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 리버스
1. 개요
NBA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의 감독. 1961년 10월 13일생. 별명인 닥(Doc)은 Doctor J에서 따온 것인데, 대학 시절 코치가 여름캠프에서 Dr. J 티셔츠를 입은 리버스를 닥이라고 부르면서 굳어진 것이다.
2. 일생
2.1. 선수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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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시절에는 맥도날드 올 어메리칸에 선정될 정도의 유망주였으며 이후 마케트 대학교에 진학해 선수생활을 이어갔다. 1982년에는 FIBA 세계 선수권 대회에 미국 대표로 참가해 올-토너먼트 팀에 뽑혔을 정도로 맹활약하며 팀을 결승까지 이끌었다. 하지만 결승전에서 리버스는 결승골이 될 수도 있었던 슈팅을 놓쳤고 팀도 준우승에 그쳤다.
이후 1983년 드래프트 2라운드 7순위(전체 31순위)로 애틀랜타 호크스에 입단, 이곳에서 활동하면서 1988년에 올스타에 선출되는 등 준수한 활약을 펼쳤고, 이후 클리퍼스, 닉스, 스퍼스를 오가다가 1996년에 은퇴했다.
감독으로서 오랜 시간 동안 근무하게 되는 클리퍼스에서는 1991~1992 시즌 딱 1시즌 뛰었는데 이 시즌은 클리퍼스가 1990년대 딱 3번 진출한 플레이오프 시즌 중 하나다. 그 때도 등번호는 25번.
2.2. 지도자 생활
2.2.1. 올랜도 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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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TNT에서 해설위원을 맡다가 1999년에 올랜도 매직 감독으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 감독 생활 4년동안 3시즌 연속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등 준수한 성적[1] 을 일으켰다. 하지만 2000년에 야심차게 영입된 스타 플레이어 그랜트 힐이 매 시즌 고질적인 발목 부상에 시달리는 바람에 팀 성적은 5할 언저리에서 더 올라가지 못했다.
그 와중에도 2003년에는 8번 시드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여 1번 시드인 디트로이트[2] 를 탈락 직전까지 몰아세우는 선전을 펼치기도 했다. 팀의 중심이자 당시 리그에서 손꼽히던 스윙맨인 트레이시 맥그레이디 등의 활약을 앞세워 올랜도가 먼저 3승('''3승 1패''')을 거둔 것. 단 1승만 추가하면 2라운드에 진출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지만 올랜도는 결국 빈약한 벤치와 체력저하의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3연패 하며 '''시리즈를 내주고''' 말았다.[3]
하지만 플레이오프의 선전이 무색하게 올랜도는 바로 그 다음 시즌에 1승 10패라는 처참한 성적으로 시즌을 출발했다. 그리고 성적 부진을 이유로 닥 리버스는 11경기만에 경질당하고 말았다. (올랜도 통산 171승 168패, 승률 .504)
2.2.2. 보스턴 셀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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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직에서 해임된 리버스는 2004 NBA 파이널에서 잠시 해설을 맡은 뒤 보스턴 셀틱스의 감독으로 부임, 부임 첫 시즌에 디비전 1위를 차지하여 나름 선전했으나, 2005-06 시즌부터 2시즌 동안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고 만다.
이후 2007년 오프시즌에 케빈 가넷, 레이 앨런이 영입되면서 폴 피어스의 원맨팀에서 벗어나 빅3가 구성되었고, 거기에 2006년에 입단했던 2년차 가드 라존 론도가 성장하면서 리버스가 이끌던 셀틱스는 마침내 '''2008년 파이널에서 LA 레이커스를 꺾고 우승'''했다.[4]
이후 애틀랜틱 디비전에서는 꾸준히 1위를 하는 동부의 강팀으로 다시 자리잡게 되었으나, 2009년에는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올랜도 매직에게 걸리고[5] , 그 다음해에는 파이널에서 레이커스에게 패배해 왕조라고 부르기엔 뭔가 모자란 성적을 거둔데다 2010년부터는 마이애미 히트가 르브론 제임스와 크리스 보쉬를 불러 신흥 빅3를 만들어 보스턴을 연파한 바람에 NBA 우승과는 해가 갈수록 멀어졌다. 빅3의 구성원들은 늙어가고 있었고 급기야 빅 3 중 한 명인 레이 앨런이 론도와의 불화로 라이벌 팀인 히트에 합류하면서 해체된다.
