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이어의 기적
1. 개요
[image]
The Feeding of the 5,000 / 五餠二魚의 奇跡
그리스도교의 성경에 언급되는, 만나와 더불어 먹을 것 관련해서 최고로 꼽히는 기적. 그 상징성 때문인지 4대 복음서 전부에서 언급되는[1] 몇 안 되는 기적이기도 하다. 당시 사람들은 이 기적을 만나와 연관지어서 생각하기도 하였다.
번역본인 '오병이어의 기적'은 말 그대로 '다섯(五) 빵(餠) 두(二) 생선(魚)의 기적(奇跡)'이라는 뜻이다. 사실 餠은 빵이 아니라 떡을 뜻하는 것이지만, 한반도에 기독교가 전파된 계기가 중국을 통해서 들어온 것인데 이 때 중국어판 성경에서 빵(당시 포르투갈어로 pão)을 그대로 음차해서(즉 글자의 의미를 따진게 아니고 발음만 따온 것이다) 餠(pao)라고 적어둔걸 그대로 한반도로 직수입해서 한국어판 성경에서도 餠를 '빵'이란 의미로 쓰게 된 것이다. 그러나 餠을 흔히 '떡'으로 알고 있던 한반도에선 이 때문에 전파 초기엔 아예 빵 대신 떡을 그 자리에 두기도 했다. 당시 한국인들에게는 빵보단 떡이 더 친숙한 표현이기도 했으니 일종의 초월번역이였던 셈이다. 참고기사 두산대백과의 해석(분명하게 '빵'이 아닌 '떡'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오늘날의 중화권에선 비스킷 등의 과자를 餠이라고 나타내고 있다.
가톨릭에서도 이 표현이 관용적으로 쓰이긴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의 기적''' 또는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으로 풀어서 말한다.
아무래도 인류의 기본 욕구인 '먹을 것'과 관련되어서 그런지,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을 막론하고 많이 퍼진 이야기다.
2. 내용
예수가 갈릴리(갈릴래아) 호수 근처 들에 있을 때 많은 무리가 뒤따랐는데, 날이 슬슬 저물어갈 쯤에 제자들이 날도 늦었고 하니 사람들을 돌려보내서 뭐라도 좀 먹이자고 말했다.저녁때가 되자 제자들이 예수께 와서 "여기는 외딴 곳이고 시간도 이미 늦었습니다. 그러니 군중들을 헤쳐 제각기 음식을 사먹도록 마을로 보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을 보낼 것 없이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하고 이르셨다.
제자들이 "우리에게 지금 있는 것이라고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입니다." 하고 말하자
예수께서는 "그것을 이리 가져오너라." 하시고는
군중을 풀 위에 앉게 하셨다. 그리고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셨다. 제자들은 그것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주워 모으니 열두 광주리(바구니)에 가득 찼다.
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들 외에 남자만도 오천 명 가량 되었다.
-
예수는 제자들에게 모인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했지만, 제자들은 "이 사람들을 다 먹이려면 200데나리온으로도 모자랍니다"라고 난색을 표했다. 당시 노동자의 하루 일당이 1데나리온이니, 200데나리온이면 엄청난 금액이다.[2] 당시 그들이 가진 것이라고는 어떤 아이가 예수에게 준 빵 5개와 물고기 2마리밖에 없었다.[3]
예수는 사람들을 50명씩 모여앉게 한 다음, 빵과 물고기를 갖고 감사기도를 하고는 제자들에게 이를 분배하고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게 했다. 그런데 이렇게 나누어준 식량이 어찌된 영문인지 여자와 아이를 제외한 성인 남성이 5,000명[4] 이나 배불리 먹고도 남은 것을 광주리에 담았더니 '열두 광주리'나 남았더라는 것.[5]
3. 해석
