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르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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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Amur leopard
러시아어: Дальневосточный леопард
중국어: 远东豹
일본어: アムールヒョウ
1. 개요
현재 러시아 극동 연해주와 아무르 강 일대, 중국 북부 일대에 서식하며, 오늘날 주요한 아무르표범 보호구역인 러시아의 표범의 땅 국립공원에서 2018년도 기준 113개체.[1] 2019년도 기준 120개체 이상의 존재가 확인되었고[A] 전세계의 동물원에 약 200여 개체가 있는[2] 몸길이 1.5~2m, 꼬리길이 67 ~ 110cm, 어깨높이 60~70cm, 몸무게 32~48kg의 표범. '눈이 많은 지역에 서식하는 표범'이라는 특징으로 인해 일반인에게는 눈표범과도 자주 혼동되나 눈표범과는 명백히 다른 동물이다.
'''한국표범'''이라는 이명에서 알 수 있듯 과거 한반도 일대에도 서식하였으나 현재 남한에서는 멸종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아직까지 남한 내에 생존한 개체군이 있을 수 있다는 주장과 목격담 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으나 명확한 증거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북한 지역은 폐쇄적인 정권 특성 상 구체적인 서식현황은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2018년 표범의 땅 국립공원 최남단 지역의 북한 국경으로부터 7km 떨어진 지점에서 암컷 개체인 '''Leo 101F'''가 카메라 트랩에 촬영되는 등. 러시아 지역의 표범이 북한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을 가능성은 존재한다고 파악되고 있다.[3]
2. 생태
2.1. 식단
야생 아무르표범은 보통 혼자서 생활한다. 다양한 종류의 동물을 먹이로 삼으나 같은 지역에 서식하는 대형 고양이과 포식자인 시베리아호랑이와 마찬가지로 아무르표범 또한 발굽동물을 주 먹이로 삼는데, 중국 동북부 지역과 러시아 국경의 시베리아호랑이, 아무르표범 개체군을 대상으로 2014∼2016년 동안 카메라 트랩과 배설물 수거를 통해 시행된 먹이 조사의 2018년에 발표된 결과 논문인 '''『Seasonal food habits and prey selection of Amur tigers and Amur leopards in Northeast China』'''에 따르면 시베리아호랑이와 마찬가지로 아무르표범의 식단에서 멧돼지, 노루, 대륙사슴 등이 과반수를 차지했으나 연 평균 33.64%로 멧돼지의 포식 비율이 가장 높게 나타난 시베리아호랑이와 달리 아무르표범은 연 평균 37.5%로 노루 포식률이 가장 높았다.
아무르표범의 여름철 멧돼지 포식률은 19.57%, 겨울철에는 4%로 조사되어 겨울철에 멧돼지 포식률이 높은 시베리아호랑이와는 반대로 아무르표범은 여름철에 멧돼지 포식비중이 겨울철보다 훨씬 더 높은데, 이는 표범들이 봄에 태어난 어린 멧돼지를 먹이로 노리는 비중이 증가하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위와 같은 논문의 먹이 조사 결과에서 오소리가 연평균 6.73%, 붉은여우가 연평균 3.85%, 너구리가 연평균 2.88%로 포함되어 아무르표범 또한 시베리아호랑이와 마찬가지로 소형 식육목 동물을 포식하는 것이 확인되었으며, 시베리아호랑이에게서는 확인되지 않은 수달이 연평균 1.92%로 식단에 포함되어 아무르표범의 수달 포식 또한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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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사냥한 아무르표범.
아무르표범의 개 포식은 연평균 0.96%, 소 포식은 3.85%로 조사되어 식단 전체에서 가축종이 차지하는 비중은 시베리아호랑이와 유사하나, 사슴 농장과 같은 가축 사육시설 인근에 정착하여 주기적으로 농장의 사슴 등을 포식하는 경우가 다소 자주 보고되고 있다.[4]표범은 특히 양고기, 개고기를 즐겨먹기 때문에 때떄로 인가를 습격하거니와 사람에게 사격을 당하면 반격하지 않고 도피하여 숨어 기다리다가 추격해 오는 사람에게 갑작스러운 공격을 가하는 습성이 있다.
