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SK하이닉스'''
'''SK hynix Inc.'''
[image]
'''정식명칭'''
에스케이하이닉스 주식회사
'''영문명칭'''
SK hynix Inc.
'''기업규모'''
대기업
'''대표이사'''
이석희
'''설립일'''
1949년 10월 15일[1]
'''주소'''
경기도 이천시 부발읍 경충대로 2091 (아미리)
'''업종명'''
다이오드, 트랜지스터 및 유사반도체 제조업
'''홈페이지'''
홈페이지
[ 정보 더보기 ]
'''상장여부'''
상장기업
'''상장시장'''
유가증권시장 (1996년 ~ 현재)
'''시가총액'''
'''100조 4,643억원'''[21]
'''편입지수'''
코스피지수
KRX100
KOSPI200
'''종목코드'''
KS: 000660
'''자본금'''
연결: 3조 6,576억 5,205만 0,000원(2019년 기준)
별도: 3조 6,576억 5,205만 0,000원(2019년 기준)
'''매출액'''
연결: 26조 9,907억 3,267만 5,981원(2019년 기준)
별도: 25조 3,207억 5,482만 9,166원(2019년 기준)
'''영업이익'''
연결: 2조 7,127억 1,766만 7,519원(2019년 기준)
별도: 1조 9,832억 3,934만 1,581원(2019년 기준)
'''순이익'''
연결: 2조 163억 9,040만 4,421원(2019년 기준)
별도: 1조 4,842억 9,425만 4,029원(2019년 기준)
'''자산총액'''
연결: 64조 7,894억 9,436만 8,860원(2019년 기준)
별도: 57조 7,100억 7,011만 3,787원(2019년 기준)
'''부채총액'''
연결: 16조 8,462억 9,894만 2,122원(2019년 기준)
별도: 11조 6,658억 4,885만 9,050원(2019년 기준)

1. 개요
2. 역사
2.1. 설립부터 1997년 외환위기 전까지
2.2. 1997년 외환위기 이후
2.3. SK그룹의 인수
2.4. DRAM 및 NAND 플래시 메모리 호황기
3. 지배구조
4. 역대 임원
5. 논란
5.1. 불법 임금삭감
5.2. 취업규칙 변경 날치기 통과
5.3. 사내외 소통 부재 및 탄압
5.3.1. 블라인드 여론 선동 및 조직적 허위 신고
5.3.2. 사내 게시판 여론 조작
5.3.3. 언론 통제
5.4. 2020년 성과급 지급 논란
7. 광고
8. 사업장
9. 자회사 목록
10. 기타
10.1. 현대 컴퓨터
10.2. 게임 사업
10.3. 휴대폰
10.4. 국산 CPU 개발
10.5. 인터넷 사업
10.6. 프로야구
10.7. 핸드볼

[clearfix]

1. 개요


SK그룹 계열 반도체 제조회사. 본사는 경기도 이천시 부발읍 경충대로 2091[2]에 위치해 있다. 청주시에도 공장이 있다.
반도체를 만드는 기업 중에서 매출액 기준 1위의 삼성전자, 2위의 인텔을 뒤이어 '''세계 3위'''(2018년 연매출 기준)이다. 또 반도체 중 메모리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끼리 비교해도 매출액 기준 세계 2위이다(1위 삼성전자).
대한민국에서는 삼성전자가 아예 독점하다시피 한 상황이라 의외일 수 있는데, SK하이닉스의 매출이 높은 이유 중 하나는 중국 시장에서 1위이기 때문이다. 애플과 중국의 스마트폰 제조업체가 주요 고객사이다. 화이트박스 블릿 안을 열어보면 자주 등장한다. 또한 맥북이나, 아이맥등 애플 제품의 경우 뒤판을 열면 SK하이닉스 스티커 또는 각인이 있는 메모리 모듈을 볼 수 있다.

과거에는 현대그룹의 계열사였다. 그러나 왕자의 난으로 현대그룹이 쪼개지자 투자금을 감당하기 어려웠고, 2001년 채권단에 매각되며 워크아웃에 돌입했다. '''현대전자'''라는 사명도 이때 '''하이닉스반도체'''로 바꿨다.[3]
현재는 SK그룹의 주요 계열사로, 3대 축인 SK텔레콤, SK이노베이션, SK하이닉스 중 하나이다. 반도체 업계의 호황기와 경쟁자의 해체, 집중적 투자로 인한 경쟁력 강화와 점유율 상승이 어울려지며 그룹사 중 가장 높은 매출액과 시가총액을 유지하고있다.

2. 역사



2.1. 설립부터 1997년 외환위기 전까지


[image][4]
[image][5]
1949년 국도건설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어 건설업체로 영업을 하다가 1983년 설립된 현대전자역합병하였다.[6] 우회상장 의도도 있었겠지만 국도건설이 경기도 이천시에 30만 평 정도의 땅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고 한다.

▲1988년 현대전자 기업 PR 광고 황금 거북선편.
당시 전자제품 시장 상황은 금성사, 삼성전자, 대우전자의 3강 체제로 가고 있었기[7] 때문에 이미 전자제품으로 파고 들어갈 여지가 많지는 않았다.[8] 때문에 현대전자에서 채택한 길은 당시에는 최신 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컴퓨터(현대 멀티캡) 및 반도체 산업이었다. 이미 아남산업과 삼성전자가 이미 진출하기는 했지만 아직 신생 산업에 가까웠기 때문에 이쪽으로 진출하기로 한 듯 하다.
하지만 자체 기술이 빈약한 현대전자가 대단한 물건을 만들 수 있을 리 만무하니 일단 그나마 간단한 TV와 모니터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한다. 1995년에는 CRT로 HD 수준의 화질을 구현하는 정도의 기술을 보유하게 되었다. 이외에도 ADSL 사업이나 LCD모니터나 컴퓨터나 휴대폰 등 당시 돈이 될 것 같고 좀 투자가 필요해 보이는 사업에 과감하게 투자 하면서 진출했다.
1985년부터 메모리 양산 체제에 들어갔고 1986년에는 반도체 연구소를 설립하고, 1989년 미국 알렌 브래들리와 합작해 '현대알렌브래들리'를 세웠다. 1993년에는 유명 하드 업체인 맥스터를 인수하는 등 초창기부터 반도체 부분을 소홀히 하지는 않았다. 이 부분이 나중에 이어져 하이닉스가 된다.
[image]
▲ 당시 현대전자에서 만들었던 CD플레이어
[image]
▲바로 서태지를 기용했던 광고
1995년 현대전자 연수단 26명이 러시아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테러범에게 버스가 점거되어 인질로 잡히는 사건이 있었다. 이에 러시아는 자랑하는 대테러부대 알파 그룹을 투입해 9시간만에 범인을 사살해 버렸다. 버스에 타고 있었던 28명 중 연수단 단장인 박연주 부장과 여직원 1명은 혼란을 틈타 탈출했다.
이런 투자 결정은 호경기가 계속되었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었겠지만 불행하게도 1997년 외환 위기가 터지는 바람에 망했다. 이미 반도체 산업이라는 돈이 무지하게 들어가는 분야를 시작한 데다가 여기저기 벌인 사업이 너무 많아서 그룹이 휘청대기 시작했다.

