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교근공
1. 개요
遠交近攻
중국의 병법서 36계에 나오는 계책 중 한 가지로, 먼 나라와는 친선을 맺고 가까운 나라부터 공략한다는 뜻이다.
2. 상세
전국시대 진나라의 재상 범수가 취했던 외교정책에서 나온 말로 진나라 소양왕은 범수의 충고에 따라 멀리 동쪽 끝의 제나라를 공격하려는 계획은 포기하고 대신 가까이 있는 위나라를 공격하여 영토를 빼앗고, 한나라에 대해서 압박을 가했다.[1]
분석을 해보아도 꽤나 실속 있는 외교정책인데, 일단 먼 거리에 있는 국가를 공격하려면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다는 점에서 병사들의 사기와 보급에 악영향을 미치고, 정벌을 위해 이동하는 사이에 있는 타 국가와의 외교문제/딱히 해당지역을 점령한 국가가 없다고 하더라도 해당 지역에 사는 토착 부족들의 저항을 받아내야 하며, 최종적으로 정벌에 성공하더라도 위에 발생하는 문제가 딱히 해결되는 건 아니라서 장기적인 실효지배를 거두기가 매우 어렵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또한 근거리에 있는 국가와 좋은 수교관계를 맺으려 노력한다고 쳐도, 결국 자신의 힘이 강해져 기지개를 펴게 되면 지근거리의 국가들은 좋던 싫던 팔다리 얻어맞을 수 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 서로 강해지다 약해지기를 반복하며 서로를 찌르는 상황이 몇 십 년에서 몇 백 년 동안 이어지게 되면 범국민적으로 상대국에 대한 반감이 일어날 수 밖에 없으며, 결국은 좋든 싫든 근접국에 대해서는 공격적인 정책을 취할 수 밖에 없다. [2]
물론 단점도 없지는 않다. 예를 들어서 한나라는 흉노를 공격하기 위해 원교근공을 실행해 먼 나라들을 찾아갔지만 반응이 다들 그래서 어쩌라고? 내 알 바 아님 같은 식이라 결국 그냥 혼자서 공격했다. 멀리 떨어진 나라들도 인접한 문제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먼 나라를 위해 움직일 생각이 없을 수도 있다. 실생활로 예시를 들자면, 멀리 있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더 당신의 문제에 관심이 없을 수도 있다. 게임 등을 보면 이론적으로는 매우 효과가 있지만 현실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시대보다 평화시대[3] 에 더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4]
시드 마이어의 문명을 하다 보면 이이제이와 더불어 가장 뼈 저리게 체득하는 외교정책이기도 하다. 이웃 나라와는 국익과 영토를 두고 첨예하게 갈등하더라도 먼 나라와는 교역과 외교로 이득을 봐야 하기 때문. 물론 게임 상황에 따라서는 근교원공이 되는 판도도 많이 나오지만.
현대에는 이걸 무리하게 적용하다가 크게 박살이 난 케이스가 있는데 바로 조지아로, 먼 나라와 친선을 맺고 가까운 나라를 공격했다가 4일 만에 영혼까지 털렸다. 자세한 건 남오세티야 전쟁 항목 참조. 이 경우는 원교근공만 생각했지 이웃 나라와의 역량 차이를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게 문제다. 어떻게 본다면 쿠바도 비슷한 케이스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쿠바는 완전히 박살이 나지는 않았지만, 미국과의 국교 단절 및 꽤 높은 수준의 봉쇄를 당한 적이 있다. 다행히도 미국과는 다시 수교를 맺었다.
다만 현대에는 국력 차이가 넘사벽으로 나는 경우 외에도 세계화와 경제적 교류로 인해 인접국끼리 경제적 상호의존 관계가 형성된 경우 원교근공과 반대로 이웃나라끼리 뭉쳐 먼 나라들을 견제하는 사례도 생겨나고 있다. 대표적 예로 유럽 연합이 있다. 냉전 시대에 로널드 레이건과 레오니트 브레즈네프의 패권주의적 행보로 인해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격이 될 상황에 몰리자, 기존에 경제적인 이유로 느슨하게 만든 유럽 공동체를 전면 재개편하여 정치적, 문화적, 사회적으로 긴밀하게 교류하기 위한 국제기구인 유럽 연합으로 창설하였다. 미국과 러시아를 동시에 견제하고자 가까운 나라들끼리 뭉친 것이다.