'''한국야생동물기'''(수렵비화) 이상오 (1959)
2.2. 서식지
암컷 아무르표범의 행동범위는 33~136km2, 수컷은 155~300km2 정도로 기본적으로 수컷 개체의 행동범위가 더 넓으나, 각 야생 표범 개체들에 부착한 GPS를 통해 아무르표범의 행동범위를 분석할 시 서로의 행동권이 겹치는 경향을 자주 보이고 있어[5] 지정된 영역을 두고 자신의 영역을 적극적으로 지키는 시베리아호랑이와는 달리 아무르표범은 정해진 영역을 가지고 살지 않는 것으로 추정된다. 동시에 아무르표범은 호랑이보다 강설량에 민감해 눈이 두껍게 쌓이는 지역은 피하고 겨울철 강설량이 10~15cm 이내인 지역 위주로 서식하는 것으로 확인되는데, 이 때문에 아무르표범 서식의 북방한계선은 호랑이보다 낮고 서식지도 보다 남쪽에 집중되어있다.[6]
2017년 러시아 연해주 '''표범의 땅 국립공원'''에서 촬영된 바위굴에 관심을 가지고 접근한 수컷 시베리아호랑이의 모습과 이후 촬영된 해당 바위굴에 주기적으로 기거하는 2세의 암표범 '''Leo 83F'''의 모습. 연구자들은 호랑이가 촬영되었을 때에는 표범이 바위굴에 없었으며, 호랑이가 바위굴에 접근한 것은 사냥하기 쉬운 동면 중인 곰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였을 것으로 추정했다.[7]
아무르표범과 같은 지역에서 서식하는 시베리아호랑이는 각 개체가 수백 km2에 달하는 영역을 보유하기 때문에 아무르표범들 또한 호랑이의 영역 내에서 활동하는 경우가 잦은데, 표범들은 보다 상위 포식자인 호랑이와 충돌할 경우에 발생하는 위험을 잘 알고 있어 충돌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이동경로에 호랑이가 나타날 시에는 자취를 감추었다가 호랑이가 사라진 후에야 다시 모습을 드러내곤 하는 행동이 카메라 트랩 등을 통해 확인된 바 있다.[8]
2.3. 번식
개체별로 차이는 있으나 대체로 겨울 후반기인 1~2월에 번식기를 가지는 경우가 많다. 번식기를 가진 암표범은 92~95일간 임신하여 한 배에 2~3마리의 새끼를 낳는데, 갓 태어난 어린 표범의 무게는 500~700g이다. 어린 표범들은 2~3년 동안 어미에게서 자란 뒤 독립한다.
3. 보호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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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르표범의 건강상태를 확인하는 러시아 과학자들.
아무르표범이 서식하고 있는 러시아와 중국에서는 야생 아무르표범의 개체수를 확인하고 밀렵을 단속하며, 서식지 출입을 통제하고있다.
아무르표범의 주요한 보호구역으로는 러시아 정부가 아무르표범 보호에 집중하기 위해 연해주의 '''케드로바야파치'''(Кедровая Падь) 자연보호구와 '''바르소니'''(Барсовый) 연방야생동물보호구, '''보리소브코 고원'''(Борисовское плато) 야생동물보호구를 통합하고 중국 국경지역까지 포함시켜 최종적으로 2012년 4월 5일에 설립한 총 면적 약 262,000 헥타르의 '''표범의 땅 국립공원'''(Земля леопарда)이 있다.[9][10] 표범의 땅 국립공원은 구역을 나누어 연구 목적 출입 가능 지역, 경제·레저 활동 가능 지역 등을 지정해 구역별로 민간인의 활동 제약에 차등을 두고 있는데, 이 중 면적 약 18,044 헥타르의 케드로바야파치 자연보호구 지역에 가장 높은 보안이 적용되고 있으며 케드로바야파치 자연보호구는 표범의 땅 국립공원에 부속되기 이전부터 아무르표범의 주요한 서식지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11]
남아있는 야생 아무르표범에게 서식지 파괴와 더불어 밀렵 또한 큰 위협이지만, 야생 아무르표범들의 보전에 가장 큰 문제로 거론되는 것은 바로 개체수 부족으로 인한 근친교배이다. 야생 아무르표범은 보다 체계적인 보호 정책이 이루어진 시기부터 이미 수십 개체 정도로 그 숫자가 적었기 때문에 근친교배를 피할 수 없어 유전적 다양성이 떨어진다고 보는 것으로, 실제 야생에서 관찰된 아무르표범 개체 중에서도 열성인자인 흰 발을 가진 수표범들과 짧은 꼬리를 가진 암표범들이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12]
아무르표범은 여러 세대 동안 근친 교배를 거듭해온 결과 유전적 다양성이 현저하게 낮고 새끼의 생존율이 감소해왔다. 2001년도의 발표 결과로 종이 번식해서 유지되려면 암컷1마리당 새끼2마리 이상 살아남아야 하지만 1973년 암컷1마리당 새끼 1.9마리였던 것이 1991년에는 암컷 1마리당 새끼 1.0마리만 살아남았다. 새끼들뿐만 아니라 모든 연령대에서 사망률이 높았으나[13] 2000년 기준 30개체였던 것으로 확인되었던 아무르표범의 야생 개체수가 2019년 기준 122개체로 4배 이상 증가하는 등 현재 야생 아무르표범의 개체수는 안정적으로 증식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A]
4. 한반도의 아무르표범
4.1. 일제강점기 이전
과거부터 한반도에서 표범은 호랑이와 마찬가지로 '범'으로 불려졌고, 표범과 호랑이를 같은 종으로 여기며 표범을 암컷 호랑이로 여기는 경우도 있었다.[14] 호랑이의 가죽인 호피는 두껍고 거칠어 명확한 쓰임새 없이 덮개나 깔개 정도로나 사용되었으나 표범의 가죽인 표피는 무늬가 아름답고 부드러워 시장에서 고가에 거래되는 품목이었는데, 이렇기 때문에 19세기 초에 집필된 '''만기요람'''(萬機要覽)에 따르면 표피의 값은 호피의 값보다 높게 책정되어 있었다고 한다.[15]"그런데 표범은 어디서 잡힌 건가요?"