2.2. 1997년 외환위기 이후


1998년 말에 흔히 말하는 '빅딜' 정책의 일환으로 세계 시장 메모리 반도체 점유율 5위였던 현대전자가 4위였던 LG반도체를 합병했는데, 정확히는 인수 후 '현대반도체'로 변경해 1999년에 합친 것이다.
이 합병 당시에는 김대중 정부의 대북사업에 매우 협조적인 현대그룹에 준 특혜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 이를 두고 LG 구자경 명예회장은 큰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인터뷰 기사에 쓰인 표현은 “반도체를 잘하고 있는데 누가 욕심을 부려서 빼앗아갔어요. 자기 욕심 때문에 우리 반도체를 한번 먹어보겠다고 나선 겁니다. 소떼를 몰고 북으로 가고 돈을 쓰더니…. 우린 안 된다고 버티다가 결국 포기했어요. 그래서 정치적으로 얻어맞지는 않았지요.”
하지만 뒤에 밝혀진 바로는 당시 빅딜 평가 관련 컨설턴트 기업이었던 Arthur D. Little(ADL)이 현대전자를 고평가를 하면서 LG반도체가 현대전자로 넘어갔다고 한다. 1996년 DRAM 시장 점유율은 근소한 차이로 현대전자 4위, LG반도체 6위였다. #
현대전자의 수익 규모는 삼성전자의 10%에 불과했지만 1987년도부터 꾸준히 수익을 내고 있었으나, LG반도체는 처음 수익을 낸 시기가 1994년도부터라는 점이 평가상 크게 작용했다.[9] 즉, 비슷한 덩치에 수익 구조나 전망은 LG반도체가 훨씬 나빴다. 다만 LG그룹은 전자 분야가 주력 사업이었던데 반해 현대그룹은 전자 분야가 주력 사업이 아니었기 때문에 당장의 평가보다는 LG그룹 차원에서 장기적으로 지원을 받을수 있는 LG반도체가 현대전자를 가져가야 한다는 반대 의견이 있었다.
게다가 당시 LG반도체는 삼성, 현대, 아남에 비해 역사가 짧아[10] 3위였던 히타치 팹을 그대로 들여와 생산하고 있었다. 때문에 삼성, 현대 두 회사에 비해 저용량 DRAM이 주였다. 자료에 보면 당시 고용량이던 128Mbit DRAM 이상의 업체 리스트에 포함되지 않았고, 그것이 심사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을 듯. 외환위기가 몇 년만 늦게 왔어도 당시 공격적으로 투자하던 LG반도체가 현대전자를 기술에서 따라 잡았을지도 모른다. 근데 그것도 사실 별 의미 없는게 애초에 LG는 SDRAM보다 RDRAM 밀어주기 하고 있었는데 알다시피 RDRAM은... [11]
그런데 이것도 수 년 뒤에 나온 르뽀 보도들을 보면 말이 많은데, 고위층에서 "LG가 현대에게 팔도록" 보고서를 만들어올리라 했다고. 당시와 뒷날 민자 사업에서 큰 잘못을 저지른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의 사업 타당성 용역이 발주처 입맛에 따라 작성되는 건 드물지 않았기 때문에 개연성은 높다.
이렇게 LG반도체를 예고없이 강제로 현대에 매각해 버린 덕분에 LG전경련에서 거의 탈퇴하다시피 했다. 당시 LG그룹 회장이었던 구본무는 빅딜 안을 낸 전경련에 반발하여 1999년부터 2013년 11월까지 무려 14년 가까이를 그룹 사옥과 5분 밖에 안 떨어진 전경련에 발길 한 번 안 딛었었다.
그러다가 2013년 말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전경련 신축 회관에 방문하자 그때서야 전경련을 방문, 사진 촬영을 했었다. 새옹지마라고, 그런 덕에 이 기간동안의 정경유착 의혹이 터질 때 엘지그룹은 예외처럼 여겨졌다.
이후 하이닉스는 SK그룹이 인수하기 전까지 거대 부채 기업이 된다.
2001년에는 현대전자에서 하이닉스 반도체로 사명을 바꾸면서 메모리 사업을 제외한 나머지 사업부를 전부 분사시켰다. 이 때 '''독립한 자회사의 수만 35개'''이다. 아래는 그 중 일부이다. 2001년 8월 하이닉스는 현대그룹에서 분리가 된다. 다만 현대멀티캡과 현대통신산업은 1998년과 1999년에 이미 사원주주업체로 독립됐다.
  • 카오디오 사업부: 현대오토넷
  • 모니터 사업부: 이미지퀘스트
  • ADSL 사업부: 현대네트웍스
  • 통신 단말기 사업부: 현대큐리텔. 나중에 팬택에 인수되어 팬택앤큐리텔이 되었다.
  • 통신시스템 사업부: 현대시스콤
  • 홈오토시스템 사업부: 현대통신
  • 컴퓨터 사업부: 현대컴퓨터
  • 품질보증실: 에이치시티
  • TFT-LCD 사업부: 하이디스. 모니터 사업부와 별개로 중국 BOE에 매각되었다. BOE는 하이디스의 기술자와 특허를 이용해 인수 4년 만에 중국 LCD공장이 양산을 시작하자 하이디스 부도 처리후 철수, 이후 대만 이잉크에 재매각했다. 이잉크는 이후 하이디스 특허만 남기고 생산 공장 폐쇄 후 전세계 디스플레이 업체들에게 특허 장사로 막대한 이익을 보는 중이다.
이 시기의 하이닉스는 그야말로 증권 시장의 핵폭탄이었다. 위기 이전 4만원 대였던 주가가 최저 135원까지 떨어지기도 했고, 특히 투기 세력이 하이닉스 주식을 갖고 쥐락펴락하던 시기였다. 이미 2001년 초부터(정확히는 2월 14일 이후부터) 주가가 액면가 밑으로 떨어졌고, 그 상태에서 1년이 지나자 주식이 무려 42억주나 추가 발행되면서 주식시장은 완전히 난리가 났다.
2002년 7월 23일에는 하루 거래량이 무려 '''18억 주'''를 넘었으며 유가증권시장 거래량(코스닥 제외)만 해도 23억 주를 넘었다. 기사 정확히 18억 3279만 4260주로 "단일 종목 하루 거래량 사상 최고 기록"이라고 한다.
심지어 거래량 분석이나 주식 관련 학술 논문에서도 2003년 3월 21대 1 감자 이전의 거래량에서는 하이닉스를 뺀 통계를 사용할 정도로, 하이닉스의 증권 시장 왜곡은 심각한 상황이었다[12]. 실제로 어떤 논문에서 밝힌 내용 중에는, 하이닉스 거래량을 뺐더니 기존 알려진 결과와 잘 일치한다는 흠좀무한 문장도 있었다. 이런 거래량은 나스닥, 런던, 홍콩 등 세계 유수의 증권 시장에서도 없던 기록이라고 한다.
이후에는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마저 매그나칩 반도체로 분사 시키고 메모리 생산에만 주력한다. 국내에서는 삼성전자에 이은 메모리 제조회사의 이미지를 달고 있다.
2003년쯤 사내외적으로 자금이 너무 모자라 엄청난 위기가 있었다. 자금이 모자라 신형 메모리 생산기계도 구입 하기도 힘든 실정이고, 수주 따내 오기도 힘든 실정에 생산주기율도 제대로 못맞추던 시절이 있었다.
여기서 하이닉스는 불량품, 수율에 항상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반도체 업계에서는 금기 중의 금기였던 기존에 팔거나 버리려고 했던 반도체 생산 기계를 재사용 할 수 있도록 하여 생산 수율을 올린다는 판도를 뒤엎는 전략을 세웠다.
전세계 반도체 관련 물리학자와 산업 현장에 있는 연구원들에게 비상한 관심을 받았고, 연구 성과 등을 공유하면서 결국 이를 이루어냈고, 2005년도에는 사내 위기를 극복해 낼 수 있었다.
다만 D램 시장에 집중한 덕에 D램 시장 가격 상승과 다른 차세대 메모리 시장 투자 및 개발에 약간 소홀한 점이 문제가 되어 2008년 이후 실적이 감소하고 있는 상태. 2009년부터 해외 인수 이야기가 나오고 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동일하게 D램을 주력으로 하는 미국의 마이크론이 대표적 인수 후보자였다.
고대역 메모리(High Bandwidth Memory, HBM)를 전 세계 최초로 개발, 양산한 업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AMD에 이어 엔비디아도 파스칼에 HBM 2세대 메모리를 채용한다고 발표했다. 이 때문에 그래픽 메모리 부분을 SK하이닉스가 독식한다는 말이 있었지만 문제는 가격 때문에 하이엔드 제품군에만 적용되고 있는 추세이다.

