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후네 토시로

 

''' 미후네 토시로의 주요 수상 이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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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대 베니스 영화제'''
[image]
'''볼피 컵 - 남우주연상'''
''' 제24회
(1960년) '''

''' 제25회
(1961년) '''

''' 제26회
(1962년) '''
존 밀스
(턴스 오브 글로리)

'''미후네 토시로
(요짐보)'''

버트 랭커스터
(버드맨 오브 알카트라즈)
''' 제28회
(1964년) '''

''' 제29회
(1965년) '''

''' 제30회
(1966년) '''
톰 커트니
(왕과 조국)

'''미후네 토시로
(붉은 수염)'''

자끄 페렝
(올모스트 어 맨)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입성자 '''
[image]
'''이름'''
'''미후네 토시로
TOSHIRO MIFUNE
'''
'''분야'''
'''영화'''
'''입성날짜'''
'''2016년 11월 14일'''
'''위치'''
'''6912 Hollywood Blvd.'''

[image]
<colbgcolor=#000000><colcolor=white> '''이름'''
'''미후네 토시로 (三船 敏郎(みふね としろう)'''
'''출생'''
'''1920년 4월 1일 일본 제국 산둥성 칭다오시'''
'''사망'''
'''1997년 12월 24일 일본 도쿄도 미타카시'''
'''국적'''
'''일본''' [image]
'''신체'''
'''172cm, 73kg'''
'''직업'''
'''영화 배우'''
'''활동'''
'''1947년~1995년'''
'''배우자'''
'''요시미네 사치코 (1950년 ~ 1995년)'''
'''공식 사이트'''
'''#'''
1. 개요
2. 젊은 시절
3. 배우 커리어
4. 여담


1. 개요


'''三船みふね 敏郎としろう'''
일본배우. 베네치아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2회 획득하고, 할리우드 영화에도 출연하며 세계적인 인지도를 가졌던 스타 배우였다. 덕분인지 당대 일본에선 '''세계의 미후네'''로 불리기도 했다.[1] 일본 영화계의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페르소나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그의 작품에 많이 등장했다. 1948년작 《주정뱅이 천사》로 구로사와 감독 작품에 첫 출연한 뒤, 1965년작, 《붉은 수염》까지 그와 함께 했고, 그 이후 결별했다. 그가 주연을 맡은 구로사와 감독의 대표작은 《요짐보》, 《츠바키 산주로》, 《7인의 사무라이》, 《라쇼몽》, 《들개》, 《숨은 요새의 세 악인》, 《천국과 지옥》, 《거미집의 성》 등이 있다. 그 외엔 이나가키 히로시[2], 오카모토 기하치, 고바야시 마사키 감독 등과도 작품을 같이 찍었다.
2014년 키네마 준보가 발표한 '올타임 베스트 일본 영화 배우'에서 일본 남자배우 1위를 차지한 전설적인 배우다.[3]#
그 말론 브란도조차 이 사람의 팬이었다고 하니,[4] 이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지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2. 젊은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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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일본 제국 점령 하에 있었던 중국 칭다오에서 사진관을 경영하던 일본인 부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즉, 히키아게샤. 일본인이지만, 중국에서 태어나 계속 살았고 일본에 처음 가본 것은 스무 살 무렵이었다고 한다. 1940년에 징병되어 일본 육군 항공대에서 복무했다. 정찰기를 타고 항공사진을 찍는 정찰병으로 복무했다고 한다.[5][6] 덕분에 실제 전투에는 거의 투입되지 않았고, 그 덕분에 생명을 건졌다고 그는 회고했다.

