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참

 

1. 개요
2. 역사
3. 최적화
6. 관련 문서
7. 관련 명언


1. 개요


兵站 / Logistics
'보급', '군수(軍需)', '치중(輜重)'[1]이라고도 한다. 병참이 다루는 물자를 군수품이라 한다.
보급은 동서고금, 전/평시를 막론하고 '군대를 유지하고 움직일 수 있게 해주는 지속적인 지원이자 수단'으로 정의할 수 있다.[2] 역사적으로 기술 발전과 각 병종의 유용성을 따져 전술과 편제가 지속적으로 변화해 왔으나, 보급의 경우 이를 소홀히 하거나 끊겨 패가망신한 전투의 사례가 역사적으로 상당하고, 획기적인 자급자족 기술이 없는[3] 현재도 여전히 중요한 개념 중 하나다.
참고로 전장에서 보급선이 끊어졌다는 소리는 후방의 병참로[4]를 적이 유혈이든, 무혈이든 점령하고 차단했다는 뜻으로, 보급이 끊긴 부대 입장에선 차단중인 적들이 어느 규모와 수준인지를 가늠해 고사하기 전에 예하 부대나 타 부대를 동원해서라도 이를 탈환하거나 이보다 더 안좋을 경우 완전히 포위당하기 전에 후퇴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 이도저도 못하고 부대 자체가 와해되기도 하는데, 대표적인 사례로 현리 전투가 있다.
세계 최강 미군도 보급을 중요시한다. 미군은 남북전쟁 이후로 철도나 도로, 항공, 해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보급로를 확보한다. 그래서 어떤 상황이라도 보급이 끊겨버리는 경우가 드물었다.[5] 세계 대전 시기의 미군 일개 사병의 고기 섭취랑이 유럽 중산층의 섭취량보다 많았다.[6]
보급이라고 하면 일단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식량, 즉 군량미지만 그 외에도 보급품의 종류는 무궁무진하다. 군인들의 생활과 활동에 필요한 모든 물자가 병참에 포함된다. 역사적으로는 가령 삼국사기에서는 신라군이 식량, 은, 옷감, 우황, 그리고 '머리카락'을 보급했다는 기록이 등장하는데, 현대인이 보면 뜬금없어보이는 머리카락도 구하기 쉬우면서도 밧줄, 약재, 무기의 재료, 동상 응급처치 도구 등 군대에서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물자였기 때문이다.
특히 보급품의 종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다분화된 현대전에는 군량 및 병기와 피복 등의 고대식 보급에다 기계를 움직이기 위한 연료와 탄약 부터 수리와 정비를 위한 부품도 포함되어, 수송수단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보급에 대한 부담은 여전히 군대 유지 및 작전 수립에서 중요한 고려사항이다. 그래서 점점 일선 전투병력보다 후방의 보급담당병력이 늘어나는 추세가 진행중이다.[7]
뿐만 아니라 보급은 그 양 자체로도 엄청난 수준을 자랑한다. 게다가 이런 것은 시대가 진행되면서 보급에 각종 무기와 탄약, 연료와 부품이 합해지는 바람에 더욱 심화되었다. 현대전에서의 보급량의 증가는 총력전이 등장하는 계기를 만들어냈으며, 현대의 국지전에서도 조금 전황이 지체되기만 하면 초강대국도 헉헉거리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미국조차 중동에 함부로 전쟁을 걸고 다녔다가 재정무리가 왔다. 전투원 1만명이 싸우고 있으면 먹고 마시는 양과, 그외 최소한의 위생을 위한 물품, 그리고 엄청난 양의 총알과 유지 부품을 보내줘야 한다.[8] 그리고 보급담당병력도 보급을 해줘야 하기에 병력이 늘면 늘수록 보급에 대한 부담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물론 미군은 본국에서 멀리 떨어진 전장에 최대 20만 명 이상의 군대를 투입하고 인명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모든 지원을 완벽하게 해줘야 하는 등의 부담으로 실제 필요한 양보다 훨씬 과도한 수준의 부담을 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 정도의 군대가 아니라도 보급에 대한 부담이 엄청나기는 마찬가지다. 돈없는 우크라이나군이 고작 20만 명을 데리고 자국 영토에서 전쟁을 하는데도 부담이 클 정도다.[9]
보급은 전쟁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심하면 전투에서 승리했는데 보급이 모자라는 바람에 현지에 주둔, 지배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후퇴함으로 인해 그동안의 승리를 날려먹는 일은 인류의 역사가 많이 보여주고 있다.
