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소리

 

1. 배우
1.1. 개요
1.2. 무산된 복귀
1.3. 드라마
1.4. 수상


1. 배우


[image]
이름
옥소리
본명
옥보경
출생
1968년 12월 24일[1]
부산시 동구 초량동
(현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
본관
의령 옥씨
가족
前 배우자 박철, 슬하 1녀
前 동거인 G모씨와 슬하 1남 1녀[2]
종교
가톨릭(세례명: 가브리엘라)
데뷔
1989년 태평양 CF

1.1. 개요


[image]
리즈 시절.
대한민국여자 탤런트, 배우. 본명은 옥보경이다.
1989년태평양 CF로 데뷔했고, 이후 연기로 활동했다. <영화>로는 구로아리랑, 비 오는 날 수채화, 젊은 날의 초상, 하얀비요일, 카루나 등에 출연했고, 드라마로는 인간의 땅, 옥이 이모 등이 대표적이다.1996년 영화 카루나에서는 스님역을 맡아 아름다운 긴 머리카락을 눈물과 함께 삭발하는 연기를 하기도 했다. 당시 연예인들 사이에서도 눈에 확 띌만큼 굉장한 미인이었고, 그 당시 최고 미인들만 찍는다는 화장품 메인 모델이기도 했다.
원래 동료 연기자 변우민과 연인 사이였다. 그러나 변우민이 1992년에 병역을 기피하기 위해 교통사고 환자와 진단서를 바꿔치기하는 바람에 병역법 위반 혐의로 처벌받고 그로 인해 연기인생 최대의 암흑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반대로 이때 옥소리는 강석우와 공연한 드라마 사랑을 위하여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중이었다. 이런저런 상황이 맞물려져 옥소리는 변우민과 헤어지게 되고 또다른 동료 연기자 박철과 사귀게 되었다.
1995년 동료 연기자 박철결혼하였다. 박철과 결혼생활을 하는 동안 원앙 부부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서로 말도 없이 산 쇼윈도 부부였다. # 그러다가 갑자기 2007년 이혼소송이 알려졌다. 이에 대해서 옥소리의 간통 상대에 대한 세간의 이야기가 많이 돌았는데, 이때 주로 언급되는 인물이 팝페라 가수이자 박철의 후배인 정모씨, 그리고 한국내 특급호텔에서 셰프로 지내던 이탈리아인 요리사 G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경천동지할 일이 벌어진다.
2007년 10월 28일, 옥소리가 기자회견을 자청하면서 '''스스로 정모씨와의 간통 사실을 밝히면서 G와의 관계는 부인한 것'''이다. 간통죄 항목을 봐도 알 수 있지만, 간통죄의 입증은 상당히 어렵다. 더구나 이후 위헌소송을 하기는 했지만, 현행법상으로 위법인 행동을 했다고 스스로 밝혔으니 이건 자수나 마찬가지였다. 이에 대해서 박철은 옥소리가 정모씨는 물론이고 G와도 간통을 했다고 하면서 그 증거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며 옥소리를 형사고소했고, 결국 2008년 1월 옥소리가 기소되었다. 결국 이혼소송은 간통소송으로 발전했다. 혹자는 당시 연인 관계로 의심되던 이탈리아인 G가 도피할 시간을 벌기 위해서 이미 헤어진 애인인 가수 정 모씨를 끌고 들어온거라는 의혹을 제시했지만 아직 확증된 바는 없었다. 하지만 이후 해외로 도피한 G와 결혼까지 하고 자식낳고 잘 사는 모습을 보여서 G에 관해서는 옥소리가 한 말은 전부 거짓임을 스스로 인증하였다.
간통죄는 합헌, 위헌 논란이 거셌기에 헌법소원을 제기하였다. 한정 위헌을 포함하여 헌법재판소 재판관 5명이 위헌 의견을 냈지만 2/3인 6명에 미달되어 합헌 결정이 나면서 결국 정식재판이 진행되었다. 이 재판과정도 당대에 엄청나게 유명했는데, 피고인 옥소리와 정모씨의 주장이 대립하는 부분이 있고, 옥소리의 20년지기 친구 김모씨[3]는 박철측 증인으로 등장하며, 박철의 로드 매니저는 옥소리 측 증인이었다. 게다가 옥소리는 그 유명한 "11년간 잠자리 10번. 박철은 100명의 술집여자와 잠자리했다"는 #발언을 했고 재판 과정에서 실제로 박철이 잦은 술자리를 가지고 과소비를 하는 등 가정에 소홀했다는 것도 밝혀졌지만 간통은 입증되지 않았다.[4]
결국 이혼소송에서 간통을 자백한 옥소리의 책임이 더 큰 것으로 판정됐고 이로 인해 친권과 양육권이 박철에게 넘어간다. 게다가 옥소리는 간통죄로 징역 8월과 집행유예 2년, 같이 기소된 정모씨 역시 징역 6월과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2015년에 간통죄가 위헌 결정이 나면서 마지막 합헌 결정일(옥소리가 청구한 헌법소원의 결정일, 2008년10월30일)의 다음날로 소급하여 효력을 상실하였으므로 옥소리 등의 간통죄는 재심 및 형사보상 청구 대상이 된다.
그 후 2011년 요리사 G와 재혼해 자식들(1남 1녀)을 낳고 대만에 거주하다가, 결국 이 요리사와도 다시 이혼했다고 알려졌다. 지인의 말로는 언제 깨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G씨와의 관계가 좋지 않았다고. 옥소리의 전 남편인 요리사 G는 대만 현지의 싱글맘인 여성과 재혼했다고 한다. 현재 대만에서 양육권 재판 진행중.
그런데 새로운 보도에 따르면 요리사는 옥소리와 결혼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 보도 이후의 인터뷰에서 옥소리는 결별을 ‘이혼’이 아닌 ‘이별’이라 지칭했고,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이별 통보로는 이혼이 성립되지 않는 점에서 '결혼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신빙성이 높다. 결혼식만 올리고 혼인신고는 하지 않았던 경우일 수도 있고...
이후 2018년 10월 13일 한국일보를 통해 요리사 G와의 양육권 전쟁이 마무리되었고 자녀를 두고 벌인 양육권 소송에서 패소했다. 옥소리는 항소까지 하며 긴 시간 재판을 진행했지만 최근 1심과 같은 결과를 통보 받았다고. 옥소리

