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냉장고

 

1. 개요
2. 탄생
3. 제목의 유래
4. 초창기
5. 중반기
6. 그 후
7. 그 외


1. 개요


  • 방영: 1996년 11월 3일 ~ 1998년 12월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코너 '이경규가 간다'에서 주던 상품이자 동명의 코너 제목으로 일밤을 위기에서 건져낸 구원투수 코너며 몰래카메라의 공익 버전이라고도 할 수 있다. 또한 대한민국 사회 분위기를 바꾸는데 일조한 전설적인 예능 프로그램이며 김국진 독주 체제를 저지하고 이경규가 대상을 받을 수 있었던 계기가 된 프로그램이다.
이 코너에서 이경규와 같이 진행했던 사람들은 민용태 교수[1], 민병철 선생[2], 축구 해설위원 신문선[3], 강지원 검사[4] 등이 있었다.

2. 탄생


당시 일밤은 위기상황이었다. 고작 3사 채널로만 비교하던 시청률에서 일요 프라임타임 때 시청률 2%밖에 안 나오는 등 애국가 시청률급의 폭망기였고, 당시 시청률이 40%대였던 KBS2 초인기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슈퍼 선데이'의 꼭지 '금촌댁네 사람들'을 따라갈 수 없었다.
이에 대항하기 위해 일밤 제작진은 머리를 싸매고 회의를 했으나 3달 가까이 되도록 뾰족한 수가 나지 않았고, 여느 때처럼 별 소득없이 끝난 회의를 마치고 늦은 새벽 4시 집으로 돌아가던 김영희 PD는 그날 따라 유난히 신호등이 눈에 들어왔었다고 한다. 그래서 평소같으면 서지 않던 새벽 4시 신호등 걸린 횡단보도를 지나다 깜빡거리는 녹색 신호가 보이자 본인 曰 평소같았으면 그냥 뛰어 건넜겠지만 정말, 별 이유없이 그냥 기다렸다 건넜다고 한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이를 떠올려보니, '''기분이 너무 좋아졌다고.''' 그리고 순간 이거다! 라고 유레카를 외치고 법규준수에 대한 포맷을 결정했다고 한다.
이 코너의 대성공으로 몰래카메라 종료 후 영화 복수혈전을 시원하게 말아먹고 일밤도 약빨이 떨어지면서 당시 2%라고 놀림받던 일밤 MC 이경규가 MBC 대표 MC로써 입지를 확실하게 굳히게 된다. 거기다, 이 방송 덕에 도로 위의 양심으로 거듭나면서 방송 외에 교양 강연들을 하면서 그동안 쌓여있던 이경규 원래의 비호감 이미지를 한번에 싹 씻어내는데 성공, 이후 대단한 도전의 연타석 히트로 제2의 전성기 겸 대한민국 대표 MC자리에 다시 서게 된다.

3. 제목의 유래


이 때 제목이 왜 '냉장고'인가 하는 의견도 분분했는데 그 때 이미 냉장고가 없는 집은 찾아보기 힘들었고 크고 아름다운 냉장고가 부담스러워 기증하거나 팔아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양심냉장고를 받은 사람들을 찾아가는 특집에서는 냉장고를 처리하는 여러 사례가 발견되었다.
한창 정보화 시대가 거론되던 분위기였음을 고려해보면 '양심컴퓨터' 같은 게 오히려 좋지 않았을까 하는 의견도 있지만, 지금이야 정보산업의 발달로 인해 컴퓨터가 거의 생필품화되었지만 당시의 시대상을 말하자면 486이 아직 현역으로 뛰고 있었고 펜티엄 1, 혹은 MMX 급에 다이얼업 모뎀으로 PC통신을 하던 때였다. 참고로 양심냉장고가 종영된 직후인 1999년에 국민PC가 출시됐다. 그 이후에 컴퓨터 보급률이 폭발적으로 상승한 것.
냉장고야 생필품이니 다 가지고 있더라도, 만약 당첨자가 당장 생계가 어려운 사람이라면 필수품도 아닌 컴퓨터를 주는 건 모양새도 이상하고 줘 봤자 마찬가지로 팔아넘길 물품일 뿐이니 이러니저러니 해도 현금 줄 게 아니라면 주기 시작한 냉장고 바꾸기도 애매했을 듯.
PD 이경규가 간다에서 밝히기로는 처음에 김영희 PD는 텔레비전 박스를 들고 왔는데, 큰 걸 줘야 그림이 산다는 지론으로 냉장고 박스로 바꾸게 했고, '''우리의 양심을 보관해야 한다.'''라는 의미도 넣어서 선정했다고 한다.