대량의 물자를 소모하는 현대전에서 보급이 3일 이상 끊기면 사실상 전멸로 본다. 이는 기계화, 차량화된 현대의 군대는 보급이 끊기면 이런 기계장비들을 움직일 연료가 없어 후퇴 같은 이동도 사실상 불가능해지므로, 잘 해봐야 거의 대부분의 중장비를 버리고 인원만 도보로 간신히 탈출하는 게 최상의 결과라고 볼 수준이 돼 버리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되면 전투력이 제로에 가까워지므로 인원의 손실이 없더라도 전멸이다.[10]
때문에 '''초보자는 전술을 연구하지만, 숙련자는 보급을 연구한다.''' 군대의 약탈전리품은 단순한 범죄 행위가 아닌 사기#s-2, 임금, 보급을 충당하기 위한 극단적인 보급 방식이다. 따라서 전술을 연구하는 것도 국가가 보급을 지탱하기 어려울 수준에 이르기 전에 빠르게 승리를 거두는 방법을 연구하기 위한 것이며, 방어전의 경우라도 국가가 감당할 수 있는 기간을 늘리면서 그 동안 전세를 뒤집기 위해 동맹국을 늘린다든지 하는 방법을 찾는다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로 보급이 전쟁을 지배하는 경우가 가면 갈수록 늘어나는 것이 현실이다. 덤으로 아무리 전술을 잘 짜도 보급이 안 되면 대규모 파상공세를 펼쳐도 적이 충분히 견딜 수 있을 수준으로 떨어지는 데다가, 지속기간도 짧아지므로 역관광당하기 딱 좋다. 반대로 보급선이 끊어졌다는 건 포위 당했다는 의미와 다름없으니 말 다 한 것, 그래서 전장에서 조금만 시야를 넓게 보면 보급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당장 전장에서 소규모의 부대를 이끌고 전투에만 전념하는 경우라도 전투가 끝나자마자 인원의 손실과 장비의 망실, 탄약과 물자의 소모를 파악하고 당장 보급받을 수 있는지 여부를 따진 다음 언제까지 전투가 가능하며, 향후 어떻게 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11]
군기가 엄정하다는 것을 군사 후진국에서는 경례, 구타, 욕설, 고함지르기, 광택 내기, 심부름 시키기 등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군대는 대개 병참에서 상명하복에 의한 군납비리가 낄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 말을 가르치던 군기 잡힌 군인들이 굶어죽거나 장비를 버리고 도망치는 새드엔딩으로 귀결되기 쉽다. 간혹 군기의 중요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사람들은 보급을 경시하는 발언을 많이 하는데, 예를 들자면 군인한테 좋은 장비 및 지원을 해주는 것보다 (구 일본군처럼) 군 기강과 정신 확립이 더 중요하다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12] 애초에 보급과 군기의 관계는 정비례하면 정비례하지 '''절대로''' 반비례하지는 않으며,[13]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군기를 가진 군대라 해도 3일만 식수 보급이 끊기면 전멸한다. 당장 고대 중국에서 강군으로 일컬어지던 항우의 군대조차 보급을 경시하다가 거의 동네 시정잡배 군단급인 유방의 군대에게 털렸으며, 삼국시대관우가 무리한 보급선을 고집하다가 결국 보급에 차질이 생겨서 죽었다.[14] 그리고 한니발도 기껏 로마를 뒤에서 기습해놓고서는 안정적인 보급거점 마련에 실패하면서 몰락했다. 아무리 이순신장군님급으로 뛰어난 명장과 휼륭한 전투력을 가진 병사를 가진 군대라 해도 뒷받침해주는 보급이 없으면 오합지졸군대나 테러집단만도 못하다는것이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현대의 북한군은 나라 경제부터 말이 아닌지라 교리상으로도 보급을 현지조달하라고 명시하고 있다. 다만 상대의 청야전술 속에서 쓸만한 걸 찾아다니느라 진격이 지체되는 건 물론 현지 게릴라와 부비트랩에 의한 피해도 누적된다. 게다가 노획한 장비와 무기에 익숙해지는 시간도 추가로 필요하다.
현대의 군대라면 먹는 것, 자는 것, 씻는 것 만큼은 풍족해야 한다는 통념이 있다. 전시는 물론 평시에도 전쟁 대비를 위해 군사 물자가 제대로 보급되어야 한다. 그런데 현대에 지구 반대편까지 충분한 보급, 수송 역량을 자체적으로 가진 국가는 미군뿐이다. 중국과 러시아 등 일부 군사 강대국들 조차도 미군에 비하면 아직까지는 보급이 상대도 안 되는 수준이다.
그래도 물자를 생산하고 보관하고 목적지까지 운송하는 데 막대한 비용이 들다 보니 미국을 포함한 여러 각국 군대들은 거의 모든 걸 본토에서 조달하기보단 일부[15]는 현지에서 필요한 만큼 조달하는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2. 역사



