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격기 무적론
1. 개요
과학적 근거로, 전투기가 총을 쏘기도 전에 전투기를 폭격기가 박살내 버릴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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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세베르스키[1]
"최전선에 있는 적을 섬멸하는 것, 전선에 걸쳐 있는 물자 및 유류 보급선을 차단하는 것, 모여있는 전차 대열을 파괴하는 것을 넘어서, 과연 어떤 병기가 적의 본토 깊숙히 침투하여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 자체를 꺾어버릴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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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 직후 ~ 제2차 세계대전 직전의 전간기(戰間期) 동안 각국 공군 전략의 대세였으며, 결국 수뇌부의 착각으로 결론난 이론. 폭격기 만능주의라고도 부르며, 일본에서는 '전투기무용론(戦闘機無用論)'이라 부른다.사람들이 뭐라고 말하던, 거리에 있는 이들이 자신을 폭격으로부터 지켜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언제나 폭격기가 일을 끝낼 것입니다(The bomber will always get through).''' 공간의 면적을 생각한다면 이해하기 매우 쉬울 것입니다. 이 섬이나 대륙에서 비행장 범위에 닿는 대도시를 하나 골라보십시오. 그 시가지와 교외를 지키려면 하늘을 여러 개의 방위 구역으로 쪼개야 합니다. 폭격기는 최소한 하늘 높이 20,000피트에, 아마 그것보다 더 높은 곳에 있다고 생각하십시오. 수십 수백 세제곱마일의 구역을 짜는 것은 수학적 계산의 문제입니다.
구름과 안개가 낀 100 세제곱마일을 떠올리십시오. 그곳을 가끔 통과하는 항공기들을 붙잡기 위해 얼마나 많은 항공기를 투입해야 할지 계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유럽의 어떤 전문가들도 이게 가능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유일한 방어는 공격입니다. 이는 자신을 지키려면 여자와 어린이들을 적보다 더 많이, 더 빨리 죽여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제가 이 말을 하는 이유는 다음 전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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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추밀원 의장이었던 볼드윈은 이 연설에서 미래 전쟁에서 벌어질 폭격에 대한 공포를 내비쳤다.
대충 요약하면 "폭격기들이 어디로 갔는지 적은 찾지 못하고 찾아낸다고 하더라도 제때 요격기가 요격고도로 올라오지 못하며 올라온다고 하더라도 대형 폭격기에 방어 기총을 다수 탑재하고 떼로 몰려다니면 전투기도 못 건드린다. 고로 호위기 따위 필요없어! 폭격기가 대편대를 이루면 적진돌파도 문제없다!"
이러한 주장은 항공전력을 운용하는 주요 국가에 퍼져있었다. 이탈리아의 줄리오 두헤를 비롯해서 미국의 윌리엄 미첼 준장, 영국의 트렌차트 등 당시 공군력을 건설하던 주요 국가들의 선구자들 대부분이 이런 사상을 갖고 있었다.[3] <제공권>을 저술한 줄리오 두헤가 가장 유명하지만, 트렌차트도 1차대전 때부터 영국공군 건설 과정과 운영에서 이런 사고를 보여줬으며 미첼 준장은 이 문제로 해군 수뇌부와 마찰을 빚어 군법회의에 회부되고 군에서 추방되기도 했다.[4] 하여튼 이런 덕분에 미사일 만능주의와 함께 미 공군의 양대 과오라고 평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폭격기 무적론을 단순히 과오로 치부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데, 이 이론에 입각하여 설계된 폭격기가 2차대전에서 하늘의 요새라 불린 B-17이고 그 이외에 B-24 등의 4발 중폭격기가 있으며, 나중에는 B-29까지 탄생하였기 때문이다. 그 외에 중(重)폭격기를 중심으로 한 융단폭격과 각종 폭격기 관련 기술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측면도 있다.
2. 실상
영국은 이 이론에 입각하여 독일을 언제든지 칠 수 있는 위치에 대규모 폭격기 부대를 배치했고, 2차대전 중에 아브로 랭커스터를 비롯하여 성공적인 4발 중폭격기를 개발해냈다. 미국도 여러가지 고생끝에 B-17을 개발하여 주력 폭격기로 배치했다. 이 과정에서 전투기를 중시하는 세력들이 상대적으로 천대 받기도 했지만...
