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알 마드리드 CF/오해
1. 스페인 정부와 프랑코 정권의 유착설
이러한 오해는 의외로 타 유럽 국가들은 물론이고 스페인 국내에도 공공연히 퍼져 있는데[1] , 한국에서는 축구 해설위원 서형욱의 저서 <유럽축구기행>에서의 잘못된 서술을 통해 국내 축구팬들에게 비판 없이 전파되어 온 것이다.
그러나 마드리드는 바르셀로나와 함께 스페인 내전 당시에 프랑코에게 끝까지 대항했던 도시이다.[2] 프랑코는 이 두 도시를 이간질시키기 위해 축구를 이용했을 뿐이며, 마드리드 역시 바르셀로나 못지 않게 프랑코의 탄압을 받았다.
레알 마드리드는 왕실 구단이 아니라 FC 바르셀로나나 아틀레틱 빌바오와 같은 '시민구단'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구단주가 없이 '소시오(Socio)', 즉 시민들을 기반으로 시작된 클럽 구성원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구단으로 왕가 지원을 받았다는 것 자체는 전무하다. 그리고 임원들을 비롯한 회장인 페레스나 칼데론은 구단주가 아니라 소시오들의 투표로 인해 뽑힌 전문 경영인의 맥락에서 해석해야 자연스러우며 시의 자금과 운영도 마드리드 클럽의 네임 밸류를 기반으로 한 각종 사업(방송이나 굿즈, 테마 파크를 비롯한 건축 사업 등)을 통한 수익을 통해 구축한 것으로 스페인 정부의 지원이나 왕가 지원, 독재 정권의 지원은 없다.
프랑코 독재 시절 프랑코가 레알 마드리드를 비호한 적은 있다. 그러나 그것은 레알 마드리드가 유러피언 컵 5연패를 달성하며 전 유럽의 자랑거리가 되자 이 점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축구에 관심 있는 척 레알 마드리드 팬 코스프레를 했을 뿐이다.[3][4]
프랑코 독재 정권 시절 카탈루냐 지방에 대한 프랑코의 탄압 내지 저항 정신과 관련하여 카스티야 지방이었던 마드리드였기에 더더욱 이런 오해가 가속되어 '바르셀로나=저항 정신을 상징하는 클럽', '레알 마드리드=왕가의 지원을 받는 부패한 클럽'의 이미지를 덧씌우려는 외부의 노력 때문에 지금까지도 오해가 계속되고 있지만 구체적인 물증은 없다. 카탈루냐에 비해 카스티야가 좀 더 프랑코에 우호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마드리드는 예외적으로 스페인 내전 당시부터 지금까지 반프랑코 성향이 강한 도시이다.[5] 스페인 내전 직후부터 프랑코 정권 내내 프랑코가 가장 심혈을 기울이며 사람 처죽이고 때려 잡은 곳이 바예카스, 라바피에스, 라 라티나, 푸엔카랄 등의 마드리드 남부와 교외의 블루 컬러 구역들이다. 당시 마드리드는 바르셀로나만큼의 대도시가 아니었으며, 인구 수에서 마드리드가 바르셀로나를 추월한 건 1950년대나 돼서야 생긴 일이다.
그리고 당시는 마드리드나 바르샤나 프랑코 정권에게 살살 기지 않으면 당장 철퇴를 맞고 쥐도 새도 모르게 지중해의 물고기 밥이 되던 시대였다. 바르셀로나도 프랑코에게 두 번이나 클럽 명예 회장 자리를 바쳤을 뿐만 아니라 역대 레알 마드리드 회장 중에 프랑코 독재에 저항하다 해외로 망명[6] 하거나 학살당한[7] 인물들도 있을 정도로 프랑코 독재 정권의 통제는 스페인 사회 전반에 뿌리 깊게 박혀 있었다. 꼭 이들뿐만이 아니라 프랑코 정권에 대해 폭력 저항을 내내 벌였던 아틀레틱 클럽을 빼면 프리메라 리가의 팀에서 프랑코 정권에 기어보지 않았다고 할 수 있는 팀은 없다.