4. 초창기


교통단속이 없고 신호에 무관심할만한 야심한 시간대를 골라 임의의 도로에 잠복하고 있다가 안전선 지키기/안전 속도 주행 등 운전면허 교육이나 실생활에서 자주 듣게 되는 기본적인 교통 안전 규칙을 지키는 차량에 대해서 상품으로 냉장고 한 대를 주는 기획이었다.
첫 방송 이전만 해도 PD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했고, 첫 촬영 때 예상처럼 밤중에 인적이 뜸한 도로에 대부분의 차들이 적신호를 무시하고 지나갔다. 그러다 촬영 중 김영희 PD가 잠시 다른데 간 사이 이경규와 민용태 교수가 자기네들끼리 클로징 멘트를 치고 판을 접으려고까지 했다.
겨우 두 사람과 제작진을 진정시키고 조금 더 기다리던 이 때 새벽도 다 지나갈 새벽 4시 13분 때쯤 대우 티코 한 대가 남들은 다 지나가던 횡단보도 앞에 일단정지해 정지신호와 정지선을 지켰고[5], 이에 촬영진은 감격에 겨워서 그 차를 찾아갔다. 그리고 이 차에서 창문을 내린 사람은 '''장애인 부부였다.''' 이때 김영희 PD는 말을 제대로 못 하기에 순간적으로 음주운전자인 줄 알고 망했다고 생각했다고 무릎팍 도사에서 얘기했을 정도. 이때 이경규는 장애인 부부에게 '''"왜 신호를 지키셨나요?"'''라고 대한민국 방송 프로그램 역사에 영원히 길이 남을 질문을 날렸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지체장애인 남편이 남긴 말은 '''"내...가...늘...지켜요."'''. #1 #2 MBC 공식 요약 아카이브 해당 방송분은 7차 교육과정초등학교 6학년 생활의 길잡이 교과서에도 수록되었다.
이 첫 방송 직후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면서 각종 언론에 대서특필되었고 우리 사회의 기본적인 공중도덕과 질서,법규에 대한 무관심을 깨치는 계기가 되었으며 다시 보고 싶다는 시청자들의 빗발치는 요구로 바로 다음주 일밤 정규방송 시간에 '''방송 역사상 전무후무한 前주 1회 방송이 그대로 재방영되었다.'''[6] 이후 양심냉장고는 큰 호응을 얻었고, 지금도 이 코너는 공익적인 예능의 전설로 기억되고 있다. 이 방송을 시작으로 시청자들이 '예능프로에서도 얼마든지 사회공익적 내용을 다룰 수 있다.', '재미와 감동 2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다'는 인식을 하게 되었다. 이후 이경규가 간다를 연출한 김영희PD는 '느낌표', '아시아 아시아' 등의 공익예능 붐을 일으키게 되었고 MBC는 몇 년간 김영희 PD표 공익예능에 주력했으며 이 공익 예능의 흐름은 무한도전의 일부 에피소드로 이어지게 되었다.
정지선 지키기 운동의 일환으로 1997년 1월 26일에는 일본으로 가서 실태를 확인했다. 과연 일본은 정지선을 잘 지키나 보러 갔는데 놀랍게도 촬영 시간 동안 '''단 한 대도 정지선과 신호를 위반하지 않아''' 전 국민을 멘붕에 빠뜨렸다. 심지어 한국보다 더 과격한 오토바이 폭주족조차도 정지선을 지켰으며, 크레인 차량은 차 앞으로 돌출한 크레인 붐대 길이까지 고려해서 충분한 공간을 두고 정지하는 개념찬 모습을 보였다. 당황한 제작진은 계속 지켜봤는데 오는 족족 모든 차량이 정지선을 지켜버려서 정지선을 안 지키는 일본인에게 냉장고를 줘야 되는게 아니냐며 자조 섞인 농담을 했다. 추가로 일본편에서 제작진이 정지선을 지킨 한 일본인 택시기사와 긴급 인터뷰를 했는데 당연히 지켜야 할 것을 지킨 것뿐이라고 말해 감탄을 자아내기도...
프로그램 전반에서 교통법규를 지키지 않는 차량들의 번호판이나 운전자는 대체로 모자이크 처리했던것으로 보인다. 물론 냉장고 수상자의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를 하지 않았다. 차 번호판의 경우는 불명.

