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551 셰리든
M551 Sherid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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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EAN VENTURE '84에 참가한 제82공수사단 소속 M551A1 셰리든
미국이 개발한 공수전차다. 남북전쟁 당시 북군 장군이었던 필립 헨리 셰리든(Philip Henry Sheridan)[4] 의 이름을 따 명명되었다. 1960년대 '''공중수송과 수상 도하'''가 가능한 신형 전차를 원했던 미 육군의 요구에 의해 개발되었다. 1966년부터 1970년까지 총 1562대가 생산되었다
개발 당시에는 한국전쟁에서 사용되었고 이후 여러 우방국에 팔려나갔던 M41 워커 불독은 매우 우수한 경전차였지만 공수가 불가능하다는 (미군의 입장에서)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따라서 워커 불독을 공수가 가능할 정도로 경량화하는 버전으로 개발이 시작되었다. 일단 캐딜락사의 T71이 주목받았는데, 해당차량은 장포신 76mm 주포로 무장하였고 워커 불독보다 더 작고 가볍고 가격도 훨씬 저렴하였다. 하지만 설계 개념은 여전히 구식이었고 장갑이 얆아서 방어력이 너무 빈약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T71을 포기한 미 육군은 또 다른 경전차 T92를 주목했다. 매우 혁신적인 설계의 T92는 기존의 전차와는 판이한 모습이었다. 2개의 큐폴라가 설치된 매우 낮은 형상의 포탑에 76mm 주포를 탑재하고, 양쪽에는 2개의 기관총 포트가 있었다. 엔진은 차체 전방에 위치하며 장전과 탄피 추출이 가능한 반자동 장전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비록 장갑은 얇았지만 차체에 피탄경사를 크게 줘서 피탄시의 방어 능력은 M41을 능가한다는 평가가 내려졌다. 일단 해당 차량에 만족한 육군은 1954년부터 T92를 실험전차로 채택하여 업그레이드를 시작, 1957년까지 다양한 테스트를 실시했다.
T92까지는 주포도 M41 워커 불독과 같은 76mm M32를 장착하고 있었으나, M41 워커 불독이 T-54 주력전차와 전투할시 근거리까지 돌입하면 격파는 가능하지만 아무래도 장갑이 얇은 경전차가 근접전을 벌이는 것은 위험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게다가 소련의 수륙양용 경전차 PT-76에 크게 자극받아 자력 수상도하가 가능하게 하라는 요구사항이 추가되었다.
하지만 기존의 T92에 M48 전차와 같은 90mm 전차포를 탑재하면 차체에 심각한 부담이 생길 뿐 아니라 수상도하와 공중수송이 가능한 15톤 정도의 중량제한을 넘어간다. 이렇게 해서 T92는 사장되었으나, 기존의 무기중에 보병지원이 가능하고 대전차 전투도 가능한 화기를 장착할 수 없었기 때문에 대구경 통상탄과 MGM-51 시레일러(Shillelagh) 포발사 대전차미사일 발사가 가능한 152mm 건/런처 M81이 개발되었다.[5]
미 육군은 1959년 '기갑수색 및 공중강습차량 프로젝트'로 경쟁 입찰을 발표하였다. 입찰한 여러 회사 중 1960년 봄에 제너럴 모터스가 사업자로 결정되었다. 미 육군은 XM551로 명명한 원형 차량 6대를 발주, GM은 즉시 개발에 착수하였다. 1961년 12월, GM은 차량 제작 최종 승인을 얻었고, 시레일러 발사 기능이 제거된 건 런처는 M41 워커 불독 차체에 탑재되어 테스트되었다.[6]
MGM-51 시레일러 미사일은 사수의 명중률을 향상시키기 위해 당시로서는 흔치 않은 SACLOS(반자동시선유도) 유도 방식을 채택하였는데, 문제는 미사일에 보내는 방향 조종 신호를 리모콘과 같이 적외선으로 보내도록 설계된 탓에 미사일의 배기연, 심지어는 태양빛 때문에 유도 신호가 묻혀서 조종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시 국방부 장관이었던 맥나마라가 밀어주면서 개선을 계속하여 어느정도 정상적인 발사가 가능한 수준까지 개량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특정 각도 이내에 태양빛이 비칠 경우 신호가 묻히고 통상탄을 발사할 경우 미사일 조준용 광학 장비의 정렬이 어그러지면서 조준기가 오류 메세지를 뿜는 등 해결되지 않은 문제점도 있었다.[7] 이후에 등장한 TOW가 괜히 전선으로 유도 지령을 내리는 것이 아니다.
미 육군은 XM551 프로토타입 6대 외에 테스트용으로 6대를 더 발주하였다. 이 차량들은 기후 적응성, 내구성, 수륙양용 능력, 발포 능력, 그리고 공수 능력 검증 등 광범위한 시험을 받았다. 이 차량들은 앞서 말한 건 런처를 탑재했고 중량을 줄이기 위해서 알루미늄 합금 장갑으로 제작되었다. 자체적으로 도하 장치를 내장하고[8] 있어서 별도의 지원장비가 없어도 도하가 가능했다. 물론 NBC 방어도 가능했다.
여기에 더해서 공수전차답게 낙하산 직접 투하가 가능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만약 낙하산 산개에 실패한다면 차량이 파손될 수도 있었다. 이러한 위험 부담 때문에 낙하산 투하는 거의 하지 않았고, 대신 저고도 낙하산 추출 방식(LAPES/ Low Altitude Parachute Extraction System)을 사용하였다. 실제로 1989년 12월 파나마 침공작전에서의 낙하산 투하 때 낙하산 산개 실패로 C-5에서 투하된 셰리든 10대 중에서 2대가 파괴되었다.