1.2. 무산된 복귀


2014년 경, 옥소리가 연예계 복귀를 시도했다. 2014년 3월 12일SBS 한밤의 TV연예에 출연해 인터뷰를 하며 복귀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뉴시스 3월 20일 방송[5]tvN 현장토크쇼 TAXI에 출연해 복귀를 시도했다. 옥소리는 당시 방송에서 법적 절차가 모두 끝났다고 주장했지만 3월 21일일요신문이 단독으로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현재 남편인 이탈리아인 G는 기소중지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6] 당시 연예계로 다시 복귀한다는 소식에 네티즌들 사이에서 또 다시 논란이 되자 3월 20일 밤에 방송된 JTBC 썰전 예능심판자에 출연한 허지웅은 이에 대해 강한 어조로 네티즌들을 비판하였으나, 다음날 그 내용이 완전히 뒤집히는 바람에 오히려 역풍을 맞고 말았다.

실질적으로 법적으로 절차가 끝난 타인의 가정사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면서 거기에 평가질을 한다는 것은 굉장히 오만한 짓이라고 생각합니다. 잘못한 일이 있을면 책임을 지면 되는 거 아닙니까. 민주공화국에서. (중략) 셀럽들의 사생활에 반응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인용되는 대중들의 실체에 대해서 전부 유리멘탈에 엄청나게 완고한 도덕주의자에 자기는 요만큼의 흠결도 없었던 인생을 살았던 대단한 인간들같아요. (중략) 비단 옥소리 씨 뿐만 아니라 셀럽들이 아주 적극적으로 다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으면 좋겠어요! 한 명도 안 빼놓고. - JTBC <썰전> 허지웅 발언 중. 영상

