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철

 


'''박상철
Park Sangcheol
'''
<colbgcolor=#283593> '''본관'''
밀양 박씨
'''출생'''
1969년[1] 3월 7일[2] (55 or 56세)
강원도 삼척시
'''신체'''
173cm[3], 66kg
'''가족'''
아내 김점숙, 슬하 1남 2녀[4]
'''종교'''
불교[5][6]
'''데뷔'''
2000년 1집 앨범 부메랑
'''별명'''
무조건 아저씨
1. 개요
2. 생애
3. 가정사 논란
4. 주요 히트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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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트로트 가수.

2. 생애


가수가 되기 위한 상경과 실패 후 귀향, 그리고 다시 상경을 반복하여 스타로 성공한 인간승리 수준의 케이스로 힘든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냈다.
고교 졸업 직후 19살 어린 나이에 가수가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무작정 서울에 상경한 후 미장이 일과 공장일 등을 하며 돈을 모았는데, 충무로에서 만난 작곡가에게 천만 원[7]을 주면 정식 가수로 데뷔시켜 주겠다는 유혹으로 사기를 당하고[8], 거의 거지꼴이 돼서 충무로 지역 내의 경비가 허술했던 건물이나 서울역, 구로역 같은 지하철역들에서 노숙을 하며 자살 충동에 시달리며 살다가, 우연히 만난 한 중년 노숙자의 말[9]에 감화되어 다시 새롭게 도전을 시작하게 되었다.
고향 삼척시로 돌아가 돈을 벌어 가수의 꿈에 재도전하겠다는 목적으로, 미용 일을 배워 미용실을 열어 돈을 벌면서 꿈을 꾸던 중 1993년 강원도에서 열린 전국노래자랑에 도전하여 가수 유열의 '화려한 날은 가고'라는 노래로 전체 1등인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다시 가수의 길로 들어설 동기를 얻기 시작했다. 당시 미용실까지 유명해지면서, 그때부터 '노래하는 미용사라는 기믹을 밀기 위해서 일부러 머리를 길게 길러 장발 스타일을 유지하기 시작하였고, 정식 음반으로 데뷔를 한 30대 중반까지 장발을 유지하였다.[10]
그 후에 전국노래자랑에서 만난 인맥으로 기획사를 만나게 되어, 2000년 1집 부메랑으로 데뷔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경제사정은 안 좋아 금호동 옥탑방에 월세를 살며 재연배우리포터 일을 부업으로 병행하며 생계를 유지하였다. 그러다가 2001년에 발표한 '자옥아'가 2003년부터 히트를 치면서 먹고 살 만해지고, '무조건'의 대히트로 스타덤에 오르게 되었다.
2집 나오기 이전 시기까지 3년 가까이 살던 옥탑방 시기에, 자신을 아들처럼 챙겨주던 집주인 부부를 TV는 사랑을 싣고에서 찾아 16년 만에 만나기도 하였다. 그를 아들처럼 생각한데다가, 적극적이고 정이 많은 성격이었던 그들[12][13]은, 당시 박상철에게 자신들을 '엄마 아빠'로 부르게 하고 챙겨주어, 평소 밑반찬이나 국을 자주 만들어 주었고, 심지어 종종 술상까지 차려주며 셋이 술을 같이 마시는 자리를 가질 수 있도록 하였다. 특히 떡국을 자주 끓여줬는데, 상당히 맛있게 끓여서 박상철이 못 뵌 지 15년간 떡국만 보면 두 사람이 생각났다며, 그 떡국의 정을 잊지 못하여 찾았다고 한다. 아버지가 알코올중독자라 걸핏하면 가정폭력을 일삼아 어머니가 가출하기까지 했을 정도로 유년기 가정환경이 나빴던 박상철에게는 제2의 부모와도 같던 분들이었던 것. 이때 박상철은 자신의 친부모와 달리 금슬이 좋은 이 부부에게서 난생처음 가족의 정을 느꼈다고 한다.
전국노래자랑이 탄생시킨 대표적인 스타 중 한 명. 이전에 미용사[14], 1993년 7월 25일 전국노래자랑 삼척시 편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이후 가수로 데뷔했다. 이 날 부른 노래는 유열의 '화려한 날은 가고' 였다.

전국 노래자랑 삼척시 편에 출연한 박상철
2005년, 3집 <무조건>이 큰 히트를 치면서 10년 무명 생활을 청산했다.
특전사에서 특전병으로 군 복무를 하였으며, 가수 활동을 하던 중 도둑을 잡아서 화제가 됐을 때 특전사에서 군 복무를 했던 사실이 언론에 알려졌다.
과거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TV는 사랑을 싣고 등 재연 프로그램에 나온 적이 있었다.[15] 링크 나중에 2018년 1월 21일자 800화 특집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카메오 출연하였다. MBN기막힌 이야기 실제상황 146회에도 출연했다.

