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광역시/지리
1. 도시구조
수도권의 주요 항구인 인천항을 중심으로 시역을 확장하다가 다핵 도시가 되었다.[1] 그리고 특히 원인천 지역과 부평은 한남정맥으로 분리된 시가지를 형성하고 있다. 중앙에서 외곽으로 확장되는 한국의 다른 광역시들과는 다르게 서쪽에서 동쪽으로 도시가 확장된 탓에 고속도로와 도시철도 등을 중심으로 도심기능이 조금씩 분산되어 있다.
2030년 인천도시기본계획에 따르면 동인천-구월, 청라-가정, 부평-계양, 송도-연수 4도심, 영종, 소래-논현, 검단 3부도심, 강화, 길상, 오류, 검암, 가좌, 용현, 만수, 옹진 9지역중심으로 인천광역시를 재편한다.
현재 인천종합터미널과 인천도호부관아가 위치한 관교동/문학동이 조선시대까지 인천의 중심지였다면 19세기 말 개항 이후 1980년대까지는 인천항과 동인천 일대가 인천의 중심이었다. 1980년대 간척사업이 완료되면서 시역이 확장된 곳[2] 에 주택단지가 조성되기 시작했고 인천광역시청이 시의 중앙에 위치한 구월동으로 이전하면서 중심지가 다시 바뀌었다. 그리고 2000년대 이후 갯벌을 매립한 청라국제도시와 송도국제도시 지역, 인천국제공항이 위치한 영종국제도시에 인천경제자유구역이 개발되면서 도시구조가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한편, 계양산-천마산-원적산-철마산으로 이어지는 한남정맥이 인천광역시를 크게 나누고 있어 옛 부평도호부 지역[3] 은 독자적으로 발전해왔다. 서로 전혀 다른 도시라고 봐도 무방한 역사.
1.1. 주요 권역별 현황
- 구월동 (도심)
교통, 행정, 금융, 문화, 예술의 중심지. 80년대 말까지 얕은 구릉지에 과수원, 목장[4] 이 이어지는 농촌지역이었으나 승기천 인근의 간척지에 서울의 제조업 공장이 이전해오고 연수구 일대에 아파트단지가 조성되면서 도시가 확장됨에 따라 당시 미개발지였던 구월동에 인천시청이 이전하면서 도심으로 성장했다.
- 부평 (도심)
일제강점기 경인선 철로가 부설되고 미쯔비씨 공장이 이전해오면서 철길을 중심으로 부평의 신시가지가 조성되었다. 원래의 부평 구읍은 현재의 계양산 아래 일대로 과거 부평도호부가 있던 곳이다. 일제가 패망한 이후에는 주한미군이 주둔하고 ASCOM 이 들어서면서 일명 ASCOM City라 불리게 되었다. 당시 미군기지의 범위는 현재의 산곡동 전체와 부평동 전체를 아우르는 크기였다. [5] 한국군 군수지원사령부 및 공수부대 등도 위치하면서 부평역에서 부평시장, 부평역에서 백운역에 이르는 상권이 형성되었다. 이후 부개동 및 굴포천 일대 등이 개발되면서 경계를 맞대고 있는 중동신도시와 삼산동-계산동에 이르는 대규모 주택단지가 연담도시화되었고 대한민국 최대의 인구 밀집지역이 배후지로 성장함에 따라 여전히 많은 유동인구를 유지하고 있다.
좁게는 동인천역 인근 지역이고 범위를 조금 넓히면 중구와 동구 일부 지역이 동인천 지역으로 분류된다. 동인천이라는 이름은 상인천이라 일컬어지던 일대의 중심이던 상인천역이 동인천역으로 개칭되면서 그 일대 지역도 상인천에서 동인천으로 바꿔 부르며 현재의 지명이 됐다. 개화기 때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인천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중심지로서 번화했던 곳이다. 그러나 도시의 팽창과 확대 과정에서 인천시청[7] , 버스터미널[8] , 명문 중·고등학교[9] 등이 이전하고 시 발전축에서 완전히 소외되었을 뿐만 아니라 1999년 인천 인현동 호프집 화재 참사로 상권과 함께 도심 전체가 몰락했다. 현재는 여러 도시재생사업이 시도되고 있고 개화기 문물이 많은 지역 특성을 관광코스로 밀면서 관광지로 떠오르고 있다. 여러 학교들이 오랫동안 터를 잡고 있었다는 이유로 분식집, PC방, 노래방, 당구장 등 10대들이 자주 찾는 공간이 많고 10대들의 문화가 유달리 다른 지역에 비해 활발한 특색이 있다. 도심 기능이 완전히 죽은 이후에도 많은 고등학교가 미처 이전하지 못하고[10]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상인천 항목도 참조.
2000년대,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목적으로 송도 간척지에 경제자유구역이 선포되면서 성장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서울에 의존하지 않는 자립형 신도시로 계획되었지만 2009년 세계경제위기로 인해 개발이 늦어지거나 취소된 계획이 많아 인천의 도심기능을 담당하기엔 성장이 더디다.[11] 2017년 1월 현재 송도국제도시는 주민등록인구 기준 11만명 이상이 거주할 정도로 성장했다.