그래서 독재 정권과 관련된 의혹의 시선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것이나''', 레알 마드리드라는 '''클럽의 업적 자체'''를 깨끗하지 않고 떳떳하지 못한 것으로 보는 것은 오해라는 것이다. 독재 정권과 결부시키더라도 마드리드가 그들에게 직접적인 지원으로 수혜를 얻은 사례와 그 증거는 전무하므로, 클럽의 성공적인 과거 행보를 '부끄러운 것'으로 치부하고 우승 기록의 가치를 떨어뜨리려는 시도는 옳지 못하다. 악성 꾸레들이 레알을 깔 때 사용하는, '프랑코를 등에 업고 챔스, 리그를 우승한 클럽'이라는 오명은 틀리다는 것이다.
간혹 1942/43시즌 코파 델 제네랄리스모에서 나온 레알 마드리드 11:1 바르셀로나 사건을 레알 마드리드가 프랑코 정권의 배후에 있었다는 증거로 삼기도 하는데, 이 시즌 코파 델 제네랄리스모 우승팀은 아틀레틱 클루브다. 이 경기에서 정치적 외압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 전적에서 제외되기는 했다. 프랑코 정권이 바르셀로나를 탄압하면서 레알 마드리드가 가장 큰 반사 이익을 얻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듯하다. 예를 들면 1943년 코파 델 헤네랄리시모, 오늘날의 코파 델 레이 준결승에서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가 맞붙자, 프랑코 측에서 바르셀로나를 협박해서 11:1로 레알 마드리드가 결승에 올랐는데 정작 우승은 빌바오가 한 것을 들 수 있다. 즉 당시 기준으로 군사 정권 측에서는 바르셀로나만 아니면 어디든 큰 상관은 없었던 셈.
무엇보다 프랑코 정권에 대한 평가는 스페인에서 정치적으로 굉장히 민감한 주제이기 때문에 정작 스페인에서는 함부로 이런 주제를 올리기 힘들다. 그래서 오히려 스페인 내에서는 잘 안 튀어나오는 주제이고 외부 악성 팬덤들이 더 자주 쓰는 드립이다. 실제 스페인에서 축빠들이 저런거 꺼내오면 그건 진짜 축구 싸움이 아니라 정치 싸움으로 번지고, 사적 복수가 발달한 지중해 문화에서 저런 패거리 정치 싸움은 폭력 사태로 이어지기 굉장히 쉬우며, 이게 전국적으로 확대된게 스페인 내전이었다. 특히 마드리드 지방은 스페인의 국가적 수도로서 자긍심과 또 스페인 내 공화주의, 진보 정치의 성지로서 굉장히 복잡미묘한 정치적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프랑코 정권에게 친척 한둘 안 잃은 사람은 드물지만 세계 최고의 클럽에 대한 자부심은 큰 마드리드 시민들에겐 굉장히 불쾌한 주장이다.
'왕가의 지원'은 아니더라도 '왕가의 지지'는 받고 있다 주장할 수도 있지만 현재 국왕인 펠리페 6세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팬이다. 레알(Real)이라는 호칭은 왕실을 상징하는 단어이긴 하나, 현 프리메라 리가에서 레알이라는 명칭을 달고 있는 구단은 레알 마드리드뿐 아니라 세군다 등 하부 리그를 포함해서 수많은 클럽들이 있으며, 클럽 창단 초창기에 클럽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당시 스페인 국왕에게 명예 구단주직을 위촉하는 사례가 종종 있었는데 이때 스페인 왕실로부터 레알이라는 칭호를 수여받은 것이지, 자기들이 알아서 뇌물 갖다 바치고 달아 재낀 타이틀이 아니다. 게다가 레알이란 칭호를 처음 받은 팀도 레알 마드리드가 아닌 데포르티보이다.
레알이라는 타이틀이 귀족적인 이미지로써 레알 마드리드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된 건 사실이지만[8] 지금의 레알 마드리드가 시민 구단으로서 세계 최고 구단이 되게끔 한 가장 주된 원동력인 마드리드 시민들의 업적을 폄하하기 위해 왕실 구단, 부패 구단의 이미지를 덧붙여서 깎아 내리려는 시도가 예나 지금이나 계속되고 있다. 즉, 매 이적 시장마다 레알 마드리드가 쏟아붓는 천문학적인 이적료나 클럽 운영 자금은 국가 돈을 빼다 쓰는 것이 아니고 페레스 회장으로 대표되는 레알 마드리드 전문 경영진들의 각종 수익 사업을 통해 구축한 것으로,[9] 유럽 최고 수준의 관중 입장료 수입 및 TV 중계권료 수익, 혹은 레플리카나 패치 등 관련 상품 수익이나 건축 사업, 건물 임대와 같은 부수적인 2차 수익, 다수의 다국적 기업과의 스폰서 계약[10] 등에서 벌어들이는 막대한 이득이 바탕이 된 것이다.