2019년에는 MBC <놀면 뭐하니?>에 출연했다.
2020년에는 tvN <노랫말싸미>에 출연했다.
2020년 5월 13일 채널A 교양 프로그램 행복한 아침 게스트로 출연했다.
최근 들어 목이 많이 손상된 상태로 흥이 나는 노래를 과도하게 부른 것인지 허스키 보이스를 넘어서 건조한 사막 또는 가뭄에 쩍쩍 갈라진 땅 느낌이 난다. 평소에 개사를 많이 해서 목에 부담을 준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특유의 건방지거나 조금 날아가는 엇박자를 끌어오느라 목을 긁힌 것으로 보인다. 직접 흥을 부르는 행동 중 하나이니 감사하며 듣는 것이 좋다.
원래부터 가창력보다는 노래로 히트를 친 가수에 가까운데 목이 많이 손상되어서 그런 것인지 가창력이 많이 떨어진 편이다. 그래도 종종 노래를 부르려 전국노래자랑에 초대가수로 나오거나 불후의 명곡에 나오기도 하는데 역시 왕년에 히트곡이 꽤 나왔던 사람인지라 호응이 좋다. 또한 무대매너 또한 괜찮은 편이다.

3. 가정사 논란


2020년 8월 4일, 디스패치에서 정리한 가정사와 관련된 논란을 정리한 기사가 나왔다. #
가정사 관련 내용을 요약하자면, 1992년에 첫 번째 부인 A씨와 결혼 → 1993년 전국노래자랑 최우수상 → 2000년 1집 부메랑으로 데뷔 → 2001년부터 2007년까지 자옥아, 무조건, 황진이 발매 → 2007년 13세 연하 B씨와 외도 → 2010년 박상철 두 집 살림 시작 → 2011년 혼외자 C양 출산 → 2013년 영화 전국노래자랑 실제 모델 → 2014년 박상철 A씨와 이혼, B씨와 사실혼 유지 → 2016년 박상철 B씨와 혼인신고+C양 호적 등재 순인데, 이 때문에 박상철은 한동안 이것과 관련하여 일종의 전쟁을 치렀다고 한다.
이런 것과 관련해서인지 그는 사랑의 콜센타 녹화도 불참을 선언했으며, 트롯 전국체전도 출연을 안 하기로 하는 등 방송 활동도 잠정 중단을 선언했다.
MBC 실화탐사대 2020년 8월 29일 방영분에서 이 논란을 다루었다.

