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이 카맛테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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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멤버'''
노코(보컬,기타) · mono(키보드) · 미사코(드럼)
'''장르'''
얼터너티브 록, 팝 록, 전파송, 노이즈 팝, 펑크 록
'''결성'''
2008년 치바현
'''레이블'''
unBORDE PERFECT MUSIC
'''소속사'''
PERFECT MUSIC
'''공식 사이트'''
https://shinseikamattechan.jp/
'''링크'''

1. 개요
2. 역사
3. 음악
4. 멤버
4.1. 노코(の子)
4.2. mono
4.3. 미사코(みさこ)
4.4. 유노스케(ユウノスケ)
5. 전 멤버
5.1. 치바긴(ちばぎん)
5.2. 아베쇼(あべしょー)
5.3. 산시로(サンシロー)
6. 디스코그래피
7. 여담


1. 개요


'''神聖かまってちゃん'''
치바현 출신의 3인조 록밴드. 보컬과 기타를 맡는 프론트맨 노코(の子), 키보드의 mono, 드럼의 미사코(みさこ)로 구성되어 있다. 카맛테쨩(かまってちゃん)은 관심종자라는 뜻으로, 밴드 이름을 직역하면 신성한 관심종자. 또는 새로 나타났다는 뜻의 신성(新星) 관심종자라는 뜻이 되기도 한다.
2008년에 결성하여, peercast, 니코동, 유튜브를 중심으로 자작 뮤직 비디오와 라이브 영상을 업로드하며 인터넷을 주 무대로 활동했다. 밴드의 보컬과 작사작곡 담당인 노코가 각종 기행을 생방송으로 중계했고, 이로 인해 유명세를 얻어 인터넷과 인디신에 입소문이 퍼졌다. 이렇듯 인터넷에서 활동을 하면서부터 유명해졌기 때문에 노코는 신세이 카맛테쨩을 “인터넷 팝 록밴드”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후 2010년 워너브라더스 산하 unBORDE에서 음반 “つまんね”로 메이저 데뷔했다.
라이브에서 보여주는 퍼포먼스가 파격적이라 많이 회자가 됐었다. 현재는 세월도 많이 흘렀고 다들 나이도 어느정도 있는지라 예전처럼 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분위기를 달아오르게 하는 열정적인 라이브를 선사한다. 2009년부터의 라이브가 300편 이상 있는 유튜브 채널
약칭으로는 "카맛테쨩"이 자주 쓰이며, 실제 표기시에는 "SKC"가 자주 사용된다.

