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

 


諸葛
1. 개요
2. 역사
2.1. 남양제갈씨세보
3. 인물
3.1. 실존 인물
3.1.1. 역사적 인물[1]
3.1.2. 근현대 인물
3.2. 가상 인물
4. 기타


1. 개요


한나라 태산군 승(丞) 제갈규를 시조로 삼는 성씨의 하나. 중국대한민국의 성씨 중 하나이며, 드물게 일본에도 이 성씨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 독음은 모로쿠즈(もろくず) 통계청 성씨별 인구 순위 조사 결과 2015년 기준 5655명이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으며 본관은 남양 단본이다. 칠원 씨와 남양 씨가 남양 제갈씨에서 분화된 성씨이며 이들은 모두 이성이본(異姓異本)의 동성이 된다.[2]
국내의 제갈씨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경기도 가평군, 전라남도 곡성군 일대에서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그 중 달성군과 곡성군에는 제갈량을 기리는 무후사가 건립되어 있으며, 대구광역시 영모재의 무후사는 1947년, 곡성군무후사는 1903년에 각각 세워졌다. 두 군데 모두 지역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2. 역사


한국의 제갈씨는 제갈량의 아버지 제갈규를 시조로 삼는다. 제갈규의 5세손인 제갈충(諸葛忠)이 한나라가 망하자 위(魏)나라에 불만을 품고 미추 이사금 치세의 신라로 망명하여 지리산에 살기 시작하였는데, 그 이후로 후손들이 신라에서 벼슬을 하거나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는 등의 변천사를 겪다가 21대손 제갈공순(諸葛公巡)이 신라 흥덕왕 때 공식적으로 귀화하여 우리나라 제갈씨의 중시조가 되었다. 정사 삼국지 오서 제갈근전에 단 배송지의 주석에 따르면 제갈근의 선조 갈씨는 낭야 현 사람이지만 집을 양도로 옮겼고, 양도에는 전부터 갈씨 성을 가진 자가 있었는데, 그 당시 사람들이 여러 현에서 옮겨 온 갈씨를 제갈이라고 불러서 갈씨에서 제갈씨가 되었다고 한다.
제갈충은 제갈량의 증손자로 알려져 있다. 제갈충은 제갈경의 아들이며 또한 제갈경은 제갈첨의 차남이라고 한다. 제갈량의 아들인 제갈첨은 유선의 딸과 결혼하여 부마가 되었으므로, 이와 같은 유래에 한치의 틀림도 없다면 '''한국 제갈씨는 제갈량은 물론이고 유비의 후손이기도 한 셈'''. 물론 여기에도 이설은 있어, 제갈충은 제갈첨의 차남인 제갈경의 아들이 아니라 제갈첨과 함께 촉한 멸망시에 면죽관에서 전사한 장남 제갈상의 아들이라고도 하고 아예 단지 제갈규의 5대손이라고만 전하기도 하여, 자세한 내막은 정확히 알 수 없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그리고 제갈충이 제갈경의 아들이면 제갈규의 5대손이 아니라 4대손이 된다.
결국 제갈규의 5대손일 뿐이라는 단서만을 따르자면 한국의 제갈씨는 제갈량의 동생인 제갈균의 4대손일 수도 있고 제갈근의 아들이자 제갈량의 양자였던 제갈교의 손자 제갈현이 제갈각의 삼족이 멸족된 뒤 다시 제갈근의 후사를 잇게 되었으므로 오나라 제갈씨의 적자인 제갈현을 제외한 그의 동렬 형제의 후손이 될 수도 있다. 이처럼 구체적인 내용에 확신을 가질 수는 없지만, 한국 제갈씨 유래의 공식적인 내용은 아무튼 제갈규의 5대손인 제갈충이 신라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게 된 이래 그 후손이 중국으로 한번 귀환하였다가 제갈규의 20대손에 해당하는 제갈공순이 9세기 초 다시 신라로 귀화함으로써 한국 제갈씨의 중시조로 일컬어지게 되었다는 것.[3]
물론 당연하겠지만 모든 제갈씨가 망명한 것은 아니라서 여전히 중국에는 제갈량, 제갈근의 후손들이 건재하며 팔괘촌을 비롯한 제갈씨의 집성촌들도 관광 명소로 알려져 있다. 현존하는 제갈씨는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물론 같은 가문이지만, 중국의 제갈씨는 제갈탄의 아들 제갈정의 후손의 비율이 제갈규의 후손보다 더 높은 편이라고 한다. 한국의 제갈씨는 오직 귀화한 제갈규의 5대손 일족 뿐이지만 중국에는 제갈규의 후손 중에서도 제갈량, 제갈근, 제갈균 등 오남매 모두를 비롯해서 그들과 비교적 멀지 않은 촌수일 제갈탄, 제갈서, 제갈직낭야군 출신의 동향 친족들은 물론이고 당대의 모든 제갈씨들이 번성하고 그 후손을 남겨 대를 이어왔기 때문에, 한국의 제갈씨가 제갈량의 후손임이 틀림없다는 단서 하에서 오히려 한국에 제갈량의 고유한 피와 유전자가 더욱 독보적으로 전해지고 있는 역설적인 그림이 되는 셈이다.
또 고려 현종(顯宗)때 제갈홍(泓)과 제갈형(瀅) 두 형제가 군(君)에 해당하는 고위의 벼슬을 각각 받자, 자신만의 성씨를 가질만한 신분이 되었으므로 제씨와 갈씨로 분성하여 각각의 시조가 되는 일도 있었는데, 대한제국 광무 기해년(1899)에 중추원과 장례원에 상청하여 복성을 허락하는 판결이 내려졌다. 이로써 일부 제씨와 갈씨가 다시 제갈씨로 복성하였다고 한다.
때문에 한국에는 현재 제갈씨, 제씨, 갈씨가 모두 존재한다.