2012-13 시즌이 끝나고 리버스 감독과 가넷의 트레이드 루머가 나왔는데,. 그 루머란 리버스 감독과 가넷이 LA 클리퍼스로 가고, 디안드레 조던과 드래프트 픽이 셀틱스로 간다는 것. 하지만 감독과 선수가 함께 트레이드 될 수는 없다는 사무국의 입장에 따라 리버스는 드래프트 픽을 대가로 클리퍼스로 가게 된다.(보스턴 통산 416승 305패 승률 .577)
2.2.3.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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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부터 클리퍼스의 감독 겸 부사장[6] 으로 부임했다. 부임 첫 시즌에서 레이커스를 '''142대 94'''로 관광태웠고 디안드레 조던을 엄청나게 성장시키며 찬사를 들었고, 이 여세를 몰아 2014년 디비전 1위로 플레이오프로 진출하는데, 짠돌이 구단주 도날드 스털링의 인종차별 발언으로 구단주 자격이 정지되는 어수선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 진출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후 앤디 로저 사장이 무기한 휴직 형식으로 물러나면서 리버스는 부사장에서 사장(President of Basketball Operations, 농구부문 사장)으로 진급하기에 이른다. 농구와 관련해서는 클리퍼스 구단에서 가장 높은 총 책임자의 직책이 된 것이다.
사장이 된 리버스는 이후 자신의 아들인 오스틴 리버스를 팀에 영입했다. [7] 오스틴이 허접한 실력을 보여주자 아들사랑이라며 비아냥을 듣기도 했지만 플레이오프에서 오스틴이 꽤 쏠쏠한 활약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새 시즌이 시작되면서 오스틴이 다시 평균적인 실력으로 돌아와... 현재는 팬들에게 둘다 애증의 대상으로 남았다.
2015년 플레이오프에는 3번 시드로 진출했고 1라운드에서 6번 시드 샌안토니오를 상대로 7차전까지 가는 접전을 벌이다 4:3으로 승리하며 2라운드에 진출했다.[8]
2라운드의 상대는 2번 시드였던 휴스턴 로케츠.[9] 당시 휴스턴은 제임스 하든과 드와이트 하워드를 중심으로 좋은 성적을 내고 있었지만 정작 감독인 케빈 맥헤일은 전술적인 면에서 악평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클리퍼스는 휴스턴을 상대로 '''3:1의 리드'''를 잡아냈다. 1승만 추가하면 구단 최초의 컨퍼런스 진출을 앞둔 상황. 탈락 위기에 몰린 휴스턴은 이후 소위 골무 3인방[10] 을 위시한 벤치멤버급 선수들을 과감하게 중용했다. 헌데 이 벤치멤버들이 예상치 못하게 폭발하면서 클리퍼스는 마지막 세 경기를 연달아서 패하며 '''시리즈를 역전'''당하고 말았다.
이로써 닥 리버스는 '''NBA 역대 최초로 7전 시리즈에서 3:1로 앞서던 상황을 두 번이나 역전당한 감독'''으로 이름이 남게 되었다.[11] 위에 서술된 2003년 올랜도 시절 디트로이트에게 당했던 패배는 1번 시드를 상대로 8번 시드가 선전한 사례이니 참작의 여지가 있지만[12] 이번 패배는 그리 참작할 거리도 마땅치 않은 것이 휴스턴의 벤치 멤버 중용은 별다른 수가 없었던 맥헤일의 '''궁여지책'''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13] 닥 리버스는 고작 벤치멤버들에 불과했던 이들의 활약에 대책조차 내놓지 못하고 휘둘리다 힘없이 시리즈를 내준 것이다.
