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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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데뷔 전
유치원 재학 당시 아버지를 따라 독일로 건너가 1년 반 정도 생활하다가 미국으로 이주하여 지냈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용산초등학교[12] 를 5학년까지 마치고 다시 미국으로 완전히 이주했다.
이후 Cahuenga Elementary School(코헹가 초등학교), John Burroughs Middle School(존버로우 중학교), Downey High School(다우니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90년[13] 부터 자신의 신체적 장점을 살려 모델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에는 아시아계 모델이 드물어서 희소성이 있었고, 가수 데뷔를 위한 이미지 연출의 일환이라 생각하고 활동했다고 한다. Bean X Model Agency에 소속되어 'Milo Print' CF 모델과 의류 브랜드 GAP(갭), ESPRIT(에스프리), Levi's(리바이스) 등의 모델로 활동했다. 한국에서도 가수 데뷔 전 잠깐 잡지 모델로 활동했었다고 한다.
초등학생 때 피아노를 시작했고, 중학교 교내 오케스트라에서 첼로를 배우며 음악적인 감각을 키웠다. 타고난 음성이 맑고 고와서[14]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1986년부터 미국으로 이주하기 전까지 KBS 어린이 합창단에서 소프라노 파트로 활동했다. 1987년 미국으로 완전히 이주한 후에는 Angels 합창단에서 활동하며 가수의 꿈을 키웠다.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1993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미주 중앙일보, 미주 한인 방송국, 한국 음반사가 주최한 공개 오디션에서 1,000:1[15] 의 경쟁률을 뚫고 1등으로 합격했다. 당시 그는 성적 우수자로 고등학교는 조기 졸업 예정이었고 이미 UC 버클리 심리학과에 특례 입학[16] 을 앞두고 있었으나, 오디션 합격을 이유로 대학 진학은 잠시 미루고, 고교 졸업 직후인 1993년 12월 가족의 품을 떠나 홀로 대한민국으로 귀국했다.
3. 데뷔 후
우여곡절[17] 끝에 옴니뮤직에 발탁, 작곡가 안진우에게 4개월 간 노래 지도를 받고 3개월 간 녹음을 마친 뒤,[18] 1994년 10월 1집 앨범 《Seo Ji Won》을 발표하였다. 케이블 방송에 먼저 출연 하였는데 신인 유망주로 떠오르면서 젊은 층 사이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하며 같은 해 12월 SBS 프로그램 <당신이 특종>[19] 으로 지상파 방송에 데뷔했다.
한국에서 잡지 모델로 활동할 당시 그를 알아보고 이미 팬이 된 사람들도 있었으나 정식 데뷔 후, 당시에는 비교적 드물었던 10대 가수[20] 라는 점이 이목을 끌기 시작하며 본격적인 팬덤이 형성되었다. 또한 방송 데뷔 불과 3개월 만에 SBS 예능 프로그램 <점프 챔프>[21] 에서는 메인 MC를 맡았고, 프로그램 내 미니드라마 '남녀공학'과 '라이벌'에서 남자 주인공으로 연기도 선보였다. 이 외에도 여러 방송사의 프로그램에서 고정 진행을 맡았으며, 가수로서 노래뿐 아니라 작사, 작곡, 모델, MC, 연기 등 다방면에 뛰어난 면모를 보여 단숨에 인기 스타 대열에 올랐다.
이러한 분위기를 증명하듯 데뷔 곡인 <또 다른 시작>은 1995년 한 해 동안 젊은 층을 중심으로 꾸준한 사랑을 받았는데, KBS <가요톱10> 9위, SBS <인기가요> 6위까지 랭크됐다. 역대급으로 순위 경쟁이 치열했던 시기[22] 의 데뷔 곡으로는 나쁘지 않은 성적표였다.
1995년 늦가을에 나온다던 2집 앨범은 서지원의 건강 문제로 한 번, 음반 심의 기간이 길어져 또 한 번 늦어지게 되었고, 결국 2집 앨범 발표는 해를 넘겨 1996년 1월 중순으로 미뤄지게 되었다.
