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수(축구선수)

 

이름
이정수 (李正秀 / Lee Jung Soo)
출생
1980년 1월 8일 (44세)
경상남도 남해군 미조면 미조리 조도마을#
국적
대한민국 [image]
본관
장수 이씨 #
신체
185cm , 78kg
포지션
센터백, 라이트백
데뷔
2002년 안양 LG 입단
선수번호
4[1],14[2], 40[3]
소속 클럽
안양 LG 치타스 (2002~2004)
인천 유나이티드 FC (2004~2005)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6~2008)
교토 상가 FC (2009)
가시마 앤틀러스 (2010)
알 사드 SC (2010~2016)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16~2017)
샬롯 인디펜던스 (2018)
국가대표
54경기 5골 (2008~2013)
출전 경력
[ 펼치기 · 접기 ]
1998 AFC U-19 축구 선수권 대회 국가대표
2010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 국가대표
2010 FIFA 남아공 월드컵 국가대표
2011 AFC 아시안컵 국가대표

지도자 경력
동국대학교 코치 (2017)
호찌민 시티 FC (2020~ )
별명
계란정수[4]
1. 소개
2. 클럽 경력
3. 국가대표 경력
4. 지도자 경력
5. 플레이 스타일
6. 여담
7. 관련 문서


1. 소개


경상남도 남해군 미조면 미조리 조도마을 출생으로 용인 포곡초등학교, 태성중학교, 이천제일고등학교, 경희대학교를 거쳐 2002년에 안양 LG에 입단했다.

2. 클럽 경력



2.1. 안양 LG 치타스


[image]
2002년 데뷔해 안양 LG 치타스에서 데뷔했고, 데뷔 때의 포지션은 공격수였다. 그러나 수비수로 포지션을 바꾸어[5][6] 활약하였다.

2.2. 인천 유나이티드 FC


[image]
2004년 2억 5천만원에 신생팀 인천 유나이티드 FC로 이적하여 팀의 준우승에 공헌했다. 인천 입단 후 처음에는 오른쪽 풀백으로 출장하였으나 중앙 수비수로 포지션을 바꾸면서 포텐이 터져서 리그의 준수한 멀티수비자원이자 인천 수비의 핵심 역할을 했다.

2.3. 수원 삼성 블루윙즈


이듬해 9억원에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팀을 옮겨 인천 유나이티드 특유의 선수 키워팔기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남게된다.
곽희주, 마토와 함께 3년간 수원의 수비진을 이끌며 2006년 리그 준우승, 2008년 리그 우승의 일등공신으로 활약했다. 2007년에는 부주장을 맡았으며 2008년에는 마토를 뛰어넘은 팀의 No.1 수비수로써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그리고 이와 같은 활약으로 일본으로부터 제안을 받았다
2016년 2월 22일, 8년만에 K리그 수원 삼성에 복귀했다.

2.4. J리그


2008 시즌을 마치고 FA 자격을 취득한 그는 때마침 불어닥친 K리거들의 J리그 진출 러쉬속에 교토 상가 FC와 1년 계약을 맺으면서 일본으로 진출하는데 이 이적은 대박을 치게 되었다. 한때 일본을 이끌 것이라는 절찬을 받은 젊은 센터백 미즈모토와 함께 교토의 수비 라인을 이끌면서 다소 거친 스타일로 옐로카드가 많았다는 점을 빼고는 대체자를 찾을 수 없는 환상적인 플레이를 선보였다.
이 실력을 인정받아 한일 올스타전인 조모컵에 J리그 대표로 출전해 수비수임에도 골을 기록했으며, 한국어로 쓴 응원문구와 태극기를 경기장에 가져오는 팬들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경기 MVP를 수상했다.
2009년 12월 가시마 앤틀러스로 이적하게 된다.

2.5. 알 사드 SC


[image]
남아공 월드컵을 마친 후 2010년 7월 카타르 스타즈 리그 팀인 알 사드 SC로 이적하면서 연봉 22억 원의 대박을 쳤다. 말년에 돈도 벌고 참 대박친 듯. 더구나 연기자 한태윤과 결혼을 전제로 사귀고 있다니.... 인생의 승리자
2011년 3월 16일 아시안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즈베키스탄의 팍타코르와의 홈 경기에서 선취골을 기록, 알 사드의 2:1 승리에 기여했다.
2016년 1월 28일 알 사드와 계약해지 발표가 나왔다. 이정수가 장기 부상으로 빠지면서 수비진이 흔들리자 급하게 대체자를 영입하는 과정에서, 알 사드는 코치직을 제안했지만 이정수의 현역 연장 의지가 강해서 상호 합의하에 계약해지한 것.
이후 수원 삼성 블루윙즈행 확정 기사가 나왔다.