2.3. SK그룹의 인수


2011년 6월 즈음 현대중공업이 인수에 나선다는 얘기가 나왔었다. 하이닉스는 현대그룹 재건의 마지막 단추인데다, 아산 정주영 명예회장의 10주기가 다가오고 있는 만큼 인수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다. 하지만 현대중공업은 2011년 7월 6일 조회 공시를 통해 하이닉스 인수 의사가 없다고 발표하였다.
또 다른 모기업이었던 LG는 인수 의향 자체를 보이지 않았다. 사업 연관성을 따진다면 전자 제품을 만드는 LG그룹에서 하이닉스를 인수하는 게 훨씬 더 어울리지만, 남용 부회장이 '우리는 반도체 없이 사는 법을 배웠다'는 망언과 함께 스마트폰 시장 경시 및 피처폰 집중으로 LG전자를 대차게 말아먹어서 그 오물들을 치우기 위해 LG전자 유상 증자라는 초강수를 둘 수밖에 없었고, 결국 자금이나 경영권 방어적인 면에서 하이닉스를 인수할 여력이 없었다. 대한민국 상법 상 비금융 지주 회사는 상장 자회사 주식의 최소 30%를 보유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마 LG그룹, 특히 지주회사 LG나 LG전자, LG화학에 현금이 충분했다면 그룹의 치욕스러운 역사를 설욕한다는 명분과 전후방 사업 상승 효과라는 실리를 위해 기를 쓰고 인수전에 나섰을 것이다. 아니면 지주회사에 대한 오너가의 지분이 감소하는 걸 감수하고 유상증자나 회사채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고 직접 인수에 나섰어도 큰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지주회사 LG의 부채 비율은 겨우 33%대에 불과하여 대한민국의 지주회사들 중에서도 가장 낮기 때문. 하지만, 카더라에 의하면 재계 내에서 하이닉스를 인수하는 게 이미 SK그룹으로 합의됐다는 말도 있다. 더군다나 이 과정에서 정부가 개입했다면 더더욱.
최종적으로 SK그룹STX가 인수 경쟁에 참여하였다. 이 중 STX는 인수 의사를 철회하였고 SK텔레콤이 '''3조 4267억원'''[13]에 단독 입찰했다. SK텔레콤이 이 거대한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던 배경이 있다. 통신 산업은 주파수만 잘 갖고 있으면 매월 현금이 수천억씩 들어오는 알짜배기 산업 중 하나다. 사업 특성상 제법 큰 액수의 현금이 꾸준히 들어온다는 걸 이용하여 지금까지 쌓아둔 사내 유보 현금에 금융권 융자까지 융통해 인수한 것이다.
결국 2012년 3월 23일 주주총회를 통해 정식으로 SK그룹에 편입되었으며, 사명도 SK하이닉스로 바꿨다.
SK그룹에서는 SK텔레콤과의 시너지는 적을 지 몰라도 10년동안 완만한 하락세인 SK텔레콤 주가를 보면서 성장동력에 대하여 나름 고심한 듯. 시너지 또한 벌 땐 화끈하게 버는 SK하이닉스 vs 안정적인 SK텔레콤의 상보적 관계가 될 수도 있다.
게다가 SK그룹은 재계 3위의 서열에 어울리지 않게 내수 산업으로 인식되는 통신과 정유 사업에 의존한다는 안 좋은 이미지까지 불식시킬 수 있게 됐다. 정유 사업을 담당하는 SK이노베이션은 수출 비중이 71%에 이르는 수출 역군이긴 하지만, 국내 내수 시장의 점유율이 30% 가량으로 업계 1위이다 보니 'SK 정유 사업=내수 산업'이라는 오해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SK그룹에 편입된 이후에는 뭔가 상황이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는 모양이다. SK 날개 단 하이닉스, 2분기 매출·영업이익 사상 최대 그리고 SK하이닉스가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 부문의 영업 이익률을 추월할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다.삼성 반도체 '빨간불'…SK하이닉스에 영업이익률 추월당하나 2013년 연간 매출액이 사상 최대인 14조에 영업이익률 24%를 기록하며 성장하고 있다.
SK그룹을 등에 업고 대대적인 투자를 한 성과도 있지만, 2013년에 일본의 반도체 업체인 엘피다가 파산한 걸 계기로 메모리 반도체 사업의 경쟁자가 줄어들어 공급자 중심으로 변하면서 수익성이 개선된 걸 무시할 수 없다.
덕분에 수천억 단위의 배당이 가능해지면서 이 돈으로 차입금을 갚거나, SK텔레콤에서 먼저 지출하는 융자 상환비용을 메우면 SK그룹은 사실상 1조 7천억이라는 SK텔레콤 보유 현금으로 2014~2015년 연간 영업활동 현금흐름(=영업으로 벌어들인 현금)이 4조 원을 넘는 SK하이닉스를 인수한 게 되니 엄청나게 수지맞는 베팅을 한 셈이다. ~특히나, 2017년에는 결산 영업이익 10조를 예상하고 있어서 SK그룹 입장에선 신의 한 수가 됐다.
이후 2017년 8월 LG실트론(사명 변경 후 SK실트론)을 인수하면서 LG그룹의 반도체 사업을 완전히 다 가져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SK실트론(단결정 실리콘) - SK머티리얼즈/SK가스(특수가스) - SK하이닉스(소자 제조)에 이르는 SK그룹의 반도체 사업 수직 계열화도 어느 정도 완성해 가는 모양새.

2.4. DRAM 및 NAND 플래시 메모리 호황기


2014년에는 연간매출 17조1천억, 영업이익 5조1천억으로 약 30%대의 영업이익률을 달성. 2015년에는 연간 매출 18조 7천억, 영업이익 5조 3천억. 2016년에는 연간매출 17조 2천억, 영업이익 3조 2천억을 기록하면서 3년 연속 수조원대 영업이익을 달성하고 있다.
한편 이런 호실적 덕분에 SK그룹에서 SK하이닉스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2016년에는 청주테크노폴리스에 15조원을 투자하였고, 2017년 1월에는 반도체 소재 기업인 LG실트론의 지분 51%를 6200억을 주고 인수하였다.출처
2017년 2월에는 도시바 메모리부문의 주식 20%를 매입 검토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출처. 도시바는 원전으로 인한 손실이 메모리사업에까지 영향을 끼치면서, 도시바는 메모리사업을 분리하고 주식을 매각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은 상태이다.
2017년 1Q 뿐만 아니라, 2Q에도 사상 최대 규모의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출처 2Q의 경우엔, 삼성전자 메모리 사업부의 영업이익률(추청치 40% 후반)과 비슷한 수준의 영업이익률을 달성했다.(47%) 즉, 제품을 만들면 절반 정도는 남는다는 뜻인데, 물건을 팔아서 절반 넘게 남기는 사업은 제약사업과 메모리반도체 사업이 유일할 것이다.
결국 2017년에 총 매출 30조원, 영업이익 13조원을 돌파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출처