"표범이 아니야, 암호랑이지."
"맞아, 맞아, 범 마누라야. 누런 몸에 검은 꽃무늬가 점점이 있었지."
"동물원 기록을 보면 수컷 표범이라고 되어 있던데요?"
"수컷이 아니고 암컷 호랑이라니까요. 아주 예쁜 암컷이었어요."
방 안이 떠들썩해졌다. 함 교수가 미소를 지으며 설명했다.
"한국에서는 옛날에 호랑이와 표범이 부부라는 말이 있었어요. 시골에서는 아직도 표범이 호랑이의 암컷이라고 알고 있는 분들이 있나 봅니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표범과 호랑이가 부부라니······. 이 이야기는 둘째치고, 대체 어디에서 잡은 것일까.
-'''한국의 마지막 표범''' p. 54~56
豹頭骨燒灰淋汁, 沐頭, 去頭風屑.
표범의 머리뼈를 태운 재를 즙을 내고, 그 즙으로 머리를 감으면 머리의 풍설(風屑)이 없어진다.
-의방합부 권1(意方合部 卷之一)
急狂, 虎豹眼精, 五六介呑下, 乾則水沈, 呑下則佳
급작스런 발광에는 호랑이나 표범의 눈알을 5-6개 씹어 먹는다. 말라 있으면 물을 적셔 먹으면 좋다.
-의방합부 권2(意方合部 卷之二)
표범의 신체 부위 또한 여러 약효가 있는 것으로 한의학에서 취급되었으며, 이는 과거에 저술된 한의학 서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眩暈, 豹髓食之, 尤好. 又防風八戔, 水煎服.
어지러움에는 표범 골수를 먹으면 더욱 좋다. 또 방풍 8돈을 물에 끓여 먹는다.
-주촌신방 필사본(舟村新方 筆寫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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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와 표범이 그려진 민화.
표범은 민화에서도 그 모습을 자주 드러내었다. 호랑이나 표범을 그리면서도 그 무늬를 표범의 점무늬와 호랑이의 줄무늬와 섞어 표현하거나 점박이를 한 표범과 줄무늬를 한 호랑이가 같은 그림 안에서 등장하는 등, 과거에는 표범과 호랑이를 동일한 동물로 여긴 흔적들을 살펴 볼 수 있으나 오늘날 민화의 표범들은 단순한 호랑이로 오인받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수렵가 이상오[16] 는 아무르표범을 우수리표범과 한국표범의 2아종으로 분류했으나 시베리아호랑이와 한국호랑이의 차이처럼 같은 아종의 지역 차이 정도라고 할 수 있다.우리나라에 서식하는 표범으로는 『우수리표범』과 『한국표범』의 2종이 있다. 『우수리표범』은 주로 북한에 서식하며 만주, 시베리아 등지에 사는 표범과 같은 종류이며 그 몸집도 『한국표범』보다 크다.
'''한국야생동물기'''(수렵비화) 이상오(1959)
4.2. 일제강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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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11월 16일 야마모토 타다사부로(山本唯三郎)에 의해 조직된 야마모토 정호군(山本征虎軍) 제 5반의 포수 키쿠타니 리키조(菊谷力藏)가 영흥군 의흥면 용신리에서 사살한 아무르표범.[17]
일본제국이 시행한 해수구제사업에 의해 시베리아호랑이와 더불어 다수의 아무르표범이 포획되었는데, '''『한국 호랑이는 왜 사라졌는가?』'''를 집필하여 조선 총독부에 의한 체계적인 한반도 내 야생동물 남획이 있었음을 밝혀낸 일본의 동물 문학 집필가인 엔도 키미오가 수집하여 『한국 호랑이는 왜 사라졌는가?』에 개제한 공식적인 기록만으로는 1915년~1916년간 136마리. 1919년~1924년 간 385마리. 1933년~1942년 간 103마리가 포획되어 최소 624마리 이상의 표범이 포획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4.3. 창경원의 아무르표범 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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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3월 24일 산청군 고촌마을에서 표범에게 공격당한 주민 윤보안(당시 30세)이 표범을 두들겨 잡았다는 내용의 국제신보 1959년 3월 30일 자 기사.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친 이후로도 남한 내에서 표범에 대한 목격담은 계속 이어져 왔으며 실제로 몇차례 포획되기도 하였는데,[18] 살아있는 표범이 포획되어 동물원에 전시된 사례로는 합천군 오도산에서 어린 수표범이 포획되어 창경원에서 '한표'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약 11년 간 사육·전시된 사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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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합천군 오도산에서 표범을 포획한 인물인 황홍갑의 주민등록증 사진.[19]
1962년 2월 12일 오전, 합천군의 오도산에서 오도산 인근의 가야마을에 거주하며 올무를 통한 사냥을 취미로 하던 당시 44세의 주민[20] '''황홍갑'''(黃紅甲)이 설치한 올무에 허리가 걸린채로 포획된 이 어린 수표범은 당시 국내 유일의 동물원이었던 창경원에 이 표범을 기증하고자 한 포획자 황홍갑의 뜻에 따라 마을 주민들에 의해 생포되었는데, 포획하는 과정에서 황홍갑의 동생인 '''황홍수'''(黃紅秀)의 오른쪽 손바닥을 발톱으로 할퀴어 뼈가 보였다고 할 정도의 부상을 입히기도 하였다."그때 스무명 정도 되는 남자들이 손에 몽둥이랑 낫, 손도끼 같은 걸 들고 조심조심 다가갔어. 표범이 시뻘건 입을 벌리고 송곳니를 드러내긴 했어도 도망은 못 갔지. 홍갑이의 덫에 단단히 걸려 있었으니까."