이 일화를 두고서 갖가지 이야기가 나오는데, 일단 그리스도교에서는 실제 예수의 기적으로 나타난(초자연적인) 일이라고 보는 게 일반적이다. 하기야 예수의 육체적 부활이라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믿는다면 그 외에 다른 기적들도 믿지 못할 부류의 것은 아니다
18~19세기를 살았던 하이델베르크 출신의 신학자 H.E.G. 파울루스를 위시하여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은 신학자들은 '사실 수많은 군중이 몰래 자기 먹을 것을 하나씩 갖고 있었는데, 어린애가 자기 먹을 것을 나누어주는 것을 보고 분위기에 휩쓸려서 서로서로 광주리에 식량을 담기 시작해서 그런 기적(?)이 나왔다'는 해석을 했다. 나름대로 감동적이면서 그럴듯해 보이기도 한다. 이 이야기는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의 장례미사에서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의 추도사 중 하나로 나왔다. 이 해석을 바탕으로 몇몇 사람들은 예수가 빵과 고기를 만들어내는 것보다 사람들이 자기 것을 내놓는 것이 더 큰 기적이 아니냐고 말하기도 한다. 판단은 알아서. 다만 이 해석대로면 마르코 복음서 8장 18~21절에 나타난 '먹을 것에 대해 걱정하지 말라'는 뉘앙스가 좀 미묘해진다.[6] 이성의 시대에 종교를 합리적으로 해석하고자 했던 노력의 산물인데, 가톨릭 해방신학에서도 이 해석을 채용했고 또 신천지나 하나님의 교회 같은 사이비 종교에서도 이런 해석을 채용한다. 해방신학이나 이런 교파가 아니더라도 일반 개신교회 및 관련 단체에서 나눔과 기부의 정신을 강조하며 이와 비슷한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또 한 가지 해석 방법으로 5,000명이 넘는 추종자 중에서 부자가 있었고, 그들이 예수의 열악한 상황을 지켜보고 남몰래 음식을 끼워넣은 것이라는 해석이 있다. 다만 사람 한 명이서 5,000명이 먹을 식량을 몰래 숨기고 있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아예 오역 때문이라는 의견도 존재한다. 조철수 교수의 책 <예수 평전>에 따르면 ‘오천 명’이라 번역된 아람어 본(페시타) 신약성서에는 ‘오천’이라고만 돼 있다. 오천은 히브리어로 ‘하메쉐트 알라핌’이다. 그런데 이를 ‘하메쉐트 알루핌’으로 읽으면 ‘다섯 천부장’(1,000명 조직의 대표)이라는 뜻이 된다. 당시 히브리어나 아람어에는 모음부호가 없었기 때문에 알라핌을 알루핌으로 읽는 식으로 보면 오천을 오천명의 군중이 아니라 ‘다섯 천부장’으로 읽을 수 있으므로, 조 교수는 ‘빵을 먹은 이들이 다섯 천부장이었다’는 말은 백부장과 오십부장들이 참석한 그날의 특별한 만찬 의례에서 그들 가운데 5명의 천부장을 선출했다는 얘기고 예수가 그들에게 성찬의례를 베풀었다는 뜻이라고 풀이하여 번역의 오류가 만든 오해일 수 있다고 한다. 다만 이러한 의견은 신약 성서는 애초에 그리스어로 쓰여졌다는 점이 문제가 되고, 번역의 오류라면 옳게 번역된 사본도 있어야 하는데 그러한 사본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또 문제가 된다.
해석이 어찌하든 간에 여러 학자들은 이 기적이 후대 교회의 성체성사와 긴밀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성찬례는 지금은 가톨릭이든 정교회든 개신교든 굉장히 간소화되어서 조촐하게 빵 한 조각 먹고 마는 형태지만 초기 기독교의 성찬례는 교인들이 모여서 각자 음식을 가져 온 것을 나누며 끼니를 먹는 것이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예수를 미화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변개한 것이든, 저자가 신학적 의도를 담아 은유를 위해 변개한 것이든, 아니면 구전 전승 중에 변개가 된 것이든 이것이 후일 성찬례의 기원이 된 것은 확실시된다. 다만 예수가 최후의 만찬 이전 공생활 중에 정말로 성찬례와 유사한 의례를 제정했는지 아닌지는 아직은 논란거리이다. 예수 후대에 형성됐다고 보는 측은 성찬의식의 연대를 끌어올리기 위해 삽입된 구절이라고 보고 있다. 생전에 제정한 게 맞다고 가정하면, 위에서 언급한 '사람들이 각자 가지고 있던 음식을 몰래 꺼내서 불어난 것'이라는 교훈적 해석이 사실인 셈.
