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수(법조인)
1. 개요
대한민국의 검사 출신 변호사(사법시험 20회, 사법연수원 10기). 박명효 초대 북제주군수(초대 제주읍장도 역임)의 손자이고, 목포 지역의 향판(鄕判)으로 유명한 고 박창택 변호사의 아들이다. 대검 중수부장과 서울고검장을 지냈고 법무법인 강남 대표변호사를 역임했다.
2. 생애
수원지방검찰청에 있을 때, 오대양 집단 자살사건의 주임검사로서 수사를 지휘하였다. 이후 1990년대 후반에는 강력 및 특수통 검사로서 조폭들을 소탕했다.
2001년 김대중 정부 사정비서관을 지냈다. 2003년에는 서울지검 2차장으로서 SK그룹 글로벌 분식회계 사태 수사를 지휘하여 최태원 회장을, 2006년 때는 대검중앙수사부장으로서 현대차 비자금 수사를 지휘하여 정몽구 회장을 구속 기소하면서 '재계의 저승사자'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하였다.[2] 이후 대전고검장과 서울고검장을 지냈다.
이후 노무현 前 대통령이 자살하면서 과잉수사의 책임을 지고 임채진 검찰총장이 사직하면서 후배인 김준규가 검찰총장으로 임명되었다. 이후 관례라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압박에 의해 2009년, '권력은 교만하면 안되고 검찰은 오만해선 안된다.'는 퇴임사를 남기며 검사를 퇴직하고, 변호사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노무현 前 대통령 일가와 측근이 연루되었던 박연차 게이트 때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변호인을 담당하면서 당시 한나라당 의원들의 집중견제를 받았다. 2012년 8월, 지방자치단체 세금 낭비 조사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지내면서 서울특별시 세빛둥둥섬 사업과 관련하여 오세훈 전 서울특별시장 등 12명을 대한민국 검찰청에 수사 의뢰, 7000여억 원이 투입된 용인경전철 사업에 대해 주민감사를 청구했지만, 별다른 성과 없이 의혹에 그쳤다.
2015년 6월 17일 자정 무렵에 사무실에서 퇴근하던 도중 서울 도심의 길거리에서 과거 소송결과에 불만을 품은 상대편 당사자에 의해 흉기로 습격을 당했다.# 문제의 인물은 결국 살인미수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2016년 11월 30일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로 임명되었다.
3. 특별검사
국민의당 박지원 비대위원장이 적극 추천했으며, 국민의 정부 시절 인연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황교안, 우병우와도 친분이 있는 사이인 것으로 알려져 특검 후보로서의 공정성이 의심받는 한편, 국민의당의 후보 추천에 특검을 약화시키거나 주도적으로 좌우하겠다는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음모론이 트위터를 비롯한 SNS상 일어났다.# 특히 당시엔 박지원-김무성-박근혜 3각동맹 음모론이 성했기 때문에 민주당에서 추천한 전 대검 형사부장 조승식은 껄끄러워서 거부하고 박영수를 특별검사를 생각도 안 하고 선택했다는 소문이 돌았다.[3][4]
취임 시 인터뷰에서 세월호 7시간 등에 대해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밝혔고 12월 1일 일각의 생각과 달리 수사팀장으로 윤석열 대전고검 검사를 임명하였고 # 조윤선 전 장관, 김기춘 전 비서실장 등의 정부인사와 삼성 이재용 부회장을 구속하였다. 그러나 우병우 전 민정수석을 구속하는 데 실패하였다.
4. 학력
- 1971 서울 동성고등학교 졸업
- 1975 서울대학교 문리대 종교학과 졸업
- 1978 고려대학교 대학원 법학과 수료
- 1990 국방대학원 수료
- 2001 단국대학교 정책경영대학원 특수법무학과 졸업(석사)
5. 경력
- 1978 제20회 사법시험 합격
- 1980 제10기 사법연수원 수료
- 1983 서울지방검찰청 북부지청 검사
- 1986 대전지방검찰청 서산지청 검사
- 1987 수원지방검찰청 검사
- 1989 대한민국 법무부 보호과 검사
- 1991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 1992 대전지방검찰청 강경지청장
- 1993 대검찰청 검찰연구관
- 1994 수원지방검찰청 강력부장
- 1995 대검찰청 강력과장
- 1997 서울지방검찰청 남부지청 형사3부장
- 1998 서울지방검찰청 강력부장
- 1999 수원지방검찰청 평택지청장
- 2000 대검찰청 공안기획관
- 2001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실 사정비서관
- 2002 서울지방검찰청 2차장
- 2003 부산지방검찰청 동부지청장
- 2004 서울고등검찰청 차장
- 2005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 2007 대전고등검찰청 검사장
- 2007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
- 2009 법무법인 대륙아주 대표변호사
- 2010 법무법인 산호 대표변호사
- 2013 법무법인 강남 대표변호사
- 2013 우리금융지주 이사회 의장
- 2014 건국대학교 대학원 석좌교수
- 2016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6. 여담
- 제48대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하였다.