그는 조부로부터 어릴 적에 올무 거는 방법을 배웠다고 한다.
"배가 꽉 조여서 그런지 표범 소리가 마치 비명 같더라고. 캬~, 캬악~하는게 말이지."
"철사 끝이 소나무에 묶여 있어서 대단한 맹수라고 해도 어쩔수는 없었던 모양이야. 철사도 그냥 철사가 아니라 강철 와이어였거든."
"강철 와이어였나! 그래서 도망가지 못했구나!"
나는 탄식하며 소리쳤다.
"와이어는 얇지만 끊어지질 않거든. 표범을 차라리 두들겨 죽였으면 간단했을 텐데 홍갑이가 생포하자고 했지. 서울의 동물원에 보낸다고 말이야. 대단한 남자라니까, 표범을 전 국민에게 보이고 싶다나."
남자들은 두 갈래로 갈라진 나무를 손도끼로 잘라서 그것으로 날뛰는 표범의 목을 제압했다.
(후략)
-'''한국의 마지막 표범''' p. 7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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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범이 할퀸 손바닥의 흉터를 내보이는 황홍수. 1985년 촬영. 당시 63세.[21]
생포된 표범은 마을 주민들이 기르던 토끼 등을 먹이로 공급 받으며 드럼통으로 만든 임시우리에 수용되어 있다가 합천 경찰서에서 창경원에 표범을 기증코자 한다는 전보를 보내게 되었다. 전보를 받은 창경원 측에서는 이를 삵 등을 오인한 것이 아닌지 다그쳐 물었으나 정황상 표범일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으로 수의사 '''권순호'''(權純鎬)를 가야마을로 급파해 포획된 표범이 표범이 확실한지 확인하도록 하였다."어허, 조용히 좀 하게. 동네 남자들이 총출동해서는 드럼통을 옆으로 누이고 저기에 굵은 철사를 칭칭 감아서 우리로 썼어."
드럼통이 뚫린 방향은 굵은 철사로 격자를 만들어 막았다.
"표범을 안에 집어 넣는 일이 좀 힘들었지. 격자 사이로 머리를 먼저 밀어 넣고, 다리의 밧줄을 끊은 다음 기다란 꼬리가 끝까지 들어 갔을 때에는 만세를 부르며 춤을 추는 사람도 있었다고. 와하하~,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말이지."
(중략)
"드럼통에서 아흐래동안 먹이를 주었어요. 마을에 있는 집토끼는 다 먹어치워서, 소고기와 돼지고기 같은 걸 사왔죠. 물도 챙겨 주고요. 음, 드럼통은 이 창가 밑에 놓여 있었어요."
말을 끝내자, 다시 시끌벅적해졌다.
"그땐, 어두워지면 밖을 돌아다니는 사람도 없었어요. 혹시라도 드럼통에서 빠져 나올까 무서워서 오줌 누러도 안 갔죠. 그러고 보면 산 저편에서는 그 짝이 울어댔었어요. 구슬픈 목소리로 상대를 찾는 거겠죠. 그러면 잡혀 온 녀석도 대답을 했어요. 드럼통 안에서 캬옹~ 하면서······."
"다른 표범이 구하러 오기라도 할까 봐 모두 걱정했지요."
"여러분, 혹시 산에서 우는 소리를 들으셨습니까?"
할머니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누구도 들은 기색이 없었다. 그러나 김씨 할머니는 의기양양하게 덧붙였다.
"바람 소리라도 호랑이가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 법이지. 오도산에서 불어오는 산바람은 사람을 움츠러들게 하니까. 하물며 드럼통에는 살아 있는 표범 한 마리가 그르릉 하고 있었으니."
