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츠다 유사쿠

 

''' 마츠다 유사쿠의 주요 수상 이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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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키네마 준보 베스트 텐'''
[image]
'''남우주연상'''
'''제56회
(1983년)'''

'''제57회
(1984년) '''

''' 제58회
(1985년) '''
네즈 진파치
(안녕 사랑스런 대지)

'''마츠다 유사쿠
(가족게임)'''

야마자키 츠토무
(장례식 / 안녕히 방주)



''' 마츠다 유사쿠 '''
''' 松田優作 | Yusaku Matsuda '''
'''본명'''
'''마츠다 유사쿠 (松田優作(まつだ ゆうさく, Yusaku Matsuda)'''[1]
'''출생'''
1949년 9월 21일 | 일본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시
'''사망'''
1989년 11월 6일 | 일본 도쿄도 무사시노시
'''국적'''
일본 [image]
'''신체'''
183cm
'''직업'''
배우
'''가족'''
배우자 마츠다 미유키
장녀 마츠다 사야
장남 마츠다 류헤이
차남 마츠다 쇼타
차녀 마츠다 유키
'''링크'''

1. 개요
2. 상세
2.1. 가정사
2.2. 연기자가 되기까지
2.3. 가수 활동
3. 기타
4. 출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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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한국계 영화 배우. 쇼와시대 말기였던 1970~80년대에 영화와 TV 드라마 등지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당시 대중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주로 맡은 배역은 하드보일드하고 남성미가 넘치는 배역들이었다. 할리우드 진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블랙 레인》을 찍은 뒤 지병인 방광암이 악화되어 1989년 11월 겨울에 도쿄의 병원에서 사망했다.[2] 이때가 향년 40세. 세상을 떠나기 몇 달 전까지 자기 병환을 숨기면서 영화를 찍었다.
짧게 활동했던 배우지만, 워낙 독특한 이미지로 남아있어 사후에도 많은 캐릭터에 영향을 미쳤다. 특히 일본 만화 및 영상매체에서 자주 나오는 '''하드보일드, 양복에 중절모, 탐정'''이라는 클리셰는 이 사람이 연기했던 드라마 <탐정이야기>의 탐정 쿠도 슌사쿠가 시발점으로, 꽤나 여러곳에서 패러디 및 오마주 소재로 활용되었다. 이러한 부분을 알고 여러 일본의 영상매체를 뒤져보면 놀라울 정도로 많이 발견할 수 있다. 2000년 키네마 준보가 발표한 '20세기의 남자 영화 배우'편에서 일본 배우 12위를 차지했고, 2014년 발표한 '올타임 베스트 일본 영화 배우'에서 일본 남자배우 6위를 차지한 전설적인 배우다.[3]#
드라마에서 나온 특유의 헤어스타일 등의 이미지는 애니메이션 《시티헌터》의 사에바 료나 《카우보이 비밥》의 스파이크 스피겔 등으로 대표되는 하드보일드 분위기의 작품에 나오는 더벅머리 괴짜 주인공들의 모티브가 되었다. 또한 만화 《원피스》의 아오키지PS2 게임인 귀무자 2의 주인공인 야규 쥬베이의 외형 모델, 《가면라이더 W》의 주인공 히다리 쇼타로는 대놓고 오마쥬, 그리고 《명탐정 코난》의 등장인물인 쿠도 유사쿠는 탐정이야기에서 그의 배역인 주인공 쿠도 슌사쿠에서 성을 따고, 그의 실명에서 이름을 딴 것이다.

