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테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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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어: Teresa de Cepeda y Ahumada
영어: Teresa of Ávila

“묵상기도란 자기가 하느님에게서 사랑 받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 그 하느님과 단 둘이서 자주 이야기하면서 사귀는 친밀한 우정의 나눔이다.” ( 자서전 8, 5 )

1. 개요
2. 어린 시절과 가르멜 수녀원 입회
3. 가르멜 수도회 제2의 창립자
4. 선종과 시성
5. 기도의 스승
6. 신비 체험
7. 예수의 테레사와 십자가의 요한
8. 관련 작품


1. 개요


16세기에 활동했던 스페인천주교 여성 수도자(수녀), 성인. 가르멜 수도회의 개혁자이자 제2의 창립자. 스페인의 수호성인. 축일은 10월 15일.
수도명은 '예수의 테레사'(Teresa de Jesús)이지만 지역명을 붙여 아빌라의 테레사(Teresa de Ávila)라고도 불린다. 동명의 수녀들(예: 마더 테레사, 소화 데레사)과 구별하기 위해 '대(大) 테레사'라는 호칭으로도 쓰인다.

2. 어린 시절과 가르멜 수녀원 입회


1515년 3월 28일 스페인 카스티야의 아빌라에서 출생했다. 이름에 '아빌라'가 붙은 것도 고향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데레사의 출생지인 아빌라는 지금도 천주교 순례지로 각광받고 있으며, 그녀의 생가를 개조해서 세워진 기념 성당도 있다. 특히 데레사의 탄생 500주년을 맞은 2015년에 국내외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테레사의 가족은 유태인 출신에서 천주교로 개종한 귀족 집안이었고, 가족 모두가 신심이 깊었다. 테레사 자신도 어린 시절부터 순교자들의 전기를 읽으면서 자신도 순교자가 되겠다는 마음에 오빠와 함께 무어인 지방으로 가겠다며 가출(…)을 시도하다가 아빌로를 벗어나는 길목에서 숙부에게 붙잡힌 바 있다.[1] 12살의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자, 성모상 앞에서 "성모님이 이제 제 어머니가 되어주세요"라는 기도를 올리기도 했다.
14세에 아우구스티노회 수녀원에서 6년 동안 요양 겸 교육을 받았는데, 이때의 경험을 계기로 수녀가 되겠다는 결심을 굳힌다. 그리하여 19세의 나이에 가르멜 수녀원에 입회했다.

3. 가르멜 수도회 제2의 창립자


가르멜 수도회의 명칭은 구약성경의 예언자 엘리야바알을 섬기는 사제들과 공개 대결을 벌인 이스라엘 가르멜 산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가르멜 수도회(수녀회 포함)는 본래 십자군 원정 당시에 예루살렘의 가르멜 산에서 개별적으로 활동하던 수도자들이 모여서 엘리야를 계승한다는 취지에서 설립된 것이며, 뚜렷한 창설자도 전해지지 않는다.
이처럼 가르멜 수도회는 유서깊은 수도회였으나, 테레사가 입회하던 당시에는 지나치게 개방되어 수도자로서의 생활과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문란해 있었고, 내부에서도 수녀들의 집안 배경, 신분 등으로 갈라지는 등 본분을 잃고서 타락한 모습들이 만연해 있었다.
연도를 보면 알겠지만, 이 시기는 면벌부로 대표되는 유럽 천주교의 타락과 이로 인한 개신교 종교개혁[2]의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던 시절이었다. 이렇게 천주교가 개신교의 도전에 직면하던 시대에, 테레사는 천주교의 내부개혁과 쇄신을 추구하는 데 앞장섰다. 역시 스페인 출신으로 테레사보다 한두 세대 앞서 예수회를 설립하며 천주교 개혁에 앞장섰던 이냐시오 데 로욜라와 비슷한 역할을 했던 셈.
테레사는 1560년대를 중심으로 가르멜 수녀원의 대대적인 개혁을 주장했고, 봉쇄 수녀원의 도입을 비롯한 규율 강화를 추구했다. 그리하여 자신의 고향인 아빌라를 시작으로 스페인 전역에 각 10여개의 남녀 수도원을 창립하였다. 이 과정에서 기존 가르멜 수녀회 내에서도 보수파, 개혁파 사이의 논쟁을 겪었지만, 테레사는 이를 이겨내며 그레고리오 13세 당시 교황으로부터 자신이 설립한 '맨발의 가르멜 수녀회' 인가를 받는 데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해준 십자가의 요한 신부의 도움이 큰 역할을 했다. 이러한 활동과 함께 《완덕의 길》, 《영적 보고》 등과 같은 여러 신학 저서를 쓰기도 했다.
그 덕분에 오늘날 천주교에서 예수의 테레사는 중세 시대의 힐데가르트 폰 빙엔, 시에나의 카타리나 등과 함께, 여성 수도자의 대모(大母)로서 존경받고 있다. 테레사 본인은 자신이 개혁자(Reformadora)로 불리길 원했으나 교회 공식문헌에서도 창립자(Fundadora)라고 불린다.
특히 맨발의 가르멜 수녀회에서 테레사는 단순한 개혁자를 넘어 '제2의 창립자'로 확고한 존경을 받는다. 그 후로 테레사에 의해 개혁된 남녀 맨발의 가르멜 수도자들이 분리되어 나왔는데, 이런 점을 고려하면, 맨발의 가르멜 수도회 입장에서는 테레사가 창립자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후 맨발의 가르멜 수녀회는 19세기 말 프랑스리지외의 테레사[3], 20세기 나치 독일의 학살로 순교한 에디트 슈타인 등을 배출한 '명문'(?) 수녀회로 활약한다.
한국에는 서울특별시, 인천광역시, 경상남도 창원시, 전라남도 나주시, 경상북도 성주군에 남자 가르멜수도원이 있고, 서울특별시, 대전광역시, 대구광역시, 경기도 광주시[4], 충청북도 충주시, 경상남도 고성군밀양시, 경상북도 상주시에 가르멜 봉쇄수녀원이 있다. 또한 봉쇄수녀원이 아닌 전교 가르멜수녀회도 있다.