2. 역사


초등학생 때 어머니가 사망하고 이지메를 당하며 암울한 학창시절을 보내던 노코는 B'z를 통해 음악에 빠졌다. 중학교 시절, 악기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노코는 비틀즈를 듣고 록에 입문하게 되었고, 넘버 걸, 비틀즈, 슈퍼카 등을 커버하는 밴드 활동을 시작했다. 한편 동시기에 유치원 동창이었던 mono와 치바긴 역시 취미로 밴드를 하고 있었는데 마침 드러머가 필요했던 노코의 밴드에 mono가 영입되어 “비바루 게바루 모노가타리 (びばるげばる物語)”를 결성하게 된다.
한편 계속되는 왕따와 친구의 배신 등이 겹쳐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의 정신적 상처를 입은 노코는 고등학교를 자퇴해 히키코모리가 되어 니트 생활을 한다. 이따금 아르바이트와 소규모 밴드 라이브를 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집에서 인터넷 서핑만 하던 노코는 할게 없어서 취미로 작곡을 시작한다. 이 시기에 만들어진 곡들은 정신병, 자해, 히키코모리, 왕따 등 노코 개인의 어두웠던 개인사를 여과없이 반영하고 있으며 이후 재녹음되어 신세이 카맛테쨩의 대표곡이 된다.
이어서 밴드에 치바긴이 영입되고, 이름을 “우소뿅(うっそぴょん)”으로 바꾼 뒤 인원 정리를 끝마치고 3인조 밴드가 된다.[1] 노코가 유튜브에 직접 올린 당시의 라이브 영상도 있는데 곡명은 카오리쨩(かおりちゃん).[2] 이후 카맛테쨩의 트레이드마크가 되는 유혈 라이브를 아직 완전한 무명이던 이 당시에도 맛볼 수 있는 영상으로, 머리에서 큰 출혈이 나 상의를 피로 물들였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광기에 휩싸인듯 악을 쓰며 노래를 부르는 노코의 모습이 영상에 담겨 있다.
2008년, 밴드 이름을 신세이 카맛테쨩으로 다시 한 번 바꿔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동시에 인터넷에서의 활동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는데, 우선 노코가 2ch의 밴드판에서 전방위적으로 어그로를 끌어 악성 유저로 악명을 떨친다. 당시 노코는 2才(2살) 이라는 닉네임으로 “비주얼계=할머니들의 추억”, “밴드판에는 저능아들밖에 없구만”, "펑크 락 하는 사람들 전부 죽어주세요☆" 같은 어그로 스레를 새벽에 기습적으로 세우고 자기가 만든 음악과 뮤직비디오를 투척한뒤 스레민들과 키배를 벌였다. 당시 키배 상대에게 헌정했던 곡. 노코는 2ch에서의 활동뿐만 아니라 인터넷 방송도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작곡이나 잡담 등 평범한 주제의 개인방송이었지만 어느덧 길거리 노상 라이브 도중 경찰관에게 체포된다거나, 밴드 연습 중에 옷을 전부 벗고 악기를 때려부수는 등 기행 방송을 일삼으며 전례 없는 방식으로 인디신에서 유명세를 얻기 시작했다.
밴드에 여자 멤버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노코의 의견으로 인터넷에서 멤버 모집을 해서 직장 생활을 하며 취미로 밴드에서 드럼을 치던 미사코(みさこ)를 영입해 마침내 현재의 모습인 4인조 밴드가 된다. 근육소녀대, 토가와 준을 좋아하던 미사코의 음악 취향이 밴드 멤버들과 잘 맞았다고 한다.
자작 뮤직비디오가 더해진 신세이 카맛테쨩의 곡들은 니코동, 유튜브 등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고, 노코의 정신나간 개인방송 역시 큰 화제를 모으게 된다. 라이브에서도 노코의 과격한 퍼포먼스가 주목을 끌었는데, 선배 록 밴드들처럼 기타와 무대를 때려부수는 것은 기본이고, 노래를 부르는 도중 양 팔을 칼로 난도질해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눈을 부릅뜨고 샤우팅을 하거나, 알몸에 기타 하나만 매고 나와 방방 뛰어다니고, 공연의 절정 부분에 관객들한테 오줌을 싸는 등의 광기로 인터넷 등지에서 일본의 섹스 피스톨즈라는 평을 받는다.[3]
이후 인디 1집 "友だちを殺してまで。", 4000장 한정 싱글 "夕方のピアノ"을 발매 한 뒤 메이저 데뷔해 정규 앨범 "つまんね"를 내놓았고 동시에 인디 레이블에서 "みんな死ね"도 발매했다. 당시 방영하던 드라마 모테키#s-2.3에 "ロックンロールは鳴り止まないっ"가 삽입되어 좋은 평가를 받았고 NHK의 뮤직 재팬에 지상파 방송 데뷔하는 날 연주 말미에 노코가 무대를 벗어나 "전국의 밴드맨들아 들어라, 이제는 내 시대다!"라고 외치며 그날 일본 구글 트랜드 1위에 오르는 등 성공적인 메이저 안착을 했다.
2011년엔 NHK 교육에서 신세이 카맛테쨩의 다큐멘터리를 방영했고, 실제 공연과 극영화를 섞은 "극장판 신세이 카맛테쨩 로큰롤은 멈추지 않아"가 개봉했다. 또한 애니메이션 전파녀와 청춘남의 주제가를 맡게 되어 성우 오오가메 아스카와 함께 애니서머에도 출연했다. 인터넷 방송도 성공적이었고 공연도 자주 뛰었던 그야말로 밴드의 전성기 시절이 이 시기였다. 모모이로 클로버Z와 콜라보 공연을 했으며 TBS 테레비의 음악방송 "커밍 순!"에 출연해 방송 카메라에 나루토 오뎅을 붙이는 퍼포먼스(1분 53초 부근)를 선보여 다시 한 번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밴드 첫 전국 투어도 했다. 원래는 료고쿠 국기관에서 공연을 하려고 했으나 동일본 대지진[4] 때문에 대관이 취소되어 무료 전국 투어라는 의미 있는 형태로 진행.