4. 주요 히트곡


  • 자옥아 (2001) : '무조건'과 함께 박상철의 대표곡. 1박 2일 시즌 1에서 연기자 vs. 스태프의 노래 대결을 할 때 잠시 노래가 나온다. 스태프 측에서 부르며, 부르는 사람은 막내 작가 김대주. 원곡 키가 너무 높아서 그런지 D코드로 낮춰불렀다. 굉장히 맛깔나게 잘 부르고 연기자 측의 가수인 김C가 감탄하며 놀랄 정도, 강호동도 멍 때릴 정도다. 한 번 들어보자(9분 10초부터). 오마이걸현승희2006년 전국노래자랑 인제군 편에 참가, 이 곡을 불러서 우수상을 받았다.
  • 무조건 (2005): 사원급 직장인들이 회식 자리에서 가장 많이 부르는 노래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물론 다 개사해서 부른다. 2008년에 1박 2일 시즌1 경남 거창편에서 기상송으로 등장하였으며, 1박 2일 팀이 전국 노래자랑 출전곡으로 이 곡을 불렀다. 2015년에 일본의 배우 카와사키 마요가 이 곡을 리메이크했다. 또한 포켓몬스터 DP 시리즈에서도 용식이가 불렀다. 또한, 총선, 지방선거, 대선 등 각종 선거에서도 후보자 로고송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곡. 4.13 총선서 가장 많이 쓰인 로고송은…박상철 '무조건'[16]
  • 꽃바람 (2007)
  • 황진이 (2007)
  • 쿵짝쿵짝 (2008)
  • 빵빵 (2009): 인터넷 방송인 공혁준이 방송에서 자주 틀어서 통칭 혁국가로 불린다.
  • 노래방 (2011)
  • 항구의 남자 (2015): 곡 자체는 2015년에 만들어졌으나, 정식 음원은 2016년 7월에 발매되었다.
  • 버스 한 대 (2019)
[1] 1968년생이라는 설도 있는 듯 하다.[2] 음력 1월 19일. 만약에 1968년생 설이 맞다면 2월 17일이 된다.[3] 코미디빅리그에서 황제성, 양세찬과 같이 나온 데서 황제성보다는 크고 양세찬과는 비슷하게 나왔고, 이와 별개로 173cm인 박구윤과 같이 선 걸 보면 키가 똑같게 나온다.[4] 다만, 후술할 가정사 논란 문단을 보면 이것도 지금은 이렇지 않은 듯 하다.[5] 참조.[6] 정치인 주호영 못지않게 굉장히 독실한 불자로 알려져 있다. 원래 강원도 영동 자체가 경상도, 제주특별자치도와 더불어서 전국에서 불자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지역인데, 특히 삼척은 본디부터 불교 신자가 강원도 지역에서 강릉시와 더불어 상당히 많은 편이며, 개중에서도 독실한 불자들이 상당히 많은 편이다. 경상남도 합천군, 경상북도 경주시와 더불어 불교세가 초강세인 이유는 강원도 지역에서 삼척이 경상도와 가깝기도 하거니와 유일무이한 신라의 최북단 영역이었기 때문. 그래서 불교세가 상당히 강한 것이다.[7] 1987년~1988년 사이의 일로, 당시 천만 원이면, 지방에 작지 않은 집 한 채를 살 수 있는 돈이었다.[8] 물론 아무것도 안 해준 건 아니고, 당대 히트곡들을 부르게 해서 메들리 카세트테이프 하나를 내줬다고 한다. 그러나 천 만원을 제작비로 썼다기엔 지나치게 부족한 퀄리티이기도 한 데다가 자기 곡을 준 게 아니니 누가 봐도 사기.[9] "나는 사업이 망해 빚도 있고 늙어 다시 돌아갈 수 없으나, 자네가 빚이 있나 뭐가 있나? 자네는 젊으니 다시 시작할 수 있어."라고 했다고.[10] 1집이 큰 인기를 못 얻어 가수 활동만으로는 수입이 적어 재연배우리포터 일을 시작하게 되자 그때 돼서야 다시 잘랐다.[11] 그 동네 전체에 대형 아파트촌이 들어섰는데, 옥탑방 집 건물이 있던 땅에는 대형 교회가 들어섰다.[12] 집주인 부부 중 부인의 경우는 당시 방송분에서도 박상철뿐만 아니라, 생전 처음 만난 김용만에게도 '용만아'라고 반말로 부르는 등 상당히 적극적이고 살가운 성격임을 보여주었다. 당시 77세였는데, 그녀는 심지어 60대에 큰 병으로 3년이나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럼에도 밝은 성격이신 것. 병력을 밝힌 이유는, 사실 박상철이 그동안 한번도 안 찾은 게 아니라 과거에 직접 두 번이나 집에 찾아갔는데 아무도 없어서 못 만났었고 그 이후 동네 재건축[11]으로 이사 가서 찾을 수 없어 방송에 의뢰한 거였는데, 이 얘기를 하며 박상철이 '어머니 당시에 왜 계속 집에 안 계셨냐'라고 물었기 때문. 박상철이 처음 장발로 들어왔을 때를 회상하며 "깡패 새끼인 줄 알고 놀랐다"거나 "노래연습한다고 시끄럽게 해싸서 고만 하라 했다"라는 등 약간 투박한 말투를 썼지만, "(머리는 그래도) 알고보니 양반처럼 점잖았던 아이었다"거나 시끄럽다고는 했으나 가수로 성공하기 위해 연습하는 것이니 막지 못해 그가 연습할 때 "화장실에 숨었다"라고 하는 등 정이 많고 따뜻한 품성을 가졌음을 보여줬다. 사실 만나자마자도 박상철을 바로 끌어안고 '니 얼마나 고생했나', '니 잘 돼서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라며 엉엉 울었다.[13] 남편의 경우는 말이 많은 편은 아니었으나, 과거 회상에서 나온 내용으로는 집주인으로의 갑질은 커녕, 박상철이 불편함을 호소하면 바로바로 해결해 주려고 나서는 등 역시 부인처럼 인간미 넘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동네에서 제일 높은 옥탑방인 박상철의 집 화장실에 수압 부족으로 수도가 잘 안 나오자마자 잘 나오게 모터펌프를 바로 설치해 주었고, '항상 상철이 잘 되라고 기도했다'라고 말할 만큼 선하신 분.[14] 강원도 삼척시 남양동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박상철 헤어아트'라는 미용실을 차렸다. 트로트 가수로 전향한 후 미용사는 그만뒀지만, 현재까지도 '박상철 헤어아트'라는 미용실은 존재한다. 또한 이발은 잘 못 했다고 한다.[15] 이건 장윤정도 마찬가지였다. 그 시기는 신비한 TV 서프라이즈가 워낙 당시 인기가 높았던 관계로, 장윤정의 '어머나'가 처음 히트 치던 시점에 "서프라이즈 배우가 트로트 가수가 되었다"고 생각한 시청자들이 많았다. 박상철 역시 '자옥아'로 방송 나올 때 서프라이즈 배우를 계속하던 시기라, 서프라이즈 배우가 본업이고 가수 겸업을 하는 걸로 오해받기도 했다. 두 사람 다 서프라이즈 재연배우 활동 이전 방송활동이 있었지만 일반인들 대부분이 몰랐기 때문이다. 단 장윤정처럼 서프라이즈에 나오던 와중에 바로 어머나로 대히트를 치던 경우는 주목이 많았지만, 박상철의 경우 무조건으로 대히트칠때는 서프라이즈를 안 나오기 시작해서 오해가 적었고, 자옥아 때만 있었다.[16] 불후의 명곡 <<전국노래자랑>> 편에서 언급된 바에 의하면 전국노래자랑 뿐만 아니라 노래방, 축제 때마다 가장 많이 부르는 곡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