2.1. 고대


손자병법에서는 적의 식량 한 승(10섬)을 먹는 것은 보급으로 식량 스무 승(200섬)을 먹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적의 식량을 없애서 그런 것도 있지만, 이보다는 공격측일 경우 본국에서 적국까지 운송에 드는 비용이 엄청나다는 뜻이며 반대로 방어측일 경우 적국에서 본국으로 운송하는 것도 고역이기 때문에 공격측 적의 식량을 없애면 그만큼 적이 곤경에 처한다는 것을 뜻한다. 손자병법의 내용중 상당수가 보급의 곤란함과 이를 감안한 대응방식일 정도로 고대로부터 보급은 골치아픈 문제였다. 과거 고대 전쟁시기의 한정된 보급에서도 전쟁터에 있는 병력을 매일 먹이기 위한 식량을 마련하고 운반하는 것 자체가 절대로 장난이 아닌 일이었으며, 수송중에 썩거나 잃어버리는 양까지 합하면 국가의 뿌리를 뒤흔드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당장 수나라고구려의 작전에 말려들어 보급없이 나라 한복판까지 들어왔고, 중국 역사에 남을 처참한 패배를 기록하면서 그대로 나라가 망해버렸다.
고대전 보급품은 무기(창/칼), 갑옷, 화살[16], 식량, 식수, 말먹이 풀[17] 정도였음에도 불구하고 전투원 1인당 보급대가 2~3명 따라붙어야 할 정도로 쉽지 않은 것이었다. 무기의 경우 특히 냉병기 시절에는 한번의 전투 '''승리'''만으로 어느정도 보충할 수 있었지만, 식량의 경우 부족하면 약탈을 통해 부족분을 채운다고 해도 안정적이지 못하고 청야전술에 취약하며, 피점령지에 대한 불안 등으로 인해 의외로 약탈 실행 빈도가 적다.
강대한 원정군이 소수의 수비군에게 패하는 경우도 상당수는 장거리의 보급선 유지에 대한 부담과 대군을 유지할 보급에 실패한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인 예로 초한전쟁을 들면, 항우팽월의 지속적인 보급로 공격이 큰 영향을 끼쳐서 유방에게 패하고 말았다. 당장 항우는 유방과의 전투에서 항상 압승을 거두었지만, 유방 측은 항우에게 입은 피해를 소하가 지속적으로 '''보급'''해주었으며, 그렇게 시간이 끌리다 보니 결국 항우 본인 쪽의 여력이 먼저 파탄나서 전쟁을 할 상황이 아니게 되었다.[18] 또한 팽월 역시 직접적인 전투의 공적보다는 항우의 후방에서 보급로를 끊고 계속 깔짝거리는 전술을 썼는데, 이것 역시 대전투엔 거의 참여한 바가 없음에도 초한전의 흐름을 움직일 정도의 효과를 거뒀고 항우가 말라죽는 데 적지 않은 공헌을 하여 유방으로부터 공적을 중하게 인정받았다. 삼국시대에도 좋은 예가 있는데, 관도대전에서 오소 병참 기습으로 조조가 불리하던 전세를 뒤집었고 원소를 무찔러 중국 북부를 차지하게 된다. 4차 북벌당시 제갈량은 목우를 이용하여 물자를 조달한 뒤 노성 전투에서 사마의장합의 군세를 격파했으나 이엄의 태업으로 병랑수송에 문제가 생겨 퇴각하게 된다.
로마군은 체계적인 보급으로 유명했다. 로마군은 일단 정복지에는 병참선[19] 역할을 할 도로는 반드시 시내를 통과시키며 가능한 평탄화, 직선화를 해두어 철저하고 안정적인 보급망을 건설했다. 심지어 전투가 벌어지는 와중에도 도로망을 구축해 보급을 신속하게 받았다. 오죽하면 얻은 별명이 '''병참으로 이기는 군대'''였다. 술라카이사르 같이 놀라운 전술을 펼쳐서 소수의 군대로 대군을 격파하는 모습이 유명하지만, 이러한 기적의 명장들은 오히려 예외적인 사례이고 실제 로마군은 언제나 빵빵한 보급을 받는 압도적인 전력으로 적을 차근차근히 압박하는 전략이 대부분이었다.
신라의 경우는 중산층 이상의 평민만이 전투에 참여할 수 있었고, 중산층 이하의 평민은 병참에 집중했다.

