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용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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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자이언츠 현역 시절.
[image]
상무 피닉스 야구단 No.71
손용석(孫庸碩 / Yoeung-Sek Son)
'''생년월일'''
1987년 4월 13일
'''출신지'''
부산광역시
'''학력'''
사직초(동래마린스리틀) - 부산중 - 부산고 - (영남사이버대)
'''가족'''
1남 3녀 중 막내
'''포지션'''
'''2루수''', 3루수, 1루수, [1]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6년 1차 지명 (롯데)
'''소속팀'''
롯데 자이언츠 (2006~2017)
'''지도자'''
롯데 자이언츠 2군 주루코치 (2018)
롯데 자이언츠 2군 수비코치 (2019)
롯데 자이언츠 1군 수비코치 (2019)
상무 피닉스 야구단 수비코치 (2020~)
'''프런트'''
롯데 자이언츠 2군 전력분석원 (2017)
'''종교'''
불교{법명 : 용타(龍陀)}
'''응원가'''
현아 - Bubble pop[2]
1. 개요
2. 선수 경력
2.1. 2010 시즌 이전
2.2. 2011시즌
2.3. 2012 시즌
2.4. 2013 시즌
2.5. 2014 시즌
2.6. 2015 시즌
2.8. 2017 시즌
3. 지도자 경력
4. 플레이스타일
5. 여담
6. 연도별 주요 성적


1. 개요


부산고를 졸업하고 한국 프로야구 06년 1차 1지명, 계약금 '''1억 원'''으로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한 전 야구선수.
1차 지명자에게 계약금이 고작 1억이라 역사에 비해 짠돌이 구단 롯데라고 까기도 한다. 이 드래프트에서 손용석을 제외하면 지명받았던 부산, 경남권 유망주는 김유신, 박상흠, 김동진뿐이며 대학 선수까지 포함하면 황동채까지 포함된다. 김유신이 2차 5라운드에 지명될 때까지 아무런 부산, 경남권 선수들의 이름이 불리지 않았을 정도였으니. 또한 이때 지명받지 못했던 부산, 경남권 고등학교 유망주들 중 대학교에 진학 후 2010년 신인드래프트에서 지명받은 선수는 이상백, 이창섭, 홍재호뿐이다. 만약, 위대한이 사고를 안 치고 고등학교를 유급 없이 정상적으로 졸업했더라면 위대한이 1차로 지명받았을 확률이 높았겠지만. 어쨌든 5툴 플레이어였던 신명철이 계약금으로 3억 원을 받았던 것을 감안하면 손용석의 재능에 1억이 짜게 줬다고 평가하는 거는 문제가 있다. 2004년 장원준, 2005년 이왕기. 2007년 이상화, 이재곤이 받은 계약금을 생각하면 손용석은 매우 적은 돈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초기에는 2루수로만 뛰다가 느린 발을 감안해서 3루도 겸하게 되었다. 장성우와 함께 공포의 쌍나팔이라 불릴 정도로 멘탈적인 측면이 좋고 타수는 적지만 3할을 쳐 본 타격 센스 등으로 장래가 기대되는 선수였다.
이 선수와 관련해서 가장 유명한 것은 2007 시즌에 부친인 손경구 씨가 롯데 자이언츠 1군 선수단 버스 운전기사였던 것[3]이 언론에 나왔던 것이다. <다큐멘터리 3일>에도 주인공으로 출연한 적이 있다. 참고로 손용석의 부친은 2010시즌 이후로는 은퇴하고 부산에서 개인 택시를 운행하고 있다. 1990년부터 2010년까지 20년 동안 버스 기사를 맡았다. 이 분도 꼴리건, 마산아재의 피해자로 어느 날 롯데 경기가 지자 분노한 관중들이 버스를 습격, 이를 말리다가 구타를 당하는 등 수모를 겪었다고 한다.
2011 시즌까지 롯데의 2루를 지키던 조성환의 하락세가 두드러지자 본격화된 2루 경쟁에서 정훈이 승리를 거두면서 주전 경쟁에서는 탈락했다.
클러치 상황에 대타로 적시타를 때려내어 클러치 히터 성향이 강했다. 하지만 부상과 수술 그리고 군생활 뒤 그동안의 공백이 길었는지 결국 시즌이 끝나고 자신의 한계를 인지하고 은퇴를 선택했다.