베트남전 당시 일부 부대에 "무겁고 도하능력도 떨어지는" M48 대신 배치되었다. 습한 기후에 논이나 도랑 등이 많은 베트남에서 우수한 기동성을 살려서 유용하게 쓰였지만[9] 문제점도 많이 드러나게 된다.
셰리든은 공수전차로 설계되었지만 어느 정도의 방어력은 지녀야했다. 이 문제에 맞닥뜨린 미 육군은 가벼운 무게와 만족스러운 방어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자 알루미늄으로 차체를 만들었다. 이 알루미늄 합금 장갑은 무게에 비해서 그럭저럭 괜찮은 방어력을 발휘하리라 기대했다. '''실전투입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알루미늄 합금 장갑의 원리상 기관총탄을 비롯한 소화기에 대한 방호력은 괜찮은 수준이었고 두께만 충분하다면 적 주력전차의 철갑탄에 대해서도 나쁘지 않은 방어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피탄시 생기는 알루미늄 장갑의 파편은 불이 붙기 쉬울 뿐더러 한번 타기 시작하면 감당이 안되는 수준의 내부화재를 일으켰고[10] , 큰 포탄을 작은 차체에 적재하고 다니니 포탄으로 화재가 번질 가능성도 상대적으로 높았다. 결국 나중에는 전투상황이 아니라면 이동 중에도 조종수를 뺀 나머지 승무원들은 전차 밖으로 나와서 탱크 데산트처럼 전차 위에 올라타는 도저히 웃지 못할 상황까지 벌어졌다. 승무원들이 밖에서 총에 맞아죽을 위험보다 전차 안에서 산 채로 불타죽을 위험성을 훨씬 높게 판단했던 것이다.[11]
하부장갑도 대전차 지뢰에 특히 취약해서 결국 차체 하부에 추가로 알루미늄과 균질압연장갑판으로 이루어진 지뢰방호킷을 부착하게 되었는데, 덕분에 지뢰에 당해서 불구가 되는 사태는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었다.
셰리든의 가장 큰 문제점은 처음부터 말썽이 끊이지 않았던 152mm 건 런처였는데, 포 자체의 구조를 뜯어고치는 개량형이 2번이나 나왔지만 해결이 잘 안되는 상태였다. 아예 M41 워커 불독의 76mm M32와 105mm XM103 곡사포를 달아보기도 하였지만 이렇게 되면 워커 불독과 다를 바가 없었기에 시제품에 그쳤다.[12]
152mm 포탄의 소진탄피도 심각한 문제였다. 기술력도 모자랐지만 베트남의 습한 현지의 날씨 탓에 습기를 머금은 탄피가 다 타지 않고 포신 안에 찌꺼기를 남겼기 때문이다. 이는 차탄 장전시 엄청난 방해요소가 되었는데, 탄피가 타고 남은 찌꺼기를 벌겋게 달아오른 약실에서 일일이 손으로 제거해야 했기 때문이다.(당연히 포신도 달아오른 상태) 당연히 이론상 분당 4~5발이었었던 발사속도도 2~3발 수준으로 떨어졌다. 심지어는 승무원이 밖으로 나가서 탄피 조각을 긁어내다가 총격에 사살당한 경우까지 발생했다. 이 때문에 탄피를 개량하고, 탄약 주위에 습기 흡수용 플라스틱 백도 설치해봤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했다. 이러다보니 그냥 금속 탄피를 쓰자는 의견이 나왔지만 당시 한창 개발 중이던 MBT-70의 자동장전장치가 금속 탄피와 호환이 되지 않았기에 개량안은 무산되었다.
소진탄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방 포미 제거 시스템(OBSS/open breech scavenger system)을 개발하게 된다. 이 시스템은 포신에 이산화탄소를 불어넣어서 타고 남은 탄피 조각을 강제로 제거하는 장치였는데 이때 발생한 연기와 이산화탄소 자체가 포탑으로 유입되어 승무원의 작업을 방해하였고, 이산화탄소 농도는 단시간에 위험 수준까지 도달하였다. 이러한 심각한 결점에도 불구하고 1967년에 생산한 셰리든 전차에는 개방 포미 제거 시스템이 사용되었으나 1968년 폐쇄 포미 제거 시스템(CBSS/closed breech scavenger system)이 OBSS를 대체하였다. 이 CBSS를 채용한 M81포는 M81E1으로 명명되었다.
이렇게 수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었지만 구경이 구경인지라 화력은 M48은 물론, M60보다 우수했다. M409 HEAT탄은 관통력이 355mm이며, 당대의 소련 MBT인 T-55, T-62 전차도 어느 거리에서든 명중만 시키면 전면도 한방에 꿰뚫어버릴 수 있었다. 같이 싣고 다닌 M625 152mm 캐니스터탄은 1발을 발사할 때마다 포구에서 1만발의 총알이 발사되는 산탄으로 근거리용이긴 하지만 단 한발로 적 보병을 뭉텅이로 쓸어버릴 수 있어서 대인제압용으로 훌륭한 위력을 발휘하여 호평을 받았다. 셰리든의 첫번째 실적도 적군 보병 중대에 M625 캐니스터를 쏴서 이룬 것이었다.