3. 음악


그들 음악의 가장 큰 특징은 히키코모리, 니트, 멘헤라, 정신병, 이지메 등으로 표현되는, 현시대 일본 사회에서 패배자로 여겨지는 소외된 사람들의 삶과 그들의 부정적 감정들을 주 테마로 삼았다는 점이다. 이는 전 곡을 작사 작곡하는 노코의 개인사가 곡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는 것이 그 원인이다.
실제로 첫 싱글이자 대표곡 중 하나인 해질녘의 피아노(夕方のピアノ)의 경우 실제로 초등학생 시절부터 노코에게 이지메를 가했던 사토라는 실존 인물에게 죽어버리라는 절규를 퍼붓는 가사가 주 내용이며 전파녀와 청춘남 오프닝곡인 "Os-우주인"은 오오시마 우주인 이라는 노코의 왕따시절 멸칭에서 따온 제목이다.
다만 밴드 활동이 계속되자 다양한 주제의, 대중적인 가사를 지닌 곡들도 많이 나왔다. 프론트 메모리(フロントメモリー), 분명 괜찮아질거야(きっと良くなるさ) 등. 특히 2014년 음반인 영웅syndrome (英雄syndrome)을 분기점으로 음악이 여러모로 바뀌었다.
장르적 특징으로는, 얼터너티브 록을 바탕으로 펑크, , 전파송, J-POP, 힙합, 슈게이징, 노이즈 록, 드림팝 등 다양한 장르를 카맛테쨩만의 스타일로 한데 녹여내고 있다. 멤버 전체가 다양한 음악을 섭렵한 헤비 리스너이기 때문에 여러 장르를 차용하는데 거리낌이 없다.[5] 연주력은 뛰어난 편이라고 말하기 어렵고 코드 진행도 기초적인 수준이지만[6] 노코만의 독특한 세계관과 아이디어가 이를 보완하고 있다.
어둡고 부정적인 주제를 다루는 가사임에도 그와는 정 반대로 곡 자체는 밝고 힘찬 음색으로 채워져 역설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을 주요한 작법으로 삼고 있다. 이는 노코가 '우울할 때 어두운 곡을 들으면 힘이 나지 않는다' 라는 생각을 작곡할 때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한 역설적이고 다층적인 요소들을 한데 묶고 화룡점정 하는 것은 mono의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과, 노코의 기기묘묘한 보컬이다. 음이탈은 기본에 정체모를 괴성을 지르거나 절규하고 흐느끼는 노코의 창법은, 보이스 체인저에 의해 때로는 여자같은 목소리를 내기도 하고 어린아이같은 목소리를 만들어지는 등 곡의 예측불허성이 더해져 신세이 카맛테쨩만의 독특한 음악이 완성된다.
곡의 작법은 노코가 집에서 홈레코딩으로 데모 버전의 곡을 만들고 멤버들에게 들려주면, 그걸 그대로 녹음하거나 노코가 허락하는 한에서 일부 편곡을 거친 뒤 앨범에 수록하는 방식이다. 데모버전은 노코의 유튜브 계정이나 니코동 계정에 자작 PV와 함께 올라오는데, 노코는 데모가 진정한 신세이 카맛테쨩 작품이고 음반에 싣는 것은 상품에 불과하다. 라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작업하기 때문에 하나의 곡에도 여러가지 버전이 존재하고는 한다.