2. 상세



2.1. 가정사


재일 한국인으로 살다가, 본격적으로 연예계 활동을 시작한 1973년[4]에 일본 국적을 취득하고 일본인으로 귀화했다. 본래 이름은 김우작(金優作)이었다 귀화하면서 예명이었던 마츠다 유사쿠(松田優作)를 정식 이름으로 쓰게 된다.
가정사가 알고보면 복잡한데, 어머니는 북한계 1세대 재일 한국인이며, 아버지는 공무원이었던 일본인(당시 39살)이지만 고향에 부인이 있는 기혼자로 마츠다 유사쿠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즉, 불륜 관계에서 태어난 사생아. 일제강점기에 한국인 어머니는 어느 일본인과 결혼하여 시모노세키로 왔지만, 태평양 전쟁으로 인해 남편이 죽자 그의 씨다른 두 명의 형(이부형)을 키우기 위해 매춘부(정확히는 유곽, 오늘날의 고급 요정)로 일을 했고, 이후 다른 아버지(유사쿠의 아버지)을 만나 35살에 유사쿠를 낳았다. 그러나 호적에 올릴 수는 없었고 어머니의 성을 이어받게 된다(어머니가 원래 김씨였다).
일본에서 1998년에 만든 방송에 의하면 어머니는 유곽 근처에서 전당포를 경영하면서 2층에는 유곽에서 일하는 여성들에게 (매춘을 위한) 방을 빌려줬다고 나오는데, 이때 어머니도 이 남자 저 남자를 데려와 같이 자고는 했는데, 들어오지 말라고 방문을 잠그고 칭얼거리는 유사쿠의 뺨을 후려치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사실은 마츠다 유사쿠가 죽은 후에 발견된 일기에 나오는 내용으로, 이 방송에서는 마츠다 유사쿠가 한국계라는 것은 밝히지 않았다.) 여하튼 평범하진 않은 가정 환경에서 자랐으며, 나중에 자신이 형들과는 다른 아버지를 뒀다는 것을 형들에게 직접 들으면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다만 형제간 사이는 나쁘지 않았다고.
이러한 출생 문제와 재일 코리안으로 일본에서 차별받는 국적 문제 때문에 마음 고생을 심하게 했다고 한다. 호적상에 김유사쿠로 올라서 재일 코리안인게 들통나 학창 시절 차별받은 트라우마가 있어서인지, 성인이 된 이후에도 극단 동료로 만난 첫번째 부인과 결혼하기 전 동거 생활을 했는데 "사실을 알게 되면 넌 도망칠 거야."라며 자신의 출신을 숨기기도 했다고. 근데 부인의 친척들이 두 사람이 동거한다는 것을 알고 유사쿠의 신상조사를 한 결과 결국 재일 코리안이라는 사실이 들통났는데, 그래도 동거 생활 계속하고 결국 결혼까지 했다. 참고로 이 첫번째 아내가 마츠다 미치코로 '완전한 사육'을 쓴 작가라고 한다.(...)
더 흥미로운건(?) 마츠다 미치코와 이후 이혼하게 되는데, 이유가 드라마 《탐정이야기》 촬영 도중 사귀게 된 배우 마츠다 미유키와의 불륜 때문.(...) 그렇게 1번째 아내 미치코와 1981년에 이혼하고 2번째 아내 미유키와는 1983년에 결혼했다.[5] 미유키는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는데, 미치코는 딸을 한명 두었다고 한다.[6]
어쨌든간에 1980년 자신의 극단을 설립하고, 연극 각본을 쓰고 연출을 할 때, 가수 밥 딜런에서 이름을 딴 보쿠 리란(朴李蘭)(캐나다 출신의 한국인이라는 설정)이란 누가 봐도 한국인이라는 걸 알 수 있는 예명을 썼는데, 보면 인기 배우가 되고 나서야 자신의 정체성을 대외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그의 차남인 배우 마츠다 쇼타는 2011년 부산국제영화제에 방문했을 때 인터뷰에서 '나는 친척 중에 재일 한국인이 있고, 나에게도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발언한 바 있다. 영상.[7] 이를 보면 그의 자녀들도 부친의 출신 성분을 알고 있고 딱히 숨길 생각도 하지 않는듯.

2.2. 연기자가 되기까지


고1때 어머니가 미국에 가서 변호사가 되어라고 한 뒤 작은아버지가 있는 미국으로 강제 전학을 가게 된다. 캘리포니아 주 몬테레이에 있는 씨사이드 고등학교에서 다시 수업을 받으며 그렇게 미국에 정착하나 싶었는데, 작은아버지 부부의 가정불화로 부부는 이혼을 하게 되고 미국 생활에 회의를 느낀 김우작은 학교를 중퇴하여 1년 만에 어머니 몰래 귀국한다. 귀국 후 도쿄의 형 집에서 더부살이를 하며 호난고교 야간반에 등록하여 다시 학업을 시작, 이번에는 무사히 졸업한다.
졸업 후 간토대학 문예부에 입학하여 대학생활을 하면서 연극동아리에 가입하며 연기자의 꿈을 키우게 된다. 다음해 연기에 빠져서 문학부를 중퇴하고 연극연구소 12기생이 되어 본격적으로 연기자가 된다. 신주쿠거리의 바에서 바텐더로 일하다가 바의 단골 손님인 연기자들이 방송사 PD를 소개해 주고 《태양을 향해 외쳐라!》라는 형사 드라마로 데뷔를 하게 된다.