다만 시레일러 미사일은 정글에서는 필요하지 않다는 판단하에 베트남전에서 사용되지 않았고, 유도 장치와 미사일을 싣을 공간은 기관총 총탄을 더 넣는데 사용되었다.
그 외에도 최신예 전차라서 예비부품이 부족하다던지, 전기 시스템이 민감해서 고온다습한 기후와 먼지 탓에 툭하면 고장났다던지, 엔진까지 쉽게 과열돼서 혼자서 불나서 고철된다던지 하는 문제점이 있었다. 그래도 엔진 트러블은 고성능 팬밸트를 도입하고 알루미늄 풀리를 강철제로 교체해서 거의 해결했고, 나머지는 정비를 '''더욱 열심히''' 하는 것으로 해결을 보았다. 그래서 M48에 비교하면 그럭저럭 비슷한 수준이었다. 가끔 통상탄을 발사하면 미사일 유도장치가 고장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베트남에 참전하기로 결정한 호주군도 혹시나 하여 밀림지대에서 M551을 테스트하였다. 결과는 꽤나 좋은 편이었지만 이미 베트남에 신뢰성이 비교적 높던 센추리온 전차 Mk.5/1을 전개한 호주군은 셰리든을 도입하지 않았다.
한편 몇몇 지휘관들은 M551 셰리든의 전개를 반대하고 나섰으나 정작 배치 이후에 이러한 주장은 거의 사라졌다.
어째서인지 동 시대의 주력전차인 M48과 자주 비교되었고, 미군의 삽질로 평가받곤 하지만 사실 셰리든은 M48과는 다른 목적으로 제작된 차량으로, 소련의 대구경 저압포를 단 BMD-1 공수장갑차와 사용 목적이 크게 다르지 않은 차량이다. 그러니까 '''서로 만들어진 목적이 다른 물건을 같은 기준으로 비교'''했으니 악평이 끊이지 않은 셈이다.
셰리든의 152mm 주포는 무시무시한 화력을 자랑했다. 통로 개척 능력이야 무게가 가벼웠으니 M48에 비해 좀 부족한 감이 있었지만 공수전차답게 무게가 가벼워서 질척질척한 베트남의 정글은 잘 다녔다. 일선에서도 호평이었기 때문에 1970년까지 베트남에 200여대가 넘게 배치되었다. 여러가지 문제점[13] 이 있었지만 장점도 명확했기에 승무원들 입장에서는 애증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다고 볼 수 있다(Zaloga, 2009).
알루미늄 장갑도 많은 비난을 받지만, 당시의 기술력으론 '공수가 가능할 정도로 가벼우면서도 충분한 방어력'을 확보하려면 중량 대비 방호력이 좋은 알루미늄 장갑을 채용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동시기 미군 M113과 소련군의 BMD 시리즈 역시 중량 감량을 위해 알루미늄 장갑을 채택했다. 셰리든이 M48처럼 두터운 균질압연장갑을 바르도록 설계했으면 방어력은 좋았을지도 모르지만, 그러면 당연히 무거워지고 '''공수가 안된다.''' 셰리든 이후에도 MBT 외에 추가장갑판도 없이 RPG-7을 막을 수 있는 장갑차량은 거의 없다. 그 예외 중의 하나인 독일의 퓨마 장갑차가 항공 수송에 곤란을 겪다가 장갑을 크게 감량한 바 있다.
지뢰를 밟으면 완파되는 경우가 많은 건 사실이었지만 손실되는 양 자체는 다른 전차들과 별반 다르지도 않았다.[14] 이것도 위에서 나온 것처럼 추가로 보강장갑을 까는 등의 조치로 어느정도 만회할 수 있었다.
셰리든은 여러가지 한계가 명확한 차량이었지만, 그것은 공수전차라는 차종의 특성상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었던 한계였다. 상술된 수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82 공수사단에서는 오랫동안 애용하였으며, 셰리든이 퇴역한 이후로도 미군이 비슷한 화력지원차량을 개발하고 투입하고 있지만 경장갑차 기반이라는것의 한계를 느껴서인지 MPF 사업으로 M8 뷰포드를 다시 도입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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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나마에서 작전 중인 M551A1. 탄약수가 들고 있는 기관단총은 2차세계대전 중에 개발된 M3A1 그리스건이다.[15]
결국 베트남 전쟁에서 지휘관들의 잘못된 운용과 겹쳐 문제점이 지적되었지만 캐니스터탄이나 HEAT탄의 위력은 인정을 받았고 미국 공수부대에서는 부대와 함께 즉시 투입되는 즉응 기갑전력으로 오랫동안 사랑받았다. 1969년 주독미군과 주한미군에도 배치되었고, 개량형인 M551A1에서는 AN/VVG-1 레이저 거리측정기가 도입되었다. 이는 미군이 배치한 기갑차량 중에서는 최초이다. 1990년에는 M60A3 TTS의 열상과 동일한 AN/VGS-2B가 도입되었다.
1978년 M3 브래들리의 도입이 결정되자 82 공수사단을 제외한 미 육군의 모든 기갑부대에서 퇴출되었다. 공수부대와 공중기병부대에 배치된 차량을 제외한 다수의 M551들은 미군 기갑부대의 표적 전차로 개조되어 외관을 소련 전차와 유사한 형태로 꾸미고 2003년 M113 계열로 대체되기 전까지 대항군 역할로 활약했다. 이렇게 개조된 차량중 일부는 헐리웃으로 흘러들어가 1980~1990년대에 소련 전차 역할로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나마 셰리든 차체의 기계적인 신뢰성은 우수했기에, 1977년에 배치가 중단된 이후 남아도는 차체를 활용하려는 여러가지 계획이 실행되기도 하였다. 이 계획 중에서 제식 채용된 것은 없지만, 이후 운용개념 등은 스팅레이 경전차와 M8 뷰포드에 영향을 주었다.