영업이익률을 높이는 방법은 간단하다. 같은 웨이퍼 안에서 많은 제품을 만들어 내면 된다. 만약 A회사가 1웨이퍼에서 100개를 만들고, B회사에선 200개를 만든다면 B회사는 A회사에 비해 물건을 싸게 팔 수 있다.(반도체 DRAM 치킨게임의 원리도 이와 비슷하다. TECH SHRINK을 통해 '남보다 작게, 남보다 많이' 경쟁력을 갖춘 회사 삼성전자 / SK하이닉스 / 마이크론 테크놀로지 이 3회사만 살아남은 것이다.)
참고지만 내부에서는 이번 호황을 끝으로 다음 호황은 없을거라는 말이 나오는데 압도적으로 1위인 삼성에 비하면 2위인 SK하이닉스와 3위인 마이크론은 그리 큰 격차를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기술격차를 2~3년까지 무섭게 따라붙은 중국이 치고 들어와버리면 중국 매출액 비중이 다소 높은 SK하이닉스는 상당히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다. 자칫 잘못했다가 일본 반도체 회사들과 같은 길을 걷게 될 수도 있어서 폭풍전야 호황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내부에선 위기감이 존재한다. 중국 반도체 기업들이 내년까지 낸드플래시와 DRAM 양산을 마친다는 계획이니 길게 잡아도 5년 안에는 새로운 성장동력, 비전을 찾아야만 하는 위치에 놓여있다.
2018년에는 SK하이닉스의 최절정기로 무려 영업이익 '''20조'''를 기록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한다. 그러나 2019년 3분기에 매출 6조 8천억에 영업이익 4700억대를 기록하며 10분의 1이나 토막나 13분기 최저치를 기록했다.[14] 시장 평가는 SK하이닉스의 악재가 해소됐다는 판단에 주가 방어를 잘하고 있지만,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글로벌 시장에서 2018년 같은 초호황을 다시 누리기 쉽지 않아 보인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2020년 10월 24일에 인텔 낸드 사업 부문까지 10조 3000억에 인수하게 된다.기사 이는 기존 삼성의 하만 인터내셔널 인수액 80억 달러를 넘어선 역대 최대 규모의 M&A이다. 이전부터 SK하이닉스와 인텔 양측은 협력 해왔던 데다 인텔이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발을 빼려던 상황에서 SK하이닉스는 D램 분야처럼 낸드플래시 분야에서도 확고한 지위를 굳히기를 원했다.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았던 상황이었다. 이 인수합병이 성사된다면 낸드 시장에서 SK하이닉스는 20% 점유율을 차지하게 되고, 19% 점유율을 가진 키오시아를 넘어 낸드 시장 2위 기업이 될 전망이다.
나름 괜찮은 낸드플래시 제품을 만드는 회사지만 경쟁사인 삼성전자와 달리 SSD를 국내에 일반소비자용으로 출시하지 않아 사용자들에게 크게 와닿지 않는다는 점이 아쉬운 점이다. 이때문에 국산 대기업 제품이지만 정작 비싼 배송비 주고 해외에서 구매해야 하는(...) 불합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는 하이닉스에게 B2C 유통망이 전무하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삼성전자의 경우 판매를 전문으로 하는 삼성전자판매를 비롯한 삼성 공식대리점이 많기 때문에 해당 경로로 판매하면 되고 고객지원의 경우 '시머스'라는 회사를 통해 진행하고 있지만 하이닉스에게는 그런 유통망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에센코어도 마찬가지로 하이닉스는 에센코어에 다른 업체와 동일하게 B2B 도매로 모듈을 공급하는 것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하이닉스가 한국 유통망을 구축하려면 고객센터도 만들어서 운영해야 하고, 택배사와 별도로 계약을 맺는 등의 적지 않은 투자가 필요한데, 수요가 검증되지 않은 한국 시장을 대상으로 이러한 투자를 진행했다가는 손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우선 시장 규모가 크고 검증된 미국에서 아마존닷컴의 풀필먼트 서비스[15]를 통해 판매 과정 일체를 맡기는 식으로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것에 가깝다.#

3. 지배구조


2019년 6월 기준
주주명
지분율
SK텔레콤
20.07%
국민연금
9.10%
더캐피탈그룹
7.16%
자사주
6.04%
블랙록
5.08%

4. 역대 임원


  • 이사회 의장
    • 김종갑 (2010~2011)
    • 전인백 (2011~2012)
    • 하성민 (2012~2014)
  • 대표이사 부회장
    • 박성욱 (2017~2019)
  • 부회장
  • 대표이사 사장
    • 정몽헌 (1984~1991)
    • 김주용 (1992~1996)
    • 김영환 (1996~2000)
    • 박종섭 (2000~2002)
    • 박상호 (2002~2003)
    • 우의제 (2002~2007)
    • 김종갑 (2007~2010)
    • 권오철 (2010~2013)
    • 박성욱 (2013~2017)
    • 이석희 (2019~ )

5. 논란



5.1. 불법 임금삭감


SK하이닉스의 사무직 취업규칙인 '연봉제 급여규칙'에 따르면 직원의 인사평가 결과에 따라 급여를 5단계로 차등하여 계약 연봉의 90%에서 110%까지 지급받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2018년 'Self-Design' 제도를 도입하여, 인사권자가 직원 개인의 급여를 임의로 조정하여 지급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 제도 하에서는 동일한 고과를 받더라도 부서 간, 개인 간 임금의 차등이 발생한다. 조직장이 한정된 예산을 자기 휘하 직원들에게 분배하는 제로섬이다. 이 임금 조정은 객관적인 근거나 기준 없이 100% 조직장의 주관적인 판단으로 이루어진다. 새로 도입된 임금제도 하에서 보장된 임금은 계약연봉의 60%에 불과하다. 실제로 평균 수준의 인사고과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계약연봉보다 10% 이상 삭감된 급여를 받는 사례가 보고되었다. 회사 측에서는 상대평가를 개선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셀프디자인' 제도는 상대평가와는 무관하다. 기존의 상대평가 제도는 전 인원의 10%를 인사고과 하위등급에 강제할당하는 제도이며, '셀프디자인' 제도는 각 고과등급별 급여액을 전사적으로 통일하지 않고 각 조직의 장이 결정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즉, 상대평가와 '셀프디자인' 제도를 동시에 시행할 수도, 동시에 시행하지 않을 수도 있다. 실제로는 '셀프디자인' 제도의 도입 목적은 총 인건비 절감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회사 측에서는 '셀프디자인' 시행 이후 절반 이상이 기존의 고과등급별 급여액보다 높은 액수를 받게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를 뒷받침 할 수 있는 근거는 전혀 제시하지 못하고 있으며, 블라인드에서 시행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고과등급별 표준급여보다 높은 액수를 받은 인원은 17%에 불과하다. https://www.jobplanet.co.kr/contents/news-1212 https://www.jobplanet.co.kr/contents/news-1221 https://www.newstomato.com/ReadNews.aspx?no=1023403
회사 측의 이 같은 제도 도입은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는 경우에는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도록 한 근로기준법 제94조 1항에 위배되는 명백한 위법 행위이다. 제도 시행 후 3년이 지난 2020년 하반기, SK하이닉스 기술사무직 노동조합은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회사 측에 공문을 발송하여 입장 표명을 요구하였다. 회사 측 관계자는 직원에게 불리한 제도가 아니므로 동의가 필수는 아닌 것으로 안다고 밝혔으나, 직원 중 일부에게라도 불리하면 불이익변경으로 간주된다. 동의가 필요한 절차가 아니라면 아래 서술한 바와 같이 강압적이고 기만적인 방법으로 취업규칙을 변경할 이유가 있었을까? 이에 회사 측은 직원들의 동의를 거쳐 취업규칙을 변경하기 위한 목적으로 'Self-Design' 제도에 대한 설명회를 개최하고 직원들의 동의 절차를 진행하려 하였으나, 이 과정에서 불투명한 진행 방식과 강압적인 동의 강요 등으로 더 큰 논란이 빚었다.https://ilyo.co.kr/?ac=article_view&entry_id=389904 http://www.koreastock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60740