2.2. 중세


중세 유럽군대의 미칠듯이 느린 진군속도의 원인중의 하나가 바로 이 보급문제였는데, 당시 기술로는 이동수단이 마땅찮기도 했고, 더군다나 한번에 많은 수의 보급품을 보낼 수 없으니 현지조달하느라 밍기적거리면 시간다까먹고 진군 속도는 떨어질수밖에 없었다.
임진왜란에서 조선이 그토록 왜군에게 깨지면서도 이순신 장군이 계속해서 왜군의 보급을 끊어내어 결국 몰아내는데 성공한다.[20]

2.3. 근대


미국 남북전쟁의 북군이 체급과 산업기반을 이용한 보급전으로 승리한 케이스이다. 흔히 노예제 폐지와 만민평등을 앞세운 북군을 정의의 사도로 묘사하는 편견이 있으나, 이는 결국 북부의 정치적 구호일 뿐 실제 여론은 그저 북부와 남부의 이권다툼이었을 뿐이다. 따라서 자신이 속한 지방의 이권을 지키기 위해 출정한 북군과 남군 모두 사기는 높은 편이었다. 그러나 남부는 그 특성상 농업 위주의 사회로 전체적인 체급도 북부에 비해 모자랐고, 북부는 갈수록 우수한 산업기반을 중심으로 차근차근 전선을 밀어냈다.
보불전쟁, 보오전쟁기의 프로이센, 독일 제국군이 우수한 보급과 수송능력으로 체급적 한계를 극복하고 두 개강대국을 격파했다.[21]

2.4. 1차 대전 즈음


청일전쟁, 러일전쟁 시기에는 각기병, 비타민, 단백질 등 식품영양학 지식이 부족해서 수많은 병사들이 목숨을 잃었다. 참고로 러일전쟁에서 일본보다 더 강대한 국력을 지녔던 러시아가 뜻밖에도 일본에 패배했던 이유는 바로 러일전쟁 무렵, 시베리아 횡단 철도가 완공되기 전이라[22] 본국에서 전쟁이 벌어진 만주 지역까지 보급을 보내기가 매우 어려웠던 데다가 전쟁 직전 러시아군 병사들이 사용할 탄약조차 무려 2800만 발이나 모자랐을 만큼 보급에서 불리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일본군이 압도적인 우세로 러시아군을 이겼느냐 하면 그도 아닌 것이, 일본 역시 러일전쟁 무렵에는 아직 국력에서 총력전을 벌이기 부족해서 러시아군과 벌인 봉천회전 직후에 육군 사령부가 일본 정부에 "포탄을 비롯한 물자 부족으로 더 이상 전투를 벌이기가 매우 어렵다. 어떻게든 전쟁을 빨리 끝내달라."라고 애걸하는 통신문을 보냈을 정도였다.
제1차 세계 대전 직전의 모든 군대는 식량을 던져주면 사병 개개인이 알아서 조리해먹는, 즉 재료만 던져주는 식이었고 삼삼오오 모여 당번을 정하든 혼자 해먹든 알아서 조리해 먹었다. 취사병이 없었다.
그러나 1차 대전 초반이 되자 참호전으로 인해 식량 공급의 양식이 바뀌었다. 대군이 좁은 전역에 고착되면 연료가 부족하다. 비만 오면 진창이 되는 곳에서 마른 장작을 구하는 것은 힘들다. 더욱이 대규모 병력이 한 곳에 죽치고 대치 상황을 벌이고 있는데 연료가 부족하다. 거기다 조리 과정에서 연기가 발생하면 포격받기 일쑤다[23]. 그래서 1차 대전 후반에는 후방에서 조리하여 전방으로 추진하는 식으로 바뀌게 된다. 그래서 취사병이라는 군사특기가 생기고 야전 취사 장비를 보급하는 것이 보편화되었다. 더구나 전문적으로 조리를 익힌 취사병들이 소량의 연료만 써서 대량으로 취사하는 것과, 소규모 단위로 전투병들이 사방팔방에 불을 피우고 찔끔찔끔 조리하는 것은 시간의 활용과 연료 소모와 음식의 품질 면에서 효율성의 차원이 다르다. 게다가 전문 취사병들에게 맡기면 다른 부대원들은 전투 임무에 더 효율적으로 투입되며 조리 시간의 제약과 취사의 부담에서 상대적으로 여유로워질 수 있다.
그리고 유류관리병을 포함해 연료에 대한 보급도 1차대전 때 중요해졌다. 이런 점을 경시한 군대에서는 민간인들에게서 문짝이나 가구를 땔감으로 쓰려고 약탈했다. 불을 피우고 연기를 내면 부대의 위치가 쉽게 노출된다. 2차 대전 일본군은 이런 것을 외면했기에 나무가 무성한 정글에서조차 쉽게 발각되어 탈탈 털리게 되었다.