경남대학교의 함 교수도 눈을 크게 떴다. 이 나라의 동물학계상 전대미문의 이야기였다.
-'''한국의 마지막 표범''' p. 60~62
19일 오전에 현장에 도착한 권순호는 표범이 확실한 것을 확인하고 마을에서 이동 상자를 급조해 표범을 수용하여 저녁 즈음에야 묘산면으로 옮겼는데, 이송 중 먼 곳에서 어미가 출몰하여 따라오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 표범을 트럭에 싣고 합천에서 출발해 새벽 세시에 대구에 도착한 뒤 권순호는 우체국 문이 열기를 기다려 표범임이 확실한 것을 확인했으며, 저녁에 서울에 도착할 것이라는 전보를 창경원에 보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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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합천군 오도산에서 포획된 뒤 창경원으로 옮겨진 한표에 대한 1962년 2월 21일 자 동아일보 기사.
표범은 20일 저녁 창경원에 도착해 맹수사에 수용되었으며, 창경원에서는 ''' '한표' '''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22][23] 한표를 포획하여 기증한 황홍갑에게는 30만원의 사례금이 지급되어 이 사례금을 자택 보수 공사에 사용했으나 가야마을이 외진 곳에 있어 인부를 부르고 길을 넓히는데에 많은 비용이 들었다고 하며, 이후 황홍갑은 52세에 다리에서 떨어져 돌에 머리를 부딫친 후유증으로 인해 4년 간 투병하다 『한국의 마지막 표범』의 저자인 엔도 키미오가 1985년에 가야마을을 방문했을 때에는 이미 3~4년 전에 사망한 상황이었다고 한다.[24]"표범 확인 금일저녁 서울도착 권"
직원들 모두는 환호성을 울렸다. 서울역에 나아가 받아싣고 맹수우리에 풀어놓았을 때 함성은 다시 터졌다. 어엿한 한국표범! Korean Leopard! 아무르표범! ''Panthera pardus orientalis''! 이놈이 바로 세계에서 으뜸이라는 그놈 아니가! 실로 해방 후 초유의 쾌거였다. 우리는 이 수컷의 이름을 "한표"라 지어줬다.
-'''『韓國動物園八十年史 昌慶苑編』''', p. 293
창경원 측에서는 한표를 사육하면서도 한표와 짝을 지을 암표범을 몰색하던 중 1963년 7월에 이리시(익산시)의 한 교회에서 3년 생 암표범 한 마리를 포획했다는 연락이 오자 해당 표범을 수령받으려 했으나 해당 암표범은 총상 또는 덫으로 인해 오른쪽 앞발목이 심하게 훼손된 상태였던데다 교회측에서 지나치게 높은 가격을 요구했던 탓에 구해오지 못했다고 하며, 이후 이 암표범은 약용으로 도살되었다고 한다.[25][26][27]
남북의 긴장이 계속되는 가운데, 한국에서 자연보호라는 것의 우선순위가 뒤로 밀려난 상태였다. 그러나 1969년 IUCN(세계자연보전연맹)은 아시아에서의 호랑이 격감을 세계에 알렸고, 그것을 계기로 1970년에 인도의 호랑이 수렵이 금지되자 드디어 한국에서도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가치를 깨닫게 되었다.
동물원에서는 이 표범의 자손을 남기고 싶어 했지만 암컷 표범이 발견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인도 표범 암컷을 구입해 동거 시켰고, 무사히 교미가 이루어져 1972년 9월 17일에 두 마리의 새끼가 태어났다. 모두 암컷이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그 이후로 인도 표범은 임신하지 않았다.
'''-한국의 마지막 표범''' p.110
[image]1971년 10월 20일 창경원. 8년의 약혼기간을 오늘로 끝내고 신랑 한표군(한국표범)과 신부 인표양(인도표범)의 국제결혼식을 올리는 날이다.
아침 8시. 구름 한점 없이 하늘은 푸르고 등 뒤의 먼 햇살이 솜처럼 따사로운데 덜미에 간간이 스치는 소슬바람 또한 상쾌해 결혼날 치고는 더할 나위 없이 흡족하다.
(중략)
어쩌다 한 번이지 두 번이나 당할 쏘냐. 달려드는 놈을 앞발로 받아 보기 좋게 한 펀치를 안긴다. 뒤로 나가떨어진 신부, 사지를 허우적거리며 데굴데굴 구르면서도 굴하지 않고 반격한다. 이제야 남편의 본때를 보여주나보다 하고 생각하는 사이 어찌된 셈인지 퇴각한 놈은 또 신랑놈이다. 가만히 살펴보니 꼴 사납게도 콧등에 두줄기 할퀸 자국이 선명하게 나있다. 대단한 건 아니지만 새빨갛게 피가 비친다.
