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 윈프리

 

''' 오프라 윈프리의 주요 수훈 및 수상 이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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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 윈프리
Oprah Winfrey
'''
<colbgcolor=#001e3b> '''성명'''
오프라 게일 윈프리 (Oprah Gail Winfrey)
'''국적'''
미국 [image]
'''출생'''
1954년 1월 29일 (70세)
미국 미시시피 주 코지어스코
'''학력'''
니콜렛 하이스쿨 (졸업) (-1971년)
테네시 주립대학교 (학사) (1971-1987년)
'''직업'''
방송인, CEO
'''활동'''
1983년 – 현재
'''신체'''
169cm
'''재산'''
26억 달러 (한화 약 2조 7141억 원)[1][2]
'''서명'''
[image]
'''링크'''

1. 개요
2. 어린 시절 및 데뷔 이전
2.1. 유년기
2.2. 청소년기
2.3. 전설의 시작
3. 오프라 윈프리 쇼
3.1. 오프라 윈프리의 자동차 선물
4. 비판
5. 영화
6. 그 외
6.1. 오프라 윈프리의 성공 10계명
6.2. 신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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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Queen of All Media'''

오프라 윈프리는 미국의 방송인이자 여배우다. 그녀는 '''미국 쇼 비지니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존경받는 인물''' 중 한 명이다.
그야말로 가난절망을 딛고 전 세계 흑인 여성 중 가장 성공한 인물이자 여성으로서도 세계적으로 명예를 가진 유명인이다.


2. 어린 시절 및 데뷔 이전



2.1. 유년기


[image]
미시시피 강 근처에 있던 가난한 흑인 마을인 코지어스코에서 당시 군인이었던 아버지 버논 윈프리와 어머니 버니타 리 사이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오프라를 키우는데 일체의 도움도 주지 않았으며 겨우 18세에 불과했던 어머니는 가정부생계를 해결하기 바빠서 오프라를 돌볼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6살 때까지 농사일을 하는 외할머니와 함께 살았는데 집에는 TV도 없는데다가 인적이 매우 드문 시골 마을이라 집주변엔 말을 건넬 이웃도 없어 심심했던 오프라는 항상 농장에 있는 가축들에게 말을 건네며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3살 때부터 교회를 다니며 뛰어난 말재간과 암기력을 보여 동네 어른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으며 외할머니의 애정 어린 교육으로 또래 아이들보다 월등히 높은 어휘력을 갖추게 된다. 그러나 6살 때 외할머니가 이 들어 오프라를 돌볼 수 없게 되자, 밀워키에서 파출부일을 하고 있던 어머니의 집으로 이사가게 되었으나 어머니는 일에만 몰두하여 오프라에게는 관심애정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9살 때 집을 드나드는 사촌 오빠나 삼촌에게 성폭행을 당하게 되었다. 오프라는 어머니에게 도움을 여러 번 요청했으나 어머니는 그녀의 말을 철딱서니없는 투정 정도로 여기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고 한다.

2.2. 청소년기


성폭행은 그 후 몇 년간 계속되며 오프라를 괴롭혔다. 그러나 그 상처를 잊기 위해 오프라는 공부독서를 부지런하게 하여 결국 우수한 성적으로 14살 때 명문사립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그러나 오프라는 학교에서 자신이 유일한 흑인이라는 사실과 부모님의 관심 속에서 부유하고 안정적으로 살고 있는 백인 친구들을 보며 극심한 열등감과 좌절을 느껴야 했다.[3] 설상가상으로 계속되는 친척의 성적 학대로 인해 오프라는 견디다 못해 반항아로 변해 집밖을 나돌게 된다.[4] 이 과정에서 오프라는 원치 않는 임신[5]까지 하게 되었다. 반항아로 변해버린 오프라를 어머니는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어머니는 오프라를 테네시내슈빌에서 이발소를 하는 아버지집으로 보낸다. 새어머니와 재혼한 상태였던 아버지는 오프라가 아이를 낳을 수 있게 도왔으나 예정보다 일찍 낳은 아이는 2주 만에 세상을 떠났고, 당시 오프라는 기구한 세월과 죄책감을 견뎌내기 어려워 자살도 생각했고 마약이나 담배에 현실을 잊고자 했다.[6]
하지만 아버지와 새어머니의 격려와 지지 덕분에 절망을 딛고 동네 인근 고등학교에 다시 진학하고 전교회장에 당선되는 등 자신감회복하고 다시 꿈과 희망을 갖게 되었다. 이후 미국에서 개최한 여러 말하기 대회나 콘테스트에 출연하며 점점 유명세를 탔고, 19살이 되는 해에 라디오 프로 진행자로 취직했다. 이를 계기로 방송인으로 일하기 시작한 오프라는 어느 지역의 저녁 뉴스의 공동 뉴스캐스터를 시작했지만 뉴스에 감정을 실어서 전달했다는 이유로 8개월 만에 해고되었다.[7]