그러나 1996년 1월 1일, 새 앨범 발표를 목전에 두고 돌연 그가 세상을 떠나면서 2집 앨범은 유작이 되었다. 정재형이 작곡한 2집 앨범 타이틀 곡인 <내 눈물 모아>는 KBS <가요톱10>, MBC <인기가요 베스트 50> SBS <TV가요 20> 등 방송 3사 가요 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하며 현재까지도 사랑받는 명곡으로 남게 되었다. 하지만 정작 1위의 주인공으로 피날레 무대를 장식해야 할 서지원은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나 무대에 설 수 없었기에 그의 공연은 뮤직 비디오로 대체되었으며, MBC <인기가요 베스트 50>에서 1위를 했을 때에는 그의 어머니와 동료가 대리 수상, KBS <가요톱10>에서 1위를 했을 때에는 정재형이 속해 있는 그룹 베이시스가 대신 공연했다.
그의 활동 당시와 사후까지 소속사의 행실은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데, 자세한 사항은 후술하는 문서에서 참고.
4. 음악적인 평가
서지원 노래의 특징은 남자로서는 보기 드물 정도의 맑고 고운 미성과, 화려한 기교 없이 담백하게 노래하지만 듣는 이를 충분히 몰입케 하는 뛰어난 표현력이라고 할 수 있다."당시 쏟아져 나오던 아이돌과 달리 가수와 뮤지션의 경계에 있던 친구… 노래 전반의 곡 해석이 탁월해 정말 좋은 노래구나... 하고 감탄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가수가 노래할 때 기교에만 신경을 쓰면 노래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망치는데, 서지원은 '''노래를 처음부터 끝까지 한 호흡으로 마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유영석-'''
2집 앨범에서는 조금 더 성숙해진 모습을 담아내기 위해 고민했던 모습이 느껴질 정도로 한층 달라진 보컬에 1집에서 보여주었던 서지원만의 소년적 감성을 느낄 수 있었는데 성숙해진 남자의 모습과 여전히 치기어린 소년의 감성이 공존하는 것 또한 서지원이 가진 독특한 매력이었다.
특히 노래할 때 곡의 분위기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이를 목소리에 담아내는 표현 능력 또한 탁월 했다. 듣는 이에게 제대로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노래를 부르는 것은 무조건 고음만 뽐내는 노래보다 어려운 일인데, <내 눈물 모아>의 마치 울고 난 뒤 부른 듯한 애절한 보컬은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그의 노래를 들어도 쉽게 감정에 동화되게 해주었고 마지막 부분의 숨을 '스으읍' 하고 들이쉬다가 '하아아' 하고 내뱉는 섬세한 표현력 또한 곡의 감정을 한층 더 고조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노래 외에 글쓰기도 좋아해서 본인의 앨범 수록곡 작사도 했는데, <이별만은 아름답도록>, <너와 함께 할 거야>, <사랑, 그리고 무관심(공동)> 세 곡의 가사를 썼다. 특히 <이별만은 아름답도록>은 곡은 같고 가사만 다른 버전[23] 이 있는데 서지원이 작사한 버전이 훨씬 좋다.
고등학교 시절 작곡을 시작했다. 2집 앨범 수록곡인 <사랑의 기초>를 작곡했으며 <너만을 위해>는 Joey Lawrence의 <Stay Forever>를 윤일상과 공동 편곡했다.
하지만 당시 그의 나이와 앳된 외모만 보고, 음악을 들어보기도 전에 그의 음악적 능력을 평가절하당하는 분위기가 있어 아쉬운 점이 있었다고 그가 인터뷰에서 직접 밝혔다.
5. 인물
5.1. 성격
안타깝게 생을 마감하게 되어 '서지원' 하면 모두가 슬픈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생전 서지원은 밝은 성격이 인기 요인으로 꼽혔을 정도로 활발하고 명랑했으며, 주변 사람들을 세심하게 잘 챙겼다. 또한 예의 바르지만 필요할 땐 똑 부러지게 자기 표현을 할 줄 아는, 이제 막 소년 티를 벗어가는 스무 살 청년이었다.