아무리 짐승이기로서니 부창부수, 다소곳하게만 군다면 해로울게 없을 텐데 저다지도 앙탈을 부릴 것은 또 뭐람? 승자에 대한 박수는 고사하고 더욱 밉살스러울 판인데 게다가 한술 더 떠 이젠 제법 기고만장 거들먹거리다가 항복이라도 받으려는 셈인지 꿇어 엎드려 고개도 못드는 신랑 앞으로 가서는 면전에 꽁무니를 돌려대고 상쇠잡이 상모 꼬느듯 꼬리를 휘젓다가 가뜩이나 쓰린 콧등을 꼬리 끝으로 톡톡 건드린다. 자지러지게 놀란 신랑놈. 참다 못해 펄쩍 뛰어 저쪽 구석으로 자리를 옮겨 차라리 오들오들 떨기조차 한다.
이쯤되면 더 볼 게 없을 것 같다. 거꾸로는 됐지만 한편이 완패하여 전의를 잃고 항복했으니 더 이상 큰 싸움은 없을 것 같다.
(후략)
- '''오창영 에세이② 동물의 사랑학''' p. 56~65
한표(뒤)와 인표(앞)의 합사 시도 당시 사진. 1971년 10월 20일 촬영. 국가기록원 소장.
이렇듯 사실상 국내에서는 한표와 같은 아종의 아무르표범을 더 이상 확보할 수 없게 되었고 당시 냉전구도상 주변 공산권 국가에서 아무르표범을 데려올 수 없었기 때문에 창경원 측은 한국표범의 혈통을 절반이라도 보전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고라니 한 쌍과 꿩 20마리를 보내는 동물교류를 통해 인도 델리 동물원에서 공작 한 쌍과 암컷 인도표범을 들여왔다.[28][29]
1964년 1월 28일 창경원에 도착한 이 암컷 인도표범은 ''' '인표' '''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인표와 한표는 인표가 창경원에 도입된 지 7년이 지난 1971년 10월 20일에 합사되었고, 합사 초기에는 인표와 한표 사이에서 싸움이 있었지만 인표가 한표를 제압하는 것으로 합사에 성공하여 1년 뒤인 1972년 9월 17일에 둘 사이에서 두 마리의 교잡종 암컷 표범 자매가 태어났으나[30] 이 이후로는 인표와 한표 사이에서의 번식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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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원으로 옮겨진 한표의 이후 모습. 비만임을 확인할 수 있다.
한표는 창경원에서 11년을 살다 1973년 8월 11일. 순환기 장애로 쓰러졌고 8월 19일 새벽 4시 30분에 사망했는데, 죽기 전부터 부분적으로 구더기가 끓는 등 괴사가 일어나 가죽이 심하게 상해 골격표본만을 만들어야 했다고 하며 사망시의 체중은 87kg으로 과체중이었고, 몸길이는 87cm에 어깨 높이는 69cm, 가슴둘레는 95cm였으며 꼬리길이는 측정되지 않았다고 한다.[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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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서울대공원의 소식지에 실린 한표와 인표 사이에서 태어난 교잡종 표범에 대한 내용. 다만 1980년대에 한국의 표범에 대해 조사한 엔도 키미오의 기록 및 오창영 창경원 수의관의 기록과는 태어난 일자가 다르게 기재되어있다.
인표는 그 후 9월 17일 암새끼 2마리를 순산했다, 한인(韓印)각 50%의 혼혈표범은 커가며 겉모습이 거의 아비를 닮아갔다. 이 자매는 서울대공원에 와서도 사뭇 늠름하더니 작년(1989년) 11월에 한놈이 죽고 지금은 일곱 살인[32]
동생만이 건재하다.
- '''오창영 에세이② 동물의 사랑학''' p. 67
한표의 사망 이후 창경원에서는 인표와 한표의 딸 자매들을 번식시킬 목적으로 1977년에 수컷 인도표범을 추가로 도입해 합사했으나 이 자매들은 번식하지 않았다. 이후 인표는 1981년에 사망했으며 인표와 한표의 딸들은 창경원의 서울대공원 이전 시점까지 생존해 서울동물원으로 인계되어 사육되다 1989년 11월에 둘 중 하나가 죽었고,[33][34][35] 다른 하나도 1990년에 서울동물원의 연도별 동물수용목록에서 사라진다.[36]조선 표범 사망 후, 혼혈로 태어난 표범에게 수컷 인도 표범을 들였지만 교미를 하지 않았다. 지금은 혼혈 암컷 한 마리만 살아 있다.
"그 암컷에게도 조선 표범의 특징이 잘 남아 있습니다."
오 부장이 표범 우리까지 안내해 주었다. 인도 표범과의 혼혈임에도 당당한 풍채의 표범이었다. 혀연 송곳니를 드러낸 모습은 도저히 생포할 수 있는 크기의 표범이 아니었다.
-'''한국의 마지막 표범''' p. 111
4.4. 한표의 포획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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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합천군 가야산에서 포획된 표범.