2.3. 전설의 시작


그러나 인생은 새옹지마라 했던가. 오히려 그녀의 즉흥적 감정 전달능력 덕분에 오프라의 활동무대는 시간대의 토크쇼 <People Are Talking>으로 옮겨졌다. 이 당시 지역 방송 토크쇼에 나와 인터뷰를 했는데 "당신이 만약에 100만 달러를 상금으로 받게 된다면 어찌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에 다른 토크쇼 참가자들은 저축한다느니 부모님에게 뭘 사다드리겠다느니 보통 많이 생각하는 걸로 말을 한 반면, 오프라는 '''"홀로 마음껏 쓸 거예요. 저를 위해서 말이죠."'''라고 답했다고 한다. 진행자가 "하지만 그 다음은요? 돈은 쓰면 벌기 어렵지 않습니까?"라고 하자 그녀는 똑부러지게 "그만큼 계속 벌 자신이 있어요!"라고 말했다. 그 진행자는 속으론 '뭔 헛소리야?'라고 생각했는데 그로부터 20년도 안가 그녀가 엄청난 부자가 된 걸 보고 근거없던 헛소리가 아니라고 회고했다고 한다.

3. 오프라 윈프리 쇼




"제 쇼의 출연자들도 그렇지만, 저도 제 이야기를 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낍니다. 이해할 수 있어요. 일단 말로 풀어 꺼내 놓으면, 다시는 그것에 얽매이지 않으니까요."

- 오프라 윈프리

[image]
Am Chicago 진행 시절 오프라
1983년 오프라 윈프리는 시카고에서 낮은 시청률을 가진 30분짜리 아침 토크쇼인 에이엠 시카고(AM Chicago) 방송 진행자가 되었다. 당시 AM Chicago는 가장 낮은 시청률을 기록하던 프로로, 당연히 오래가지 못하리라 봤던 이 방송은 한 달 만에 같은 시간대 시청률 1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1986년에는 이 프로그램 이름까지 '오프라 윈프리 쇼'로 바뀌었고 미국 전역에 동시 방송되기 시작했다. 이후 당대 미국의 최고의 토크쇼로 손꼽히던 '필 도나후 쇼'의 시청률을 역전하게 된다. 또한 1988년에는 영화제작 스튜디오, 잡지 발행사 및 촬영장을 두루 갖춘 3헥타르(30,000㎡) 규모의 하포 스튜디오(Harpo Studio)[8]를 설립하며 미디어 사업가로서의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오프라의 토크 쇼에는 3만 명이 넘는 참가자들이 나왔으며, 스포츠 선수·연예인에서부터 대통령 및 정치인·종교인·예술가 등 온갖 사람들이 나오며, 세계적인 대박을 거둬들였다. 25년간 총 5,000회 방송, 미국 내 시청자수 2,200만 명, 전 세계 140개국 방영, 일일 시청자 수 700만 명이라는 기록을 세웠다.[9]
참고로 '''TV 인터뷰 방송 역사상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시청자 수를 끌어모은 방송'''이 바로 1993년 오프라 윈프리 쇼 '''"마이클 잭슨" 편'''인데 무려 '''9,000만 명이 시청'''했다. 이때 마이클 잭슨은 자신이 백반증을 앓고 있음을 대중들 앞에서 처음으로 밝혔으며 자신의 여러 루머에 대해 일부 해명하기도 했다. 이 기록은 2021년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인터뷰 내용은 마이클 잭슨을 쥐어짜서 시청률을 만들었다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저급한 내용들이 대다수였다. 자수성가의 아이콘이라 불리는 오프라 윈프리의 이미지와 정반대되는 행위로 유명세를 떨치게 된것이 아이러니하다.