레알 마드리드의 수익 창출은 그 어느 구단보다도 효율적이고[11] 많은 이익을 창출해 내고 있어서 수많은 클럽들의 롤 모델이 되고 있다. 괜히 레알 마드리드 구단 운영의 사례가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재로 쓰이는 것이 아니다(링크)[A] . 지금 UEFA에서 FFP 룰을 적용하는 것을 가지고 세계 각국 리그의 클럽마다 계속 말이 많은 가운데, 레알 마드리드의 경우 그렇게 엄청난 이적 자금을 쓰는데도 아직까지 별다른 잡음이 안 나오는 이유는 바로 이 훌륭한 클럽 운영 체계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애초에 많이 버는 클럽은 많이 쓰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
여담으로, AT 마드리드에는 "마드리드 만세, 마드리드 만세, 정부의 팀, 국가의 수치(Hala Madrid, hala Madrid, el equipo del gobierno, la vergüenza del país)."라는 응원가가 있는데 당연히 레알 마드리드를 저격하는 것이다. 현대 마드리드에서는 AT팬들이 많이 사는 라바피에스, 라 라티나, 카라방첼 같은 시 남부 구들은 정치적으로 공산당 표가 많이 나오거나, 당연하게도 참된 혁명가는 선거 따원 참여 안하는 무정부주의 성향이 강한 지역이기 때문에 바르셀로나 못지 않게 AT팬덤 또한 왕실레알비호론 드립을 쳐서 레알을 까려는 성향이 강하다.
하지만 저것도 각 마드리드 대표 팀의 팬들이 많이 사는 동네의 일반적인 정치적 성향일 뿐이지, 당연히 마드리드 내에서 어떤 팀을 지지하느냐는 정치적 성향과 큰 상관이 없다. 우파 AT팬들도 얼마든지 있고, 좌파 레알 팬들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또한 AT가 마드리드 시내에서 반골과 노동자의 팀 기믹을 뒤집어 쓴 현대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스페인 내전 직후 1940~50년대 AT가 내전 당시 바로 그 마드리드 시내에 폭탄을 퍼부어대던 국가군 공군 인사들이 창설했던 Athletic Aviación de Madrid로 지내던 시절만 하더라도 오히려 AT가 극우파 군인들의 팀 취급을 받았다.
유럽 축구판에서 '''진짜로 이념과 팀이 같이 따라가는 사례는''' 각각 극우, 극좌 성향으로 악명 높은 SS 라치오나 AS 리보르노, FC 장크트 파울리 같은 경우이지, 현대까지 와서 일반적으로 마드리드나 나머지 스페인에서 정치적 성향과 선호하는 축구 팀은 큰 상관 관계가 없다. 그나마 스페인 내에서는 연고지인 소도시 바예카스 자체가 워낙 강성 극좌 성향의 노동자 도시니 팬덤도 자연스럽게 따라가는 라요 바예카노 정도다.
2. 베컴 영입과 마켈렐레 방출이 1기 갈락티코의 몰락을 재촉했다?
반만 맞고 반은 틀린 주장이다. 베컴의 영입과 마켈렐레의 방출이 원체 대조적으로 극적인 대비를 비뤄냈기에 저런 오해가 생긴 듯하나, 정작 2002/03 시즌과 2003/04 시즌의 전반기 실점률은 '''동일했다.'''[12]
애시당초 갈락티코스 자체를 돈만 많이 들이고 실패한 체제로 오해하는 경우도 많지만 갈락티코스가 결성되기 시작한 2000년에서 2003년까지, 좀 더 길게 잡자면 1999/2000 시즌부터의 레알 마드리드(소위 말하는 라울 마드리드에서 갈락티코스 1기로 넘어가는 시점)는 델 보스케 체제 하에서 챔피언스 리그 2회 우승, 리가 2회 우승이라는, 유럽 최고 명문의 이름값에 걸맞는 성적을 기록했다.[13] 당시 마드리드의 전술 자체가 새로운 스타를 영입함으로써 선수 한 명 때문에 전술적인 틀을 완전히 뜯어 고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리고 이미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니만큼 전술 이해도나 기존 선수들간의 유기적인 플레이 및 팀 전술에 대한 적응력이 뛰어났기에 기존의 틀을 유지한 채 새로 영입한 선수들의 장점을 살리는 방향으로 조금씩 전술에 수정을 주는 방식을 취했고 이러한 델 보스케의 실용적인 전술과 맞물려 저런 업적을 이뤄 낼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2003년까지는.