5.2. 취업규칙 변경 날치기 통과


위 불법 임금삭감이 논란이 되자 SK하이닉스는 취업규칙 변경을 위한 설명회를 개최하고 직원들의 동의를 받기로 하였으나 이 과정에서 여러 가지 논란을 빚었다.
  1. 취업규칙 변경을 위한 찬반 투표라는 점을 밝히지 않음
회사 측에서는 취업규칙 개정을 위한 찬반 투표를 시행한다는 점을 명확히 밝힐 필요가 있으나 이런 설명을 하지 않았으며, 'Commitment를 구하는 절차' 등의 모호한 문구로 포장하여 근로자들이 투표의 본질을 알 수 없도록 하였다.
일부 조직 리더들은 서명하는 것이 동의한다는 뜻이 아니며 설명회 영상을 시청하였다는 의미라고 설명하여 적극적인 은폐 시도를 하였다.
  1. 취업규칙의 개정안을 제시하지 않은 상태에서 서명을 받음.
통상적으로 각종 조약, 규정 등을 변경할 때에는 변경 전과 후의 규칙을 대조하여 제시함으로써 어느 부분이 변경되었는지 파악하기 쉽게 제시하는 것이 관례이다. 하지만 이 서명 절차에서는 변경 전과 후의 내용이 빠진 채 서명을 받았다. 변경 전의 조항은 사내 시스템에서 조회할 수 있지만 대다수 직원들은 해당 조항을 어디서 찾아볼 수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변경 후의 조항을 제시하지 않은 상태에서 서명을 받았으므로 이러한 서명과 이에 따른 규정 변경은 당연히 효력이 없다. 심지어 추후 공개된 변경 후 조항에는 '본 내용의 변경은 Self-Design 시작 시점부터 유효'라는 문구가 삽입되었는데 이는 설명회에서 전혀 언급하지 않았던 내용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소급 적용도 당연히 효력이 없다.
  1. 동의 절차에서 찬성/반대 중 선택이 불가능하고 '동의'를 의미하는 서명만 가능하도록 되어 있었다.
  2. 비밀투표 원칙이 지켜지지 않아 근로자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기회를 박탈당했다. 인사권자가 근로자 개개인의 동의 여부를 실시간으로 파악하며 수시로 동의를 강요하였다.
  3. 온라인으로 진행된 설명회 동영상을 시청하기 위해 캡처 방지 등의 각종 보안 프로그램을 설치하도록 하고, 설명회 자료를 배포하지 않는 등, 변경된 임금 규정에 대한 내용이 퍼지지 않도록 은폐하려는 정황이 있었다.
  4. 설명회를 진행하고, 직원들이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고 서로 논의할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상식적이나, 회사 측은 설명회 진행 당일 서명을 완료할 것을 강요하였다.
  5. 회사 측에서 설명회와 동의 절차의 본질을 은폐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하였기 때문에 실제로 많은 직원들이 자신의 의사에 반하여 동의 서명을 하였다. 취업규칙 변경 투표라는 사실을 모른 채 단순히 '열심히 일하겠다'는 일종의 윤리서약인 줄 알고 서명한 직원도 있고 서명하고 싶지 않지만 인사권자의 강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서명을 한 직원도 있다. 추후에 속은 것을 알게 된 많은 직원들이 진짜 의사를 표현하기 위해 서명에 대해 번복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하였으나, HR 담당부서에서는 납득하기 힘든 이유로 거부하였다.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도입된 절차를 사후에 정당화 하기 위하여 위와 같이 설명회와 동의 절차를 진행하였으나, 위에 언급한 여러 가지 절차상의 하자로 인하여, 이러한 동의 절차는 법적인 효력이 없다.
회사 측의 불법적인 취업규칙 변경으로 임금 삭감 등의 불이익을 받은 근로자는 차후 그 손실 임금액을 회사 측에 청구할 수 있다. 물론, 재직 중에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므로 퇴사 후에 단체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현재 회사 측에서 진행한 동의 절차는 법적 효력을 갖기 위한 요건을 갖추지 못하였기 때문에, 차후에 적법한 절차를 갖추어 다시 동의 절차를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차후에 적법한 절차를 거쳐 취업규칙이 변경되더라도, 해당 취업규칙 변경에 동의하지 않은 근로자에게는 개정된 취업규칙과, 취업규칙 변경 이전에 맺은 근로계약서의 내용 중 더 유리한 내용이 우선 적용된다.[16]

5.3. 사내외 소통 부재 및 탄압


직장인 익명게시판 블라인드와 사내 익명게시판 '하이통'에서 회사 측이 사주한 신원 미상의 인원들이 적극적인 여론 선동 및 조작 행위를 벌이고 있다.

5.3.1. 블라인드 여론 선동 및 조직적 허위 신고


블라인드의 SK하이닉스 게시판은 @sk.com 이메일로 인증을 받아야만 가입할 수 있다. 물론 개인적으로 회사 측의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도 자기 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회사를 비판하는 글을 작성하여 큰 인기를 끈 게시물에는 이 모종의 조직원들이 집단적으로 '신고'를 함으로써 해당 계정을 정지시킨다. 회사 측의 EVA (경제적 부가가치) 산식 비공개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직접 EVA를 계산하여 올린 한 회원은 게시글에 900명 이상의 타 회원으로부터 추천을 받았으나 이 신원 미상의 조직원들로부터 '특정인 비방' 명목으로 집단적인 신고를 받아 계정이 영구정지 당했다. 또한 노조 가입을 독려하는 글을 올린 사람도 '특정인 비방' 혐의로 신고를 받아 정지 당한 사례가 보고되었다.

5.3.2. 사내 게시판 여론 조작


사내 익명게시판인 '하이통'은 익명이 보장되지 않고 회사의 완벽한 통제 하에 있기 때문에 더욱 적극적인 탄압이 자행되고 있다. 위에 서술된 취업규칙 날치기 통과를 앞두고 한 직원이 이에 항의하는 글을 올려 많은 직원들의 관심과 격려를 받았다. 이에 게시판 관리를 담당하는 행복경영팀에서는 해당 글을 게시글이 더 자주 올라오는 질문게시판으로 이동시키고, 게시글 이동 직후에 여러 명의 직원을 동원하여 약 2분간 10여 개의 의미 없는 글을 올려 해당 글을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게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글이 지속적인 관심과 응원을 받자 급기야는 해당 글이 직원들을 선동한다는 명목으로 삭제하였다.

5.3.3. 언론 통제


또한 언론에서 자사에 비판적인 기사를 게재하면 적극적으로 압력을 가하여 기사 내용을 변경하거나 삭제하도록 한다. ㄹ
이러한 '불통 경영'은 많은 언론에서 SK하이닉스의 대표적인 문제점으로 지적하였다. 한 언론에서 회사 측의 이러한 불통과 무단 게시글 삭제를 지적한 기사 http://webcache.googleusercontent.com/search?q=cache:bVgi69Hc-24J:m.mediapen.com/news/view/597796+&cd=2&hl=en&ct=clnk&gl=kr 또한 해당 언론사 홈페이지에서 삭제되었으며 캐시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불통을 지적한 기사: http://news.tvchosun.com/site/data/html_dir/2021/02/05/2021020590074.html https://www.f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1068 http://www.dailysisa.com/news/articleView.html?idxno=42104 http://news.tvchosun.com/site/data/html_dir/2021/02/05/2021020590074.html
또한 한 4년차 직원이 기존 성과급 제도의 불투명성을 지적하는 내용의 이메일을 CEO를 포함한 전사 구성원에게 단체메일로 발송하자, 최태원 회장과 이석희 CEO는 용기 내어 발언해 준 해당 직원에게 감사한다면서도 해당 내용이 전파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해당 직원의 이메일 내용 중 특정 문구를 포함한 이메일은 사내외로 발송이 되지 않도록 메일 필터링 설정을 하였다.