독일도 영국을 침공할 때, 폭격기가 스스로 방어를 할 수는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는 점에서 어느정도 영향을 받았다고 보이지만, 독일군한테 공군이란 "지상군의 작전을 근접 지원하는 공중 포대"정도가 고작이었다. 이는 Ju-87의 능력에 대단히 만족해하면서, 중(重)폭격기는 개발하지 않고 쌍발 중(中)폭격기에도 급강하 폭격 능력을 강요한 사례에서도 잘 드러나있다. 대신 폭격기가 빠르면 전투기가 못따라오리라 보고 고속 폭격기를 계속 개발하려 했으나, 폭격기가 빨라질 수 있다면 당연히 전투기도 더욱 빨라지니 결국은 꽝. 게다가 장거리 중폭격기가 없었으니 전략 폭격도 못했고, 이 점이 독소전쟁에서 소련의 물량에 짜부러진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당장 소련 땅 깊숙히 자리를 옮긴 생산 공장을 쳐야하는데, 끽해야 쌍발 폭격기로 그 넒은 땅덩어리를 날아다닐 수가 있나... 그나마 전략폭격의 중요성을 이해한 베버 장군이 일명 '우랄폭격기'라는 4발 장거리 폭격기 개발을 추진했지만, 한정된 인원과 예산으로 빠르게 공군을 확충하면서 전투기와 급강하폭격기 사업에 우선순위가 밀리고 말았다. 결국 베버 장군의 죽음과 함께 우랄폭격기 계획은 완전 묻히게 된다. 결과적으로 봐서는 크게 생각도 없었고 그나마도 실천을 못했기 때문에 폭격기 무적론의 영향을 덜 받은 편이다.
정작 이탈리아는 전략폭격이론의 시초였던 줄리오 두헤가 있었음에도 그의 이른 사망으로 인해 발생한 정치적 문제, 공업생산력 및 관련 기술력이 떨어졌던 관계로 당초 높은 이상과는 달리 기대 이하의 폭격기만 개발했다. 그래서 이탈리아도 실천하지 못해서 피해를 덜 입은 셈이다.
일본도 예외는 아니라서 전투기 무용론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해군의 경우 야마모토 이소로쿠가 특히 적극적으로 도입하였고 그 결과 G3M과 같은 기종들을 배치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겐다 미노루와 시바타 타케오 사이에서 논쟁이 벌어지는데 겐다는 전투기가 필요없다는 입장이었고 타케오는 여기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5] 그러나 중일전쟁 과정에서 나름 최신예 폭격기라던 G3M조차 중국군의 요격에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고 플라잉 타이거즈가 본격적으로 출격하기 시작하면서 항공기 손실이 늘어나자 폭격기는 전투기의 호위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급한대로 A5M를 끌고와서 호위임무를 맡기게 된다. 육군의 경우 이러한 전훈을 비교적 빠르게 받아들여서 폭격기의 비중은 줄이고 신형 전투기들을 적극적으로 개발해서 배치했다.
반면 해군의 경우 호위전투기의 필요성 자체는 인식해서 장거리 호위전투기로 사용할 쌍발전투기의 개발을 의뢰하였지만[6] 결국 시대착오적인 사상과 맞물려 항속거리는 길었지만 약점이 많은 A6M 제로센으로 장거리 공격대를 호위하면서 중일전쟁으로 숙련된 항공대가 과달카날 등지의 남태평양 항공 소모전에서 괴멸적 타격을 입는 와중에도 공격 일변도 사상의 문제점을 이해하지 못했다. 육군이 43년 9월 이후로 일명 '전투기 초중점주의'를 도입하며 비교적 성공적으로 노선을 전환한 것과는 달리 '''전투기 중시로 방향을 전환하는것은 1945년에 들어가서야 이루어지게 된다.'''[7] 게다가 후속기의 개발 자체도 매우 지지부진해서 육군이 Ki-61 히엔을 의욕적으로 도입하고 약 3,000여기를 생산, Ki-84를 1944년에 양산하기 시작해서 신뢰성은 문제가 많았지만 3,400대 이상을 생산한 반면 해군은 2,000마력급 고성능 전투기를 다 합쳐도 1,900기 남짓이며 그나마도 그중 1천기가 '''초기불량도 고치지 못하고 양산명령이 떨어진''' N1K-J 시덴, 그나마 전투기와 요격기로 그럭저럭 성공적이었던 개량형 시덴 카이와 J2M 라이덴은 각각 400여기 남짓이 고작, 제로센의 후계기로 기대를 모았던 A7M 렛푸는 시대착오적인 ROC와 맞물리며 양산조차 되지 못한다. 