많은 이들이 보았듯이 2003/04 시즌 이후 갈락티코스의 몰락 원인은 단순히 마켈렐레의 방출로 치부해 버릴 만한 간단한 문제가 아니고 당시 주전과 서브 간의 기량 차이와 연관지어서 보는 편이 더 합당하다.[14]
그리고 페레즈가 마켈레레는 10미터 이상 패스를 못하는 선수 등등으로 비난하면서 방출했다라는 얘기는 사실관계 자체는 성립한다. 다만 저런 이유로 방출한 것은 아니고 좋지 않은 모양새로 헤어진 데에 대한 뒤끝 정도로 보는 것이 옳다. 마켈레레의 방출과정을 정리해보면
1. 베컴 영입[15]
2. 마켈레레가 베컴수준의 주급을 요구
3. 페레즈의 거부, 그리고 그 사이 첼시가 접근해서 개인협상 마무리
4. 페레즈는 이적에 거부했지만 마켈레레가 팀 훈련 무단 불참 및 구단 통보없이 대표팀 합류 등 온갖 깽판
5. 2,400만 유로라는 거액으로[16] 첼시행
그리고 저렇게 팀을 떠난 페레즈가 10미터 이상 패스 못하는 선수 등등의 드립을 치며 비난을 한 것.
물론 마켈렐레와 콘세이상의 이적은 큰 문제로 다가왔지만 이점은 단순히 공격적인 성향의 선수를 대신 그 자리에 채웠다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닌 전체적인 스쿼드의 뎁스 자체가 얇아졌다는 것에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앞서 말했듯이 2003/04 시즌 마드리드의 전반기 기세는 뛰어났지만 전 시즌부터 베스트 11을 지속해서 돌린 것에 대해 체력 방전 문제가 계속 지적되어 왔었고 이것이 나중에 중요한 일전들이 겹치는 후반기에 들어서 연이어 터지게 되었다.[17]
당장에 피구의 땜빵은 누네스이고, 호돈과 라울의 땜빵은 포르티요, 센터백 자원은 엘게라, 파본, 라울 브라보(그나마도 본업은 왼쪽 윙백)인 상황에서 베스트 11의 기량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차에 유스 써 보겠다고 올린 수비수들이 필드에서 똥을 싸질렀으니 마드리드의 수비력이 개판이 되는 것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애꿎은 카시야스만 열심히 구르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었다. 결국 전반기에 날아 다니다가 베스트 11이 방전되는 패턴이 반복되고 그것이 2003년 이후 2006/07 시즌에 리가 우승을 되찾아 오기까지 이른바 탈락티코의 오명을 남기게 된 것.[18]
그리고 수비수에 딱히 투자를 안 한 것도 아닌 것이, 기존의 카를루스나 노쇠한 이에로, 엘게라 등 자원으로도 충분히 마드리드 수비진은 안정적으로 작용했고 그 이후에 솔라리나 캄비아소를 비롯한 영입도 있었다. 하지만 마드리드가 요구하는 수준에 합당하지는 못했으며 이름값만 보고 영입한 우드게이트 같은 희대의 먹튀들 때문에 괜히 수비에 투자하지 않는 구단의 이미지가 박혀 버린 것.
사실 레알 마드리드는 수비 자원에 대한 영입 투자도 꾸준히 감행해 왔고 페레스 복귀 이후 무리뉴 체제로 개편된 이후에는 수비수에 대해서도 전면적인 투자가 감행되었다.[19] 실제로 페레즈는 부임 이후에 사비 알론소, 알바로 아르벨로아, 사미 케디라[20] , 히카르두 카르발류, 파비오 코엔트랑[21] , 라파엘 바란, 아시에르 이야라멘디, 카세미루, 다니 카르바할[22] , 루카스 시우바, 다닐루 등등을 영입해, 레알 마드리드가 수비 자원에도 적지 않은 투자를 했음을 알 수 있다. 즉 공격은 지단, 수비는 파본도 옛말이라는 것.
3. 유스가 문제다?