5. 중반기


예를 들면 4차로 도로에서 촬영을 할 경우 4차로의 모든 차로의 차량이 정지선을 지켜야 냉장고를 주는 형식이어서 남이 안지키면 냉장고를 받을 수 없었다. 얼마동안 같은 패턴으로 하다가 ''''다음 촬영은 어디어디에서 하겠습니다''''라고 장소를 미리 밝히고 이벤트(?)를 벌이자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알고 촬영날에 팀을 짜서 정지선을 지키며 냉장고를 받으려고 했다. 팀(?)이 아닌 사람이 정지선을 지키지 않자 차에서 내려서 뒤로 가라고 밀어내는 등 냉장고를 타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걸 방송에 그냥 내보냈다. 그야말로 '''지나치게 위선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심지어 저랬음에도 불구하고 '''당첨자가 없었다.''' 가끔 촬영 장소를 뱅뱅 돌아서 계속 시도하다가 타는 경우도 있는데 한번 민망하고 냉장고를 타면 그만이라는 식이었다.
무려 14차선 도로였던 영동대로에서 시도를 한적이 있었다. 이건 정말 어렵다. 엉뚱하게도 FedEx 배달 차량을 냉장고를 노리고 왔다갔다하는 차라고 오해하여 웃음거리로 만들었다가 나중에 정정 방송을 내보냈적도 있다. 종료시간에 가까운 오후 6시 정도가 되자 퇴근한 직장인들이 사전모의후 팀플레이를 하는 장면까지 나오는 우스운 상황까지 나왔다.
결국 다음 주에 같은 장소에서 한번 더 하기로 했는데 비난을 의식했는지 성공하더라도 양심 냉장고를 그들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불우 이웃들에게 준다는 취지로 바뀌었으며 다수의 아저씨들이 연합해서 신호는 지켰으나 결국 실패한 뒤로 촬영을 미리 알리는 컨셉은 사라지게 되었다. 당시 전국의 주요 광역시들을 순회하며 정지선 지키기 촬영을 했으며 어째서인지 주요 광역시 중 유일하게 대구광역시에서만은 촬영되지 않았다.
어떤 화는 분당내곡간도시고속화도로에서 안전 속도를 지킨 운전자에게 양심 냉장고를 주는 내용으로 진행했을 때[7] 당시 방송 지원을 하던 경찰[8]이 정지신호를 보냈는데 그 차가 '''단속인줄 알고 과속으로 도망치는''' 바람에(...) 결국 냉장고를 주지 못했던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반면 제주도에 가서 촬영한 어떤 화에서는 당첨자인 트럭 운전사가 이경규를 보고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에에에?? 아니 어떻게..."하고 놀라는 모습이 나오기도 했다. 반응을 보아하니 양심냉장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아저씨인듯 했지만 이경규가 거기 나타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고 자신이 그 주인공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했을테니...
그 외에도 교통 법규 뿐만 아니라 다른 주제로 양심 냉장고 당첨자를 선정한 적도 있다. 예를 들면 넘어져 있는 공용 철제 쓰레기통 근처에서 잠복하고 있다가 그걸 세우는 사람이 나타나면 냉장고를 선물하기로 하는 등. 당첨자가 없을 것이라는 의견이 대세였지만 정말로 쓰레기통을 세운 사람이 나타났다.
1998년경(?) 방영 당시에는 영등포역에서 어르신 짐 들어 드리기 편에서는 제작진이 철수하기 5분 전에 휴가 나와 마산시의 집으로 가던 대한민국 해병대 상병(해병신병 774기) 권태길 해병이 짐을 들어줘 복귀하자마자 다시 포상 휴가를 받았다.당시 영상[9] 이 해병은 도와드린 중년 부인께 냉장고를 양보했다가 부인 이 사양하자, 이경규의 권유로 부대에 기증했다고 한다. 해병대 갤러리 카더라에 의하면 무려 1달 포상을 나갔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것이 당시 해병대 이미지에 좋은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신병 교육시에 교육용 비디오로 자주 틀어준다.