피아노 두드리면서 노래도 부르고 어렸을 땐 목소리가 참 예뻤거든요.
그런 거 부끄러워하지도 않아요. 나서는 것도 좋아하죠.
보여줄 수 있는 거,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것은 뭐든지 하는 스타일이었어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지원이를 무지 사랑했죠.
'''-MBC라이프 <히스토리 후> 방송 中 아버지 인터뷰-'''
서지원은 외향적이고 거침이 없다. 천성적으로 밝고 쾌활한 서지원은 미국에서 중・고교를 다니던 시절 학교행사가 있으면 여러 차례 사회를 맡아 봤을 정도로 발표력이 뛰어나다. 이런 점이 자기 표현력이 강한 신세대에게 동질감을 느끼게 만드는 요소이다. 또한 미국에서 모델 활동을 하며 사교성을 체득해서인지 어느 자리에서든 당당하고 똑 부러지는 모습을 보인다.
'''-TV 가이드 1995-06-01 「이름 같은 가수: 서지원·박지원 매력탐구 핸섬가이 vs 캔디 보이 ⓟ20」-'''
주변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 스스럼없이 친해지는 살가운 성격이었기에 주변에서 서지원을 많이 예뻐했다고 한다. 이런 다정한 성격 덕분인지 박선주는 한 인터뷰에서 서지원은 여동생 같은 느낌이었다고 밝히기도 했고 과거 서지원 팬의 물음에 "항상 잘 웃고 다니고 아무 걱정 없어 보이는 어린 아이 같이 맑고, 따뜻한 사람이었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내가 본 서지원 - 오태호'''
처음 지원이를 알게 된 건 단순히 곡을 주고받는 작곡자, 가수로서지만 그전에 지원이가 만든 Demo Tape를 먼저 건네받았었습니다. 물론 마음에 들어서 그 후로 곡을 주게 되었고요. 하지만 처음 만났을 때 사진보다도 훨씬 앳된 티가 나서 조금은 걱정이 됐습니다. 그렇게 되면 노래 실력보다는 용모에 호감을 느끼는 어린 친구들에게만 반응이 전해져 실제 가창력이 가려질 우려가 있으니까요. (예상이 조금은 맞았음) 지원이 팬 여러분은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 이상입니다. 녹음과정을 지나오며 특히 이번 제 곡 'I miss you'를 녹음하면서 1집 때와는 또 다른 커다란 매력을 보면서 원래 가지고 있던 느낌인지, 그사이 노력을 한 결과인지도 궁금했고요. 물론 두 가지 이유가 다라고 결국 생각을 했습니다. 하여튼 R&B나 SOUL에도 무한한 가능성이 있고, 그 바쁜 와중에도 스스로와의 경쟁에도 게을러지지 않은 모습이 기특할 뿐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처음 만나 그때의 겸손하고 예의 바른 선한 모습이 바래지 않아 기뻤습니다. 그러기 어려운 곳이거든요. 그 연예계란 곳이. 그 몇 가지만 봐도 지원의 앞날을 짐작하겠죠.(중략)
''' 내가 본 서지원 - 포토뮤직 이주영기자'''
'지원'이라는 이름을 처음 접한 것은 오태호 씨를 통해서이다. 한 신인을 만났는데 가창력도 좋고 얼굴도 잘생긴 데다가 심지어 착하기까지 하다며 기회가 된다면 한번 만나 보라는 추천까지 잊지 않았었다. 하지만 스쳐 들은 그 이름(심지어 오태호 씨는 지원의 성이며 매니저는 기억도 못 하고 있었다)을 나 역시 수많은 신인 틈에서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런데 까맣게 잊고 있던 그 이름을 다시 한번 떠올려준 사람은 지원의 1집 재킷을 찍은 이재하 선배(지금은 TV 타임스 사진 기자이다)이다. 날 만난 그 선배는 다짜고짜 너무 이쁜(?) 신인이 있으니 잘 도와주라며 건네는 이름이 서지원이었다. 결국, 이 두 사람의 적극 추천 때문에 P.M 사무실에서 첫 대면을 할 수 있었다. 지원이의 첫 느낌은 대개의 사람이 그렇게(?) 흔히 생각하듯 '참 예쁘장하게 생긴 남자애구나!' 정도였다. 하지만 그 애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눠보곤 상당히 놀랐다. 철이 없는 아이일 거라는 나의 예상을 무참히 깬 지원이는 음악이 하고 싶어서 미국에서 무일푼으로 훌훌 단신 날아올 정도로 깡이 있고 생각도 뚜렷한 아이였다. (중략)
앨범 역시 소속사에서 준비해주는 곡만 받아서 앨범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24] 에게 먼저 찾아가 곡 의뢰를 하기도 했으며, 이러한 과정에서 아티스트들과 친해지기도 했다. 이는 음악적인 욕심이 큰 것도 영향이 있었겠지만,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성격도 작용했던 듯하다.[25]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의 성격을 이렇게 표현했다.