3.1. 오프라 윈프리의 자동차 선물


2004년 9월 15일, 그는 자신의 프로그램이 19주년인 것을 기념하여 자동차가 꼭 필요한 사연을 가진 방청객 276명을 초청해 진행했다. 그 사연 중에는 "서부 개척시대 총잡이들이 몰던 것과 같은 차를 타고 다니고 있다"거나 "40만 마일(약 64만km)이나 운전한 고물차"와 낡은 차가 고장이 나 자주 수업에 지각한다는 사연의 당사자인 한 교사도 포함되어 있었다. 오프라가 그 중 12명에게 차를 선물한다는 말을 듣고 다들 그 주인공이 자신이 되기를 바랐다. 11번째까지 자동차를 받는 모습을 보면서 받지 못한 방청객들은 부러워하며 아쉬워했다. 그러나, 더 큰 반전은 지금부터였다. 오프라는 마지막 12번째 자동차 선물이라며 나머지 방청객에게 선물상자를 줬다. 그러면서 오프라는 "여기 상자 중에 1개의 상자에만 차 키가 들어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카운트에 맞춰 상자를 여는 순간 놀랍게도 모든 상자에 차 키가 들어있었다.
그러면서 앞에 있는 방청객을 손으로 찍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You get a car!(당신은 차를 가졌습니다!)'''

차종은 제네럴 모터스폰티악 G6로 신차 광고 효과를 노린 GM사의 홍보 마케팅 차원에서 전량 기부했다고 한다. GM은 덤으로 가난한 당첨자들을 위해 자동차세도 내줬다고. 홍보 효과는 당연히 대박.

당시 쇼 장면
이 선물은 약 800만 달러 어치로 한때 미국 TV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경품이었으나, 이 기록은 2016년에 코미디언 존 올리버가 자신의 프로그램인 라스트 위크 투나잇에서 1,500만 달러 어치의 의료 부채를 탕감해주면서 갈아치워졌다.

4. 비판


마이클 잭슨과는 93년 네버랜드 인터뷰 취재로 인연을 맺은 사이였으나 마이클 잭슨의 아동 성추행 무고 사건으로 인해 잭슨을 앞장서서 비판하거나 공개적으로 저격하는 행보를 보였다. 이 당시 언론의 공격과 지인들의 외면으로 정신적 궁지에 몰려있던 잭슨은 오프라의 이런 행보에 크게 유감을 표하기도 했다.
이는 오프라가 어렸을 적에 성폭행을 당한 영향일 수도 있고 아니면 마이클 잭슨에게 매우 적대적인 미국 언론에 합세한 것일 수도 있으나 이미 사실무근으로 판별된 루머로 마이클 잭슨을 능욕한 거라며 비판을 받고 있다.[10] 잭슨 사후 리빙 네버랜드가 개봉하자 다큐에도 출연한 자칭 피해자들과 만나 인터뷰를 했지만, 결국에 관련 트윗과 유튜브 게시물을 모두 삭제하는 등 이불킥을 제대로 시전했다. 이런 주제에 마이클 잭슨 사후 그의 딸인 패리스 잭슨을 자기 쇼에 불러서 시청률에 이용해먹고는 리빙 네버랜드 사건 이후에는 신나게 잭슨 욕을 하고 다니는 이중적 행보로 인해 마이클 잭슨 팬들에게는 격렬한 까임의 대상이자 금지어 취급을 당하고 있다.
무례한 질문을 자주 던지는 편이다. '''마이클 잭슨에게 동정이냐고 물어보고,''' 섹스 테이프가 유출된 킴 카다시안에게 '''그 비디오 덕분에 니네가족 유명해졌는데 그거 일부러 유출한거냐'''라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킴은 그 비디오를 일부러 유출시킨게 아닌 엄연한 피해자다. 그외에도 백인이 되기 위해 시술을 받았냐는 둥 무례한 질문들로 잭슨을 어이없게 만들기도 했다.#
또한 백신반대주의자들에게 발언 플랫폼을 제공하고 있다고 비판받고 있다. 미국의 여러 돌팔이 쇼닥터들과 영적치료, 에센셜 오일 등 각종 민간요법유사과학적 솔루션이 오프라 윈프리를 통해 미디어에 데뷔하거나 상업적으로 성공하는 등 공중보건을 위협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이미 과거에 사이비 종교에 흡사한 내용을 담은 유사과학 서적 더 시크릿을 적극 홍보했다는 점에서 해당 비난을 피하기는 어렵다.
2004년에는 한국 여성들이 외모에 대한 열등감으로 성형 수술에 중독되어 있다는 혐오성 표현을 담은 방송을 진행하여 미국 한인 사회에 항의를 받은 적도 있었다.## 여담으로 정작 본인은 해당 방송 이후 몇 년 후에는 거금을 들여 전신 성형을 받았다.
하지만 그녀 자신도 적어도 예전에는(2004년) 다른 국가에 대한 편견을 바탕으로 차별을 행한 적이 있었는데, 바로 자기 쇼인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한국 여성들을 폄하한 것이다. 세계 여성들에 대한 얘기를 하는 자리에서 다른 나라들은 좋은 것만 다루었는데, 유독 한국에 대해서는 성형 얘기밖에 나오지 않았으며, 웬 '''중국 여자'''가 스튜디오에 나와 '아시아/한국 여자들은 서양인처럼 되고 싶어서 성형 수술을 한다'고 말했다. 기사(영문) 기사(한국어) 안 좋은 얘기는 오프라 윈프리가 아니라 중국 여자 혼자 다 했다는 말도 있지만[11] 그게 사실이라면 오프라 윈프리는 자기 이름 걸고 하는 자기 쇼에 뭐가 나갈지 사전 검토를 전혀 하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5. 영화