이후 Grantland의 잭 로우와의 인터뷰에서 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의 우승은 '''운좋은 우승'''이라고 말해 엄청난 어그로를 끌기도 했다... 클레이 탐슨은 이에 대해 클리퍼스와 골든 스테이트의 상대전적, 그리고 바로 위에 언급된 휴스턴을 상대로 당했던 허무한 역전패[14] 를 예로 들며 응수했다.
2016년 12월 30일에는 아들 오스틴 리버스가 심판을 밀쳐 퇴장당한데 이어 닥 리버스 자신도 이에 항의하다 퇴장당하며 '''부자가 한 경기에서 동반 퇴장'''당하는 NBA 역사상 초유의 기록을 세웠다.(...)
2017년 오프시즌 중에 리버스는 감독직에 집중하겠다며 사장직을 포기했다. 대신 2017~18 시즌이 끝난 뒤 한국시간 5월 24일에 클리퍼스와 감독직 연장 계약을 체결했다. 이어서 신임 클리퍼스 프런트가 위저즈에게서 마신 고탓을 받고 오스틴 리버스를 보내는 트레이드를 성사시키며 부자(父子) 농구는 끝이 났다.
이후 크리스 폴을 시작으로 블레이크 그리핀과 디안드레 조던까지 팀을 떠나면서 전력이 급격히 약해진 채 2018~19 시즌을 맞았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클리퍼스의 플레이오프 탈락을 예상했을 정도. 하지만 클리퍼스는 예상을 뒤엎고 서부 8위의 성적을 거두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하지만 1라운드 상대는 파이널 3연패를 노리던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클리퍼스는 모두의 예상대로 시리즈에서 패배했다. 하지만 2차전에서는 무려 '''31점차를 딛고 대역전승'''을 이뤄냈으며[15] 5차전에서도 승리를 거두는 등 최강으로 꼽히던 팀을 상대로 놀라운 선전을 펼쳐 다음시즌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이어진 NBA 파이널 기간 중 ESPN 파이널 프리뷰 쇼에 나와서 카와이 레너드를 '우리 시대 마이클 조던과 가장 근접한 선수'라고 칭찬했는데, NBA 사무국에선 이 발언을 템퍼링 룰 위반으로 간주하고 벌금 5만달러를 부과했다. [16]
그런데 시즌 종료 후 자유계약선수 신분이 된 카와이 레너드가 폴 조지[17] 와 함께 정말로 클리퍼스에 입단하는 사건이 터졌다! 두 명의 슈퍼스타를 얻은 클리퍼스는 리빌딩 팀에서 단번에 강력한 우승후보로 평가될 정도의 전력 상승을 얻었다. 더군다나 레너드의 팀 선택 과정에서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명장으로 꼽히던 닥 리버스의 존재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진 2019-20 시즌에는 클리퍼스를 서부 2위로 이끌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1라운드에서는 루카 돈치치가 이끄는 댈러스 매버릭스를 상대로 4승 2패를 거두며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2라운드에서는 덴버 너게츠를 상대로 먼저 3승을 거두며 '''3승 1패'''로 앞서고 있었지만 마지막 세 경기를 모두 내주며 '''역전당하고 말았다.''' 5, 6차전에는 3쿼터에 각각 15점, 18점까지 앞서던 경기를 허망하게 뒤집혔으며 심지어 마지막 7차전에서는 경기종료 2분을 남기고 20점차까지 뒤지는 굴욕을 당했다. 이로써 닥 리버스는 '''7전 4선승제의 시리즈에서 3승 1패의 리드를 세 번이나 날린 감독이 되었다.''' 심지어는 닥 리버스를 제외하면 '''3:1에서 역전패를 1번 넘게 당한 감독조차 없다.'''[18]