5.4. 2020년 성과급 지급 논란


2021년 1월, 회사 측은 2020년 경영성과에 대한 보상으로 2020년도 연봉의 20% 수준의 성과급을 지급하기로 하였다. 이에 대다수의 직원들이 허탈함을 표현하며 크게 불만을 터뜨렸다. 대한민국 평균 수준의 직장인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연봉을 받는 대기업 직원들의 불만을 배부른 소리라고 보는 시선도 있으나 업계와 회사의 상황을 보면 그렇지 않다. 반도체 업계는 매년 시장 상황에 따라 성과의 변동이 매우 크다. 그래서 규모나 이익수준이 비슷한 다른 업종에 비해서 기본급을 낮게 책정하고 성과가 많이 난 해에 높은 성과급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어 왔다. 그래서 직원들도 매년 그 해의 경영성과와 경쟁사의 성과급 수준을 보면 자사 성과급 수준도 대략 예측이 가능한데 그러한 예상치보다 터무니 없이 적기 때문에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 또한 성과가 좋지 못했다고 하면서도 경영진들은 급여의 2배가 넘는 보너스를 지급받았다는 사실이 직원들의 허탈감을 더하고 있다. SK하이닉스의 성과급은 동종업계 삼성전자 DS부문이 연봉의 47%를 지급하기로 한 것에 비해 절반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또한 지난 해 대비 영업 이익이 크게 늘었음에도 성과급 규모가 작년과 동일한 수준인 것도 직원들을 납득시키지 못하고 있다. 19년 대비 매출은 18.2%, 영업이익은 84.3% 증가했으나 사측의 일방적인 통보로 성과급 규모가 정해진 상태이다. #
이는 영업이익이 상당했던 2018년 이후 취업설명회에서 사측이 가장 크게 강조했던 것과 전혀 반대되는 행보였기에 특히 저년차 신입사원에게서 큰 반발이 일어나고 있다. S사와 동일하거나 그 이상으로 준다는 것을 미끼로 고학력 신입들을 대거 유치했으나, 해당연도 이후 삼성전자와 비슷한 수준의 성과급이 지급된 적이 없었고 2020년도에는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여 상당한 파장이 일어나고 있다.
직원들의 불만이 이어지자 최태원 SK 회장이 "지난해 연봉을 모두 반납하겠다"고 선언했다. 참고로 2019년 기준 최 회장의 연봉이 30억 원 수준이고 SK하이닉스 직원 수는 28,000여명으로 이를 나눈다 해도 1인당 10만원 정도에 불과하여 기름만 붓는 꼴이 되었다. #
사측에서는 정해진 기준에 의해 지급했다는 의견이나, 정작 그 기준을 전혀 제시하고 있지 않아 직원과의 갈등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 경제적 부가 가치(EVA) 의 초과 이익분을 지급한다는 원론적인 기준만 내세우고 있어 직원들의 공감을 전혀 얻지 못하고 있으며, 제시된 EVA 조차 매 공지마다 바뀌고 있어 반발이 지속되고 있다.
동종업계로의 이직이 활발한 반도체 업계 특성상 인력 유치가 중요한데, 각종 임금 제도 개악으로 신뢰를 잃은 상태에서 성과급 논란까지 발생하여 사내에서는 대규모 이직 시도까지 벌어지고 있어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 # 이어 모 담당 임원이 핵심인재를 선별하라는 지시가 일반 사원들에게 유출되어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즉, 핵심인재로 분류되지 않은 일반 사원의 경우 향후 받게될 성과평가, 보상 등에 큰 차별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2021년 2월 4일, 노조와의 협상에서 사측은 초과이익배분금(PS) 산정 기준을 EVA(경제적 부가가치)에서 영업이익과 연동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또한 우리사주를 발행해 구성원들에게 기본급 200%에 해당하는 혜택이 돌아가도록 할 예정이다. # 이와 함께 사내 복지 포인트를 추가 지급하는 것으로 일단락시키려는 모습이나, EVA에 따른 성과급 지급 방식에 대한 설명은 일절 없이 EVA를 폐지하겠다는 입장이어서 논란은 전혀 해소되지는 않은 상태이다. 또한 성과급 대신 계열사를 통해 사용 가능한 복지 포인트가 지급되었는데, 현금에 비해 활용도가 낮고, 비싼 사내 복지몰이나 11번가를 경유해야만 하는 복지 포인트를 성과급이나 타결금으로 제시하는 케이스가 늘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를 표하는 직원도 있다. 또한 우리사주 지급 역시 이사회의 결정이 나지 않은 상태이며 구체적인 지급 시기도 밝히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실제로 얻어온 것이 전혀 없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우리사주 지급액은 연봉의 10% 수준이나, 무려 4년 후에나 매각이 가능하기 때문에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상태이다.

6. 주식


[image]
회사 별명을 나타내는 짤방(...)
주식시장에서는 손꼽히는 개잡주 취급을 받으며, 이를 대표하는 것은 1997년부터의 주식동향. 16년동안의 평균 기울기가 '''마이너스'''다. 대기업중에서는 말도 안되는 경우인 것. 심지어 중간에 있었던 감자비율은 계산도 안 했다!! 그래서 공인된 별명은 하락닉스. 못 믿겠으면 하락닉스라고 검색창에 쳐 보자.그러나 2012년 SK그룹 편입 이후부턴 쭉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예상치 못한 반도체 호황에 따른 반사 이익일 듯. 2014년 6월 5일 장종료가가 46,450원이다. 2014년 6월 19일에는 장중 최고가인 50,700원으로 마감하였다. 관련 기사 2014년 11월 4일 현대차를 꺾고 시가총액 2위에 등극하였다. 관련기사 그리고 대망의 2015년 SK하이닉스 역사상 최고의 실적을 뽑아내고 있으나 중국발 반도체 리스크로 인해 주가는 지지부진하였다. 그리고 2016년 5월 20일에는 25,650원(...)으로 2010년 수준의 주가를 기록하며 저점을 찍고 3/4분기에 들어 다시 상승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주가는 꾸준히 상승하다가 2017년 9월 20일 SK하이닉스가 참여한 한미일 연합이 도시바 인수전 승자로 보도되면서 8만원을 돌파하였다![17] 2018년 5월25일 장마감 기준 97,700원을 찍으며 리즈 시절을 갱신했으나.. 그 이후로는 다시 주가가 하락세로 돌아섰고, 연말에는 6만원 초반까지 떨어지고 말았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시장에 전례없는 유동성 과잉공급이 일어났음에도 주가는 부진하다. 라이벌 삼성전자와 대조되는 부분. 심지어 한 수 아래인 마이크론 테크놀로지도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2020년 11월 이후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며 21년 1월 5일 130,500 원 이라는 엄청난 가격으로 장마감하였다. 21년에는 반도체업계 호황 사이클이 온다는 분석하에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7. 광고


광고가 참신한 것으로 유명해서 영상 댓글란에 호평이 많으며, 엔터테인먼트 사업과는 거리가 먼 기업 계정임에도 불구하고 2020년 9월 3일 기준 구독자가 35만 명 이상이다. 실버 버튼 영상

SK그룹 차원에서 2014년에 이런 기업광고를 내놨다. 내레이션은 지성. SK하이닉스가 SK그룹에 편입되기 한참 이전인 1997년부터의 일을 광고에 포함시켰다.

