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일본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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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부 라이온즈는 2003년 시즌을 다이에의 이은 2위로 마감하자 플레잉코치에서 은퇴한 이토 츠토무가 감독이 되어 2004 시즌 팀을 이끈다. 정규리그 순위는 작년과 같은 2위. 허나 플레이오프 제1스테이지에서 정규리그 3위 닛폰햄을 2승 1패로 격파하고, 제 2 스테이지에서도 정규리그 1위 다이에를 완벽하게 꺾으면서[1] 2년만이자 통산 20번째 리그 우승을 달성, 일본시리즈 진출을 결정했다.
센트럴리그의 주니치 역시 2003년 2위를 기록하고[2] , 시즌 후 1988년 리그 우승의 주역이었던 오치아이 히로미츠가 감독으로 부임한다. 오치아이는 1987년 이후의 ‘호시노 컬러’를 일신하며 지키는 야구를 펼쳐 취임 첫 해에 센트럴리그 우승에 성공했다.[3]
이 해 일본시리즈는 예년과 다르게 조금 일찍 열렸는데, 2004 아테네 올림픽 일정이 있어 좀 더 리그 진행이 빨라진 것도 있고, 올림픽 이후 일본프로야구에서는 사상 초유의 '''파업(공백의 2일)''' 소동이 일어났기 때문.[4]
어쨌든, 그렇게 세이부와 주니치의 일본시리즈가 성사되었다. 무려 16년만의 격돌.[5]
야구 규칙 관례에 따라 센트럴리그 홈팀인 1.2.6.7 차전을 나고야 돔에서 경기를 3.4.5 차전은세이부 돔에서 치르게 되었다.
▲ 승리투수 : 이시히 다카시 (1승)
▲ 패전투수 : 카와카미 겐신 (1패)
▲ 세이브투수 : 도요다 기요시 (1S)
▲ 홈런 : 와다 가즈히로 (4회 1점)1호 이상 세이부
'''아테네 올림픽 일정과 파업'''으로 일본의 야구 포스트시즌이 예년보다 좀 더 일찍 진행이 되었다.
경기는 별반 다름 없는 경기였으나 주니치의 선수들이 실책 남발로 세이부에게 그냥 승점자판기가 되고 말았다.
▲ 승리투수 : 마크 발데스 (1승)
▲ 패전투수 : 마쓰자카 다이스케 (1패)
▲ 홈런 : 호세 페르난데스(1974) (1회 2점)1호, 와다 가즈히로 (7회 1점)2호 이상 세이부. 타츠나미 카즈요시(7회 3점)1호 이상 주니치
타격 전의 양상으로 갔다. 선취 득점은 세이부의 찬스였는데 나카지마 히로유키의 출루와 SK 와이번스에서 활약했던 거포 호세 페르난데스의 2점 홈런으로 뽑아 냈으나 3회 마쓰자카의 볼질로 역전을 남발하더니 다시 5회초 세이부가 호소카와 토오루와 나카지마 히로유키, 나카무라 다케야의 연속 적시타로 재역전에 성공한다. 이어 7회는 와다의 쐐기포로 그렇게 끝나나 싶더니 7회말 까지 잘던지던 마쓰자카가 타츠나미에게 '''동점 3점포'''를 맞고 무너지며 강판 뒤, 세이부의 계투진들을 출격 시켰으나 이미 전세는 세이부가 아닌 주니치 방향으로 틀어졌다. 이후 역전에 다니시게 모토노부와 후쿠도메 고스케의 적시타로 재역전을 하며 8회에 쐐기타를 맞고 주니치가 2차전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 승리투수 : 오누마 고지 (1승)
▲ 패전투수 : 오카모토 신야[6] (1패)
▲ 세이브투수 : 도요다 기요시 (2S)
▲ 홈런 : 다니시게 모토노부 (6회 '''4점''') 1호 오마르 리나레스 (8회 1점) 1호 이상 주니치 알렉스 카브레라 (4회 2점, 7회 '''4점'''), 나카지마 히로유키 (5회 1점) 1호 이상 세이부
▲ 승리투수 : 야마이 다이스케 (1승)
▲ 패전투수 : 쟝즈지아[8] (1패)
▲ 홈런 : 오마르 리나레스 (2회 1점) 2호, 알렉스 오초아 (4회 1점) 1호, 이노우에 가즈키 (4회 3점) 이상 주니치 나카지마 히로유키 (8회 1점) 2호 이상 세이부
▲ 승리투수 : 카와카미 겐신 (1승 1패)
▲ 패전투수 : 니시구치 후미야 (1패)
▲ 홈런 : 타츠나미 카즈요시(9회 2점) 2호 알렉스 오초아(9회 1점) 2호 이상 주니치
▲ 승리투수 : 마쓰자카 다이스케 (1승 1패)
▲ 패전투수 : 야마모토 마사 (1패)
▲ 세이브 투수 : 토요타 기요시 (3S)
▲ 홈런 : 와다 가즈히로(6회 2점, 8회 1점) 3호, 4호 이상 세이부
▲ 승리투수 : 이시이 다카시 (2승)
▲ 패전투수 : 도밍고 구스만 (1패)
▲ 홈런 : 알렉스 카브레라(3회 2점), 히라오 히로시(7회 1점) 이상 세이부
마지막 이닝에 어제 경기에 등판했던 마쓰자카 다이스케가 또 마운드에 올랐다.