4. 멤버



4.1. 노코(の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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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로 기타를 치는 퍼포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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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장을 즐겨한다
트위터
트윗캐스팅
인스타그램
니코동
사운드클라우드
유튜브
'''신세이 카맛테쨩의 중심이자 마스코트'''
본명 오오시마 료스케(大島亮介), 보컬과 기타를 담당하며, 카맛테쨩의 모든 곡의 작사와 작곡을 한다. 예명인 노코(の子)는 남자애(男の子)도 여자애(女の子)도 아니라는 뜻에서 붙여졌다.[7] 고등학교를 자퇴한 뒤 니트 생활을 보내면서, 혼자 2ch에서 자작곡을 발표해왔다. 처음에는 락을 할 생각은 없었고, 게임 음악 작곡가[8]가 목표였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이지메를 당했고, 초등학교 4학년때 겪은 어머니의 죽음과 아버지의 실직, 계속되는 이지메로 인해 경계성 인격장애를 앓고 있으며, 정신과를 통원하며 치료를 받으며, 정신과 약을 복용해 왔다. 현재는 많이 괜찮아진 편이지만 한창 때는 감정의 기복이 심해서 뜬금없이 매니저와 멤버들한테 소리를 지르고 싸우거나 한 일이 많았다. 정신이 불안할 때마다 라이브 도중에 무대에서 사라지기도 하고, 자신을 촬영하러 온 다큐멘터리 감독을 내쫓는다던지, TV 방송 스케쥴을 펑크내고 칼로 자해한 뒤 개인방송을 킨다든지 하는 돌발 행동을 많이 일으키곤 했다.
라이브 도중에 똘끼 넘치는 짓을 하기로도 유명하다. 인디 시절엔 칼로 양 팔과 이마를 긋고 온몸에 피를 묻힌 채 노래를 부르는 유혈 라이브도 여러번 선보였었고, 공연 도중 옷을 벗고 알몸에 기타 하나만 매고 노래한다든가, 공연 막판에 관객들을 향해 오줌을 갈기고, 기타를 때려부수고 등등...[9] 최근에는 과거만큼의 과격한 퍼포먼스는 하지 않지만 여전히 4차원적인 헛소리 멘트와 여러가지 즉흥곡, 파워풀하고 열정적인 라이브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개인방송에서도 초창기부터 정신나간 행동을 여러번 저질렀다. 가장 대표적인건 노상 라이브로, 출퇴근길 유동인구가 많은 시부야나 신주쿠에서 라이브 (라지만 실제로는 무반주로 고함을 꽥꽥 지르면서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헛소리만 해댐)를 하다가 경찰에 끌려가거나, 음반점에서 노트북으로 자작곡을 틀어대서 점원한테 쫓겨나는 것을 생중계했다. 다만 이역시 과거의 일들이고 요즘은 얌전하게 통기타 매고 길거리 버스킹을 하는 정도. 그 외에도 유명한 방송으론 여캠 스트리머와의 데이트를 생중계하다 한겨울 오다이바 앞바다에 입수하기, 목욕 도중에 생방송을 키고 하반신 노출하기, 여고생 교복을 입고 B’z 음악에 맞춰 춤추는 영상 올리기, 합주 연습 방송 중에 갑자기 옷을 다 벗고 드럼에 다이빙하기, 아버지와 wii 대전하기, 자위 생중계 등이 있었다. 그래도 마냥 미친짓만 하는건 아니고 팬들과 소통하고 무대 뒷면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여주거나 유명 뮤지션들[10]과의 대담을 하는 것 같은 긍정적인 방송도 많이 했다.
곡을 완성하고 녹음을 간단하게 끝마친 뒤, 유튜브 大島亮介(오오시마 료스케) 계정에 자신이 직접 촬영하고 편집한 PV와 함께 올린다. 팟캐스트에서도 들을 수 있다. 믹싱이 거의 되어있지 않고 사운드가 거칠기 때문에 들을 때 소리 크기에 주의. 정식 판매 음반에 실릴 때에는 녹음과 마스터링을 전부 다시 한다. PV 영상의 촬영은 노코의 친아버지와 노코가 반반 정도씩 맡고 가끔 mono가 도와준다고 한다. 카맛테쨩 이름의 작업물보다는 노코 개인의 흔적을 많이 느낄 수 있는데, 예컨대 촬영지 대부분이 노코가 사는 치바 신도시[11]이거나 다녔던 정신병원[12] 등으로 구성돼있다.
한달에 한번씩 꼬박 업데이트되는 그의 니코동 유료채널엔, PV촬영기, 녹음 기록, 향후 음반에 실릴 곡들의 데모 버전, 일상 사진, 그외 개인적인 감상 등이 올라오는데 은근 컨텐츠가 충실해서 구독하는 팬도 꽤 되고 노코 본인도 이걸로 얻는 수입이 음악에서 얻는 것보다 많다고 밝혔다.
영향 받은 뮤지션로 오아시스, 픽시즈,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 에이펙스 트윈, 토가와 준, 자가타라, 근육소녀대, P-MODEL, 히사이시 조를 꼽았다. 히사이시 조를 제외하면 모두들 한 똘끼 하는 뮤지션으로 유명하다. 특히 자가타라 같은 경우 국내엔 알려지지 않았지만 신세이 카맛테쨩과 닮은 점이 많은 편이다. 파괴적인 퍼포먼스와 음악, 광기와 사회로부터 소외를 담은 가사, 프론트맨의 정신병력까지... 한편 노코가 애용하는 땡글이 안경과 하얀 공사장 헬멧의 조합[13]은 노코가 굉장히 좋아하는 밴드 더 타이머즈의 ZERRY[14]의 패션을 따온 것이다.
요즘 일본 신인 밴드 중에 들을게 없다고 깐다. 그냥 이대로 밴드신이 망해버릴지도 모르겠다고. 사실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자기를 표현하는 방식은 뭐든지 상관 없고, 자기도 요즘 태어났으면 유튜버가 되었을 거라고 한다. 신세이 카맛테쨩도 밴드라기보다는 인터넷을 통해 자기표현을 하는 단체 정도로 생각한다고 발언한 적 있다. 밴드 멤버들도 음악적 동료가 아닌, 친구로 생각한다고 말한 적 있다.[15] 다만 이런 것 때문에 예전에는 멤버간의 갈등이 엄청났다. 1년에 몇번씩이고 밴드 해체 직전까지 갔다고 한다. 현재는 노코가 나이를 먹으면서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멤버들끼리 서로 배려해주면서 다툼은 있어도 해체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 수준.
가사는 기본적으로 전부 자신의 이야기라고 인터뷰에서 여러번 말했다. 그래서 초기에는 10대때의 분노를 토해내는 가사를 쓸 수 있었지만 지금은 공연만 하러 다니고 인생 경험을 쌓지 않았기 때문에 가사 쓰기가 어렵다고 한다.
자칭 천재다. 그림도 가끔 그려서 트위터 등지에 업로드하곤 한다. 굿즈에 쓰이기도 하고. 화풍은 귀여움과 기괴함을 넘나드는 느낌. 시집 "룰루랄라"도 낸 적이 있다. 네오 니트라는 이름의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 보통 부르는 명칭은 네오니(ネオニー).[16] 평소에 어디 다닐때 마스크를 쓰거나 변장같은걸 전혀 하지 않는다. 사인과 사진 찍기도 고향인 치바뉴타운 밖에서라면 언제든 OK.
오타쿠였다. 아키하바라도 자주 가고 아즈망가대왕 DVD라든가 디지캐럿, 파니포니 대쉬, AIR등 90년대말 2000년대 초반 애니를 좋아하고, 2000년대 니코동에서 인기를 얻었던 길잃은 고양이 오버런, 러키스타, 클라나드 등의 애니에도 지식이 있다. 그 외에 건담, 성전사 단바인 등 슈로대에 나온 로봇애니들도 알고 있고, 다만 2010년대엔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 외에는 잘 보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도 기본적으로 알고는 있다고 한다. 고블린 슬레이어 라든지. 이외에도 보컬로이드도 꽤나 잘 알고 있다.
친분이 있는 밴드는 SEKAI NO OWARI, 앤디모리, 치나 등이 있다. 반대로 디스했던 밴드는 범프 오브 치킨[17], 9mm Parabellum Bullet[18], 원오크락사카낙션 디스했다는 얘기도 일웹에 돌아다니지만 사실 본인들을 저격한 적은 없고 팬들이 마음에 안든다고만 이야기했다.
2020년 초에는 사운드클라우드로 지금까지의 데모곡을 대거 풀었다.
여담으로, 담배와 술을 굉장히 즐긴다. 트윗캐스팅 방송 보고 있으면 십중 팔구 그러한 모습을 보인다.