2.6. 수원 삼성 블루윙즈 2기


[image]
여러모로 아쉬운 마무리였던 수원삼성 시절과 본인의 말년 선수시절
메디컬 테스트를 거쳐 2월 29일 수원 삼성 입단을 공식 발표했다. 등번호는 과거의 14번이 아닌 카타르 시절부터 달고 다니던 40번을 택했다. 선수 생활의 연속성과 40세까지 뛰고 싶다는 두 가지 의미가 담긴 번호라고. #
7월 31일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홈 경기에서 시즌 1호골을 터뜨리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2016시즌 K리그 클래식 최종기록은 27경기 3골.
2017년 4월 16일 광주전 이후 팀을 떠나겠다고 밝혔고, 은퇴까지 선언했다. 팀의 부진만으로도 속이 타는데 악질 서포터들이 심한 욕설을 하고 맥주캔 등을 던지는 만행을 저질렀는데 문제는 이정수가 거기다 대고 똑같이 욕설을 내뱉으며 팬들에게 큰 비난을 받았다. 물론 사람들에게 욕설을 내뱉은 이정수의 행동이 정당화 될 수는 없는 법이지만 먼저 욕하고 이물질을 투척한 어처구니 없는 팬들의 몰상식함이 면죄부를 받지는 못한다.
한번 이번 사태로 이로 인해 마음고생이 굉장히 심했다고 한다. 일단 20일에 코칭스태프와 면담을 했지만 이정수의 마음을 다시 돌리기에는 쉽지 않았고, 21일 재면담에서도 끝내 이정수는 결정을 뒤집지 않았다. 결국 수원 삼성 블루윙즈는 그의 의사를 수용해 은퇴를 하게 된다. 이에 대부분의 축구 팬들과 수원 삼성 팬들은 백의종군까지 하며 온 팀 레전드를 이렇게 보내버리냐며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울트라스 서포터들인 난적을 전방위로 깠다.

2.7. 미국 진출


2018년에 대전 시티즌의 플레잉 코치로 현역 복귀를 한다고 보도되며, 2차 터키 전지훈련에 이미 합류도 했다고 보도 되었으나, 대전 입단 대신 미국 프로축구 2부 리그인 USL 챔피언십 클럽인 샬럿 인디펜던스에 입단하여 잠시 현역에 복귀하였다.

3. 국가대표 경력


2005년 인천 유나이티드 FC에서의 활약에 주목한 조 본프레레 감독에 의해 동아시안컵 대표 상비군으로 첫 발탁 되어 훈련까지 참여했으나 하필 부상이 생겨 최종 명단에 들지 못했고 이후 딕 아드보카트 감독으로 국가대표 감독이 바뀌면서 가끔씩 발탁될 가능성의 소문이 났으나 아드보카트 감독은 수비진에 깜짝 발탁 등 큰 변화를 주지 않는 방침으로 나가서 2006 독일 월드컵 명단에도 결국 이름을 올리지 못한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 그 뒤 핌 베어백 감독도 그를 아시안컵에선 커녕 평가전에서도 부르지 않았다. 그러다가 허정무 감독 부임 후 발탁되어 2008년 3월 26일 월드컵 3차 예선 북한전에서 드디어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2008년 6월 1일 요르단 전에서 팀 동료였던 곽희주와 함께 중앙수비수로 선발 출장해 2-0으로 앞서다 2골 연달아 실점하며 2-2로 비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면서 엄청나게 욕을 먹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꾸준히 중용되며 경험을 쌓았고 국가대표 주전으로써 강민수, 곽태휘, 황재원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며 본격적으로 조용형과 짝을 맞추면서 대표팀 수비진의 중심으로 올라섰다.