결국 SBS 제작진과 tvN 제작진은 각각 "기소 중지된 사실을 몰랐다. 알았으면 방송을 내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시청자들에게 사과한다"고 밝혔고, 옥소리는 복귀가 무산되자 다시 대만으로 돌아갔다. 2015년 간통죄가 위헌 판결로 폐지되었으니 복귀 못 할 이유도 없는데, 활동 당시에도 청순한 미모 외에는 별 장점이 없고 연기력이나 카리스마는 매우 부족한 배우였기 때문에 미모 버프가 없어진 중년이 되어 과연 복귀가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2020년 시점에서 어떠한 소식도 나오지 않는 걸 보면 복귀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고 봐도 무방.

1.3. 드라마



1.4. 수상



2. 사운드 카드


삼호전자(후에 옥소리로 사명 변경)에서 출시한 사운드 카드로 도스 시절에 널리 쓰였다. 사운드 블래스터 프로와 호환성이 있었으나, 나름대로 독자적인 국산 사운드 카드. 사족으로, 바로 위의 배우가 모델로 나온 적도 있다. 사실 제품 이름 자체가 1번 항목을 의식했다고 충분히 추측할 수 있지만 공식적인 해명은 알려진 바 없다.
전성기 때는 국내 사운드 카드 시장의 80%를 차지했고, 옥소리에 번들된 소프트웨어이던 '''옥소리 노래방'''은 당시 PC 노래방 열풍을 일으킨 주역이었다. "집에서도 노래방이 된다"는 것은 매우 매력적인 세일즈 포인트였고, 컴퓨터를 잘 모르던 중년층 이상을 포함하여 가족용 오락기기로 컴퓨터가 소비되던 시절이 분명히 '''있었다.''' PC 노래방 컨셉의 포문을 열어제낀 것이 바로 옥소리였던 것. 이후 가족용 컴퓨터 컨셉을 이어간 것이 추후 출시된 삼성의 매직스테이션 시리즈와 LG의 심포니 시리즈 등 대기업에서 출시한 컴퓨터이다.
옥소리의 마지막 작품인 옥소리 WS32 MEF-I/II는 사운드 블라스터 AWE32와 경쟁하던 제품으로, 미디 성능은 AWE32보다 더 좋았다고 한다. 도스 시절 보급형 사운드 카드에 빌트인 된 미디 음원이나 인터페이스는 당시 사실상의 표준이었던 MPU-401에 비해 미디 인터페이스로서의 호환성이 떨어지고 프리징을 일으키는 일이 잦았는데, 옥소리 메프는 미디가 지원되는 게임이라면 거의 전부 다 지원했을 정도로 나은 편이었다. 사블의 경우는 하도 문제가 많아서 소위 "사블미디"라는 별도의 명칭으로 불리며 제대로 지원된다고 검증된 일부 소프트웨어, 또는 AWE32이나 사블 미디 칩셋을 직접 제어하는 프로그램(일부 게임 등)만 돌리기도 했을 정도지만, 옥소리는 도스용 게임의 음악 출력을 미디로 맞췄을 때 성공 사례가 훨씬 많았다. 게임에서 띵띵거리는 FM음원 소리만 듣다가 미디 설정에 성공, 미려한 PCM 음악을 듣게 되어 눈물을 흘리기도. 주로 '''사블+미디 동시지원''' 게임들에서 빛을 발했다. 특히 페르시아의 왕자 2에서 PCM 음성이 지원되면 스피커에서 '''사람 말소리'''가 흘러나왔기 때문에 당시 FM음원만 접했고 보이스는 플레이스테이션 같은 게임기에서나 듣던 것이라 생각하던 게임유저들의 충격이란... 2000년대 이후에는 아예 곡 전체를 PCM음원으로 제공하는 것이 매우 일반적이고, FM방식을 사용한 미디음원이 존재한다는 것조차 모르는 사람도 많으며[7], 최신 게임이 미디 배경 음악만 제공하면 고전 취급을 받는다는 점에서(...) 세월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
또한 내장 미디 음원의 품질 면에서도 일반 미디용으로 개발된 프로그램을 돌릴 경우 AWE32보다 낫다는 평이 많았다. 당시 미디의 표준이나 다름없던 사운드 캔버스 SC-55의 음색과 거의 같다. 성능이나 램 용량이 딸리다 보니 음질은 떨어진다. 아마추어 컴퓨터 음악을 하기 위해 막대한 돈이 필요했던 당시에 음원 폰트 메모리로 범용 72핀 메모리를 사용했다는 점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반면 사운드 블래스터는 AWE32계열에는 30핀 메모리를 지원했지만 AWE64로 넘어가면서 전용 메모리를 사용하여 원성을 샀다.
게다가 하드웨어[8] 에코기능은 당시 국산 사운드 카드들만의 전유물이었기 때문에 가정용 노래방으로 더할나위 없이 안성맞춤이었다.
따라서 옥소리가 시장에서 맹위를 떨치던 바로 그 때가 한국에서의 PC 미디 음악의 전성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예나 지금이나 음악가들은 PC 미디를 활발하게 사용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미디에 별 관심 없는 일반인들도 노래방 기능을 활용하고자 미디 기능을 널리 사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95년에 PCS 사업 진출을 위해 IT 업체 실적을 노리던 한솔전자에 매각되었고,[9] 한솔전자는 옥소리라는 브랜드를 곧바로 소멸시켜버리는 바람에 공식적인 계보는 끊어졌다. 이 때 옥소리의 김범훈 사장과 옥소리의 개발진이 나와서 새로 설립한 회사가 훈테크.
한솔전자는 출범 이후 시너비트라는 사운드 카드를 내놓기는 했지만, 옥소리 시절의 흔적은 없다시피 하고 거의 만들다 만 수준의 완성도로 온갖 혹평을 다 들으며 빠르게 버로우. 애초에 스펙상으로도 당시 흔하던 묻지마 저가형 사운드 카드에 비해 차별 점이 거의 없었다. 어차피 사운드카드 사업에 별 미련이 없던 한솔은 곧바로 사운드카드 시장을 포기해 버린다. "이렇게 죽일 거면 왜 옥소리를 인수했느냐"고 유저들의 원성이 자자했지만, 애초에 목적이 그게 아니었으니..