4.2. mo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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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사운드클라우드
트윗캐스팅
본명 카이도 유키야 (海藤佑希也), 키보드를 맡고 있다. 카맛테쨩의 음악에 키보드가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라이브에서는 꽤나 중요한 역할을 맡는 중. 얼굴형이 굉장히 특이하게 생겨서 학창시절 따돌림을 당했으나 기본적으로 성격이 있었기 때문에 맞서 싸웠다고 한다. 그래서 노코처럼 자퇴나 히키코모리 생활 등의 극단까지는 가지 않았다.
노코와는 유치원 때부터 쭉 동창이며, 고등학교에서 다시 만나 서로 유치원 때 같은 반이었다는 것을 기억해 내고 밴드를 같이 하면서 친해졌다고 한다. 노코가 정신적으로 불안해서 히스테리를 분출하며 개인방송이나 라이브를 망칠 때가 있는데, 그 때마다 노코하고 싸우곤 했다. 밴드에서 노코 다음으로 성격이 거칠고 물러서지 않는 기질이 있어서 자주 다퉜다. 평소에는 음주를 전혀 하지 않지만 라이브를 할 때마다 술을 먹는 습관이 있었다. 물론 이제는 싸움과 음주 둘 다 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밴드가 대체 왜 이런 노래와 실력으로 뜨게 됐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고 한다.
집의 책장 한편을 빼곡히 만화책으로 채운 오타쿠이며 미소녀 피규어도 많이 갖고 있다. 24살까지 모쏠이었다 팬인 여자와 만나 결혼하고 결혼식을 니코나마로 생중계해서 멤버 중 유일한 기혼자가 되었으나 2017년 이혼했다.
전자음악, 그 중에서도 90년대 워프 레코드IDM을 좋아해서 그런 장르의 자작곡을 가끔 업로드한다.
게임을 좋아해서 자주 즐기고 게임 관련 유튜브 채널에도 출연 중이다.