오도산에서 한표가 포획되어 창경원으로 보내진 뒤인 1963년 3월 23일, 합천군의 가야산에서 또다른 표범이 포획되었다. 당대 신문기사 등에서는 대전리 주민 황수룡(당시 38세)이 자신의 진돗개를 잡아먹은 표범을 쫓아 포획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황수룡의 동생인 황정길이 포획했다고 하는[37] 이 표범은 산채로 포획된 한표와는 달리 돌에 맞아 죽임을 당하였고, 그 시체도 대구의 한약재상에 팔린 뒤 해체되어 부위별로 팔려나갔다고 한다.[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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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군 묘산면 산제리 가야마을에서 암표범이 포획되었다는 내용의 동아일보 1963년 11월 13일 자 기사.
가야산에서 표범이 죽임을 당한지 8개월 뒤인 11월 10일, 이전에 한표가 포획되어 창경원으로 보내졌던 합천군 오도산에서 주민 김칠리(당시 51세)가 설치한 올무에 다시 한번 표범이 잡혔다. 포획된 표범은 2m, 무게 15관(56kg에 해당)짜리 성체 암표범이었는데, 이 표범은 10시간 넘게 몸부림치다 죽었다고 하며 이 암표범이 이전에 오도산에서 포획된 한표의 어미일지 모른다는 주장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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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군에서 수표범이 잡혔다는 내용의 경향신문 1970년 3월 6일 자 기사.
이후 경향신문 1970년 3월 6일 자 기사에서 함안 여항산에서 수표범이 포획되었다는 기사를 마지막으로, 더이상의 남한 내 야생 표범 발견은 없었다.
4.5. 현재
1970년 함안에서 수표범이 포획된 이후 남한 내에서 더이상의 공식적인 야생표범 발견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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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개마고원 와갈봉에서 촬영되었다는 표범.
북한의 표범 개체와 관련해서는 2004년 MBC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 한국표범을 통해 1999년 개마고원 와갈봉에서 촬영하였다는 표범의 영상이 공개되었으나[39] 이 이후로는 북한 지역의 표범에 대한 정보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북한 지역의 표범에 대한 외부 전문가들의 발언으로는 2016년 10월 러시아 국영 통신사 리아 노브스티아(RIA Novosti)의 표범의 땅 국립공원장 '''타티아나 바라노브스카야'''(Tatyana Baranovskaya)와의 인터뷰에서 바라노브스카야 원장은 2005년 북한에서 표범의 흔적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바 있다고 발언하였으며,[40][41] 2016년 한겨레의 표범의 땅 국립공원 타티아나 바라노브스카야 원장, '''옐레나 살마노바'''(Elena Salmanova) 과학국장과의 인터뷰 보도에서 살마노바 국장은 2013년 러시아에서 중국을 거쳐 북한으로 이동한 표범의 발자국을 발견하였다고 발언했고.[42] 2020년 6월 5일 연합뉴스의 표범의 땅 국립공원장 '''빅토르 바르듀크'''(Victor Bardyuk)와의 인터뷰에서 바르듀크 원장은 본 문서 상단에서 전술한 암표범 '''Leo101F'''의 사례를 들어 북한 북부 지역에 아무르표범이 서식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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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원주시에서 발견된 표범의 것으로 추정되는 발자국. 그러나 수달의 것이라는 주장도 있었고, 현재 이 발자국의 정체는 불확실해졌다.[44]
남한에서 표범의 것으로 추정되는 발자국 등, 표범의 흔적으로 보이는 것들이 때때로 발견되기도 하였으나 사진이나 시체같은 결정적인 증거는 나오지 않았기에 아무르표범의 남한 내 개체군은 멸종된 것으로 파악되고있지만 아직까지도 표범이 남아있을 것이라는 주장과 목격담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5. 국내에서의 상황
러시아 정부가 라조브스키 자연보호구(Lazovsky State Nature)에 아무르표범 재도입을 결정한 것에 영향을 받아 환경부에서 2차 멸종위기종 복원에 표범도 포함시켜 강원도의 비무장지대 일대인 백석산과 백암산 일대를 가장 유력한 후보지로 꼽아 검토한 바가 있다. 해당 지역은 군사적 제약으로 출입이 통제되어 밀렵 등을 피할 수 있고 산양, 고라니, 노루 등 대형 육식동물의 먹이가 될 수 있는 여러 야생동물이 자생하고 있기 때문에 적절한 개체수만 확보된다면 성공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일부에서는 반달가슴곰 복원 사업처럼 한국표범 복원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것을 주장하기도 하나, 전세계적으로도 아무르표범의 숫자는 대단히 적은 동시에 남한 내에서는 대형 육식 동물이 안전하게 생존할 수 있는 환경 면적이 좁고 위험한 맹수 방사에 비판적인 시각이 크기 때문에 남한내에서의 복원사업은 어려울 것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호랑이와 표범 등에 관련해 국내에서 가장 활발한 연구를 진행해 온 단체인 (사)한국범보전기금 또한 호랑이, 표범 등의 사육 개체를 남한내에 인위적으로 방생하는 방식을 통한 중대형 맹수류의 인위적인 복원에 회의적인 입장으로 표범의 남한 내 재도입 가능성이 불가하지는 않다고 여기고 있으나[45] 실질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관련 사업은 없다.
