순에서 앞섰기 때문에 기니가 그리스 다음으로 입장했다. 잠비아는 알파벳 순으로 나열해도 국명의 첫글자인 Z가 알파벳의 맨 끝글자이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올림픽 개막식에서 거의 마지막으로 입장하게 된다.[12]

9. 외교




[혼합된체제] 4.86점[1] 주변국가들중 짐바브웨와 말라위는 해안선이 없는 내륙국이므로 제외.[2] 실제로는 잠비아의 영토인데 콩고민주공화국에서도 자국 영토라고 영유권 주장을 펼치고 있다.[3] 콩고 전쟁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웬만한 아프리카 국가들은 전부 개입하긴 했다.[4] 막연한 통념과 달리 아프리카에서 진짜 최빈국들이 몰려있는 곳은 서아프리카가 아닌 동아프리카 지역이다. 이상한 전염병이 발생했다는 기사만 나오면 지역이 서아프리카 쪽이다 보니 이런 통념이 생겼는데, 서아프리카 지역에 전염병이 잦은 것은 생태적으로 병원균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라서 발생한 일이며 경제적인 원인은 생각보다 지배적이지 않다. 당장에 소말리아가 어디 붙어있는지 생각해보자. 잠비아의 경우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는 제일 성공적인 산업화를 이뤘다고 평가받는 케냐랑 비교해도 국민소득이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5] 1991년 민주화 이후 첫 선거에서 집권한 뒤, 2011년까지 집권하던 정당으로 현재도 잠비아 원내2당이자 제1야당이다.[6] 이러한 현상은 근대 한국과 일본에서도 나타났던 현상이다. 서울의 화신백화점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본 것이 자랑거리던 시절이 있었다.[7] Afronaut, AfricaAstronaut의 합성어.[8] 이 사고는 현재까지도 사고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지진 않았다. 일단 가장 유력한 추정은 기내에 화재가 발생했는데 엔진에 붙은 불을 진화하는 데 실패한 것으로 보고 있다.[9] 우연찮게도 우승한 장소가 가봉의 리브르빌이다. 1993년 자국 대표팀의 비행기 추락 참사가 일어난 바로 그 곳.[10] 한국이 아프리카 국가들 중 상대전적에서 열세를 보이고 있는 국가는 2019년 현재 튀니지(2전 1무 1패)와 모로코(2전 1무 1패)뿐이다.[11] 그리스의 중국어 표기는 희랍(希腊)으로 앞글자인 希자가 7획이다.[12] 짐바브웨가 Zimbabwe 표기로 잠비아보다도 더 나중에 입장하게 되지만, 문제는 짐바브웨는 이따금씩 아무런 이유도 없이 올림픽에 참가하지 않는 일이 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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