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 영웅의 부활
1. 개요
초한쟁패기의 인물인 유방과 항우 그리고 한신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 난징! 난징!으로 유명한 감독인 루추안이 만들었다. 국내에서는 관객이 만명도 되지 않는 등 고전했지만 초한쟁패기를 다룬 작품들 중 최고의 고증 수준과 내용을 자랑하는 수작이다.
2. 줄거리
2.1. 기
초한쟁패기의 혼란을 극복하고 황제의 자리에 오른 유방은 악몽을 꾼 후 잠에서 깨어난다. 악몽의 내용은 항우와 한신의 군세를 보고 두려움에 떠는 내용. 이 모습을 척부인이 안쓰럽게 보는 가운데 여후가 의미심장하게 들어온다. 뒤이어 들어오는 소하가 한신을 데려왔다면서 그의 목을 내밀자 유방은 장례를 잘 치러주라고 명령하나 이윽고 유방은 자신의 '패현의 유계(劉季)'[1][2] 라고 지칭하는 조소를 들으며 과거 회상으로 들어간다.
과거 유방은 도적 떼와 다름 없는 형제들을 이끌고 설(薛)에 주둔하고 있는 항량을 찾았다. 이유는 고향인 풍읍(豊邑)을 되찾고 아내인 여후를 구하기 위함. 하지만 범증을 위시한 항량 군이 그의 허풍[3] 을 비웃는 와중에 갑자기 큰 비가 내린다. 갑분싸의 분위기 와중에 유방이 분위기를 돌려보려 금방 그칠 비라고 하는데 묘하게도 정말 비는 그쳐버린다. 항량은 유방을 죽이라고 명령하고 유방의 부하인 하후영 등은 반항하지만 사지에 몰린다. 하지만 항우가 묘하게도 그를 감싸줬고 항백 역시 재주가 아깝다며 살리자고 하자 항량은 마음을 거두고 유방은 살아난다. 거기에 더하여 갑옷을 받고 군사 역시 지원 받게 된다. 그리고 이 당시 유방의 모습은 천하를 호령하는 항우와 전우가 된 것으로 기뻐하는 소박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이윽고 장면은 다시 전환돼서 현재 늙은 유방은 기록중인 사관에게 묻는다. 한치의 거짓도 없이 자신의 일을 기록하라고...[4]
다시 과거의 일로 돌아가서 유방은 항우가 준 지원군 덕분에 고향을 되찾고 남편 때문에 감옥에 갇힌 여후 역시 석방시키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아내의 모습을 보고[5] 분노하는 찰나 그의 사생아인 유비(劉肥)[6] 의 존재를 들키게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진나라의 멸망을 위해서 고향을 떠난다. 그리고 애증 관계[7] 인 아내가 떠나는 자신을 안쓰럽게 보는 모습을 평생 잊을 수 없다고 독백한다. 하지만 다시 만났을 때는 한창 유방과 항우가 천하를 다투며 아내는 항우의 포로가 된 상태였고 다시 그녀가 돌아왔을 때 유방은 척부인과의 사이에서 아들 유여의(劉如意)[8] 를 보는 등 어떻게 할지를 모른다. 그리고 척부인을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보는 여후의 모습은 후반부 그녀의 모습에 대한 복선이 된다.
2.2. 승
과거를 돌이켜보며 힘 없이 누워 있던 유방은 번쾌, 소하, 장량 등의 신하를 만난다.[9] 뒤이어 그가 언급한 사람은 천하통일의 일등 공신 한신. 한신은 영화 상으로 통일 된 직후 유방의 의심을 받아 수감돼서 갇힌지 6년이 지난 상황이었다. 유방은 한신에게 역심을 왜 품었는가를 묻지만 오히려 한신은 논리적으로 반박하며[10] 오히려 자신은 평범한 사람이라 용의 아들인 유방을 어떻게 이기겠냐고 그의 아픈 곳을 자극한다.[11] 이에 분노하지만 유방은 그를 죽이지 않고 장량이 집으로 데려가 감시토록 한다. 그리고 다시 궁궐로 돌아오던 유방은[12] 먼 옛날 그가 천하에 대한 야심을 품었던 때를 회상한다. 강소성 출신의 정장(亭長)[13] 인 그가 진나라의 수도인 함양을 정복한 모습, 구중궁궐 가운데서 보잘 것 없는 자신의 신상을 볼 수 있는 등 천하를 손에 쥔 자의 권력, 그리고 궁궐을 거닐며 왕후장상 영유종호를 외치던 모습을...