어르신 짐 들어 드리기 에피소드에서 한 여대생이 당첨되었을 때 그 여대생은 많이 당황해하면서 다시는 이런 일로 상 받지 않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소감을 말해 주변을 훈훈하게 했다.
이외에도 청소년보호법이 발효되어 국민적 홍보차원으로 청소년 유해매체 및 주류, 담배 팔지 않기 등의 캠페인도 시도했으며 이 가게에는 양심냉장고와 함께 '양심가게'라는 하트 모양의 간판도 같이 증정하면서 사회 분위기를 바꾸는데 크게 일조했다. 그 때 당시만 하더라도 편의점에서 청소년들의 민증 검사를 전혀 하지 않았으며 지금처럼 청소년들이 술을 사는 것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던 사회 분위기였다.
여담이지만 미국까지 날라가서 미국의 마트나 편의점에서는 청소년에게 주류 및 담배를 팔지 않는지 직접 실험을 했더니 당연히 팔지 않았고 신분증 검사도 철저하게 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며 당시 신인가수로 한창 주목을 받던 남성 가수를 특별 게스트로 초대해 실험을 한 바 있다.

6. 그 후


그 뒤 매번 같은 패턴이 반복되면서 점점 인기가 떨어졌고, 설치된 카메라가 발각되어 똑같은 자동차가 정지선에 멈추는 일이 계속해서 벌어지는 등 프로그램 원래의 목적마저 잃어버리게 되면서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래도 이 방송 이후로 전국적으로 교통법규를 준수하자는 분위기가 생겨났고, 지금도 교통법규와 관련한 신문기사 등에서 양심냉장고 이야기가 가끔 등장하고 있다. MBC에서도 전국적인 임팩트를 주었다는 것만큼은 인정한 모양인지, 그 이후로도 '양심○○ 시리즈'를 필두로 한 '공익 버라이어티'에 꾸준히 투자하게 되었으며 MBC의 거의 모든 공익 버라이어티에는 당시 책임PD였던 '쌀집아저씨' 김영희PD가 관여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유명해진 시민으로는 교통 법규를 무시하는 운전자들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는 임꺽정과[10] 학교 안 가고 오락실 가는 초등학생 등이 있었다.
의도는 나름대로 좋았지만 이 프로그램으로 인한 준법고취 효과는 안타깝게도 거의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애초에 '누군가 감시하기 때문에 준법을 한다.'라거나 '눈에 띄는 보상이 있기 때문에 준법을 한다'는 것은 감시자와 포상자가 사라졌을 때 효과는 원점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 지금도 출퇴근시간에 사거리로 나가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꼬리물기가 당연하게 반복되고 있으며, 횡단보도에서 사람이 치여 숨지는 사고는 현재진행형이다.
이런 현상은 신고 포상금 제도 하에서의 전문 신고꾼(파파라치)에게도 찾아볼 수 있는데 화장실 갈 적 마음 다르고 올 적 마음 다르다고 예산이 포상금으로 풀리면 위반사항을 매의 눈으로 찾아다니며 포상금을 타먹다가도 포상금으로 받을 예산이 전부 소진되어 신고의 의미(돈벌이를 노리는 전문 신고꾼 입장에서)가 사라지면 그 투철한 신고정신은 어디다 팔아 먹었는지 웬만한 위반사항이 뚜렷이 보여도 나몰라라 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해서 김영희 PD는 "우리는 사회운동가가 아니라 방송인이기 때문에, 의식을 고취시키는 것으로 족하다. 그 다음은 사회에서 나서야 할 일."이라고 밝힌 바 있다.
