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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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민주당'''
'''창당일'''
2012년 3월 15일 (녹색통일당)
'''당명 변경'''
2012년 3월 19일 ('''정통민주당''')
'''해산일'''
2012년 4월 12일
'''통합한 정당'''
(2012년 3월 21일 합당)
'''당 색'''
초록색 (#0CB14B)
노란색 (#FEDD02)
분홍색 (#EB5390)
파란색 (#4B95C6)
'''이념'''
중도개혁주의, 사회보수주의
'''해산 전 공동대표'''
한광옥, 문선홍
'''해산 전 주소'''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70길 19
대하빌딩 4층 (여의도동)
正統民主黨 / '''Real''' Democratic Party: '''RDP'''
1. 개요
2. 상세
3. 둘러보기


1. 개요


한광옥 전 의원 등이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공천 과정에서 민주통합당에서 배제되자, 구 동교동계 중진들과 함께 민주통합당을 탈당하여 결성한 정당.
당명에서부터 어렴풋이 느껴지지만, 자신들이 진짜 정통민주당이랍시고 한국민주당으로 거슬러 올라가 신익희, 조병옥, 장면, 윤보선, 김대중으로 이어지는 계보를 주장하였다.
그러나 제19대 국회가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여대야소가 되고, 지지층 분열로 서울에 지역구를 둔 새누리당 이재오, 정두언이 국회의원 한 번 더 하는 데[2] 일등 공신이 되면서 민주당계 지지자들에겐 후단협과 함께 흑역사로 묻힌 정당.[3]
당색이 무지개떡처럼 다양하다.

2. 상세


열린우리당 창당과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이후, 세월도 흘렸고 탄핵 역풍과 분당 과정에서 앙금도 있던 동교동계의 반 이상은 이미 정계에서 존재감을 잃은 상황이었다.[4] 더군다나 DJ가 2009년 사망한 이후에는 이런 경향이 더 심해졌다. 그런 상황에서 민주통합당계 인사들은 이미 정계은퇴해도 충분할 동교동계 원로나 주변 인사들에게 공천 줄 생각이 별로 없었고, 심지어 일부 극성 지지자들은 이들을 원로 대접은커녕 내부총질이나 하는 퇴물들이라고 푸대접을 하니 이들 입장에선 빡칠만도 했다. 물론 이들도 내부총질을 꽤나 해댄건 사실이었기에(...) 서로 불만이 있었다는게 더 맞는 표현이겠지만. 하여튼 그 결과 공천 불만 세력이 탈당해 만든게 정통민주당.[5]