이렇게 야심을 품었던 그지만 장량과 대화를 나누며 다시 너절했던 과거를 떠올린다. 야심에 취해 함양의 진왕궁에 들어가고 함곡관을 막았다가 항우의 노여움을 사고 항백에게 빌어서 목숨을 건질 기회를 겨우 얻었던 것. 이 과거가 원인이 된 것인지 항백을 궁궐에 불러서 아부를 받지만[14] 오히려 항우의 친척인데 왜 자신에게 붙었냐는 말로 몰아붙인다. 여기에 더하여 소하를 불러서 한신이 여전히 불만이 많으며 딱 한번 조정에 나와서 말 없이 뚱하니 있다가 간 것을 지적하며 죽여버리겠다고 일갈한다. 이에 소하가 말리지만 흥분하여 각혈하는 등 몸이 나빠지기 시작한다.[15]
2.3. 전
이번에 그가 돌이킨 과거는 홍문연이었다. 항백에게서 간신히 항우에게 목숨을 빌 기회를 얻은 유방은 장량과 함께 진나라의 옥새를 바친다. 이윽고 시작되는 연회에서는 항장이 그의 목숨을 노리고 항백이 감싸며 죽을 고비를 넘기는 등 그의 말대로 그는 생선이고 항우는 생선 가게 주인이었다. 항우는 일련의 소란 후 유방에게 진왕궁에 들어갔는지를 취조하지만 유방은 거짓말로 위기를 넘기고 역사대로 숙취를 핑계로 자신의 진영으로 도망친다. 그리고 유방은 고백한다. 항우가 알고도 자신을 놓아준 것임을...
제후왕 분봉으로 한왕(漢王)의 자리를 받은 유방은 역설적이게도 타도의 대상인 진왕 자영의 죽음에도 기뻐하지 않는다. 자영의 말대로 그의 야심이 통일이라는 이념을 계승 받아 각 나라의 자유로움을 역설한 항우를 타도할 검이 된 것. 하지만 기묘하게도 항우는 이를 알고도 유방을 내버려뒀고[16] 이윽고 이 나비효과로 유방은 한신을 소속에 넣고 천하통일에 나선다.
항우와 전쟁을 한지 5년만에 유방은 항우를 해하전투에서 몰아 붙인 후 사지로 모는데 성공한다. 최후의 전투 전 우희가 자결하고 사촌 동생인 항장을 비롯한 최후의 부하 26인이 장렬히 전사하는 가운데 항우는 홀로 남는다. 하후영의 신호에 맞춰서 항우를 궁병들이 화살로 쏴 죽일찰나 한신은 그 명령을 거두고 항우는 자결한다. 하지만 이런 한신을 보는 유방의 모습은 두려움에 찬 모습이다.[17]
장량이 한신을 자신의 집에 데리고 있지만 한신은 두문불출하며 달라진 모습을 보이진 않는다. 제나라 왕 자리를 요구한 것[18] 은 자신의 전공에 비하면 별 것이 아니였고 장량이 약이나 다리며 있는 것은 의심에 찬 유방에게 자신의 무력함을 보이기 위함이 아니냐는 것. 이에 장량은 한신의 그러한 날카로운 모습이 스스로를 벨 것이라 경계하지만 오히려 한신은 왕후장상 영유종호를 외친다. 그리고 항변하기를 천하는 오직 천하인(天下人)들의 천하일뿐이다라는 말을 하지만 장량은 현실이 달라졌음을 직시해야 한다고 한탄할 뿐.
여후는 장량에게 한신이 어떤 말을 했는지를 짚으며 그를 제거할 것을 요구한다. 저항하던 장량은 이윽고 그에 동의하게 되고 한신의 수족들이 야금야금 제거당한다.
소하는 역사를 기록하는 관리들을 힐책하며 홍문연의 기록을 따진다. 유방을 구한 것은 한신이었다고. 그 순간 여후가 들어오며 역사의 이면과 진실이란 조작될 수 있음을 말하며 소하의 기록[19] 는 스스로 정하도록 하고 소하 역시 굴복하고 만다.