참고로 자동차에 대한 법규를 매우 엄격하게 단속하는 미국의 경우, 한밤중 인적이 뜸한 도로라고 해도 적신호를 무시했다가는 어디선가 다가온 경찰에 의해 수백 달러의 벌금 크리를 먹게 된다. 그 예로 아메리칸 트럭 시뮬레이터 하다가 보면 홍길동처럼 나타난 경찰에게 1250달러 뜯긴다. 적신호는 물론 보통 한국에서는 가볍게 무시당하는 "일단정지" 표지 역시 지키지 않고 지나가다가 걸리면 수백 달러가 왔다갔다하기 때문에 한밤중이라고 해서 법규를 무시하는 차를 오히려 찾기 어렵다. 미국인들에게는 이게 어릴 때부터 몸에 밴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미국에 오래 살았던 교포에게는 양심 냉장고라는 것이 매우 생뚱맞은 주제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우리나라의 법규준수율과 준법의식이 얼마나 미비했는지를 보여주는 부끄러운 이야기.
그래도 정지선 지키기 하나는 이 방송 이후로 상당히 개선됐고 방송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준수율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아예 효과가 없던 것은 아니며 오히려 빠른 경제성장으로 인해 경제에 비해 다소 많이 모자랐던 시민의식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한 것이 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의의라고 할 수 있다.

7. 그 외


최초로 양심냉장고를 수상했던 장애인 운전자인 이종익은 개인사업을 했지만 장애인에 대한 비하적 시선으로 인해 생활고에 시달렸고 이후 한국뇌성마비복지회 직업재활센터에서 일하면서 장애인복지/고용 홍보 모델 등을 하며 살았으며, 2015년 2월 10일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 이종익씨는 딸이 없고 아들이 2이라는 인터뷰 있음 #
한번은 '이경규 특집'으로 정작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이경규는 법규를 잘 지킬까를 알아보기 위해 출근하는 이경규의 차량을 몰래 뒤쫓은 것을 방송한 적이 있다. 제작진이 지켜본 결과, 그 날 이경규는 차선과 정지신호는 완벽히 지켰으나 좌우회전 시에 깜박이를 켜지 않는 애매한 양심을 보여주었다. 훗날 이경규 曰 "이 프로때문에 하루아침에 졸지에 내가 '이 시대의 살아있는 양심'의 아이콘이 됐다. 무슨 행동을 하더라도 남 눈치보고 행동하게 되었다. " 라고 밝혔다. 근데 본인도 사람인지라 한두번은 위반을 한 적이 있으며 참고로 위반 때문에 경찰에게 걸렸을 때 뒷좌석에 숨기까지 했다고.
그 뒤 가족의 품격 풀하우스에서는 양심냉장고 시절 때 광고를 찍을 때 이경규는 이 때 '양심'이란 단어가 들어가서 관계자들에게 '양심'이란 말을 빼라고 했는데, '난 도로 위 양심'이라며 양심을 팔고 싶지 않아서 광고를 안 찍고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했다.
2016년 10월 19일에는 MBC 에브리원 '이경규가 간다'에서 양심 냉장고 형식을 다시 부활했다. 촬영 장소는 20년 전 새벽 정지선을 지켜 많은 감동을 준 장애인 부부를 만났던 도로에서 진행했으며, 그러다가 새벽에 정지선을 제대로 지킨 차량을 발견했지만 뒤늦게 쫓는 바람에 차를 놓쳤다. 그러다가 며칠 후 다시 찾은 도로 위에서 정지선을 지킨 차량에게 냉장고를 선물했으며 그 사람은 20년 전 양심 냉장고를 본 이후로 정지선을 잘 지키게 되었다는 소감을 전했다.
포가튼 사가엔 이를 패러디한 '''양심갑옷''' 이벤트가 있으며 산적 소굴의 어떤 방에서 상자를 안 열고 기다리면 얻을 수 있다. 다만, 이걸 얻고 상자를 다시 열려고 하면 패스맨이 다시 포풍처럼 등장해, '''양심갑옷은 물론이요, 모든 아이템을 가져가고 레벨도 초기화시켜버리며 그 방에서 나갈 수도 없게 된다.''' 한마디로 망했어요. 사실 상자를 열어서 얻는 아이템들은 별로 좋은 것도, 비싼 것도 아니라서 손도 대지말고 양심갑옷을 얻는게 훨씬 더 좋다. 성능이 여러 모로 좋기 때문이다. [11]

