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국(국가)

 






'''진국
辰國'''

[image]
'''존속 기간'''
기원전 3세기? ~ 기원후 2세기?
'''위치'''
한반도 남부(추정)
'''종족'''
한(韓), 예맥
'''정치 체제'''
제국('''諸'''國)
'''국가 원수'''
신지·견지(대군장)
읍차·부례(소군장)
/(韓王)[1]
혹은 진왕(辰王)으로 추정
'''언어'''
불분명
'''주요 사건'''
기원전 2세기
준왕의 남하, 국가 건설(?)[2]
전한과의 통교 중단[3]
? 년 소멸
마한, 변한, 진한의 성립[4]
'''성립 이전'''
부족 사회[5]
'''성립 이후'''
삼한[6]
'''현재 국가'''
대한민국, 북한 일부 지역
1. 개요
2. 문헌적 증거
3. 관련 서적
4. 고고학적 근거?
5. 언어
6. 왕사
7. 현재 역사학에서의 진국의 위치
8. 발해, 태봉의 '진'과의 관계?
9.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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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진국'''(辰國)은 고조선[7]부여와 같은 시대에 한반도 중부와 남부에 존재했던 국가 혹은 국가들의 연합체를 통칭하는 명칭이다. 다른 말로 개국(蓋國)이라고도 한다.

2. 문헌적 증거


기록상에서 진국이 역사에 나타난 사례는 다음과 같다.

辰韓者古之辰國也

진한은 옛날의 진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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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 삼국지(三國志). 한(韓)의 기록'''}}}

韓有三種 一曰馬韓 二曰辰韓 三曰弁辰 … 凡七十八國 … 皆古之辰國也

한은 세 갈래가 있는데 마한, 진한, 변진(변한)이 있으며... 모두 78개국이다... 전부 옛날의 진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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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서(後漢書) . 한(韓)의 기록'''}}}
후한서에는 삼한 모두의 옛땅이 辰國으로 표현되어 있어 위 항목 삼국지의 기사와 큰 대조를 보인다.

魏略曰 初右渠未破時 朝鮮相歷谿卿以諫右渠不用 東之辰國 時民隨出居者二千餘戶

일찍이 우거(右渠)가 격파되기 전에, 조선상(朝鮮相) 역계경(歷谿卿)이 우거에게 간(諫)하였으나 (그의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동쪽의 진국(辰國)으로 갔다. 그 때 백성으로서 그를 따라가 그 곳에 산 사람이 2천여 호(戶)나 되었는데, 그들도 역시 조선(朝鮮)·진번(眞番)과는 서로 왕래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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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 삼국지』의 「오환선비동이전」'''}}}
위략(魏略)』 「동이전(東夷傳)」의 기록을 삼국지에서 인용했다.

傳子至孫右渠, … 眞番·辰國欲上書見天子, 又雍閼弗通.

(위만의 왕위는) 아들에게 전하고 손자 우거까지 이르렀다. (중략) 진번과 진국이 천자께 글을 올리려 했으나 조선이 계속 가로막고 있어 한나라와 교통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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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漢書)』 권95 「서남이양월조선전(西南夷兩粤朝鮮傳)」 조선(朝鮮)의 기록'''}}}
전한과 통교하려했다는 기록은 존재하나, 어디까지나 한나라측 기록이고, 국가단위의 무역을 할만큼 세력을 갖추었다고 보기는 힘든 기록이다.