서지원: 활발하고 사교성이 좋으며 솔직하고, 대담한 편이다. 이런 성격이 좋게 말하면 장점이고 나쁘게 말하면 수다스럽고, 생각 없고, 푼수 같다는 단점으로 바뀐다. 이왕이면 많은 분들이 이런 나의 특성을 좋게 봐주셨으면…
'''-뮤직라이프 1995년 5월호 「스타탐험 귀여운 율동, 깔끔한 이미지로 인기 상종가 서지원 ⓟ143」-'''
생전 서지원과 연예계 동료이자 절친한 친구였던 강태석도 서지원의 성격을 언급한 바 있다.성격: 활발하고 명랑한 편이에요. 사람들은 제 외모를 보고 여성적이고 섬세할 거라고 상상하시는데 다 내숭이니까 속지 마세요.
'''-스타채널 1995년호 「프라이버시 A to Z」-'''
'''강태석이 말하는 서지원'''
지원이는 적극적이고 사교성도 밝거든요. 또 가수로서도, 하나의 인간으로서도 잘 해내잖아요. 하지만 너무 여러 사람들과 친하니까 자기 관리를 못할 때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어요. 그 많은 사람들을 일일이 다 챙겨주다가 자기 일은 언제 해요? 가뜩이나 몸도 안 좋은데 정말 걱정이에요. 나는 지원이가 최소한 나하고 있을 때만이라도 아무 근심 없이 편하게 있었으면 좋겠어요.
'''-(Premium)View 1995년 8월호 「따로 또 같이: 강태석 & 서지원의 신세대식 우정나누기 ⓟ216」-'''
태석: 넌 누구에게나 참 잘해. 사람들과 사귀는 요령을 알고 있는 것 같애. 난 싫은 사람이거나 필요하지 않으면 아는 척도 안하거든. 난 너의 그런 사교성을 배우고 싶어.
지원: 사실 그러려고 노력하는 것도 아닌데 타고난 천성인가 봐. 게다가 난 너무 깍쟁이처럼 보여서 괜한 오해를 받을 때도 많으니까[26]
더 잘해야 해.'''-Photo Music 1995년 7월호 「맞수대결: 점프 챔프의 공동 MC로 맹활약 중인 강태석 vs 서지원 ⓟ114」-'''
실제로 그와 만났던 사람들의 귀여운 일화도 드물게나마 볼 수 있다.