- 부도심
경인고속도로와 주안역 등으로 교통이 발달한 주안 일대에 금융가와 유흥가가 발달해 있으며 계양구청, 연수구청 인근에도 상권이 발달해있다. 지리적으로 고립된 이유로 수인선 인천논현역 인근 상권이나 영종국제도시의 공항신도시, 영종하늘도시는 독자적으로 발전했다. 청라국제도시에도 많은 인구가 유입되었다. 검암역 인근 검암동에도 저녁이면 대리기사가 보이는등 술집이 많이 들어섰다.
- 주안 (부도심)
90년대는 부도심으로의 기능을 수행하고, 관교동과 구월동이 떠오르기 전에는 동인천과 동암, 부평과 함께 인천의 대표되는 유흥지였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부터 개발이 거의 완료된 관교동(구월동)이 새롭게 떠오르면서, 부평은 상권의 성세를 유지했지만, 주안, 동인천, 동암은 인천광역시에서 관심이 적어지면서, 상권이 위축되고 나란히 같이 몰락했다.
2. 자연지리
2.1. 지형과 지질
[image]
전국에서 갯벌이 가장 많은 곳이다. 가끔 위성사진을 보면 분명 바다일 곳인데 색깔은 회토색이나 갯풀의 빨간색이 되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앞바다 근해에는 섬 사이 거리간이 1~2km 정도 차이가 나는데 그 사이 수심은 2~30cm정도 되는 곳도 있다. 위성사진을 보면 무서울 수준
그리고 현재 인천 지역중 연수구의 70%(송도 국제도시의 경우 '''100%'''), 미추홀구의 20%가량, 서구의 절반가량, 중구의 40%[12] 동구의 20%, 남동구의 10% 정도는 매립지이다. 때문에 인천 해안의 97%는 인공 제방이나 항만 시설이다. 참고로 부산의 경우 50%정도 자연 해안이 남아있다. 애초에 강화도의 경우 60개로 나눠져 있던 섬이 고려시대때부터의 매립지 기술로 하나의 큰 섬이 된 것으로, 교동도, 석모도도 원래는 각각 세 개, 두 개의 섬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강화도 도내에선 물만 빠지면 매립 안해도 그냥 섬과 섬사이를 걸어다닐 수 있는 길이 수십개였다고 전해진다. 아직도 그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으며, 강화도가 섬인데 비해 외곽은 산지면서 내부가 평지인 이유는 매립지가 많기 때문. 게다가 소금기가 빠진 뒤로는 갯벌 덕에 지력이 풍부해 조선시대 때부터 쌀 산지로 유명했다.
해안가 매립 이전의 원인천은 그 모양새가 반도에 가까웠다.
조수간만이 심한 서해안에서도 그 차이가 가장 심한 곳으로 7~8m정도 되는데 이는 세계적으로도 드문 수치다. 외지인들이 인천앞바다에서 조난이 자주 나는 이유도 심한 조수간만의 차 때문이다.
2.2. 기후
쾨펜의 기후 구분 상으로는 온대하우기후에 속하고 한국형 기후 구분에서는 중부서안형으로 분류된다. 강수량은 중부지방 타 지역에 비해 적은 편[13] 이다. 그러나 바다에 인접한 지역 특성상 동네기상현황 같은 것을 보면 서울, 광명, 안양, 성남 등지와 같은 수도권 내륙지역보다는 습한 편이다.
[1] 이는 원도심권을 중심으로 시역을 확장하다가 다핵 도시가 된 부산광역시도 공통점이다.[2] 연수구, 서구 일대[3] 검단 지역 제외.[4] 1999년까지도 인천CGV 옆에 있는 중앙공원 일대가 젖소목장이었다.[5] 부평 비행장이 있을 정도였으니...[6] '인천의 동쪽 지역'이라는 지명 유래를 갖고 있어서 진짜 인천의 동부 지역인 남동구나 부평구를 동인천으로 오해하기도 하나 정작 동인천은 인천광역시 서쪽에 있다. 사실 동인천이라는 명칭은 인천부청(옛 인천시청, 현 인천 중구청)의 동쪽에 있는 지역이라고 해서 붙은 지명이다.[7] 현 인천 중구청 건물. 1985년에 구월동으로 시청이 이사갔다.[8] 수인선 숭의역 근처에 용현동 구 터미널이 있었지만 1997년에 관교동으로 터미널이 이사갔다.[9] 인천고등학교(율목동 현 정보산업고 부지 → 석바위), 인천여자고등학교(동인천동 주민센터 부지 → 연수동), 송도고등학교(신포동 송도중학교 → 옥련동), 인천대건고등학교(화수동 영풍아파트 부지 → 동춘동) 등. 중학교는 인일여고와 함께 있었던 인천여중이 동인천에서 동춘동으로 이사 갔고 초등학교는 축현초등학교가 동인천에서 옥련동으로 이사갔다.[10] 제물포고등학교, 인일여자고등학교, 인성여자고등학교 등. 이 중에서 제물포고와 인일여고는 나란히 송도로 학교 이전 작업을 추진했다가 지역 사회와 동문회로부터 엄청나게 욕을 먹고 학교 이전 계획을 철회했다.[11] 덕분에 구월과 송도 사이에 있는 연수가 수인선 개통 이후 부도심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12] 영종도의 절반 정도[13] 강수량이 정말 적다. 서울에서 폭우가 내릴 때 인천은 비 한 방울 안 올 때가 많다. 이러한 연유인지 SK 와이번스의 홈구장인 인천 SK행복드림구장의 우천 취소 경기수는 수도권의 다른 경기장보다 적은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