"'''내가 몸소 다니며 약취(略取)해 온 한인(韓人)예인(穢人)들만을 데려다가 무덤을 수호·소제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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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대왕릉비』'''}}}
또한 진국이라는 명칭이 직접적으로 나타나지 않지만 진국을 의미한다고 파악하는 내용은 더 있다.
하나는 위만 이전 고조선 지배자인 준왕(기원전 250년경 인물)이 고조선 왕좌에서 쫓겨난 이후 남쪽 한지로 와서 한왕을 칭했다는 기록이며 다른 하나는 삼한 성립 후 마한의 맹주인 목지국 왕이 진왕이란 칭호를 가지고 있었다는 기록이다. 이 때문에 진왕 또는 한왕이라는 명칭이 진국을 대표하며 이후 원삼국시대 대 중국 교류 등에 있어 목지국 왕이 대표로서 진왕을 칭한다고 파악하기도 한다.
그리고 사기에는 판본에 따라 ‘진번방중국(辰番旁衆國)’, ‘진번방진국(辰番旁辰國)’ 두 가지 기록이 공존한다. 이에 진국을 역사적인 실체로 인정하는 입장이 있는 반면 진번 곁에 있는 중국(衆國), 즉 여러 나라라는 보통 명사로 해석하는 입장도 있다. 따라서 진국이라는 존재 자체를 부인하거나, 또는 진국을 여러나라 중의 하나로 보는 등 그 설이 다양하다.
이들 중 『후한서』를 근거로 하여 진국을 한반도 남부 지역의 토착 정치 집단군 전체에 대한 명칭으로서 ‘신지(臣智)의 나라’라는 뜻을 가진 집합 명사로 이해하기도 하며 이와 달리 『삼국지』의 자료를 취하면서 진국을 중남부 일부 지역에 성립되어 있었던 특정 집단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즉, 진국이란 요동(遼東)의 세력이 점점 남하하여 지금의 경상도(진한)에 최종 정착지를 얻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한반도 중부 지역에 세운 정치 집단이라는 것이다. 또, 위만(衛滿)에게 쫓겨나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 일대에 자리잡은 고조선 준왕(準王)의 치소가 진국이며, 이 준왕계의 진국이 경상도 지역으로 이동해 진한의 일부를 구성했다는 해석들이 있다
하지만 자세한 기록들이 거의 없어 관련한 통일된 학설도 없으므로, 교과서에서는 다루지 않는다.

3. 관련 서적



4. 고고학적 근거?


기원전 7세기 한강 이남의 비파형 동검 문화는 기원전 4세기 이후 요동 및 만주 지방의 영향을 받은 세형동검 문화권으로 전환되며 북방의 고조선과 독립적인 문화권을 형성한다. 이 시기 수많은 성읍 국가들이 나타나고 이들이 정치적 통합을 거쳐 연맹 형태로 이루어진 게 최초의 진국이 아닌가 추측되고 있다. 아니면 가야와 비슷하게, 실제로 1개의 통합된 나라가 아니라 그냥 그 일대 작은 국가들 여러 개를 통틀어서 가리키는 명칭일 수 있다.[8]
고고학적 관점에서 진국은 기원전 3세기∼2세기경 중남부 지역의 세형동검문화(細形銅劍文化)의 중심지인 충청남도와 전라도 일대를 중심으로, 청동기 제작과 보급을 통해 원거리 교역을 주관하면서 일정한 범위의 정치 집단들을 통할하던 정치적 구심체로 해석할 수 있다.
진국 사회는 정치적인 지배자가 농경 의례를 비롯한 각종 제사 의식과 교역을 주관하는 동시에, 농경 기술을 지도하거나 행정·군사 기능을 겸하는 제정일치사회(祭政一致社會)였다고 본다. 그리고 이 지배 집단의 주된 묘제는 석관묘(石棺墓)와 석곽묘(石槨墓)·토광묘(土壙墓)였다. 경제적으로는 석제 농기구와 목제 따비·괭이를 사용해 벼와 함께 조·기장·수수 등 잡곡을 경작하는 농업 경제를 기반으로 한 사회였다.
근래에 조사된 진국 시기 지배자의 대표적 분묘 유적으로 충청남도 당진 소소리 유적, 부여 합송리 유적, 전라북도 장수 남양리 유적이 있다. 이들 유적에서는 세형동검·동과·동모·세문경과 함께 중국 전국 시대의 주조 철제 도끼·끌 등이 부장되어 있어, 대동강 유역과의 교류 관계를 시사하고 있다.