2.4. 결
영화의 제목[20] 대로 큰 잔치가 열리니 한신에게 입궁하라고 소하는 전하고 한신 역시 자신의 최후를 직감하며 궁으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천하의 명장이 죽으러 가는 와중 날씨는 역설적이게 맑고 화창하며 한신의 과거 회상이 시작된다. 큰 뜻을 품고 고향을 떠나 돌아다니며 고생하던 한신은 유방을 우연히 만나게 된다.[21] [22] 배를 곯으며 눈치를 보던 한신에게 유방은 말 없이 주먹밥을 주고 이에 어리둥절해 하는 한신에게 유방은 웃어 보이며 갈 길을 간다.[23] 시간이 조금 지나 천하를 호령하던 항우를 만나 부하가 된 한신이지만 오히려 항우의 말타기 셔틀로 쓰이는 등 중용받지 못하자 설렘을 품고 유방에게 찾아와서 대장군에 오르고 같이 천하를 정복하기 시작한다.
이윽고 회상이 끝나고 소하는 한신을 씁쓸히 배웅하고 한신은 여후를 위시한 궁궐의 신하들이 자신을 내려다보는 상황에 처한다. 여후는 과거의 공을 참작하여 역적이지만 신체를 보전해 교수형에 처하겠다고 하며 한신은 목이 졸리는 가운데 유방에게 큰 뜻과 희망을 가지고 향하던 자신을 떠올리며 사망하게 된다.
사망한 한신의 목을 소하는 울면서 자르고 유방에게 달려가서 그가 바라던데로 자신이 한신을 데려왔다고 고하지만 죽어가는 유방은 소하를 알아보지도 못한다. 그리고 유방은 여후에게 옛날에 자신이 용의 아들이라는 헛소문 때문에 죽을뻔 한 것을 기억하냐고 읖조린 후 조용히 사망한다.
그리고 사후의 유방이 독백한다.
'''자신의 운명은 홍문연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매 순간이 홍문연이었고 그리고 이제 다 끝낼 수 있다'''
3. 고증
수 없이 만들어지는 초한전쟁 관련 영화들 중 고증 부문에서 탁월한 편이다. 우선 200억의 예산으로 3년 간의 제작 과정을 거쳤으며 인물들의 복식, 병장기, 행동 등에서 당시를 재현하고자 했다.
- 항우가 전투에 나서기 전 하인들이 시중드는 모습은 당시의 벽화를 통해서 재현했다.
- 전투마차 부대 역시 출현한다. 당시는 등자가 발명 되기전이라 기마병과 전투마차가 혼용됐다.
- 엉성한 사극처럼 장수가 소리치는 것이 아니라 깃발과 북을 통해서 전투명령을 하는 장면을 보였다.
- 전한의 제왕묘에서 출토 된 소찰주를 바탕으로 병사들의 투구를 만들었다.
- 장수들이 쓰고 있는 투구는 종장판 투구인데 깃털장식에 목가리개까지 재현했다.
- 지휘관의 신호를 통해서 보병, 궁병 등이 대형을 갖추는 등 전투장면을 구현했다.
- 엉터리 사극처럼 등장인물들이 미백(...)을 하는 등 하지 않고 나이에 맞는 모습을 구현했다.
- 항우와 유방의 나이 차를 분장으로 잘 구현했다. 소설 초한지의 영향으로 늙은 시황제가 죽고 야심에 찬 유방과 항우가 등장한 것 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 유방과 진시황과의 나이 차이는 3살 또는 12살이며[24] 오히려 항우와의 나이 차가 15살 또는 24살이다.[25] . 즉 실제로는 유방이 항우 아빠 뻘이다.
4. 실제 역사와의 차이
하지만 영화라는 한계 상 스토리를 위해서 실제 역사와의 차이점 및 각색도 존재한다. 무게감있는 연출 덕분에 이 영화의 장면이 마치 공신력있는 역사해석처럼 퍼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쪽도 결국 자신들이 설정한 캐릭터와 서사에 끼워맞추기 위해 많은 부분을 왜곡했다. 대부분은 유방에게 불리한 방향이다.
