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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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鉉圭
1937년 01월 19일 ~
1. 개요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1937년 경상북도 군위군에서 태어났다. 경북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하였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당 후보로 경상북도 선산군-군위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김봉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역시 민주공화당 김봉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공천을 받지 못하여 무소속으로 경상북도 성주군-칠곡군-선산군-군위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신현확 후보와 신민당 김창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북도 성주군-칠곡군-구미시-선산군-군위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공화당 신현확 후보[1] 와 동반 당선되었다. 1979년 6월 신민당 김영삼 총재 체제가 출범하자 예춘호, 이상민, 오세응, 한병채, 박찬, 손주항 등과 함께 신민당에 입당하였다. 이 때부터 친 김영삼계 정치인으로 활동하였다. 1980년 4월 신민당 지구당 개편에 의해 김창환 대신 지구당위원장에 선출되었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한국당 후보로 경상북도 구미시-선산군-칠곡군-군위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박재홍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1982년까지 민주한국당 정치훈련원장을, 1982년부터 1984년까지 민주한국당 정책위의장을 역임하였다. 1984년 서석재, 김찬우, 홍사덕, 박관용, 허경만, 최수환, 손정혁 등과 민주한국당을 탈당하여 신한민주당에 입당하였다. 그러나 정권의 압력으로 신한민주당을 탈당하여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당선 후 신한민주당에 재입당하였다. 1986년부터 1987년까지 신한민주당 원내총무를 역임하였다. 1987년 신한민주당을 탈당하여 통일민주당에 입당하였고 통일민주당에서도 원내총무를 역임하였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민주정의당의 김윤환을 피해 경상북도 선산군-군위군 선거구를 떠나 통일민주당 후보로 대구직할시 중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정의당 유수호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 출범하자 이기택, 김상현, 노무현, 김정길 등과 함께 따라가지 않고 꼬마민주당에 잔류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김승목을 제치고 민주당 공천을 받아 서울특별시 마포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같은 해 제14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돌연 민주당을 탈당하여 민주자유당에 입당하였다.
1995년 민주자유당의 인기가 하락하자 다시 민주자유당을 탈당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북도 칠곡군-군위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한국당 장영철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다시 이회창 지지를 선언하며 신한국당에 복당하였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국민당 후보로 대구광역시 중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백승홍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 선거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