앞선 2015년의 역전패와 마찬가지로 이번 시리즈 역시 리버스에게는 '''변명의 여지도 없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시리즈가 뒤집히는 과정에서 클리퍼스는 팀플레이가 거의 없이 개인 기량에만 의존하다시피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리버스의 전술적인 대처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덕분에 그 동안 명장으로 알려졌던 리버스의 전술적 역량 자체가 크게 의심받고 있다. 크리스 폴, 블레이크 그리핀, 디안드레 조던의 화려한 라인업을 이끌고도 컨퍼런스 파이널조차 못 갔던 과거의 실적 역시 선수들이 아닌 리버스의 능력 부족 때문이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결국 2020년 9월 28일에 클리퍼스에서 해고되었다.[19] 레이커스 등과 함께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 아니 레이커스보다 앞선다는 평들도 많았던 클리퍼스가 3:1의 리드를 날려버리고 2라운드에서 충격의 탈락을 했으니... 게다가 하필이면 경질 전날에 본인이 출연한 넷플릭스의 '스포츠에서 성공한 감독들' 다큐가 공개되어 NBA 팬들에게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해임되자마자 필라델피아, 뉴올리언스 등에서 연락을 받았다고 알려졌다. 선수단 친화력과 라커룸 장악능력은 예전부터 인정받는 인물이라 전술적인 역량 부족을 노출했음에도 여전히 감독으로서의 인기는 많은 것으로 보인다.
2.2.4.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 감독직에서 해임된 지 3일만에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와 5년 계약에 합의하면서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2.2.5. 역대 감독 성적
3. 감독 스타일
선수 은퇴 후 3년만에 헤드코치가 된 상당히 빠른 승진의 케이스이며, 선수 시절 마지막 팀이 스퍼스였기 때문에 일단 그렉 포포비치 코칭 트리로 분류된다.
감독으로써 리버스는 공격 전술을 만드는데 능하며 특히 다운 스크린을 활용한 플렉스 오펜스를 통해 물 흐르듯 돌아가며 한 포제션[20] 에 쉴새 없이 공격작업을 할 수 있는 유기적인 모션 오펜스를 잘 만든다.
플렉스 오펜스는 센터와 파워 포워드가 하이포스트로 나와서 상대 수비를 끌어내고, 베이스라인에 생긴 뒷공간을 슈팅 가드와 스몰 포워드가 지속적으로 컷 인해 들어간 뒤 먼저 들어간 윙맨 한명이 반대쪽 윙맨의 컷 인을 스크린으로 지원하는 다운 스크린을 서준다. 이때 하이포스트에서 공을 가진 빅맨은 다운 스크린 성공시 윙맨에 패스해 골밑 찬스를 만들거나 수비 로테이션 붕괴를 노리는 전술로 팀 전원이 활동량과 중장거리 슛 레인지를 가진 팀이라면 코트를 넓게 빙빙 돌면서 지속적으로 찬스를 만들고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비유적으로 설명하자면 끝없는 풍차돌리기로 찬스를 만드는 팀이라고 할 수 있다. 간단한 설명
다만, 수비 전술 짜는건 좋지 않다는 평. 공격 전술을 짤때와는 달리 수비 전술은 선수간 잦은 포지션 전환과 로테이션이 독이 될때가 많은데 이 습관때문인지 셀틱스때를 제외하면 항상 수비력은 잘해야 평균수준의 팀이 되었다. 보스턴 시절 어시스턴트 코치로 있었던 톰 티보도( 뉴욕 닉스 감독)같은 수비코치와 케빈 가넷같은 베테랑 앵커의 지원 없이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승부처의 수싸움에서 다른 감독들에 비해 밀린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팀이 이기고있다 리드를 지키지 못한채 패배하거나 접전상황에서 달리 뾰족한수가 없는 모습을 종종 보이기때문. 클리퍼스에서 해임 이후, 폴 조지가 2020년 2R 덴버전에서 전술 변화를 주지 않고 같은 전술로만 경기했다가 패배로 이어진 점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리빌딩을 상당히 싫어한다.''' 셀틱스와 결별한 이유도 셀틱스가 공개적으로 리빌딩을 하겠다고 천명해서이며, 클리퍼스에 와서 크리스 폴의 휴스턴 행으로 인해 랍시티 시대가 완전히 끝났음에도, 과감히 블레이크 그리핀을 트레이드 시켜 픽을 여러장 가져오는 대신 즉시 전력인 에이브리 브래들리와 토바이어스 해리스를 데려올정도. 이번 시즌 매우 좋은 활약을 보여준 루 윌리엄스를 리빌딩을 위해 픽을 가지고 컨텐딩 팀과 트레이드 할 수 있음에도 재계약한 무브를 보면서도 잘 알 수 있다.