5.2. 비주얼
얼굴엔 아직도 유아기적 모습이 어려 있지만 목소리는 깊고 성숙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멀뚱하게 키만 큰 남동생 같은 서지원. …(중략)
'''-노래동네 1994년 12월호 「노래동네 새 얼굴, 미국생활 청산하고 '또 다른 시작' 감행한 귀염둥이 서지원 ⓟ150」-'''
예쁘장한 얼굴과 선한 눈망울은 소녀 팬들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고, 184cm의 큰 키와 8.5등신 모델 체형은 수수한 의상을 입고 무대에 올라도 댄서들 사이에서 그를 눈에 확 띄게 했다. 젊은 층 중심으로 인기가 많았던 그는 특히나 소녀 팬들이 많았다.서지원은 '캔디 보이'를 연상케한다. 신세대가 선호하는 외적 조건에 딱 맞아떨어지는 인물이다. '머리가 문 틈에 들어가야 한다'는 요즘 세대[27]
의 신체사이즈 규격에 걸맞게 얼굴은 주먹만 하고, 키는 크고, 다리는 롱~롱 다리이다. 미남형이기보다는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에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귀여운 마스크로 사랑을 받고 있다.'''-TV 가이드 1995-06-01 「이름 같은 가수: 서지원·박지원 매력탐구 핸섬가이 vs 캔디보이 ⓟ20」-'''
6. 사망
7. 팬덤
1994년 정식 데뷔 후 빠르게 팬덤이 형성됐는데 주로 서지원과 또래인 중・고등학생 위주의 팬이 많았으며, 공식 팬클럽은 1995년 7월 16일 창단식을 열었다. 이름은 만화 '인어공주를 위하여'의 주인공인 서지원의 또 다른 이름인 '푸르매'로 지었다.
그의 사후에도 팬클럽은 회지를 발행하고 영상회를 개최하는 등의 활동을 계속해서 이어나갔으며,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온라인으로 옮겨갔다. 현재는 푸르매 회원을 포함한 당시의 팬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서지원의 경우 거의 매년 방송에서 언급되는 편이어서, 그의 활동 당시에는 태어나지 않았거나 너무 어려서 서지원을 몰랐다가 후에 그를 알고 새롭게 유입된 팬들도 함께 활동하고 있다.
서지원은 종종 팬들을 슬비라고 불렀다.
이름을 밝혀주지 않아서 슬비라고 부르는 거야. 너와 푸르매 친구들, 그리고 날 아껴주는 귀여운 숙녀에겐 슬비[28]
라고 부르고 싶어. 왜냐구? 내가 서지원이니까'''-팬클럽 회지 속 서지원이 쓴 편지 中-'''[29]
8. 어록
여러분들이 항상 다른 사람들을 위해 배려하는 맘을 가진 따뜻한 사람이길 바라요. 살면서 지쳐있을 땐 그만큼 큰 위로는 없으니까요.
미국에서 살다 왔으니 더 튀는 것이 아니라 정숙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TV 프로그램에서 튀는 제스처를 요구해도 되도록 차분하려고 노력해요. 자칫 건방져 보일까 걱정이 돼서요.
음악이란 그런 것 같아요. 듣는 사람과 부르는 사람이 하나가 되어 느낄 수 있고 서로의 감정을 확인할 수 있는 도구 같아요.
제가 제일 싫어하는 단어가 X세대니 신세대니 하는 말이에요. 단지 그 시대에 태어났다는 것만으로 모든 사람을 개성 없는 하나의 집단으로 정의하는 것은 부당하지 않아요?
부모님이 보고 싶을 때를 묻자, "아무리 힘이 들어도 부모님을 보고 싶거나 하지는 않아요, 정말이에요. 그런데, 정말로 기쁜 일이 있을 때는 부모님이 보고 싶어요. 함께 기뻐하고 싶거든요." 기쁜 일을 함께 하고 싶다는 서지원씨의 맑은 심성이 도드라진다.
''' 에꼴 1995년 -월호 혼자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전화' ⓟ131'''
처음 데뷔할 때는 연예계를 얕봤던 것 같아요. 나 혼자만 능력 있고 열심히 하면 되는 줄 알았죠. 하지만 생각지도 않았던 부분에서 준비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더라구요. 재미있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면서 항상 배워야 한다는 것을 실감나게 느끼죠.
''' (Premium)View 1995년 3월호 남자의 방 훔쳐보기: 서지원 ⓟ230'''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다 X세대는 아니죠. 저는 무슨 세대로 묶이기보다 그냥 제 나이에 맞춰 살려고 해요.
''' 스타채널 1995년 04월 11일 프라이버시 A to Z: 가수 서지원 ⓟ24 '''
매사에 최선을 다하되 나 자신을 잃어버리지 말자는 것이 나의 신념이다.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수긍할 것은 수긍하더라도 자기 주관이 뚜렷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특히 연예활동을 하면서는 자존심을 잃으면 절대 안 될 것 같다.
