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의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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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사탄[1]

그 뒤에 예수께서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나가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사십 주야를 단식하시고 나서 몹시 시장하셨을 때에 유혹 하는 자가 와서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더러 이 되라고 해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성서에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리라.' 하지 않았느냐?" 하고 대답하셨다. 그러자 악마는 예수를 거룩한 도시로 데리고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뛰어내려 보시오. 성서에, '하느님이 천사들을 시켜 너를 시중들게 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너의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시리라.' 하지 않았소?"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을 떠보지 말라.'는 말씀도 성서에 있다." 하고 대답하셨다. 악마는 다시 아주 높은 산으로 예수를 데리고 가서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며 "당신이 내 앞에 절하면 이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사탄아, 물러가라! 성서에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하시지 않았느냐?" 하고 대답하셨다. 마침내 악마는 물러가고 천사들이 와서 예수께 시중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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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오의 복음서 4장 1절-11절, 공동번역성서

'''Temptation of Christ'''
예수가 광야에서 사탄에게 받은 3가지 유혹을 일컫는 말. 사탄의 3가지 시험으로도 일컫는다.
1. 영문 명칭과 일부 사전의 번역 오류
2. 배경
3. 사탄의 유혹
3.1. 첫번째 유혹
3.2. 2번째 유혹
3.3. 3번째 유혹
4. 복음은 우리에게 무엇을 전하려 하는가?
4.1. 온전한 사람으로서의 예수
4.2. 마태오 복음사가가 전하는 마귀(diabolos)의 모습
4.3. 예수를 통하여 다시 사람에게 봉사할 수 있게 된 천사
4.4. 구약과 신약의 이어짐
5. 창작물


1. 영문 명칭과 일부 사전의 번역 오류


<광야의 유혹>을 영어로는 대개 <Temptation of Christ> 혹은 <Temptation of Jesus>라고 하는데, '예수가 받은 유혹' 정도의 의미이다. 그런데 종종 of를 그냥 바로 '~의'로 번역해버려서, '예수의 유혹'이라는 충격과 공포의 이름으로 쓰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당장 네이버 영어사전에도 'Temptation of Christ'가 '그리스도의 유혹'으로, 'Temptation of Jesus'가 '예수의 유혹'으로 나와있는데, 영어를 잘못 직역해서 벌어지는 참사. 물론 어법적으로 보자면 '예수가 겪은 유혹'을 '예수의 유혹'으로 적는게 오역은 아니겠지만, 뉘앙스에서 예수가 유혹의 주체가 되는 이상한 인상을 줄 수 있다.

2. 배경


4복음서에서 광야의 유혹은 마태오의 복음서루가의 복음서에만 자세한 이야기가 등장하고, 마르코의 복음서에서는 광야에서 시험을 받았다고만 언급된다.[2] 일반적으로 알려진 이야기의 형태는 마태오 복음서의 기술을 따르고, 루카 복음서는 큰 차이는 없으나 다만 2번째 유혹과 3번째 유혹이 마태오 복음서의 순서와 다른 차이점이 있다.
마태오의 복음서에 의하면 예수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후 광야로 나아가 40일동안 금식했는데, 사탄이 나타나 3가지의 유혹을 하지만 예수는 사탄의 유혹을 이겨냈다고 말하고 있다.[3]
불교에는 마라 파피야스가 부처를 유혹하는 내용이 있는데 꽤 비슷한 면이 많다.

3. 사탄의 유혹



3.1. 첫번째 유혹


예수는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을 하고 있었는데 시험하는 자(사탄)가 이 순간 나타나서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들을 으로 바꿔보시오"'''라고 유혹했다. 하필이면 예수가 40일 동안 금식해서 가장 지쳐있는 순간에 사탄이 그 취약한 부분을 건드렸다는 것을 볼 수 있는 대목.[4]
그러나 예수는 '''"성서에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리라.' 하지 않았느냐?"'''[5]라고 반격하여 사탄의 첫번째 유혹을 물리쳤다.
이 첫번째 유혹에서 빵을 물질로 해석해서, "하느님의 아들로서 세상을 구원하려면 돌을 빵으로 만들듯이 물질을 만들어서 한번 해보시오"라고 사탄이 공격한 것이란 분석도 있다.[6] 그러나 예수는 "세상을 구원하는 방법은 (빵으로 대표되는)물질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이어야 한다"고 강조하여 이를 반박했다는 것이다. 실제 훗날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할 때 사람들은 예수가 제공하는 물질적 풍요로움에만 관심이 쏠려서 예수를 따랐고, 이에 실망한 예수는 사람들을 피해 떠나기도 했다.[7]