참고로 이 당의 전신이 되는 녹색통일당은 장기표[6][7]가 창당한 정당이었으나, 상술한 것처럼 공천에 탈락한 사람들이 이곳에 추가로 합류하여 정통민주당으로 변경하였다. 총선까지 시간이 촉박하다보니 별도의 창당준비위원회를 만들지 않고 기존 세력에 합류하여 이름을 바꾼 듯하다.[8] 그밖에도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국회 부의장을 지낸 김덕규 전 의원 등도 공천에 탈락하면서 합류했고, 청년세력이라 주장하는 제3신당과 합당하는 등 나름 세를 불렸다.
제19대 국회의원 총선거지역구 후보 31명, 비례대표 후보 7명을 공천했다. 광주광역시 서구 을의 경우는 성악가를 후보로 내세워서[9] 과연 후보 심사를 하긴 한건가라는 의문이 들 정도. 결국 '''한광옥 대표, 김덕규 전 의원''' 등 후보자 전원 낙선, 정당득표율 '''0.2%'''를 기록하며 강제 해산 확정.[10]
게다가 박빙 지역 쪽에선 의외로 높은 득표율을 기록하여 야권 표를 갈라먹으면서 새누리당 후보에게 지역구를 내주는 결과를 초래했다. 예를 들면, 통합진보당 천호선이 출마한 서울 은평구 을에선 2.1%, 홍희덕이 출마한 경기 의정부시 을에선 5.5%를 기록했다. 두 지역 모두 이 비율을 합쳤으면 야권연대 측이 이길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야권 입장에선 확실한 '''팀킬'''. 결과적으로 민주통합당 3석과 통합진보당 3석이 날아갔다고 보는데 만약 이게 아니었으면 민통 130석에 통진 16석으로 새누리 146석과 팽팽한 대결구도를 펼칠 수 있었다. 민주통합당에 고춧가루 뿌린 정통민주당.[11][12] 다만, 새누리당도 유정현, 이윤성, 이원복, 정미경, 강용석, [13] 같은 공천탈락자들이 보수표를 갉아먹으며 낙선된 사례가 여럿 있어서 상황은 엇비슷했다.
19대 총선에서 정통민주당의 표를 야권후보가 흡수했다고 가정하였을 경우 야권이 승리했을 지역#[14] : 서울 은평구 을, 서울 서대문구 을, 경기 의정부시 을, 경기 평택시 을, 경기 안산시 단원구 갑, 경기 광주시.
당연하게도 민주통합당 지지자들에게서 완전 어그로를 끌었으며[15], 이를 막지 못한 민주통합당 지도부(특히 한명숙 등의 친노 계파)도 같이 까였다. 게다가 똑같이 공천불복, 탈당불사를 외쳤던 김무성 전 의원을 비롯한 서울과 PK 등지의 친이계 새누리당 공천 탈락자들을 결국 입다물고 지원하게 만든 새누리당의 낙천인사 관리와 대조되어 더 까였다.[16][17] 이 당시 새누리당의 공천 정국의 디테일은 #(동아일보의 '비밀 해제 MB5년' 시리즈 중 김무성 백의종군 편)에 잘 나온다.
선거 결과 이들은 민주통합당 분위기상 자신들이 돌아갈 수 없다고 느꼈는지, 이후 대부분의 인사들은 몇개월 후 치뤄진 제18대 대선 국면 과정에서 '''새누리당'''에 합류하였다.[18] 물론 이후 20대 총선에서 국민의당 후보로 출마한 인사들도 몇몇 있었고, 정형호꼬마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하기도 하지만 별 존재감은 보이지 못한다. 결국 이때의 과정을 곱씹어 보면, 계파 홀대와 공천 잡음을 조기에 잡지 않으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 수 있는지 분명히 보여준 표본이라 할 수 있겠다.