아무것도 너를 슬프게 하지 말며

아무것도 너를 혼란케 하지 말지니

모든 것은 다 지나가는 것 다 지나가는 것

오 하느님은 불변하시니 인내함이 다 이기느니라

하느님을 소유한 사람은 모든 것을 소유한 것이니

하느님만으로 만족하도다

네 소원이 무어뇨 네 두려움은 무엇이뇨

네 찾는 평화는 주님께만 있으리

주님 안에 숨은 영혼이 무얼 더 원하리

오 사랑하고 사랑하여 주님께 모든 사랑 드리리

주님만을 바라는 사람은 모든 것을 차지할 것이니

하느님만으로 만족하도다

하느님만으로 만족하도다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가 쓴 시를 가사로 하여 만든 성가.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김충희 호세아 수녀 작곡) 영상에서 노래하는 이들은 가톨릭대학교/성신교정 신학생들이다.
성녀가 죽은 뒤에 성녀의 성무일도에서 발견되었다는 시이다. 원문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Nada te turbe

아무것도 너를 흔들지 못하리라

Nada te espante

아무것도 너를 놀라게 하지 않으리라

Todo se pasa

모든 것은 지나가는 것

Dios no se muda

하느님은 변치 않으시니

la paciencia

인내가

todo lo alcanza

모든 것을 얻게 하리니

quien a Dios tiene

하느님을 소유하는 이는

nada le falta

아무런 부족함 없고

sólo Dios basta

하느님만으로 충분하다[5]

이 시는 성녀가 직접 쓴 시인지 신뢰성이 의심 받고는 있지만, 그러한 논란과는 별개로 한국 가톨릭에서 성가를 통해 사랑받는 아름다운 시이다.

4. 선종과 시성


1582년 9월 여행 도중에 병으로 쓰러지고, 1개월 만인 10월 4일 “주여, 저는 거룩한 교회의 딸입니다”라는 유언을 남긴 채 선종했다. 향년 67세.
선종한 지 32년만인 1614년 시복되었고, 8년 후인 1622년 교황 그레고리오 15세에 의해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300여년 후인 1970년, 교황 바오로 6세는 그녀를 시에나의 카타리나와 함께 여성으로는 처음 교회학자로 선포했다.

5. 기도의 스승


교회 쇄신을 주도, 실현한 개혁가라는 면모 외에도, 예수의 성녀 테레사를 수식하는 표현은 '기도의 스승'이다. 즉 신자들이 너무나 쉽게 접하는 단어이지만, 막상 하라고 하면 제대로 하지 못하는 행위인 '기도'를 어떻게 하는지를 상세하게 저술하고, 이를 높은 단계까지 안내해주는 스승이라 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보아야 그녀가 왜 교회학자로 선포되어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아래에서 서술한 성녀의 신비 체험도 그녀가 '기도의 스승'이라는 면과 연결해서 본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테레사의 저서인 《천주 자비의 길》(자서전), 《영혼의 성》, 《완덕의 길》은 한국어로도 번역되어 있으니, 혹시 관심이 있다면 읽어보자.