반면 단순 계산으로도 같은 엔진을 쓰는 라이덴을 두 대 만들 수 있는 '''종이비행기''' G4M 1식육공은 2,200여기나 생산되었다. 1식육공과 비슷한 급의 쌍발 폭격기인 4식 중폭 Ki-67 히류의 제식화가 1944년, 생산대수 600여기인 것을 보면 일해군이 일육군과 비교해 얼마나 폭격기무적론에 젖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결국 함대결전만을 상정하고 전력을 정비해온 해군은 육군이 전훈을 착실하게 반영하는 와중에조차 후진적인 공격 일변도 사상과 폭격기무적론을 붙들고 있었던 셈이 된다.일본은 그 공업기반이 구미에 비해 열악했습니다. 이 열세는 고출력 엔진의 개발이나 그 양산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즉, 고성능 엔진은 일본의 항공전력에 극도로 중요한 자원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중요한 자원을 해군은, 남태평양 방면에서의 '''전훈을 일부러 무시하고''' 전투기가 아닌, 쌍발 폭격기 등의 공격 전력에 충당한 것입니다...(중략)...원칙을 중시해 공격 전력을 중시한 해군입니다만, 통상 공격으로 항모 등 주력함을 침몰시킨 사례는, 1944년 이후 1건 정도밖에 없습니다. 또한 1944년 후반 이후 공격의 주체는 특공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해군은 그 항공 병력비의 변경을 1945년까지 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항공전력의 큰 특징인 공격능력의 유지를 도모했다고는 말할 수 있습니다...(중략)...해군은, '적 함대의 주력을 격파하면, 그 재건에 시간이 걸려 전쟁 지속이 곤란해진다. 그러니 적의 주력을 공격한다.' 라는 생각을 러일전쟁의 승리로 굳히게 되었습니다. 그 후 가상적이 미국으로 바뀐 이후에도, 이 생각은 유지됩니다. 이리하여 해군은 자신들의 생각하는 주적을 격멸하는 것에 전력을 기울였다는 것이 됩니다. 또한, 진주만 공격까지 그 주적은 전함이었습니다만, 미드웨이 이후 그 주적은 항모가 됩니다. 전쟁의 양상이 변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종래의 발상이 거의 고정관념화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로 보아, 해군이 항공운용의 원리원칙을 지킨 것은 어떤 의미로는 종래의 관념에 사로잡혀 있던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8]
2.1. 생각보다 못 막네?
일단 폭격기는 전투기보다 크고 많은 중량을 감당할 수 있으니 기관총이나 기관포를 가득 싣고 전담사수를 배치하면 전투기가 쫒아오더라도 화력으로 압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어?
진행방향이 고정되어 있고 민첩성이 떨어지는 폭격기의 기총좌와 민첩한 전투/요격기는 그 유연성에서 비교할 수가 없었다. 무적론자들은 상대속도에 따른 조준(예측사)과 명중률의 변화가 생긴다는 것을 생각치 못했다. 이는 기관총좌가 조준하는 것이 다르고 전투기 조종사가 조준하는 것이 다르며, 무엇보다 덩치의 차이가 엄청나기 때문에 전투기가 폭격기를 조준하는 것은 쉽지만, 폭격기가 전투기를 조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울지 생각해 보면 쉽다.
게다가 전투기가 공격해올 경우 전투기는 자신이 가진 화력을 100% 발휘하지만 폭격기는 항상 해당 방향을 사격할 수 있는 방어총좌만 대응사격이 가능하므로 화력에서도 밀리는 엿같은 경우가 발생한다. 그리고 전투 중 방어총좌가 파괴되거나 손상되면 해당 방어총좌가 담당하던 방향은 말 그대로 폭격기가 방어화력을 발휘할 수 없는 사각이 돼버리므로 설령 전투기 1대와 방어총좌가 양패구상을 하더라도 다음 전투기가 폭격기의 해당부위를 노리게 되므로 폭격기가 격추당할 확률이 높아진다.
훗날 미군은 '''전투기보다 빠른''' 폭격기를 결국 만들어낸다. 물론 이후 YF-12 같은 물건이 나오긴 했지만.