5. 언어


진국 사람들이 쓴 언어가 정확히 어떠하였는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알렉산더 보빈 등의 역사언어학적 연구에 따르면 이들이 쓰던 언어는 한국어족이 아니라 일본어족이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단, 이와 관련해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이 '일본어족'이라는 것은 '일본' 내지는 '일본인'이라는 정체성과는 관련이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 시기에는 '한국인'이니 '일본인'이니 하는 정체성은 형성되지 않았고, 그저 각 지역별 사람이었을 뿐이다. '일본어족'이라는 표현은 한일 양국의 민족적인 감정으로 인해 오해를 부르기 딱 좋지만, 민족 정체성과는 별개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납득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이해하기 어렵다면 미국을 생각해 보면 된다. 미국의 중심 민족이 게르만 계통인 앵글로색슨족이라고 독일사나 영국사가 미국의 역사가 될 수는 없으며, 영국인이나 독일인이 미국인이라는 말이 될 수도 없다.[9] 마찬가지로 한반도 남부의 진국에 왜계 민족이 살고 있었다고 한들, 이들을 일본인 내지는 일본사와 연관지어 생각하는 것은 동아시아 특유의 강력한 민족주의에 따른 함정에 빠지는 것이다. 만약 그저 일본어족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이 일본인이라거나 진국이 일본 역사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왜계 민족이 주류가 아니던 일본의 조몬 시대는 일본사가 아닌 조몬인만의 역사로 다루는 것에도 동의해야 한다.
보빈의 연구에 따르면 늦어도 3~4세기 무렵이면 북방의 한국어족 계통의 부여계 민족들이 남하해 일본어족 계통의 화자들을 완전히 동화시키거나 떠나 보냈고, 이것이 일본 열도의 도래인 출현의 핵심이었다고 본다.[10] 즉, 이에 따르면 진국 이후 삼한 시대에 이르러서는 사실상 한반도 전역이 부여계 민족 또는 그에 동화된 사람들의 권역이 되었다.

6. 왕사


문헌에 따르면 마한인 중에서 왕이 나왔고, 목지국을 중심으로 삼한 전체를 다스렸다고 한다. 목지국의 거수(渠帥, 군장)가 대대로 세습. 상세 내용은 진왕(辰王) 문서 참조.
대수
시호
세습 지위

재위기간
비고
??
?
진왕(辰王)
?
? ~ ?
역계경(歷谿卿)이란 인물이 이주.

7. 현재 역사학에서의 진국의 위치


진국과 관련 있는 사료에 대해서는 논쟁이 많다. 북한 학계의 경우 진국을 삼한 지역을 지배한 단일 국가 체제로 인식하지만 대한민국 학계는 북한 학계의 주장에 회의적인 입장이다. 이유는 진국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다는 것을 고사하고라도 그 큰 땅덩어리를 가지고 나라의 구심점이 될 만한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중국 연나라와 인접해 좋든 싫든 영향을 주고받았던 한반도 북부지역은 여러 근거를 통해 늦어도 기원전 4세기쯤이면 여러 성읍국가를 기반으로 한 고조선이라고 부를 만한 정치적 연맹체가 성립됐음이 확실하다. 그러나 한반도 남부는 지석묘를 만들던 청동기 시대 단계에서는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여러 지역이 결속해 단일 국가라고 할 만한 것이 출현했다고 할 만한 고고학적 근거가 보이지 않는다. 한반도 남부에서는 철기 시대 단계 이후에나 그런 모습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삼한 이전에 진국이라는 '단일 국가'가 일단 있었다고 치더라도, 이후 시대 삼한은 100여 개의 나라가 있었다고 하며 그 위치는 대개 현재 우리나라의 도시 하나 수준이다. 상식적으로 대한민국만한 크기의 나라가 망한다고 갑자기 100개의 성읍 국가 단계로 후퇴해버리고 그 상태로 재결집 시도도 딱히 없이 몇백년쯤 계속 이어진다는 것이 가능할 수 없다. 정말 진이라는 단일국가가 존재했다가 망해서 사라진 거라면, 그 진에 속했던 지역에서 옛 진의 영역을 수복해 재통일하려는 움직임이 있어야하는데, 신라와 백제 시대에 이르러서도 이 지역 구성원들이 그런 계승의식이나 연대의식을 가진 정황은 찾을 수가 없다. 이는 역으로 현 충청 경상 전라의 삼남지방을 아우르는 단일집단이 존재한 적 없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그리하여 남한 학계는 진국을 위서 동이전에 나온 기록을 말 그대로 해석하여 진한의 전신으로 보거나 마한 목지국 왕이 삼한을 대표했다는 점에서 형식적인 대표자를 의미하는 정도로 파악하는 상황이다. 혹자는 이것이 우리가 단일민족이라는 의미인 등으로 해석하나, 고대 국가는 민족 개념과 무관하다. 또 고대의 사료는 대개 명확하지 않은 전달 체계와 시공간 관념에 의거하여 쓰여졌으며 이를 19세기 이후의 근현대적 관념으로 해석하는 것에는 많은 무리가 따른다는 점을 명심하자. 고대 역사 사료의 일부분을 가지고 확신을 가지고 '이것이 ...의 증거다'라고 말하는 것은 유사 역사학으로 주화입마하는 가장 큰 길이 된다.