물론 그와 별개로 현대에도 여전히 원교근공의 외교정책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 사용되고 있다. 과거와 비교해서 전면전쟁까지 가는 경우는 거의 없어지기는 했지만, 오히려 자국 내의 단결과 세력권 확장을 위해 인접국을 정치적, 경제적으로 공격하는 상황이 더 늘어났기 때문이다. 어떻게 본다면 영토와 군사력이 힘이었던 과거에서 재력과 타국에 대한 영향력이 힘이 된 시대이기 때문에 힘 겨루기의 방식이 달라졌을 뿐, 원교근공의 계책은 현대에도 잘 적용된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위에서 설명된 유럽 연합 소속국들도 내부에서는 독일과 프랑스(+영국)간의 주도권 다툼을 위해 서로 멀리 있는 북유럽권 및 동유럽권의 지지를 얻으려는 정책을 펼치는 면도 있고, 넓게 보면 유럽 연합은 가까이 있는 러시아를 견제하면서 멀리 떨어져 있는 동북 아시아 및 동남 아시아의 국가와 수교를 맺는다는 점에서 거시적인 차원에서는 오히려 원교근공 정책이라고 볼 수도 있다. 또한 한국/중국/일본도 상호간 경제적 협약을 여러 개 맺은 것과는 별개로 국가의 단결과 자국의 이익을 위해 인접국에 대해 정치적 공세를 하거나 경제적으로 공격하는 행보도 꽤 늘어난 편이다.
3. 원교근공의 사례
- 삼국시대: 세 나라 모두 전형적인 원교근공을 시행했다. 고구려는 멀리 오나라와 동맹을 맺고 위나라와 싸웠으며[5] 서역, 돌궐족, 말갈 제부족, 거란 등과 교류해 지원을 받고 수나라와 당나라를 상대했다.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를 상대하기 위해 멀리 당나라와 나당연합을 맺었다. 백제도 고구려와 사이가 좋지 않을 때는 중국 수나라에 같이 고구려 협공하자고 제안하거나, 옆의 신라를 견제하기 위해서 신라의 적대국가인 일본과도 동맹을 맺었다.
- 후백제 : 견훤은 한반도 내 국가들이던 신라와 태봉 및 그 이후의 고려와는 적대 관계였지만 외국인 오월과 후당, 거란, 왜 등과는 외교 관계를 수립하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려 했다.
- 고려: 왕건은 처음부터 중원의 한족 왕조와의 외교 관계를 중시하면서 그들과만 통교했고, 훈요십조에도 가까운 유목 민족인 거란족과 여진족을 배격하라고 기술되어 있으며 실제로 이들과 전쟁도 여러 차례 벌였다.
- 말레이시아: 앙숙 인도네시아와 태국을 견제하기 위해 인도네시아의 적국인 동티모르, 태국의 적국인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 등과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아예 태국과 캄보디아, 인도네시아와 동티모르가 대립한다 싶으면 득달 같이 캄보디아와 동티모르의 편을 들며 태국과 인도네시아를 비난할 정도다.
- 카타르: 2017년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 바레인, 리비아, 아랍에미리트, 예멘 등 아랍권의 수니파 주요국들이 수니파 국가들의 이란 적대 정책을 비판한 카타르에 대해 국교 단절에 무역 봉쇄까지 가하자 카타르와 국교를 단절하지 않은 터키, 쿠웨이트, 오만, 이라크, 이란, 알제리, 튀니지, 모로코 등 다른 중동 이슬람권 국가들과 가까워지며 식량, 생필품을 이 나라들로부터 수입하고 있다. 특히 터키로부터는 사우디, 아랍 에미리트, 바레인 등 국교 단절을 가한 주변 아랍 국가들의 유사시 군사 공격을 막기 위해 터키군의 카타르 주둔까지 허용했으며 이러한 사우디가 자행한 외교/무역 보복의 만행과 부당성을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 국제여론을 환기시켰다.
- 불가리아: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지배에서 독립하기 위해 러시아-투르크 전쟁에서 오스만 제국과 싸우던 러시아와 동맹을 맺고 오스만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했다.
- 인도: 적대국가인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 미국, 베트남 등과 국방협력을 하고 있다.