- 항우와 유방이 만났을 때 유방을 48살, 항우를 24살로 표현했다. 항우는 생몰년도가 정확하지만 유방은 확실치는 않기에 나이차이는 15살 또는 24살이다. 이는 감독이 스토리를 위하여 정한 것으로 보인다.
- 한신이 유방을 설(薛)에서 만났다고 했는데 실제 역사상으로 확실치 않다. 유방은 확실히 설(薛)에서 항량에게 합류했지만 한신은 항량이 회수를 북상할 때 쯤 만났다.
- 영화에서는 항량이 처음에 유방을 죽이려 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기록은 없다. 오히려 항량은 유방을 신뢰하고 영화에서 처럼 지원군을 줬다.
- 여후가 유방이 사고쳤을 때 고생한 것은 사실이지만 유방이 나간 사이 감옥에서 고생한 기록은 없다. 실제로는 임오라는 관리가 잘 챙겨줬다고 한다.
- 진나라 왕궁에서 특별한 통로를 통하여 개개인의 행정문서를 보는 장면이 있는데 실제로 그런건 없었다. 다만 진나라의 행정 체계가 조밀했던 것은 사실이다. 진시황릉에서 출토된 무기에는 제작소의 이름 등이 새겨져 있다.
- 실제 역사상으로 홍문연에서 활약한 것은 번쾌다. 다만 육가의 기록인 초한춘추에 따르면 유방이 도망친 후 장량이 남아서 항우에게 선물을 전할 때 한신의 이름도 언급된다.
- 항우의 죽음은 실제로 해하전투 후 도주한 다음 일어났다. 또한 이 때 상대한 병력은 영화에서는 등장이 없는 관영이 이끄는 5000 기마병.
- 영화에서는 해하전투 당시 하후영이 한신의 부장처럼 나오는데 실제 기록에서는 중군을 이끈 한신과 더불어서 좌, 우군을 이끈 공취와 진하가 큰 활약을 했고 하후영이 해하전투에서 활약한 기록은 없다. 단, 유방 전속 마부로서 참가했을 가능성은 있다.
- 천하통일을 한 후 한신은 옥에 갇히지 않고 제나라왕에서 초나라 왕으로 전봉됐다가 회음후로 강등된다. 회음후로 강등될때 잡혀가긴 했지만 감옥에 집어넣기 전에 유방이 사면령으로 풀어줘버렸다. 그리고 유방이 진희의 난을 진압하러 간 사이에 여후가 죽였다. 따라서 한신이 죽고 유방이 죽는 것은 거짓이다. 실제로는 유방이 1년 더 살았다.
- 항백이 영화에서는 죽지만 실제로는 유씨 성을 받고 잘 먹고 잘 살다가 죽었다.
- 영화상으로는 소하, 장량등이 한신을 살리려 하고 안타까워 하지만 실제로는 신하 대부분이 협력하여 한신을 주살한 것에 가깝다. 오히려 장량은 굳이 나서서 소하를 승진시키며 한신 처형을 지지하는 자세를 보였다. 한신의 처신이 워낙 구렸던 탓.
- 한신의 죽음 당시의 나이를 영화에서는 35살이라 하는데 실제 나이는 불명이다. 단, 한신의 나이가 항우보다 조금 연상일 가능성이 크기에 실제 죽을 때의 나이는 40대 초반일 확률이 크다.
- 한신이 항우의 부하일 때 직책은 원래 집극랑(執戟郞)인데 이 자리는 무기의 일종인 집극(執戟)을 들고 있다가 장수에게 주는 하급 장교 겸 비서 정도의 자리다. 즉, 한신이 영화처럼 항우의 말타기 셔틀(...) 노릇을 했을 가능성은 적다.
- 여후에 의해서 괴철을 포함한 한신의 수족들이 제거 당하는 모습이 영화에 나오는데 실제 기록상으로는 이런 일은 없었다. 괴철은 한신이 죽고 잡혀왔지만 기개있는 변론으로 살아났고 벼슬자리도 하다가 편안히 죽었다. 한신 부하들의 처분에 대한 기록은 딱히 없지만 한신의 삼족이 멸해진 것은 사실이다.