1985년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한 컬러 퍼플(주연은 우피 골드버그)에서 조연을 연기하면서 골든 글로브와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로 오르기도 했다.[12] 사실 동명의 원작소설은 인종차별을 다룬 소설로 오프라가 청소년시절 가장 좋아하던 소설이어서 캐스팅 제의를 받자마자 매우 기뻐했다고. 그녀는 이 기회를 통해 또 하나의 간절한 꿈이었던 배우로도 데뷔한다.
여담으로 오프라는 영화에 나오기 위해 몸무게를 감량 중이었는데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통통한 인상 때문에 소피아 역에 캐스팅했다고 대답했다.
공주와 개구리의 주인공 티아나의 어머니 유도라의 성우이기도 했으며 2018년 개봉하는 디즈니의 실사영화 시간의 주름에서 Mr.s 법사 역을 맡는다. 또,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더 크리스마스에도 목소리 주연을 맡는다. 프레셔스의 제작에도 참여. 오션스13에도 본인역으로 카메오 출연한 적이 있다. 또한 최근에는 시간의 주름(영화)에 비중 있는 조연으로 나왔으나 흥행은 오프라 윈프리의 티켓 파워에도 불구하고 첫 주 박스오피스 2위로 약진한 편이다.
오션스 트릴로지의 마지막 편인 오션스 13에서 카메오로 등장한다. 주연들이 TV를 볼 때마다 오프라의 쇼가 한 번씩은 나왔다. 그러다가 주인공인 오션이 이번 작전의 투자자이자 라이벌, 그리고 주인공 일행을 등쳐먹으려 했던 오션스 11때의 메인빌런인 테리 베네딕트의 수익금 전액을 강제기부시키며[13] 오프라 윈프리 쇼에 강제 출연당하게 한다.