- 에콰도르: 페루와 콜롬비아라는 두 남미 영토 대국들의 사이에 끼인 지리적 상황에서[6] 브라질이나 칠레, 베네수엘라 등 다른 남미 국가들과 우호관계를 견지하고 있다. 심지어 남미 여러 나라들이 찬성하지 않는 브라질의 상임이사국 진출과 관련해서 에콰도르와 칠레는 브라질의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을 지지할 정도이다.
- 이스라엘: 시리아, 이집트, 팔레스타인, 요르단, 레바논, 이라크 등 주변에 적대관계에 놓여있는 중동 아랍 국가들로 둘러싸여 있는 지리적인 악조건 상황에서 멀리 있는 아메리카의 초강대국인 미국과 미국내 유대계 자본의 군사 지원과 경제 원조, 미국을 향한 적극적인 친미국 외교로 적대적 아랍 이웃 국가의 틈새에서 주권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이집트와 요르단은 제4차 중동 전 이후 이스라엘을 승인하면서 친이스라엘 국가가 되었고, 시리아와 이라크, 레바논도 레바논 내전과 이라크 전쟁, 시리아 내전 발발 후 종파간 내전과 내분으로 분열되면서 이스라엘도 안보적으로 다소 부담을 덜어내긴 했다.
- 미국: 같은 영어를 쓰고 문화적으로도 비슷한 캐나다를 제외한[7] 중남미 국가들을 무자비하게 패고 멀리 있는 서유럽과 대한민국, 일본과 친하게 지냈다. 냉전을 벌인 적이 있고 지금도 대립하고 있는 소련과 러시아도 알래스카를 통해 베링 해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으므로 넓게 보면 이웃나라라고 볼수도 있다(...)
[1] 사실 이는 소양왕의 외삼촌 위염이 당시 권력을 쥐고 있었고 소양왕 본인은 선태후의 꼭두각시나 다름없던 처지여서 위염의 영지 근처에 있던 제나라를 공격하게 되어 있었으나 범수가 왕권강화를 주장하고 그 일환으로 원교근공책을 제안했으며 이는 소양왕의 입맛에 딱 맞는 것이라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따라서 범수가 주장한 원교근공은 우리가 지금 아는 것과 조금 의미가 다르다. 우리가 아는 뜻은 먼 곳의 나라를 아군으로 끌어들여 가까운 곳에 있는 적국을 견제하자는 의미지만 범수가 말한 뜻은 가까운 놈들부터 조진 다음 멀리 있는 놈들도 조지자는 것이다.[2] 한/중/일 관계를 예시로 들자면, 중국은 정권과 지배민족이 바뀔 때마다 한반도에 대한 침공을 개시해 한반도를 확고히 신하국으로 만들고자 했으며, 일본은 임진왜란 및 한일합방으로 자국이 강해지면 가까이 있는 한반도에 대한 침략의 야욕을 드러내고는 했고, 한국도 이웃한 주변 민족들에 대해 광개토대왕의 정복전쟁, , 고려의 여진 정벌, 요동 정벌, 대마도 정벌, 4군 6진 편입, 건주위 정벌, 모련위 정벌 등을 시행했다.[3] UN군. UN을 보면 새로운 상임이사국 선출 문제에서도 가까운 나라들이 방해해서 멀리 있는 나라들과 손을 잡기도 한다. [4] 사실 전쟁 시대에는 타이밍도 맞아야 하고 주변 지역들 때문에 자기 코가 석자라 먼 지역을 도와줄 여유가 없기도 했다. A가 B를 협공하기 위해 C를 찾아갔는데, C 근처에 D라는 놈이 나타나서 설치고 있으면 C와 손발을 맞추기 어려울 수 있고 과거라고 맨날 전쟁만 원하는 인간들만 있지는 않아서 먼 지역 사람들이 한나라의 제의를 거절한 대월지처럼 자신들과 다르게 오랜 전쟁에 지쳐서 평화롭게 살려고 할 수도 있다. [5] 단 오래가진 않았으며 이후 손권이 보낸 사신들을 몰살시키는 사태가 발생했었다.[6] 에콰도르의 영토 면적은 이웃 페루와 콜롬비아에 비해 매우 작다.[7] 다만 독립 직후 초창기에는 미국이 캐나다를 침공하여 전쟁을 한 적이 있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