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폭행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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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상보기 part1'''
'''영상보기 part2'''
2011년 11월 15일 민방위 훈련 참관 중이던 박원순 서울특별시장을 폭행한 여성의 별칭으로, 명예훼손 논란 등 법적인 문제 때문에 실명은 기재하지 않는다.
전적이 화려해서 사람/기사에 따라 "정동영 폭행녀", "김근태 빈소 난동녀"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특히 박원순 서울특별시장을 폭행한 것은 단순히 야당 정치인 차원이 아니라 '''정상 공무 수행중인 정무직 공무원'''을 폭행한 것이라 '''공무집행방해'''로 처벌받았으며 가장 임팩트가 큰 사건이라 그렇게 제목이 정해진 것이다. 참고로 정동영 대표를 폭행했을 당시엔 정동영 대표는 사실 공무원이 아니라 법적으론 그냥 일반인이라서 정동영 대표가 처벌불원을 표하여 반의사불벌죄로 해당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끝났다.
2. 행적
- 2010년 6월 17일: 국회도서관 한국전쟁발발 60년 기념 토론회 난동
- 2011년 7월 11일: 박지원 의원 폭행미수(보좌관이 제지)
- 2011년 8월 2일: 천정배 의원 보좌관 폭행
- 2011년 8월 8일: 김영환 의원 보좌관 폭행
- 2011년 8월 15일: 반값 등록금 촛불집회 집회 정동영 의원 폭행
- 2011년 8월 20일: 시청 다산플라자 「오세훈 팬클럽 삭발 퍼포먼스」훼방 난동 #
- 2011년 11월 3일: 한미자유무역협정 반대집회 참가자 폭언, 폭행
- 2011년 11월 15일: 시청역 민방위 훈련 박원순 서울시장 폭행
- 2011년 11월~12월 17일: 공주치료감호소 출소
- 2011년 12월 26일: 검찰청 정봉주 입감현장 시민과 충돌
- 2011년 12월 30일: 김근태 민주당 상임고문 빈소 난동
- 2012년 1월 15일: 세종문화회관 임형주 콘서트 난동
- 2015년 7월 29일: 세월호 참사 유족 폭행
- 2016년 2월 4일: 더불어민주당 당사 난동, 폭행
- 그 외: 강기갑, 박지원, 안산시 야당의원 등 폭행, 난동, 미수
피해자들이 대부분 고소를 취소하며 봐줬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전과 10범은 가뿐하게 넘길 뻔했다.'''
3. 상세
이 여성은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이회창 후보가 두 번째로 낙선할 위기에 처하자 "빨갱이들에게 다시 나라를 잃어서는 안 된다"며 거리로 나선 '''아스팔트 우파'''라고 한다.
주로 외치는 문구는 '''"빨갱이들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 "김대중·노무현 앞잡이들은 북한으로 가라!"''' 등 극단적인 매카시즘 일색. 이러한 정치성향은 6.25 전쟁으로 인한 북한 정권에 대한 혐오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하며(한국전쟁 간접피해자라고 한다), 진보 진영 인사들에 대한 혐오감은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 당시 여당의 색깔론으로부터 출발한 것이라고 한다. [1]
2001년에는 추미애가 이회창에게 "이놈" 이라고 했다는 보도가 나가자 "추미애를 때리러 가야겠다" 고 했으며, 그때부터 가족들이 이 여성의 정신이상을 눈치챘다고 한다. 그 후로 아래에 나온 온갖 사건을 일으켜서 보다못한 가족들이 외출금지도 시키고 정신병원에 입원도 시켰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어머니가 계속해서 사고를 쳐서 자식들도 스트레스가 크다고 하니, 피해를 입은 정치인들은 둘째치고 당장 자기 자식들에게 끼치는 폐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정략인닷컴 인터뷰에서는 '''약 1800만 원의 벌금'''을 문 적이 있고 법정모독죄로 2006년에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었다가 공주치료감호소에 이감되어 1년 이상 지냈다고 고백했다. 참고로 치료감호소는 '''자신의 범죄행위에 대해서 법적 책임을 질 능력이 없거나 현저히 감퇴된 상태임이 증명된 사람들이 가는 곳이다.'''
인터넷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2010년 6월 17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한국전쟁발발 60년 기념 토론회 때 난동을 부린 일 때문인데, 이 일이 딴지일보에 보도되었다. 이후 2011년 8월 15일 정동영 의원을 반값등록금 집회에서 폭행하고 뉴스를 탔으나, 그녀의 폭력행위는 레드 콤플렉스에 찌든 보수단체 회원의 돌발 해프닝 정도로 보도되고 묻혔다. 그리고 2011년 11월 15일 시청역 민방위 훈련 참관 중인 박원순 서울시장을 폭행하고서도 묻힐 뻔했는데...