2.3. 가수 활동


배우 뿐만 아니라 가수 활동도 했었다. 1976년 7월 25일에 앨범 <まつりうた>로 가수 데뷔를 했다.

'''홀로 마시는 술 슬퍼서'''

'''비치는 글라스는 Blues 의 색'''

'''만약 Blues 따위를 듣고 싶은 밤은'''

'''Yokohama Honky Tonk Blues'''

'''Hemingway 따위에 물들어 버리며'''

'''Frozen Daiquiri 따위에 몹시 취한'''

'''너는 모를까 그런 여자'''

'''Yokohama Honky Tonk Blues'''

'''그대가 그리워지는 황혼의'''

'''Yokohama Honky Tonk Blues… #'''

음악방송에 출연해 'Yokohama Honky Tonk Blues' 등의 노래를 부르는 영상이다. 무대 시작은 1:29부터이니 참고하자.

3. 기타


[image]
국내 네티즌들에겐 커피 뿜는 짤방으로 나름 유명하다.(...) 참고로 본인의 대표작 탐정이야기의 오프닝 중 한 장면이다.
마츠다 유사쿠의 독특한 이미지는 기무라 타쿠야 데뷔 초기 그의 오리지널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기무라 측에서 많은 참고를 하였다. 들어보면 목소리도 꽤 닮았다.
영화 야수는 죽어야한다 촬영을 위해 어금니를 뽑았다는 이야기가 있다[8]. 쌍꺼풀 수술도 했는데 웃긴 일화가 돈 아끼려고 실밥을 자기 손으로 뽑았다가 흉터가 남았는데, 정작 실밥 뽑는 비용은 수술비에 들어 있어 병원에 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 흉터 때문에 눈을 감은 장면에서 얼굴을 클로즈업 하면, 눈두덩이에 절개법으로 쌍꺼풀을 시술한 자국이 굉장히 도드라진다.
귀무자 2의 주인공[9] 얼굴 모델링은 그의 얼굴을 모티브로 했는데 이상하게도 당시 한국에서는 그 얼굴을 보고 유오성을 연상하는 이들 또한 적지 않았다카더라.
원피스의 푸른 꿩 쿠잔의 캐릭터 디자인 모델이다.