대회 MVP : 이시이 다카시 세이부 라이온즈
일본은 같은 해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 준결승전 호주[9] 와의 경기서 패배를 하여 동메달을 받는다. 4년전 한국에게 패퇴하여 '''목메달'''을 들고 귀국을 했으나, 이번 대회에 선전을 하며 팬 들과의 이벤트를 많은 진행을 했었지만. 암흑기라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초대 야구 월드컵에서 초대 우승컵을 들며 드디어 2차 전성기를 맞나 싶더니, 다음 하계 대회때 크나 큰 삽질을 하며 엄청난 비난을 받는다. 자국 국민들 및 옆 나라 국민들에게 개까인다가 두번째 대회에서 그동안의 만회와 부진을 씻어내며, 자국민들의 호평을 얻게 된다.
1. 양 팀간의 리그 진행
세이부 라이온즈는 2003년 시즌을 다이에의 이은 2위로 마감하자 플레잉코치에서 은퇴한 이토 츠토무가 감독이 되어 2004 시즌 팀을 이끈다. 정규리그 순위는 작년과 같은 2위. 허나 플레이오프 제1스테이지에서 정규리그 3위 닛폰햄을 2승 1패로 격파하고, 제 2 스테이지에서도 정규리그 1위 다이에를 완벽하게 꺾으면서[1] 2년만이자 통산 20번째 리그 우승을 달성, 일본시리즈 진출을 결정했다.
센트럴리그의 주니치 역시 2003년 2위를 기록하고[2] , 시즌 후 1988년 리그 우승의 주역이었던 오치아이 히로미츠가 감독으로 부임한다. 오치아이는 1987년 이후의 ‘호시노 컬러’를 일신하며 지키는 야구를 펼쳐 취임 첫 해에 센트럴리그 우승에 성공했다.[3]
이 해 일본시리즈는 예년과 다르게 조금 일찍 열렸는데, 2004 아테네 올림픽 일정이 있어 좀 더 리그 진행이 빨라진 것도 있고, 올림픽 이후 일본프로야구에서는 사상 초유의 '''파업(공백의 2일)''' 소동이 일어났기 때문.[4]
어쨌든, 그렇게 세이부와 주니치의 일본시리즈가 성사되었다. 무려 16년만의 격돌.[5]
야구 규칙 관례에 따라 센트럴리그 홈팀인 1.2.6.7 차전을 나고야 돔에서 경기를 3.4.5 차전은세이부 돔에서 치르게 되었다.
2. 경기결과
2.1. 1차전
▲ 승리투수 : 이시히 다카시 (1승)
▲ 패전투수 : 카와카미 겐신 (1패)
▲ 세이브투수 : 도요다 기요시 (1S)
▲ 홈런 : 와다 가즈히로 (4회 1점)1호 이상 세이부
'''아테네 올림픽 일정과 파업'''으로 일본의 야구 포스트시즌이 예년보다 좀 더 일찍 진행이 되었다.
경기는 별반 다름 없는 경기였으나 주니치의 선수들이 실책 남발로 세이부에게 그냥 승점자판기가 되고 말았다.
2.2. 2차전
▲ 승리투수 : 마크 발데스 (1승)
▲ 패전투수 : 마쓰자카 다이스케 (1패)
▲ 홈런 : 호세 페르난데스(1974) (1회 2점)1호, 와다 가즈히로 (7회 1점)2호 이상 세이부. 타츠나미 카즈요시(7회 3점)1호 이상 주니치
타격 전의 양상으로 갔다. 선취 득점은 세이부의 찬스였는데 나카지마 히로유키의 출루와 SK 와이번스에서 활약했던 거포 호세 페르난데스의 2점 홈런으로 뽑아 냈으나 3회 마쓰자카의 볼질로 역전을 남발하더니 다시 5회초 세이부가 호소카와 토오루와 나카지마 히로유키, 나카무라 다케야의 연속 적시타로 재역전에 성공한다. 이어 7회는 와다의 쐐기포로 그렇게 끝나나 싶더니 7회말 까지 잘던지던 마쓰자카가 타츠나미에게 '''동점 3점포'''를 맞고 무너지며 강판 뒤, 세이부의 계투진들을 출격 시켰으나 이미 전세는 세이부가 아닌 주니치 방향으로 틀어졌다. 이후 역전에 다니시게 모토노부와 후쿠도메 고스케의 적시타로 재역전을 하며 8회에 쐐기타를 맞고 주니치가 2차전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2.3. 3차전
▲ 승리투수 : 오누마 고지 (1승)
▲ 패전투수 : 오카모토 신야[6] (1패)
▲ 세이브투수 : 도요다 기요시 (2S)
▲ 홈런 : 다니시게 모토노부 (6회 '''4점''') 1호 오마르 리나레스 (8회 1점) 1호 이상 주니치 알렉스 카브레라 (4회 2점, 7회 '''4점'''), 나카지마 히로유키 (5회 1점) 1호 이상 세이부
2.4. 4차전
▲ 승리투수 : 야마이 다이스케 (1승)
▲ 패전투수 : 쟝즈지아[8] (1패)
▲ 홈런 : 오마르 리나레스 (2회 1점) 2호, 알렉스 오초아 (4회 1점) 1호, 이노우에 가즈키 (4회 3점) 이상 주니치 나카지마 히로유키 (8회 1점) 2호 이상 세이부