- 영화 시작 부분에서 유방이 자신의 고향은 강소성 패현(沛縣)이라고 하는데 강소성이라는 명칭은 청나라 때 만들어진 것. 유방이 태어나는 시점에서 그의 정확한 고향은 사천군(四川郡) 패현(沛縣) 풍읍(豊邑) 중양리(中陽里).
- 해하전투에서 말없이 자살한 항우의 목을 영화에서는 번쾌를 비롯한 한군이 난도질 하는데 실제와는 조금 다르다. 기록 상 항우는 해하전투의 패배 이후 도주하다가 포위돼서 싸우던 중 자신의 옛 부하인 여마동을 보고는 은혜를 베풀겠다면서 자살했고 시체는 양무(楊武), 여마동(呂馬童), 왕예(王翳)[26] , 양희(楊喜), 여승(呂勝)의 5인이 나눠 가졌다.
5. 기타
- 루추안 감독은 영화 촬영을 위해서 3년 넘게 당시 역사서를 공부했다고 한다. 오언조가 평가하길 예술가의 모습이었다고.
- 영화가 완성됐지만 개봉이 5개월이나 지연됐는데 중국 공산당의 허락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유로는 크게 2가지가 언급된다.
- 친란은 여후의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서 반나절에 걸친 화장을 받아야만 했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작업이라 촬영기간 8개월 내내 유지해야 했고 잘 때도 고개를 똑바로 하고 자는 등 고생을 했다고 한다.
- 당시의 인물을 정확히 재현하기 위해서 캐스팅에 공을 들인 배우는 장첸이라고 한다. 또한 유방 역할을 한 류예는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서 일부러 살을 찌웠다.
- 원래 제목은 왕의 성연(王的盛宴)이다.
[1] 유방이라는 이름을 쓰기 전의 이름은 유계였다. 유방의 보잘 것 없는 과거를 상징하는 이름[2] 유계(劉季)라는 이름이 유씨네 막둥이라는 뜻이라 그렇게 화려한 이름이 아니다[3] 스스로를 용의 아들이라 칭하며 그가 오는 곳에 큰비가 내린다는 내용. 유방의 아내인 여후가 퍼뜨린 것[4] 영화의 주제 중 하나인 역사의 이면을 생각해보자면 묘한 장면이다.[5] 머리가 많이 빠지고 초췌해졌다[6] 훗날 제도혜왕(齊悼惠王)이 된다.[7] 역사의 이면과 함께 영화의 주제 중 하나[8] 뒷날 조은왕(趙隱王)이 되지만 여후에게 독살당하는 인물[9] 말년의 영향인지 상당히 날카로운 모습을 보인다.[10] 배신할 것이었으면 진작 했을것.[11] 작중 내내 유방은 자신의 능력을 압도하는 한신, 항우에 대한 두려움에 떨고 있다. 또한 보잘 것 없는 과거에 대한 컴플렉스가 있다.[12] 이 때 만큼은 신하들과 순박한 모습을 보인다. 권태에 찌든 황제의 모습과는 대비되는 모습[13] 진나라는 10리 마다 정(亭)이라는 행정단위를 설치했는데 그곳의 수장이다. 현재로 치면 동장 정도의 위치[14] 유방이 과거에 목숨을 빌기 위해 항백에게 줬던 보석을 이번에는 반대로 항백이 유방에게 바친다.[15] 이 장면부터 유방은 어찌하여 한신이 자신을 따른 것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다만 영화 상으로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으니...[16] 유방은 항우가 귀족이라 타인의 야심에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것만 본 것이라 생각한다.[17] 그 무서운 적인 항우를 죽인 한신이 이제는 무서워진 것[18] 실제 역사 기록상으로 이 때 유방은 극대노했다.[19] 즉 소하의 선택과 그에 따른 응보[20] 원래 제목은 왕의 성연(王的盛宴). 왕이 주관하는 큰 잔치를 말한다.[21] 정황상 유방이 향량을 찾아간 설(薛)[22] 한신은 영화에서 유방을 만났다고 하나 유방은 기억치 못하는데 이 이야기를 말한다.[23] 한신이 보잘 것 없는 유방에게 간 이유가 이것이었다.[24] 유방의 태어난 해가 기원전 247년 또는 256년이다. 진시황은 기원전 259년 생[25] 항우는 기원전 232년 생[26] 항우의 시체 중 수급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