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

 

1. 江景
2. 强硬
2.1. 관련 인물, 집단
3. 삼국시대 위나라의 인물
3.1. 창작물에서
4. 쩐까인의 고조부


1. 江景


충청남도 논산시의 행정구역. 강경읍 문서로.

2. 强硬


굳세게 버티어 굽히지 않는다는 뜻이다. 강경대응 할 때의 강경이다.

2.1. 관련 인물, 집단



3. 삼국시대 위나라의 인물


姜冏
생몰년도 미상
삼국시대 위나라의 관료. 천수군의 공조로 강유의 아버지.
아들인 강유가 어렸을 때 강족과 융족의 반란이 일어나 직접 군 태수를 보호하다가 전쟁터에서 죽었으며, 그 덕분에 강유는 중랑의 직책을 얻어 군의 군사적인 일에 참여했다.

3.1. 창작물에서


삼국전투기에서는 나루토나라 시카쿠로 등장한다.
기 전투편에서 처음 등장. 마초가 양주를 공격할 때 위강이 성을 지키다가 끝내 성문을 항복하는데, 마초가 군사들에게 위강의 목을 당장 베라고 하자 항장의 목을 베는 경우가 어디 있냐고 항의하면서 마초의 군사들을 상대로 양민학살을 시전하다가 옆에서 갑자기 나타난 방덕에게 살해당했고 그 목은 위강과 함께 걸렸다. 아무래도 태수를 보호하다 죽었다는 기록과 엮어서 출연시킨 것으로 추정된다.
해당 화에서 어린 강유도 등장했다. 강경이 방덕에게 살해당할 때 강유가 아버지를 부르며 울면서 뛰쳐나가려는 것을, 그의 어머니가 붙들고 만류하는 장면이 나왔다. 이 등장 때문에 해당 화 댓글에는 '강유가 미쳤다고 자기 아버지를 죽인 사람이 있는 진영에 투항하냐'는 식으로 말이 나왔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강경이 마초 혹은 그의 군사들에게 죽었다는 기록상의 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서방 이민족의 공격을 방어하다 죽은 것이고, 최훈이 당시 강족의 공격이 마초와의 연합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설정으로 묘사한 것이다.[3] 그리고 강유가 촉에 투항한 시점은 마초가 이미 사망한 뒤이다. 물론 그 사촌동생이랑은 동료로써 싸웠지만.

4. 쩐까인의 고조부



'''묘호'''
'''목조(穆祖)'''
'''시호'''
의황제(懿皇帝)
''''''
강(姜) / 사(謝) / 쩐(Trần, 陳/진)
''''''
낀(Kinh / 京 / 경)
'''생몰기간'''
? ~ ?
대월 쩐 왕조의 초대 황제인 태종의 고조부이다. 본래 성씨는 사(謝) 또는 강(姜)씨이며 보통 강경(姜京)이라 불린다. 강경은 원래 송나라의 계림인 출신이며 월남(베트남)에 정착해 대대로 어업에 종사하였다.
강경의 아들은 강흡(姜翕), 또 강흡의 아들이 강리(姜李), 강리의 아들이 강승, 강승의 아들이 바로 쩐 왕조의 태종인 쩐까인이다. 황제로 즉위하자 태종이 목왕(穆王)으로 추존했다가 영종이 시호를 추가해 목조(穆祖) 의황제(懿皇帝)로 추존되었다.

[1] 송준길 계통의 서인들은 송시열보다는 훨씬 온건적이었다.[2] 당시 송시열은 많은 정적들을 만들었다.[3] 다만 강유의 유소년기에 해당하는 202~217년 사이에 이루어진 강족의 침공 사건은, 213년 마초가 강족과 연합하여 조조를 공격한 일 외에는 기록으로 남은 사건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단지 다른 시기에도 기록에 남지 않은 침공이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강경이 213년 마초와 강족의 연합 공격을 방어하다 죽었다'고 단언할 수 없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