2.1. 남양제갈씨세보


다음은 남양제갈씨세보(南陽諸葛氏世譜)에 기록된 인물들이다.
1세 - 한나라 태산군 승
2세 - 촉한 승상 무향후
3세 - 촉한 군사장군 서향후
5세 충[4] - 신라로 동도
6세 경 - 신라 기림왕조 아보
7세 면구 - 신라 흘해왕조 천문록위
9세 걸 - 입중국, 요동후
13세 덕 - 운수공, 당태종의 스승
18세 현 - 당나라 한림학사
20세 석 - 당나라 서하태수
21세 공순 - 당나라 닥종조 간의대부, 신라로 동도
22세 시 - 신라조 호부시랑
29세 여문 - 고려 태조조 비서승
30세 명 - 고려 태조조 상장군 벽상공신
38세 춘 - 고려 인종조 신도태수
38세 위 - 고려 명종조 찬례교위
41세 문유 - 고려 고종조 구산부원군
42세 현 - 고려 충숙왕조 사마, 화산부원군
43세 인규 - 고려 충정왕조 어사
44세 성룡 - 고려 우림대장, 조선 태조 증 복국숭록대부
45세 원 - 조선 태조조 성주군, 세종조 대구부원군
48세 공뇌 - 조선 중종조 금위대장(금위공파)-지계
49세 호 - 조선 선조조 의병장, 증병조판서(충의공파)-종계
51세 천일 - 조선 성균관 진사(진사공파)-지계
52세 자경 - 효종조 병조판서.

3. 인물



3.1. 실존 인물



3.1.1. 역사적 인물[5]


