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야구/1997년

 



'''KBO 리그 역대 시즌 일람'''
1996년 시즌

'''1997년 시즌'''

1998년 시즌
'''기간'''
1997년 4월 12일 ~ 1997년 10월 25일
'''참가팀 '''
해태 타이거즈, OB 베어스, 롯데 자이언츠, 현대 유니콘스,
삼성 라이온즈, 쌍방울 레이더스, LG 트윈스, 한화 이글스 이상 8개팀.
1. 개요
2. 정규시즌 최종순위
3. 신인드래프트
4. 포스트시즌
5. 다른 시즌 보기


1. 개요


1997년에 열린 프로야구 시즌.
팀당 126경기씩 총 504 경기가 열렸다.
전년도처럼 이번에도 전문가의 예상을 뒤엎은 시즌이었는데 우승 후보로 해태 타이거즈, OB 베어스, 롯데 자이언츠가 지목되었으나 해태 빼고 다 부진했다. OB는 5위에 그쳤고, 롯데는 꼴찌를 했다.
해태 타이거즈가 2년 연속 1위를 할 수 있었던 데에는 임창용, 이대진 등의 신예들의 역할이 컸다. 또한 투수력으로 버티던 다른 해와 달리 타선도 좋은 편이었는데 이종범, 홍현우, 장성호, 김종국, 최훈재 등이 활약했다.[1]
중위권으로 예상된 LG 트윈스김용수, 임선동, 손혁, 최향남 등의 선발진과 차명석, 이상훈의 막강 불펜을 내세워 초반 1위, 최종 2위를 거두었다. 여기에 이병규, 서용빈, 심재학, 김동수, 유지현 등의 타선도 좋았다. 94년 우승 멤버가 대부분 남아있었기도 했고. 김재현이 신장염으로 1경기도 나오지 못했지만 해태에서 온 동봉철이 공백을 어느 정도 메웠고, '신데렐라'로 불렸던 2루수 신국환이 히트상품이었다.
백인천 감독의 삼성 라이온즈이승엽을 발굴해내며 암흑기를 끝내는데 성공했다. 초반에 2위권을 유지했을 무렵 어린이날 3연전에서 당시 1위였던 LG를 학살 했는데 이 때 벌어진 사건이 부정 배트 사건. 그러나 삼성 배트에는 문제가 없었다.(...)

2. 정규시즌 최종순위


'''순위'''
''''''
'''경기수'''
''''''
''''''
'''무승부'''
'''게임차'''
'''승률'''
1
해태 타이거즈
126
75
50
1
-
0.599
2
LG 트윈스
126
73
51
2
1.5
0.587
3
쌍방울 레이더스
126
71
53
2
3.5
0.571
4
삼성 라이온즈
126
66
53
7
6.0
0.552
5
OB 베어스
126
57
64
5
16.0
0.472
6
현대 유니콘스
126
51
71
4
22.5
0.421
7
한화 이글스
126
51
73
2
23.5
0.413
8
롯데 자이언츠
126
48
77
1
27.0
0.385
지난 해와 마찬가지로 4강권 팀과 그렇지 않은 팀간의 차이가 뚜렷했다. 1위 해태부터 4위 삼성까지 8.0경기 차지만 4위 삼성과 5위 OB의 경기 차가 10.0경기나 된다.
해태 타이거즈가 단일리그제 도입 이후 최초로 2년 연속 정규리그 우승을 했다. 중위권 정도로 예상된 LG 트윈스가 7월 17일 해태에게 1위를 내주기 전까지 1위를 달렸고 최종 순위로도 2위로 마무리했다.
쌍방울 레이더스는 2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다. 또, 삼성 라이온즈3년 간의 암흑기를 끝내고 4년만에 포스트시즌에 복귀했다. 그리고 쌍방울의 마지막 리즈 시절이 '''될 지 누가 알았을까'''...?
현대 유니콘스는 주전 대부분이 부상으로 나가 떨어져 물타선이 되면서[2] 6위로 뻗어버렸고 팀의 주포 박재홍이 시즌 초반 한달동안 출전 하지 못한것이 뼈아픈 과제로 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0 클럽에는 가입했다.
롯데 자이언츠한화 이글스는 최하위권으로 떨어졌으며, 롯데의 경우 입대를 하는 주형광이 몸이 좋지 않아 의병 제대를 하자 굴린 와중에 동계 훈련 비대상자 였던 그가 생각치도 못한 상황이 되자 구단이 주형광의 몸을 더 혹사 시키는 짓을 했다. 그해 성적 역시 폭망하였고 이에 앞서 구단에서는 전준호현대 유니콘스[3] 문동환을 맞바꾸는 트레이드를 하여 톱타자를 잃은 방안으로 전년도 신인 김대익을 1번 타자로 내새웠지만, 승자는 전준호를 낚아챈 현대가 되었고[4], 김대익은 롯데의 비참함를 지켜보던 와중 삼성으로 팔려가 간만에 준우승과 우승을 맛본다. 문동환은 5년간 롯데에서 염종석 - 주형광 다음으로 가는 승수를 쌓았지만, 훗날 두산에 이어 한화 유니폼을 입고 은퇴를 한다. 한화는 당해년도 구대성장종훈, 정민철, 강석천이외에 다 말아먹었고 특히 신인 4인방 임수민, 송지만, 이영우, 홍원기2년차 징크스에 맥을 맺추지 못했다. 송진우는 이해와 다음해 부진하여 은퇴 위기에 몰렸다가 교육리그에서 습득한 체인지업을 통해 기교파 투수로 1999년부터 부활했다.
OB 베어스는 막판 뒷심 부족으로 5위로 떨어졌다. 그나마 작년 꼴찌로 떨어진 팀을 리빌딩 모드로 들어가서 초반 선전하다가 쌍방울의 기세에 밀려서 5위에 그친 것. 그리고, 구단 위기로 그해 겨울 베테랑들을 대거 웨이버 공시를 하거나 타 팀으로 현금 트레이드를 해버린다.[5] 이듬해 마지막으로 OB라는 이름을 그만 사용하며, 99년도부터 모기업명을 따서 두산으로 바꾸었다.

3. 신인드래프트


한국프로야구/1998년/신인드래프트

4. 포스트시즌


한국프로야구/1997년 포스트시즌으로 이동.

5. 다른 시즌 보기




[1] 97년도의 해태 팀 타격 성적이 이상하리만치 93년 삼성과 닮았다. 133홈런으로 같고, 득점도 97해태는 616점, 93삼성은 615점. 20홈런 이상 타자인 이종범, 홍현우김성래, 양준혁 둘이 타선을 이끌었다는 것도.[2] 현대 타선이 강해 진 건 1998년부터. 현대 초창기에는 태평양의 물타선 이미지가 남아있었고 이는 지난해에도 현대가 1위에서 4위까지 떨어지는 원인이 되었다.[3] 당시에는 실업 야구팀이던 현대 피닉스가 데리고 있었다.[4] 하지만 전준호는 이 시즌에는 트레이드의 충격으로 매우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다.[5] 특히, 팀의 2루수였던 노장 이명수나 맏형이던 주전 1루수 김형석 등등의 선수 이탈은 팬들에게도 많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