2. 선수 경력



2.1. 2010 시즌 이전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5&oid=055&aid=0000047066
입단 이후 팀 내의 내야수 경쟁이 치열한 탓에 1군 경기 자체에는 크게 많이 뛰지 못했다. 2006~2007 시즌 합쳐서 1군 출장 경기수는 48경기로, 아무래도 팀 내의 경쟁자들이 쟁쟁하다보니 밀린 감도 있다. 거기다 2007 시즌 말미에 어깨 수술을 하면서 경기에 출장하기 힘들게 된 것도 있다. 하지만 두 시즌 모두 3할 3푼 3리를 넘어서는 타율로, 나쁘지 않은 성적이다.
본인의 존재감을 처음 알린 것은 대 한화전. 롯데는 2007년 6월 16일 당시까지 한화전 7연패를 기록하고 있었다. 이날도 9회 초까지 3-6으로 뒤지고 있었는데, 이대호의 홈런으로 4-6, 연속 안타 후 상대의 폭투로 5-6까지 따라잡은 상황에서 이승화의 대타로 혜성같이 등장해서... 좌중간을 꿰뚫는 2타점 2루타를 쳐 팀 승리의 일등공신이 되었다. 상대 투수가 당시 대성불패로 불렸던 구대성이었기에 더욱 깜짝 등장이었다. 지금도 포탈사이트에 구대성 손용석을 검색하면 둘을 연관지은 기사가 뜰 정도.
2007년 말 수술 이후 2008년 ~ 2010년까지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하여 병역 문제를 해결하였다.

2.2. 2011시즌


시즌 중반 조성환황재균, 문규현의 공백으로 인해 내야 유틸이 필요해짐에 따라 6월 17일 1군에 올라온다. 이후 황재균, 조성환 등의 복귀 이후에도 내야 백업을 필요로 하는 팀 상황에 따라 계속 백업 멤버로 1군에 출장하였다.
정훈2루수 백업으로 포지션 경쟁을 했으나, 정훈보다 수비가 안정적이고 1차 지명 출신이라 신고 선수 출신인 정훈보다 기회를 많이 받았다. 손용석은 3루수도 가능했기에 더 이점이 있기도 했다.
7월 19일 롯데 vs 두산전에서 3-3으로 맞서던 연장 10회 초 2사 2, 3루에서 대타로 나서 두산의 투수 노경은의 4구를 쳐서 중견수 앞에 2타점 적시타를 때려냈다. 결국 이 점수가 결승점이 되어 팀 승리에 공헌했다.
8월 26일 롯데 vs. 넥센전에서 롯데가 스코어 0:1로 뒤지던 7회 초 2사 1, 3루에서 대타로 나선 손용석이 넥센의 바뀐 투수 윤지웅의 초구를 쳐서 좌익 펜스를 맞히는 2타점 2루타를 만들어 역전에 성공했다. 2007년부터 필요한 시점에 강한 모습이 공익 근무 이후에도 없어지지 않은 듯했다.
2011년 페넌트레이스에서 타율 0.263, 홈런 0, 타점 12, OPS 0.728을 기록했고 2군에서는 타율 0.270, 홈런 1, 타점 17, OPS 0.733을 기록했다.
SK 와이번스와의 2011년 플레이오프에서 1차전에서는 대타로 출장하였고[4] 5차전에서는 대수비로 나왔다가 타석에 들어섰다. 플레이오프에서의 성적은 2타수 무안타, 타율&장타율&출루율 0이었고, 팀은 시리즈 전적 2승 3패로 탈락했다.

2.3. 2012 시즌


1, 2군을 오르내리며 대타 요원으로 활약했고 수비는 2, 3루를 맡았다.
8월 3일 삼성 라이온즈전에서 12회말 2사 1, 3루에서 대타로 출장하여 우익수 키를 넘는 끝내기 안타를 터뜨려 팀의 스코어 4:3 승리에 공헌했다.
10월 6일 토요일 SK 와이번스와의 시즌 마지막 원정 경기에서 4회 초 박정배가 던진 3번의 투구에 의해 '''3개의 배트가 연속해서 부러지는 대참사를 겪었다.'''. 파울 2개와 뜬공 1개(유격수 뜬공)였는데, 방송 중계진과 양승호 감독, 심지어 박정태 코치도 헛웃음을 지었다. 이 경기를 중계한 이병훈 해설은 중계 도중에 "지금 양승호 감독이 아마 이런 생각을 할거예요 '얘가 방망이를 썩은 걸 쓰냐?'"라는 말을 하기도...
두산 베어스와의 2012 팔도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에서 1차전, 4차전은 대수비로 나왔고 3차전에서는 대타로 출장하여 1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SK 와이번스와의 2012 팔도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엔트리에 제외되었고, 팀은 시리즈 전적 2승 3패로 탈락했다.

2.4. 2013 시즌


8월말까지 2군에서 0.223 타율을 기록하면서 1군 콜업 기회가 없었다. 이후 9월 확대 엔트리가 되어서야 올라와 3경기 출장하여 타율 0할(…).무려 333일 만에 1군 선발 출장을 하였다. 그리고 3일 뒤에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2.5. 2014 시즌


5월 17일 1군에 첫 등록되었으며, 17일 경기에서 수비에서 삽질을 한 황재균 대신 4회 초부터 3루수로 들어가서 호수비를 하고 안타도 치는 모습을 보여줬다.