[1] 양심냉장고 초창기 이경규의 파트너 겸 보조MC. 예능 성격이 그렇다보니 이 사람이 다들 교통안전이나 윤리에 관련된 전공 교수로 알고 있던 사람이 많았지만, 실제 민용태 교수의 전공은 스페인어로 돈키호테 완역판의 번역을 맡기도 한 한국 스페인어 학계에선 스타급 교수였다. 한국외대 스페인어과를 나와 방송 당시는 고려대학교 교수였다. 현재 스페인 한림원의 종신위원이기도 하다. 프로그램이 윤리에 대해 다루니 저명한 교수는 데려와야겠는데 인문계 교수 중에 방송 뛸 만한 사람 찾다보니 이렇게 된 걸지도?[2]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서 뛰고 있던 박찬호를 만나기 위해 보조MC로 나오다 민용태 교수가 하차한 뒤에 본격적으로 보조MC로 활동했다. 지금은 아나운서 이혜승의 시아버지로 더 유명하다.[3] 당시엔 MBC 전속이었다.[4] 일밤 출연 당시 청소년보호위원회 초대 위원장으로 활동, 같은 시기 제정된 청소년보호법의 홍보를 위해 출연하였다. 참고로 이 인물의 아내가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법'을 발의한 김영란 前 대법관.[5] 사실 보도에 약간 걸친 상태라서 정확하진 않았으나 당시는 정지선 준수보다는 야간에 빨간신호 준수에 맞춰졌던지라... [6] 다만 이는 다음 아이템으로 기획된 '학교 주변의 진입금지 표지판 지키기'의 주인공을 찾지 못한데 따른 대체 방송의 성격도 있었다. #[7] 해당 문서에 설명되어 있듯, 분당내곡로는 내곡동-분당 방면으로 내리막길이다보니 예나 지금이나 야간에 과속을 일삼는 차량들이 자주 보이는 구간으로 악명 높다.[8] 당시 차량을 정차시키는 일은 경찰의 도움을 받아 이루어졌다. 때문에 방송에서 냉장고의 주인공과 인터뷰하는 장면에서 중간중간 경찰의 모습이 카메라에 들어오는 일도 있었다.[9] 당시 해병대원들에게는 코트가 개인피복으로 지급되지 않아서, 자신에게 맞는 코트가 부족한 경우 근무복 위에 야전상의를 입고 나가기도 했다.[10] 아저씨와 할아버지 버전이 있었다.[11] 스탯 자체는 평범한 플레이드 메일 수준이지만, 돈주고 살 수도 없고 무엇보다도 '''모든 직업이 장착할 수 있다.''' 플레이트 메일을 장착할 수 없는 직업(특히 근접전을 할 수 밖에 없는 싸울아비)에게 상당히 메리트있는 아이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