1981년 제13차 한미안보협의회 당시 미군이 한국군의 전력증강을 위해 판매하기로 결의한 무기들 중에 미군 퇴역분 셰리든 천 대가 포함되었었다.[16] 대당 1만 달러라는 싼 가격에 도입하기로 합의했다지만 결국 취소되었다. 당시 물가로도 싼 편이긴 하지만 그 시절 똥별들이 아무리 득시글거려도 당시에는 북한의 대규모 기갑부대가 가장 큰 위협이었고 그 상황에서 종잇장 방어력을 가진 세리던보단 좀 더 비싸더라도 패튼 계열을 도입하는 게 더 효율적이었다. 그렇다고 현재도 그렇지만 당시 한국 공군에 공수전차를 운용할만큼 능력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17]
1989년 파나마 침공에는 14대가 투입되었다. 4대는 작전 이전에, 10대는 작전 당일 공수되어 투입되었다. 비록 공수 도중에 두 대가 파손되었지만 '''최초로 전장에 낙하산으로 공수된 전차라는 타이틀을 세우게 되었다.''' 셰리든은 이때 공수전차의 필요성을 입증했는데, HEAT탄으로 콘크리트 벽을 뚫어 진입 통로를 만들거나 직접 화력지원을 하여 공수부대원들의 사랑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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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걸프전에서는 드디어 시레일러 미사일이 처음으로 실전에서 사용되었으며, 이라크군의 T-55를 격파하는데 성공했다.''' 이후 차량의 수명이 다 되어서 1997년에 전량 퇴역했다. 그리고 미 육군은 M551을 M1128 MGS로 대체할 예정이었지만 평가는 그리 좋지 않다.
M551이 개발될 당시 미군은 경전차의 개념을 폐기했기 때문에 '장갑 공수 강습 정찰차량(Armored Reconnaissance/Airborne Assault Vehicle)'으로 분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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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년에는 전문대항군 부대 훈련용으로 T-62, T-72이나 T-80 전차처럼 개조되기도 했다. 셰리든이 퇴역한 후로는 M113이 이 역할을 맡는다.
1. 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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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EAN VENTURE '84에 참가한 제82공수사단 소속 M551A1 셰리든
2. 개요
미국이 개발한 공수전차다. 남북전쟁 당시 북군 장군이었던 필립 헨리 셰리든(Philip Henry Sheridan)[4] 의 이름을 따 명명되었다. 1960년대 '''공중수송과 수상 도하'''가 가능한 신형 전차를 원했던 미 육군의 요구에 의해 개발되었다. 1966년부터 1970년까지 총 1562대가 생산되었다
3. 개발
개발 당시에는 한국전쟁에서 사용되었고 이후 여러 우방국에 팔려나갔던 M41 워커 불독은 매우 우수한 경전차였지만 공수가 불가능하다는 (미군의 입장에서)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따라서 워커 불독을 공수가 가능할 정도로 경량화하는 버전으로 개발이 시작되었다. 일단 캐딜락사의 T71이 주목받았는데, 해당차량은 장포신 76mm 주포로 무장하였고 워커 불독보다 더 작고 가볍고 가격도 훨씬 저렴하였다. 하지만 설계 개념은 여전히 구식이었고 장갑이 얆아서 방어력이 너무 빈약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T71을 포기한 미 육군은 또 다른 경전차 T92를 주목했다. 매우 혁신적인 설계의 T92는 기존의 전차와는 판이한 모습이었다. 2개의 큐폴라가 설치된 매우 낮은 형상의 포탑에 76mm 주포를 탑재하고, 양쪽에는 2개의 기관총 포트가 있었다. 엔진은 차체 전방에 위치하며 장전과 탄피 추출이 가능한 반자동 장전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비록 장갑은 얇았지만 차체에 피탄경사를 크게 줘서 피탄시의 방어 능력은 M41을 능가한다는 평가가 내려졌다. 일단 해당 차량에 만족한 육군은 1954년부터 T92를 실험전차로 채택하여 업그레이드를 시작, 1957년까지 다양한 테스트를 실시했다.
T92까지는 주포도 M41 워커 불독과 같은 76mm M32를 장착하고 있었으나, M41 워커 불독이 T-54 주력전차와 전투할시 근거리까지 돌입하면 격파는 가능하지만 아무래도 장갑이 얇은 경전차가 근접전을 벌이는 것은 위험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게다가 소련의 수륙양용 경전차 PT-76에 크게 자극받아 자력 수상도하가 가능하게 하라는 요구사항이 추가되었다.