2.5. 2차 대전 즈음


수적 우세와 보급을 바탕으로 소련이 승리한 스탈린그라드 전투, 바다 건너서 꾸역꾸역 밀고 들어오는 셔먼 전차들 상대하다 말기에는 비축 보급품이 바닥난 상태에서 벌인 아르덴 대공세, 보급을 도외시하다 물말아먹은 '''임팔 작전'''이 대표적 사례다.
스탈린그라드 전투 후반, 당시 30만에 달하는 독일 6군은 생존을 위해 하루 최소 500t의 보급이 필요했다. 그러나 소련군의 포위로 공중 수송을 통한 하루 200~300t의 보급만 가능했으며, 이마저도 여러 악조건[24]으로 거의 이루어지지 못해 다수의 동사, 아사자가 발생하며 B집단군의 중추를 담당하던 독일 6군은 무너지고 만다.
일본군은 병참을 경시했다. 군인의 교육이나 승진 등 전반적인 면에 있어 보급에 대한 관심이 낮았다.[25] 한두명이 정신이 흐려져서 어리석은 소리를 한 것도 아니고 전쟁이 길어지다 보니 인프라가 부족해진 것도 아니다. 그냥 처음부터 관심이 없으니 투자를 하지 않았다.[26]
일본군이 잘 나갔던 시절에도 일본군은 야전취사 장비를 구비하는 데 이상하게 소극적이어서 전장에서 제대로 밥을 먹으려면 지급받은 쌀과 반찬으로 밥과 국을 만들던가 민가에서 징발해야만 했다. 게다가 식량은 보급하면서 식량을 조리할 연료는 알아서 구해다 조리하라는 식으로 일체 보급이 없어 개개인이 문자 그대로 알아서 연료를 찾아다녀야 했다. 특히 연합군의 공격으로 보급이 끊기자 식량을 약탈하는 것을 시작으로 인육을 먹는 전쟁범죄가 자주 발생했다.
2차 대전 중 병참을 최적화하기 위한 연구가 산업공학을 낳았다. 레닌그라드 공방전에서 소련의 수송 경로는 최적제어론을 연구한 수리경제학자들에 의해 결정되었다.

3. 최적화


각종 보급품을 통일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현재 미군은 각종 항공기는 물론 주력전차/전술차량, 심지어 오토바이 연료까지 모두 항공유로 통일하여 보급효율을 높였다. 항공유이기 때문에 취급방식이 까다롭고(JP계열 항공유를 포장할 때에는 반드시 재활용 드럼이 아닌 새 드럼만을 사용해야 한다.) 단가가 일반적인 휘발유보다 높지만, 전세계의 미군에게 보급을 해줘야 하는 미군 입장에서 일일히 여러 종류의 연료를 따로 구입하여 수송하는게 더 골치아픈 일이라 아예 이 연료로 통일시킨 것. 연료를 통일해 행정소모 비용과 연료 수송비용이 절감되기에 전체 비용 면에서는 오히려 이득이라고 한다.