2.2. 전투기의 발전
폭격기 편대군의 강력한 방어 기관총좌는 전투기가 근접하면 확실히 위협적이었지만, 요격하는 전투기들의 화력은 2차 대전 기간 내내 크게 상승하였다. 전투기의 기본 무장이 소총탄 수준의 기관총에서 20mm급 기관포, 더 심하게는 30mm 이상의 대구경 기관포로 차츰 강화되어 Me262에는 폭격기에만 대응이 가능하지만 '''50mm 기관포'''까지 달렸다. 이 거대한 물건은 262말고도 쌍발 야간전투기에 장착되기도 했다. 제아무리 야간전투기들이 주간에는 샌드백 신세라지만 4발 중폭격기 상대로는 그렇지 않았다!
결국 더 이상 폭격기를 튼튼하게 만드는 것만으로는 전투기의 공격을 버틸 수가 없었고, 편대 자체를 흩어 놓는 전술이 개발되면서 폭격기의 피해가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4발 폭격기는 승무원의 수도 더 많고 제조 비용도 전투기의 4배이상이라 손실에 따른 피해는 더 컸다. 설상가상으로 독일은 아예 대구경 로켓탄을 쏘거나, 로켓탄 탄막을 뿌려 방어 기총의 사정거리 밖에서 폭격기를 박살내거나 폭격기보다 높은 고도에서 폭탄을 떨궈 편대군 자체를 와해시키는 전술을 쓰기도 했다. 그리고 편대군이 와해되면 그 다음에는 즐거운 사냥시간이다.
한국전쟁 이후 제트 전투기의 시대가 되면서 이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한국전쟁 때쯤 되면 더이상 폭격기의 기관총으로는 총탑 선회속도와 반응성에서 목표를 맞출 수 없을 정도로 전투기가 빨라졌기 때문이다.
2.3. 삼일천하(?)
항공기술 발달이 잠시동안이지만 불균형하게 이루어지면서 전간기 초반 폭격기의 스피드가 단순히 엔진 숫자 증가로 전투기를 넘어선 시기가 있었다. 이러면 다수의 기관총좌를 가진 폭격기가 고속폭격후 이탈하는게 가능해지므로 폭격기무적론을 더더욱 부채질했다. 1930년대 들어서면 다시 전투기가 빨라지지만 독일공군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계속 고속폭격기 개발에 몰두했다. 그리고 1943년에 의도치 않게(?) 제트정찰기를 높으신 분의 명령으로 폭격기로 써서 한때 전투기보다 더 빠른 폭격기를 보유하기도 했다.
2.4. 복병의 등장
폭격기무적론이 탄생하던 시기에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복병이 등장하였으니, 그것은 바로 레이더였다. 레이더가 중심이 된 조기경보체제와 이를 이용한 전투기/대공포/대피유도 및 피해복구반으로 구성되는 유기적인 방공망의 탄생은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다.
폭격기무적론의 주창자들은 설령 전투기가 폭격기를 압도하는 속력을 갖게 되더라도 폭격기군의 행방을 알 수 없으므로[9] 도시는 무방비 상태로 폭격에 노출될 것이라 믿었으나, 영국 본토 항공전부터 레이더의 조기경보와 전화망 보고체계, 우수한 장거리 무선 통신으로 적 폭격기의 움직임을 미리 파악하고 추적하여 전투기들을 전개시킬 수 있게 되면서 가장 중요한 가정 하나가 깨져 버렸다. 독일군 또한 영국의 야간폭격과 미군의 주간폭격에 맞서 레이더를 이용한 조기경보체제의 덕을 많이 보았다.
