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자치령

 




'''캐나다 자치령'''
'''Dominion of Canada'''

대영제국자치령
[image]
[image]
'''국기[1]'''
'''문장'''
[image]
'''1867년 ~ 1982년'''
'''성립 이전'''
'''캐나다 법 통과 이후'''
'''영국령 캐나다'''
'''캐나다'''
'''국가'''
오 캐나다
하느님, 여왕을 지켜주소서
'''위치'''
캐나다
'''수도'''
오타와
'''정치체제'''
입헌군주제, 의원내각제, 영연방 왕국
'''국가원수'''
명목상: 왕[2]
사실상: 부왕 겸 총독
'''언어'''
영어, 프랑스어[3]
'''민족'''
영국인, 프랑스인, 원주민
'''종교'''
가톨릭, 개신교
'''주요사건'''
1867년 자치령으로 승격
1931년 웨스트민스터 헌장 발표
1982년 캐나다법 발효 '''캐나다 독립'''
'''통화'''
캐나다 달러
1. 개요

[clearfix]

1. 개요


1867년 3월 29일 영국 의회에서 영국령 북아메리카 법(British North America Act)이 통과됨에 따라 온타리오, 퀘벡, 뉴브런즈윅, 노바스코샤가 연합해 캐나다 자치령(Canadian Confederation)이 된 것이 시작이며, 1949년에 마지막으로 뉴펀들랜드 자치령이 가입하여 현재의 영토가 완성되었다. 1982년에는 캐나다 법(Canada Act)이 통과되어, 영국 의회의 간섭 없이 헌법을 수정할 수 있는 고도의 주권이 성문법적으로도 보장되었다. 최종적으로 캐나다는 1982년 독립하여 완전한 주권국이 된다.

2. 역사



1800년대 들어 미국이 발전하면서 영국은 캐나다 지역이 미국에 합병되는 것을 막기 위해 식민지의 행정, 정치적 통합에 나섰다. 이에 따라 퀘벡, 온타리오, 뉴브런즈윅, 노바스코샤의 4개 주로 이루어진 캐나다 자치령이 1867년 형성되었다.
영국 정부가 희망했던 것은 영국령 북아메리카(캐나다 전역) 전체가 하나로 통합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서로 다른 경위로 구성된 캐나다 주(온타리오, 퀘벡)와 뉴브런즈윅, 노바스코샤,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 뉴펀들랜드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보여 제대로 된 통합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러나 캐나다의 식민지인들은 미국미국-멕시코 전쟁을 벌이고 명백한 운명 등의 주장을 하는 걸 보고 점차 위협을 느끼기 시작했다. 미국이 엄연한 주권국 멕시코도 찍어누르고 땅을 뺏고 그것을 명백한 운명으로 정당화하는 것을 보면서 자신들도 멕시코와 똑같은 신세가 되리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더군다나 남북전쟁이 일어나면서 일부 북군의 아일랜드인 병사들이 영국령 캐나다에 침입해 난동을 피운 것을 계기로 영국령 북아메리카 식민지 통합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다. 1864년에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 정부가 있는 샬럿타운에서 영국령 북아메리카 식민지 정부 대표들이 모여 통합을 논의했고 마침내 캐나다 주, 뉴브런즈윅, 노바스코샤는 통합에 합의를 보았다.
1867년에 영국 의회에서 영국령 북아메리카법 (British North America Act of 1867)이 통과해 대영제국 최초의 자치령인 캐나다 자치령(Dominion of Canada)이 창설되었다. 상류와 하류 캐나다가 각각 온타리오퀘벡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고, 온타리오, 퀘벡, 뉴브런즈윅, 그리고 노바스코샤 식민지들을 통합해 캐나다라는 이름의 체계적인 대영제국의 자치령으로 승격해 영국 정부의 허가 아래 헌법을 수정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통합된 각 식민지 정부는 자치령 휘하의 주 정부가 되어 상당한 자치권을 가졌다. 캐나다는 이때부터 실질적인 국가가 되었으며 법안이 통과된 7월 1일이 현재 캐나다의 건국을 기념하는 국가 공휴일인 캐나다의 날(Canada Day)로 지정되어 있다. 캐나다 자치령은 1870년에 루퍼츠랜드를 사들였고, 1871년에는 브리티시컬럼비아, 1873년에는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가 연방에 가입하였다. 캐나다는 서부 개척을 시도하여 영토와 인구를 늘리면서 독자적인 발전을 시도했다. 메티스인들과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매니토바 주가 창설되고, 서부 내륙의 인구가 늘어나면서 서스캐처원, 앨버타 주가 창설되었다. 영국령 북아메리카 식민지 중 하나였던 뉴펀들랜드는 캐나다와의 통합을 거부하고 별도의 자치령으로 승격했다가 이런저런 과정을 통해 1949년에 가입했다.
한편 영미전쟁 이후 캐나다와 미국의 관계는 다시 회복되기 시작하였으며 1800년대 초반에는 캐나다 서부에서도 골드러시가 일어나 많은 미국인들이 캐나다로 건너왔었다. 1800년대 후반 부터는 미국의 캐나다보다 훨씬 빠른 산업화로 인해 더욱 더 많은 캐나다 사람들이 미국으로 이주하기 시작하였으며, 1870년대에는 약 캐나다 인구의 1/6이 미국으로 이주한 적도 있다. 또한 캐나다에 라디오를 통한 미류 열풍이 불어 대부분의 캐나다 라디오 방송 시간을 미국 노래들이 차지하게 되었으며 이 현상이 얼마나 심했던지 캐나다 정부는 캐나다의 예술문화 발전 대책 마련을 위한 여러 협회들과 위원회들을 만들고 캐나다 최초의 방송국을 개국하였는데 이것이 현재 캐나다의 유명한 공영방송CBC의 시초이다. 그와 더불어 이 때부터 여러 미국 기업들이 캐나다에 진출하여 캐나다 시장에서 점유율을 넓혀가기 시작했다.

[1] 1965년 부터는 현재의 캐나다 국기를 사용했다.[2] 영국 국왕이 겸임.[3] 캐나다는 원래 프랑스의 일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