국내의 동물원에서는 2002년 대전 오월드가 '''히로시마 아사동물공원'''(広島市安佐動物公園)에서,[46] 2005년 서울동물원이 하얼빈의 동물원에서[47] 아무르표범을 도입해 전시하는 등 해외 동물원을 통해 도입되어 아무르표범으로 전시된 표범들이 존재했으나 서울동물원의 개체들 대다수는 혈통이 불분명하거나 아무르표범이 아닌 '''북중국표범'''(''P. p. japonensis'')인 것으로 확인되었으며,[48] 이에 서울동물원은 2014년부터 2015년까지 진행한 표범사 개장 공사 후 기존에 아무르표범으로 전시한 하얼빈 출신의 표범들과 그 2세 개체들에 대한 안내판을 모두 북중국표범인 것으로 수정하여 전시하였다.
2016년 11월 1일 환경부 산하 국립생물자원관에서 아무르표범의 게놈 지도가 해독되었음을 발표했다. 표준 게놈지도 제작에 사용된 샘플은 대전 오월드에서 2012년에 폐사한 히로시마 아사동물공원 출신의 암표범 '매화'의 근육 조직이며, 추가로 야생 아무르표범 혈액 샘플과의 대조 과정을 거친 것으로 보도되었다.[49] 매화는 2003년 대전 오월드 개장 당시 히로시마 아사동물공원에서 남매 관계인 수컷 강산과 들여져 온 개체로, 강산과 매화는 아무르표범 국제 혈통대장에 각기 522번, 523번으로 등록되어 있으나 직계 조상 중 하나가 북중국표범인 개체들이다.[50]
국내 동물원 중 순혈 아무르표범의 확보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서울동물원은 2017년 5월 아무르표범 호랑이 연합(ALTA)과의 협의를 통해 유럽 내지는 러시아의 동물원을 통한 아무르표범의 도입을 추진하였고,[51] 2018년 5월 '''노보시비르스크 동물원'''(Новосибирский Зоопарк) 출신의 형제 관계인 수컷 2개체를 도입하여[52] 각각 '레오'와 '로드'라는 이름으로 명명. 2018년 10월 말부터 표범사에서 해당 개체들을 공개 전시하였다.
2020년, 아무르표범의 복원을 위해 환경부 산하 국립생태원은 22일 러시아 천연자원환경부 소속기관 '표범의땅 국립공원'과 협력하기로 했다.#
6. 참고 문헌
6.1. 서적
- 오창영 저. 『오창영 動物記』(오창영 동물기), 창조사(創造社). 1972년 4월 5일.
- 오창영 저. 『오창영 에세이2 동물의 사랑학』, 스포츠서울.
- 오창영 저. 『韓國動物園八十年史 昌慶苑編』(한국동물원80년사 창경원편), 서울특별시. 1993년 2월.
- 오창영 저. 『韓國動物園八十年史 서울大公園 全國動物園·水族館編』(한국동물원80년사 서울대공원 전국동물원·수족관편), 서울특별시. 1996년 2월.
- 엔도 키미오(遠藤公男) 저. 이은옥 역. 『한국 호랑이는 왜 사라졌는가?』, 이담북스. 초판. 2009년 12월 21일.
- 엔도 키미오 저. 이은옥·정유진 역. 『한국의 마지막 표범』, 이담북스. 초판. 2014년 1월 3일.
- 박수용 저. 『시베리아의 위대한 영혼』, 김영사. 1판 5쇄. 2014년 6월 27일.
- 야마모토 타다사부로 저. 이은옥 역. 이항·엔도 키미오·이은옥·김동진 해제. 『정호기』, 에이도스. 초판 2쇄. 2015년 11월 25일.
- 김동진 저. 『조선의 생태환경사』, 푸른역사. 초판 4쇄. 2017년 10월 17일.
6.2. 논문 자료
- 양하이타오(Haitao Yang), 더우하이룽(Hailong Dou), 라지 쿠마 바니야(Raj Kumar Baniya), 한쓰위(Siyu Han), 관위(Yu Guan), 셰빙(Bing Xie), 자오궈징(Guojing Zhao), 왕톈밍(Tianming Wang), 머우푸(Pu Mou), 펑리민(Limin Feng), 거젠핑(Jianping Ge). 『Seasonal food habits and prey selection of Amur tigers and Amur leopards in Northeast China』 2018년 5월 게재
6.3. 기타
- 아무르표범 호랑이 연합(Amur Leopard and Tiger Alliance/ALTA) 홈페이지.(현 Wildcat conservation alliance)
- 표범의 땅 국립공원(Земля леопарда) 홈페이지.
- 피닉스기금(Phoenix Fund/Фонд «Феникс») 홈페이지.
- (사)한국범보전기금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