*제갈댄동

3.1.2. 근현대 인물


  • 제갈경배(諸葛敬培) - 1960년생. 前 행정공무원. 행정고시 27기 출신으로 대전지방국세청장(2급)을 역임하였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출신으로 성광고등학교와 연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였다.
  • 제갈곤 - 가수 김성수의 전처 강모 씨 살해 사건의 범인.
  • 제갈규동(諸葛圭桐) - 제갈량의 63대손으로 1980년생이다. 경희대학교에서 국제경영을 전공하고 중국어를 복수전공하였고,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전공 석사과정이다. (주)세잎누리 대표이사이다.
  • 제갈민 - 가수. 1991년에 댄스그룹 '제갈민과 울랄라'로 데뷔. 아래의 제갈삼 교수는 그의 작은 할아버지라고 한다(참조). 가수로서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제작자로는 대박을 터트렸다. 박효신을 제작 데뷔시킴. 그후 더네임, 투샤이, 국태하등을 제작하였으며 백지영, 박화요비, 차지연의 보컬 트레이너로도 활동했다. 루이지애나 공과대학교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하였다.
  • 제갈삼(諸葛森) - 한국의 피아니스트. 국내 최고령 피아니스트이다. 前 부산대학교 음악학과 교수
  • 제갈성렬 - 한국의 전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감독.
  • 제갈엽 - 건축가. 성균관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대학원 건축계획 석사,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 대학원 건축디자인 박사를 취득하였다.
  • 제갈인철 - 북뮤지션을 지양하는 작가이자 가수.
  • 제갈영순 - 現 경일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 2001년에 마르퀴즈 후즈 후 인 더 월드에 등재되기도 하였다. 경북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하고 카이스트 화학과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 제갈영종(諸葛榮鍾) - 前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외과학 교수.
  • 제갈옥남(諸葛玉男) - 스포츠기관단체인. 명지고등학교 교사, 한국중고빙상경기연맹 이사, 대한빙상경기연맹 이사 등을 역임하였음.
  • 제갈용준 - 한국의 군인.
  • 제갈원영(諸葛院英). - 1956년생. 現 인천광역시의회 의원, 7대 의장(후반기). 인천광역시 출신으로 제물포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 제갈윤 - 1964년생. 한국의 공연 음악 감독. 前 안양대학교 공연예술학과 조교수. 연세대학교 작곡과를 졸업하고 노스 텍사스 대학교 대학원 퍼포먼스 석사 및 국민대학교 대학원 문화학 박사 등을 거쳤다.
  • 제갈융우(諸葛隆佑) - 1945년생. 前 법조인. 사법시험 11기 출신. 인천지방검찰청 검사장과 대검찰청 형사부 부장검사 등을 역임하였다. 대구광역시 출신으로 경북고등학교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 제갈정웅(諸葛政雄) - 1945년생. 제6대 대림대학교 총장 역임. 강원도 강릉시 출신으로 경기고등학교서울대학교 상과대학을 졸업하고 일리노이대학교 시카고캠퍼스 대학원과 서울과학종합대학원대학교에서 각각 경영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 제갈춘(諸葛春) - 前 공군 대령. 1965년 공군 제107기지단장(現 제11전투비행단)으로 소독용 알코올·부식용 콩·부동액·차량부속품 등의 군수물자를 빼내어 민간인들에게 수차례 팔아온 혐의로 구속된 바 있다. 기사 1, 기사 2
  • 제갈명식(諸葛明植) - 1979년생. 한국의 전기차 산업 전문가.

3.2. 가상 인물


성씨가 특이한데다 제갈량의 후손이라는 점 덕분에 멋있어 보이는지 각종 작품, 특히 무협지의 등장인물 이름에 자주 쓰인다. 제갈량의 영향인지 머리가 좋게 그려지는 경우도 상당수.

4. 기타


발음은 동일하지만 한자가 다른 제갈('''諸渴''')씨[6]도 존재한다. 2015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전국에 5명이 존재하는 극히 희귀한 성씨. 하지만 이 성씨는 제갈(諸葛)의 전산 오류일 가능성이 거의 100%다.

[1] 이들 절대 다수가 한 시대 사람들이다.[2] 제씨와 갈씨는 제갈씨에서 비롯된 역사를 법원으로부터 인정받아, 본인이 희망하면 법원 판결을 통해 제갈씨로 복원하는 것이 가능하다.[3] 제갈규의 4대손 제갈경은 제갈첨과 제갈상의 사후, 그리고 촉한이 멸망한 이후 진晉나라에서 벼슬을 하기는 하였지만 망국의 설움 때문이었는지 결국 그 아들 제갈충이 신라로 망명하였고 진의 멸망 이후 중국으로 돌아갔던 제갈충의 후손이 환관들이 황제들을 줄줄이 살해하는 당나라 말 혼란기에 다시 신라로 건너온 이래 한반도에 완전히 정착하였다고 한다.[4][5] 이들 절대 다수가 한 시대 사람들이다.[6] 이 항목의 제갈 씨는 '칡 갈(葛)'을 쓰지만 이 제갈 씨는 '목마를 갈(渴)'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