2.6. 2015 시즌


6월 16일 넥센과의 경기를 앞두고 1군에 처음으로 등록되었으며, 당일 최준석 대신 1루수로 출장, 안타를 때려냈다.
6월 17일 1루수로 선발 출장하여 5타수 3안타를 때려내며 맹활약했다.
박종윤의 타격감이 바닥을 기는 상황이라 1루수로 출전하고 있다.
6월 19일에도 선발 1루수로 출장하여 3타수 2안타를 기록, 4경기 연속 안타를 때려내며 절정의 타격감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아름다운 2주일을 보낸 후엔 타격감이 급속도로 떨어지며 다시 벤치 자리로 밀려났고 이젠 경기 출장하는 일도 뜸해졌다.
경기에 나오지도 못함에도 불구하고 1군 로스터의 한 자리를 잡아먹고 있으며 팬들간에서도 이럴 바엔 선수 육성 차원에서 오윤석을 콜업해 기용하는 게 더 낫지 않겠냐는 말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후 시즌이 종료되는 시점까지 1군에서 말소되지 않고 살아 남았다.
최종 성적은 38경기 69타수 15안타 타율 0.217 '''2타점''' 1볼넷 11삼진.
사실상 콜업 직후 반짝한 후엔 1군 엔트리 한 자리만 잡아먹었으며 유격수를 제외하고 내야 전 포지션을 소화할 수는 있으나 애초에 수비가 뛰어나지 않아 대수비로서의 활약은 물론이거니와 대타로서의 성적도 좋진 않다.
더군다나 손용석과 같은 내야 유틸리티 자원인 오윤석이 시즌 말미에 콜업되어 준수한 수비력과 손용석이 '''데뷔 후 약 10년간 하나도 치지 못한''' 홈런도 기록하는 등 가능성을 보여줘 큰 발전이 없는 한 내년에는 대타, 대수비 자리도 위태로워 보인다.
애초에 손용석이 비주전에 관대한 극성 롯데 팬들에게 넷상에서 과대 평가되었던 것이 사실이고, 그나마 가지고 있는 '''툴은 컨택 하나'''다. 모두가 아는 원툴 플레이어. 이를 극대화한 적절한 대타 '''클러치 히팅'''으로 까방권을 쌓아 그나마 1군에서 살아 남았던 것이다. 그런데 타율이 2할 초반이고 타점이 2타점이면 1군에서의 존재 가치 자체가 사라졌다고 봐도 무방.

2.7. 2016 시즌


자세한건 해당 문서로.

2.8. 2017 시즌


2016 시즌 후 선수단 정리 때 정리되지 않았지만, 이대호의 복귀 등 설 자리가 없자 2017년 4월에 현역 은퇴를 선언하면서 전력분석원으로 전향했다. 지난 시즌에 보여 준 부진 때문에 은퇴를 고민하던 중 구단 측에서 전력 분석원을 제안했고, 본인은 고민 끝에 은퇴를 선택했다. 대만 2군 캠프까지 갔다 오고 연습 경기까지 뛰었던 상황이라 선수들이 어색해 한다고. 구단 버스 기사로 오랫동안 일하셨던 아버지에게 말씀드렸는데, 속상해서 술을 정말 많이 드셨다고 한다.기사

3. 지도자 경력


2018 시즌부터 2군 주루 코치를 맡게 되었다.
열심히 안 하는 선수들을 보면 '10년 뒤 나처럼 되고 싶냐'는 말로 다그친다는 드립인지 진실인지 알 수 없는 썰이 나돌았다.
2018년 5월 3일 사직구장에서 아버지와 시구&시포를 했다. #
2019 시즌부터 2군 수비 코치로 보직을 옮겼다. 현역시절 대타로 주로 나오고, 수비 능력이 떨어지는 내야수 출신 은퇴선수가 2군 수비코치를 맡고 있다.라며 저격 기사까지 나왔다. 근데 펑고를 잘 쳐 의외로 다른 팀에서 그를 영입하려고 노리고 있다는 얘기가 있다.
2019년 7월 23일 1군으로 올라와 내야 수비코치를 맡게 되었다. 다만 1군에 승격하면서 저격 기사 강도는 좀더 강해졌고 손용석 코치의 의문점이 많아졌다.[5] 구단측은 "기사를 통해 손용석 코치 스트레스가 갑자기 쌓였다고 한다. 손 코치는 2년 동안 퓨처스 리그에서 성실한 지도로 선수들과 코칭스태프 사이에서 평가가 좋았다. 특히 어린 선수와 베테랑 선수 사이 분위기를 조화시키는 능력이 높게 평가받았다. 이러한 점 때문에 공 대행이 이우민 코치와 함께 부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
[image]
2019시즌 종료 후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고 팀을 떠났는데 상무 코치로 재취업에 성공한 것이 대만 윈터리그 중계를 통해 목격되었다.