박원순 시장을 폭행한 여성이 정동영 의원을 폭행한 여성과 동일인물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지금까지 인터넷에 올라온 동영상, 포스팅, 트윗들이 모아지고 더해지며 널리 알려져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그 전에 안산시에서도 여러 차례 난동을 일으켜 이미 지역 유명인사였다고 한다. 오죽하면 박원순 시장 폭행사건 때 언론에 나온 이 여성의 모자이크 된 사진과 음성만으로도 안산시청 및 안산시의회 관계자들이 누군지 알아봤을 정도라고 한다.
국회 방호원들 사이에서도 요주의 인물로 찍힌 상태다. 국회 경내 시설 출입금지에서 국회 출입금지로 레벨이 격상되며 국회를 경비하는 전경들에게도 얼굴을 알리는 위엄을 보여줬다.
박원순 시장 폭행 사건으로 치료감호소에 들어갔다가 출소한 직후인 2011년 12월 30일에는 김근태 민주당 상임고문의 장례식장에서 또 난동을 부렸다. 보통은 아무리 싫은 사람이라도 장례식장에서 소란을 피우지는 않는데, 정신상태가 평범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더니 불과 보름 후인 2012년 1월 15일에는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임형주 콘서트 도중에 난동을 부리다가 '''구속'''되었다. 여담으로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 도중 소란이 일어난 것은 사상 최초라고 한다.(...) 구속되기 얼마 전(즉, '박원순 폭행녀' 라는 칭호를 하사받은 직후)에 한 인터뷰를 보면 "폭행은 이제 못 하지" 라고 했는데, 실제로는 콘서트가 끝난 후의 행사인 팬 싸인회 때 임형주를 폭행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이전까지는 민주당 계열 정치인만 폭행하던 사람이 뜬금없이 정치와 상관없는 가수의 공연장에 찾아가 난동을 부린 이유는, 임형주가 노무현 전 대통령 '''취임식 때 축가 공연을 했으니 빨갱이'''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족이지만, 김대중 대통령 빈소를 찾은 김근태 고문 역시 빨갱이라고 했다.
이렇게 줄줄이 문제를 일으키고도 구속이 안 되는 걸 보고 누리꾼들이 "배후세력이 있는 거 아니냐?" 는 의문을 제기했는데, 궁금한 이야기 Y와 언론 인터뷰에서 본인이 밝힌 것과 주변인물들 인터뷰에 의하면 배후세력이나 소속은 없다고 했다. 정치인들 일정을 꿰고 다니며 경호원들을 뚫고 폭행하고도 풀려나는 것을 보니 사람들이 배후세력이 있다고 의문을 제기할 만도 하다. 이에 대해서는 궁금한 이야기 Y에서 박원순 폭행녀의 집 벽면에 붙은 신문이나 잡지 스크랩 자료와 수첩의 정치인 전화번호 등 수집자료들을 보여줬다. 즉, 보통 사람이라도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특정 정치인의 보도 자료나 홍보 자료 등을 집중적으로 모아 연구하면 이 정도 동선은 파악할 수 있다. '''진짜 북한 간첩'''인 무함마드 깐수(본명 정수일) 같은 사람이 공작활동이라고 벌인 것이 몇 년간 신문기사 스크랩 등 입수하기 쉬운 정보를 북한에 보냈던 것이고, 결국 그 일로 처벌받았다는 걸 생각하면 된다.
진보계열 지지자는 물론이고 보수계열 지지자라도 개념이 있는 사람이라면 박원순 폭행녀의 행동에 눈살 찌푸리며 과격분자라고 비판하겠지만, 유명세에 비해 의외로 성과(?)는 별로 없었다. 극성스런 동네 아줌마의 이미지로 정치행사에 사사건건 참여해서 갑작스럽게 돌발행동을 일으킨 게 전부이고, 전부 배후세력 없이 혼자 다했으며, 후폭풍이 거셀 고위급 정치인 폭행보다는 타인에게 웃음거리가 될만한 민폐 수준의 행위가 월등히 많았다. 박원순 시장의 경우는 폭행하려고 시청 근처에서 3일 동안 기다리다가 민방위가 걸려서 시청역에서 못 나가는데 그때 기자들과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 있는 박원순 시장을 발견했다고 한다.
어쨌거나 정동영 의원과 박원순 시장은 모두 이 사람을 고소하지 않았다. 박 시장은 폭행 직후 "계속 진행하자"고 했으며 행사가 끝나고 기자들의 질문에 "내가 당황하는 거 봤냐?", "처벌은 무슨...", "서울시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으니 내가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처벌을 원하지 않았다.
임형주도 처음엔 공연에 와준 관객들을 생각해서라도 처벌받게하겠다며 고소했다가, 며칠만에 고소를 취하하고 선처를 바라는 관대한 행동을 보였다.