4. 해군


대항해시대가 되어 원양 항해를 하게 되면서 병참이 중요해졌다.
근대에는 해안 봉쇄 작전이 시작되면서 원시적인 군수지원함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1차 대전기가 되자 석탄운반선, 급양함 등이 순양함에 동행하게 되었다.
현대전에서는 급유, 급양 (식수, 식량), 급탄, 수리 및 공작 등의 기능이 필요하다. 2차 대전기에는 각 함종을 따로 제작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요즘은 군수지원함이 급유, 급양, 급탄을 통합해서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2차 대전기에는 공작함의 역할이 중요했지만, 현대에는 대함 미사일의 발전으로 인해 피격되면 곧바로 침몰하는 문제가 생겼으므로 별도의 공작함은 더 이상 운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5. 대한민국 국군


한국에서 군사 물자에 대한 보급을 주로 책임지는 부대는 육군군수사령부, 해군군수사령부, 공군군수사령부, 군수지원사령부 등이 있다.
대한민국 국군도 보급의 중요성을 각 부대에 일깨우기 위해 KCTC 등의 훈련을 주기적으로 시킨다.
휘발유 등 난방/발전/군수용 기름, 군량, 세제 보급은 넉넉하게 지급되고 있다. 문제는 '''남을 만큼 나오는데 남으면 불이익'''(낭비=처벌)이라는 것. 덕분에 각종 문제가 발생해 여기는 부족하거나 저기는 넘치는 것뿐만 아니라 알게 모르게 각종 보급품들이 줄줄이 새고 장부가 조작되어 '''부족해도 알맞고, 넘쳐도 딱 맞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휘발유의 경우 상사 혹은 대위급 '짬 되는' 간부들이 자가 차량을 끌고 들어와서 기름을 채우고, 그렇게 부족해진 기름은 휘하 부대에 보급할 때 '''200ℓ 짜리 드럼통'''에 180~190ℓ 정도만 채워서 보급하는 식으로 남겨서[27] 대대본부, 연대본부만 해도 항상 기름이 넘쳐 겨울 내내 찜통 난방을 하거나 여름에 뜨거운 물 샤워 등 갖은 혜택이 넘쳐난다.
특히 맛스타, 딸기잼, 고추장을 비롯한 각종 양념, 특히 육류 등은 보급수송대대 (보수대대)의 경우 사단 전체의 물자를 1차적으로 수령하는 보급 먹이사슬의 최상위에 위치해 있으므로 짬으로 밀어붙이거나 앞서 말한 장부조작 등 갖은 수법을 동원한 결과 굉장히 풍족한 군생활을 체험할 수 있다. 지금은 많이 사라진 듯 보이나 예전에는 그렇게 남은 기름, 육류 등 보급품을 헐값에 팔아넘겨 제 배를 불리는 간부들도 제법 되었던 모양.[28] 당시 빡쎈 대대장소원수리에 빡쳐서[29] '''"앞으로 보급품으로 장난치는 염병할 xxx들은 내가 책임지고 밟아버린다"'''고 단속을 시작하자 국이 말 그대로 '''물 반 고기 반'''이 되었다고.
전시 보급 수송 역량도 60만 대군을 지원하기에는 부족한 실정이다. 소위 자주국방이라는 기치하에 온갖 첨단 무기들을 개발, 배치하고 있지만, 실제 한국군이 가장 절실한 것은 육공트럭이라고 할 정도로 보급과 수송 능력이 부족하다. 물론 기본 전쟁물자야 충분하지만 수송수단이 부족하다. 그 때문에 전쟁나면 민간 차량을 징발하니 어쩌니 하는 소리가 나오는 것.[30]
이러한 문제가 일어난 것은 오랫동안 미군의 지원에 의존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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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관련 문서




7. 관련 명언


'''"패전하여 불리한 상황에 있더라도 하수는 공격을, 중수는 방어를, 고수는 병참을 생각한다."'''