2.5. 5차전
▲ 승리투수 : 카와카미 겐신 (1승 1패)
▲ 패전투수 : 니시구치 후미야 (1패)
▲ 홈런 : 타츠나미 카즈요시(9회 2점) 2호 알렉스 오초아(9회 1점) 2호 이상 주니치
2.6. 6차전
▲ 승리투수 : 마쓰자카 다이스케 (1승 1패)
▲ 패전투수 : 야마모토 마사 (1패)
▲ 세이브 투수 : 토요타 기요시 (3S)
▲ 홈런 : 와다 가즈히로(6회 2점, 8회 1점) 3호, 4호 이상 세이부
2.7. 7차전
▲ 승리투수 : 이시이 다카시 (2승)
▲ 패전투수 : 도밍고 구스만 (1패)
▲ 홈런 : 알렉스 카브레라(3회 2점), 히라오 히로시(7회 1점) 이상 세이부
마지막 이닝에 어제 경기에 등판했던 마쓰자카 다이스케가 또 마운드에 올랐다.
대회 MVP : 이시이 다카시 세이부 라이온즈
3. 여담
일본은 같은 해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 준결승전 호주[9] 와의 경기서 패배를 하여 동메달을 받는다. 4년전 한국에게 패퇴하여 '''목메달'''을 들고 귀국을 했으나, 이번 대회에 선전을 하며 팬 들과의 이벤트를 많은 진행을 했었지만. 암흑기라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초대 야구 월드컵에서 초대 우승컵을 들며 드디어 2차 전성기를 맞나 싶더니, 다음 하계 대회때 크나 큰 삽질을 하며 엄청난 비난을 받는다. 자국 국민들 및 옆 나라 국민들에게 개까인다가 두번째 대회에서 그동안의 만회와 부진을 씻어내며, 자국민들의 호평을 얻게 된다.
[1] 다만 다이에는 플레이오프를 정상적으로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밑의 파업 이야기 참조.[2] 초반에 최하위로 떡락하다가 간신히 2위를 했다. 야마다 히사시 감독이 시즌 중반 경질이 되고 사사키 쿄스케 수석코치가 감독 대행을 도맡아 2위까지 갔으나 14.5 경기차의 열세를 뒤집진 못했다.[3] 당시 팀 실책수 45개는 센트럴 리그 최소 기록이며 골든 글러브상 5개 부문 독점도 센트럴 리그 최다 기록이다.[4] 이 파업은 일본야구계의 한 획을 긋는 파업이었다. 2004년을 끝으로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는 오릭스 블루웨이브에 흡수합병되는 것이 확정되었고, 다이에 호크스도 모기업 다이에가 오늘내일하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신규 구단이 나타나지 않을 경우 두 구단이 없어지고 10개 구단 체제가 되어 자칫 잘못하면 '''양대리그 체제가 없어질 수도 있던 상황'''에서 선수들이 파업을 해 이를 막은 것. 리그-선수협간의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되고, 다이에 호크스를 소프트뱅크가 인수 + 신생팀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가 리그에 참가하는 것이 확정되면서 파업은 막을 내린다.[5] 두 팀간의 첫 일본시리즈는 1954년 니시테츠 vs 주니치. 주니치가 우승한다. 이 후 28년 뒤인 1982년과 6년뒤 1988년 다시 일본시리즈에서 만났으나 모두 세이부가 승리.[6] 그 LG에서 뛰던 외국인 선수가 맞다.[7] 원래 경기는 10월 20일 이었으나 태풍 23호 북상으로 인한 취소[8] 2001년 대만 야구 월드컵 당시 대한민국을 상대로 5-1로 완투승을 거둔 적도 있으며, '''삿포로 참사(야구)''' 때 '''대한민국'''을 상대로 1이닝 무실점으로 던진 적이 있다. 일본에서는 '''6년간 방어율 3점대 초반을 고수'''하며 두 자릿수 승수는 한번 기록 이 후 많은 승수 쌓기와는 인연이 닿지 않았다. 이 후 2005년~2007년 부상으로 망하자 구단은 그를 웨이버 공시한다. 그렇게 대만으로 컴백을 했으나... 집 돌아가서 얌전히 있던 놈이 결국 대만 프로야구 리그에서 '''승부조작'''을 적발 당하자 구속 된 적이 있었다.[9] 당시 호주는 '''크리스 옥스프링'''. '''애드리안 번사이드''' 등등의 마이너리거, 메이저리거 선수들이 섞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