''' Music life 1995년 5월호 서지원: A to Z으로 알아본 스타 매력탐험 ⓟ140 '''
누구와 약속을 하면 늘 일찍 나가서 기다리는 편이에요. 그런데 만약 친구가 늦는다. 그럼 걔는 죽은 거나 마찬가지죠. 그러니까 저랑 만날 때에는 늦게 나타나려면 차라리 안 나오는 게 목숨을 보전하는 길이에요.
''' -스타채널 1995년 04월 11일 프라이버시 A to Z: 가수 서지원 ⓟ24- '''
1집을 만들 때는 떨리는 마음만으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어려서부터 꾸어온 꿈을 마침내 이루었다는 기쁨으로 하루하루를 보내오는 동안 이 세상에는 너무나 아름답고 너무나 슬픈 이야기와 노래들이 있으며 그것과 비교해서 내가 불러온 노래는 너무 작고 보잘것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2집을 만들면서 내가 가수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래를 해야겠다고 다짐했고 지금은 그 결과를 조심스레 기다리는 마음으로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항상 날 사랑해주는 모든 이에게 따뜻한 음악을 선사하는 가수가 되기 위하여 노력하겠습니다.
9. 이야깃거리
- 무대에 오르기 전에는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잘 가지 않았다고 한다. 녹화가 끝나고 나서 급하게 화장실로 달려갔다고.
- 평소에는 편안한 힙합 스타일을 즐겨 입었다고 한다. 매우 마른 체형이었지만 3X 사이즈 옷을 즐겨 입을 정도로 오버핏 사이즈를 선호했다고 한다. 이 외에 반바지도 자주 입었다.
- 무대 의상은 단정하고 깔끔한 재킷 위주로 많이 입었는데, 마른 체형을 커버하기 위해 베스트나 셔츠 등을 여러 겹 레이어드해서 입었다.
- 시력이 나빠 방송에 출연할 때는 렌즈를 착용했었는데 블루, 브라운 등 컬러 렌즈도 다양하게 착용하고 나왔다.
- 1992년도에 만16세가 되자마자 운전면허를 취득했다.
- 고1 생일에 아버지께 스포츠카를 선물로 받았다.[30]
- 고1 때 서부의 끝인 LA에서 동부의 끝인 뉴욕까지 혼자 로드트립을 했는데, 끝까지 못 가고 중간 지점인 텍사스에서 돌아온 적이 있었다. 돈도 넉넉하지 못한 상태에서 낯선 황야를 혼자 지나가다 보니 정말 외롭고, 무섭고, 사고[31] 라도 나면 어쩌나 점점 걱정이 되어 결국 돌아왔다고 한다.
- 100m를 11.8초에 뛰었다고 한다.
- 고등학교 재학 시절 인생 경험이라 생각하고 햄버거 가게, 세차장, 통신회사 등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경험 했었다.[32]
- '마이클 앤젤로, 너나텔로'라는 거북이 두 마리를 키웠다.[33]
- 몇 시간 동안 방송 시작을 기다리던 팬들을 위해 "얘들아... 배고프지? 이거 먹어." 라며 품 안에 넣어온 과자를 나눠준 적이 있다고 한다.
- 녹화장에서 스태프에게 카메라를 빼앗길 뻔한 팬에게 "이리 줘... 내가 갖구 있다가 이따가 줄게…." 라며 카메라를 맡아줬던 일화가 있다. 이런 식으로 세심하게 팬들을 잘 챙겼다.
- 만약 가수가 되지 않았다면 미국에서 계속 공부해 심리학자나 비즈니스 사업가[34] 가 됐을 것 같다고 했다.
- 원색 계열을 좋아했는데 그 중에서 노란색을 가장 좋아했다.
- 악세서리를 좋아해서 귀걸이, 반지를 주렁주렁 다는 것을 좋아했다.
- 1995년도 당시에는 귀걸이를 하는 남자가 드물었던 시대였는데, 귀걸이에다 귓바퀴 피어싱도 하고 다녔다. 이것이 눈에 띄었는지 그가 실린 기사에는 귀걸이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나왔다.