이 역시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데에서 나오는 오해. 특히나 과르디올라 체제 이후 승승장구를 달리고 있는 바르셀로나의 케이스를 보고 '왜 우리는 유스 안 쓰나요?'라고 성토하는 이들이 많은데, 구단에서 유스들을 선수를 키워내는 능력 자체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레알 마드리드 역시 바르셀로나와 걸맞을 만큼 훌륭한 유스 정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축덕들에게는 이미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기본적으로 레알 마드리드의 유스 시스템은 스페인, 아니 전세계에서 가장 질적으로 우수한 유스 시스템에 속하며, 스페인은 물론 세계의 축구 유망주들이 몰려드는 스카우트 경쟁 및 생존 경쟁도 치열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대만큼 못하기 때문에 못 올리는 거다.'''
레알 마드리드라는 팀이 유스 선수들이 바로 즉시전력으로 활용되기엔 항상 세계 정상권에서 노는 극한직업인만큼 현실적으로 2군이나 유소년 팀에서 잘해서 1군으로 콜업해서 올려봤더니 1군만 올라오면 매번 삽질을 하는터라 도저히 쓸래야 쓸 수가 없는 상황. 이는 당연히 레알 마드리드 팀 수준과 당시의 상황 때문에 못한다고 평가받을 뿐 사실 레알 유스들의 실력들은 다른 팀에서 주전 먹을 만하다. 괜히 '''믿고 쓰는 레알산'''이라는 말이 있는게 아니다.
바르셀로나의 경우 어느 정도 팀 자체의 일관된 전략, 전술 경향이 강한 편이다보니 유스에서 1군까지 일관된 전술로 뛰면서 아무래도 유스 선수들이 1군에서 적응하는 데 유리한 면이 있다. 반면 이는 플랜 B에 대한 적응력은 떨어뜨릴 수 있으므로, 바르셀로나의 방식 역시 장단점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레알 마드리드는 상대적으로 감독도 빅클럽치고는 자주 바뀌고 운영의 일관성이 바르셀로나만큼은 못한지라 유스 출신 유망주의 적응이 어려운 점은 있다.
그리고 라이벌 바르셀로나와 비교해서 그렇지, 절대 레알 마드리드 유스도 무게감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1965-66 시즌에 6번째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한 이후로 30여 년간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하지 못하는 저주에 걸렸던 레알 마드리드에 혜성처럼 등장하여 1997-98 시즌부터 2001-02 시즌까지 5시즌 동안 챔피언스 리그 3회 우승을 이끌었던 마드리드의 레전드 라울 곤살레스와 구티, 그리고 1999년부터 1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마드리드의 골문을 지켜온 전 주장 이케르 카시야스, 과거 유스 팀의 주장을 맡았던 알바로 아르벨로아, 나폴리의 호세 카예혼 등 많은 선수들이 마드리드에서 활약하고 했으며 카스티야에서 배출한 선수들은 라 리가를 포함한 전 세계로 뻗어나가서 활약하고 있다. #
현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서 뛰고 있는 공미인 후안 마타를 포함, 레알 베티스 발롬피에의 하비 가르시아, RCD 에스파뇰의 에스테반 그라네로, 그라나다 CF의 공격수인 로베르토 솔다도, 유로 2012에서도 활약한 알 나스르의 공격수 알바로 네그레도 등등 카스티야가 배출해 낸 선수들의 활약상은 눈이 부시지만(소위 믿고 쓰는 레알산) 문제는 정작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활약이 지지부진하다는 점이다.
물론 레알 마드리드 구단 자체의 문제점도 분명히 이에 한몫했다. FC 바르셀로나처럼 유스를 키워서 바로 바로 올리는 시스템이 아닌 왕년의 슈퍼 스타들을 영입함으로써 스쿼드를 짜 맞추는 식의 구단 운영 방침 때문에 유스들이 쉽게 기회를 잡지 못하는 경우가 존재한다.