4.3. 미사코(みさ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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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인스타그램
트윗캐스팅
본명 스즈키 미사코 (鈴木みさこ), 밴드의 홍일점인 드러머. 학창시절 취주악부에서 활동했고 대학에서 밴드부에 소속되면서 본격적으로 드럼을 시작했다고 한다. 졸업 후 보험회사에 취직해 다니면서 자기만의 밴드를 하다가 멤버를 구하기 위해 접촉해온 노코[19]와 만나 신세이 카맛테쨩에 가입. 처음에는 어디까지나 밴드는 단순히 취미로만 하려 했으나 이후 프로로 전업한다.
근육소녀대, 토가와 준, 린토시테시구레, 시이나 링고, 칸노 요코, 애니송 계열 등의 음악을 좋아한다. 데뷔 초에는 취미가 아이마스 였다. 특히 린토시테시구레의 TK의 mixi 커뮤니티 관리자였기 때문에 밴드와도 직접적인 교류가 있었다.
부녀자이고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 그래서 라이브나 생방송 시에 메이드복이나 여고생 교복, 애니 캐릭터 코스프레를 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뜬금 없이 "문 손잡이 소녀"라는 페티쉬 사진집을 촬영해서 모두를 당혹스럽게 한 사건도 있었다. 2019년 현재는 귀멸의 칼날에 빠져서 코스프레를 하거나 한다.
2011년부터는 아이돌 그룹 반도쟈나이몬!을 결성해 리더로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여자아이들끼리 뭔가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고. 현재는 아이돌 쪽 활동도 성공해서 양쪽 다 좋은 커리어를 이어나가고 있다. 2015년 개봉한 소규모 영화 "여자의 사건은, 대체로 화장실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에서 주연을 맡았다.
노코가 얼굴적으로는 자기의 타입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밴드를 계속하지 못할거라고. 하지만 노코의 성격 자체가 경계성 인격장애로 인해 기복이 심하고 안좋을 때는 주변인들에게 말도 안되는 억지와 분노를 토해내기 때문에 사이가 틀어져 서로 무대 위에서 주먹다짐하기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지금은 다들 나이도 먹었고 서로 얼굴 보기 시작한지도 10년째라 무난무난한 사이.
카맛테쨩 내에서 가장 바쁘게 활동한다. 반도쟈나이몬!이 성공해서 투어와 스케쥴을 열심히 소화하는데 동시에 카맛테쨩 합주와 공연에까지 참여하는 초인성을 보여주는 중. 그와 동시에 공개적인 혼활을 선언하고 결혼 어플로 배우자를 찾고 있다. 아이돌의 결혼에 관한 인터뷰도 한 적이 있다.

