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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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법조인이자 정치인. 열린우리당 의장, 15~17,19대 4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노무현 정권 시절 집권 열린우리당의 의장(2004년)을 역임하는 등, 노무현 정권 시절의 여권 실세 3인방, 이른바 천신정 중 한 명이었으며, 유력 차세대 대선 주자였다.
2. 경력
1952년 전라북도 남원군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 신상묵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경기고등학교(66회)[2] ,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3] 을 졸업하였다. 대한민국 해군 장교(교수사관)로 만기 전역(1979년부터 1982년까지 해군사관학교 교수를 역임.)하였다. 최종 계급은 해군 항해병과 중위.
1982년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변호사로 활동하였다. 1991년에 발생한 대흥동 국교생 살인 누명 사건 때 피의자 권 모 군이 강압 수사를 받았음을 밝혀내는 데 일조했다.[4]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서울특별시 강서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당선된 정동영, 천정배와 천신정 소장파 트리오로 활동하였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2년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에 선출되었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4년 5월 열린우리당 의장으로 취임하였다. 그러나 아버지 신상묵의 '''친일행적'''이 논란이 되자[5] 결국 2달 만에 열린우리당 의장직을 사퇴하였다.[6] 그 결과 노무현 정부의 친일잔재청산운동은 큰 타격을 입고 흐지부지되었으며, 노무현 정부의 이른 레임덕에도 영향을 미쳤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해군 출신답게, 제2연평해전을 다룬 영화 연평해전을 제작하는 데 힘을 보태는 등 제2연평해전 유가족 및 전상자의 보훈 활동에 힘썼다. 이 때 대립하는 정당인 새누리당 소속 이병석 의원과 적극 협력하였는데, 이는 당파를 초월한 모범 사례로 꼽히고 있다.
10월 31일 더불어민주당과 원외 민주당이 합당하면서 다시 더불어민주당 소속이 되었다. 이미 장남 신준선의 로스쿨 특혜 논란도 있고,[7] 원 지역구에는 금태섭이 현역으로 버티고 있으며, 다음 총선거 때에는 이미 나이가 70을 바라보기에 정치활동을 계속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2018년 4월 9일 대통령 소속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위원장에 위촉되었다. 경력에 비하면 굉장히 한직이기 때문에 정계은퇴 이전에 마지막으로 감투 한 번 씌워주는 것으로 여겨졌는데, 2년 임기를 수행 후 2020년에도 연임이 확정되었다. 아래에 언급되듯 현역 정치인 시절에도 도서관 관련 활발한 활동을 했던 만큼 나름 적성에 맞는 자리였던 모양이다.
3. 여담
- 1990년대 초반 KBS에서 방영했던 '여의도 법정'이라는 프로그램의 MC로 활동한 이력이 있다.[8]
- "신영"이라는 필명으로 '두브로브니크에서 만난 사람'이라는 소설을 출간한 바 있다.
- 2002년 한국도서관협회 회장, 2006년 세계도서관정보대회 조직위원장 및 한국도서관협회 명예회장을 지낸 이력이 있다.
- 아들 신인선이 내일은 미스터트롯에 출연하여 다시금 화제가 되기도 했다. 형 신기철은 트로트 가수로 활동했으며 조카 신인선이 미스터트롯에 출연하던 도중 사망했다.
4. 선거 이력
5. 둘러보기
[1] 작가로서의 이름.[2] 고교 동기로 법조계에 김능환, 정계에 이주영, 진영, 경찰에 이헌만이 있다.[3] 서울대학교 태권도부 출신이다.[4] 권 모 군의 가족은 1993년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일부 승소하여 8,000만 원을 받았다. 기사 [5] 일제강점기 당시 잔학하게 독립운동가들을 고문해댄 헌병 오장이었다. 당시 생존중인 독립운동가들이 직접 자신들이 당한 잔인한 고문장면을 그려 언론에 공개되었다.[6] 당시 소설가 이문열은 신기남을 직간접적으로 저격하는 컬럼인 「겜뻬이 고쬬와 오니 게이부」를 중앙일보에 투고, 당시 친일청산 아젠다의 형평성 문제를 지적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이 역시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7] 다만 이 건은 무혐의 판결이 나왔다.[8] 여의도 법정 오변호사 배변호사의 후속으로 여의도 법정 신변호사를 맡아 진행했다.[9] 2003.11 열린우리당으로 당적 변경[10] 2016. 3. 17 공천 배제에 반발해 민주당으로 당적변경[11] 2016. 10. 더불어민주당과의 합당으로 인해 더불어민주당 자동 복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