하지만 기존의 T92에 M48 전차와 같은 90mm 전차포를 탑재하면 차체에 심각한 부담이 생길 뿐 아니라 수상도하와 공중수송이 가능한 15톤 정도의 중량제한을 넘어간다. 이렇게 해서 T92는 사장되었으나, 기존의 무기중에 보병지원이 가능하고 대전차 전투도 가능한 화기를 장착할 수 없었기 때문에 대구경 통상탄과 MGM-51 시레일러(Shillelagh) 포발사 대전차미사일 발사가 가능한 152mm 건/런처 M81이 개발되었다.[5]
미 육군은 1959년 '기갑수색 및 공중강습차량 프로젝트'로 경쟁 입찰을 발표하였다. 입찰한 여러 회사 중 1960년 봄에 제너럴 모터스가 사업자로 결정되었다. 미 육군은 XM551로 명명한 원형 차량 6대를 발주, GM은 즉시 개발에 착수하였다. 1961년 12월, GM은 차량 제작 최종 승인을 얻었고, 시레일러 발사 기능이 제거된 건 런처는 M41 워커 불독 차체에 탑재되어 테스트되었다.[6]
MGM-51 시레일러 미사일은 사수의 명중률을 향상시키기 위해 당시로서는 흔치 않은 SACLOS(반자동시선유도) 유도 방식을 채택하였는데, 문제는 미사일에 보내는 방향 조종 신호를 리모콘과 같이 적외선으로 보내도록 설계된 탓에 미사일의 배기연, 심지어는 태양빛 때문에 유도 신호가 묻혀서 조종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시 국방부 장관이었던 맥나마라가 밀어주면서 개선을 계속하여 어느정도 정상적인 발사가 가능한 수준까지 개량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특정 각도 이내에 태양빛이 비칠 경우 신호가 묻히고 통상탄을 발사할 경우 미사일 조준용 광학 장비의 정렬이 어그러지면서 조준기가 오류 메세지를 뿜는 등 해결되지 않은 문제점도 있었다.[7] 이후에 등장한 TOW가 괜히 전선으로 유도 지령을 내리는 것이 아니다.
미 육군은 XM551 프로토타입 6대 외에 테스트용으로 6대를 더 발주하였다. 이 차량들은 기후 적응성, 내구성, 수륙양용 능력, 발포 능력, 그리고 공수 능력 검증 등 광범위한 시험을 받았다. 이 차량들은 앞서 말한 건 런처를 탑재했고 중량을 줄이기 위해서 알루미늄 합금 장갑으로 제작되었다. 자체적으로 도하 장치를 내장하고[8] 있어서 별도의 지원장비가 없어도 도하가 가능했다. 물론 NBC 방어도 가능했다.
여기에 더해서 공수전차답게 낙하산 직접 투하가 가능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만약 낙하산 산개에 실패한다면 차량이 파손될 수도 있었다. 이러한 위험 부담 때문에 낙하산 투하는 거의 하지 않았고, 대신 저고도 낙하산 추출 방식(LAPES/ Low Altitude Parachute Extraction System)을 사용하였다. 실제로 1989년 12월 파나마 침공작전에서의 낙하산 투하 때 낙하산 산개 실패로 C-5에서 투하된 셰리든 10대 중에서 2대가 파괴되었다.
베트남전 당시 일부 부대에 "무겁고 도하능력도 떨어지는" M48 대신 배치되었다. 습한 기후에 논이나 도랑 등이 많은 베트남에서 우수한 기동성을 살려서 유용하게 쓰였지만[9] 문제점도 많이 드러나게 된다.
4. 특징
4.1. 방호력
셰리든은 공수전차로 설계되었지만 어느 정도의 방어력은 지녀야했다. 이 문제에 맞닥뜨린 미 육군은 가벼운 무게와 만족스러운 방어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자 알루미늄으로 차체를 만들었다. 이 알루미늄 합금 장갑은 무게에 비해서 그럭저럭 괜찮은 방어력을 발휘하리라 기대했다. '''실전투입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알루미늄 합금 장갑의 원리상 기관총탄을 비롯한 소화기에 대한 방호력은 괜찮은 수준이었고 두께만 충분하다면 적 주력전차의 철갑탄에 대해서도 나쁘지 않은 방어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피탄시 생기는 알루미늄 장갑의 파편은 불이 붙기 쉬울 뿐더러 한번 타기 시작하면 감당이 안되는 수준의 내부화재를 일으켰고[10] , 큰 포탄을 작은 차체에 적재하고 다니니 포탄으로 화재가 번질 가능성도 상대적으로 높았다. 결국 나중에는 전투상황이 아니라면 이동 중에도 조종수를 뺀 나머지 승무원들은 전차 밖으로 나와서 탱크 데산트처럼 전차 위에 올라타는 도저히 웃지 못할 상황까지 벌어졌다. 승무원들이 밖에서 총에 맞아죽을 위험보다 전차 안에서 산 채로 불타죽을 위험성을 훨씬 높게 판단했던 것이다.[11]
하부장갑도 대전차 지뢰에 특히 취약해서 결국 차체 하부에 추가로 알루미늄과 균질압연장갑판으로 이루어진 지뢰방호킷을 부착하게 되었는데, 덕분에 지뢰에 당해서 불구가 되는 사태는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었다.
4.2. 주포
셰리든의 가장 큰 문제점은 처음부터 말썽이 끊이지 않았던 152mm 건 런처였는데, 포 자체의 구조를 뜯어고치는 개량형이 2번이나 나왔지만 해결이 잘 안되는 상태였다. 아예 M41 워커 불독의 76mm M32와 105mm XM103 곡사포를 달아보기도 하였지만 이렇게 되면 워커 불독과 다를 바가 없었기에 시제품에 그쳤다.[12]
152mm 포탄의 소진탄피도 심각한 문제였다. 기술력도 모자랐지만 베트남의 습한 현지의 날씨 탓에 습기를 머금은 탄피가 다 타지 않고 포신 안에 찌꺼기를 남겼기 때문이다. 이는 차탄 장전시 엄청난 방해요소가 되었는데, 탄피가 타고 남은 찌꺼기를 벌겋게 달아오른 약실에서 일일이 손으로 제거해야 했기 때문이다.(당연히 포신도 달아오른 상태) 당연히 이론상 분당 4~5발이었었던 발사속도도 2~3발 수준으로 떨어졌다. 심지어는 승무원이 밖으로 나가서 탄피 조각을 긁어내다가 총격에 사살당한 경우까지 발생했다. 이 때문에 탄피를 개량하고, 탄약 주위에 습기 흡수용 플라스틱 백도 설치해봤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했다. 이러다보니 그냥 금속 탄피를 쓰자는 의견이 나왔지만 당시 한창 개발 중이던 MBT-70의 자동장전장치가 금속 탄피와 호환이 되지 않았기에 개량안은 무산되었다.