- 황교안 국무총리에게 특검 임명장을 수여받을 때, 인사를 먼저 받았다(!)[5] 아무래도 검사 시절에 박영수 특검을 선배로 대하던 황교안 총리의 자연스런 습관 때문에 일어난 일인 것으로 보인다. 박 특검이 부산지검 동부지청장을 할 때에 황 총리가 차장검사였다고. 차장검사였던 황교안 검사에게 취미로 색소폰 연주를 권유했는데 지금도 황교안 본인의 취미가 되었다고 한다.
-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특검 경쟁후보였던 조승식 전 대검부장은 조폭들 사이에서 저승사자라 불릴 정도로 전설적인 인물이었던 사람이라 처음 특검 지명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박영수 특검의 지명을 아쉬워하는 사람도 있었다.
-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에 의하면 노무현 정권 시 '바다이야기'가 문제가 퍼지고 수사가 진행되었을 때 박영수가 중수부장으로 있을 당시 중수부가 그 사건의 수사권을 가져간 뒤 사건을 유야무야시켰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김 의원의 말을 요약하면 자신이 대검 강력과장으로 있을 때 바다 이야기 사건 수사를 대검 중수부에서 사건을 빼앗아 와서 흐지부지 시켰고 그때 중수부장이 박영수다! 그리고 그 문제로 경대수 마약조사부장이 사표 던지고 나왔다! 라고 하는데 김 의원이 대검 과장으로 있었고 사건 당사자였다는 것과 박영수 특검이 대검 중수부장이라는 걸 제외하면 중수부의 개입과 마약조사부장의 사표 제출 문제는 논란이 있다.# 노컷 뉴스의 이 논란을 보도하며 팩트 체크와 관계자 취재를 하였는데 당시 사건축소가 아닌 전방위 수사를 위한 사건 이관, 당시 마약조사부장의 사표 제출도 수사권 가로채기와 관련 없는 마약조사부장과 검찰 수뇌부와의 트러블이 문제였다 라는 취재결과가 나왔다. 간단히 줄이면 그때 그 사람들이 그자리에 있었다는 걸 제외하면 사건을 흐지부지시켰다는 확실한 근거는 아직 안 나온 것이다.
[1] 일부 언론에 철학과 졸업으로 나와서 혼선이 있는데, 서울대학교총동창회의 인명록에 종교학과 졸업으로 나온다.[2] 현대차 비자금 수사를 지휘 했을 때 그 아래의 수사기획관이 채동욱 전 검찰총장, 중수1과장이 특검 임명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이었던 최재경 수석이었다.[3] 하지만 강적들의 검사출신 강민구 패널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재벌이 대규모로 연루되어 있는 사건이기에 대기업 수사 전문가인 박영수 특검이 훨씬 더 나은 선택이라며 박 특검의 지명을 옹호했다. 어떻게 보면 박근혜는 자신의 무덤을 스스로 판 것.[4] 인터넷 여론과는 별개로, 언론이나 정치판에선 넷상에 떠도는 '친분'이란 게 사실은 사시출신 법조인들이라면 기본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정도의 관계에 불과해 별 문제가 안 된다고 보는 편이었다. 일례로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권영철 대기자(당시는 선임기자)는 '일각에서는 박영수 특검 후보가 황교안이나 우병우와 친하다고 하지만 그런 식으로 치면 비사시 출신인 전 법사위원장 노회찬 의원이나(여담이지만 여기서 사시패스 만능주의가 잘못되었음이 잘 드러난다. 사시패스를 한 사람이 아니었지만 노회찬 전 의원이 해 낸 의정활동 결과물은 그 어느 법조인 출신에 뒤지지 않았다. 오히려 비주류이었기에 가능했을 지도 모른다.) 전직 판사였던 박범계 의원과도 그 정도 친분은 있다. 이런 수준 인맥까지 따져버리면 후보 추천조차도 불가능해진다'는 평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결과론적으로 볼 때, 그런 우려는 기우였음이 증명되었다.[5] 박근혜 대통령이 수여해야 하지만 대구 서문시장 화재 현장 방문을 이유로 황교안 총리가 대신해서 수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