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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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울특별시에 위치해 있는 박물관. 동아일보의 기업 박물관으로 일민미술관과 같이 운영된다. 1926년에 완공된 동아일보의 구 사옥 건물 5, 6층에 위치하고 있다.
2. 역사
1920년 4월 1일에 창간하여 설립한 동아일보는 창간 초기까지 서울 중앙학교 건물 일부 시설에서 본사를 사용하다가 재정이 충만해지게 되면서 신사옥 이전을 추진하게 되었다. 이 때 동아일보 사장이었던 인촌 김성수가 신사옥 터를 지금의 광화문 사거리에 잡게 되면서 사실상 이 곳이 바로 동아일보 신사옥 터로 확정되었다. 인촌 김성수는 '''광화문에는 조선총독부가 있고 남쪽으로는 경성부청(현재의 서울시청)과 북쪽에 경기도청[2] 이 있으니 우리 회사는 총독부와 경기도청, 경성부청을 감시감독하는 봉화대 역할을 해야한다'''는 취지에서 광화문 사거리에 신사옥을 정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사옥 건축비가 부족하게 되면서 인촌은 아버지 원파 김기중에게 지원을 요청하여 건축비를 모으게 되었고 1926년에 광화문 사거리에 있는 동아일보 사옥이 완공되었다.
이후에는 동아일보 본사가 충정로 사옥으로 이전되어 광화문 사옥은 일민미술관으로 활용하게 됐고 1990년대에 리노베이션 공사를 거쳐서 재개관하였다.
본래 3층짜리 건물로 지어졌으며 일본식 건축양식의 영향을 받아 일본 건축가 나카무라 마코토(中村 誠)가 설계하였고 인촌 김성수의 감독하에 지어졌다. 규모는 네모난 건물에 1920년대에 유행했던 돌출형 창을 사용하였으며 연황색 타일로 치장한 건물에 철근 콘크리트와 벽돌로 지어졌다. 이후 증축공사를 통해서 5층으로 증축하였다. 자세한 것은 일민미술관 문서의 역사 문단 참고 바람.
1992년 동아일보가 충정로 신사옥으로 이전하면서 1994년에 일민미술관으로 변경되었으며 2010년대에 동아미디어센터에 있던 신문박물관이 이 곳으로 이전하였고 내부는 변형되어서 신문 발행의 흔적은 찾을 수 없지만 외관이 잘 보존되어 있어서 근현대 건축양식의 본보기가 되고있다.
3. 관람 안내
대중교통을 이용할시 지하철은 서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5번 출구 도보 1분, 1/2호선 시청역 4번 출구 도보 10분만 걸으면 도착할 수 있다. 버스는 광화문, 교보문고, 세종문화회관에서 하차하면 된다. 주차공간이 협소해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을 추천.[5]
편의시설로는 건물 1층에 음료와 식사를 할 수 있는 카페가 있으며 아트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아트샵도 있다. 다만 이외의 휴게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아 카페 외에서 기다려야 할 경우 불편하다.
4. 전시
한국 신문 문화에 대한 전시가 주를 이루고 있으며 일민미술관과 같은 건물을 쓴다. 신문박물관은 5층, 6층을 사용하고 있다. 주로 이 건물에서 진행되는 기획전시의 경우 일민미술관에서 진행되니 기획전시는 일민미술관 문서 참고 바람.
- 5층
본래 신문박물관은 1926년부터 1992년까지 66년간 동아일보를 발행했던 건물로 5층의 전시실은 시대의 사회와 문화를 담은 신문의 역사를 볼 수 있으며 세계 각국에서 발행한 2000년 1월 1일자 신문을 한자리에 모은 프롤로그부터 시작한다. 또한 그때 당시의 신문제작과정도 살펴볼 수 있다.
- 세계의 신문
- 신문의 역사
- 신문과 사회
- 신문과 제작
- 신문과 문화
- 동아의 역사
- 영상실
- 6층
6층 전시실은 체험공간이다. 본인만의 신문을 제작한다던가 그 날의 주요 일간지 관람, 신문 퀴즈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4.1. 프로그램
어린 아이를 위한 프로그램이 구성되어 있는데 학기중/방학으로 프로그램이 나뉘어져 있으므로 만약 체험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공식 홈페이지나 신문박물관 네이버 카페에 꼭 무슨 프로그램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확인하고 가자.
- 학기중 프로그램
- 학교단체관람
- 박물관 투어
- 우리 가족 박물관 나들이
- 신문으로 생각쑥! 창의톡!
- 상상톡톡! 꾸러기신문교실
- 방학 프로그램
- 어린이 기자체험
- 어린이를 위한 박물관 투어
- 토요놀이교실 - 신문과 놀아요!
- 3.1운동 101주년 – 독립운동가 만사집 만들기
4.2. 소장품
- 등록문화재 제483호 배설 유품
<대한매일신보>의 창간자인 배설의 유품이다. 배설의 사망 시기인 1909년 5월 이전에 제작된 것으로 추청되며, 발이 고운 옥양목 바탕에 오려 메우기 박음질 기법이 사용되었다. 이 유품은 구한말 태극기 제작기법의 연구 자료로 쓰이며 일제강점기 항일운동 및 언론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 등록문화재 제482호 배설 만사집
<배설 만사집(輓詞集)>은 대한매일신보 창가자인 배설이 37세 젊은 나이로 사망하자, 그를 추모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답지한 만사 259편을 모아 책으로 엮은 것이다. 박은식과 양기탁 등 정치, 사회적으로 유명한 인사를 비롯하여 언론인, 교사, 군인, 종교인 등 다양한 인사 251명이 참여했다. 이 배설 만사집은 개화기 이후 우리나라의 언론사, 독립운동사 뿐만 아니라 국어사 연구에도 쓰이고 있다.
- 등록문화재 제484-1호 일제강점기 문자보급교재
일제강점기 문자보급교재는 일본의 한글 말살정책에 대응하여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합동하여 펼친 문자보급운동의 일환으로 발행한 학습 교재이다. 우리민족운동사의 구체적인 증거물로 역사적 가치가 상당하다.
- 《6.25전쟁》 그날을 기억하고 기록하다.
이 소장품은 6.25전쟁 당시 소식을 전하던 신문을 보존한 것이다. 전쟁 당시 신문사들은 부산으로 이전하여 속간호를 내거나 진중신문 또는 전선판으로 상황을 보도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하던 시기에도 '조선인민보'와 조선공상단 기관지 '해방일보'는 서울에서 발행됐다. 6.25전쟁 발발 당시 가장 먼저 이 소식을 보도한 해외 신문 'Stars and Stripe'부터 부산에서 속간된 동아일보까지 전쟁 당시의 신문 보관이 꽤 잘 되어있는 편.
5. 기타
- 2001년 서울유형문화재 제131호로 지정되었다.
[1] 매표소 마감은 오후 6시 30분이다.[2] 1910년 서울시가 경기도로 편입되면서 수원에 있던 도청이 서울에 이전함에 따라 당시에는 서울 광화문에 경기도청이 있었다. 해방 후인 1967년에 다시 수원으로 이전하였다.[3] 노인의 경우 만 65세 이상만 가능하다.[4] 복지카드를 소지하고 있어야 하며 본인 포함 동반 1인까지 무료 관람이 가능하다.[5] 참고로 동아미디어센터 주차시 10분당 1,000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