소진탄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방 포미 제거 시스템(OBSS/open breech scavenger system)을 개발하게 된다. 이 시스템은 포신에 이산화탄소를 불어넣어서 타고 남은 탄피 조각을 강제로 제거하는 장치였는데 이때 발생한 연기와 이산화탄소 자체가 포탑으로 유입되어 승무원의 작업을 방해하였고, 이산화탄소 농도는 단시간에 위험 수준까지 도달하였다. 이러한 심각한 결점에도 불구하고 1967년에 생산한 셰리든 전차에는 개방 포미 제거 시스템이 사용되었으나 1968년 폐쇄 포미 제거 시스템(CBSS/closed breech scavenger system)이 OBSS를 대체하였다. 이 CBSS를 채용한 M81포는 M81E1으로 명명되었다.
이렇게 수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었지만 구경이 구경인지라 화력은 M48은 물론, M60보다 우수했다. M409 HEAT탄은 관통력이 355mm이며, 당대의 소련 MBT인 T-55, T-62 전차도 어느 거리에서든 명중만 시키면 전면도 한방에 꿰뚫어버릴 수 있었다. 같이 싣고 다닌 M625 152mm 캐니스터탄은 1발을 발사할 때마다 포구에서 1만발의 총알이 발사되는 산탄으로 근거리용이긴 하지만 단 한발로 적 보병을 뭉텅이로 쓸어버릴 수 있어서 대인제압용으로 훌륭한 위력을 발휘하여 호평을 받았다. 셰리든의 첫번째 실적도 적군 보병 중대에 M625 캐니스터를 쏴서 이룬 것이었다.
다만 시레일러 미사일은 정글에서는 필요하지 않다는 판단하에 베트남전에서 사용되지 않았고, 유도 장치와 미사일을 싣을 공간은 기관총 총탄을 더 넣는데 사용되었다.
4.3. 신뢰성
그 외에도 최신예 전차라서 예비부품이 부족하다던지, 전기 시스템이 민감해서 고온다습한 기후와 먼지 탓에 툭하면 고장났다던지, 엔진까지 쉽게 과열돼서 혼자서 불나서 고철된다던지 하는 문제점이 있었다. 그래도 엔진 트러블은 고성능 팬밸트를 도입하고 알루미늄 풀리를 강철제로 교체해서 거의 해결했고, 나머지는 정비를 '''더욱 열심히''' 하는 것으로 해결을 보았다. 그래서 M48에 비교하면 그럭저럭 비슷한 수준이었다. 가끔 통상탄을 발사하면 미사일 유도장치가 고장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4.4. 그 외
베트남에 참전하기로 결정한 호주군도 혹시나 하여 밀림지대에서 M551을 테스트하였다. 결과는 꽤나 좋은 편이었지만 이미 베트남에 신뢰성이 비교적 높던 센추리온 전차 Mk.5/1을 전개한 호주군은 셰리든을 도입하지 않았다.
한편 몇몇 지휘관들은 M551 셰리든의 전개를 반대하고 나섰으나 정작 배치 이후에 이러한 주장은 거의 사라졌다.
5. M48과의 비교
어째서인지 동 시대의 주력전차인 M48과 자주 비교되었고, 미군의 삽질로 평가받곤 하지만 사실 셰리든은 M48과는 다른 목적으로 제작된 차량으로, 소련의 대구경 저압포를 단 BMD-1 공수장갑차와 사용 목적이 크게 다르지 않은 차량이다. 그러니까 '''서로 만들어진 목적이 다른 물건을 같은 기준으로 비교'''했으니 악평이 끊이지 않은 셈이다.
셰리든의 152mm 주포는 무시무시한 화력을 자랑했다. 통로 개척 능력이야 무게가 가벼웠으니 M48에 비해 좀 부족한 감이 있었지만 공수전차답게 무게가 가벼워서 질척질척한 베트남의 정글은 잘 다녔다. 일선에서도 호평이었기 때문에 1970년까지 베트남에 200여대가 넘게 배치되었다. 여러가지 문제점[13] 이 있었지만 장점도 명확했기에 승무원들 입장에서는 애증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다고 볼 수 있다(Zaloga, 2009).
알루미늄 장갑도 많은 비난을 받지만, 당시의 기술력으론 '공수가 가능할 정도로 가벼우면서도 충분한 방어력'을 확보하려면 중량 대비 방호력이 좋은 알루미늄 장갑을 채용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동시기 미군 M113과 소련군의 BMD 시리즈 역시 중량 감량을 위해 알루미늄 장갑을 채택했다. 셰리든이 M48처럼 두터운 균질압연장갑을 바르도록 설계했으면 방어력은 좋았을지도 모르지만, 그러면 당연히 무거워지고 '''공수가 안된다.''' 셰리든 이후에도 MBT 외에 추가장갑판도 없이 RPG-7을 막을 수 있는 장갑차량은 거의 없다. 그 예외 중의 하나인 독일의 퓨마 장갑차가 항공 수송에 곤란을 겪다가 장갑을 크게 감량한 바 있다.