남아공 월드컵의 대표팀에 승선하여 그리스와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는 전반 7분 세트 피스로 대한민국의 첫 골을 장식하며 한국의 2:0 승리를 이끌었으며, 나이지리아와의 조별리그 3차전에서도 세트 피스에서 동점골을 성공시키며, 한국의 원정 첫 16강 진출에 공헌하였다.[7]

특히 나이지리아전에서의 골은 분명히 헤딩을 노렸는데, 헤딩을 못맞추고 동시에 슛모션으로 나간 다리에 맞아 골이 되어, 동방예의지국슛, 헤발슛이라는 별명이 붙게 되었다.[8]

2010 남아공 월드컵 이후 단짝인 조용형은 중동 진출 이후로 대표팀과는 멀어졌으나 이정수는 꾸준히 조광래호 부임 이후에도 대표팀에서 주전으로 활약했다. 그러나 2013년 2월 크로아티아전에서 곽태휘랑 동반으로 호러쇼를 연출하면서 수비진의 불안함을 가중시켰는데 이정수도 이제는 한물갔다, 노쇠화되었다는 평가를 받았고, 그 경기는 대표팀에서의 마지막이 되었다. 이후로는 김영권홍정호 등 올림픽 대표팀 출신들의 젊은 수비수들이 중용받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부름을 받지 못했다. [9]

4. 지도자 경력


[image]
수원 삼성을 떠난 이후 안효연 감독의 부름을 받아 동국대학교 축구부 코치로 잠시 활동했었다.
2020년부터 베트남 프로팀인 호찌민 시티 FC의 코치를 맡게 되었는데 정해성 감독의 제의를 받아들여 수비전담코치를 맡게 되었다고 한다.#

5. 플레이 스타일


신장 185cm의 탄탄한 체격을 이용한 제공권 장악과 맨마킹 능력이 탁월하다. 발이 상당히 빠른 편이며 이를 살린 커버링, 풍부한 경험을 활용한 노련한 수비 리딩도 돋보인다. 09시즌 리그에서 5골을 뽑아냈을 정도로 공격가담에도 적극적이다. 2009년 9월 호주와의 친선 경기에서 감각적인 힐킥으로 공격수 출신다운 득점 능력을 뽐냈다.

6. 여담


  • 알 사드 선수들, 팬들한테는 이브라힘이라는 아랍식 이름으로 불려진다. 본인도 마음에 드는지 아예 유니폼 마킹을 "이브라힘 리"로 하고 다닐 정도로...
  • 카타르에서 태어나서 본인의 이름을 "이도하"라고 지었다고 한다. 어원은 당연히 카타르의 수도 도하.
  • 개그맨 김한석의 질서(姪壻)[10]이다.
  • 피파4에서 상당히 좋은 능력치를 보여주며 비에이라,말디니와 더불어 3대장이였으나 이후 TT,GR,TC,HOT,LH 등 새로운 시즌이 대폭 많아지며 현재는 위상이 떨어졌다 물론 TKL 시즌 이정수가 새로 출시했지만 여전히 밀리는 중.

7. 관련 문서



[1]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6)[2] 인천 유나이티드 FC,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7~2008), 가시마 앤틀러스, 샬롯 인디펜던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3] 알 사드 SC,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16~2017.4.18)[4] 2007년 부상으로 벤치에 있을 때, 삶은 계란을 까먹는 모습이 화면에 잡힌 뒤 얻은 별명. 참고로 2010 월드컵 이후 중앙일보 스포츠신문에서 아래 2와 3의 두 이정수와 함께 이 기믹으로 인터뷰 사진을 찍었다.[5] 포지션 전환을 권유한 사람이 조광래 감독이라고 한다.[6] 이정수와는 정반대로 본래 수비수였는데 공격수로 포지션을 바꾼 선수로는 김신욱이 있다.[7] 공교롭게도 두 골 모두 이영표가 파울을 얻어내고, 기성용이 찬 프리킥을 이정수가 마무리한 골이었다.[8] 여담으로 4년뒤 브라질 월드컵에서 비슷하게 마리오 괴체도 비슷하게 넣었다.[9] 곽태휘와 사이가 안 좋다는 루머도 있고 크로아티아전에서 보듯 호흡은 확실히 안 맞아서 곽태휘가 국대 베테랑으로 남으면서 이정수는 자연스럽게 제외된 것으로 보인다.[10] 이정수 아내의 외삼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