3.2. 2번째 유혹


첫번째 유혹이 실패로 돌아가자 사탄은 예수를 2번째로 유혹하는데 예수를 거룩한 성, 즉 예루살렘으로 데려가서[8] 예루살렘 성전의 꼭대기에 세운 다음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여기서 뛰어내려 보시오"'''라고 말한다.[9] 첫번째 유혹에서 예수가 신명기로 응수하자 이를 감안했는지,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너의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시리라"'''라고 성경까지 인용해가면서 근거를 댄다.[10] 즉, 예수가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면 천사들이 와서 부딪히지 않게 받쳐줄 것이니 해보라고 한 것. 예루살렘 성전은 제사와 기도를 위해 항상 수많은 사람이 오고 가는 곳이니, 이런 기적을 행하면 사람들이 놀라서 예수를 따르게 될 것이란 이야기였다.
그러나 예수는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말라"'''[11]라고 반박하며 2번째 유혹을 이겨낸다.
2번째 유혹은 기적 혹은 쇼맨십을 통한 종교행위에 대한 비판이 담겼다는 분석이 나온다. 즉, 놀라운 기적을 통해 신앙을 갖게 하는 것의 위험성을 경고했다는 것. 실제로 복음서를 보면 예수가 기적을 행했어도 '''안 믿는 사람들은 안 믿었다.'''[12] 심지어는 예수가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를 고치는 것도, 귀신의 왕인 베엘제붑의 힘을 빌려서 했다는 식의 비방까지 나왔던 판국.[13] 설령 예수가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서 아무 상처가 없었어도, 모든 사람들이 예수를 메시아로 따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신앙은 기적이나 쇼맨십 같은 것으론 일시적일 수밖에 없음을 강조했다는 것.
루가의 복음서에서는 마태오의 복음서와 달리 이 2번째 유혹이 3번째 유혹으로 옮겨가 있다.

3.3. 3번째 유혹


2번이나 패배한 사탄은 최후의 수단으로 예수를 아주 높은 산의 꼭대기로 데리고 간다. 그리고 산 밑 세상 모든 나라의 영광을 보여주면서, '''"온 세상이 다 보인다. 네가 나에게 경배한다면 이 세계를 다스리는 왕으로 만들어 주겠다."'''라고 유혹한다. 자신이 세상 모든 나라를 쥐고 있으니, 자신에게 경배하면 그 나라와 영광을 모두 주겠다고 한것.
그러나 예수는 '''"사탄아, 물러가라! 성서에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하시지 않았느냐?"'''[14]라고 반박하고, 결국 사탄은 예수를 떠났다. 3가지 유혹이 끝난 후 천사들이 예수에게 시중을 드는 것으로 3가지 유혹은 막을 내린다.
3번째 유혹은 정치 권력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려는 것의 위험성을 지적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는 세상의 권력이나 스펙, 외모, 결혼 등 그런 것들이 최고라고 보여도 결국엔 모든 것이 허상이고 끝은 결국은 멸망, 사람들을 오히려 파괴하는 것이니 현세의 것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예수를 믿고 살라는 뜻이다.[15]
루가의 복음서에서는 3번째 유혹이 2번째 유혹으로 가 있다. 또한 마태와는 다른 서술이 등장한다. 4장 6절에서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16] 이는 아담하와에덴 동산 사건 때 야훼를 배반한 사건을 가리키는 것으로 인간의 배반으로 세상의 권세가 사탄에게 넘어간 것을 암시한다.
그리고 루카 복음서에서는 3가지 유혹이 끝난 후 사탄이 '''얼마 동안 떠났다'''라고 언급한다. 즉 사탄이 이때는 잠시 떠났지만 지속적으로 예수를 유혹했음을 암시한 것. [17]

4. 복음은 우리에게 무엇을 전하려 하는가?



4.1. 온전한 사람으로서의 예수


성령의 인도를 받아 광야에서 단식을 하게 된 예수의 모습을 통해, 마태오 복음사가는 예수가 모든 면에서 우리처럼 유혹을 받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4.2. 마태오 복음사가가 전하는 마귀(diabolos)의 모습


마태오 복음사가는 복음을 통해 마귀(diabolos) 는 성경에 쓰인 하느님의 말씀을 인용하되, 말씀이 가진 본래의 의미와 전혀 다른 의미로 인용함으로써 선과 악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드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또한 하느님의 말씀을 인용하여 논쟁을 벌인 복음의 장면을 통해, 하느님의 말씀에서 그 중심점인 하느님을 간과한 상태로 읽고 인용하여 왜곡된 뜻으로 실생활에 적용하기가 얼마나 쉬운지에 대해 독자들에게 경고하고 있다.