[1] 여담이지만, 최진실생년월일이 완전히 같고, 황수정과도 생일이 같다.[2] 본인의 주장으로는 결혼한 적이 없다 한다.[3] 옥소리가 알리바이를 만드는데 이용되다가 증거가 잡혀서 자신도 박철에게 고소당할 처지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나중에 밝혔다.[4] 사실 여부를 떠나 원래 간통을 밝히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5] 당시 방송시각은 (목요일) 저녁 7시 40분.[6] 여기서 기소중지라는 이야기는, 상단에도 언급된 것처럼 G가 옥소리 간통사건 당시 당사자였는지 아닌지 부분이 법적으로 해결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G는 수사가 진행되는 도중에 출국했기 때문에 국내미거주 사유로 검찰수사가 중단되었기 때문에 기소중지가 된 상태가 유지되는 것이다. 근거가 전혀 없는 뜬소문이었다면 검찰측에서 기소중지를 요청하지 않고 불기소했을 것이고, 실제로 관계가 없었다면 G가 한국에 와서 수사를 받아서 검찰의 불기소처분을 받아내야 배우자인 옥소리의 상황이 깨끗해진다. 이게 안되고 있다는 이야기는 어딘가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피하기 어렵다.[7] FM기술도 나름대로 장점이 있기 때문에 프로 음악 작업에서도 여전히 쓰인다. 예전에 싼맛에 쓰던 것과는 당연히 다른 용도이지만 말이다.[8] 당시 PC성능상 소프트웨어 방식으로는 실시간 에코 처리가 어려웠다. 국산 사운드 카드들은 아예 에코 칩을 내장해 간단하게 해결했다.[9] 한솔의 이런 시도는 성공해, 한솔PCS라는 이름으로 사업권을 얻어 KT(당시 한국통신)에 인수될 때까지 018 번호를 운영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