3. 배우 커리어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제대하고 일본으로 돌아가 막노동으로 생계를 잇다가, 군대 시절 동료가 도호(東宝) 영화사에서 일하고 있었기에, 자신도 영화사에 카메라맨 입사 원서를 넣었다. 그러다 우연히 카메라맨 원서가 배우 원서에 섞여졌고, 그는 얼떨결에 배우 카메라 테스트를 받게 된다. 배우가 되고 싶은 생각이 없었기에, 그는 웃어보라는 심사위원의 요구에 "우습지 않아서 웃지 못하겠습니다" 라고 불량스러운 태도를 보였는데,[7] 빼어난 외모와 분위기 덕분인지 이런 불량함에도 불구하고 배우로 뽑힌다.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여배우 다카미네 히데코는 오디션이 끝나자마자 구로사와 아키라에게 전화를 걸어, 대단한 인물이 나타났다고 적극 추천했다고 한다.
선이 굵은 인상으로, , 장군, 기업가 같은 카리스마적 인물도 많이 맡아서, 근엄하고 남성적인 분위기가 강한 편이다. 그러나 《라쇼몽》이나 《7인의 사무라이》, 《주정뱅이 천사》의 경우처럼, 거칠고 막나가는 성격의 산적이나 건달의 모습도 잘 소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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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을 일삼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 때문에 진짜로 죽을 뻔하기도 했다. 《거미집의 성》의 마지막 화살 장면을 찍어야 하는데, 정말 실감나는 연출을 하기 위해, 구로사와 감독은 '''진짜로 배우 미후네 토시로에게 화살을 발사'''하게 했던 것. 그것도 그냥 활로 쏘는 게 아니라, 확실히 벽에 박히게 공기압축장치를 써서 여러 발을 쐈다! 물론 가느다란 낚시줄에 화살을 고정하고 미리 지정한 위치에 박히게 해서 미후네 토시로가 진짜로 맞을 일은 없었고, 미후네 토시로 본인도 이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촬영에 들어가 진짜 화살이 휙휙 귓전을 스치고 날아와 박히는 걸 보고 있으려니 도저히 진정할 수 없었다. 덕분에 미후네는 그 장면에서 처절하게 실감나는 연기를 보여줄 수 있었다. 촬영이 끝난 후에 그는 불같이 화를 냈지만, 일단은 참고 귀가를 했다. 하지만 집에 돌아가서 혼자서 술을 마시던 중에 촬영시의 생각이 떠오르자 갑자기 울화가 치밀어서, 술김에 산탄총을 들고 구로사와 감독의 자택에 찾아가서 난동을 부렸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에 둘이 대화로 어느 정도 풀었고, 법정에 고소를 하겠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당시 사건은 도호에서 유명한 전설로 남아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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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장면. 저 공포에 질린 표정은 진짜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과 결별할 무렵, 자신의 프로덕션을 세워 영화를 만들고, CF도 제작하기 시작했다. 당시는 일본 영화계의 침체기여서, 영화제작으로 큰돈은 못 벌었고, 오히려 자신이 다른 감독의 영화에 출연해 받은 출연료로 영화사의 적자 분을 메꿔가는 실정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구로자와 감독의 페르소나로서 세계적 명성이 있었고, 《요짐보》와 《붉은 수염》으로 베니스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2번 받는 등 거물배우였기에 출연료가 높았다. 영화제작은 어쩌면 부업이었는지 모른다.
일본 배우였지만 일본 영화 뿐만 아니라 할리우드 영화에서도 자주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존 프랭컨하이머 감독의 영화 《그랑프리》에도 얼굴을 비추었고, 존 부어맨 감독의 영화 《태평양의 지옥》에서는 리 마빈과 공동 주연했고, 테런스 영 감독의 영화 《레드 선》에선 알랭 들롱, 찰스 브론슨과 함께 연기했다. 미국 대통령에게 천황의 선물을 전하러 가는 일본인 무사가, 그 선물을 열차강도에게 강탈당하고 나서 그걸 되찾으러 모험을 벌인다는 황당 스토리이다. 또 이누이트를 다룬 모 대작 영화에서 이누이트 역을 하기도 했다.
제임스 클레벌 원작의 TV시리즈 《쇼군》에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연기했다. 정확히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아니라 토라나가라고 불린다. 이름들이 다들 조금씩 다르다. 이시다 미츠나리는 이시도라고 불린다. 이 작품에서는 명색이 쇼군이 선원 춤을 추는 등 전반적으로 오리엔탈리즘 연기라고 폄하되기도 하지만, 마지막 반전 부분과 그때의 독백장면은 정말로 명장면이다. [8]
이 밖에도 영화 《미드웨이(1976)》에서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 스티븐 스필버그의 괴작 《1941》에서 할리우드를 습격하는 일본 잠수함 함장으로 나와 독일 군사 고문 장교 크리스토퍼 리와 함께 개그 연기를 펼치기도 했다. 영화는 망했지만 스티븐 스필버그를 비롯한 주요 제작진들이 미후네의 팬들이었기 때문에 즐거운 촬영이었다고 한다. 테런스 영 감독의 초대형 망작 《오! 인천》에도 출연했다. 해외 각지에서 숱한 캐스팅 제의를 받았으며, 사망하기 1년 전까지도, 종이상자 1개가 가득 찰 정도의 캐스팅 제의 편지를 받았다고 한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과 미후네 토시로의 대단한 팬인 조지 루카스는 《스타워즈》의 오비완 케노비다스 베이더 역으로 미후네를 캐스팅하려 했으나 본인이 거절했다고 한다. 딸인 미후네 미카는 2015년 도쿄 코믹콘을 홍보하는 행사에서, 자신의 아버지가 먼저 들어온 오비완 케노비 역 제안을 거절했고, 다스 베이더 역을 다시 제안받자 그것도 거절했었다고 밝혔다.# 《스타워즈》가 개봉하기 전에는 SF 영화는 그다지 좋은 영화로 취급받지는 못했던 것이 사실이고, 무엇보다 무명감독의 첫 작품이나 다름없었다. 오비완이건 다스베이더건 미후네의 입장에서는 거절할 만도 했다. 어쨌든 미후네는 《스타워즈》가 전 세계적인 흥행을 거두자, 그 캐스팅 제의를 거절한 것에 대해 후회했다고 한다. 마침 스타워즈는 토시로 본인이 출연한 구로사와의 영화 '숨은 요새의 세 악인'에서 모티브를 많이 따 오기도 했다.