6. 신비 체험


다음은 그녀가 수녀 생활 초창기에 경험했던 개인척 체험, 환시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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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테레사 앞에 나타난 어느 아이가 "너는 누구니?"라고 묻자, 그녀는 "난 예수의 테레사라고 해. 너는 누구지?"라고 답하였다. 이에 아이는 "나는 테레사의 예수야"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말하자면 어린 예수를 만나는 환시를 경험했던 것이다.
20대 시절 그녀는 기도 중에 갑자기 손에 불로 만든 창을 든 천사가 나타나 사정없이 그녀의 가슴을 찌르고, 그 과정에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영적 신체의 아픔을 체험했다고 한다. 이때 그녀는 심장에 성흔이 박히게 되었다. 그런데 테레사는 이때의 체험을 회상하며 "그 고통은 너무도 심하여 큰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동시에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대단한 황홀감에 빠졌고, 나는 그 고통이 계속되기를 바랄 정도로 달콤한 상념에 젖었다"라고 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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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 로렌초 베르니니, ‘성녀 데레사의 법열’, 1644년경, 이탈리아 로마, 산타 마리아 델라 비토리아 성당.
당시 아빌라의 테레사가 체험한 환시는 1644년 조각가 베르니니에 의해 "성녀 테레사의 법열(Ecstasy of St. Teresa)"이라는 작품으로 재현되었다.[6] 베르니니는 성적 오르가슴을 체험한 여성의 무아경을 통해 종교적 신비경을 표현했는데, 종교적으로 겪는 희열의 순간이 세속의 절정과 다르지 않다는 형상을 통해 베르니니는 정신과 육체, 영혼이 하나 되는 완전에 이르는 경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순간 겪는 환의의 열정이 하늘에서 쏟아지는 황금빛 햇살로 표현되어 있다. 바로 하느님과 사랑을 나누는 신비롭고 정신적인 희열을 겪는 한 여인의 정신과 마음을 간접으로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선정적이라며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지금은 산타 마리아 델라 비토리아 성당의 코르나로 가족 경당에 전시되어 있다.[7] 성적인 모티프를 통해 종교적 신비 체험을 표현한다는 게 이상하게 여겨질지도 모르지만, 성경아가, 복음서, 요한묵시록에서 하느님과 이스라엘(교회)의 관계를 신랑(新郞)과 신부(新婦)의 관계로 표현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신학적으로 매우 수준 높으면서도 동시에 성적인 모티프에서 오히려 경건함을 표현해낸 걸작이다.

7. 예수의 테레사와 십자가의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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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개혁의 조력자이자 동지였던 십자가의 요한 신부(오른쪽)와 함께
베네딕토와 성녀 스콜라스티카,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와 성녀 글라라와 비슷한 케이스로, 테레사와 세트(?)로 취급되는 성인으로는 십자가의 요한이 있다. 십자가의 요한은 테레사와 비슷하게 영성의 스승으로 이름이 높고, 교회학자이며, 가르멜 수도회 개혁이라는 사명이 있었다. 또한 둘 다 혈통상 유대인이었다. 십자가의 요한 신부는 테레사보다 27살 연하인 아들뻘의 나이였고, 테레사의 '영적 아들'이라고도 불렸을 정도로 그녀의 수녀회 개혁에 많은 도움을 주었는데, 앞선 중세 시대 천주교회 개혁에 공헌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와 그의 조력자였던 성녀 글라라의 관계가, 성별이 바뀐 양상으로 재현된 셈.

아주 간절히 청하건대 선생님께서(Francisco de Salcedo) 이 수사신부에게 말해주십시오. 그리고 이 일건(수도원 창설에 필요한 재정)을 잘 도와주십시오. 이 신부는 어린애이지만, 나는 그가 하느님의 눈으로 본다면 거인임을 이해합니다. 분명히 말해서 그는 이곳에서 우리에게 부족한 많은 것들을 해야 할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그는 우리들의 일에 있어서 매우 신중하고(분별력이 있고) 적합한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일을 위해서 우리의 주님께서 부르신 분이라고 나는 믿습니다.

-예수의 데레사, 바야돌리스에서 아빌라의 살쎄도의 프란씨스코에게 보내는 편지(1568, 12월 말?)[8]

다만 성격은 많이 달랐는데, 테레사가 능동적이고 다혈질이었다면, 십자가의 요한은 수동적이고 여성적이었다.

8. 관련 작품


교회사에 남긴 업적이 큰 만큼, 그녀가 썼거나 그녀를 다룬 저서들이 다수 존재한다. 그녀를 주인공으로 하는 종교 영상물들도 유튜브 등을 통해 찾을 수 있기는 하지만, 천주교 신자가 아니면 접하는 이는 드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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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아빌라의 테레사의 삶을 순정만화 형식으로 담은 책이 나온 바 있다. 미디어 선교활동으로 알려진 바오로딸 수녀회에서 출판했다. 아빌라의 테레사에 대해 부담 없이 살펴보고 싶은 이들에게 권할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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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성인들의 유해들과 마찬가지로 아빌라의 테레사의 유해 역시 성유물이 되었다. 이 중 스페인안달루시아에 보관 중인 왼손은, 눈치 빠른 사람은 알 수 있지만, 마블 코믹스에 등장하는 아이템 '''인피니티 건틀릿'''의 모티브가 되었다.

[1] 여기서 은근히 개그가 있다. 무어인을 만나려면 남쪽 안달루시아 방향으로 가야하는데, 엉뚱하게도 서쪽 살라망카로 가는 길목에서 붙잡힌 것이다.[2] 마르틴 루터, 장 칼뱅[3] 통칭 소화(小花) 테레사.[4] 천진암 대성당 부근[5] 원문과 번역 출처: 천주교 수원교구 방효익 바오로 신부, 《십자가의 요한 입문》, 225쪽[6] 영화 천사와 악마에도 이 성상이 나온다.[7] 참고: ##[8] 번역 출처: 방효익 신부, 《십자가의 요한 입문》, 1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