하지만 정작 감독의 능력을 보여준 때는 오히려 전력이 떨어지는 팀을 지도할 때가 많았다. 올랜도 감독 때는 리빌딩에 가까운 팀을 맡아 예상 이상의 순위를 거뒀으며 8번 시드로 올라간 2003년 플레이오프에서는 1번 시드 디트로이트를 탈락 위기에 몰아넣었을 정도로 선전했다. 셀틱스 시절에는 빅3(가넷, 피어스 앨런)의 기량저하를 겪으면서도 르브론, 웨이드가 이끌던 최강팀 마이애미를 상대로 7차전까지 물고 늘어지는 선전을 보여줬으며 클리퍼스 시절에는 폴, 그리핀, 디조던이 모두 떠난 리빌딩 수준의 선수단을 데리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최강팀으로 꼽히던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를 상대로 31점차를 뒤집는 역전승을 거두며 6차전까지 끌고가는 저력을 보였다.[21]
반면 전력이 앞서는 것으로 평가받을 경우에는 예상치 못하게 고전하는 경우가 있었다. 2015년 플레이오프에서 휴스턴,[22] 2020년 플레이오프에서는 덴버를 상대로 3:1의 리드를 잡았다가 3연패를 당하며 시리즈를 내어준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사실 2008년에도 우승을 해서 망정이지, 플레이오프에서 여러번 위기를 맞은 적이 있다. 몇수 아래 팀인 애틀란타 호크스와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게 1,2라운드에서 7차전을 허용한 게 대표적. 그나마 캐브스는 리그 최고 레벨의 선수인 르브론 제임스가 있다곤 하나, 당시 호크스엔 슈퍼스타급도 없던[23] '''37승''' 팀이었다. 당시 양상을 보면 1,2라운드에서 레이 알렌이 부진(1라운드 16.1점-야투 42%, 2라운드 9.3점-32%)하고[24] 피어스가 2라운드에서 야투가 40.4%에 그치는 등 빅3 중 가넷만 빼고 평상시보다 못한 모습을 보이자 위기, 세명이 전부 위력을 발휘했던 동부 파이널과 파이널에서 강한 모습을 보인 것. 게다가 파이널에서도 2차전에 20점차 이상 리드를 벌려놓고 막판에 다 까먹어 역전할 뻔해 벤치에서 놀던 주전들을 불러들이는 등 아쉬운 위기 관리 능력을 보였다.
즉, 리버스는 주어진 여건이 불리할 때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지만, 우승권팀을 맡을때는 오히려 기대 이하의 성과를 보인 적이 많았다. 셀틱스도 워낙 압도적인 재능이 모인 팀이라 우승했지만 위에 언급된 가넷의 분전이나 빅3의 활약이 없었으면 허무하게 탈락했을 수도 있고, 랍시티에서 여러 번 경험한 실패만 봐도 그렇다. 단적으로 말해 추격은 잘하지만, 추격을 뿌리치는 건 잘 못하는 감독.
4. 여담
-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인 플레이북 : 게임의 규칙에 출연했다.