4. 출연작


일본의 열혈 형사 드라마. 《춤추는 대수사선》, 《하구레형사 순정파》와 더불어 유명한 경찰 드라마다. 파트너 형사는 매번 죽는 것으로 유명하다(...). 여기서 조연으로 데뷔했다. 자주 패러디되기로 유명한 배에 총맞고 피를 보며 "뭐여! 이건!!!"(난쟈 코랴~) 하고 죽어가는 장면은 이 드라마에서 나왔다. 참고로 이 드라마 순직신은 모두 순수 애드립이다(...).
  • 폭력교실 1976년작.
마츠다 유사쿠 최초의 액션 영화. 당시 마츠다는 1년 전 우리들의 훈장이라는 드라마의 규슈 촬영 현장에서 예비학교 학생에게 폭력을 휘둘러서 체포, 근신중인 상태였다. 이로 인해 1년간 드라마 촬영에는 나서지 않은 상태에서 촬영된 영화로 미국의 1955년작 폭력교실을 참조해 만든 영화. 이 영화에서는 과거 프로 복서였으나 경기 중 상대를 죽인 것에 대한 책임으로 링을 떠난 교사 미조구치역을 맡아 불량 학생들과 대립하기도 했다. 또한 이 영화는 배우 타치 히로시의 배우 경력 시작을 알린 작품이다.
모리무라 세이치(마츠모토 세이초와 비교되는 추리소설가)의 사회파 추리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일본에서 일어난 혼혈 흑인 살인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무네스에 형사 역을 맡았다. 이 영화에서 조지 케네디 가 미국인 형사로 등장하기도 한다(..) 무네스에 형사에게 미군범죄 관련 트라우마가 있는 것을 연기.
이시하라 유지로가 설립한 이시하라 프로모션의 두번째 드라마[10]로,토쿠요시 이사오라는 성서경찰서의 형사로 등장한다. 토쿠요시 형사는 대학을 졸업한 엘리트지만, 무단결근이 잦고 상사에 대한 존경심이 낮지만 부장 형사인 쿠로이와 라이스케 말은 잘 따른다.
야마구치 모모에의 팬이라서 집에는 그녀의 포스터가 많다.
태양을 향해 외쳐라에서 이시하라 유지로(여기서 이시하라 유지로는 무나가타 고로라는 의사로 등장)와 출연한 것이 인연이 되었는지,대도회 PART2에서는 거의 주인공급...쿠로이와의 콤비 활약이 많다.
서부경찰의 최종화 스페셜에서 국제적인 테러리스트 매의 눈의 리더 후지사키 레이지를 맡을 예정이었으나,다이몬 케이스케 역을 맡은 와타리 테츠야[11]를 존경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중히 거절했다.
유희 시리즈 1부작. 사는 것은 방탕 하지만 자력으로 최고의 킬러가 된 나루미 쇼헤이가 자신에게 뒷처리를 맡긴 악의 무리를 오히려 역관광하는 스토리. 이 영화에서 그가 뛰는 부분을 보면 스파이크 스피겔과 아주 흡사하다는 걸 볼 수 있다.
유희 시리즈 2부작.
아들이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각종 무술도 배우고, 총기도 손에 넣어 사격연습을 한다는 내용.
유희 시리즈 3부작.
마츠다 유사쿠의 중기의 대표작. 항상 중절모를 쓰고다니는 검은 양복과 화려한 셔츠와 넥타이를 맨 수다쟁이 탐정 쿠도 슌사쿠를 연기하였다. 참고로 그의 파트너는 핫토리 형사[12]. 원래는 진지한 하드보일드물로 기획됐는데 마츠다 유사쿠의 개그 애드립이 폭주하면서 결과 코미디 드라마가 되어버렸다. 시청률은 처음에는 20%로 순조로웠지만 점점 떨어지면서 10%대로 방송 종료. 당시의 사회 분위기상 채널 결정권을 쥐고 있던 당시의 장년층에게는 너무 가볍고 코믹한 분위기의 수사물이 낯설었을지 몰라도 대신 젊은 층에서의 반향은 상당했다. 하지만 마츠다 유사쿠 사후 재방송을 거듭하면서 인기를 끌면서 명작으로 재평가, 마츠다 유사쿠 입문용 드라마로 꼽힌다. 특히 마지막회에서 내내 코믹하고 유쾌하기까지 한 이전 26화까지의 분위기가 갑자기 바뀌며 복수의 화신이 되어 온몸에 피를 뒤집어 쓴 유사쿠의 귀기어린 연기는 그야말로 전설 아닌 레전드로 꼽힐 정도.
매회가 끝나면 다음화 예고를 20초간 유사쿠 본인이 준비한 내레이션으로 방송했는데 중반 쯤부터는 '이제 탐정이야기도 중반에 접어들어 예고가 지겨워지기 시작했다'며 다음화의 내용은 온데간데 없고 대신 촬영 뒷 이야기(여기를 다쳤네 저기를 다쳤네, 이번화는 촬영을 빨리 끝내 온 배우와 스텝이 질펀하게 놀았네...), 동향 출신의 신인감독에의 칭찬, 심지어는 '사실 다음화에는 콘서트 준비로 제가 별로 안 나옵니다. 대신 동료형사가...' 라는 내용까지 나온다. 심지어 진지하게 다음화 예고를 부탁하자 '진지하게 예고를 하라는 압력이 들어왔다.'라는 내용을 까발려버리는 화도 있었다(...) 그 많은 내용을 20초 분량에 맞춰서 떠벌이는 유사쿠의 속사포 가 볼거리.
명탐정 코난》의 쿠도 신이치는 쿠도 슌사쿠, 핫토리 헤이지는 핫토리 형사의 이름을 따왔다. 쿠도 유사쿠는 마츠다 유사쿠의 이름을 따온 것이고, 사토 형사의 첫사랑 마츠다 진페이는 마츠다 유사쿠의 성과 외모를 딴 캐릭터이다. 카우보이 비밥와타나베 신이치로 감독이 아주 좋아한다는 작품이다.
2015년 3월 3일 블루레이 출시. 출고가 48,600 엔. 가격 36,142 엔.
부활하는 킨로와 야수는 죽어야한다는 둘 다 오야부 하루히코의 소설이 원작. 소설과는 다르게 다테 쿠니히코는 비오는 날 형사를 격투를 벌여 그를 때려죽이고, 리볼버를 손에 넣어 카지노를 턴다.(카지노 사람들도 야쿠자와 연줄이 있어서인지 다테와 총격전을 벌인다.) 술집에서 만난 흑인 혼혈아와 짜고 M-16(원작에도 없는 어처구니 없는 설정이다!)도 손에 넣어 은행을 털고, 평소에 짝사랑하던 여성도 죽이는 등 비정한 길을 걷다가 나중에 형사에게 총에 맞아 죽는듯한 애매한 결말로 끝난다.(제대로 나오진 않는다).
도주하던 중 열차 안과 동굴에서 보여주는 광기는 무서울 정도.
혼혈아 역할의 배우는 영화 데스노트야가미 소이치로 역할을 맡았던 카가 타케시. 지금의 중후함과 전혀 다른 반항적인 혼혈아로 나온다.(...)
위 드라마 탐정이야기와는 제목만 같지 사실상 다른 작품. 80년대 일본 최고 아이돌 스타 야쿠시마루 히로코가 출연한 영화로도 유명하다.
수재인 형에 비해 성적이 떨어지고 이지메에 시달리는 둘째를 중산층 부모의 부탁으로 가르치게 되는 쓰레기 3류 대학생 요시모토 역을 맡았다. 단순한 가정교사라기보다 자아찾기를 해주는 역할. 독특한 점은 영화 중반, 차 안에서 라디오를 틀어놓은 장면에서 [[한국어] 방송이 나온다. (진행상 별 의미 없는 장면이지만 한국사람이라면 본의 아니게 라디오 내용을 쭉 듣게 된다. 아마 자국 방송 저작권 문제로 외국어 방송 아무거나 틀어놓은듯.) 영화 자체는 일본 영화사에서 자주 거론되는 영화다.
  • 소레카라(それから)[13] 1985년작.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그 후>를 원작으로 한 영화. 여자를 마음에 두고 흔들리는 나가이 요스케 역할을 맡았다. 구글 검색.
그의 유작으로, 일본 야쿠자 세계를 다룬 할리우드 경찰 액션영화 《용의 해》와 다르게 균형잡힌 영화. 리들리 스콧이 감독.(일본풍 배경이나 범법자를 쫓는다는 설정이 《블레이드 러너》와 유사한 편) 미국에서 유학한 경험을 살려 극중 영어 발음도 괜찮았지만, 영어로 하는 대사는 극히 적었다. 만약 암으로 죽지 않았다면 첫 번째 할리우드 진출작이 될 뻔했다. 마이클 더글러스를 능가하는 진 주인공이라는 설도 있을 정도. 촬영 당시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건강으로 인해 촬영에 지장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병환을 숨겼다(..) 영화 촬영 이후 '이제 이 영화로 나는 영원히 살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는 루머가 있을 정도로 엄청나게 몰두했다고.
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그는 1989년 방광암으로 사망했다.