4. 플레이스타일




5. 여담


  • 아버지가 롯데 구단 버스 기사로 일한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사직 야구장에서 롯데 선수들을 자주 만났다고 한다. 그 당시 롯데 선수들이 초딩이던 손용석을 매우 귀여워했다고 한다. 손민한손인호가 롯데에서 뛰던 시절 특히 손용석을 예뻐했다고 한다. 이유는 같은 손 씨 집안이라고. 손용석은 롯데에 입단하기 전 가까운 선수들을 삼촌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리고 프로에 온 뒤 '삼촌'은 선배님이 됐다.
  • 부산 토박이 출신이라 그런 점도 있지만 이명우만큼이나 사투리가 억세다. 들어보면 동네에 말 많은 어르신 말투와 비슷하다.
  • 종갓집 장손이라고 한다. 게다가 누나가 3명.
  • 김사율이 롯데 주장으로 뛰던 시절, 그의 목소리를 흉내내고 다녔다. 팟캐스트 '거인사생'을 통해 김사율이 이 성대모사를 들었고 빵 터졌다.
  • 2011시즌 중 아버지께 개인 택시를 선물해드렸다고 한다. 물론, 아무래도 연봉이 적다보니 누나와 합쳐서 냈다고 한다.
  • 결정적인 상황에서 한 방을 기대하게 만드는 클러치 히터라는 이미지에 비해 의외로 1군에서 홈런이 하나도 없다. 2016 시즌까지 1군에서 300 타수를 넘게 들어섰지만 홈런 0. 그리고 2016 시즌 후 은퇴하며 결국 홈런 0으로 커리어를 마감하게 되었다. 뭐 나이가 30대 초반이니 다시 선수로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김민수가 2군에서 맹활약하는데다, 1년 후배인 황진수가 손용석보다 훨씬 나은 가능성을 1군에서 보여주면서 그럴 가능성은 결국 0이 되었다. 게다가 수비, 타격 모두 준수한 내야 유틸 자원인 오윤석이 2017년 9월이면 제대한다. 손용석이 투수도 아니고, 운동 능력이 출중하지도 않은 야수이기에 은퇴 후 다시 복귀할 가능성은 없다.
  • 김신영과 닮았다고 '신영이'로 불리기도 한다.
  • 팬들의 관심이 너무 없었던 탓인지 박기혁이 돌아오고도 1년이 넘게 등번호가 수정이 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박기혁이 kt wiz로 이적하자 다시 등번호가 16번으로 바뀌었다.[6]
[image]
  • 엄청난 개인기를 선보이며 야심차게 2015 시즌을 시작했다.

6.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
년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장타율
출루율
2006
롯데 자이언츠
4
3
.333
1
0
0
0
1
1
0
.333
.333
2007
44
70
.343
24
4
0
0
12
4
0
.400
.382
2008
공익근무요원 군 복무
2009
2010
2011
49
57
.263
15
3
1
0
12
11
1
.351
.377
2012
43
64
.266
17
2
0
0
5
3
0
.297
.329
2013
3
6
.000
0
0
0
0
0
0
0
.000
.000
2014
3
4
.250
1
0
0
0
0
0
0
.250
.250
2015
38
69
.217
15
2
0
0
2
4
0
.246
.229
2016
51
90
.244
22
5
0
0
9
8
0
.300
.278
<color=#373a3c> '''KBO 통산
(11시즌)'''
<color=#373a3c> 235
<color=#373a3c> 363
<color=#373a3c> .262
<color=#373a3c> 95
<color=#373a3c> 16
<color=#373a3c> 1
<color=#373a3c> 0
<color=#373a3c> 41
<color=#373a3c> 32
<color=#373a3c> 1
<color=#373a3c> .311
<color=#373a3c> .311

[1] 412 대첩 참고.[2] 손!용!석! 롯데의 손용석 손!용!석! 안타 안타 손용석 손!용!석! 롯데의 손용석 안!타! 손용석![3] 그전에는 천일고속에서 일했었다고 한다.[4] 9회말 무사 1 3루에서 대타로 들어섰는데 초구에 투수앞 땅볼로 분위기를 식게했다. 그 이후에는... [5] 그도 그럴 게, 손용석이 이대호, 정훈, 전준우 등 보다 어리다.[6] 현재는 LG출신 이병규(1983)가 달고 활약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