>서지원의 왼쪽 귀를 살펴보면 귓불에 있는 세 개의 구멍 말고도 특이하게도 위쪽 부분에까지 한 개의 구멍이 뚫려 있다.
>파격적인 패션을 과시하는 여타의 연예인도 감히 생각해내지 못한 도합 네 개의 귀걸이라는 '뉴 패션'을 구사하고 있는 것.
>'미국에서 90년부터 모델 일을 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귀걸이를 했어요. 위쪽 부분까지 뚫은 건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걸 함으로써 돋보이려고 했는데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신기해해요' 간혹 쇼프로그램 출연 시 보수적인 방송사에서 '네 개나 되는 귀걸이 문제'를 제기할 경우 얼른 빼기도 하지만 지금까지도 자랑(?)스럽다는 게 서지원의 솔직한 마음이다.
- 잘 때 두건을 쓰고 자야 잠이 잘 왔다고 한다. 하지만 일어나보면 벗겨져 있었다고...
- 향수를 즐겨 사용했고, 향수 수집을 좋아했다. 특히 좋아했던 향수는 캘빈 클라인의 CK ONE, 랄프 로렌, Samba Skin Eau de Toilette Spray for Men, 다비도프 쿨 워터 포 맨, 폴로 스포츠[35] 였다.
- TV 프로그램은 AFKN Korea의 Saturday Night Live를 즐겨봤다고 한다.
- 전자제품을 분해하거나 조립하는 것을 좋아했다.
- 술은 조금씩 즐기는 정도였다고 한다. 대신 좋아하는 브랜드만 골라서 마셨는데, 맥주 중에 독하지 않으면서도 호프 특유의 맛이 좋아서 '쿠어스(Coors)'[36] 를 즐겨 마셨다고 한다.
- 커피는 트리플색이라는 오렌지 술을 넣은 달콤 씁쓸한 맛의 아마데우스를 제일 좋아했다.
- 수영, 테니스, 배구를 좋아했으며 경기를 해도 뒤지지 않을 만큼 실력이 좋았다고 한다.
- 높은 곳을 좋아했다. 산을 특히나 좋아했으며 사정이 여의치 않아 갈 수 없을 때에는 스카이라운지를 즐겨 찾았다고 한다.
- 닮은 연예인으로는 2AM의 멤버 조권이 있으며, 배우 박보검과도 닮았다는 이야기가 있다.[37] 최근 활동 중인 아이돌 중에서는 NCT의 멤버 도영이 종종 언급되곤 한다.[38]
- 믿거나 말거나, 잡지사와의 인터뷰에서 실제로 아이큐가 183이라고 밝힌 적이 있는데, 미국에서 학교 다닐 때 잰 결과라고 한다.
질문: 아이큐가 183이라고 하는데 사실인지...
지원: 그건 미국에서 고등학교 때 심리학 시간에 잰 결과예요. 물론 찍기도 많이 했지만... 한국이랑 기준이 같은지는 잘 모르겠구요. 여러분이 믿거나 말거나 그냥 결과는 그렇게 나왔어요.
- 예명인 '서지원'은 이미라가 그린 순정만화의 남자 주인공에 영감을 얻어 지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미라 작가의 은비가 내리는 나라가 연재되고 있던 저학년 타겟 순정지 나나에서 이미라와 서지원의 대담 형식 인터뷰가 기획되기도 했다.
- 1집 활동 당시에 서지원이 소녀 팬들 중에서도 특히 가깝게 지냈던 여학생들 몇 명에게 밥을 사준 적이 있었는데, 다같이 밥을 먹던 중 두부조림의 두부를 집었더니 그 아래에 죽은 바퀴벌레가 깔려 있었다고 한다. 같이 있던 팬들은 기겁을 하면서 난리를 치는데도 오히려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괜찮아, 이거 먹는다고 안 죽어.'라고 말하면서 태연하게 그 두부를 계속 먹어 팬들은 경악했다고 한다. 소탈하고 무던한 성격이어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듯하다.