4. 여담


  • 공식 사이트인 미후네 프로덕션에 의하면 신장은 172cm, 체중은 73kg이라고 한다.#
  • 일본의 각종 문화 콘텐츠들을 보면, 만화나 영화, TV드라마 등에서 미후네 토시로에 대한 오마주라고 생각되는 캐릭터가 꽤나 많은 편이다. 심지어는 홍콩삼국지 만화인 《화봉요원》에도 그의 이름과 생김새를 그대로 본뜬 삼선이라는 오마주 캐릭터가 등장할 정도. 괴물의 아이의 등장캐릭터인 쿠마테츠도 미후네 토시로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라고 한다.
  • 1999년에 만들어진 덴마크-스웨덴 합작영화인 《미후네》는 제목을 그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극중 인물이 좋아하는 배우가 미후네 토시로여서 그랬다고.
  • KBL 용병선수로 뛰었던 토시로 저머니의 이름 토시로는, 미후네 토시로의 팬이었던 그의 어머니가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 자녀로는 본처 요시미네 사치코에게서 얻은 아들 미후네 시로, 미후네 타케시와 내연녀 키타카와 미카에게서 얻은 혼외 딸 미후네 미카(배우)가 있다. 시로가 1950년생인데 미후네 미카는 미후네 토시로가 62세인 1982년에 얻은 딸이다. 즉 아버지가 할아버지뻘이고 이복오빠가 아버지뻘인 셈이다. [9]
1. 《요짐보》 - 칼 던지기로 권총을 제압.
2. 《츠바키 산주로》 - 미후네가 더 빨랐다.
3. 《조이우치》(고바야시 마사키) - 여기서도 마찬가지.
4. 《대보살고개》 - 아예 나카다이는 미후네가 칼질하는 걸 구경만 한다.
  • 할리우드 영화와 멕시코 영화[10] 등 해외 영화에 출연했을 때 영어 대사, 스페인어 대사는 전부 외워서 촬영에 임했지만 아무래도 원어민이 아니다보니 발음은 신통치가 않아서 나중에 원어민 성우가 더빙 처리를 했다고 한다.
  • 미국에 갔을 때 공항 세관원이 "Do you have any spirits?(당신은 증류주를 가지고 있습니까?)"라고 질문하자 'spirits'를 영혼(spirit)으로 이해하고 "Yes! I have Yamato-Damashii!(그렇다. 나는 야마토혼(大和魂)를 가지고 있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 1981년 12월에 한국을 방문해 한국 영화인들과 교류를 가졌다.
  • 스타임에도 겸손하고 남을 도와주길 좋아하는 성격이었다고 한다. 한 예로 자기가 사는 동네에 태풍으로 인해 홍수가 나자 자신의 모터 보트[11]로 18명의 마을 주민을 구하여 소방청이 표창장을 수여하려했으나 미후네는 정중히 거절하였다.
  • 성격 더럽기로 유명한 말론 브란도조차도 미후네 토시로만큼은 매우 존경하였다. 그외에도 젊은 시절의 로버트 드니로가 미후네를 만난 자리에서 너무 긴장하여 말을 더듬었다거나 스티븐 스필버그가 미후네가 붓으로 써준 명패를 소중히 여겼다는 식의 일화가 비일비재하다. 20세기 최고의 미남 배우로 꼽히는 알랭 들롱이 얼굴로 존경하였을 정도이다. 연기 경력도 경력이지만 무엇보다도 전술된 겸손하고 이타적인 면모 덕이었다. 할리우드를 비롯한 서구의 대배우들로부터 우상과도 같은 존경을 받던 존재가 미후네였다.
  • 2020년 탄생 100주년을 맞이했다.