8. 발해, 태봉의 '진'과의 관계?


발해 건국 초기의 국호인 진국(震國, 振國) 혹은 진단(震旦), 궁예태봉(후고구려)을 세운 뒤 중간에 잠시 썼던 국호인 마진(摩震) 등이 진국과 연관이 있다고 썼으나 근거가 너무 박약하다. 마진은 불교의 마하진단(摩訶震旦, Maha Cinisthana)을 줄여서 끼워맞췄다는 추측이 있다.[11] 고대 음가를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발음이 같은 이두라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 역시 무리다. 그저 연관성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수준이다.

9. 같이 보기


[1] 고조선에서 온 준왕이 사용한 칭호이지만, 준왕이 진국의 통치자가 되었다는 것도 하나의 전설일 뿐이기에 진국의 국가 원수의 칭호를 한왕으로 단정짓기는 어렵다. 고고학적으로 전혀 실체가 없으며, 오히려 준왕이 진국의 나라 중의 하나인 목지국에게 굴복했다는 설도 있기 때문이다.[2] 준왕이 남하하여 국가를 건국하고 쌓은 산성이 있다고 전해지는 산성이 있는 등 설화가 많다.[3] 고조선의 통교 방해로 인해 한과의 직접 교류가 어려워졌으며 이는 한이 고조선에 대해 적대적 정책을 취하는 계기 중 하나로 작용한다. [4] 마치 국가가 분리된 것처럼 이해하는 경우가 있으나 완전한 뇌피셜. 그냥 삼한은 진국과는 별도로 한반도 각지의 마을에서 생겨난 여러 초기 국가들을 의미한다. 애초에 진국은 존재 자체가 불분명하고. 아래 설명처럼 국가들의 연합체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5] (성읍국가/도시국가)[6] 마한(목지국과 그외 국가들이 주변을 주도하다 백제에게 점차 통합된다.), 진한(진한의 국가 중 하나인 사로국이 마한,변한,진한을 모두 통합한다.), 변한(삼국시대 전기까지 구야국이 변한의 국가들을 주도하고 삼국시대 후기까지는 반파국이 주도했다.)으로 6세기에 모두 병합되었다.[7] 단군조선 기원전 4세기 ~ 기원전 2세기, 위만조선 기원전 2세기[8] 가야도 역사학계에서 서로 어느 정도 이어진 연맹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근래에는 그냥 여러 작은 나라가 있는 지역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견해들이 나오고 있다.[9] 좀 더 상황에 일치하는 비유를 하자면 고대 스페인에 켈트인들이 살았다고 이를 아일랜드 역사라고 우기는 꼴이다.[10] 고고학적으로는 비파형동검의 한반도 남부식 형태인 '세형동검'의 등장으로 나타난다.[11] 혹은 마한, 진한의 합칭이라는 추측도 있지만, 미륵 이미지나 불교문화의 것들을 정치에 써먹은 궁예의 성향상 마한 진한의 합칭일 가능성 보다는 마하진단 쪽일 가능성이 압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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