6. 그 외


  • 원래 이름이 ORPAH(오르파)[14]였는데 OPRAH(오프라)로 착오로 바뀌었다는 소문이 있었다. 사실 이는 산파가 스펠링 O R P를 O P R로 잘못 적는 실수로 인해 이름이 그렇게 바뀌었다고 한다.
  • 2004년 UN이 주는 올해의 지도자상을 수상했고 2005년 <타임>지가 선정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 1988년 오프라 윈프리 쇼 방송에선 다이어트 선언 4개월 만에 30㎏이나 감량한 뒤 꼭 맞는 청바지를 입고 손수레에 30㎏의 지방덩어리를 싣고 등장했다. 얼마 후 "4개월간 단식했으나 방송 직후 축하 음식을 마구 먹었더니 이틀 만에 청바지가 맞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이 다이어트 경험을 담아서 낸 책도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하지만 오프라 윈프리의 다이어트는 일반인이 따라할 수 있는 물건은 아니다. 오프라 윈프리가 다이어트에 쏟아부은 비용은 최소 9억 원. 전담 트레이너는 물론이고 요리사와 영양사 등 프로젝트 팀을 구성하였으며, 산책은 최고급 온천의 산책 프로그램을 통한다거나 조깅을 하기 위해서 비행기 타고 하와이로 날아가는 등 자신을 위해서 돈을 쓴다는 것에는 다이어트도 예외는 아니었다. 미국 잡지 인콰이어러가 추정한 비용은 1Kg 감량당 적어도 1만 달러 이상.[15]
  • 패션이나 화장, 코디네이터에도 각별한 신경을 쓰는데 코디네이터가 어떤 옷을 권하자 근방 옷가게에서 수억원어치 비슷한 옷을 사온 적도 있다고 한다.
  • 1992년 미국 포브스 지 선정 미국 방송인 소득 순위에서도 내로라하는 유명 방송인, 진행자를 제치고 여성 방송인 소득 1위를 차지했으며 남성 방송인까지 합쳐도 10위권에 들어가는 엄청난 소득을 벌어들인다고 한다. 더불어 2007년 포브스 지 선정 역대 미국 여성 부자 10인에서 유일한 흑인으로 들어갔다.
  • 인터뷰에서 힘들고 불행했던 어린 시절을 이겨내고 성공한 비결은 다름아닌 모든 것에 감사하는 습관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녀는 매일 감사했던 일들을 몇 가지씩 기록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 아동 성폭행학대 근절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993년 빌 클린턴 전 대통령으로부터 백악관 초대를 받고 국가아동보호법 시행의 필요성을 강조했으며, 결국 오프라의 노력으로 국가아동보호법은 통과되었다. 이 법에는 '오프라 법안'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또한 자신의 방송계에서의 막강한 파워를 이용해 방송을 아동학대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는데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아동학대를 다룬 여러 프로그램 및 영화를 제작해 전국민에게 널리 알리기도 했으며, 이를 통해 거둔 수익을 저소득층 아동을 지원하는데 사용했다. 하지만 이런 열정이 너무 지나쳐 이미 돈을 노린 음해임이 드러난 마이클 잭슨/아동성추행 논란을 부채질하는 행동을 보여 비판도 받고 있다. 특히 마이클 잭슨이 세상을 떠난지 10년이 지난 2019년까지도 마이클 잭슨에 대한 이상한 적대감을 지속하고 있다.
  • 매년 3억 5천만 달러를 번다고 한다. 약 4000억 원 정도다. 하포(Harpo)라는 엔터테인먼트 사를 운영하는데 이게 이름은 오프라(OPRAH)를 거꾸로 한 거였다.
  • Epic Rap Battles of History 시리즈에도 출연했다. 여기선 엘렌 드제너러스와 대결.[16]
  • 2008년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졸업축사를 하였다. 이 축사는 2005년 스티브 잡스의 축사에 이어 스탠포드대생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연설로 꼽혔다. 졸업연설 후 자신의 쇼에서 소개한 책 2권을 졸업생 전부에게 선물했다. 유튜브서 시청이 가능하다.
  • 2014년 스위스의 한 명품샵에서 인종차별 논란이 있었다. 오프라가 가방을 보여 달라 하자 점원이 "너무 비싸다"며 보여주지 않으려 했다는 것. 논란이 불거지자 해당 상점과 스위스 관광청에서는 윈프리에게 사과를 했다. 매장 측에서는 점원이 가격 대비 다른 좋은 상품을 소개하려 했지만 영어가 서툴기 때문에 의사소통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고 절대 인종차별이 아니라고 했지만, 오프라 윈프리는 이를 두고 흑인은 가난하다는 인종차별적 인식이 스위스인들에 만연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 가게의 점주는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야했고, 문제의 점원은 모가지되는 등 제대로 참교육을 당했다.
  • 전 세계 초호화 별장을 10개나 가지고 있다. 하와이, 콜로라도 국립공원 등 다양한 곳에 위치해있다. 오프라는 매해 여름휴가를 이곳에서 보낸다고 하며, 오바마 부부를 초대해 함께 여름휴가를 보낸 적도 있다. 사진 링크. 하지만 2018년 1월 캘리포니아에서 벌어진 산사태로 인해 그 지역에 있던 저택이 초토화가 되었다.
  • 2017년 연예인들이 많이 모여사는 대표적인 부촌인 몬테시토는 가파른 경사지 위에 주택가가 형성되어 산사태 위험이 큰 곳이다. 당시 산사태가 심하게 나서 자택주변으로 진흙이 무릎까지 차올랐다. 여담으로 오프라 윈프리의 저택은 원화로 약 540억 원하는 전 세계에서 15번째로 비싼 저택이다.가장 비싼 집 탑 15

6.1. 오프라 윈프리의 성공 10계명


1. 남들의 호감을 얻으려 애쓰지 말라.

2.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외적인 것에 의존하지 말라.

3. 일과 삶이 최대한 조화를 이루도록 노력하라.

4. 주변에 험담하는 사람들을 멀리하라.

5. 다른 사람들에게 진실하라.

6. 중독된 것들을 끊어라.

7. 당신에 버금가는 혹은 당신보다 나은 사람들로 주위를 채워라.