- 방송사 중에서도 유독 SBS와 관계가 깊었는데 예능 프로그램 <점프챔프>의 MC를 맡았던 것[39] 은 물론, 주말 예능 프로그램인 <기쁜 우리 토요일>, <좋은 친구들>에도 자주 출연했다. 당시 <좋은 친구들>의 코너 중 하나였던 '사랑학 개론'에 그가 출연했었는데, 그의 사망 한 달 전이었던 1995년 12월에 미리 촬영된 에피소드가 그의 사후에 공개되었다.[40]
- JTBC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에서 정재형은 <내 눈물 모아>를 녹음할 당시 후렴구에 나오는 '내→게↘로↑↘↗↘~ Ho↗↘'의 가성은 서지원이 가성을 내지 못해서 자신이 대신 부른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가성이 고와지는 데는 타고난 목소리도 중요하지만 가성을 위한 발성법을 따로 훈련하는 것이 더 중요한데, 실제로 서지원의 노래를 들어보면 가성으로 넘어가는 부분에서도 음이 상당히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편이다.
- 실제로 한 잡지 인터뷰에서 데뷔 앨범을 준비하며 아직 변성기가 채 지나지 않아 가성을 내는 데 애를 먹었고, 방음 시설이 미비한 곳에서 연습을 하다가 주민의 신고로 경찰서에 끌려갔다가 풀려났던 경험을 밝히기도 했다. 이후로도 가성을 내기까지 꽤 오랜 시간 고생한 듯하나, 후에 녹음한 다른 곡[41] 에서는 결국 가성을 제대로 내는 걸 들을 수 있다.
- 90년대 중후반 유명 댄스그룹 구피(Goofy)의 그룹명도 서지원이 처음 지어주었다고, JTBC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에 출연했던 구피가 직접 밝혔다.
- 가수 김수근의 데뷔곡인 <어떤 약속>은 원래 박선주가 서지원에게 주려고 만들었던 곡이었고, 그가 부르기로 예정되어 있었던 노래였으나 김수근이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tvN <응답하라 1994> 16화에서 1996년 5월 KBS <가요톱10> 자료화면으로 출연했으며 성동일, 이일화, 성나정, 쓰레기 모두 안타까움에 눈물을 글썽였다.
- 2015년 9월 28일에 방송된 SBS 추석특집 프로그램 <심폐소생송>에서 그와 생전 절친했던 작곡가 박선주가 서지원의 2집 앨범 수록곡이자 그와의 듀엣곡인 <76-70=♡>의 심폐소생을 의뢰하는 작곡가로 출연했다.[42] 또 생전 그와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절친한 사이였던 강태석[43] 도 오랜만에 방송에 출연하여 생전 서지원과의 추억을 나눴다.
- 서지원의 25주기를 맞아 그의 공식 팬클럽에서 추모 광고를 진행했다.
10. 미디어 활동
10.1. 음반
10.1.1. 노래방 수록곡
10.2. TV 프로그램
아날로그 방송 시절 활동을 했던 가수이기 때문에 2020년 현재 방송사 홈페이지에서는 영상을 찾아 보기가 쉽지 않다. 방송사 측에서 아예 폐기하는 바람에 영영 볼 수 없게 된 자료도 꽤 많다.
팬들의 요청으로 방송사 유튜브 채널에서 서지원이 출연했던 프로그램의 영상을 종종 올려주고 있지만, 아직은 영상 갯수가 많지 않다. 팬들이 녹화본으로 보관하였다가 유튜브에 올린 영상은 화질이 좋은 편이 아니라서, 서지원의 활동 당시 영상을 고화질로 보고 싶다면 직접 각 방송사에 문의하여 DVD를 구매한 후 시청하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다. 단, 구매를 원하는 프로그램에 대해 어느 정도 정보를 알고 있어야 한다.[44] 해당 블로그에 자세한 정보가 기재되어 있으니 DVD 구매를 원할 때 참고하면 된다. DVD 구매 가격이 부담된다면,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 열람실에서 일부 프로그램을 찾아 보는 방법도 있다.[45]
10.2.1. TV 가요/음악 프로그램
10.2.2. TV 예능 프로그램
10.3. 라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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