'''"안개를 먹고 싸울 수는 없다."'''[31]

'''"군대잘 먹어야 진격한다."'''[32]

'''"작전에 실패한 장수는 용서받을 수 있지만, 보급에 실패한 장수는 용서받을 수 없다.'''"[33]

전투작전이 하고, 전쟁군수가 한다. 이기기 위한 기본적인 조건이자 필수적인 조건이 바로 보급#s-2.1이다. 막강한 화력과 양질의 식사야말로 지속적인 전투력의 원천이며, 든든하고 배부른 병사들의 사기#s-2는 하늘을 꿰뚫을 것이다.
[1] 참고로 짐수레(輜)와 짐(重)을 뜻하는 단어로, 참고로 구한말과 구 일본군, 그리고 이들의 체제를 받아들인 국군에서 수송부대(수레)와 군수(짐)을 싸잡아 부르는 단어니 유의. 참고로 여기 병사를 치중병, 이들이 모인 부대나 행렬을 치중대라 부르기도 한다.[2] 마르틴 반 크레펠트 저, <보급전의 역사> 서문.[3] 부대원과 민간인에게 농사를 짓게 하는 둔전이 있으나, 이 역시 한계가 있다.[4] 보급이 오는 길.[5] 태평양 전쟁 당시 과달카날 전역사보섬 해전에 패배하여 일시적으로 제해권을 상실하고 보급이 중단된 사례가 있다. 미드 퍼시픽에서 자세히 묘사되었는데 보급 중단으로 일본군 패잔병이 남기고 간 썩은 쌀로 밥을 지어 먹어야 했다.[6] 다만, 동서양을 막론하고 원래 군인에게는 일반인보다 많은 열량과 육류가 제공되는 것이 원칙이다. 영국군의 경우에도 미군만큼은 못했지만 육류가 일반 민간인들한테 보다는 많이 공급되었다. 육류는 사기진작과 체력유지 및 상처회복에 매우 중요한 식품이다.[7] 보급할 물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현대전에서 군은 30%가 붕괴 혹은 전투력을 상실하면 보통 전멸한 걸로 본다. 전쟁과 전투에서는 전투력 상실 혹은 지휘체계의 붕괴는 죽은거나 다름없기 때문. 저 30%가 대부분 전투병이고 전부 전투병이라 하면 전체 인원의 반은 무력화 된 것인데 그지경 까지 가면 나머지도 성치는 못하기 때문이다.[8] 서양에서 전통적인 보급의 요소를 '''3B'''로 표현한다. Beans(음식과 물), Bullets(병기와 탄약), Bandages(의료지원 및 위생)[9] 총력전 항목에서도 나오지만 경제력이 안 좋으면 전쟁수행능력이 안 좋아져 보급의 질도 상대적으로 안좋아진다.[10] 걸어서 피해없이 탈출한다고 해도 그 버리고 간 장비의 비용은 어찌할 것이며 만약 적이 노획해서 쓰거나 카피생산한다면 그때는 또 어떻게 할 것인가? 또 그 무기를 또다른 적성국에다 넘기고 그 대가로 물자나 병력 혹은 장교단을 초빙받거나, 아니면 그 반대로 우수한 초급장교들을 유학보낸다면?[11] 아주 간단하게 각개전투 훈련에서 적을 격퇴하고 고지를 점령한 다음에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분대 인원의 손실 및 남은 탄약량 보고다. 최소 단위인 분대 전투에서도 자기 분대 상태가 어떤지 알아야 전투를 지속시키거나 다음 전투에 대비할 수 있다.[12] 특히 한국이 심각한데 군필자나 심지어 간부 출신이데도 이런 헛소리를 늘어놓는 경우가 많다. 한국 군필자들의 문제는 군 복무를 했음에도 제대로 된 군사적 지식을 가진 이가 극히 드물다는 것이다. 거기에 더 큰 문제는 말도 안되는 이상한 설을 맹신하는 사람이 대다수다! 병사의 경우 군사학을 딱히 배울 일이 없기도 하다. 훈련소 기초훈련 이후 특기 교육에서 이런 건 안 배우고 자대에 가서도 선임병들도 안 배운 마당에 그냥 자기 할 일이나 하다 전역하는게 태반이다. 사실 징병제이다 보니 이런 군사학 교육보다는 주로 정신교육에 더 할애하는 부분이 많다.[13] 징병/모병 여부와 무관하게 질좋은 식사와 장비가 제공될수록 군인들의 사기와 전투력은 향상된다. 