4.4. 유노스케(ユウノス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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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서포트 멤버로 오디션을 통해 뽑혔다. 아직은 정식 멤버는 아니다. 베이스 담당. 예전부터 카맛테쨩의 팬으로, 공연할 때 관객으로서 무대에 올라와 즉석으로 기타를 친 적이 있다. 당시 영상. 2018년 당시 19살이었다. 미사코의 팬으로, 반몬의 악수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5. 전 멤버



5.1. 치바긴(ちばぎ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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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트윗캐스팅
2006년 ~ 2020년
본명 사쿠마 다이사쿠 (佐久間大作), 베이스 담당. 예명은 치바 은행에서 따왔다고 한다. 밴드의 상식인 역할을 자처하고 있으며 밴드의 분위기가 과열될 때마다 중재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실제로 인상이나 언행 등도 다른 멤버들에 비하면 평범한 쪽에 가까운 편.
하지만 세카오와 멤버들을 디스하고 성희롱에 가까운 실언을 내뱉어 두 밴드 간의 싸움을 초래하는 대형사고를 친 적이 있다.
개인방송을 굉장히 자주 켜서 방송 귀신이라는 별명이 붙었었다. 원래는 밴드에서 드럼을 맡고 있었으나 드러머인 미사코가 영입되어 살면서 한번도 쳐본 적 없는 베이스를 잡게 되었다. 2009년까지는 카맛테쨩과 본인이 기타,보컬을 맡은 개인 밴드 둘을 병행했지만 이후 정리하고 신세이 카맛테쨩으로 열심히 활동 중.
2018년에 결혼했다. 아내는 온라인 게임에서 만났고 3살짜리 딸이 있다고 한다. 밴드만으로는 돈을 못벌어서 아르바이트도 병행중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2019년에 자식을 한명 더 얻었다.
노코가 본인과 인간적으로 궁합이 전혀 맞지 않는다고 밝혔다. 둘 다 프론트맨 기질이라고... 사이가 나쁜건 아니라고 함.
2019년 5월 21일 밴드 탈퇴를 발표했다. 2020년 1월에 열리는 투어 파이널이 끝나고 일반인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사유는 육아와 생계. 밴드로는 돈벌이가 되지 않아서 취직을 알아본다고 한다. 이후 영상 관련 업계에 취직했으며 현재는 트위터 계정을 새로 파서 가끔씩 근황을 전하고 있다.

5.2. 아베쇼(あべしょ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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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 2008년
데뷔 이전 극초창기 멤버이다. 일과 밴드의 양립이 어려워 탈퇴했다. 기타, 베이스 담당.
현재는 니코라 츠야마(ニコラ津山)라는 이름으로 니코니코 생방송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5.3. 산시로(サンシロ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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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 2008년
데뷔 이전극 초창기 멤버이다. 음악성의 차이로 탈퇴했다. 베이스 담당

6. 디스코그래피


신세이 카맛테쨩/음반 목록

7. 여담


  • 한국에선 SEKAI NO OWARI와의 갈등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은 오래된 일이라 화해도 했고 두 그룹의 보컬끼리 서로 언급도 하고 사진도 많이 찍는편...이었지만 노코가 2018년 말 개인방송에서 최근 연락이 안 돼서 뭐하고 사는지 모르겠다고 발언했었지만 2019년 년초에 노코 집에서 만나고 인증샷을 트위터에 올렸다.
  • 밴드 이름 바꾸라는 소리를 50번정도 들었지만 바꾸지 않았다고 한다.
  • 노코가 생각하길 사실 카맛테쨩은 데뷔했을 당시의 찰나적인 인상으로 끝난 것 같다고 한다. 예전의 카맛테쨩 음악만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곡만 만들순 없다면서. 그래도 나이들며 생기는 강함이라는 것을 믿으며 해나가고 싶다고 한다.
  • 2018년에 노코가 개인방송에서 인기도 떨어졌고 오와콘이라는 소리도 많이 들어서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소재가 떨어져서 가사 쓰는게 너무 힘들다고. 근데 2020년에 루루쨩의 자살방송 MV가 1500만 조회수를 넘으면서 대박이 났다. 진격의 거인 The Final Season 오프닝도 맡게 되어서 은근히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 창작자 중에서 카맛테쨩 팬들이 꽤 있다. 대표적으로 진격의 거인이사야마 하지메는 오래 전부터 너무 광팬이라서 애니메이션에 직권으로 추천했고, 사랑은 비가 갠 뒤처럼의 작가도 이들의 곡을 실사 영화의 주제가로 써달라고 제작진에게 끈질기게 설득해서 성공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아이묭, 하루 네무리 등도 카맛테쨩 팬임을 밝힌 바 있다.
  • 2020년 2월 18일, 팬이었던 여고생이 '루루쨩의 자살방송' 노래 가사처럼 트위터로 자살 생중계를 하는 사건이 일어났고 이에 대해 멤버들도 직간접적으로 사건에 대해 심경을 밝혔다.
  • 2013년도에 로로쨩(ろろちゃん)이라는 중학생이 FC2에서[20][21] 투신자살 생방송을 한 사건이 있었는데, 이 사건이 '루루쨩의 자살방송'의 토대가 됐다 카더라.