과거 유스 정책의 일환으로 파본 등을 썼다가 이미 한 번 크게 데인 적이 있었고, 그 이외에도 B 팀에서는 잘 하다가도 유독 1군에 올라오면 죽을 쑤는 케이스가 비일비재했다. 이같은 점을 보면 온전히 구단 탓으로만 돌리기도 힘든 것이 당장 보여지는 기량에서 수준 미달이니 선수 개인의 심리적인 요인 때문인지는 몰라도 레알 마드리드라는 클럽에서 유스가 주전 자리에 발탁되고 싶으면 기존의 포지션을 밀어낼 만한 압도적인 기량을 선보이든지(라울 곤살레스나 이케르 카시야스 등) 아니면 다양한 포지션에서 궂은 일을 도맡아서 하든지(구티) 해야 하는데 구단이 요구하는 수준을 어느 부분도 충족하지 못하게 되니 결국 타 클럽에서 정착하게 된 것.[23] 그렇다고 이러한 유스들에게 끊임없이 기회를 보장하는 것은 터질지 어쩔지 확실치 않은 도박이고[24] 무엇보다 스타들을 영입하는 것은 마드리드의 성적하고만 연관되어 있는 문제가 아니라 마케팅 및 구단 운영에 관하여서도 밀접한 연관을 지니고 있는 문제이다. 때문에 지금 같은 스타 선수 위주로 영입하는 체제를 유스의 적극적인 기용을 위해 쉽사리 바꿀 수가 없는 것이다.[25] 물론 이 같은 형태에 대해 어느 정도 개선의 여지가 있는 것도 사실이며 과거 라 파브리카 출신 레전드인 구티는 자신이 라 파브리카의 시스템을 개편해 보겠다며 유소년 코치직을 지원한 상태이니 향후 클럽의 유스 시스템이 변경될 여지는 남아 있다고 볼 수 있다.
4. 레전드에겐 박하다?
예전에도 페르난도 레돈도나 페르난도 이에로, 페르난도 모리엔테스, 이반 엘게라의 사례로 인해 언급되기도 했으나, 라울이나 구티가 팀을 떠나고 이후 카시야스까지 팀을 떠나면서 레알 마드리드는 팀 레전드 대우를 해주지 않는다는 오해가 생겼다. 레돈도와 모리엔테스의 사례는 문제로 꼽힐 수 있으나, 라울과 구티, 카시야스의 경우는 팀의 의사와 별개로 선수 본인의 의지가 강했던 것이며 레알 마드리드는 그들의 주급을 보조해줌과 동시에 선수로서 커리어가 계속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챔피언스리그나 유로파리그 진출권 팀에게 보내주었다.
이는 세계최고의 팀이라는 타이틀을 지닌 레알 마드리드 특성상 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이뤄지는 리빌딩 과정에서 생기는 일에서 생기는 문제로 볼 수 있다.[26]
하지만 현재 세계 어떤 클럽을 봐도 은퇴한 이후 팀 레전드를 잘 챙겨주는 팀은 레알 마드리드만한 팀이 없다.[27] 레알 마드리드는 팀에서 활약한 레전드 선수를 클럽으로 불러 일을 맡기고 대우를 해주기로 유명한데, 에밀리오 부트라게뇨에게 부회장직과 홍보단장직을 역임하게 하였고, 호르헤 발다노와 페르난도 레돈도는 은퇴 이후 레알에서 단장직을 수행하였으며, 프레드라그 미야토비치 역시 단장 및 이사직을 수행하였다.
더불어 아만시오 아마로, 페르난도 모리엔테스와 구티 그리고 사비 알론소 역시 팀의 유소년 코치로 임명하여 대우해주었으며, 페르난도 이에로나 아이토르 카랑카[28] 역시 팀의 수석코치로 기용하였고, 라울에게도 유소년 감독직을 맡기며 감독 커리어를 밟을 수 있도록 지원해주었다. 산티아고 솔라리의 경우도 유소년 감독과 카스티야 감독을 맡기며 감독 커리어를 나아가게 만들어줬다. 더불어 지네딘 지단의 경우. 은퇴 이후 팀의 고문, 스카우트, 단장직을 수행하게 하여 팀에서 높은 영향력을 가지게 만들어줬고 코치, 수석 코치 나아가 감독 커리어까지 밟아 나갈 수 있도록 지원해준 끝에 팀의 감독으로 선임하였다. 알바로 아르벨로아 역시 감독 라이센스 이수 조건을 만족하기 위해 2020/21 시즌에 레알 마드리드 유스팀의 감독직을 맡을 예정으로 보인다.
5. 종합
사실 이 4가지 오해는 세계 최고의 선수를 모은다는 공격적인 투자, 속된 말로 '돈지랄' 때문에 나왔다고 볼 수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FC 바르셀로나와 발렌시아도 레알 마드리드 못지 않게 돈지랄을 하는 팀이나 다름없다.
- 왕가의 전폭적 지원을 바탕으로 많은 돈을 사용할 수 있다는 루머에, 스페인이 재정 상황이 좋지 못한 것을 두고 '축구에 돈 쓰다 이 꼴이 났다'라는 어이없는 추론마저도 있었다.
- 돈질의 사례 혹은 실패 사례.