3. 둘러보기



민주통합당

'''정통민주당'''

새누리당
(개별 합류)
평화민주당
제3신당
녹색통일당

[1] 당 로고가 여러 가지였다. 창당 초기에는 상단의 로고를 사용했는데 제3신당을 흡수합당한 후에는 제3신당의 로고 밑에 정통민주당 글자를 적어 놓은 로고를 추가로 사용했다.[2] 이들은 모두 제20대 총선에선 각각 상대 후보한테 밀려 낙선했다.[3] 실제로 김경협 의원이 직접적으로 트위터에서 언급하기도 했으며, JTBC5시 정치부회의에서도 흑역사로 취급하기도 했다.[4] 그나마 김홍일, 한화갑박상천이 있었다만, 한화갑과 김홍일은 2006년 12월에 의원직 상실. 한광옥은 17대 총선 불출마. 김경재, 김원길 등은 낙선, 권노갑은 은퇴했으며, 박지원은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었다.[5] 이에 앞서 한화갑평화민주당을 창당하였으나 별다른 성과는 얻지 못했고, 2012년 초에 한화갑이 탈당하면서 구심점을 잃고 그대로 국민행복당에 흡수되었다.[6] 본래 박세일과 함께 국민생각을 창당 추진하고 있었다가 창당 직전에 나왔다.[7] 참고로 장기표는 과거 녹색통일당과 이름이 비슷한 녹색사회민주당에 몸담은 적이 있다.[8] 비슷한 예로 친박연대가 있다.[9] 사실 이건 국민중심당2006년 서울시장 후보인 임웅균의 선례가 있다. 다만 그쪽은 국립 한국예술종합학교교수 직함도 달고 있었고 음악원장을 역임한 커리어도 있다.[10] 해당 규정은 총선에서 득표율이 2% 미만인 정당은 해산된다는 규정인데, 이후 2014년 헌법재판소에서 이 부분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11] 다만 이 논리라면 정통민주당이 뺏어간 표를 전부 흡수하여 모조리 당선되었다고 가정하더라도, 결국 자유선진당 의석까지 포함하면 새누리당의 과반은 확정이기 때문에 무의미한 주장이란 해석도 있다. 실제로 총선 이후 얼마 되지 않아 선진통일당으로 개명하고, 이후 새누리당과 합당했기 때문. [12] 또한 총선 이후 이 당 소속 인사들의 행보도 그렇지만, 이 정당의 인적 구성과 지지 성향은 민주통합당과는 간극이 있었기에 정통민주당이 없다고 해서 해당 표가 무조건 민주당 득표가 되었을 것이라 성급히 넘겨짚는 것은 오판일 수도 있다. (사실 이는 자유선진당도 민주당계 성향 인사들이 있었기에 비슷한 스탠스긴 했다.) 여담으로 '고춧가루'라는 표현도 피선거권을 보장한 민주사회에 대단히 부적절한 비방이라는 의견도 있다.[13] 선거 운동 중 사퇴했고, 지역구도 경북 상주시라 새누리당 후보가 쉽게 당선되었다.[14] 단, 개별 출마자 및 지지유권자의 정치적 성향을 볼때 민주통합당이나 통합진보당으로 갔을 표라고 확신할 수 없음에 유의해야 한다.[15] 오죽하면 수년만에 반노 호남 정치인을 깔 때 쓰는 난닝구라는 멸칭이 수면 위로 다시 올라올 정도였다. 심지어 고도환 후보의 출마 로 인해 홍희덕 의원이 낙선되어 노동, 인권 관련 입법활동도 정지되자 구 민주노동당계 범진보 지지자들에게도 정통민주당이 욕을 먹었으며, 천호선의 낙선으로 참여계 지지자들에게도 욕을 먹었다.[16] 새누리당 역시 서울특별시 중랑구갑의 무소속 유정현, 인천광역시 남동구에서 무소속 이윤성(남동갑), 국민생각 이원복(남동을), 경기도 수원시 을(권선구)에서 무소속 정미경 등 공천 반발로 나온 후보들이 표를 갈라먹어서 새누리당 후보가 낙선한 예가 있다. 특히 새누리당 쪽은 정통민주당처럼 많아야 5%포인트씩 갈라먹은 게 아니라 '''10~25%포인트'''씩 거하게 분산되었다.[17] 그리고, 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도 낙천자들이 '더컷유세단'을 결성해 후보들을 전면적으로 지원하였고, 이 때 더컷유세단의 주축이 된 정청래 의원은 21대 국회로 다시 돌아오게 됨과 동시에 훗날 다른 참여자들도 정치적으로 성장하게 된다.[18] 특히 한광옥은 아예 박근혜 파면 직전 박근혜 정부 마지막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재직하면서 현재의 민주당계와는 완전히 결별하였다. 또한 이 당을 처음 만든 장기표미래통합당으로 합류하여 21대 총선에 출마하였으나 김해시 을 유권자들은 지역현안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여당과 대립각을 세워 지역개발 분야 시너지도 기대하기 힘든 장기표에게 표를 주지 않았고, 미래통합당원들마저 전략공천에 반발해 지지를 거두면서 결국 낙선했다. 그리고 장기표가 녹색사회민주당을 만들면서 이전에 협력했던 한국노총 경남본부도 김정호를 포함한 경남지역 더불어민주당 후보들을 지지하면서 장기표에게 등을 돌렸으며, 민주노총에서는 정의당 배주임 후보를 지지하면서 당연히 지지를 하지 않았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각각 장기표의 탈당 후 런, 노동계 의원 팀킬로 인해 정치권에서 거하게 엿을 먹은 걸 보면 당연한 결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