2015년 밀고 있는 광고.

2018년 테네시티 증후군.
최근 가장 참신하다고 평가받는 광고.

약을 빤 듯한 광고도 있다.

보는 사람 울게 만드는 감동적인 광고도 있다.

하지만 머지않아 다시 약을 빤 듯한 광고가 나왔다.

이천 특산품에 반도체를 추가하자는 내용의 광고. 이천시에서는 이 광고에 화답하여 반도체를 이천의 특산품으로 지정하는 홍보용 가상 기자회견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 이 광고 끝에, 다음 나올 광고의 예고편이 나와 있다.

다음 편인 청주편에서도 약을 빤 것은 이어졌다. 아예 직지심체요절까지 연계하는 건 덤. 재밌고 참신하다는 의견에 비해 수정 금방 되잖아요? 등 노골적인 갑질이 불편하다는 의견도 있다.

8. 사업장


이천캠퍼스(본사): 경기도 이천시 부발읍 경충대로 2091
청주제1공장: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대신로 215 (향정동)
청주제2공장: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2순환로 959 (향정동)
청주제3공장: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직지대로 337 (향정동)
청주제4공장: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에스케이로 120 (외북동)
분당캠퍼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성남대로 343번길 9 SK-U타워 (정자동)
그런데 선거철마다 '저희 지역 근처에 SK그룹 공장 많아요'라며 'SK축구단 유치'를 공약으로 내거는 유세를 자주 하는 용인시 정치인들에 의해 오해가 생기고 말았다. 현재 카카오맵 검색결과상 용인시에는 "'''이름만''' SK하이닉스"인 상태지만, 2021년에 착공될 용인공장이 누락된 것으로 확인.

9. 자회사 목록


[image]
  • SK하이스텍
[image]
  • SK하이이엔지
  • SK시스템아이씨
  • SK HAPPY-MORE 행복모아

10. 기타



10.1. 현대 컴퓨터


개그맨 김국진을 광고모델로 써서 "밤새지 마란 말야~!"란 말을 하게 하던 방송광고를 내보낸 적이 있다. 80년대 후반 사무자동화(OA)바람이 불 때 거의 모든 대기업집단들이 자체 OA기기 회사를 만들어 사내 하드웨어와 업무용 소프트웨어를 자체 조달했다. 자체수요말고도 당시 공공, 기업, 소비자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었고 소프트웨어의 복잡도가 낮았던 시절이라 그런 시도는 당연한 일이었다.
1998년 '현대멀티캡'으로 분할되어 현대그룹 품을 벗어났고, 2000년 현대전자 지분까지 매각해 완전 독립했다.

10.2. 게임 사업


현대전자 시절이던 1980년대 후반부터 북미판 패미컴(NES)를 '현대 컴보이'라는 이름으로 출시 후, 게임보이, 슈퍼패미컴, 닌텐도 64(현대전자 발매명은 각각 미니컴보이, 슈퍼컴보이, 컴보이64)까지 닌텐도의 하드웨어를 정식 수입했다. 패미컴은 북미판 베이스[18], 슈퍼패미컴은 유럽판 베이스. 게임소프트웨어는 패미컴부터 닌텐도 64까지 나온 시절에 나온 게임소프트인데, 슈퍼 마리오닌자 거북이,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 등을 수입했다. 드래곤볼Z 초무투전은 한글화까지 했다. IMF라던지 여러가지 외부적 요인이 없었다면 이후의 닌텐도 가정용 콘솔도 수입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컴보이 돌핀'''이라고 명명됐던 닌텐도 게임큐브가 그것이다.
게임보이용 게임 중 포켓몬스터 적·녹은 현대전자가 닌텐도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수입하던 시절인 1996년(북미판은 1998년)에 나왔는데, 정식발매는 하지 않았다. 1990년대 중반부터 현대전자에서 발매한 닌텐도 관련 상품 판매가 부진해지고, IMF 외환위기가 터진 이후 게임사업을 철수했는데, 현대전자가 게임 사업 철수를 몇 년 더 늦게 했다면 포켓몬스터 게임도 현대전자에서 발매했을 뿐만 아니라 포켓몬 게임이 일찍 발매 되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도 괜찮을 듯.

10.3. 휴대폰


삼성, LG와 더불어 휴대폰 생산, 판매에도 뛰어들었던 전력이 있다. 1994년부터 '시티맨'이란 휴대폰을 내놓아서 인기배우 박상원을 전속모델로 기용했고, 1997년 '현대 걸리버'란 이름의 휴대폰을 내놓았다. 당시 CF에서 하일이 걸리버로 분장하여 출연을 했다. '걸면 걸리니까 걸리버지예'란 대사로 유명했다. 1999년에는 원로배우 양택조와 박진희를 기용했다.
2000년부터 '네오미' 브랜드를 쓰기 시작한 후 2001년에 현대큐리텔로 분리되었다가 이듬해 팬택에 인수합병됐다.

10.4. 국산 CPU 개발


1990년대즈음에 '''국산 CPU''' 개발에 들어간 적도 있었다. 당시에 K-DOS라는 것도 나왔을 무렵인데다가 삼성전자도 참여했다. 그러나 1997년 외환 위기가 터지고 나서 삼성전자는 시장성이 없을 것이라 예언하여 빠지고 DEC Alpha 생산 계약을 맺었다. 혼자 남은 현대전자가 독립적으로 연구하다가 결국 CPU 개발은 포기하고 그냥 메모리 시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컴퓨터에 들어가는 x86 호환 CPU이며 연구 중단 전까진 500MHz급 CPU를 개발하는데 성공한 모양.
여담으로 1990년대 중반 미국 현지법인에서 Axil이라는 브랜드로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의 워크스테이션 호환기종을 만들어 판매한 적이 있다. 국내에도 들여와서 주로 현대그룹 관련 기업에서 사용했고 일반 판매도 했었다. 산업 전자 분야에서 이것 저것 많이 손댄 편.

10.5. 인터넷 사업


PC통신이 대중화되던 시절인 1995년에 대기업으로써 처음으로 '아미넷'이라는 이름으로 PC통신 시장에 뛰어들었다. 아직 인터넷조차 우리나라에 생소했던 시절에 최초로 인터넷 기반 PC통신 서비스를 개발했다. 당시 개발팀장이 바로 NC소프트의 '''김택진'''이었다.[19] 이 서비스는 1996년 3월부터 서울을 중심으로 상용서비스를 시작하여 5월 27일부터 전국 상용서비스를 개시했다. 그해 8월부터 현대정보기술로 넘어가면서 1997년부터 신비로로 이어지게 된다.
1990년대 후반 아직 ADSL시대가 열리지 않고 코랜과 ISDN정도가 최고속일 때, 당시 현대정보기술이 전화선을 통한 SLIP/PPP 인터넷 연결을 무료로 개방해서(물론 전화요금은 개인부담이다), 아는 사람들에게는 무척 좋은 평을 받기도 했다.