지뢰를 밟으면 완파되는 경우가 많은 건 사실이었지만 손실되는 양 자체는 다른 전차들과 별반 다르지도 않았다.[14] 이것도 위에서 나온 것처럼 추가로 보강장갑을 까는 등의 조치로 어느정도 만회할 수 있었다.
셰리든은 여러가지 한계가 명확한 차량이었지만, 그것은 공수전차라는 차종의 특성상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었던 한계였다. 상술된 수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82 공수사단에서는 오랫동안 애용하였으며, 셰리든이 퇴역한 이후로도 미군이 비슷한 화력지원차량을 개발하고 투입하고 있지만 경장갑차 기반이라는것의 한계를 느껴서인지 MPF 사업으로 M8 뷰포드를 다시 도입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6. 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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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나마에서 작전 중인 M551A1. 탄약수가 들고 있는 기관단총은 2차세계대전 중에 개발된 M3A1 그리스건이다.[15]
결국 베트남 전쟁에서 지휘관들의 잘못된 운용과 겹쳐 문제점이 지적되었지만 캐니스터탄이나 HEAT탄의 위력은 인정을 받았고 미국 공수부대에서는 부대와 함께 즉시 투입되는 즉응 기갑전력으로 오랫동안 사랑받았다. 1969년 주독미군과 주한미군에도 배치되었고, 개량형인 M551A1에서는 AN/VVG-1 레이저 거리측정기가 도입되었다. 이는 미군이 배치한 기갑차량 중에서는 최초이다. 1990년에는 M60A3 TTS의 열상과 동일한 AN/VGS-2B가 도입되었다.
1978년 M3 브래들리의 도입이 결정되자 82 공수사단을 제외한 미 육군의 모든 기갑부대에서 퇴출되었다. 공수부대와 공중기병부대에 배치된 차량을 제외한 다수의 M551들은 미군 기갑부대의 표적 전차로 개조되어 외관을 소련 전차와 유사한 형태로 꾸미고 2003년 M113 계열로 대체되기 전까지 대항군 역할로 활약했다. 이렇게 개조된 차량중 일부는 헐리웃으로 흘러들어가 1980~1990년대에 소련 전차 역할로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나마 셰리든 차체의 기계적인 신뢰성은 우수했기에, 1977년에 배치가 중단된 이후 남아도는 차체를 활용하려는 여러가지 계획이 실행되기도 하였다. 이 계획 중에서 제식 채용된 것은 없지만, 이후 운용개념 등은 스팅레이 경전차와 M8 뷰포드에 영향을 주었다.
1981년 제13차 한미안보협의회 당시 미군이 한국군의 전력증강을 위해 판매하기로 결의한 무기들 중에 미군 퇴역분 셰리든 천 대가 포함되었었다.[16] 대당 1만 달러라는 싼 가격에 도입하기로 합의했다지만 결국 취소되었다. 당시 물가로도 싼 편이긴 하지만 그 시절 똥별들이 아무리 득시글거려도 당시에는 북한의 대규모 기갑부대가 가장 큰 위협이었고 그 상황에서 종잇장 방어력을 가진 세리던보단 좀 더 비싸더라도 패튼 계열을 도입하는 게 더 효율적이었다. 그렇다고 현재도 그렇지만 당시 한국 공군에 공수전차를 운용할만큼 능력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17]
1989년 파나마 침공에는 14대가 투입되었다. 4대는 작전 이전에, 10대는 작전 당일 공수되어 투입되었다. 비록 공수 도중에 두 대가 파손되었지만 '''최초로 전장에 낙하산으로 공수된 전차라는 타이틀을 세우게 되었다.''' 셰리든은 이때 공수전차의 필요성을 입증했는데, HEAT탄으로 콘크리트 벽을 뚫어 진입 통로를 만들거나 직접 화력지원을 하여 공수부대원들의 사랑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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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걸프전에서는 드디어 시레일러 미사일이 처음으로 실전에서 사용되었으며, 이라크군의 T-55를 격파하는데 성공했다.''' 이후 차량의 수명이 다 되어서 1997년에 전량 퇴역했다. 그리고 미 육군은 M551을 M1128 MGS로 대체할 예정이었지만 평가는 그리 좋지 않다.
M551이 개발될 당시 미군은 경전차의 개념을 폐기했기 때문에 '장갑 공수 강습 정찰차량(Armored Reconnaissance/Airborne Assault Vehicle)'으로 분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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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년에는 전문대항군 부대 훈련용으로 T-62, T-72이나 T-80 전차처럼 개조되기도 했다. 셰리든이 퇴역한 후로는 M113이 이 역할을 맡는다.
7. 매체
- 게임 아머드 워페어에서 5티어 경전차로 등장한다. 시레일러 미사일도 사용할 수 있다.
- 게임 월드 인 컨플릭트에서 미군 경전차로 등장한다.
- 게임 월드 오브 탱크에서 미군 9티어 경전차 T49에서 연구할 수 있는 포탑과 152mm 주포로 먼저 등장했다. 추가 당시에는 8티어였고, 이후 셰리든의 출시와 함께 9티어로 격상되었다.