그러나 결국 집회에서 시민을 폭행한 것, '''정무직 공무원 임무를 수행하던''' 박원순 시장을 폭행하고도 시청에 올라가 시청 직원과 싸운 것, 박원순 시장 폭행 사건으로 불구속 수사 중에 임형주 콘서트 난동 사건을 일으켜서 공연기획사의 업무방해를 한 것에 대한 고소가 복합되어 구속되었다. 나중에 임형주도 선처해달라고 했지만 워낙 전력이 화려한 터라 경찰쪽에서도 더 이상 놔두기 어려운 일이었다. 전투경찰이나 요인 경호 알바 등을 하신 분은 아시겠지만 이런 사건 한 번 터지면 줄줄이 갈굼당하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즉, 경찰도 그동안 참을 만큼 참다가 더는 못참을 지경이 되었다고 보면 된다.
결국 2012년 4월 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8부(김상환 부장판사)는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그리고 추가적인 치료감호를 선고했다. 고령에 분열정동장애를 앓고 있다는 사실이 감형의 이유라고 한다.# 그러자 온갖 사람들을 빨갱이라고 비난하며 소란을 부리던 패기는 어디 갔는지, 선처를 호소하며 자신이 늙은이에 경제적으로 가난하여 그런 것이라며 온갖 구차한 모습을 보였기에, 그녀를 열사라고 추앙하던 극우 사이트에서도 처량하다고 비꼬고 있다.
그런데 이 박원순 폭행녀는 '''이회창이 대통령에 당선될 때까지''' 이 짓을 멈추지 않겠다고 한다.
그리고 2015년에 세월호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에서 '운명이 그것밖에 안 돼서 죽은 건데 왜 국가로부터 돈을 받으려 하느냐'라는 막말을 하면서 세월호 유족을 폭행했다. # 집행유예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날 전부터 사람이 적은 날만 기다리며 마스크까지 쓰고 폭행하고 기물파손하는 등 난동부린 걸로 봐서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한 듯....
2016년 2월 4일에는 더불어민주당 당사에 난입해서 당직자들의 머리채를 잡아 끄는 등 폭력을 일삼다가 경찰에 불구속 입건됐다. #
4. 언론 보도
2011년 11월 16일 MBC 생방송 오늘의 아침과 2012년 1월 6일 SBS 궁금한 이야기 Y에서 다루어진 적이 있고, 2015년 8월 7일 두 번째로 궁금한 이야기 Y에 나가는 기염을 토했다.
구속되기 얼마 전인 2012년 1월 5일에는 한겨레와의 인터뷰(빨갱이들 토막쳐 북으로 보내야)를 통해 이 여성의 본명과 비하인드 스토리가 어느 정도 공개되었다.
5. 이후 행보
박근혜가 탄핵되고 파면된 후에 여러 번 벌어진 각종 보수단체의 폭력시위에는 일절 참여하지 않고, 현재까지 이상하리만큼 얌전히 지내고 있다. 해당 인물의 성격상 친박 세력의 폭력시위에 앞장서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텐데, 그 어떤 태극기 집회에도 나서지 않아서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했다.
아마 그동안 벌인 짓이 워낙 많아서 경찰이나 검찰도 더 이상은 봐주지 않을 기세이며, 여러 진보 단체에서도 또 문제를 일으키면 그때는 고령이고 뭐고 정말 용서없이 고소하겠다고 잔뜩 벼르는 중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몸을 사리는 모양이다. 또한 박사모 등 탄핵 반대 진영의 도넘은 폭력시위 및 삼성동 저택에서 보여준 사이비 광신도 같은 행태에 국민들이 싸늘한 시선을 보내는 걸 보고, 얘네들이랑 같이 행동해봐야 좋을 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다.
근데 사실 잘 생각해보면 왜 안나가는지 이유가 나오는데,앞서 서술했듯 이 사람은 이회창을 지지하는 사람이라 성향이 반대인 박근혜를 좋게 볼리가 없다...[2] 물론 이 사람은 개혁보수는 아니지만 박근혜와는 이미 일찌감치 선을 그었을 가능성이 높단 이야기.
2020년 박원순 시장 사망 후에도 별다른 의견표명을 하지 않았으며, 사망한 것이 아니냐는 추론도 가능하다.
[1] 젊은 시절 옆집 할머니(...)가 김대중은 빨갱이라고 말해준 뒤로 당시의 재야 인사들에게 분노를 품게 되었다고 한다. 1970년대 젊은 시절을 보낸 현재의 노년층 중에 제대로 된 근거없이 이런 식으로 민주화 운동 인사들에게 혐오감을 가진 사람이 많다는 걸 생각하면, 유별난 행동으로 언론에 보도되어 유명해진 점만 빼면 전형적인 '색깔론에 매몰된 노년층'이라 할 수 있다.[2] 이회창은 개혁보수의 상징적 원로지만 박근혜는 극우세력의 작은 상징이라 양 측 지지자들은 사이가 굉장히 나쁘며 친이와 친박의 사이와도 비슷하다.즉 견원지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