이에 반해 레이더를 갖추지 못한 일본은 B-29 방어를 외곽 섬의 관측소나 바다에 떠있는 선박의 목측에 의존하여 방공 효율이 지극히 낮았다. 그리하여 결국 미국은 전간기 항공전 이론에 그대로 들어맞는 '''폭격기로 항복을 받아낸 유일한 나라'''가 되었다. 여기에도 웃지못할 비화가 있는데, '''사실 일본은 영국이나 미국보다 제일 먼저 가장 성능이 좋은 안테나를 발명했었다.''' 이름하여 야기-우다 안테나. 이 안테나는 무려 '''1926'''년에 개발했지만 일본군은 '''적 앞에 전파를 쏘는 건 바보나 하는 짓이다''' 라는 웃기지도 않은 이유로 이 안테나를 안 썼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안테나의 성능에 좌지우지하는 레이더가 없으니만 못하게 된 것. 여담으로 미국, 영국, 심지어 독일마저 이 야기-우다 안테나로 레이더 만들어 잘만 써먹었다... 게다가 적들이 이 안테나를 쓴다는 것을 일본군이 알아챈 게 '''1942년''' 역시나 핑계없는 무덤은 없다고, 물론 전파도 탐지가 되므로 적 세력 직전에서 전파를 쏴대는 짓을 하면 역탐지의 우려나 적어도 적함이 왔다고 광고하는 상황이 생겨 문제가 생기긴 한다. 특히 수뢰전대 따위로 야간 뇌격전이나 야간 근접전을 노리던 일본군 해군에는 확실히 우려할만한 상황이었던 셈. 하지만 적어도 무조건 위치가 파악된다고 봐야 하는 육상기지나 상대적으로 원거리 포격력과 높은 피탐지율을 가지는 전함 같은 대형함선에는 충분히 달 가치가, 아니 무조건 달아야 했다. '''그리고 전파 역탐지 문제가 가시화될 정도의 거리라면 그냥 레이더를 잠시 안 쓰면 된다는 아주 편리한 해결책이 있었다.''' 야간전에서 탐조등으로 대놓고 함대위치를 노출시키며 닥돌하던 놈들이 정작 이상한 이유로 더 필요한 장비는 버렸던 셈.
3. 대응
호위기 문서 참조.
4. 결론
이론 자체의 헛점은 기술 개발에 따라 폭격기가 대형화, 고속화되는데 발맞춰 전투기 역시 고속화, 고화력화 될 것임을 간과한데다가, 레이더와 같은 장거리 탐지 수단의 개발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한데에 있다.
복엽기의 전성기 시절에 탄생한 폭격기무적론은 20여년만에 급속도로 발전한 항공기술의 속도를 간과하였고, '''그래봤자 별로 바뀔게 있겠어?'''라는 생각이 대다수였다. 한마디로 말해 기술발전은 한쪽에서만 일어나지 않으며, 신기술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을 무시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폭격기 무적론이 상당부분 허상이 끼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상에 따라 대규모 폭격기 군을 조직했던 영국과 미국이 적국을 전략 폭격으로 두들겨 패면서 국가 역량을 저하 시켜나가서 결국 승전국이 되었다는 사실 역시 간과하기 어렵다.
현대에 와서는 폭격기를 제대로 운용하는 국가가 미국, 러시아, 중국 정도로 한정되고있다. 이는 전투기가 더욱 고기동, 고화력화 된데다가 어느 정도 폭장까지 가능하게 됐기 때문이다. 위 세 국가가 폭격기를 운용할 수 있는 이유도 전투기로 웬만한 적국의 제공권을 확보할 수 있어서이다.
5. 참고
무적론이건 만능주의건 일단 무적을 내세우는 순간부터 문제가 있는 법이다.[10] 세상의 모든 일이 다 여러가지 요소가 조합돼서 순차적으로 돌아가야 유리해지는 법이지 누구 하나가 독불장군처럼 다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만 알아도 위의 이론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클래시 오브 클랜의 해골 비행선은 폭격기로서의 특징을 완벽하게 갖고 있다. 매우 느리고, 공대공전력이 매우 빈약하며, 육상에 가하는 폭격은 막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골 비행선보다는 드래곤의 업그레이드가 중요하게 여겨진다. 대공포와 아처 타워에게 당하면 속수무책이기 때문.
창작매체에서 폭격기 무적론의 궁극점은 역시 미래소년 코난에 나오는 거대 비행요새 기간트. 감독인 미야자키 하야오는 극장판 애니메이션 붉은 돼지에서도 보여줬듯이 1차 세계대전의 공중전에 크나큰 로망을 가지고 있는 감독이다. 이 무적론이 1차 세계대전의 전훈으로 탄생한 만큼 이 작품에서 나오는 기간트도 동시대의 다른 항공기에 무적에 가까운 공중전 수행능력을 가지고 있고 어떤 항공기보다도 빠르고 하여튼 좀 많이 무적이다. 근데 주인공 보정을 받은 한 소년에게 발렸다 (...) 어떤 마술의 금서목록에서 등장하는 HsB-02도 폭격기무적론의 산물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