10티어로 테스트형인 XM551이 등장한다. 105mm와 152mm 주포를 선택할 수 있으며, 개발진이 대전차 미사일이나 날탄 같은 현대 무기는 추가하지 않겠다고 수차례 공언한 만큼, 시레일러 미사일은 등장하지 않는다.
- 월드 오브 탱크 블리츠에서도 6.7 패치 때 미국 정규 트리 10티어 경전차로 등장했다. PC와는 달리 ATGM을 사용할 수 있으나, 운용 난이도가 높다. 그리고 1년도 안 돼서 7.5때 ATGM이 삭제되었다.
- 게임 워 썬더에서 2016년 1.59 패치로 등장. 미국 6랭크 경전차로 등장한다. 고폭탄과 성형작약탄 그리고 2랭크 부품 언락으로 시레일러 미사일을 사용할 수 있다. 대구경포 답게 강력한 살상력을 갖췄지만, 항공기 기관총에도 뚫리는 처절한 알루미늄 장갑과 애매모호한 기동성 때문에 굉장히 쓰기 어렵다.
- 게임 워게임: 레드 드래곤에서 전투형과 정찰형으로 나온다. 시레일러 미사일과 152mm주포의 화력은 살짝 애매해서 스팸이나 보병 지원용으로 주로 쓰인다.
- 트랜스포머 G1의 워패스의 비클모드이다.
- 강철의 왈츠에서는 2017년 6월 7일 업데이트때 3성 6도면 경전차로 등장했으며 M24 채피인 세실 채피의 무장업 형태로 등장했다.
- 아머 블리츠에서는 2019년 6월 27일 업데이트로 5성 경전차로 등장했다 이름은 쉐리즈. 특징은 공수전차답게 출격시 출격장소를 정하면 박스가 투하되고 출격한다. 패시브 스킬은 투하지에 적이 있을 경우 적에게 3초간 기절시키는 패러드롭.
- 도미네이션즈에서는 C-130 수송기 전술성 병력으로 공중에서 투하하거나 따로 투입할 수 있는 전술성 병력으로등장한다. 수송기로 공중에서 투하할 경우 LAPES가 아닌 낙하산병, 무장 차량을 낙하산으로 투입할 때와 동일하고 한번에 3개씩 투하된다.
8. 둘러보기
[1] armored reconnaissance/airborn assault vehicle[2] CBSS 설치 이후 미사일 탑재량이 9발로 줄었다.[3] 나중에 M240으로 교체[4] 전쟁 당시 셰넌도어 계곡 지역을 갈아엎으면서 남부의 전쟁 수행 능력을 박살낸 기병 전문가. 전쟁 말에는 로버트 리가 항복하기 전까지 기병들을 이끌고 쫓아다녔다. 인디언 전쟁에서도 초토화 전술을 벌여 인디언들의 생활 기반을 무너뜨렸다. 또한 '좋은 XX는 죽은 XX'의 유래이기도 하다.[5] MBT-70의 개발 시작은 M551보다 늦으며, 건 런처 또한 원래 셰리든 용으로 개발 중이던 것을 대전차포로 개량한 것이다.[6] 해당 차량은 월드 오브 탱크에서 한국 기준으로 9월 25일 9.3 패치때부터 추가됐다. 물론 이 차량의 명칭은 T49가 아니다.[7] Zaloga, S. J., M551 Sheridan: US Airmobile Tanks 1941-2001, (2009)[8] 셔먼 DD처럼 부항 스크린을 세워서 도하하는 방식이었다.[9] R.P.Hunnicutt - Sheridan : A History of the American Light Tank Volume 2. Presidio 1995[10] 알루미늄 분말은 초고온 소이탄의 재료로 쓰일 정도로 연소반응성이 높다.[11] 물론 다른 차량의 승무원들도 마찬가지였다.(Kerns Brian D., Not Just an Infantryman's War- United States Armored Cavalry of the Vietnam War, 16 JUN 2006) 그리고 베트남전 당시 승무원들의 수기를 보면 푹푹 찌는 정글 안에서 쇠상자(...)에 갇혀있으면 총에 맞아 죽기 전에 쪄죽을 판이라서 나왔다고 한다. 물론 조종수는 차를 몰아야 하므로 당연히 나오지 못했다. 안습.[12] Zaloga, S. J., M551 Sheridan: US Airmobile Tanks 1941-2001, (2009)[13] 특히 포를 쏘면 그 가벼운 차체가 아무리 저압포라 해도 152mm이기에 반동으로 차체가 많이 흔들리고, 연기가 많이나서 승무원들은 전투에서 주로 동축기관총과 기관총을 사용하였다.[14] Optimum Mix of Armored Vehicles for Use in Stability operations. Volume 1, ARMY CONCEPT TEAM IN VIETNAM APO SAN FRANCISCO 96384, 31 MAR 1971.[15] 그리스건은 1990년대 중반까지 일부 차량 승무원의 PDW로 사용되었다.[16] 자세한 내용은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들어가면 쉽게 확인할 수 있는데 당장 1981년 4월 30일 경향신문 1면 헤드라인에 "韓美安保協議會(한미안보협의회) 1차會議(회의) 美(미),對韓軍事借款(대한군사차관)상환기간延長(연장)"이라는 제목으로 기사가 보도가 되어있다.[17] 다만 현재는 공수장갑차 개발과 도입을 추진하는만큼 만일 당시 소수를 도입했다면 교리 연구나 개발을 위해 여러가지 참고할 순 있었을 것이다. 물론 먼 훗날의 일이기에 당시의 결정이 옳았음에는 변함이 없는 여담에 불과한 이야기이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