[1] 실제로 세계 유수의 영화인들로 부터 우상과도 같은 존경을 받았고 그와 관련된 일화도 많다.[2] 영화 '미야모토 무사시(1954년)'로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 영화 '무호마츠의 일생(1958년)'으로 베니스 국제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감독이다.[3] 2위는 모리 마사유키.[4] 말론 브란도가 성격이 억세고 좋지 않은 편이긴 하지만, 본인이 생각하기에 인정할 만한 사람들은 인정한다. 그 대표적 예시가 바로 미후네 토시로.[5] 전쟁 말기에는 구마모토의 특공대 기지에서 출격을 앞둔 카미카제 특공대원들의 영정 사진 찍는 일을 맡기도 했다고 한다.[6] 이때 내무부조리에 대해 반항하다 엄청 얻어 맞았다고 한다.[7] 실제 미후네는 대스타로 출세한 뒤에도 촬영장 청소에 앞장서고 말단 스태프들도 세심하게 챙기는 성실한 성격의 소유자였다.[8] 주인공은 자신의 배인 에라스뮈스가 난파돼서 일본에 좌초되는데, 에라스뮈스를 파괴한 게 도쿠가와였다. 주인공이 일본을 떠나지 못할 것이 운명이라면서, 배를 건조하게 한 뒤 그걸 또 부수게 했다. 주인공만 안습.[9] 유사한 경우로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두 아들 신동주 부회장 - 신동빈 회장 형제와 혼외 딸 신유미 고문이 있다. 신격호가 환갑에 서미경 사이에서 낳은 신유미는 두 이복오빠들의 딸뻘이고 심지어 서미경은 신 형제보다도 나이가 적다. 더 공교로운 것은 신격호 가족과 미후네 가족은 나이도 거의 같다는 것으로, 신격호는 토시로보다 겨우 두 살 적고, 시로와 신 형제는 4~5살 정도 차밖에 안 나며, 신유미와 미카는 1살 차다.[10] 멕시코 영화 Animas Trujano에서는 무려(!) 멕시코인 역할을 맡았다.[11] 미후네는 상당한 보트 애호가라 개인 보트를 가지고 있었다. 재팬 모터 보트 클럽 회장까지 지냈을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