4.3. 예수를 통하여 다시 사람에게 봉사할 수 있게 된 천사


마태오 복음사가는 예수가 광야의 유혹을 모두 뿌리쳤을 때 사탄이 물러가고 천사들이 다가와 시중을 들었다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서 2가지 배경 지식이 필요한데, 하나는 유대교의 전승이고 다른 하나는 로마서 5장이다.
유대교의 전승에 의하면, 하느님이 사람을 창조할 때, 천사들에게 사람을 시중드는 일과, 하느님과 사람 사이에서 하느님을 경배할 것을 명령하였다고 한다. 사람들이 타락하기 이전에 천사들은 하느님의 명령을 따라 사람들에게 봉사하였다. 그런데 그 일을 반기지 않는 천사들이 나타나 하느님에게서 떨어져나갔고, 그런 천사들의 우두머리가 루시퍼라고 한다. 아담하와가 죄를 짓자, 이 무리들은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더 이상 사람에게 봉사할 필요가 없게 됐다"며 대단히 기뻐했다고 한다.
다른 하나인 로마서 5장에서는 다음 부분들을 주의 깊게 봐야 한다.

그러므로 한 사람을 통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를 통하여 죽음이 들어왔듯이, 또한 이렇게 모두 죄를 지었으므로 모든 사람에게 죽음이 미치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 한 사람의 범죄로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죽음이 지배하게 되었지만, 은총과 의로움의 선물을 충만히 받은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을 통하여 생명을 누리며 지배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범죄로 모든 사람이 유죄 판결을 받았듯이, 한 사람의 의로운 행위로 모든 사람이 의롭게 되어 생명을 받습니다.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많은 이가 죄인이 되었듯이,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이가 의로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로마서 5장 12절,17-19절, 가톨릭 성경)

사도 파울로스는 로마서 5장 12절-21절을 통해 아담예수 그리스도를 대응시킨 후, 아담과 하와의 보편성(죽음)보다 예수 그리스도가 가진 보편성(생명)이 더 큰 것을 보여준다.
즉 이 2가지를 종합해 보면, 아담과 하와는 유혹을 이겨내지 못했기에 천사들이 하느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을 명분을 얻게 되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라는 한 사람이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기에 천사들은 다시 사람들에게 봉사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4.4. 구약과 신약의 이어짐


예수가 마귀의 유혹에 답한 3개의 성경 말씀은 모두 신명기를 인용하였다.
복음은 이집트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여호수아의 지도 아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가기 위해 광야를 통과해야 했을 때 겪었던 유혹들을 예수 역시 모두 겪었음을 보여준다.[18]