- 비교 대상인 FC 바르셀로나와 달리 [29][30] 올라오는 유망주가 없다는 것. 그러나 위에 설명되어 있듯이 라 파브리카에서 나온 선수들도 적지 않으며, 마침 라이벌인 FC 바르셀로나에서 역대 최고 수준의 유스 포텐이 연이어 터지는 바람에 괜히 비교당해서 까이는 감도 없잖아 있다. 엄밀히 말하면 유스 중에서도 메시, 차비 에르난데스, 이니에스타, 푸욜, 부스케츠, 파브레가스, 피케 정도다.
[1] 이는 스페인어로 '왕실의'라는 의미를 가진 레알이라는 칭호, 엠블렘의 왕관, 귀족적인 느낌의 깔끔한 흰색 유니폼, 클럽 연고지 같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왕실과 관련있는 구단이라고 오해할만한 요소가 매우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스페인은 실제로 왕실이 있는 국가라는 사실 또한 이러한 오해가 널리 퍼지는 것에 큰 영향을 줬을 것이다.[2] 가장 마지막에 함락된 도시는 발렌시아다.[3] 되려 프랑코가 응원한 팀은 바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당시에는 이름이 공군 축구단)였다.[4] 참조하기 좋은 해외 자료[5] 대도시가 굉장히 드물고 발전이 정체된 카스티야에서 마드리드는 거의 유일한 대도시이고 스페인도 산업화와 이촌향도를 겪었으므로 마드리드에는 스스로를 카스티야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이 존재하며, 마드리드는 카스티야 지방의 대도시이지만 나머지 카스티야 지방과는 분위기, 문화도 확고하게 다르고 카스티야에 대한 소속감도 약하다.[6] 하파엘 산체스 게라 회장[7] 안토니오 오르테가 회장, 곤잘로 아기레 부회장, 발레로 리베라 재무책임자가 이에 해당된다.[8] 이 귀족적 이미지도 사실 이상한게, 레알 마드리드 CF라는 클럽 이름은 그냥 도시의 시민구단 이름에 당대 스페인의 헌정 체제를 가치중립적으로 부여한 것에 불과하다. 공화정 시기에는 그냥 마드리드 CF라 불렀고, 만약 미래에 스페인 제 3공화정이 생긴다면 다시 그냥 마드리드 CF 혹은 '시민의'이란 뜻으로 제안 된 대안 중 하나인 마드리드 씨비코(civico) 같이 공화정을 반영한 이름으로 바꿀 것이다.[9] 실제로 페레즈가 2000년 회장으로 당선되기 직전, 레알 마드리드는 파산위기에 몰려있었다. [10] bwin, 아디다스, 코카콜라, 아우디 등. 국내 기업 중에는 삼성그룹과 스폰서십 계약 체결 중.[11] 선수 이적 시장에서야 매번 적자를 내지만 스타급 선수 영입을 기반으로 한 각종 사업을 벌임으로써 이적 시장을 포함한 클럽 운영 자체는 매년 흑자를 기록 중이다. 물론 구단 운영을 잘하기 때문에 이적시장에서 본 손해도 메꾼다.[A] 원 카페 링크 삭제 인해서 기사 링크 첨부함[12] 2002/2003 시즌 레알 마드리드의 리그 전반기 기록은 10승 8무 1패였고, 20실점을 했는데, 2003/2004 시즌 레알 마드리드의 리그 전반기 기록은 13승 3무 3패 19실점으로 오히려 2003/2004 시즌 리그 전반기의 기록이 2002/2003 시즌 리그 전반기 기록보다 좋았다.[13] 다만 1999/2000 시즌은 로렌소 산스가 회장이던 시기로 갈락티코스 시기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전반기를 존 토샥 감독이 완전히 말아먹은 것을 델 보스케가 되살려 결국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뤘으나 리가에서는 최종 성적 5위에 그쳐 1996/1997 시즌 리그 우승 이후 3년간 무관에 그치고 말았다. 시즌 뒤 회장 선거에서 플로렌티노 페레스가 피구 영입을 공약으로 내세워 새로운 회장으로 선출되고 이 때부터 갈락티코스 정책 시작.[14] 당장 마켈렐레뿐만이 아니라 임대 혹은 이적으로 모리엔테스, 맥마나만, 콘세이상, 셀라데스까지 02/03 시즌 로테이션 멤버로 기용하던 선수들을 03/04 시즌에 죄다 내보냈다. 