개드립으로는 예수가 실은 외계인이었고 남몰래 가지고 있던 분자증폭기를 사용해서 빵과 물고기의 분량을 늘린 것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자막의 오타로 인해 5천명을 먹'''어'''버린 기적으로 바뀌기도 했다. # 2013년 즈음 야갤에 올라왔던 '예수 조폭설[7] '에는 5천명 분의 식사를 주문한 다음 '''계산을 빵 5개값과 물고기 2개값만 했다'''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이 무전취식 해석에 신학적 근거는 전혀 없지만 의외로 설득력이 있는 게 개그 포인트. 예수 조폭설
4. 후일담 및 유사 사례
이 이야기를 후일담까지 포함해서 보면 사실 배드 엔딩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사람들은 예수가 제공하는 물질적 풍요로움에만 관심이 쏠려서 실망한 예수가 이들을 피해 떠나갔기 때문이다. 오늘날 교회에서 설교할 때엔 오병이어 자체보다는 이 후일담을 오히려 중점적으로 거론하면서 물질만능주의 혹은 기복신앙을 비판하기도 한다.
사실 이런 식으로 먹을 것이 자동으로 불려지는 기적 이야기는 세계를 막론하고 어딜가나 존재한다. 한국만 해도 바닷물이 짠 이유와 관련된 민담으로 어떤 사람이 소금을 만드는 마법의 맷돌을 얻었는데 그걸 바다에 빠뜨린 뒤에도 계속 소금을 만들어서 바닷물이 짜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화수분도 이 카테고리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다만 오병이어의 기적이 기독교를 타고 전세계급으로 알려진 이야기인지라 인지도가 더 높은 것.
마이너 버전으로 칠병이어의 기적도 있었다. 이때는 여자와 아이를 제외한 4,000명이 모였다고 하며, 유태인들이 아니라 이방인 대상으로 행한 기적이라고 전한다.
예수는 이 이전에도 이와 비슷한 기적을 보인 바 있다. 결혼식장에서 포도주가 떨어지자 하인들을 시켜 항아리에 맹물을 채우게 하고, 그 물을 포도주로 바꾼 것.
적은 양으로 많은 이를 배불리 먹인 이 일은, 훗날 성인들도 해냈다고 한다. 예컨대 19세기 중후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의 '''성 요한 보스코 신부는 빵 15개로 300명을 먹인 적이 있다.''' 잡지 내친구들에 연재된 만화에서 한 바구니밖에 없는 군밤을 자신들을 따라온 그 많은 아이들에게 양껏 나눠주고도 절반이나 남았더라는 일화도 소개되었다. 산타클로스의 유래로 잘 알려진 니콜라오 주교의 일화에도 이와 비슷한게 있다. 미라 지방이 식량난에 허덕이자 폭풍에 밀려 그 지역에 들른 식량 운송선의 선장들에게 식량을 나눠달라 부탁했는데, 주교의 간청에 마지못해 식량을 나눠줬음에도 출항하고 다시 확인하니 식량이 줄어들지 않았다는 일화가 있다. 의외로 예수 이후로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해낸 사례가 꽤 많은 기적.
많은 사람이 간과하는 사실은 구약에서도 이런 '불려먹기'가 나온다는 것이다. 엘리야가 기근 동안에 과부네 집에 신세지면서 먹을 것이 떨어지지 않게 한 일이나[8] , 엘리사가 보리떡 20개와 채소 한 바구니로 100명이 먹은 일.
그리고 불려먹기와는 상관은 없지만 저런 먹을 것과 관련한 기적이 몇개 더 있는데, 탈출기에서 유대인들을 위해 메추라기 떼가 날아와 알아서 잡혀준 것[9] 이나 솔로몬의 전성기 당시 수백마리의 동물들이 알아서 모여든 것 등이 있다.
심지어 기독교와 상관없는 그리스 신화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제우스와 헤르메스가 인간으로 변장해 마을을 들렀는데, 모든 집이 손님을 거절하고 마지막으로 들른 바우키스와 필레몬 노부부의 집에서 접대를 받는 장면인데, 식사를 대접해주고 마지막으로 포도주를 따라주는데 따라도 따라도 포도주가 줄어들지 않는 것을 보고 그제서야 노부부는 두 손님이 신인 것을 알게 된다.