[1] 개명 전 이름은 김우작(金優作).[2] 이 병이 악화되는 바람에 달리기 등 뛰는 연기를 하지 못하였을 정도였다.[3] 1위는 미후네 토시로.[4] 데뷔는 1년전인 1972년이었다.[5] 근데 장남이 되는 마츠다 류헤이가 1983년 5월에 태어났다. 즉, 아무리 빨리 잡아도 혼전임신한 셈.(...)[6] 상기된 가족란에서 장녀는 미유키 딸을 말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미치코와의 자녀인 마츠다 사야(松田紗綾)는 1976년생이며 현재 평범하게 일반인과 결혼해서 조용히 살고 있다. [7] 그 밖에도 마츠다 쇼타는 일본 예능에 출연했을때 '한국식 김치' 혹은 '한국식 상추쌈' 등 한국음식을 좋아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8] 이빨 4개를 뽑았으며 10kg 가까이를 감량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촬영당시에는 스텝들이 원했던 이미지와는 맞지 않아서 다툼이 있었다고(...)[9] 행적관련 모티브는 야규 무네요시.[10] 첫번째는 대도시 싸움의 나날들.[11] 대도시 시리즈에서 쿠로이와 라이스케를 맡은 부장형사이기도 하다.서부경찰에서는 다이몬 케이스케 부장 형사로 출연했다.[12] 나리타 미키오가 연기했다.[13] 일본어 원제인 'それから'는 한국어로 '그 다음에', '그리고' 정도로 번역이 된다. 처음 이 문서에는 영화 제목이 '그리고'라고 작성되어 있었지만, 나쓰메 소세키의 원작소설은 제목이 같은 それから인데도 보통 <그 후>라고 번역되어 있다. 게다가 구글, 네이버 등의 포털사이트에 검색하면 제목이 '그때부터'라고 뜨거나 일본어 원제 그대로 표기한 경우도 많다. 따라서 이런 혼란을 막기 위해 제목을 일본어 원제로 표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