[1] 감독을 맡은 첫 시즌인 99-2000시즌에 올랜도 매직의 로스터는 시망스러웠다. 주전 다섯명중에 세 명이 언드래프티였을정도. 그러나 이러한 빈약한 로스터로 리버스는 팀을 5할승률을 찍는 돌풍을 일으켰고 그해 필 잭슨을 제치고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했다.[2] 동부 1번 시드였지만 강력한 우승후보와는 거리가 멀었다. 서부팀들의 전력이 압도적이었던 탓. 하지만 다음 시즌에는 감독을 릭 칼라일에서 래리 브라운으로 바꾸면서 우승을 차지했다.[3] 안타까운 것은 바로 이 시즌부터 플레이오프 1라운드가 5전 3선승제에서 7전 4선승제로 바뀐 것. 전년도의 제도가 한 시즌만 더 유지되었더라면 올랜도가 먼저 3승을 거둔 상태에서 시리즈가 끝났을 상황이었다.[4] 당시 기준에서는 상당히 충격적이었던 빅3 결성에도 첫해 우승은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서로 손발을 맞추는 시간이 필요할 거라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예상을 뒤엎고 빅3의 보스턴은 결성 첫 시즌에 처음이자 마지막 우승을 거둔다.[5] 시즌 후반에 팀의 중심인 가넷이 부상으로 시즌 아웃 당했던 탓이 크다.[6] 단장(General Manager)보다 위에 있는 직책. 즉 리버스는 선수 구성이나 구단운영을 자기 입맛에 맞게 할 수 있는 권한을 보장 받고 옮겨왔던 것이다. 리버스의 부임으로 클리퍼스의 단장은 다른 구단의 단장들과 달리 실권이 없이 리버스의 결정을 단순 처리하는 실무직책이 되어 버렸다.[7] 밀어줬다는 건 분명히 오해다. 리버스는 뉴올리언즈 시절 트레이드되기 전까지 평균 23분, 19.4분, 22분(15시즌 전반) 뛰었으나, 클리퍼스로 온 이후에는 19.3분으로 오히려 출장시간이 줄었다. 그가 플옵에서 2라운드에 중용된 것은 주전 가드 크리스 폴의 부상으로 가드진에 큰 공백이 생겼기 때문이다. 게다가 폴이 부상당하기 전까지는 오히려 정규시즌보다 출장시간이 줄었다. 실제로 그가 포지션 경쟁을 하는 선수들이나 그의 실력을 보면 밀어줬다고 보기 힘들다. 그는 딱 백업가드 정도의 실력이며, 백업가드 정도의 출장시간을 받고, 백업가드 정도의 활약을 했다. (2라운드에서 본격적으로 활약하기 전까지). 이런 오해가 생긴 건 오스틴 본인의 날뛰기 활약 탓이 큰데, 이렇게 평범한 백업 가드 중에는 꾸준히 평범한 활약을 하는 선수와 확 잘하다 확 못하는 선수들로 갈린다.(꾸준히 잘하면 후보일 이유가 없으니) 근데 오스틴은 기복이 좀 심한 편인데 감독 아들이라 실력에 비해 주목도가 엄청 높아 잘할때 못할때마다 팬들 사이에서 효스틴 (...) 불효자 드립이 난무하는 것이다. 현재는 기복이 예전보단 많이 줄었다.[8] 졸전은 아닌 것이 클리퍼스와 샌안토니오는 단 1승 밖에 차이나지 않았을 정도로 대등한 전력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승률이 더 낮았던 포틀랜드가 4번 시드를 받은 탓에 샌 안토니오가 6번시드까지 밀린 것. 포틀랜드는 당시 디비전 1위팀이었고 당시 규정상 디비전 1위팀에게는 아무리 성적이 떨어져도 4번시드가 보장되었다.[9] 정규시즌 성적은 양팀 모두 56승 26패, 68.3%로 동률이었다. 다만 휴스턴이 소속 디비전 1위였던 탓에 상위 시드를 배정 받은 것. 당시에는 규정 상 디비전 1위 팀들에게 어드밴티지를 주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10] 조쉬 스미스, 제이슨 테리, 코리 브루어. 삭발을 하고 헤드밴드를 낀 모습이 골무 같다고 해서 붙여진 별칭이다.