5. 창작물


  • 클레이 애니메이션 the miracle maker
  • 이완 맥그리거 주연의 영화 광야의 40일이 이 광야의 유혹을 소재로 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 이완 맥그리거는 광야에서 시험에 드는 예수, 그리고 예수를 시험하는 악마 1인 2역을 연기했다.[19]
  • 천로역정 1부에서도 모티브를 따왔을 것으로 추측되는 언급이 나온다. 어떤 의인[20]이 허영의 시장을 지나갈 때 시장을 세운 악마가 그가 대단한 인물임을 알고는 시장의 곳곳을 안내해주며 물건을 살 것을 종용했으나, 그는 아무것도 사지 않고 시장을 떠났다고 한다.
[1] 2번째 유혹을 주제로 한 그림이다. 사탄이 예수에게 천지를 보여주는 모습.[2] 그 뒤에 곧 성령예수를 광야로 내보내셨다. 예수께서는 사십 일 동안 그 곳에 계시면서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그 동안 예수께서는 들짐승들과 함께 지내셨는데 천사들이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 - 마르코 복음서 1장 12절-13절(공동번역성서)[3] 혹자는 이것을 근거로 들어 예수가 광야에서 신의 말씀을 묵상하고 정결하게 생활하던 에세네파 출신이라고 하기도 한다.[4] 당시 이스라엘 지방에서 주식으로 통용되던 빵이 '''얇은 돌'''처럼 생겼다는 것을 봤을 때 상당히 그럴듯한 대목이라 할 수 있겠다.[5] 하느님께서는 너희를 고생시키시고 굶기시다가, 너희가 일찍이 몰랐고 너희 선조들도 몰랐던 만나를 먹여주셨다. 이는 사람이 빵만으로는 살지 못하고 야훼의 입에서 떨어지는 말씀을 따라야 산다는 것을 너희에게 가르쳐주시려는 것이었다. - 신명기 8장 3절(공동번역성서)[6]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까라마조프 형제들'의 대심문관 파트에서도 이 빵에 대해 심도 있게 다룬다.[7] 예수를 따르는게 목적이 아니라 기적 숭배, 힘 숭배가 목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이러한 경향은 당시 유대 전역에 널리 만연해 있었는데, 오랜 식민통치를 청산하고 강력한 군사력으로 유대를 구원할 자가 올 것이라는 메시아 신앙이 그 대표적인 예다. 복음서를 자세히 읽어보면 바리새인들은 예수에게 지속적으로 이적을 보여서 너 자신이 메시아임을 입증하라고 하는가 하면, 심지어 제자들 조차도 예수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면 자신이 오른편에 앉을거라고 서로 싸움판까지 벌인다. 또 예수를 따르는 무리 중 열심당원들도 꽤 있었는데 이들은 예수가 무력과 폭력을 위시한 투쟁을 거부하는 모습을 보이자 일찌감치 기대를 저버린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히기 전날 사도 베드로가 만류한 것에 사탄이라고까지 하며 밀쳐낸 것도 베드로가 진정으로 예수를 생각해서 그랬다기보다는 사심때문일 것이라는 해석도 있을 정도[8] 그걸 왜 따라갔는지 의문이 들 수는 있지만, 사탄을 철저하게 논박하는 것이 공생활의 시작으로서 매우 중요하기 때문으로 보인다.[9] 당시 헤롯 대왕이 중건한 예루살렘 성전의 높이는 약 '''55m'''로 추정된다. 뛰어내리면 끔살을 면치 못한다.[10] "주께서 너를 두고 천사들을 명하여 너 가는 길마다 지키게 하셨으니, 행여 너 돌부리에 발을 다칠세라 천사들이 손으로 너를 떠받고 가리라." 시편 91편 11~12절[11] "마싸아에서처럼 너희 하느님 야훼를 시험하지 못한다." 신명기 6장 16절[12] 이는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민족도 마찬가지였는데 홍해 바다가 갈라지는 엄청난 기적을 보고도 끊임없이 거역을 해댄다.[13] 그 누구보다 가까이서 '''예수가 행한 기적들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체험한''' 12사도들도 예루살렘에 입성하고도 '''예수를 팔아넘기거나 그가 사형을 선고받았음에도 외면했다.''' 하다못해 사도 토마스예수가 부활한 후 "난 못 믿음" 이라고 했다가, 예수가 나타나자 그제야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Dominus meus et Deus meus)!!"이라 고백했다. (여기서 유래된 영어 표현이 a doubting Thomas)[14] 너희 하느님 야훼를 경외하여 그를 섬기며, 맹세할 일이 있으면 그의 이름으로만 맹세하여라. - 신명기 6장 13절[15] 버트런드 러셀은 이 유혹을 가리켜 "이슬람교와 공산주의는 광야의 세번째 유혹에 굴복했다"고 말했다. [16] 개역개정[17] 마태오 복음사가는 이후 복음의 두 장면을 통해 끝나지 않은 사탄의 유혹을 보여준다. 첫째 장면은 베드로예수가 겪을 수난의 길을 막으려 할 때(마태오 16,23)인데, 이때 예수는 "사탄아 물러가라!"고 베드로를 꾸짖었다. 나머지 2번째 장면은 십자가 위에서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는 것이다(마태오 27,40). 이는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에도 등장.[18] 예수가 광야에서 지내며 사탄의 유혹을 받은 '40'일은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으로 돌아가기까지 광야에서 지낸 '40'년과 일맥 상통한다.[19] 이완 맥그리거는 스타워즈 프리퀄 3부작에서 오비완 케노비 역으로 출연했고, 이를 반영한 듯 유튜브의 관련 영상들은 스타워즈 관련 댓글들이 넘쳐나고 있다. "오더 66 이후 오비완이 타투인에 은둔하던 시절의 이야기", "다크사이드가 오비완을 유혹하고 있다", "예수님 포스 쓰신다" 등등.[20] 누구인지는 대놓고 나오진 않았지만 왕중의 왕이라는 표현이 사용되기에 안 봐도 비디오다. 왕중의 왕은 본래 고대 페르시아의 군주를 가리키는 호칭이었으며, 기독교 전래 이후엔 예수를 가리키는 호칭으로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