반대로 보급의 부족은 싸우고 싶어도 물자가 부족해 못 싸우는 결과를 가져올 뿐 아니라 군인들의 심리에도 직격타를 날린다. 전자와 후자 중 어느 쪽이 군기잡힌 군대일지는 뻔한 일이다. [14] 관우에 경우는 여러 복잡한 사정이 겹쳤다. 자세한 건 관우형주 공방전 항목 참조.[15] 구경이 호환되는 탄약을 포함한 신선식품, 음료 등.[16] 현대전의 탄약에 해당한다.[17] 현대전의 연료에 해당한다.[18] 사실 유방 쪽도 대기근이 도는 와중에 필사적으로 쥐어짠 것이라 피해가 막심했으나, 수시로 팽월 등에게 후방을 공격당하던 초나라에 비해 적어도 본진은 철저하게 방어해낸 만큼 갈수록 처지가 역전된 것.[19] 병참 물자나 인원이 지나갈 길.[20] 당시 왜군은 일단 육군이 조선을 점령하면서 보급은 수군이 남해를 돌아 서해에서 조달하는 수륙병진작전을 진행하였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이 남해에서 연승을 거두면서 자연스럽게 서해보급은 불가능해졌고 이는 승승장구하던 왜군의 북진을 막게되어 조선이 반격할 기회를 제공할 수 있었다. 결국 왜군은 남해 연안에 난공불락 왜성들을 쌓고 약탈과 둔전 등 최소한의 보급으로만 만족해야만 했다.[21] 물론 이때의 승전이 오히려 패착이 되어 훗날 독일은 초반 수송, 동원, 치중능력을 맹신하고 무리한 전략을 세우다가 몰락했다.[22] 심지어 시베리아 횡단 철도는 러일전쟁이 끝난 이후에야 완공된다...[23] 이러한 이유때문에 병사들이 고향에 보낸 편지중에는 고체 알코올좀 보내달라는 편지도 있다. 연기가 나지않기에 포병으로부터 안전하고 그나마 음식을 따뜻하게 먹을수 있으니까.[24] 수송기의 가동률, 악천후, 그리고 이착륙 가능한 비행장의 부족으로 보급에 성공한 보급품은 요구량의 10%정도밖에 되지 않았다[25] 이는 일본군이 병참과 물자 부족에도 불구하고 승리했던 러일전쟁의 영향 때문이었다. 그러다보니 일본군 수뇌부는 러일전쟁의 승리에 계속 도취한 상태에서 물자와 병참이 부족하더라도 단기결전에 승리하여 전쟁을 끝내면 된다, 라는 집착에 매달렸다.[26] 당시 일본군이 보급을 얼마나 하찮게 여겼느냐 하면, "보급병 따위가 군인이라면 잠자리로 쳐야겠다."라는 말이 버젓이 돌아다닐 정도로 보급을 가볍게 여겼다.[27] 보급병이 썰 풀면서 낄낄대기 전엔 아무도 모른다![28] 보릿고개가 남아있던 1970년대의 경우 매일 수통 2개에 쌀을 가득 채워 퇴근하는 간부들도 있었다. 물론 그 쌀은 병사들 것을 착복한 것이다. 요즘 이런일이 없는 이유도 간단한데, 고작 보급품 따위를 착복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봉급이 충분해서다. 처벌은 큰데 이득은 적으니.[29] '''반찬에 고기가 너무 적습니다''' 라고 적었기 때문이다. 뭐 그런 걸 적나 싶을 수도 있지만 앞서 말했듯 군대는 원래 먹어야 잘 진격하는 법이다.[30] 일정 수준 이상의 운송차량은 전시에 당연히 징발된다.[31] 30년 전쟁 초반 사보아 공국의 용병대를 이끌고 신교측에 참전한 에른스트 폰 만스펠트가 한 말로, 프리드리히 5세와의 거래실패로 사보아 공국이 회군을 명령하고 지원을 끊어버리자 용병대를 데리고 철수할 수 밖에 없었다. 당시 신교측이 기용할 수 있던 병력 중에서 가장 쓸만했던 만스펠트의 용병대가 철수하자 신교측은 구교측을 막을 수 없었고 프리드리히 5세는 본거지를 잃고 영국으로 망명한다.[32] 나폴레옹 1세의 발언으로 알려져있지만 근거는 없고, 나폴레옹 사후 후대에 위인전에서 발견되는 문구다.[33] 이 말은 병참 외에도 경계, 배식에도 쓰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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