아무리 세계 최고급 유스 팀을 보유한 마드리드라지만 경험 부족한 어린 선수들로 너댓 명의 로테이션급 선수들의 공백을 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15] 마켈레레를 이적시키고 그 돈을 보태서 베컴을 영입했다는 식으로 선후관계조차도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슈페르 코파에서는 두 선수가 나란히 선발로 나오기도 했다.[16] 그 당시 수비형 미드필더 가격치고는 상당히 비싼 가격[17] 03/04 시즌 후반기, 2004년 3월부터 리그 마지막 12경기의 성적이 3승 2무 7패다. 이 시즌에 레알 마드리드는 최종적으로 10패를 기록하게 되는데 그중 7패가 시즌 막판에 나온 것. 특히 마지막 5경기는 전패로 시즌을 마무리한다.[18] 페레스 임기 말기 무렵과 2006년 이후 칼데론이 부임했던 시기는 갈락티코스가 완전히 와해된 때라고 보는 것이 맞으므로 논외.[19] 단, 무리뉴 체제는 선수 수급 자체가 철저히 무리뉴 의도대로 이루어지고 선수 이름값보다는 무리뉴의 팀에 필요한 선수 위주로 영입되었기 때문에 갈락티코스라고 볼 수는 없다. 애초에 무리뉴 본인부터 부임하자마자 갈락티코스는 끝났다고 선언했고.[20] 단, 케디라는 공미, 중미, 수미를 모두 소화할 수 있는 멀티 플레이어다.[21] 수비수 역대 최고 이적료인 30M 유로를 기록하고 SL 벤피카에서 이적했다. 2019년 여름 기준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소속의 해리 매과이어가 수비수 역대 최고 이적료를 기록한 선수이다.[22] 바이백 옵션을 실행하여 재영입했다.[23] 그러나 이는 구단의 책임이 맞다. 선수가 부진한 요인이 기술적인 문제이든 심리적인 문제이든, 그리고 그것이 유스의 교육 시스템의 문제이든 선발 시스템의 문제이든간에 그것은 유스 시스템의 일부이고 구단의 책임이다.[24] 바르셀로나도 구단 역사를 통틀어 이 정도로 유스 자원이 한꺼번에 빛을 발했던 적은 없었다. 또한 바르셀로나는 주전과 비주전 간 기량 차이에 대해 꾸준히 지적받을 만큼 아직은 유스 출신 후배들이 선배들과의 수준 차이를 빠르게 좁히지 못하고 있으며, 주전 노쇠화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공수의 핵 차비와 푸욜의 확실한 대체자를 찾지 못해 헤매고 있다. 즉 유스가 단체로 포텐이 만개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는 운도 따라줘야 한다는 것.[25] 이것이 아마도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이는 레알 마드리드뿐 아니라 세계 정상급 수준의 팀들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로, 21세기에 접어들면서 UEFA 챔피언스 리그나 유럽의 주요 리그 경기들이 국제적으로 중계되고, 이로 인해 이러한 팀들의 선수 수준 혹은 요구 사항이 올라가면서 커지고 있는 문제이다. 심지어 독보적인 유스 시스템을 가진다는 평가를 받는 바르셀로나도, 87~88년생들을 배출한 이후에는 유스 출신 주전 선수의 비율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26] 참고로 2000년대에 레알에서 은퇴한 선수는 마누엘 산치스, 예지 두덱, 루벤 데 라 레드 그리고 지네딘 지단까지 단 4명 뿐이며, 이들 중 예지 두덱은 단 2경기만 출장, 루벤 데 라 레드는 심장 문제로 은퇴하면서 정상적인 필드 플레이어 은퇴는 마누엘 산치스와 지네딘 지단만 해당된다.[27] 레알과 비견될 만한 다른 클럽을 찾아보자면 맨유나 AC 밀란 정도가 해당될 것이다.[28] 사실 카랑카는 레알에서 뛰긴 했지만, 레전드라 불리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다.[29] 사실 바르셀로나도 마드리드 부럽지 않게 돈을 쓰긴 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 [30] 2020년 현재 두 팀의 이적시장 행보를 비교하면 정반대이다. 레알 마드리드는 유망주 투자 및 육성 (세르히오 레길론, 페데리코 발베르데 등) 을 통해 리빌딩을 착실하게 한 반면, 바르셀로나는 네이마르의 대체자를 아직까지 구하지 못해 리빌딩에 애먹는 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