예수가 매달려 죽었다는 성유물인 성십자가의 조각도 점점 양이 불어나서 모두 합치면 어마어마한 크기가 된다고 하는데, 추정하기로는 다들 가짜 조각을 만들어 진짜라 속여서 이를 비판하기 위해 나온 말이다.[10]
19세기에 성경을 한국어로 현지화 번역하는 과정에서 빵이 떡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어묵이 들어간 떡볶이야말로 예수가 한국인에게 내린 선물'''이라는 개드립을 치는 경우가 있다. 사실 이런 식으로 따지고 보면 빵이나 떡 비슷한 무언가에 생선을 첨가한 음식이라면 다 도입시킬 수는 있겠다.
2019년에 7세기 없어진 이스라엘의 교회 터에서 모자이크가 발견되었다.#
세인트 영멘 11권에서 금붕어 사료값을 아끼려고 예수가 빵을 만들었다가 금붕어도 같이 늘어났다. 이 금붕어들은 성인들의 식량이 되려고도 하고 산소 펌프값을 아끼기 위해 팔다리가 생기고 폐호흡을 하는 진화를 했다.[11] 나중에 범천을 불러서 적당한 곳에 방생을 부탁했는데 범천이 금붕어들을 방생한 곳은 갠지스 강. 이 금붕어들은 갠지스 강 도착 3일 후 이족보행을 하면서 "나...무..." 라고 말했다. 16권에서는 붓다, 루시퍼와 함께 코스트코에 가서 산 디너롤 빵을 나눠 담다가 차 뒷자리가 가득 찰 정도로 늘리는 바람에 루시퍼가 지옥 밑바닥에 얼려뒀다고 한다.
FNC 엔터테인먼트가 상호명을 여기서 차용했다고 한다.
아이템 복사라는 개드립도 있다. 3일 정지는 덤.
노라조의 샤워에서도 패러디했다. 비누 5개와 때 타올 2개로...
고우영 삼국지에서는 장각이 짜장면과 짬뽕으로 비슷한 일을 했다. 예수는 좀 남게 만들었지만 자기는 딱 맞게 만들겠다는 말과 함께.
[1] 마태오 복음서 14장 13-21절, 마르코 복음서 6장 30-44절, 루카 복음서 9장 10-17절, 요한 복음서 6장 1-15절에 해당.[2] 1데나리온 = 하루 일당 = 10만 원이라고 치면 약 2000만 원 정도. 확실히 5000명도 훌쩍 넘는 사람들의 한끼 밥값으론 모자라다. 5000명이 허세가 아니라면.[3] 당시 유대인들은 오늘날 아랍인들이 먹는 것과 똑같은 둥글납작한 빵을 먹었다. 물고기란 북어처럼 말린 물고기를 말한다.[4] 성인 남성'''만''' 따지면 5,000명이므로 그들을 따라온 여성이나 아이, 노인들까지 합치면 훨씬 많을 것이다. 게다가 이 시절에는 기계가 없어서 자동화가 이루어지지 않아 모든 일을 육체노동으로 처리했던 만큼, 일하고 나서 재충전을 위해 필요한 식량의 소비량도 엄청났다.[5] 이 때문에 '열두 광주리'라는 말은 기독교계에서 이웃돕기 운동을 할때 자주 등장하는 상징적, 관용적 용어가 되었다.[6] 물론 이는 예수가 미리 알고 있었다고 하면 해결된다. 즉 에수는 사람들이 먹을 것을 가지고 있다는건 알고 있었고 때문에 먹을 것에 대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고 연결하면 얼추 맞는 말이 된다.[7] 예수가 실제로는 체격과 신체 능력도 뛰어났다는 분석을 비튼 블랙 유머 중 하나[8] 이 때 남아있던 식량은 밀가루 약간과 극소량의 기름이었다. 이 과부는 마지막으로 아들과 함께 이거나 먹고 죽을 생각이었던 것이 엘리야가 찾아올 당시의 상황.[9] 성경에는 이 때 유대인들이 지나치게 탐닉한 나머지 과식 후 죽은 자들이 많이 나왔다고 한다. [10]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서 주인공 윌리엄 수사가 "우리 주님은 각목 2개로 만든 십자가가 아니라 널찍한 숲 위에서 돌아가신 모양이다."라고 탄식하는 대목이 이를 우회적으로 드러낸다.[11] 그리고 예수는 진화론을 당연하게 받아 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