10.6. 프로야구


현대 유니콘스를 해체하게 만든 주범이기도 하다. 1995년에 현대그룹 차원에서 프로야구단 태평양 돌핀스를 인수하여 현대 유니콘스를 창단하여 야구단의 지분 76% 가량을 보유한 최대주주로 있었다. 문제는 현대그룹이 창단과정에서 대주주를 정하는 것부터 실수를 저질렀다. 스포츠단은 운영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이 드는 탓에 최대의 순수익을 올리는 기업이 운영을 맡아야 한다. 그래야 선수단 운영비와 구단 임대료, 인건비와 선수 연봉등을 감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시에 대주주로 현대자동차현대백화점이 이를 운영했어야 했다. 그런데 대주주를 반도체 사업부를 뺀 모든 사업부가 적자투성이에 재정마저도 부실한 기업인 현대전자가 운영을 했으니 처음은 그룹차원에서도 지원이 있었다고지만 곧 1997년 외환 위기현대그룹에 위기가 오자 현대전자는 점점 휘청대기 시작했고, SK 와이번스로부터 받았던 현대 유니콘스의 서울 입성금 54억을 회사 지원금으로 사용하였고 구단 운영비는 한 푼도 주지 않았다. 심지어 현대자동차그룹에서 2001년에 인수하려 했지만 900억 드립을 치며 해태 타이거즈 인수로 방향을 돌리게 했다.
소유만 했지 말 그대로 방치하고 있었고, 당시 2군 경기장이었던 원당야구장(당시 현대전자 연수원 내 야구장)마저 하이닉스의 소유임에도 전혀 수리하지 않았었다. 설립 당시에는 최신식 시설이었지만 보수를 전혀 하지 않아 실내 연습장 지붕에 구멍이 나 있었다. 그 와중에 경기장 임대료는 매년 꼬박꼬박 걷어갔다. 이로 인해 현대 팬들에겐 안 좋은 취급을 받는다. 현대전자 연수원 자체는 하이닉스를 거쳐 현재는 NH투자증권 산하 NH인재원 소속이 되었다.
다만 2000년대 초반 '자금난으로 워크아웃 중'이며 인수기업을 찾아야 하는 상태인 모기업의 입장에서 보유 당시 만성적자 분야인데다가 사양산업 취급을 받았던 프로야구에서도 가장 인기가 적은 팀이었던 현대 유니콘스는 애물단지로 여겨졌을 수도 있다. 또한 당시 야구단 운영에 대해 채권단과 주주들의 항의도 계속 이어진 바 있다. 당시 재무제표 상에서는 야구단 운영 자금을 충분히 댈 수 있을 만큼의 순이익은 계속 나오고 있었으나 워크아웃 중인 기업에서 이러한 순이익을 야구단에 대기에는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었을 수 있다.
하지만 프로야구단에 쓰라고 있던 돈을 제멋대로 가져간 것은 까임을 피하기 어렵다. 아무리 사정이 어려웠다 해도 야구단의 자금을 멋대로 사용한 것은 모기업으로서 하지 말았어야 할 짓이다.
당시 천덕꾸러기이던 하이닉스가 SK에 인수되어 결과적으로는 사필귀정이 됐지만, 꼬일 대로 꼬인 실타래를 풀기에는 늦어도 너무 늦었다. SK 인수 이후 SK하이닉스의 광고가 SK 와이번스의 홈구장인 인천 SK 행복드림구장에 걸리게 된다.[20] 2021년 2월부로 SK텔레콤이 야구단을 신세계그룹에 매각을 하게되어 다시금 야구와는 연을 끊게 되었으므로 SK하이닉스 광고도 내려졌다.

10.7. 핸드볼


2016년 2월 남자 핸드볼팀을 창단했다. SK 호크스 참고.
[1] 실제 현대전자가 창립된 건 1983년이다. 주식시장 상장을 위해서 1949년에 설립된 국도건설과 합병했다.[2] 지번주소로는 경기도 이천시 부발읍 아미리 산 136-1.[3] Hynix는 '현대 일렉트로닉스', 즉 '''Hy'''undai Electro'''nix'''(nics)에서 따왔다.[4] 창립 당시의 로고[5] 1990년부터 2001년 사명을 하이닉스반도체로 바꾸기 전까지 사용되던 로고이다.[6] 정식 명칭은 현대전자산업 주식회사.[7] 그 외 영상기기는 아남, 음향기기는 인켈-태광-롯데 3강이었다.[8] 당시 재계 1위의 현대그룹 포스라면 파고들려면 충분히 들 수는 있었지만 오히려 그런 이유, 즉 이미 선발업체가 자리잡고 있는데 후발기업이 모그룹돈지랄로 진흙탕 경쟁을 만들수 있다는 재계의 우려 및 선발업체의 반발 때문에 알아서 소비재 전자제품으로의 진출을 포기하고 산업전자제품으로 포지셔닝을 했다.[9] 이렇게 오랜기간 동안 적자를 내면서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LG그룹 내에서 보증과 출자를 통해 계속 자금 지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대기업들의 이런 문제점과 다양한 외부 환경의 변화로 한국은 1997년 IMF 구제 금융 체제로 들어가게 된다.[10] 그러나 LG의 반도체 사업 내공은 1979년 대한전선으로부터 대한반도체를 인수하면서 쌓여왔다. 기존 금성반도체는 1989년 반도체 부문을 '금성일렉트론'으로 분할한 뒤 이듬해 '금성정보통신', 1995년 'LG정보통신'으로 각각 바꾸어 전산장비 및 휴대폰 사업에 주력하다 2000년 LG전자에 합병되었다.[11] 다만 금성반도체의 주 종목은 DRAM이 아닌 비메모리 반도체였으며, 아직까지도 가전제품 등 컴퓨터 외적으로 많이 사용하고 있는 Z80등 저렴한 8비트 CPU를 라이선스 생산하거나 PC나 전자제품에 들어있는 다양한 비메모리 반도체 칩들을 생산할 수 있었기 때문에, 금성반도체가 지속적으로 유지되었다면 DRAM 및 NAND 플래시 메모리에 편향된 현재의 국내 반도체 생산 품목의 다양화를 이루어낼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실제로 현재 금성반도체의 음원 칩이나 IO칩은 매니아들에게 꽤 고평가를 받고 있으며, 특히 음원 칩의 경우 야마하Roland 수준에는 약간 못 미치더라도 근접한 수준까지 따라갔고, 옥소리 카드나 국내 노래방 기기에서 많이 사용되던 프랑스의 드림칩보다는 평가가 많이 좋은 편이다. 실제로 486(금성)~펜티엄1(여기부터 LG) 당시의 컴퓨터 내부를 보면 CPU와 메인 칩셋, GPU를 제외하면 거의 국산화가 되어 있다.[12] 당시 주식시장 그래프는 하이닉스 거래를 그대로 따라갈 정도였다.[13] 2020년 11월 기준 시가총액이 62조인 것을 감안하면, 인수 자금의 현재 가치는 12조에 달한다.[14] 물론 이 수치도 대기업 탑을 다툴 정도로 높은 수치이다.[15] 풀필먼트 업체에 제품을 맡기고 수수료만 내면 재고관리, 판매, 배송, 고객지원 전부를 대행해주는 서비스다. 아마존닷컴은 전통적으로 풀필먼트에 강했으며 한국의 경우 쿠팡이 새로운 풀필먼트 강자로 떠오르고 있다.[16] https://scourt.go.kr/supreme/news/NewsViewAction2.work?pageIndex=1&searchWord=&searchOption=&seqnum=6877&gubun=4&type=5[17] 재미있는 사실은 이 연합에 애플이 참여한 게 결정적이라는 평이 있다.[18] 소프트웨어는 유럽판.[19] 당시 진득하게 일만 하던 청년이었는데 업무시간에 슬리퍼신고 다니다 욕먹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게임 좋아서 게임만든다고 하면서 만든 것이 리니지이다.[20] 공교롭게도 현대 유니콘스숭의야구장을 홈구장으로 쓰던 시절 전광판 아래에 걸린 광고는 SK하이닉스의 전신인 현대전자였다. 대를 이어서 인천 연고 프로야구팀 홈구장 전광판에 광고를 새기게 된 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