[1] 다만 치바긴은 다른 밴드에서 기타겸 보컬을 하고 있어서 완전한 멤버가 되는건 2009년으로 꽤 늦었다.[2] 고등학교 자퇴하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할 당시 1주일 사귀고 깨졌던 노코의 첫사랑 이름이라고 한다.[3] 몇년 뒤 노코가 이 시절을 회상하길 '젊은 날의 치기' 였다고... 실제로 메이저 데뷔 이후엔 이정도로 심한 퍼포먼스는 하지 않는다.[4] 지진 당시 스튜디오에서 녹음하면서 생방송을 하고 있어서 영상이 남아 있다.[5] 실제로 자주 열리는 노래방 생방송을 보면 90년대 얼터너티브 록, 엔카, 헤비메탈, 애니송, 힙합 등 넓은 범위의 선곡 레퍼토리를 들려준다.[6] 노코는 한번 꽂힌 코드를 여러 곡에 우려먹는 작곡법을 쓰고 이를 방송에서 대놓고 말하곤 한다.[7] 라고 인터뷰에서는 적당히 말했지만 사실 어감이 좋아서 그냥 붙였다고 한다.[8] 2021년 1월 15일 트윗캐스팅 방송에서는 게임 개발자가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https://youtu.be/9bItN-KqQ2Y[9] 사실 이와같은 퍼포먼스는 노코가 좋아하던 하드코어 펑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10] 류이치 사카모토, 넘버 걸의 무카이 슈토쿠, 토가와 준 등.[11] 개발에 실패한 신도시로, 여전히 논밭으로 남아 있는 땅이 많아서 PV에서도 시골에서 찍은 것처럼 보이는 장면이 많다.[12] 담당 주치의의 허락을 맡고 촬영했다고. 주치의는 80년대 일본 펑크밴드 더 스탈린의 팬이라고 함.[13] [image][14] RC석세션의 이마와노 키요시노다. 다만 공식적으로는 그저 얼굴이 닮았을 뿐이고 밴드 멤버들은 전부 공사장 인부 출신인 전혀 다른 사람일 뿐이라고 주장. 마미손과 같은 기믹.[15] 밴드의 음악적 권한을 전부 노코가 쥐고 있기 때문이다.[16] 2018년 12월 31일 네오니가 죽어서 방송에서 술마시고 펑펑 울었다.[17] 히키코모리 시절 2ch 밴드판에서 깠다. 새로운 시도는 안하고 록페스티벌 같은거나 만든다고... 그리고 8년 후인 2016년, 노코도 직접 페스티벌을 만든다.[18] 이쪽은 9mm 비비탄이라면서 대놓고 디스함.[19]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넘버 걸,픽시즈 등 좋아하는 밴드들이 전부 여성 멤버가 있어서 자기 밴드에도 여자 멤버를 구했다고 한다.[20] 뉴스기사 등에는 '동영상 서비스 사이트'라고만 되어 있어서 니코니코 동화라는 억측이 많았지만 실제 생방송이 나간 곳은 FC2이다.[21] 안타깝게도 해당 여중생은 투신 사건 며칠 후인 2013년 11월 23일,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