[11] 다만 이 기록은 당시에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이후 '''2020년에 또다시 역전패를 당하는 와중에''' 뒤늦게 주목받게 된다.[12] 사실 2003년에도 선전했다고만 말하기는 어렵다. 디트로이트가 1번 시드이긴 했지만 시즌 승률은 61%에 불과했으니 51.2%의 올랜도가 일방적으로 밀릴 수준은 아니었던 것.(7경기 차) 당장 같은 시즌 서부의 1번 시드(73.2%)-8번 시드(53.7%) 간 게임 차이는 '''15경기'''나 되었다. 당시에는 강팀들이 서부에만 몰려 있어 디트로이트의 승률은 서부로 치면 5위에 불과할 정도였다. 일반적인 1번 시드 대 8번 시드의 대결로만 보기엔 전력의 차이가 아주 크지는 않았던 것.[13] 역전의 중심에 있었던 골무 3인방만 살펴봐도 스미스와 테리는 이미 벤치 멤버로 급이 낮아진 선수들이고 브루어는 전형적인 저니맨이었다. 이들과 같이 활약했던 클린트 카펠라(신인)나 테런스 존스(2년차) 같은 선수들은 년차조차 얼마되지 않은 풋내기들이었다. 그리고 감독이었던 맥헤일은 당시에 전술이 없다는 소리까지 들을 정도였다.[14] 그리고 탐슨이 소속된 골든스테이트는 클리퍼스를 상대로 대역전을 거둔 휴스턴을 4승 1패로 무난하게 밟고 올라가 파이널에서 우승했다.[15] 역대 NBA 플레이오프 사상 최대 점수차이 역전승 기록을 세웠다.[16] 현역 감독은 선수 영입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직책이다. 애초에 리버스가 그렇게 발언하기 전에 먼저 조심했어야 했다.[17] 오클라호마시티 소속이었다가 샤이 길저스 알렉산더, 다닐로 갈리나리 등과 트레이드되어 클리퍼스로 이적. 이 트레이드는 레너드가 클리퍼스에 계약의 선결 조건으로 요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18] NBA에서 3:1을 뒤집힌 경우는 2020년 클리퍼스 탈락 현재 총 13번이며 그 중 무려 3번이 리버스의 팀이다...[19] 덴버와의 플레이오프에서 이비차 주바치를 중용하라는 분석팀의 조언을 무시하고 수비가 엉망인 몬트레즐 해럴의 기용을 강행하다 패배한 탓에 구단주 스티브 발머의 신뢰를 잃었다고 한다. 리버스를 감싸는 프런트의 반대에도 발머 본인의 의사로 해임을 강행했다고. 하지만 일방적인 해임보다는 상호 결별에 가까운 듯하다. 발머와의 통화에서 리버스 역시 자신을 신뢰하지 않는다면 같이 일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하니...[20] possession. 팀별로 한 경기에 얼마나 많은 공격권을 갖는지를 나타내는 지표.[21] 스윕으로 끝났을 지도 모르는 시리즈가 6차전의 혈전 양상으로 이어진 것이 케빈 듀란트의 종아리 부상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22] 이때 3위였던 클리퍼스는 6위임에도 우승후보로 평가받던 샌안토니오를 4:3으로 극적으로 잡았고, 2위 휴스턴보다 하위 순위였던 클리퍼스의 전력을 더 좋게 평가했다.[23] 에이스 조 존슨은 훌륭한 선수였지만 그를 두고 리그를 주름잡는 선수라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24] 캐브스 시리즈에선 한자리수 득점이 세번에 무득점 경기까지 나왔다. 참고로 이 경기(1차전)에서는 피어스까지 4점으로 부진해 가넷이 평상시 하던 수비에 공격에서까지 르브론 제임스와 쇼다운을 펼치며 위닝샷까지 넣어 캐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