8. 돈 때문에 하는 일이 아니라면 돈 생각은 아예 잊어라.

9. 당신의 권한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지 말라.

10. 포기하지 말라.


6.2. 신조어


그녀의 신드롬은 사회현상이 되었고 많은 신조어를 만들 정도였다.
  • 오프라히제이션 (Oprahization) - 오프라 윈프리가 다루면 사회적 파장을 몰고 온다.
  • 오프라피케이션 (Oprahfication) - 대중들 앞에서 고백하고 치유받는 현상
  • 오프라히즘 (Oprahism) - 인생의 성공은 타인이 아닌 자신에게 달렸다.

[1] 2021년 1월 1일 포브스 기준[2]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토크쇼 호스트도널드 트럼프보다도 공식 재산이 많다.[3] 오프라가 사는 곳은 밀워키의 지저분한 빈민가였고, 다른 백인 학생들이 사는 곳은 학교 인근의 넓은 부촌이었다고. 게다가 오프라는 집이 학교에서 멀어 버스를 3번이나 갈아타야 했다고 한다. 당시 오프라는 매일 집과 학교를 오가며 천국과 지옥을 왔다갔다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으며 심한 열등감을 느껴야 했다고 말했다. 게다가 백인친구의 집에 한번 놀러가기라도 하면 그곳에서 일하는 흑인 가정부를 보며 어머니가 떠올라 마음이 편치 않았다고 한다.[4] 심지어 이 시기 어머니의 남자친구도 오프라를 성폭행했다고 한다.[5] 아버지가 누군지 알지 못한다고 언급한 것으로 봐서,당시 여러 남자들을 자주 만나 외로움을 달랜 듯 하다.[6] 사실 본래 이러한 가정사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오프라 윈프리가 인기를 얻고 난 후에 그의 가족 중 하나가 폭로를 해 버리고 말았다. 이에 대해서 오프라 윈프리는 자신의 쇼에서 수치스러웠던 자신의 과거를 솔직하게 밝혀서 많은 이들에게 갈채와 지지를 받았다. 또한 당시에는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리거나 도움을 청하는 것을 굉장히 수치스럽게 여겼으나 오프라의 솔직한 고백은 많은 성폭행 피해 여성들이 자신의 피해를 신고하고 도움을 청할 수 있게 이끌었다.[7] 당시 이 사실이 방송국 내부에 퍼지면서, 방송국 간부들은 오프라의 면전에 대고 흉을 보거나 모욕하는 행동을 했고 그녀는 굉장히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설상가상으로 남자친구와 결별까지 하게 되자, 오프라는 견디다 못해 스트레스성 폭식을 시작하여 110kg에 육박할 정도로 살이 쪄서 주변사람들이 못 알아보았다고 한다.[8] Oprah의 철자를 거꾸로 한 것이다.[9] 이후 자신이 세운 채널인 OWN에서 2012년 1월 1일부터 2015년 1월 4일까지 후속작인 오프라 프라임을 진행했다.[10] 또한 마이클 잭슨이 생전에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했을 때도 동정(Virgin)이냐는 선을 넘는 질문을 해 마이클 잭슨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이에 마이클 잭슨은 ‘나는 신사에요(I’m a gentleman)’라고 답변했다.[11] 한국 여성을 비하한 건 오프라 윈프리가 아니라 그 중국 여자입니다. 욕먹을 사람이 잘못 겨냥된 듯.[12] 그런데 이 영화에서 윈프리는 연기는 잘했는데 그만 작은 실수가 그대로 영화상에 나온다. 영화상에서 기절하여 쓰러진 그녀를 둘러싸고 사람들이 모이는데 눕혀진 채로 치마가 너무 위로 올라가서 넘어진 탓에 속옷이 미처 보일까봐 기절해야 하던 그녀가 영화를 보면 슬며시 손을 움직여 치마를 얼른 내리는 게 그대로 NG없이 들어가버린 탓에 국내 영화 프로그램에서 영화상 웃기는 실수씬으로 나오기도 했다.[13] 7천만달러를 아동재단에 오션이 강제로 기부시켜버렸다. 그때 똥씹은 표정은 영화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14] 성경 룻기에 나오는 여성의 이름을 딴 것이다.[15] 댄스가수인 폴라 압둘은 식욕 때문에 아예 냉장고에 열쇠를 채우고 24시간 입주 영양사에게 열쇠를 준 후, 영양사와 트레이너가 허락해서 꺼내준 음식만 먹기도 했다.[16] 실제로는 꽤 친한 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